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86화 (86/285)

제86화. 던전 앞 자원봉사자 (1)

세이프던전 동쪽 15킬로미터 지점, D급 던전 바람개비. 삼각형으로 생긴 네 조각의 문이 시시각각 움직이는 던전의 입구 때문에 지어진 별명이다.

“곤란하군.”

바람개비 던전 입구 앞. 무명을 어깨에 태운 천마가 턱을 쓰다듬었다.

평소라면 수시로 움직여야 할 네 조각의 문이 완전히 멈춰 있었다. 꽉 다문 조개처럼 움직이지 않는 문을 바라보던 천마가 주먹을 내뻗었다.

쿠웅.

낮은 울림과 함께 던전이 뒤흔들렸지만, 문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재구축에 들어간 것 같진 않은데, 이상하군요.]

“이런 경우가 흔한 건가.”

한참 동안 입구를 조사하던 무명의 눈에서 하얀빛이 거두어졌다.

[아닙니다. 이런 경우는 저도 처음 봅니다.]

천마는 어둑해지는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천마는 바람개비 던전 내에 서식하는 ‘호랑이 풀’을 채취하러 왔다. 그 향기만으로 신경안정제의 효과가 있다는 호랑이 풀은 대지유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입욕제 재료이기도 했다.

“점주가 내일 당장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어쩔 수 없군. 강제로 부술 수밖에.”

던전을 부수기 위해선 십이 성의 천마대능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고작 입욕제를 얻기 위해 육체에 상당한 무리가 가는 천마대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려야 하다니.

천마는 껄끄러운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허허허.”

그때 등 뒤에서 걸음 소리와 함께 걸걸하고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야생동물을 구경시켜 주는 사파리 직원 같은 옷을 입은 노인이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바람개비 던전에 들어가려는가.”

천마가 고개를 끄덕이자 노인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조금만 기다리게. 이 바람개비 던전은 북동풍이 솔솔 불거나 해가 질 무렵에 문이 열리거든.”

노인의 눈가엔 보랏빛으로 물든 커다란 흉터가 있지만, 눈빛이 선해 인상이 나쁘지 않았다.

머리에서 위잉 소리를 내던 무명이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그런 정보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사람처럼 말하는 무명을 보자 노인이 웃으며 고갤 저었다.

“최근에 좀 바뀌었네. 하도 이 근방에서 미등록 각성자들이 히든몬스터를 몰래 불러들여서 말야.”

[히든몬스터를요?]

“던전에 밀어 넣으면 쉽게 잡을 수 있다나 어쩐다나. 뭐, 어쨌든 히든몬스터 유물은 큰돈이 되니 말일세. 몇몇 히든몬스터의 출현 조건이 제법 알려졌는지… 위험도 낮은 히든몬스터들을 곧잘 불러내더구만.”

무명은 노인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던전의 사정을 정확히 알고 있는 걸 보니, 협회에서 오셨나 보군요.]

협회의 인물이라면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천마 역시 미등록 각성자 신분이었으니.

노인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하하, 아닐세. 난 그냥 던전에서 봉사 활동을 하는 것뿐이지.”

[봉사 활동이요?]

“그냥 대단한 건 아니고. 초보 각성자들을 안내해 주거나, 미등록 각성자들에게 주의를 주는 거지.”

[무일푼으로 말입니까?]

무명의 수다가 길어지자 천마가 손을 내저었다.

“시끄럽다. 노인장에게 자꾸 말 걸지 마라.”

“허허허. 나는 괜찮네.”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은 노인이 천마의 단단한 근육을 바라보며 말했다.

“부유한 신참 각성자 같구먼. 비싼 나노봇에 고가의 언어 팩까지 설치한 걸 보니.”

천마가 말없이 우뚝 서 있자 노인이 손을 내뻗었다.

“9급 각성자 김광욱이네. 소속은 없지만, 열심히 던전을 돌아다니며 봉사를 하고 있지.”

사람 좋은 노인네가 조언도 해주고 인사까지 건네는데 무시하기도 애매했다. 노인을 바라보던 천마는 마지못해 내민 손을 붙잡았다.

“본좌는 천마다.”

“응?”

[죄송합니다. 저희 천마 님은 외국인 각성자로… 아직 존댓말을 배우지 못해서요.]

무명이 재빨리 말하자 노인, 김광욱이 개의치 않는다는 듯 웃었다.

“허허허. 그랬구먼. 어쩐지 눈 색깔도 그렇고, 외국 사람처럼 보인다 했지.”

끼이이익.

그때, 쇳소리와 함께 삼각형 모양의 네 조각 금속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광욱의 말대로 해가 떨어지자 던전의 문이 다시 열린 것이다.

