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화. 노래하는 트레저 헌터 (1)
치열한 전투와 피가 난무하는 던전에도 평화로운 직업이 있다.
바로 던전 재료 배달꾼, 일명 배달꾼으로 불리는 각성자들이다.
이들은 몬스터들을 사냥해 얻는 부산물이 아닌, D급 이하 던전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재료들을 채취해 납품한다.
하지만 배달꾼 외에도 또 다른 직업이 있었는데, 바로 던전 내의 보물이나 유물만을 노리는 사냥꾼, 일명 ‘도굴꾼’이었다.
세이프던전 지역 남서쪽 3킬로미터 지점의 D급 던전, ‘수렴동’.
폐건물이 늘어져 있는 곳과 달리 울창한 숲속에 숨겨진 이 던전은, 작은 폭포가 있는 곳 안쪽에 숨겨져 있어 수렴동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아아, 오늘은 안 보이네.”
수렴동 던전 내부.
까만색 나노슈트를 입은 채 열심히 던전 내부를 살피던 도굴꾼, 민현기가 어깨를 늘어뜨렸다.
“오늘은 스킬 빨이 안 받나. 어떻게 하나도 없는 거야.”
8급 각성자이자 도굴꾼인 민현기의 스킬은, 탐지 스킬 계열인 공기흐름 감지.
그도 전투형 각성자가 되고 싶었지만 육체각성도가 낮은 데다, 전투 스킬도 없는 그로선 도굴꾼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자유롭게 던전을 탐험하고 싶었고, 월급쟁이나 마찬가지인 짐꾼이나 배달꾼이 되는 건 죽기보다 싫었으니까.
“이상하네. 수렴동에는 천도화가 많이 피었었는데.”
동굴처럼 생긴 수렴동 내부는 상당히 넓어 예쁜 꽃이 피어 있는 곳도 있었고, 물고기들이 살고 있는 작은 연못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도 그가 찾고 있는 고가의 유물, 천도화는 보이지 않았다.
“풍뎅이돌이라도 가져가야 하나.”
풍뎅이돌은 수렴동 곳곳에 있는 둥그런 돌로, 이것을 가공하면 대리석보다 고급스럽고 보행감이 좋은 바닥재가 된다.
“트레저 헌터 체면이 말이 아니네.”
하지만 자존심이 밥을 먹여주진 않는다. 민현기는 신음성을 내며 곳곳에 떨어진 풍뎅이돌을 열심히 가방에 넣었다.
풍뎅이돌의 단점은 겉모양과 달리 무게는 금속보다 더 무겁다는 점이었다. 가방에 몇 개의 풍뎅이돌을 넣자 벌써부터 허리가 뻐근해졌다.
“젠장. 이래 가지고 인건비나 건지려나.”
성인 주먹만 한 풍뎅이돌 하나가 3만 원, 머리통만 한 것은 10만 원 돈이다. 짊어진 가방에 꽉꽉 넣어봤자 70만 원어치 정도 될까 말까다.
“세금 떼고 뭐 떼고 하면, 말짱 헛일이겠구만.”
명칭이 도굴꾼일 뿐, 민현기는 불법으로 유물을 훔치거나 유통하는 불법 도굴꾼들과 달리, 엄연히 정식 등록된 도굴꾼이다.
던전에서 채취하는 유물이나 재료들은 불로 소득에 들어가 39%에 가까운 세금이 붙는다. 때문에 민현기가 오늘 쥘 수 있는 돈은 40만 원 남짓이었다.
“도둑놈이 따로 없네. 복권 세금도 이렇게는 안 떼간다.”
투덜거리며 풍뎅이돌을 주워 담던 민현기의 등줄기에 갑자기 묘한 감각이 느껴졌다.
스킬, 공기흐름 감지가 발동된 것이다.
‘누가 오고 있어.’
호흡을 멈춘 민현기는 몸에 힘을 풀고 나노슈트에 손목에 달린 스텔스 활성화 버튼을 열었다.
