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81화 (81/285)

제81화. 복복 인테리어의 새 직원 (1)

실드경계지역, 천마의 옥탑방.

다시 본 모습을 회복한 천마는 평상에 앉아 다듬이질을 하고 있었다.

다듬이돌에는 잔뜩 구겨진 광마혈투의가 올려져 있었다. 서유리를 구하러 던전으로 갔을 때, 근육이 없어진 상태로 억지로 구겨입었던 터라, 옷감에 구김살이 잔뜩 가 있었기 때문이다.

통닥통닥통닥.

한동안 계속되었던 다듬이질 소리가 잦아질 무렵, 천마의 평상 옆에 앉아있던 무명이 말했다.

[뭔가 아쉽군요.]

“무슨 말이냐.”

[그 구겨진 옷을 펴면 천마 님께서 원래 얼굴로 돌아왔던 흔적이 모두 사라지는 것 같아서요.]

근육질로 돌아온 천마의 모습을 바라보던 무명은 묘한 감정이 들었다.

천마가 잘생긴 모습을 유지한 것은 고작 보름 정도. 하지만 그사이 긴 세월이 흐른 것만 같다.

[이럴 줄 알았다면 사진이라도 같이 찍을 껄 그랬습니다.]

“헛소리 마라.”

천마가 콧웃음을 치며 방망이를 내려놓자, 무명의 머리통에서 낮은 기계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끼리리릭.

“지금, 뭐 하는 거냐.”

[왠지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요. 그 당시 천마 님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감상하는 중입니다.]

무명은 진심으로 아쉬워 하는 듯, 메모리에 저장된, 잘생긴 천마의 모습을 살펴보고 있었다.

버섯을 먹고 모습이 변하던 날부터, 소개팅을 앞둘 당시, 그리고 서유리를 구했을 때의 모습까지.

[천마 님.]

열심히 영상을 감상하던 무명이 갑자기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뭐가 말이냐.”

무명은 대답 대신 천마의 눈앞에 홀로그램 영상을 띄웠다.

화면에는 불스아이 던전에서 보았던 히든몬스터, 가면신사의 모습이 보였다.

[복장, 능력, 공격성…이 불스아이 던전에 등장한 가면신사는 기존에 알려져 있는 가면신사와는 너무도 다릅니다.]

보석 가면이 아닌 스마일 가면을 썼고 양복도 검은색이 아니라 보라색이다.

인간을 먼저 공격하지 않는 온화한 성격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도망가는 김찬원과 서유리의 도주 경로를 가로막을 만큼 집요해졌다.

거기다 천마의 초식을 가볍게 피할 수 있는 그 능력은…….

“그렇군.”

화면을 바라보던 천마의 표정은 병상에서 남의 손자 사진을 보는 노인네처럼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무명은 다시 한번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천마 님. 이 가면신사는 지금까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타입의 히든몬스터입니다. 결국…….]

“관심없다. 등록하고 싶으면 다른 자를 찾아라.”

[그런 말이 아닙니다.]

무명은 다시 홀로그램 영상에, 던전에 있던 서유리의 얼굴을 띄웠다.

[저조차 모르는 생소한 가면신사의 모습을 보고도, 서유리 씨의 표정은 전혀 놀라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리고 천마 님에게 1급 각성자라도 ‘저 가면신사는 상대할 수 없다’라고 했죠. 마치 저 가면신사를 아는 것처럼 말입니다.]

“동료들이 모두 죽었잖나. 이미 접전을 통해 그 마물의 능력을 모두 가늠할 수 있었겠지.”

[그럴수도 있겠습니다만. 뭔가 이상합니다.]

서유리의 얼굴이 비추었던 홀로그램 영상은 어느새 불스아이 던전으로 바뀌었다.

[최근 세이프던전에선 출현 조건이 알려지지 않은 히든몬스터들이 많이 등장했죠. 물론 천마 님 때문에 출현한 것 들도 있지만 아닌 것 들도 있었죠.]

