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화. 사람 잡는 풍수 인테리어 (3)
다시 1주일 후, 복복 인테리어 내부.
아홉 시에 출근한 천마는 어김없이 대걸레질로 매장을 닦고 있었고, 장채원은 커피를 마시며 견적서 정리를 하고 있었다.
딸랑.
풍경 소리와 함께 들어온 그림자는 천마를 보자 황급히 달려왔다. 심진경이었다.
“살려주세요.”
천마의 발아래 무릎을 꿇은 심진경이 두 손을 모았다.
“저희 남편을 살려주세요.”
“무슨 말이냐.”
“써주신 부적을 쓴 이후로, 남편이 바싹바싹 말라가고 있어요.”
“잘 되어가나 보군.”
“네?”
대걸레를 쥐고 있던 천마가 덤덤하게 말했다.
“걱정 마라. 죽진 않으니까.”
“네?”
“아니, 잠깐 기다려라. 어디까지 되어 있는지 확인해 볼 테니.”
천마는 엉덩이 가방을 열어 노란 부적 하나를 꺼내 심각하게 바라보았다.
부적에 그려진 글자가 대부분 지워져 있는 걸 본 천마는 손을 휘휘 저었다.
“이제 곧 끝나겠군. 아마도 며칠 안으로 끝날 거다.”
“네?”
입술을 깨물던 심진경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오늘 아침 남편은 뼈밖에 없는 것처럼 변했고, 눈빛도 어딘가 이상해 보였어요.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잘됐군.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된다.”
“그리고 저한테… 갑자기 미안하다고… 금방 돌아오겠다고… 이상한 말을… 꼭 죽을 사람처럼…….”
“이상한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한 말이겠지.”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안색이 창백해진 심진경을 내려다보던 천마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하다는 말은 미안하다고 한 것이고, 금방 돌아오겠다는 말은 말 그대로 금방 돌아오겠다는 말이다. 걱정할 필요 없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천마의 목소리를 듣자 심진경은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그 말이 진실이라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군요. 갑자기 아침부터 찾아와 죄송해요.”
천마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인 심진경은 다시 장채원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황급히 매장을 빠져나갔다.
“정말 괜찮은 거 맞아?”
멀어져 가는 심진경의 뒷모습을 보던 장채원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사람이 뼈밖에 안 남아?”
“득도한 스님들도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고행을 한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더욱 큰 시련이 필요하겠지.”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니까 나도 불안한데.”
“걱정 마라. 본좌는 이런 일에 전문가니까.”
“저, 저기 말야. 우리 매장이 뭐 하는 곳인 줄은 알고 있지?”
장채원이 이마에 땀을 닦으며 미소 짓자, 천마는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본점, 복복 인테리어는 집수리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지.”
“그래… 알고 있으니 다행이다.”
장채원은 어깨를 늘어뜨렸다. 늘상 그렇듯이 어차피 활시위는 떠났다.
불안하긴 하지만, 천마를 믿어볼 수밖에.
* * *
치이이익.
활활 타오르는 피구 공을 집어 들자 김상재의 손가락 피부가 녹아 들어가기 시작했다.
“흐으으.”
화악. 피부를 녹이던 피구 공에서 갑자기 커다란 불꽃이 솟구치더니 김상재의 손목까지 활활 태우기 시작했다.
-오호. 그 유명한 불꽃 슛인가요.
악마는 피구 공을 든 채 피구 코트장에 선 김상재를 보며 아나운서와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일 대 백의 피구 승부! 과연 어떻게 될까요!
“끄아아아아!”
활활 타오르는 피구 공을 쥔 김상재는 온 힘을 다해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야야얍!”
온 힘을 다해 던진 피구 공은 거대한 불꽃이 되어 근육질 마귀의 안면으로 날아갔다.
처억. 하지만 마귀는 날아오는 피구 공을 여유 있게 한 손으로 잡았다.
“후후후.”
