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82화 (82/285)

제82화. 복복 인테리어의 새 직원 (2)

“동원이 녀석에게 부탁까지 했는데… 구하기 쉽지 않나 봐.”

“직원이라. 꼭 구해야 하는 건가.”

천마의 말에 장채원이 발끈했다.

“배달꾼 의뢰 전화에, 인테리어 견적 의뢰 전화에, 매장에 온 손님 응대에, 인테리어 시공 현장 확인에, 나 혼자 이걸 다 하라고?”

“안 되나?”

“당연하지!”

장채원은 지친 얼굴로 천마를 바라보았다.

“게다가 요새 오는 대부분은 던전 재료 배달 의뢰야. 이래선 너도 인테리어 시공자가 아니라 배달꾼으로 전직해야 할 판이라고.”

“으음.”

어쩔 수 없나.

천마가 입맛을 다실 무렵, 김찬원이 먼지를 뒤집어쓴 모습으로 매장에 들어왔다.

“응? 던전에서 이제 온 겨?”

“뭘 했길래 그렇게 먼지투성인가.”

“뭘 하긴. 천 씨가 해야 할 철거를 내가 하고 왔잖여.”

“김 씨가 말인가?”

천마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김찬원이 지친 얼굴로 말했다.

“천 씨가 던전에 들어가는 일이 잦아져서, 철거 일을 할 사람이 없구먼.”

“그렇군.”

셋 다 모두 지쳤는지 어깨가 늘어져 있다.

슬그머니 시계를 바라보던 장채원과 김찬원이 동시에 말했다.

“회식이나 하자.”

“회식 어뗘?”

그렇다. 오늘같이 고된 날은 회식이 제격이었다.

“본좌는….”

천마는 거절했지만, 당연히 그 의견은 소란 속에 묵살되었다.

도심 번화가, 먹자골목.

천마 일행은 모처럼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푸지게 걸치고 나왔다. 일반 사람들이 많은 번화가에 온 만큼, 오늘 회식에는 무명과 제비는 데려오지 않았다.

“아, 잘 먹었다.”

삼겹살 집에서 나온 장채원이 배를 두드리자 옆에서 이를 쑤시던 김찬원이 쩝쩝거리며 말했다.

“그르게 말여. 오늘 같은 날은 정말 한잔 안 할 수 없는 날이랑께.”

“2차는 어디로 갈까요? 좀 조용한 곳이 좋을 것 같은데.”

“그때 갔던 노병은 어떤감? 거기 술이 끝내주잖여. 분위기도 좋고.”

“좀 멀지 않아요? 여기서 택시 타고 가야 하는데?”

“뭐, 걸어가도 금방이여. 20분이면 갈 텐디.”

김찬원과 장채원의 대화를 듣던 천마가 2차 장소를 확정지었다.

“노병으로 가지.”

일행들은 두말없이 번화가를 벗어나 길거리를 어슬렁어슬렁 걸었다.

“어라?”

앞장서서 걷던 장채원은 멀리 반짝이는 불빛을 발견하곤 손가락을 가리켰다.

“저기에 포장마차가 있었네. 근사한걸?”

굴다리 밑, 어둠이 가장 짙게 물든 곳엔 은은한 노란 불빛으로 물든 포장마차가 있었다.

번화가와 일반 주택가와도 한참 떨어진 외딴 도로가에 있는 탓에 눈에 잘 띄지 않았던 것이다.

“간만에 포차 어때요?”

장채원의 말에 천마와 김찬원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은은한 노란빛이 흘러나오는 포장마차의 허름한 외관.

문득 거리를 스쳐 지나가는 찬바람에 포장마차에서 펄럭펄럭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으, 좋구먼. 도저히 한잔 안 할 수 없는 묘한 정취가 있네그려.”

동의를 구하려는 듯 김찬원이 웃으며 말하자, 천마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포장마차 내부로 들어가자 안주를 담아놓은 테이블이 보였고, 그곳에는 재료를 손질하고 있는 포차 주인이 서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푸근한 중년여성이 서 있을 법한 테이블엔 놀랍게도 젊은 여성이 서 있었다.