“수고하라.”

무명을 어깨에 태운 천마는 문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콰릉!

폭음과 함께 시퍼런 빛이 문틈 사이로 쏟아졌다.

문틈 사이로 미등록 각성자들이 불러낸 위험도 500의 히든몬스터, 번개쭉쭉이가 숨어 있던 것이다.

“흠.”

쏘아지는 번개를 발견하고도 천마는 몸을 피하지 않았다. 저 정도 전기는 천마의 피부조차 간지럽힐 수 없을 테니까.

“흐억.”

하지만 비명은 엉뚱한 곳에서 흘러나왔다. 어느새 달려온 김광욱이 천마의 몸을 가로막은 것이다.

“괜, 괜찮나.”

“본좌는 괜찮다.”

“다, 다행이군…….”

바닥에 쓰러져 부들거리던 김광욱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

천마는 이 오지랖 넓은 노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한심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다 그대로 지나치려 하자,

[천마 님.]

무명의 말에 천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노인장이 혼자 자멸한 거다.”

[그래도 천마 님을 구하기 위해 몸을 날렸잖아요.]

무명의 눈을 바라보던 천마는 귀찮다는 듯 중지를 튕겨 지풍을 쏘아냈다.

팍!

둔탁한 소리와 함께 김광욱의 전중혈에 천마의 반극진기가 퍼졌다.

“허억.”

그러자 기절해 있던 김광욱이 튕기듯 일어나 주위를 둘러봤다.

“자네, 괜찮은가?”

깨어나자마자 천마의 몸부터 걱정하는 김광욱을 보자, 무명은 감동한 듯 대답했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몸은 어떠세요?]

“하하하. 괜찮네. 의외로 몸이 튼튼해서 말야.”

무명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김광욱 각성자님. 각성자 데이터베이스를 보니 육체만 개화하셨더군요. 만약 번개쭉쭉이가 아니라 다른 히든몬스터였다면 목숨을 잃었을 겁니다.]

“허허허. 이 늙은 몸이야 죽는다 한들 뭐가 아깝겠나.”

김광욱의 눈동자엔 언뜻 슬픔이 스쳐 지나갔다.

천마의 두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이 노인이 목숨을 잃는 걸 두려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진심으로 남을 위해 희생하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연 없는 무인은 없겠지…….”

무심한 표정으로 김광욱을 쓱 지나치던 천마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목숨이라는 건 아무렇게나 버릴 수 있는 가벼운 것이 아니다, 노인장.”

김광욱과 시선을 마주친 천마의 눈에선 엄숙한 빛이 흘러나왔다.

“안면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아무렇게나 버릴 수 있는 건가? 그렇게 하찮은 목숨이라면 어디 가서 혼자 죽는 게 낫다.”

[천, 천마 님.]

“자기만족을 위해 희생하는, 그따위 죽음은 무인에겐 민폐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천마를 바라보던 김광욱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자기만족을 위한… 희생이라고?”

두 주먹을 꽉 쥔 김광욱은 이를 깨물었다.

아무리 사람이 좋다지만, 수십 년간 자신을 지탱해 주었던 신념을 산산이 부수는 자를 어찌 가만히 두겠는가?

“자네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하나!”

앞으로 달려가 천마의 앞을 가로막은 김광욱이 소리쳤다.

“나는 내 모든 걸 걸고 이 일을 하는걸세!”

“알고 싶지 않다.”

“당장 그 말을 취소하게. 난 결코 자기만족을 위해 이런 일을 하는 게 아냐!”

주먹을 꽉 쥔 김광욱의 눈에선 슬픔과 괴로움이 새어 나왔다.

“나는… 나는…….”

[천마 님. 던전에 들어올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입니다. 그런 분의 속을 뒤집어서 화병을 일으키려고 작정하신 겁니까.]

“본좌의 의견을 말한 것뿐이다.”

[그렇다면 저분의 의견도 들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명의 신랄한 꾸지람에 천마는 침음을 내었다.

“좋다.”

들어가려던 입구에서 다시 나온 천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팔짱을 꼈다.

“이야기 정도는 들어주지.”

하지만 김광욱의 감정은 쉽게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괴로운 표정을 지을 뿐, 입을 열지 않는 그를 보자 천마는 흠 소리를 내었다.

‘신경 쓰이게 하는군.’

쉽사리 노인이 입을 열지 못하자 입맛을 다신 천마는 던전 근처에 있는 나무 하나를 베었다.

그리고 식지를 가볍게 튕기자 생나무 조각들이 순식간에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이 되었다.

타타탁.