“귀찮군. 요점만 말하라.”

[저는 그 이유가, 다른 세계에서 오신 천마 님의 영향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천마를 바라보는 무명의 눈 센서가 가늘게 반짝였다.

[하지만 지금 보니 아무래도 협회가 재미없는 일을 꾸미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불스아이 같은 위험한 던전을 조사하는 것도 이상하고요. 어쩌면 불스아이 던전이 크게 불안정화가 된 이유도…….]

“본좌는 관심없다. 점주에게 말하라.”

천마가 매정하게 말을 자르자, 무명이 한 숨을 쉬며 대답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장채원 님은 천마 님 보다 던전에 더 관심이 없으실 겁니다. 아니, 던전이 무너지던 말던 전혀 신경쓰지 않으시겠죠.]

“어째서….”

‘점주는 던전에 무관심한가?’라고 물어보려던 천마는 입을 다물었다.

장채원에게도 이런저런 사연이 있다는 것 쯤은 짐작하고 있다. 하지만 굳이 알고싶은 마음도 없었다.

“어쨌든 본좌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광마혈투의와 다듬이 세트를 집어든 천마가 옥탑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알겠습니다. 이 내용은 우선 따로 보고드리진 않겠습니다.]

천마를 바라보던 무명이 시선을 떨구었다.

* * *

다음날.

일찍 출근한 천마는 정신없이 바빴다.

갑자기 던전 재료 의뢰가 밀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다 일반 인테리어 시공 의뢰도 연이어 들어온 탓에 장채원마저 전화기를 연신 붙잡고 있었다.

“우선 급한 일부터 처리하자고. 저번 주에 들어온 던전 재료 의뢰부터 갔다와!”

전화기를 연신 붙잡고 있던 장채원의 외침에 천마는 무명을 데리고 일찌감치 던전으로 나섰다.

A급 던전, 오델로.

문을 열 때마다 바둑판처럼 생긴 대전이 펼쳐지는 던전으로, 몬스터를 처리하면 갈림길이 바뀌는 미로형 던전이기도 하다.

치이이익.

위험도 5만의 몬스터, ‘검은 늑대’ 무리를 단숨에 처리한 천마의 주먹에서 허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흐음.”

전신의 혈맥이 불에 태워지는 듯한 고통이 몰려오자 짧은 침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육체의 잠력을 폭발시키는 천마대능력은 부족한 내공과 파괴력을 보완해 주지만, 금강지체에 도달한 천마의 육체를 조금씩 망가뜨리고 있었다.

[천마 님. 괜찮으십니까?]

눈썹을 찌푸린 채 말 없이 서 있는 천마를 본 무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늘은 무리하셨으니, 그만 돌아가는 게 어떨까요?]

“무리?”

천마가 코웃음 치자 무명의 눈 센서가 힘없이 반짝였다.

[최근 보름 동안, 미스터리 채널 시청으로 인해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지 않으셨습니까?]

“본좌는 석 달간 잠을 안 자도 전혀 지장이 없다.”

사실이었다. 물론 진기가 마르지 않는, 십 갑자의 내공이 온전했을 경우였지만.

[측정된 생체 정보에 의하면, 천마 님의 육체는 상당한 피로도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번 재료 채쥐 임무는 복귀 후, 추후에 다시 진행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본좌의 육체를 멋대로 들여다봤단 말인가?”

[말씀드렸잖습니까. 사용자의 안전을 위해, 던전 내에선 천마의 생체 정보를 수집할 수 있습니다.]

천마가 흥 소리를 내자 무명이 말했다.

[천마 님. 제 조언대로 몬스터를 회피하는 경로로 가셨으면 이런 일이 없지 않았습니까? 어째서……]

“고작 저런 쥐새끼 같은 짐승을 피하란 말인가?”

무명은 한숨을 내쉬었다.