갓 이십 대나 되었을까?

까무잡잡한 피부에 컬러렌즈를 꼈는지 회색빛 신비로운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둥근 숏 컷 머리에 이국적으로 생긴 용모의 여성은 포차 주인이 아니라, 파도를 타러 온 여성 서퍼처럼 보였다.

“뭘로 드릴… 헉!”

여성은 무심코 천마를 바라보곤 묘한 탄성을 질렀다.

“생, 생긴 게 조금 험악하죠? 그래도 해치지 않아요.”

천마의 얼굴을 가리킨 장채원이 웃으며 농담을 할 무렵,

“허허허, 독특한 양반이구먼.”

갑자기 김찬원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주인에게 묘한 인사를 건네었다.

“힘든 결정을 했구먼그래. 포차를 운영하다니.”

“그렇습니까? 어르신도 평범한 선택을 하신 것 같지 않은데 말입니다.”

이상한 말투다.

주인 여성은 마치 군기가 바짝 든 훈련병 같은, 독특한 말투를 사용하고 있었다.

“으허허허. 그런감?”

두 사람 사이에 이상한 대화가 오가자 장채원은 눈을 껌뻑였다.

‘아는 사인가? 표정을 보면 그런 것 같진 않은데.’

장채원의 시선을 느낀 주인은 미소를 머금으며 손을 뻗었다.

“편하신 곳에 앉으십쇼.”

천마와 일행들은 포차 구석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뭐 먹을까.”

벽에 걸린 메뉴를 살펴보던 장채원은 ‘주방장 특선, 1인 2만 원’이라고 적힌 팻말을 가리켰다.

“저, 주방장 특선은 뭔가요?”

“그날그날 들어온 괜찮은 재료들로 알아서 안주를 준비해 드리는 겁니다.”

조용히 재료를 손질하던 주인 여성이 동작을 칼 같이 멈추고 대답했다. 어딘가 모르게 딱딱하면서도 절도가 배어있는 모습이다

“그럼 주방장으로 3인 주세요.”

“알겠슴돠!”

뜨끈하게 데워진 얼큰한 탕, 노릇하게 구워진 꼬치구이, 매콤하게 볶아진 두루치기.

그리고 포차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육회와 새콤한 샐러드 무침까지 나왔다.

“와아.”

1인 2만 원에 이렇게 푸짐하게 안주가 나오다니?

장채원은 놀란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여기 되게 푸짐하다아.”

매콤한 소스가 발라진 양념꼬치구이를 잡은 장채원이 입안 가득 베어 물었다.

입안에서 맴도는 풍부한 육즙과 숯불 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자, 그녀는 잔에 담긴 소주를 쭉 들이켰다.

“크으. 이 맛이야.”

힘들게 일한 날에 먹는 소주는 항상 각별하다.

장채원이 허겁지겁 꼬치구이와 소주를 먹고 마실 무렵, 그 모습을 바라보던 천마의 눈동자에서 강렬하면서 뜨거운 빛이 흘러나왔다.

“왜 그런 눈으로 봐?”

장채원이 뜨악한 표정을 짓자 천마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잘 먹는군.”

“그러엄. 내가 닭꼬치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볼이 터지도록 꼬치구이를 베어 문 장채원이 배시시 웃자 천마가 덤덤히 말했다.

“도노반이다.”

“응?”

“도노반이라고.”

“뭐?”

“점주가 먹고 있는 것 말이다.”

도노반이라는 단어가 연속으로 귀에 박히자, 장채원의 눈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시궁창 던전에 서식하는 마물이지. 생긴 건 흉측하기 짝이 없지만 퍼런 가죽을 제거한 다음 허연 힘줄을 제거해 꼬치구이로 먹으면…….”

천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채원이 웩 소리와 함께 휴지통에 꼬치구이를 뱉어내었다.

“그런 건 미리 말해!”

“아는 줄 알았다.”

“저번에도 말했잖아. 난 던전에서 나온 식재료는 안 먹는다고!”

