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74화 (74/285)

제74화. 천마, 미남이셨네요 (1)

D급 던전, 클로버.

던전의 외관뿐만 아니라 내부 곳곳에 푸릇푸릇한 클로버 같은 식물이 있는 곳이다.

이 클로버 던전은 몬스터들이 존재하지 않는 대신, 현대에선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식물들이 가득 피어 있었다.

그중 효능이 밝혀진 몇 가지 재료들은 약재로 쓰였기 때문에 이 클로버 던전은 제약회사에 고용된 배달꾼들이 종종 찾는 곳이다.

하지만 그 외 어떤 유물이나 몬스터들이 없어, 늘 텅 비어 있는 곳이기도 했다.

스스슥.

그때 클로버 던전 앞으로 회색빛 옷을 입은 그림자가 홀연히 등장했다.

귀면탈을 쓴 채 어깨에는 커다란 포대를 메고 있는 근육질의 사내, 바로 천마였다.

던전에 널려 있는 식물들을 무심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천마.

그는 커다란 동굴처럼 생긴 던전 내부를 하염없이 걷고 있었다.

[이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무명의 안내로 여러 갈래로 이어진 갈림길을 선택해 걷던 천마.

어느새 그의 눈앞엔 커다란 숲이 펼쳐져 있었다. 던전 중심부에 도착한 것이다.

“흠.”

어디선가 빛이 새어 들어오는 고요한 숲은 마치 동화 속 풍경처럼 보였다.

이름 모를 꽃들과 식물들이 피어 있는 숲을 바라보던 천마가 물었다.

“뭘 가져가면 되는 건가.”

[여기 있는 이 큰북 버섯입니다.]

천마의 어깨에서 폴짝 뛰어내린 무명은 나무와 나무 사이에 피어 있는 버섯을 가리켰다.

손가락 크기의 큰북 버섯은 자연적으로 만든 색감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화려한 무지개색을 띠고 있었다.

“신기하게 생겼군. 독버섯인가.”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독은 없습니다. 오히려 다량의 항균 물질이 포함되어 있죠.]

“항균 물질?”

[네. 잘 희석하면 매우 훌륭한 곰팡이 제거제가 됩니다.]

도배 시공을 하면 지긋지긋하게 볼 수 있는 게 바로 곰팡이다.

특히 집 자체가 습한 지하 세대나 누수가 잦은 경우, 벽지 겉면뿐만 아니라 안쪽의 벽까지 곰팡이가 피어 있는 경우도 많다.

달칵.

천마는 포대에서 네모난 상자를 꺼내었다. 장채원이 큰북 버섯을 담아오라고 준 목함이었다.

[대략 스무 개 정도만 캐면 됩니다.]

고개를 끄덕인 천마는 부지런히 나무 곳곳에 붙어 있는 큰북 버섯을 캤다.

그러던 중 나무 아래서 하얗게 물든 우산 모양의 버섯 하나가 붙어 있는 걸 발견했다.

“향기가 좋군.”

손을 뻗어 버섯을 캐자 이루 말할 수 없는 구수한 냄새가 풍겼다.

마치 자연산 송이버섯을 은근한 불에 구운 듯한 향이다.

“이 버섯은 뭔데 향기가 이리도 좋나.”

[도감에는 없는 버섯입니다. 이곳에는 아직 효과나 성분이 밝혀지지 않은 식물들이 많습니다.]

“으음.”

버섯을 바라보는 천마의 입엔 군침이 돌았다.

먹을 것을 탐하는 성격은 아니었으나, 이 작은 버섯의 향기를 맡자 맹렬한 허기가 느껴졌다.

“먹어도 되겠지.”

천마가 버섯을 입에 갖다 대자 무명이 말렸다.

[천마 님. 말씀드렸다시피 이 던전에 핀 식물들은 아직 성분과 효능이…….]

“상관없다. 본좌는 만독불침이니.”

단숨에 버섯을 입에 털어 넣고 씹은 천마의 눈이 번쩍 떠졌다.

부드러운 고기를 씹는 듯한 식감은 말할 것도 없고, 뒷맛은 향긋한 술 한잔을 걸친 것처럼 깔끔하다.

“진미로다!”

버섯을 삼킨 천마는 감탄성을 터뜨렸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토록 맛있는 버섯을 먹어 본 기억이 없다. 생각 같아선 던전을 다 뒤져가며 이 버섯을 찾고 싶을 정도다.

천마가 입맛을 쩝쩝 다시며 다시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나무 곳곳을 아무리 살펴봐도 이 우산 모양의 버섯은 보이지 않았다.

[천마 님. 더러 이곳에는 제약회사 소속의 각성자들이 옵니다. 마주치면 좋을 것이 없으니 어서 매장으로 돌아가죠.]

“흠.”

아쉬움을 삼킨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 * *

그날 밤, 천마의 옥탑방.