천마는 만용을 부릴 만큼 어리석은 자는 아니었으나, 집요하게 덤벼드는 몬스터를 피해 도망칠 성격도 아니었다.

문제는 이 오델로 던전의 몬스터 검은늑대는 던전 내에 들어온 각성자들을 집요하게 추척하는 습성이 있었다.

던전 내에 돌아다니는 검은늑대의 개체는 대략 50마리.

하지만 죽인다 해도 금세 리스폰되는 특성 때문에, 미로를 지날 때마다 거의 무한대로 튀어나오는 수준이었다.

[근데 저 여성은 왜 천마 님을 종종 따라오는 걸까요? 정식 배달꾼은 아닌 것 같은데.]

천마의 뒤쪽에는 검은늑대의 다리 부분을 열심히 상자에 담는 한 각성자가 있었다.

흔히 입는 나노슈트가 아닌 짧은 반바지와 민소매를 입고 있고, 머리에는 오토바이 헬멧 같은 걸 뒤집어쓰고 있다. 머리에 헬멧처럼 쓸 수 있는 구형 나노봇이다.

거기다 등에 짊어진 건 던전 재료 보관용 특수케이스가 아니라, 일반 아이스박스 같은 상자였다.

[마주칠 때마다 따라오는 건 그렇다 쳐도… 저 늑대 다리를 어디에 가져가려는지 모르겠습니다.]

“먹으려는 거겠지.”

[검은늑대를요? 그럴 리가요. 누린내가 심해서 도저히 먹을 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 여성은 한 달 전부터, 천마와 종종 마주쳤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천마가 몬스터를 때려잡으면, 몬스터의 일부를 수거하고 있었다.

“흠.”

평상복 차림에 커다란 냉장고 같은 걸 짊어진 여성의 외견은 보기에도 기괴했다.

천마는 거슬리긴 했으나, 딱히 피해를 주지 않는터라 그냥 놔두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군.”

몬스터들의 부산물을 주워담는 각성자를 바라보던 천마가 물었다.

“부산물을 남기는 마물과, 죽으면 빛이 되는 마물의 차이가 뭐냐.”

천마가 처리했던 히든몬스터들은 빛이 되어 사라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일반 몬스터들은 빛이 되는 것과 안 되는 것들이 나뉘어져 있었다.

“처리 방법에 따라 바뀌는 건가?”

[아니요. 무작위(랜덤)입니다.]

무명은 덤덤히 설명했다.

[대체로 몬스터들은 부산물을, 히든몬스터 들은 대부분 빛이 되어 사라지고 유물만 남깁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되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무작위죠.]

천마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무작위? 어째서 그렇게 되는 거지.”

[그것이 ‘세계의 법칙’이니까요.]

“흠.”

천마는 길게 숨을 들이쉬었다.

이 세계의 인간들은, 그리고 무명은,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을 매우 당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세계의 법칙’이라는 아주 그럴듯한 명칭 아래에서 말이다.

“그렇담 이것도 세계의 법칙인 거냐.”

손가락을 핀 천마는 거대한 오델로 던전 내부를 가리켰다.

“몇몇 던전은 겉에서 보는 것과 전혀 다른 크기를 가지고 있더군. 지금 이 던전처럼 말이다.”

오델로 던전은 겉 보기엔 5층 상가정도 크기였으나, 실제 내부 공간은 축구 경기장만큼이나 넓었다.

[그렇습니다.]

느긋한 무명의 대답에 천마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

“이 세계 인간들은 어떻게 이런일이 가능한 건지, 왜 이렇게 되는지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냐?”

천마의 마음을 헤아린 듯 무명이 차분히 설명했다.

[천마 님이 현재 사용하시는 전투기법이나, 발휘하시는 신비한 힘은 이곳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 들입니다. 하지만 천마 님이 계시던 곳에선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힘이겠지요.]

무명은 다시 한번 비유를 통해 인간이 갖고 있는 지식의 한계를 설명했다.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이렇게 된다는 것을 아는 것뿐이죠. 지금 천마 님께서는 TV를 틀 줄 알지만, 정확히 TV가 어떤 원리로 작동되는지는 모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음.”