전 재산을 털어 은신용 나노슈트를 중고로 산 덕에 혼자서 던전을 탐험할 수 있었다. 물론 위험도가 높은 몬스터에겐 소용이 없지만.
‘저게 뭐야?’
민현기가 숨어 있는 동굴 맞은편에 나타난 그림자는 몬스터가 아닌, 거구의 사내였다.
팔뚝이 드러난 회색빛 도복에 어깨에는 작은 나노봇을 매단 사내는 몸을 웅크린 채 민현기가 줍던 풍뎅이돌을 열심히 줍기 시작했다.
‘배달꾼인가?’
이런 D급 던전에 몰래 들어와 무거운 풍뎅이돌을 주워가는 각성자는 불법 도굴꾼이나 배달꾼들밖에 없다.
“몬스터인 줄 알고 놀랐잖아요.”
숨어 있던 민현기가 한숨을 쉬며 동굴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사내는 말 없이 돌아다니며 풍뎅이돌만 주울 뿐이었다.
“이봐요. 제 말 안 들려요?”
민현기의 외침에 사내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러자 민현기는 심장이 멎을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뭐, 뭐야. 그 가면은…….”
지옥에 살고 있는 몬스터들을 모조리 씹어먹은 악마가 지상에 올라와 있는 듯한 무시무시한 가면이었다.
민현기가 주춤거리자, 사내는 또다시 몸을 웅크린 채 풍뎅이돌을 줍기 시작했다.
‘뭐지. 저 녀석. 뜨내기가 어디서 운 좋게 전설급 유물을 얻었나 본데.’
보는 것만으로 ‘위압’에 가까운 박력과 압력을 주다니. 분명 엄청나게 희귀한 유물로 만든 가면이 분명했다. 어쩌면 경력 짧은 금수저 풋내기일 수도 있고.
“이봐요. 돈이 된다고 그렇게 마구잡이로 넣으면 안 돼요. 무거워서 들 수가 없다고.”
민현기의 조언에도 사내는 바닥에 내려놓은 포대에 꽉꽉 풍뎅이돌을 채워 넣고 있었다.
게다가 저놈의 포대는 무슨 재질로 만들었는지, 풍뎅이돌을 넣을 때마다 점차 부피가 커지고 있었다.
“걱정 마라. 이건 점주가 특별히 제작한 포대니까.”
귀면탈에서 흘러나오는 남성의 음성은 매우 낮았고, 한편으론 귀찮은 듯 보였다.
‘점주는 또 뭐야? 저 포대도… 유물 같은데.’
어쨌든 큰돈도 안 되는 풍뎅이돌을 열심히 줍고 있는 걸 보니, 역시 장비만 좋은 걸 맞춘 초짜 배달꾼이 분명했다.
“그걸 대체 어떻게 들려고 계속 넣는 거예요?”
민현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내는 풍뎅이돌을 가득 넣은 포대를 아무렇지도 않게 들었다.
“뭐, 뭐야… 근력증강 스킬 있었어?”
아주 드문 일은 아니다.
육체 계열의 스킬을 가지고 있음에도 전투가 싫어서 비교적 안전한 직군인 배달꾼을 하는 각성자들도 더러 있으니까.
“나노봇까지 들고 있는 걸 보니 꽤나 벌이가 좋은 것 같은데. 어디 고용된 배달꾼이에요?”
그때 사내의 어깨에 올라탄 나노봇이 민현기를 내려다보며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흠, 복장을 보아하니 그쪽은 불법 도굴꾼인가요?]
“불법 도굴꾼이라니, 무슨 그런 말을!”
[아, 그럼 배달꾼이겠군요. 하긴… 불법으로 유물을 훔쳐 가는 도굴꾼이 이런 무거운 풍뎅이돌을 채취할 리가 없죠.]
센서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반달처럼 접는 나노봇을 보자 민현기는 왠지 울화가 치밀었다.
“웃기지 마. 그냥 한번 집어본 거야. 그리고 난 트레저 헌터라고!”
트레저 헌터.
