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75화 (75/285)

제75화. 천마, 미남이셨네요 (2)

불편하군.

천마의 이맛살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근육이 빠진 탓에 광마혈투의나 우리옷이 맞지 않는다.

두 옷 모두 세계를 대표하는 정점의 옷이었으나, 아쉽게도 사이즈를 대폭 변형시키는 기능은 없다.

[천마 님. 이 옷을 입는 건 어떨까요?]

무명이 가리킨 것은 일전에 장채원이 사다 준 트레이닝복 세트였다.

단지 키만 생각하고 산 옷이라, 거구의 천마의 몸엔 전혀 맞지 않는 옷이기도 했다.

하지만 근육이 모두 빠지니 몸에 맞춘 것처럼 딱 맞았다.

“어쩔 수 없군.”

초록색에 하얀 줄이 그려져 있는 트레이닝복을 입은 천마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라마스의 키를 집어 들었다.

[천마 님. 아직 라마스 차량의 기화기 수리가 끝나지 않았잖습니까.]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천마의 애마 라마스는 여러 가지 부품이 수명을 다한 상태였다. 부품 역시 구하기 어려워 바로바로 수리가 어려운 지경.

“지하철을 타도록 하지.”

늘 한적했던 출근길 역시 갑자기 불편해졌다.

지하철에 타면 언제나 몸 주위로 커다란 원이 그려졌건만, 오늘은 오만 사람들과 바짝 밀착한 채로 타야만 했다.

“잠시만요. 혹시 모델이세요?”

“잠시만요. 저는 대림기획 캐스팅 담당자인데요.”

복복 인테리어로 걸어가는 동안에는 정체 모를 자들이 명함을 잔뜩 건넸다.

심지어 끈덕지게 달라붙은 자까지 있어서 결국 경공을 펼쳐 빠져나와야만 했다.

그런데 불편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뭐? 네가 천마라고?”

“뭐? 버섯을 먹고 그렇게 되었다고??”

“뭐? 그게 원래 얼굴이라고???”

장채원이라면, 외모가 바뀐 것 정도는 시큰둥하게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태도는 천마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바뀌어 버린 외모를 엄청나게 의식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안 하던 행동까지 보이고 있지 않은가?

“천마야. 청소는 하지 않아도 돼.”

“시공일 없냐고? 시공을 하기엔 너무나 좋은 날씨가 아닐까?”

“차 한잔 마실래? 아, 내 말은 차를 마시면서 책을 보라는 거지.”

노트북을 펼쳐놨지만, 장채원의 시선은 모니터가 아닌 트레이닝복을 입은 천마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아아.’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허연 줄이 그어져 있는 트레이닝복을 목까지 추켜 입은 천마.

응접 테이블에 앉아 책을 보는 그의 등 뒤로 후광이 비추며, 수천만 개의 꽃이 피어난 것만 같다.

‘와, 미쳤다…….’

바뀌어 버린 천마는 그저 잘생겨진 정도가 아니었다.

늘 삭막하고 딱딱하던 표정은, 고독하면서도 우수에 찬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게다가 늘 살벌하게 느껴졌던 붉은 눈동자는 어딘가 모르게 퇴폐적이고 슬퍼 보인다.

‘슬퍼, 오늘따라 눈이 슬퍼.’

물론 방송 매체에도 헤아릴 수 없이 잘생긴 미남들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천마처럼 고독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내는 절세미남은 없었다.

“흠.”

천마는 뜨거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장채원을 발견했다.

그것은 처음 청연신을 봤을 때의 표정과 한치도 다름이 없었다.

그렇다. 장채원은 못 말리는, 극도의 얼빠이자 금사빠였던 것이다.

“점주.”

왠지 기분이 잡친 천마는 펼친 책을 탁 하고 내려놓았다.

“점주.”

“응? 왜?”

“그만 쳐다봐라. 얼굴 뚫어지겠다.”

대놓고 핀잔을 줘도 장채원의 입가엔 더없이 환한 미소가 달라붙어 있었다.

“그렇구나. 다른 건 불편한 거 없어? 아니면 다른 책 더 갖다줄까?”

“없다. 일이나 하라.”

“어?”