장채원의 격렬한 반응에 천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군. 점주쯤 되는 사람이 던전에서 나오는 재료를 모른단 말인가.”

“말했잖아. 던전 싫어한다고! 그런데 거기서 나오는 식재료를 알겠냐?”

“그렇다고 이미 먹은 걸 뱉을 것까진 없잖나.”

“싫어. 난 싫다고.”

옆에서 덤덤히 앉아있던 김찬원이 눈을 껌벅였다.

“가만, 던전 재료?”

던전 식재료는 대부분 크기가 엄청 크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하지만 손질도 까다로운 데다 맛이 있는 편이 아니라 인기 있는 식재료가 아니었다.

맛있고 풍족한 식재료가 굳이 많은 대한민국에선, 던전 재료로 만든 요리들은 괴식으로 취급당하기 일쑤였다.

“아, 미리 설명을 못 드려 죄송합니다. 저희포차는 던전 재료를 저렴하게 받아쓰고 있습니다.”

그 사이, 주인 여성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생선구이 한 접시를 테이블 위에 올려주었다.

“고등어갈비구이와 돼지고기볶음입니다. 던전 재료가 아닌 건 이것밖에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아니에요. 제가 입맛이 별나서…….”

민망함을 느낀 장채원이 고개를 숙이자 주인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닙니다. 미리 말씀을 못 드린 제 잘못이죠.”

여전히 신병훈련소에나 들을 수 있는 딱딱하고 우렁찬 목소리다.

“네, 네에…….”

독특한 주인의 말투에 장채원은 민망하게 웃으며 고등어갈비구이를 집어먹었다.

“윽.”

간도 이상하고 비린내가 확 올라온다.

입에 넣은 고등어를 억지로 삼킨 장채원이 이번엔 돼지고기볶음을 입에 넣었다.

“억.”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나야 할 볶음에서 누린내가 확 풍긴다.

‘도노반꼬치구이 빼고 맛있는 게 없잖아?’

황당함을 삼킨 장채원이 고개를 들자 김찬원도 낭패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분명 요리가 너무 맛이 없어 놀란 표정이다.

‘이, 이래서 손님이 없었구나.’

그제야 이 목 좋은 포장마차에 손님이 없는 이유를 알게 된 장채원이 고개를 떨구었다.

술자리는 밤 늦도록 이어졌다.

비록 요리는 맛이 없었지만, 포차의 분위기가 좋았고, 무엇보다 천마 일행은 전원 말술이었다.

찬바람이 불어 오는 포차에서 소주를 들이켜니 과음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카아.”

소주를 연거푸 들이켠 장채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빨리 매장 직원을 한 사람 더 구해야겠어. 더 이상은 너무 힘들어.”

“본점의 규모를 생각하라. 부하를 늘이는 건 부담되지 않겠나.”

“부하가 아니라 직원. 그리고 네 마음은 알겠는데, 더 이상은 안 돼. 이러다간 신뢰도 못 받을 지경이라고.”

중대한 사안이었나.

순간 천마의 안색, 그리고 마음가짐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었다.

“내일부터 당장 직원을 구하라. 본좌도 협력하겠다.”

“천 씨. 그게 쉬운 일 아니여.”

소주잔을 들고 있던 김찬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뢰도 신뢰지만, 장 사장이 의뢰받은 것들은 어쭙잖은 솔로 배달꾼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여.”

“실력 좋은 자들은 어디든 있다.”

“그거야 그렇지만. 실력 좋은 사람이 이 작은 복복 인테리어에서 월급 받고, 일을 하겄어?”

던전관리팀에서 의뢰하는 것 들은 F급 던전부터 A급 던전 재료까지 다양했다.

이 의뢰를 처리하기 위해선 최소 4급 이상의 각성자, 즉 솔로로 활동해도 큰돈을 벌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이 필요했다.

“맞아요. 그렇다고 김 기사님 같은 분을 또 구할 수도 없고.”

사실 영지의 직원으로 일하는데 최적의 조건을 갖춘 건 상급요괴다.