낮은 웃음을 터뜨린 마귀는 다리를 하늘 높이 치켜세우더니 온 힘을 다해 공을 내던졌다.
-오오! 회전 회오리 슛!
김상재는 빙글빙글 돌아가며 날아오는 피구 공을 빤히 바라보았다.
처억. 몸을 웅크린 김상재는 간신히 아랫배에 꽂힌 피구 공을 잡았지만, 다시 손바닥과 뱃가죽 살이 치이이익 소리를 내며 녹기 시작했다.
“끄으으으으.”
너무나 고통스럽다. 더 이상 던질 힘도 손도 없었다.
툭.
공을 내려놓은 김상재는 결국 그대로 혼절하고 말았다.
-자, 이제 게임을 시작하지.
수백 번 목숨을 잃어가며 죽음의 피구 경기를 끝낸 김상재.
다시 멀쩡한 몸으로 돌아온 김상재의 얼굴은 전과 다르게 매우 편안해 보였으며, 옅은 빛이 흘러나왔다.
-이번 게임은…….
다시 한번 지옥의 게임을 준비하려던 악마는 달라진 김상재의 얼굴을 보고, 호오 하는 소리를 내었다.
-두렵지 않은가?
악마의 물음에 김상재는 심호흡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렵습니다.”
하지만 말과 달리 김상재의 눈빛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그런데 표정은 전혀 두렵지 않아 보이는군.
다시 한번 들려오는 악마의 물음에 김상재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이 피구 게임을 겪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깨달았다니. 뭐가 말이냐.
“이 게임은… 제가 응당 겪어야 할 일이라는 걸요.”
-재미있군. 응당 겪어야 할 일이라?
“피구라는 건 상대방에게 던지면 다시 저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이 아닙니까?”
깡마르고 머리는 하얗게 센 김상재의 눈동자는 득도한 스님처럼 맑고 흔들림이 없었다.
“저는 지금까지 매일 밤 이 지옥 같은 고통을 겪을 때마다 생각했습니다.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지? 왜 이렇게 내가 고통스러워야 하지? 그럴 때마다 결론은 하나더군요.”
악마를 바라보는 김상재의 눈동자엔 지독한 후회의 빛이 떠올랐다.
“사랑하는 이에게 지옥 같은 고통을 주었으니, 당연히 저도 그런 고통을 겪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지옥 같은 고통을 주었으니, 응당 나도 그러한 고통을 겪어야 한다.
김상재의 말을 곱씹던 악마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하!
한참 동안 껄껄 웃던 악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빠르구나! 백팔지옥을 모두 다녀온 자의 깨달음을 단 여덟 번 만에 얻다니!
악마의 몸 주변엔 흐릿한 안개가 피어올랐다.
점차 흐릿해진 악마의 몸은 어느새 검은 옷에 삿갓을 쓴 사람의 형태로 변해 있었다.
그 모습은 영락없이 저승사자의 모습이었다.
-고얀 놈이로고. 아직 보여줄 지옥이 백 가지나 남았건만…….
혀를 차던 저승사자는 김상재를 향해 말했다.
-그럼 이제 마지막 지옥만 남았구나.
그 말을 끝으로 지옥의 풍경은 사라지고 김상재의 시야는 하얀 빛무리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아내, 심진경과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김상재는 단아한 모습의 아내에게 반해 무작정 따라다녔다.
그 와중에 오랫동안 지병을 앓았던 심진경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차례로 돌아가시는 일이 벌어졌다.
김상재는 힘들어하는 심진경을 보듬어주었고, 소소한 대소사를 모두 처리해 주었다.
그 모습에 감동한 심진경 역시 김상재를 받아들였고, 결혼에 골인하여 행복하게 살았는데…….
어느 날, 불륜이란 짜릿한 쾌락에 빠져 헌신하는 아내가 싫어져 버렸다.
그때부터 아내를 억압하고 무시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내는 늘 변함없이 사랑만 주었다.
