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69화 (69/285)

제69화. 사람 잡는 풍수 인테리어 (1)

풍수 인테리어.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그리 생소하지 않은 말이다.

풍수지리학을 인테리어에 접목시킨 개념으로 단순한 미신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그것을 맹신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오 무렵, 복복 인테리어 내부.

응접 테이블에 앉은 삼십 대 여성을 바라보던 장채원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풍수 인테리어요?”

그리고 그녀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종이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온라인에 떠도는 풍수 인테리어 지식이라든가 그림 등이 그려져 있었다.

“글쎄요. 저는 풍수 인테리어 같은 걸 딱히 믿고 있지는 않아서요.”

“역시… 그러신가요.”

장채원의 답변에 여성이 힘없이 웃었다.

“혹시나 해서 여쭤봤어요. 매장이 한옥풍으로 지어져 있길래… 풍수 인테리어에도 정통하신가 싶어서.”

뭔가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걸까?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 여성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해 보였다.

“죄송해요. 그런 쪽은 전혀 몰라서…….”

장채원이 고개를 젓는데.

“풍수지리라.”

그런데 매장 구석에서 타일을 정리를 하고 있던 천마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런 건 본좌가 전문이지.”

“네?”

멋스러운 한복풍의 독특한 옷을 입은 천마의 모습에 여성은 왠지 모를 신뢰를 느꼈다.

“풍수지리에 대해서 잘 아시나요?”

“후후후.”

반색하며 묻는 여성을 바라보던 천마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팔짱을 끼었다.

“본좌로 말할 것 같으면 위로는 하늘의 뜻을 헤아리고 아래는 땅의 이치를 깨달았다. 뭐든 물어봐라.”

“아, 잠시만요.”

방긋 웃은 장채원이 천마의 곁으로 재빨리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장난해? 나는 그런 거 안 한다고.”

“걱정 마라. 본좌가 알아서 하겠다.”

“뭘 알아서 해? 그런 미신 같은 걸 인테리어랍시고 하겠다고?”

“미신이 아니다.”

천마는 씩 웃으며 말했다.

“본좌는 마문의 장상제령술(葬喪制靈術)뿐만 아니라 자미두수(紫微斗數)나 기문둔갑(奇門遁甲)에도 능하니까.”

“뭐? 그게 뭔데?”

“모르면 됐다.”

매장에 앉아 있는 시간이 점차 길어질수록 천마는 시공일 뿐만 아니라, 고객상담 업무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점주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된다.”

“뭐? 뭐?”

당황한 장채원이 주춤하는 사이, 어느새 천마는 여성의 맞은편에 앉아 자신 있게 말했다.

“풍수 인테리어라. 사실 기문둔갑까지 갈 필요도 없다. 의외로 간단히 적용되니까.”

“간, 간단하다뇨?”

“본좌가 하나 묻겠다. 금이라는 건 무슨 색인가.”

맥락 없는 질문에 여성은 당황해하면서도 홀린 듯 대답했다.

“노란색이죠.”

“그렇다. 예로부터 돈은 모두 금전(金錢)이라 표현하였지. 즉, 재복(財福)을 불러오는 건 황색. 누런색이라는 거다.”

그리고 천마는 매장 한켠에 있는 페인트 통 하나를 가리켰다.

“고로, 본좌가 제안하는 건 금칠 인테리어다.”

“금칠 인테리어요?”

“그렇다. 내부 마감과 가전 집기까지 모두 반짝이는 금색으로 칠하는 거다. 그렇게 되면 재복은 넘쳐흐를 지경이 되겠지.”

“야, 그게 말이 되냐? 누가 집을 다 누렇게 꾸미냐?”

장채원이 핀잔을 주자 천마가 고개를 저었다.

“공부가 부족하군. 인테리어 잡지나 TV를 못 봤나? 돈이 썩어 넘치는 거부들이 집을 금으로 꾸미는 건 흔한 일이다. 심지어 변기도 순금으로 놓더군.”

“중동의 석유 재벌이냐?”

“뭐든 어떤가. 중요한 건 그들이 모두 상상을 초월하는 부자라는 거다.”

궤변에 궤변을 얹어대자 이를 깨문 장채원이 속삭였다.

“어쨌든 그런 건 안 된다니까.”

‘헛소리하지 말고 창고나 정리해!’라고 말하려던 찰나, 갑자기 여성이 엉뚱한 말을 했다.