쏟아지는 별이 보이는 던전 아래, 모닥불 소리만이 적막을 깨고 있었다.

노인이 편하게 말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준 것이다.

“후우…….”

한동안 모닥불을 바라보던 김광욱이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흔히 말하는 퍼스트 버스터(first-Buster) 세대일세. 전국 각지에 갑작스럽게 생긴 던전 때문에 총을 들고 싸워야 했지.”

퍼스트 버스터 세대.

인류가 던전을 최초로 맞이했던 시대의 장년층을 뜻하는 말이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몬스터를 없애기 위해 희생한 세대이기도 했다.

“그 당시엔 던전 속에서 현대 화기를 사용하면 안 되는 것도 몰랐고, 각성자라곤 찾아볼 수 없었지. 게다가 국가 비상사태인지라, 노인들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남성들은 군대로 차출되어 총기를 들고 전투에 참전했네.”

지난날을 회상하는 듯 김광욱의 눈이 수면에 반사된 햇살처럼 반짝였다.

“당시 내 곁에는 좋은 친구가 있었네. 용감하고 민첩해서 위험할 때마다 수없이 나를 구해 준 고마운 동료이기도 했지.”

잠시 탄식을 하던 김광욱이 말했다.

“그렇게 매일 던전이란 전장으로 나가던 우리 부대는 C급 던전인 화룡산 중심부에 갇혔어. 하지만 출구를 찾지 못한 통에, 결국 부대원들은 모두 죽고 그 친구와 나만 남았지.”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듯 심호흡을 한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화염을 쏘아대던 몬스터에 쫓기다 아주 우연찮게 탈출구를 찾았네. 하지만 그곳은 한 사람만 겨우 빠져나갈 수 있을 만큼 매우 좁았어.”

그 당시를 떠올리는지 김광욱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땐 무서워서 정신이 없었어. 결국 나는 그 친구를 밀치고 탈출구를 빠져나갔네. 나는 절대로 죽고 싶지 않았거든.”

“흠.”

“그리고 내가 출구로 빠져나가는 순간, 그 친구는 불을 쏘아대는 몬스터들에게 포위되었지.”

잠시 말을 멈춘 김광욱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 친구가 날 보며 어떻게 행동했는 줄 아나?”

“분노했겠지.”

“그래. 나도 그럴 줄 알았네. 하지만 그 친구는 말야…….”

고개를 떨군 김광욱의 눈에선 회한의 눈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불길을 등으로 막으며 날 보고 씩 웃더군. 어서 빨리 가라고 손짓까지 하고 말야.”

천마는 침묵하고 무명은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인간의 우정은 위대하다.

온몸이 산산이 불타오르는 고통스러운 죽음 앞에서도 친구를 위해 웃으며 손짓할 수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단 하루도 편히 산 적이 없었네. 눈을 뜨면 살아 있는 내가 경멸스러웠고, 눈을 감으면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으니까.”

천마를 바라보던 김광욱은 두 손을 모은 채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나는 너무나 큰 잘못을 했어. 그 전쟁터에서 날 지켜주었던 동료이자 친구를 배신하고 도망갔네. 그런데 어찌 내가 맨정신으로 살 수 있겠나.”

솟구치는 슬픔을 억누른 김광욱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이후, 나는 던전에 들어가 목숨을 도외시하고 싸웠지. 하지만 결국 던전을 안정화시킨 건 각성자들이었어.”

고통스러운 지난날을 회상한 탓인지 그의 눈동자는 끊임없이 떨리고 있었다.

“각성자들이 대거 등장하자 전쟁은 끝나고 세상은 곧 평화로워졌네. 그러다 십여 년 전, 갑작스럽게 나도 뒤늦은 각성을 했다네.”

툭.

결국 한 방울의 눈물을 흘린 김광욱이 다시 말했다.

”각성자가 된 후, 나는 젊은이들이 던전에서 목숨을 잃지 않도록 돌아다니며…….”

말을 삼킨 김광욱은 죄스러운 마음에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오열하고 있었다.

천마는 덤덤한 시선으로 먼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던전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전국의 도시를 떠돌았지. 그런데 이곳이 유독 히든몬스터가 많이 나온다고 해서 말야. 여기에 뭐 도움이 되는 게 없나 해서 왔지.”

손수건으로 얼굴을 박박 닦은 김광욱이 손을 내저었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구먼. 미안하네.”

“미안할 것까진 없다. 나이가 들면 말이 많아지는 법이니.”

김광욱은 눈물과 헛웃음을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

“말 많은 노인네라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말야. 난 한 번도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해본 적이 없네. 부끄러운 이야기니.”