[이러한 건, 저희 세계뿐만 아니라 천마 님이 계신 곳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우주가 넓은 건 알지만, 얼마나 넓은지,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 누구도 모를 테니까요.]

“그렇군.”

무명의 설명에 오묘한 이치가 담겨있다는 걸 깨달은 천마가 모처럼 칭찬의 말을 던졌다.

“네 녀석의 말솜씨엔 감탄할 수밖에 없구나.”

[감사합니다.]

있지도 않은 어깨를 으쓱한 무명이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천마 님의 피로도가 계속 상승 중입니다. 우선 돌아가시는 것이 어떨까요?]

“시끄럽다.”

언제 칭찬을 했냐는 듯 천마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잔소리는 그만하고 검은 조약돌이 있다는 곳으로 안내나 하라.”

* * *

검은 조약들을 포대를 들쳐 멘 천마는 비밀통로를 통해 다시 매장으로 복귀했다. 표정은 덤덤했으나 걸음걸이는 무거웠고 눈빛은 힘이 없었다.

결국 무한히 쏟아지는 검은늑대들의 씨를 말리고 밖으로 나온 것이다.

따르르릉. 띠리리리리링.

뒷문을 통해 매장으로 들어오자 정신없는 전화벨소리가 울려 퍼졌다.

“맞다, 철거를 깜빡했네요! 내일 꼭 해드리겠습니다.”

“아, 철거요? 그럼요. 지금 끝났을 텐데요. 네, 확인 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꽉꽉부기의 알이요? 가능한 온전한 상태라면… 아무래도 힘들 것 같은데요. 제가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일반 전화기, 신뢰용 전화기, 그리고 휴대폰까지.

아침에도 정신없이 전화를 받던 장채원은, 지금까지도 연신 전화통을 붙잡고 있었다.

“아아. 이젠 도저히 안 되겠어.”

통화를 모두 마친 그녀는 책상에 엎드렸다.

“안 되면 직접 찾아 보든가 해야지.”

“뭐가 말이냐.”

“왔어?”

고개를 든 장채원은 초췌한 천마의 몰골을 보자 입을 벌렸다.

“얼굴이 왜 그래?”

“별거 아니다. 시꺼먼 쇳덩이로 만든 늑대들이 달려들길래 모조리 처리하고 왔다.”

“뭐? 검은늑대를? 그거, 리스폰 시간이 엄청 빨라서 거의 무한대로 쏟아질 텐데?”

놀란 장채원의 말에 무명이 한 숨을 내쉬었다.

[저는 회피 경로를 분명히 알려 줬습니다. 단지 천마 님이 거절하신 것뿐이죠.]

“그, 그랬니?”

[저번에 말씀드렸던 이상한 각성자도 또 봤습니다. 오늘도 천마 님과 마주치자 따라다니며 검은늑대의 부산물을 챙기더군요.]

“으, 검은늑대까지?”

장채원 역시 무명으로부터 천마와 종종 던전에서 마주치는 각성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미등록 각성자인 천마를 조사하는 협회 소속도 아닌 것 같고, 그저 죽은 몬스터를 뒤진다고 하길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 가난하고 힘없는 각성자인가 보다. 그 건 정말 못 먹는 건데.”

[그럼 저는 창고 방에서 조금 쉬겠습니다.]

팔다리를 집어넣은 무명이 창고 방 안으로 터덜터덜 굴러갔다.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용자, 천마 때문에 정작 피로는 무명 본인이 더 느끼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까 그건 무슨 말이냐?”

천마는 판다처럼 눈 밑이 거뭇거뭇한 장채원을 보며 말했다.

“직접 찾다니. 아직 던전 재료 채취 임무가 남아있나?”

“아아.”

신뢰용 전화기를 바라보던 장채원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직원 구하고 있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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