퇴근을 한 천마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모처럼 TV가 아닌, 인테리어 시공 관련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책을 응시하는 천마의 표정이 매우 불편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단전이 뭉치는 듯하고 온몸의 피부에선 열이 나는 것 같았다.

“흠.”

천마의 인상이 갈수록 찌푸려지자 맞은편에서 누워 있던 무명이 말했다.

[천마 님. 어디 불편하십니까.]

“아니다. 신경 쓰지 마라.”

그런데 천마의 몸을 스캔하던 무명의 눈 센서가 점차 커져갔다.

[천마 님. 열이 납니다.]

“열?”

[현재 천마 님의 체온이 43도를 넘고 있습니다.]

음양이기를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절대신공, 반극신공을 연성한 천마.

그의 평소 체온은 40도 언저리에 머무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천마의 체온은 44도. 이것은 천마가 강력한 힘을 폭발시키는 천마대능력을 끌어올렸을 때의 체온이었다.

[감기에 걸리신 게 아닐까요?]

“감기?”

천마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본좌의 육체는 금강지체에 이르기 전, 환골탈태를 세 차례나 겪었다. 그리고 십 갑자의 공력에 도달한 후에는 도검불침, 수화불침, 만독불침…….”

[하지만 천마 님은 지금 온전한 몸 상태가 아니지 않습니까?]

자랑스럽게 말을 이어가던 천마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

그렇다. 십 갑자의 내공은 이미 소실되었기에, 육체에 깃들어 있던 신묘한 공능이 온전히 유지될 리가 없다.

“그렇다 해도 본좌의 육체엔 잡병 따윈 침투하지 못한다.”

라고 말하던 천마의 몸이 휘청거리더니 바닥으로 쓰러졌다.

[천마 님!]

놀란 무명이 재빨리 다가와 천마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하얗게 물들어야 할 흰자마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전형적인 중독 증상 중 하나다.

[아무래도 독에 중독된 것 같습니다.]

“중독?”

[그렇습니다. 제 예상으론 클로버 던전에서 먹은 이름 모를 버섯이 문제가 된 것 같습니다.]

“흥, 본좌는 만독…….”

천마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내공이 온전치 못하니 만독불침도 깨어졌단 말인가?

고개를 저은 천마가 다시 말했다.

“버섯에 독은 없었다. 있다면 본좌가 즉각 느꼈겠지.”

마고의 모든 독공비서를 모조리 독파한 천마.

그는 절대로 느낄 수 없다는 무색무취의 무형지독(無形之毒)까지 감지할 수 있는 독의 전문가이기도 했다.

[천마 님. 병원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구급차를 호출하겠습니다.]

“흥, 신경 쓰지 말고 잠이나……”

손을 휘휘 젓던 천마는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졌다.

다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무리였다. 손발의 감각이 사라지고 전신의 피가 발바닥으로 흘러내려 간 것 같다.

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천마는 의식을 잃었다.

* * *

“천 씨. 정신이 들어?”

귓가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마가 서서히 눈을 뜨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곳곳에 주름이 가득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활력이 넘치는 젊은이처럼 보이는 얼굴이다. 김찬원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여? 이 모습은 또 뭐고.”

“무슨 말이냐. 언제 본좌의 처소에 들어왔지?”

“기억 안 나는 겨?”

그러자 김찬원이 옆에 서 있던 무명이 말했다.

[천마 님이 갑자기 의식을 잃어서, 제가 급히 연락을 드렸습니다. 김찬원 님이라면 구급차보다 더 빨리 도착하실 것 같아서요.]

“의식을 잃었다고. 본좌가 말인가?”

무공을 익힌 이래, 천마는 단 한 번도 의식 따윈 잃어본 적이 없다. 또한 무림인에게 의식의 단절은, 급격한 공력의 감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천마의 표정이 굳어지자, 무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천마 님은 김찬원 님이 도착하실 5분 동안 기절해 있으셨습니다.]

“그랬나.”

천마는 씁쓸한 표정으로 진기를 한 바퀴 돌렸다.

일 갑자조차 채 되지 않은 탓인지 공력 수위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리고… 확인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뭘 말이냐.”

[여길 보십시오.]

무명은 손을 뻗어 한쪽 벽에 걸린 거울을 가리켰다.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은 천마는 고개를 돌려 거울을 바라보았다.

“이건!”

하늘이 무너져도 무심할 듯한 천마의 눈동자가 점점 커져갔다.

거울 속에 비친 건 온갖 풍상과 험악한 일을 다 겪은 듯한 천마의 우락부락한 얼굴이 아니다.

한 폭의 그림과 같은 절세미남자가 눈썹을 찌푸리고 있지 않은가?

“본좌의 얼굴이 어떻게 된 건가!”

놀란 천마가 얼굴을 매만지자 김찬원이 말했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여, 천 씨. 대체 뭘 했길래 얼굴이 그래 바뀐 겨. 성형수술이라도 한 겨?”