“그런데 왜 본좌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건가.”

“글쎄.”

김광욱은 천마를 보며 쑥스러운 듯 말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네라면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야. 왠지 그 친구가 떠오르기도 하고.”

“본좌와 비슷한 용모를 지녔단 말인가.”

“아, 아니. 그렇진 않아. 그 친구는 깡마르고 말도 많으니까. 이상한 사투리도 쓰고.”

동료이자 친구를 떠올린 김광욱이 괴로운 웃음을 삼켰다.

“그날로 돌아간다면 절대 그런 선택은 하지 않았을 텐데 말야. 어서 하루빨리 지옥에 가서 그 친구에게 빌어야 할 텐데…….”

모닥불을 바라보던 그는 천마를 바라보며 메마른 미소를 보였다.

“미안하네. 바쁜데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여하튼… 조심히 다니게나.”

천마나 무명이 뭐라 말할 새도 없이 김광욱은 힘없이 돌아섰다.

“흠.”

돌아서는 김광욱을 바라보는 천마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언가 깊은 생각에 빠진 것처럼.

* * *

욕실을 새로 리모델링하는 것은 타일을 새로 붙이는 것과 같다.

즉 철거시공과 덧시공이 있다.

철거시공은 기존의 타일 면을 모두 제거한 후, 다시 벽채에 타일을 떠붙임(속칭 떠발이) 시공을 하는 것.

덧시공은 말 그대로 기존 타일 면에 타일을 덧붙임 하는 시공이다.

그 중 떠붙임 시공은 난이도가 상당하기 때문에 베테랑 타일 시공 기사만이 시공할 수 있다.

그래서 복복 인테리어의 떠붙임 시공은 늘 김찬원이 도맡아서 하고 있다.

처억. 처억.

김찬원은 커다란 들통에 사모래와 시멘트를 섞은 모르타르를 흙손으로 듬뿍 퍼 올렸다.

그리고 타일에 듬뿍 바른 뒤 벽면에 하나하나 붙이기 시작했다.

“호.”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천마는 감탄성을 내었다.

과거와 달리 천마의 인테리어 지식은 전문가 못지않게 축적되어 있었다.

한눈에도 김찬원의 떠붙임 실력이 반박귀진(返璞歸眞:재주가 뛰어나 오히려 평범해 보이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걸 간파한 것이다.

“대단하군.”

천마의 칭찬에 타일을 붙이던 김찬원이 쑥스럽게 웃었다.

“으허허허. 뭐 이 정도 가지고 새삼스레 그런디야.”

한 분야에서 오래 몸담은 달인들이 자신의 일에 능숙한 건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

천마가 감탄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지금까지 줄곧 같이 일해보니 김찬원은 타일 시공 기술뿐만 아니라, 전 분야에서 뛰어난 시공 기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기술과 기법에 정통하기란 쉽지 않지.”

오늘도 김찬원은 타일을 붙이기 전, 욕실의 철거와 방수, 배관 수리까지 모두 완료한 상태였다.

능숙한 설비 기술자에 버금가는 실력으로 말이다.

“역시 만류귀종의 이치를 터득한 건가.”

“응? 그게 뭔디?”

“예를 들어 검에 지극(至極)한 경지에 도달하면 모든 병기에 대한 수법에 통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천마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김 씨는 타일을 시공하다 보니 전 분야의 인테리어 시공에 전문가가 된 것 같군.”

“그럴 리 있겄어?”

흙손을 내려놓은 김찬원이 허탈하게 웃었다.

“지금이야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도 먹고 살지만, 옛날엔 기술 하나 가지곤 먹고살기 힘들었어. 그래서 닥치는 대로 배웠지.”

옛 생각을 하는 듯, 수면에 비친 햇살처럼 김찬원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때는 정말 힘들었다고. 갑작스럽게 던전이 출현하고 나선 온 세상은 폐허가 되었으니 말여.”

과거 폐허로 변했던 도시의 모습을 떠올린 김찬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뒤늦게 인테리어 일에 뛰어든 것도 다 그것 때문이구먼. 온 도시가 다 망가져 있으니 말이여.”

“그랬나.”

천마는 별로 감흥 없다는 표정이었다.

어느 세계나 위기는 있다. 천마가 있던 무림에서도 멸망에 가까운 대재앙이 발생했었다.

다만 대기근이라든가 전염병과 같은… 이곳 세계와는 조금 다른 위기였지만.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어부렀네? 얼른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고.”

타일 한 장을 붙인 김찬원이 웃으며 땀을 닦았다.

그런데 땀에 흠뻑 젖은 김찬원의 뒷등을 바라보던 천마가 눈을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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