‘세계의 법칙’ 에 대해서도 잘 아는 데다, 어떤 의뢰든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뭐, 어쩔 수 없죠. 이런 불경기에 일이라도 들어오는 게 어디에요. 손가락 안 빠는 게 다행이지.”

푹 한숨을 쉰 장채원이 다시 소주잔에 잔을 채웠다.

“어디 파트타임으로라도 일할 사람이 있으면 좋을 텐데.”

“저어…….”

그때 재료를 손질하던 주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원 자격이나 경력 제한 같은 게 있습니까?”

“네?”

장채원이 커다란 눈을 깜빡이자 주인이 경직된 표정으로 말했다.

“파트타임도 가능하다면, 저도 한번 지원해 보고 싶습니다.”

“네에? 정말요? 각성자신가요?”

복복 인테리어는 대지유신들과 거래를 하고 있는 영지다. 인족이라고 해도 얼마든지 직원은 될 수 있다.

단지 ‘세계의 법칙’ 에 대해 모른다면, 일을 관둘 때 ‘영지에서 일했던 기억은 지워진다.’라는 조건이 붙긴 하지만.

“아닙니다.”

장채원의 물음에, 주인이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전… 요괴거든요.”

“네에?”

장채원이 입을 벌리자 소주 한 잔을 들이켜던 김찬원이 말했다.

“신병기사(神兵騎士)를 부린다는 환진(幻震)일족이구먼. 그렇지?”

“맞습니다. 어르신은 바람을 부리는 풍령일족이시고요.”

“환진일족이요?”

장채원이 눈을 껌뻑였다.

환진일족. 풍령일족과 함께 요괴 중에서도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다.

특히 환진일족은 정신력을 통해 육체를 분리시켜, 자신과 같은 능력을 지닌 신병기사라는 독특한 기술을 사용한다.

‘그래서 그랬구나.’

그제야 장채원은 왜 김찬원과 주인이 서로 이상한 인사를 건넸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상급요괴인 풍령일족과 환진일족은 서로를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그런데 왜…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계시나요?”

환진일족의 성격은 대체로 안중무인(眼中無人). 한마디로 말해 눈에 뵈는 게 없다는 뜻이다.

그런 오만한 성격에 가진 상급요괴가 왜 이런 곳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있단 말인가?

장채원의 속내를 짐작한 여성이 씩 웃으며 김찬원을 바라보았다.

“풍령일족도, 인간들조차 외면하는 막일을 하고 있잖습니까.”

무례한 언사였지만, 환진일족 특유의 오만함을 알고 있던 김찬원은 무덤덤했다.

사실 김찬원은 일반 요괴들과 달리 인간들을 매우 따스한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속사정이 있기에 타일기사를 하고 있음을 장채원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이 여성도 그런 걸까?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장채원이 입을 다물지 못할 무렵, 주인이 차려자세를 하며 말했다.

“환진일족, 고은진입니다. 성인이고요.”

순수한 요괴는 3살 전후로 성장이 끝날뿐더러, 노화 속도가 인간에 비해 엄청나게 느리다.

그 때문에 요괴들은 자신의 나이를 함부로 알려주지 않는다. 괜히 섣불리 말했다간 애송이, 혹은 늙은이 취급을 받을 테니까.

“네, 반가워요.”

그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장채원은 웃으며 내민 손을 맞잡았다.

“8급 영지, 복복 인테리어를 운영하는 장채원이라고 해요.”

“역시 영지의 주인이셨군요.”

“네?”

“풍령일족 어르신과 저만한 힘을 가진 인족을 직원으로 두셨으니 말입니다.”

그때 말없이 육회 조각을 집어 먹던 천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흠.”

그리고 주인, 고은진의 앞에 놓인 식재료 상자들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천마, 너 뭐 해?”

“역시 이자였군.”

“뭔 소리야.”

장채원의 물음에 천마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진열된 고깃덩이를 가리켰다.

“이 고기는 얼마 전 본좌가 때려잡은 검은늑대의 살점이다.”

“뭐?”

“던전에서 본좌를 따라다니던 녀석이 바로 이자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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