“재복 말고, 애정운에 관한 인테리어는 없나요?”

“애정?”

이번엔 천마가 크게 당황했다. 남녀 간의 애정 따위는 아는 바가 없다.

여성의 간절한 눈빛을 슬쩍 피한 천마가 엄숙하게 말했다.

“예로부터 ‘상통천문(上通天文)과 하달지리(下達地理)는 있으나, 중찰인의(中察人義)는 없느니라.’라고 했다. 즉, 하늘의 문자와 땅의 이치는 말할 수 있으나 인간사에 대해선…….”

“그러니까 애정에 대해선 모르시는군요.”

여성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천마의 목소리 톤이 살짝 낮아졌다.

“꼭 모른다기보다, 예로부터 전해져 오는 말이 그렇다는 거다.”

순간 천마의 눈에는 장채원이 피식, 하는 모습이 엿보였다.

조용히 비웃음을 머금은 장채원의 표정은 ‘거봐? 네가 할 수 없는 거잖아?’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물론, 본좌는 잘 알고 있지.”

“뭐어?”

장채원이 입을 벌리자 천마가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고금제일인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천마의 눈물겨운 상담이 시작됐다.

“자세한 이야기를 해봐라.”

* * *

띠링.

기계음과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고 들어오던 김상재는 어두운 간접등 하나만 켠 채 소파에 앉아 있는 아내, 심진경을 발견했다.

“안 잤어?”

“으응, 저녁은?”

“당연히 먹었지. 열두 시가 넘었잖아.”

“그렇구나.”

소파에 앉아 있던 심진경은 기계처럼 일어나 식탁에 올려두었던 음식을 정리했다.

그 모습을 보던 김상재는 미안하면서도 짜증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히 회식하고 온다고 했잖아. 저녁은 왜 준비해 놓은 건데.”

“술 마시고 돌아오면 항상 배고프다고, 야식 찾았잖아.”

다정한 아내의 대답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김상재는 몸을 홱 돌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됐어. 나 씻고 잘게.”

차갑게 돌아서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심진경의 눈동자가 흐려졌다.

알고 있다.

남편이 같이 회사 동료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것쯤은. 오늘도 그녀의 집에서 머물며 저녁을 먹고 돌아왔다는 것도.

하지만 원망스러운 마음보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

소파 앞 테이블에 올려두었던 소형 컴퓨터를 바라보던 심진경은 몸을 일으켰다.

끼익.

안방 문을 열자 셔츠를 벗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보인다.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온 남편의 머리칼에선, 은은한 샴푸 향이 풍기고 있었다.

“여보.”

심진경은 욕실로 들어가려는 남편을 조심스럽게 불렀다.

“집 벽지도 좀 낡았고… 소품들도 오래됐는데, 좀 바꿔도 될까?”

“맘대로 해.”

눈 한번 마주치지 않은 채 욕실 안으로 들어서는 남편을 보자 심진경의 눈빛은 더욱 흐려졌다.

“으응.”

낮게 대답한 그녀가 한 손에 들고 있던 소형 컴퓨터엔 ‘부부관계를 돈독히 해주는 풍수 인테리어’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아아.”

모든 이야기를 들은 장채원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서 절대 끼어들지 말아야 할 것이 남녀 간의 애정사다.

거기다 ‘부부관계를 돈독히 해주는 풍수 인테리어’라니? 그건 사이비 종교에 의지하는 것만큼이나 황당한 일이 아닌가?

“저, 저도 알아요. 황당한 이야기라는 걸.”

고개를 떨군 여성, 심진경이 울적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어요. 집에서 화장도 해보고, 속옷도 바꿔 입어보고… 마지막으로 남은 건 이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아서요.”

하기야 그냥 모른 척하기엔 제삼자가 들어도 속이 터지는 문제다.

은근히 터져 나오는 분노에 주먹을 꽉 쥐던 장채원은 문득 천마를 힐긋 바라보았다.

‘저 녀석. 이런 남녀 간의 문제를 알기나 아는 걸까?’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이라곤 오만함과 자부심밖에 없다. 이 세계와는 전혀 맞지 않은 어둡고 삭막한 세계관을 가졌다.

지독할 만큼 남의 일에 무심한 천마가, 부부간의 애정 관계에 대해 납득이나 할까?

‘뭐가 됐든, 이런 건 우리 매장에서 할 일이 아냐.’

장채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 문제는 풍수 인테리어 따위가 아니라 상담을 받아야 할 일이다.