자신이 힘든 날, 남편이었던 김상재가 자신을 지탱해 주었기에…….
“내가… 이 지옥을 만들었어.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모든 걸 깨달은 김상재의 눈에는 회한의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김상재는 잠에서 깨어나, 서서히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아직도 12시가 지나지 않고 있었다.
“여, 여보.”
큰 깨달음을 얻은 김상대는 소파에 앉아 있는 아내에게 달려가 무릎을 꿇었다.
“내가 잘못했어!”
김상대는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반년가량 지속된 불륜. 그로 인해 아내는 지금까지 오랜 시간, 지옥 속에서 살아왔다.
아내에게 집은 커다란 감옥이었고, 홀로 앉아 있는 시간은 몸과 마음까지 태워 버리는 형벌이었다.
“제발 날 용서해 줘…….”
뻔뻔한 부탁이라는 걸 알면서도 김상대는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빌었다.
“용서 안 해.”
떨어진 눈물방울을 닦은 심진경은 오열하는 김상대를 일으키며 무감정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우리 아이가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어. 이번 한 번만.”
“아이?”
살짝 볼록한 심진경의 아랫배를 발견한 순간, 김상대는 머리를 바닥에 처박고 처절하게 오열했다.
“으아아!”
알고 보니 심진경은, 아이와 함께 이 지옥을 같이 견디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용서하지 않는 이유도 아이 때문이었다.
“나는, 나는… 그것도 모르고.”
아내가 겪어야 했던 지옥 같은 시간을 헤아린 김상대는 실신하기 직전까지 울어댔다.
“평생 헌신하면서 살아야 할 거야. 나한테도, 아이한테도.”
김상대는 더 이상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시 태어나도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기에.
그는 지금부터 아내의 곁에 머물며 평생 속죄를 할 것이다.
* * *
실드경계지역, 천마의 옥탑방.
옥탑 위 평상에 앉아 운기조식을 하고 있던 천마의 앞으로 까만 안개가 피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김상재에게 나타났던 저승사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저, 천마 님.”
가부좌를 틀고 있는 천마에게 굽신거리며 다가온 저승사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제 다 끝났는데… 저 좀 돌려보내 주시면 안 될까요.”
그러자 천마가 서서히 눈을 떴다.
혈염광휘가 머물러 있는 붉은 눈동자와 시선을 마주치자 저승사자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확실히 처리했나.”
“아, 그러믄요. 천마 님께서 짜주신 백팔지옥 스토리 덕택입니다. 인간들이 갖고 있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지옥이라는 사후세계의 이미지를 적절히 섞어 만든 덕에…….”
저승사자는 공손히 모은 두 손을 열심히 비볐다.
“그 잡놈의 새끼 후림대를 오지게 먹였습죠. 다시는 바람 따윈 피지 않을 겁니다.”
“어떻게 장담하나.”
“백팔지옥을 몇 번 맛보더니, 출가한 땡중 마냥 지난날의 잘못을 크게 깨우쳤습니다. 아직 보여줄 지옥이 백 가지나 남았는데…….”
몽마는 못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하긴, 아내가 임신한 줄도 모르고 그딴 짓을 했으니. 반성하지 않았다면 인족이 아니라 저희 악마 쪽 피를 가진 놈이겠죠. 헤헤.”
천마는 저승사자의 복장을 보며 혀를 찼다.
“그런데, 네놈 복장은 그게 뭐냐.”
“아아, 모르셨습니까? 이게 바로 이 세계의 흑백무상신(:저승사자)의 복장입니다. 이곳에선 이 복장으로 통일되었거든요.”
까만 안개가 밀려오더니 어느새 저승사자의 형체를 하던 그림자는 거적때기를 걸친 작은 유령과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그나저나 놀랐습니다. 천마 님께서 이쪽 세계에 계셔서…….”
