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67화 (67/285)

제67화. 천마, 자동차를 얻다

며칠 후, 복복 인테리어 내부.

내당에서 매장으로 출근한 장채원은 천마의 손에 들린 면허증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본좌의 면허증이다.”

“그래, 축하해. 빨리 땄네.”

천마가 운전에 재능이 있다는 건 김찬원에게 입이 닳도록 들은 바였다. 하필 인테리어가 아니라 운전에 재능이 있다는 점에선 매우 아쉬웠지만.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하나뿐이겠군.”

팔짱을 낀 천마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말했다.

“본좌의 지위와 명성에 걸맞은 자동차가 필요하다.”

“으음…….”

통나무보다도 더 굵은 천마의 팔뚝을 바라보던 장채원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 덩치에 맞은 차를 사려면 덤프트럭은 사야겠다.”

“덩치 같은 건 상관없다. 본좌는 차를 원한다.”

“좋아. 일요일 날, 시간 비워. 차 보러 가자.”

“그러지.”

덤덤한 표정으로 창고에 있는 대걸레를 쥔 천마.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기분 좋은 듯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까다롭네.”

커다란 마트 건물의 형태에 차량이 전시된 중고차 단지를 둘러보던 장채원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일요일 오전부터 장채원은 천마를 데리고 인근의 중고차 단지를 꼼꼼히 둘러봤다. 하지만 아무리 중고차 단지를 둘러봐도 천마가 마음에 들어 하는 차량이 없었다.

“대체 어떤 차를 원하는 거야.”

장채원은 묵묵히 차를 바라보는 천마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세단, 승합차, 픽업트럭, 스포츠카까지… 자동차란 자동차는 모두 구경했지만, 천마는 인상을 쓰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마음에 드는 차가 하나도 없다니. 말이 안 되잖아.”

장채원의 말에 천마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기 있는 것들은 모두 영혼이 없다.”

“자동차에 그런 게 있음 되겠냐?”

“어쨌든 본좌의 뜻대로 움직일 좋은 녀석이 필요하다.”

단지 내에 차를 둘러보던 천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뻔뻔한 뒤통수를 한 대 후려치고 싶지만, 눈빛이 워낙 진지해 차마 손이 나가지 않았다.

“그럼… 조금만 더 둘러보자.”

어느덧 해는 지평선 너머 사라졌고 하늘은 오렌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인근의 중고차 시장을 모두 둘러본 장채원은 지친 표정으로 다리를 두들겼다.

“이제 이 중고차 매매단지의 차는 다 본 거야.”

“그렇군.”

“대충 타면 안 돼? 설마 중고차라서 그런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있나. 병기라는 건 새 제품보다 다른 무인의 손을 탄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으응? 왜?”

장채원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천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병장기는 철장(鐵匠:대장장이)이 만들지만 그걸 사용하는 건 무인들이다. 즉, 여러 사람이 길들일수록 빛을 발하지. 찌르기 위주의 검법을 쓰는 고수가 검을 쓰면 검첨과 검봉은 적의 뼈 사이를 도려내며 더욱 예리해지고, 베기 위주로 사용하는 고수가 쓴 검날은…….”

“자동차로 닭을 잡냐? 뭘 찌르고 베어?”

천마가 살벌한 이야기를 이어가자 장채원이 발끈하며 휘휘 손을 저었다.

“됐고. 대체 뭐가 문제야? 차량도 어지간히 시승을 다 해봤잖아.”

진지한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던 천마가 무겁게 말했다.

“본좌의 손에 맞는 것이 없다.”

“뭐?”

“차량을 선택하는 건, 신검합일을 구사하기 위한 병기를 찾는 것과 같다. 물아일체(物我一體)즉, 차량 속에 본좌의 육체를 맡겨야 하니까.”

장채원의 두 눈은 짝짝이가 되었다.

“뭐 착각하는 거 아냐? 자동차는 단지 그냥 이동 수단이라고. 말이나 낙타… 뭐, 그런 거 말야.”

“이것과는 다르다. 말이나 낙타는 살아 있는 동물이니, 길들이며 교감을 하는 것이지. 하지만 이 차량은 본좌의 뜻대로 움직이는 무생물이다.”

“그, 그래서.”

“본좌의 영혼을 불어넣을 수 있는 그릇을 찾아야 한다. 본좌의 애검, 극천처럼 말이다.”

“아아, 그렇구나.”

환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장채원의 두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그제야 그녀는 깨달았다.

천마가 원하는 자동차는 이 세상에 없다는 걸. 이 괴팍한 녀석이 혼자 자동차를 몰고 일을 하러 나가는 일은, 그저 허황된 꿈이었다는 걸.

“배고프니까 우선 돌아가자.”

천마를 승합차에 태운 장채원의 두 눈엔 여전히 초점이 없었다.