상황을 납득할 수 없는 천마는 천천히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헝클어진 머리칼은 부드럽게 펴져 있으며, 근육질의 몸은 온데간데없이 날렵한 몸으로 바뀌어 있다.

“이런.”

홀쭉해진 몸을 바라보는 천마는 낭패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금강지체가 깨졌군.”

비록 내공이 소실되었다고 하나, 육체의 한계를 초월한 천마는 외공의 극한 단계라는 금강지체는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금강지체가 깨져 버리자, 몸을 뒤덮었던 강철 같은 근육이 칠 할 이상 사라져 버린 것이다.

“대체 어떻게 된 거냐.”

천마 물음에 무명은 대답 대신 허공에 홀로그램 영상을 띄웠다.

우드득. 빠드드드득.

입체 영상 속에는 땀을 흘리며 누워 있는 천마의 모습이 보인다.

전신에는 뼛소리가 흘러나왔고, 시간이 흐르자 골격과 피부색이 점차 바뀌어 가더니, 나중에는 머리카락까지 부드럽게 바뀌었다.

“세상에… 천 씨가 변신을 하잖여? 어떻게 된 거여?”

김찬원의 말에 무명이 고개를 저었다.

[천마 님이 쓰러질 때만 해도 던전에서 먹은 버섯이 원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다른 문제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독버섯이라 해도 사람의 근골격을 바꿀 수는 없으니까요.]

“버섯?”

김찬원의 물음에 무명은 클로버 던전에서 있었던 일을 차분히 설명했다.

곰곰이 듣던 김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버섯 때문일 수도 있겠구먼.”

[네?]

“클로버 던전에 있는 식물들은 우리 세계에는 없는 괴상한 식물들이잖여. 그렇다면 저렇게 얼굴을 바꿀 수 있는 효과를 가진 식물도 있지 않을까?”

무명과 달리 요괴인 김찬원은 알 수 없는 던전 재료의 효과일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아무리 던전에 피어난 것이라고 하지만, 버섯 하나가 그런 효능이 있을까요?]

“그렇게 따지면, 사실 던전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존재인 거여.”

김찬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어쩌면 그냥 버섯이 아니라, 우연히 들어온 히든몬스터가 떨궜던 유물일 수도 있고.”

[히든몬스터 유물… 정말 그럴 수도 있겠군요.]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다.

다른 건 몰라도 히든몬스터는 등장하면 멋대로 던전을 헤집기도 하고, 사라질 때는 말 도 안 되는 효과를 발휘하는 유물을 남기기도 하니까.

“천 씨. 근데 말이여.”

천마를 바라보는 김찬원의 눈동자에 간절함이 가득 차올랐다.

아닐까 다를까. 심호흡을 한 김찬원이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버섯, 어떻게 생겼디야?”

“무슨 말인가.”

“그 버섯… 나도 한번 먹어보고 싶구먼.”

그런데 천마는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된다.”

“어, 어째서?”

“먹어도 몸만 해칠 뿐이다.”

“해치다니? 이렇게 잘생겨지는 것뿐인데.”

김찬원의 말에 천마는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잘생겨진 게 아니다.”

“응?”

“아마도 강력한 극독 성분이 있는 것 같군. 이렇게 본좌의 금강지체를 깨뜨렸으니.”

“그게 무슨 말이여? 극독이라니?”

“이 얼굴이… 본좌의 원래 모습이다.”

순간, 옥탑방 내부엔 차가운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꽝꽝 언 동태가 되어 있던 김찬원과 무명이 동시에 말했다.

“이게 천 씨의 원래 얼굴이라고?”

[이게 천마 님의 본래 용모라고요?]

“그렇다.”

천마는 낭패스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버섯엔 본좌의 금강지체를 깨뜨릴 만한 극독이라든가, 혹은 알 수 없는 성분이 들어 있던 것 같다.”

“말, 말이 안 되잖여?”

믿을 수 없는 진실을 마주하자, 김찬원의 입술이 진동 모터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이, 이 얼굴이 원래 얼굴이라고? 대, 대체 무슨 일을 겪었길래 얼굴이 그 지경, 아니 그렇게 바뀌었는데?”

“본좌의 육체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한계를 몇 번이고 돌파한 상태다. 결국 내외금강체를 이룩하자, 용모가 조금 바뀐 것뿐이지.”

‘조금’이라는 표현보단 하늘과 땅 차이라고 표현해도 부족하다.

김찬원은 공포스러운 존재를 바라보는 것처럼 눈을 크게 떴다.

“말도 안 돼야. 그럼 왜 꼬불꼬불한 머리카락까지 부드럽게 펴진 겨? 말이 안 되잖여?”

“말했잖나. 내외금강체를 이룩했다고.”

천마는 자신의 부드러운 머리칼을 가리켰다.

“머리칼조차도 강철보다 단단해진 것뿐이다.”

“뭐라고?”

“걱정이군.”

입을 쩍 벌린 김찬원을 뒤로 한 천마는 우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일시적인 현상이길 바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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