그제야 노트북 전원도 켜지 않은 걸 깨달은 장채원이 어색하게 웃었다.

“맞아, 맞아. 해야지, 암, 해야지. 그래야 천마 월급도 주지.”

“…….”

그렇게 시간은 하염없이 흐르고, 어느덧 저녁 무렵이 되었다.

딸랑.

뉘엿뉘엿 해가 질 무렵, 풍경 소리와 함께 매장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온몸에 풀떼기를 뒤집어쓴 노인이 비틀거리며 들어왔다. 김찬원이었다.

“김 기사님?”

“장 사장.”

장채원을 보며 힘없이 웃은 김찬원은 천마에게 다가왔다.

“천 씨. 아무래도 그 버섯은 안 보이던디.”

김찬원의 눈은 너구리처럼 퀭해 있었다.

아마도 클로버 던전에서 천마가 말한 그 버섯을 찾아 밤새 헤맨 것 같았다.

“본좌도 더 먹으려고 찾았지만 없었다.”

책에 시선을 고정한 천마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하긴 본좌의 금강지체를 깨뜨릴 만한 것이니… 흔한 것은 아니겠지.”

금강지체가 깨졌을 뿐, 굉장한 별미였다는 것만 제외하면 딱히 중독 증상 같은 것도 없었다.

내공 수위도 별 이상이 없으니 천마는 아직까진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고 있었다.

“크흐흠.”

김찬원은 보석상자에 담긴 보석처럼 눈부신 천마를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헛기침을 했다.

“저기 천 씨. 오늘 저녁 바빠?”

“바쁘다. 어젯밤에 못 봤던 책을 봐야 한다.”

“그럼 별일 없는 거네. 그럼 오늘 나랑 술 한잔할 텨?”

천마의 대답을 뒷등으로 흘린 김찬원이 헤벌쭉 웃었다.

“아무래도 오늘 같은 날은 한잔해야 쓰것는데 말여.”

“흠. 김 씨가 사는 건가.”

“그러엄. 물론이지.”

그러자 노트북으로 견적서를 뽑고 있던 장채원이 벌떡 일어났다.

“그럼 오늘 회식이나 할까요? 천마가 원래 모습을 회복한 기념으로다가. 호호.”

“회복이 아니라 금강지체가 파괴된 거다.”

-뀨!

회식이란 말에 내당에 있던 제비가 번개처럼 튀어와 장채원의 목을 휘감았다.

-뀨우!(회식이라면 빠질 수 없다냥.)

[다 같이 모이는 회식이라면 제가 빠질 수 없겠죠.]

장채원의 외침에 창고에 앉아 있던 무명이 어느새 데구루루 굴러 나왔다.

[이 무명이 맛집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하여 최고의 회식 장소를 섭외하겠습니다.]

“됐어. 네가 고르는 곳이 젤 불안해.”

장채원의 핀잔에 무명이 눈 센서를 크게 키웠다.

[그거 무슨 서운한 말씀이십니까. 전 어디까지나 수많은 사람들이 직접 다녀온 후, 후기로 검증한 맛집만을…….]

“그리로 가지.”

매장 내부가 한창 떠들썩해질 무렵, 팔짱을 끼던 천마가 덤덤히 말했다.

“본좌가 아는 곳이 있다.”

“응? 천마, 네가 아는 술집이 있다고?”

장채원이 눈을 깜빡이자 다시 한번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선술집 노병.

시내와 조금 떨어진 주택단지 골목에 있는 선술집이다. 허름한 겉모습과 달리 내부는 제법 넓고 분위기도 좋았다.

매장 중심엔 커다란 바 테이블이 있었고, 그 주변으로 테이블 자리가 일곱 개가 있었다.

“와, 정말 괜찮은데?”

매장의 구석 테이블에 앉은 장채원이 주위를 둘러보며 탄성을 질렀다.

“어떻게 여길 알아? 자주 온 거야?”

“퇴근하다 우연히 한번 들렀을 뿐이다.”

덤덤히 대답한 천마는 바 테이블에 서 있는 노인, 장금선을 쓱 바라보았다.

장금선은 처음 매장을 방문한 천마에게 술과 안주를 공짜로 대접했고, 대신 다음에도 반드시 들러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그리고 천마는 그 약속을 지킨 것이다.