둘 다 던전 내 숨겨진 유물을 찾는다는 점에선 얼핏 도굴꾼과 비슷한 직업처럼 보이지만, 사회적 지위와 대우는 하늘과 땅 차이다.
트레저 헌터는 유물의 가치를 정확히 판별할 수 있는 감정 실력을 가졌다. 현재 유통되는 유물들의 가치는 대부분 트레저 헌터들이 평가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물을 개인적으로 수집할 수 있으며, 직접 판매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전문가. 이른바 명예로운 도굴꾼, 그들이 바로 트레저 헌터였다.
[죄송합니다. 트레저 헌터셨군요! 배달꾼들도 기피하는 풍뎅이돌을 보관 케이스에 잔뜩 넣으셨길래, 그냥 도굴꾼인 줄 알았습니다.]
무명의 빈정거림에 얼굴이 빨개진 민현기는 열린 가방을 홱 닫으며 짜증스럽게 외쳤다.
“그, 그냥 허접한 던전의 물건이 신기해서 넣은 것뿐이야. 이 몸은 보통 B급이나 A급 던전을 다니니까.”
민현기의 허풍에 무명은 달려 있지도 않은 입을 가렸다.
[그러셨군요. 명망 있는 트레저 헌터 님을 몰라뵙고 제가 방정을 떨었습니다.]
“뭐, 뭐?”
말하는 투를 보니, 평범한 나노봇이 아니다. 억대를 호가한다는 하이엔드 언어 팩을 설치한 나노봇 같다.
“사이버 라이프 사의 ‘비컴 휴먼’이 설치된 거야?”
나노봇이 대답할라는 찰나, 사내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무명. 남의 일에 신경 끄고 돌아가는 길이나 표시하라.”
[알겠습니다.]
나노봇이 경로 유도선을 쏘아대자 사내는 무표정한 얼굴로 저벅저벅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민현기는 코웃음을 쳤다.
“쳇. 보아하니 철없는 금수저구만. 아님 어디서 유물을 주었던가.”
배달꾼 중에서 고가의 나노봇을 매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엄청 성공한 배달꾼이든가, 금수저 출신이 분명했다.
“저런 배달꾼 녀석한테도 무시당하는 처지구만…….”
매번 F, D급 던전에 와봤자 좋은 유물은 금세 채간다. 결국 남아 있는 건 푼돈이나 버는 던전 재료들뿐.
고가의 유물은 C급 이상의 던전부터 얻을 수 있지만, 그만큼 위험도가 높다.
고속 이동이나 제대로 된 은신 스킬이 없는 솔로 트레저 헌터는, 평생을 벌어도 부자가 되긴 그른 셈이다.
“나도 언제까지 이럴 순 없어.”
두 눈을 치켜뜬 민현기는 주먹을 꽉 쥐었다.
* * *
땅을 박차며 신법을 펼치던 천마가 무명에게 말했다.
“이 세계에도 도굴꾼이 있나.”
[정식 명칭은 보물 사냥꾼, 혹은 트레저 헌터입니다만, 옛날 각성자들은 도굴꾼이라고 불렀습니다. 던전을 각성자들의 무덤이라고도 부르니까요.]
“던전의 재료들을 수집하는 자들은 따로 있잖나. 어째서 도굴꾼이라 하는 거지.”
[사실 도굴꾼들은 은신, 고속 이동과 같은 스킬을 가진 각성자만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입니다. 전투를 피해 유물을 독식하는 도굴꾼들은 필연적으로 솔로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은신 나노슈트를 입은 채 싸구려 보관 케이스를 메고 있던 민현기를 떠올린 무명이 한숨 섞인 목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스킬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도굴꾼 일을 하며 일확천금을 노리는 젊은 각성자들이 많아졌습니다. 몬스터와 싸움은 싫고, 짐꾼이나 배달꾼 같은 일은 하기 싫은 젊은이들이 도굴꾼으로 많이 전직하거든요.]
치욕스러운 표정으로 풍뎅이돌을 던지던 민현기를 떠올린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심한 족속이로군.”