여성, 심진경의 눈치를 보던 장채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아무래도 이런 일은 인테리어 매장이 아니라 전문 상담소에서…….”

그런데 그때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풍수 인테리어로 해결 가능한 문제군.”

“뭐?”

장채원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무슨 말뼉다귀 같은 헛소리야?

“인테리어로 해결 가능하다니. 천마, 너 미쳤어?”

장채원이 속삭이자 천마가 손을 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

“본좌는 인테리어가 아니라 풍수 인테리어라고 했다.”

“정, 정말인가요?”심진경이 환하게 미소 짓자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아, 다행이에요.”

눈물 한 방울을 닦은 심진경을 보자 장채원의 불안감은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선선히 고개를 끄덕인 천마는 의외로 날카로운 질문을 했다.

“그래서, 풍수 인테리어를 통해 원하는 바가 뭔가.”

“네?”

“다른 여성에게 마음을 준 부군에게 처절한 복수와 응징을 하는 것이 목적인가. 아니면 단순히 부군이 바람을 피우지 않게 하는 것이 목적인가.”

“그, 그거야 당연히… 남편이 예전처럼 돌아오는 거죠.”

“예전처럼이라니.”

천마의 물음에 심진경이 고개를 떨구었다.

“예전처럼 좋은 부부 사이로… 지내는 거 말이에요.”

“그건 곤란하다. 아무리 천문지리에 능통한 본좌라고 해도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거나 조종할 수는 없으니.”

천마는 헛소리 같으면서도 어딘가 이치에 맞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건 그렇지.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조종하겠어.’

장채원이 내심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려는 찰나.

“그러면… 어떤 것이 가능하다는 말씀인가요.”

팔짱을 낀 채 곰곰이 생각하던 천마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말했다.

“바람을 피우지 않게 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그게 말이 되냐?’

천마를 바라보던 장채원이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다.

‘헛소리도 정도껏 해야지. 그걸 누가 믿겠냐.’

분명 여성은 어처구니없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설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녀의 예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남편이…….”

보통 같으면 시선을 돌릴 만큼, 음침하게 타오르는 천마의 붉은 눈동자를 마주한 심진경. 그녀의 표정은 오히려 구세주를 바라보는 듯했다.

“바람을 피우지 않게 해주신다고요?”

그렇게만 된다면 심진경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정말인가요…? 정말 바람을 피우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거죠?”

“본좌는 허언 따윈 하지 않는다.”

“좋아요. 그럼 해주세요. 비용은… 얼마든지 들어도 좋아요.”

“얼마든지라.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천마는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본좌는 점주에게 일억 원의 빚이 있지. 그렇다고 이 일로 일억 원이라는 비용을 청구할 순 없잖나.”

“괜찮아요. 확실히 된다고 한다면 일억 원이라도.”

“좋다. 그렇다면 비용은 일억 원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천마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하얗게 눈이 뒤집힌 장채원의 얼굴이 바짝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런 걸로 일억 원이나 받겠다고? 네가 무슨 사이비 교주야?”

“고객이 준다고 하잖나.”

“시끄러. 대체 뭘 어떻게 하려고? 재료비랑 시공비는 얼마나 들어가는데?”

장채원의 시선을 피한 천마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재료랄 건 없다. 경면주사와 붓, 그리고 괴황지만 있으면 되니까.”

“그게 뭐야?”

“쉽게 말해 빨간 염료와 누런 종이다.”

“뭐?”

곰곰이 생각하던 장채원의 머릿속에 불길한 기운이 스쳤다.

빨간 염료와 누런 종이, 그 두 가지 재료로 할 수 있는 건 빤하지 않은가?

“너 지금 인테리어 매장에서 무당 노릇을 하겠다는 거야?”

“걱정 마라. 본좌는 미신 따윈 믿지 않으니까.”

“지금 네가 하려는 게 미신 따위라고.”

“말하지 않았나. 본좌는 장상제령술과 기문둔갑에 정통…….”

천마와 장채원이 옥신각신할 무렵, 심진경이 단호하게 말했다.

“상관없어요. 뭐든 해주세요.”

“네?”

“미신이든 뭐든 상관없어요. 어차피 풍수 인테리어도 마지막 수단이었는걸요.”

“좋다. 그 정도 각오라면 할 만하겠군.”

천마는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본좌가 일을 진행하도록 하지. 보수는 일이 끝난 후, 다시 점주와 상의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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