“어서 오시…….”

바 테이블에서 잔을 닦고 있던 장금선은 머리를 풀어 헤친 천마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장금선은 지금까지 살면서 이토록 분위기 있게 생긴 미남자를 본 적이 없었다.

“홍, 홍아. 손님 왔다.”

그러자 주방에서 앞치마를 걸친 젊은 여성이 쓰윽 나왔다. 특수대응팀의 팀장이자 노병의 야간 주방 담당, 초홍이었다.

“네에.”

메뉴판을 들고 오던 초홍은 천마와 시선이 마주치자 몸을 움찔거렸다.

‘뭐, 이렇게 생긴 남자가 다 있어.’

팀원인 유은호도 연예인 뺨을 좌우로 후려치는 미남이었으나, 이처럼 숨 막히는 분위기는 없었다.

“메, 메뉴판 여기 있어요.”

매일 퉁명스럽게 손님을 받던 초홍이, 얼굴을 붉힌 채 다소곳하게 메뉴판을 내려놓았다.

그러다 천마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장채원을 발견했다.

‘애인인가 보구나.’

청바지 차림에 긴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었지만, 시원한 여름 바다를 보는 듯 시원하고 상큼한 용모를 숨길 순 없다.

‘응?’

그러다 초홍은 옆에 앉아 있는 김찬원과 무명, 그리고 무명의 머리통을 둥글게 감싼 제비를 발견했다.

‘뭐지. 이 조합은.’

누런 이를 드러낸 노인은 그렇다 쳐도, 저 둥그런 나노봇은 뭐야? 저 작은 족제비는 또 뭐지?

“혹시 애완동물은 출입 금지인가요? 절대 소리 안 내고 얌전하게 있는 아인데…….”

장채원이 무명을 감싼 제비를 가리키자 넋을 잃고 있던 초홍은 고개를 저었다.

“네? 아뇨. 딱히 상관없습니다.”

“아, 다행이네요.”

활짝 웃은 장채원이 메뉴판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럼 우선 모듬 꼬치구이랑 신선 해물탕 하나, 제철 해산물 모듬 하나, 모듬전 하나, 육회 한 접시, 제철 과일, 시저 샐러드, 소고기 화로구이 하나 주세요.”

무슨 잔치를 하나? 초홍은 당황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술은 무엇으로 드릴까요?”

그때 천마가 덤덤히 말했다.

“삼복구라는 술이 아주 괜찮더군. 가장 큰 잔으로 넉 잔.”

삼복구는 메뉴판에는 없는, 장금선만이 주조할 수 있는 스페셜 칵테일이었다.

그런데 저 잘생긴 미남이 어떻게 삼복구를 아는 거지? 언제 우리 매장에 왔었나? 저 정도 얼굴이면 기억을 못 할 리가 없는데.

“넉 잔이요?”

초홍이 더듬거리자 장채원이 제비의 턱을 쓰다듬었다.

“제비, 너도 마실 거지?”-뀨우!(두 말하면 잔소리다냥.)

족제비의 울음소리에서 어디선가 장난스러운 아이의 말소리 같은 게 들리는 것 같다.

“그럼 잠시만 기다리세요.”

어질어질해진 초홍은 삐거덕거리는 동작으로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삼복구는 한 사람에게 석 잔 이상은 팔지 않는다.

귀한 재료가 들어간 고가의 술이기도 했지만, 석 잔 이상을 마실 수 있는 인간이 없기 때문이다.

“홍아.”

바 테이블에서 맥주잔에 삼복구를 잔뜩 제조하던 장금선이 힘없이 웃었다.

“이게 마지막 잔이라고 말씀드려라. 삼복구 재료가 떨어져서 말이다.”

“네? 네.”

“그리고 술값은 절반만 받아라.”

코를 훔친 장금선이 나직이 속삭였다.

“사실… 재료가 모자라서 많이 엷게 탔거든.”

“네에.”

초홍은 초점 없는 눈빛으로 테이블에 앉은 천마 일행을 바라보았다.

저 잘생긴 남성이 열 잔. 예쁘게 생긴 여성이 여섯 잔. 노인과 허옇게 생긴 족제비가 각각 넉 잔.