며칠 후, 복복 인테리어.
책상 옆에 있는 신뢰용 전화기를 들고 있던 장채원이 활짝 미소 지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달칵 소리와 함께 수화기를 내려놓은 장채원은 나이 든 할머니처럼 울적한 한숨을 내쉬었다.
“으음.”
지끈거리는 이마를 매만진 그녀는 응접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천마에게 말했다.
“요샌, 우리 매장이 각성자 상점인지 인테리어 가게인지 구분이 안 되네.”
“무슨 말인가.”
“무슨 말이긴. 너 때문이잖아.”
장채원은 나팔 모양의 신뢰용 전화기를 가리키며 이마를 찌푸렸다.
“걸핏하면 던전에서 나오는 재료를 대량으로 구해 달라는 신뢰가 들어오잖아. 네가 저번에 풍뎅이돌을 던전 관리팀에 대량으로 납품해 준 덕에, 신계에 소문이 쫙 퍼졌다고.”
장채원은 천마에게 수렴동의 위치와 정보를 알려준 후, 풍뎅이돌을 가져오라고 말했을 뿐이다.
하지만 천마는 그 길로 수렴동에 있는 풍뎅이돌을 싹 쓸어와 매장으로 가지고 왔다.
무게가 워낙 무거운 터라 던전 관리팀들이 차량을 몰고 와 풍뎅이돌을 날라야 했고, 그 소문은 시설관리부 전체에 퍼진 것이다.
“좋지 않나. 신뢰가 자주 들어오는 건.”
“우리가 각성자 상점이야? 던전 재료들이나 팔고 앉아 있게? 여긴 인테리어 매장이고 나는 인테리어 전문가라고.”
“돈을 두둑이 벌잖나.”
“그건 그렇긴 한데, 인테리어 전문가라는 자존심이…….”
불경기가 지속되고 인테리어 일감이 없는 지금, 천마의 던전 재료 배달은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안 되겠어. 차라리 던전 재료 관리할 직원을 구해서, 정식으로 일을 맡아야겠어.”
돈은 세상의 전부가 아니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데 돈만 한 것은 없다.
어느새 인테리어 전문가의 자존심을 팽개친 장채원이 힘 있게 말했다.
“이렇게 일감이 밀려오는데 마다하는 건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지.”
희망으로 잔뜩 부풀어 오른 장채원의 눈을 바라보던 천마가 책을 내려두었다.
그리고 그녀가 앉아 있는 책상으로 찬찬히 다가왔다.
“왜, 뭐.”
장채원이 흘깃 노려보자 천마가 덤덤히 말했다.
“그러지 말고 점주도 던전에 같이 가는 게 어떤가.”
“내가 왜? 싫어.”
“허구한 날 매장에 있으면 뭐 하나. 그냥 본좌를 좀 도와준다고 생각하라.”
사실 천마는 매장에 다른 직원이 있는 걸 원치 않았다. 그 속내를 드러낼 수 없는 천마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세이프던전 중심가 휴게소엔 매우 독특한 음식이 많다. 일전엔 도노반이라는 마물로 만든 꼬치를 먹었는데, 꽤나 괜찮은 맛이었다.”
장채원은 외식을 좋아한다. 맛있는 음식을 즐긴다.
던전 휴게소의 맛있는 음식을 맛보게 된다면, 직원을 뽑지 않을 거라는 얄팍한 속셈이었다.
“도노반? 으, 그거 시궁창 던전에 사는 악어 몬스터잖아? 너 괴식 즐기니?”
“본좌도 첨엔 그렇게 생각했지. 하지만 먹어보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맛이다.”
“우선 모양이 좋지 않잖아. 그런 거.”
툴툴대는 장채원을 보자, 천마는 손님에게 음식을 설명하는 점소이의 고달픈 애환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름이 그러할 뿐, 시궁창보다는 맑은 물이었다. 그리고 시퍼렇고 하얀 힘줄 껍데기를 제거하면 여느 고기와 다를 바가 없었지.”