“본좌도 놀랐다. 이곳에서 절명기혼의 수법을 사용했다고 몽마(夢魔), 네 녀석이 나타날 줄이야.”
“헤헤. 이곳에선 인큐버스라고 불리죠.”
몽마. 남자 서큐버스라고도 불리는 이 악마는 과거 천마와 악연이 있었다.
천마의 부하였던 장상혈마는 우연히 1,000년 전에 절멸된 귀문(鬼門)의 비술을 우연히 습득하였다. 그것은 꿈속을 지배할 수 있는 몽마를 불러들일 수 있는 비법이었다.
손을 대지 않고 원하는 자를 죽일 수 있는 몽마의 비술을 얻자, 장상혈마는 천마의 정기를 모두 빼앗고 만마집궁을 집어삼키려 했다.
하지만 마문대법을 모두 통달했던 천마는 장상제령술과 절명기혼의 수법으로 오히려 몽마를 수하로 삼았다.
결국 장상혈마는 목이 날아갔고, 몽마는 천마에게 충실한 하인이 되겠다는 맹세를 한 후 풀려날 수 있던 것이다.
“오랫동안 찾지 않으시길래 어디서 뒈지… 아니, 돌아가셨는 줄 알았는데 신수가 더 훤해지셨군요.”
중간에 말실수를 한 몽마는 이마에 땀을 흘리며 또다시 두 손을 비볐다.
“물론 고금제일인이신 천마 님께선 영생불멸의 비법을 얻으셨겠지만요. 헤헤.”
천마는 귀찮다는 듯 눈을 감았다.
“다 됐으면 가라. 네놈을 불러낸 것만으로 본좌의 심력진기(心力眞氣)를 갉아먹고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다음에도 또 불러주십쇼!”
경계 자세를 취한 몽마는 서서히 사라졌다.
“으음.”
몽마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던 천마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무림세계에 있던 몽마 녀석이 이곳에 올 수 있단 말이지.”
이 세계와 무림은 연결되어 있는 걸까? 천마는 어째서 이곳에 오게 된 걸까?
먼 하늘을 올려다보던 천마의 눈이 서서히 가늘어졌다.
* * *
“여보세요? 아뇨. 저희는 그런 시공은 안 해요. 죄송합니다.”
들고 있던 수화기를 거칠게 내려놓은 장채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잘 처리한 건 좋은데… 대체 이게 뭐야? 이상한 소문이 퍼졌잖아.”
천마가 심진경 부부의 일을 해결하자, 금세 이상한 소문이 퍼졌다.
복복 인테리어에는 부부 금슬이 좋아지는 인테리어를 잘한다고 소문이 난 것이다.
장채원은 천마가 무슨 방법으로 두 부부의 애정 문제를 해결했는지 자세히 물어보지 않았다. 듣지 않아도 분명 엄청나게 흉악하거나 엄한 방법으로 해결했을 테니까.
“어쨌든 본점의 이름을 널리 알렸으니 좋은 게 아닌가.”
응접 테이블에서 책을 보던 천마의 말에 장채원이 눈썹을 내리고 인상을 썼다.
“장난해? 어쨌든 부적으로 해결한 거잖아. 그런 건 인테리어에 속하지 않는다고.”
“풍수 인테리어다.”
“그게 무슨 풍수 인테리어야.”
“천문지리의 ‘지리’가 바로 풍수지리의 ‘지리’와 같은 말이다.”
“됐어. 어쨌든 난 절대로 인정 못 해!”
장채원은 천마를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앞으로 부적을 써야 하는 의뢰는 금지야. 물론 고객이 풍수 인테리어를 요청해도 마찬가지고.”
“흠.”
현재의 바닥난 내공으로 몽마를 부리는 건 사실, 그의 심력과 육체에 상당한 무리가 가는 행동이었다.
장채원의 비웃음에 오기로 한 행동이었으나 다시는 천마 역시 하고 싶지 않았다.
“알겠다. 그리하지.”
천마는 선선하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