그 와중에 둥그렇게 생긴 나노봇은 쉴 새 없이 떠들고 있다.

사람과 구분되지 않을 만큼 수다를 늘어놓는 걸 보아, 아마도 하이엔드 급의 언어 팩을 설치한 것 같다.

“스승님.”

“응?”

“대체 저 사람들은 뭘까요? 각성자 같기도 하고, 왠지 낯이 익은 것 같기도 하고. 삼복구를 아는 걸 보니 우리 매장에 온 것 같은데.”

초홍의 중얼거림에 장금선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누군지 모르겠더냐?”

“아는 사람들이에요?”

“글쎄다.”

저 멀리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절세미남, 천마를 바라보던 장금선이 낮게 중얼거렸다.

“서비스를 준 보람이 있구나.”

얼큰하게 취한 천마 일행은 노병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2차를 갔다.

2차는 당연히 분위기 좋고 떠들어도 아무 부담이 없는 천마의 옥탑방이었다.

재료가 부족한 장금선이 삼복구를 엷게 탄 탓에, 천마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맑은 정신으로 기분 좋게 취한 상태였다.

“역시 2차는 숯불구이쟤!”

김찬원은 일전 회식 때 옥탑방에 둔 드럼통을 꺼내 삼겹살을 굽기 시작했다.

평상에 앉은 장채원은 과일을 깎고, 무명과 제비는 서로 대화가 통하는지 연신 뭐라고 떠들고 있었다.

“인간들은 어쩔 수 없나.”

먼 하늘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 일과를 복기하던 천마는 나직이 혀를 찼다.

분명 같은 사람이건만, 어제와 오늘의 자신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다.

수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시선, 다정한 말투와 호의적인 눈빛.

“알맹이를 보지 못하고, 여전히 껍데기에만 집착을 하는군.”

천마의 중얼거림에 옥탑방은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특히나 천마의 외모에 놀랐던 장채원.

그리고 그 모습을 부러워했던 김찬원은 가슴을 찔린 듯 움찔거렸다.

[천마 님.]

역시나 복잡한 천마의 심경을 가장 먼저 눈치챈 것은 무명이었다.

[현대 인간들의 정서적, 철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겉모습 역시 인간의 알맹이에 포함됩니다.]

“무슨 헛소리냐. 인간의 껍데기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냐.”

[천만의 말씀입니다. 현대 의학으론 얼마든지 성형이 가능하고, 또한 규칙적인 식사와 운동, 미용을 통해서 용모를 개선할 수도 있으니까요.]

천마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런 말로 인간들을 포장할 필요 없다. 본좌가 말한 건 인간의 마음이니까.”

“야, 천마. 너 정말 꼬여 있구나.”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장채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야. 더러운 벌레와 향기로운 꽃이 있다면, 당연히 꽃을 선택하는 게 인간이라고.”

“알고 있다.”

“알긴 뭘 알아? 험악하게 생겼을 땐 사람들이 피했다가, 오늘은 사람들이 호의로 대하니까 속이 뒤틀린 거잖아. 아니라고 말해봐.”

“전혀 아니다.”

천마의 대답은 어딘가 삭막하고 고독하게 들렸다.

잠시 침묵하던 장채원이 속삭이듯 말했다.

“천마야. 네가 감정이 메말라 있고 냉소적이라는 건 잘 알아. 하지만 마음을 조금 넓게 가져봐. 그리고 인정을 해.”

“뭘 인정하란 말인가.”

“너도 감정에 울고 웃을 수 있는 인간이라는 걸.”

순간 천마는 알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마고에서 육체의 한계를 돌파하고 극에 이른 무학의 신기원을 이룩해 낸 천마.

그는 자신을 단 한 번도 인간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장채원은, 무명은, 그리고 김찬원은 자신을 그저 한 인간으로 대하고 있었다.

“본좌는 천마일 뿐이다.”

냉소적인 천마의 대답에 장채원의 커다란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인간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감정 같은 걸 느낄 수 없어서?”

“천만에. 본좌는 이미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모두 느껴봤다. 그리고 초월했지.”

그런데 이번엔 가만히 듣고 있던 무명이 허점을 찔렀다.

[그럼 천마 님은 결혼을 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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