“고마워. 덕택에 평생 먹지 않을 음식으로 등록했어.”
한숨을 쉰 장채원이 힘없이 말했다.
“그리고 난 어지간하면 던전은 가지 않아.”
“어째선가.”
“그냥. 몬스터도 싫고 던전도 싫고…….”
뭔가 사연이 있는 듯한 눈빛이다.
“알겠다.”
천마가 고개를 끄덕이자 장채원이 씩 웃었다.
“뭐, 괜찮아. 대신 직원을 뽑으면 되니까. 다 천마, 너 덕분이야.”
“무슨 말인가.”
“널 직원으로 쓰니 자신감이 붙었거든. 예전에는 정령수만 고집했는데, 지금은 요괴든 몬스터든 뭐든 괜찮을 것 같아.”
티 없이 해맑게 웃는 장채원의 모습에 천마는 입을 꾹 다물었다.
* * *
던전, 카스테라.
세이프던전 남동쪽 2킬로미터 부근에 있는 던전이다.
샛노랗게 칠해진 외관에 갈색 지붕이 얹혀 있는 탓에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는 외관과 달리 이 카스테라 던전은 온갖 기괴한 함정들이 잔뜩 설치된 곳이다.
게다가 몬스터라곤 고작 중심부 꼭대기에 사는 던전 보스, 메탈 K밖에 없는 터라, 이곳을 찾는 각성자들은 거의 없었고, 사시사철 휑한 공기만이 흐를 뿐이었다.
[천마 님.]
천마의 어깨에 올라간 무명이 던전의 입구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 던전은 여러 가지 함정이 많습니다. 가능한 제 조언대로 움직여 주셨으면 합니다.]
“함정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
[이 카스테라 던전은 규칙을 지켜야 클리어할 수 있는 ‘약속 던전’이기도 합니다. 던전 내의 규칙대로 클리어하지 않으면 중심부로 진입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아까도 말하지 않았나.”
천마의 짜증스런 대꾸에도 무명이 확인하듯 말했다.
[하지만 만약 천마 님이 마구잡이로 들어가려고 한다면 유물을 얻기도 전에…….]
“으음.”
문득 장채원의 말을 떠올린 천마가 울적한 표정으로 카스테라 던전에 들어갔다. 그의 입장에선 무명만 해도 성가시다. 새로운 부하(직원)이 매장으로 오는 건 원치 않았다.
샤라라라랑.
던전 내부로 들어서자 정령들의 놀이동산처럼 온갖 아름다운 식물들과 나무들이 보인다.
천장에선 반짝이는 빛들이 쏟아져 내부를 밝히고 있었다.
[천마 님. 첫 번째 규칙입니다. 이 숲을 그냥 걸어서 지나치면 나뭇잎들이 칼날이 되어 쏟아집니다.]
무명은 천마의 머리 위를 가리켰다.
[우선, 저 나무 위로 올라가 주세요.]
무명이 가리킨 곳에는 대략 사오 미터 높이의, 넓적한 발판처럼 생긴 나무들이 자라나 있었다.
사실 금강지체인 천마는 그냥 지나쳐 가도 아무 상관이 없다. 하지만 무명의 잔소리를 떠올린 천마는 군말하지 않고 나무 위로 뛰어올랐다.
[반대편 나무에 착지할 때는 양발로, 두 번째는 한 발로. 이 순서대로 뛰어 이 숲을 지나치시면 됩니다.]
“양발과 한 발을 번갈아 뛰는 건, 아이들이 하는 장난이 아니냐.”
[이 함정을 통과하는 규칙이 그렇습니다.]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던 천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양발과 한발을 번갈아 가며 나무를 뛰어올랐다.
마침내 숲을 벗어나자 저 멀리 세 가닥 밧줄이 내려온 까마득한 절벽이 보였다.
그리고 커다란 케이스를 짊어진 남성이 밧줄을 잡고 절벽을 오르고 있었다. 일전에 봤던 트레저 헌터, 민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