조수석에 앉아 흘러가는 도로의 풍경을 바라보던 천마가 덤덤히 말했다.

“점주.”

“응?”

“원래 손에 맞는 병기를 찾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으응. 그래그래.”

“왠지 눈빛이 흐리멍덩해진 것 같은데.”

천마의 핀잔에도 장채원은 기계적인 미소를 그렸다.

“아냐, 아냐. 네 말이 다 맞아.”

“포기하지 마라.”

“으응. 안 할게.”

대답은 착실히 했지만, 장채원은 ‘네 차는 무림에 돌아가서 구매하렴’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로를 바라보던 천마가 갑작스럽게 외쳤다.

“잠깐. 멈춰라, 점주.”

“응? 왜?”

“잠깐이면 된다.”

끼익. 장채원이 갓길에 차를 세우자 천마는 문을 열고 어디론가 뛰어갔다.

“야, 어디 가는 거야?”

달려가는 천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장채원이 눈을 깜빡였다.

“응? 폐차장?”

놀랍게도 천마가 달려가는 곳은 한적한 국도변에 있는 커다란 폐차장이었다.

천마의 등을 멍하니 바라보던 장채원은 어쩔 수 없이 시동을 껐다.

“저 녀석. 여길 중고차 시장이라고 착각한 거야?”

자동차가 샌드위치처럼 겹겹이 쌓인 폐차장의 풍경을 바라보던 장채원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아무래도 천마는 이곳을 또 다른 중고차 단지라고 착각한 듯 보였다.

“천마야.”

멍하니 서 있는 천마의 등 뒤로 다가간 장채원이 말했다.

“여긴 차량 판매하는 곳이 아니야. 폐차장이라고.”

천마는 대답 없이 폐차장 한구석에 있는 차량으로 걸어갔다. 그곳엔 아주 작고 납작한 하얀 차가 견인차 위에 실려 있었다.

“응? 라마스?”

천마가 바라보는 건 수십 년 전에 배달용으로 각광을 받았던 소형 승합차, 라마스였다.

하지만 편의 장비도 없는 데다, 형편없는 마감에 무게는 너무나 가벼워, 네 발 달린 오토바이라는 혹평을 듣는 차량이기도 했다.

“점주도 알고 있나?”

고개를 돌린 천마의 질문에 장채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알지. 옛날에 도배사님들이 많이 타고 다니던 차량이었으니까. 저게 차는 작아 보여도 의외로 짐이 꽤 많이 실린다고.”

“역시 그렇군.”

천마의 입가엔 보기 드문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눈을 깜빡이던 장채원은 입을 벌렸다.

“설마… 저 차를 타고 싶다고?”

“그렇다.”

“안 돼. 저건 못 타는 차야.”

“못 타는 차라니.”

장채원은 곤란한 표정으로 라마스를 가리켰다.

“워낙 차가 작아서 네가 몸을 구겨 넣으면 차가 부서질걸.”

“천만에. 본좌가 타기에도 넉넉하다.”

“넉넉하다고? 어떻게 알아?”

천마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라마스의 운전석 문을 매만졌다.

“면허 취득을 이 차량으로 했으니까.”

두 눈을 가늘게 뜬 천마가 그때를 회상했다.

“몸체는 날렵하고 가늘어 바람을 쉽게 가르더군. 본좌의 섬세한 움직임도 잘 표현했다.”

“이게 칼이냐.”

“뿐만 아니라 내부엔 번거로운 것들이 전혀 없더군. 오직 본연의 기능에만 충실한,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깔끔한 명품이다.”

“워낙 저렴한 차라 편의장치가 없는 것뿐이라고.”

그때 폐차장 안쪽에서 작업용 검은 점퍼를 입고 있던 노인이 어슬렁 걸어 나왔다.

이 폐차장을 운영하는 사장으로 보였다.

“어쩐 일로 오셨수?”

“아 그게…….”

장채원이 더듬거리자 천마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이 차를 사고 싶다.”

“응? 이 라마스를?”

천마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노인이 눈을 껌뻑였다.

“이거… 폐차할 건데?”

“아직 잘 나가는 차량이다. 폐기하기에는 아직 일러.”

그때 폐차장 사무실에서 양복을 입은 중년인이 걸어 나왔다. 반달곰 운전면허 학원의 실장인 이기웅이다.

“어? 그때 저희 학원에 등록해 주셨던…….”

이기웅의 말에 장채원도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반달곰 면허학원 실장님?”

이기웅은 학원으로 찾아온 천마와 장채원에게 등록 절차를 안내해 준 사람이었다.

특히 한 번 보면 평생 잊지 못할 천마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 리 없었다.

“저, 저기… 저 라마스, 폐차하실 생각이신가요?”

장채원의 질문에 이기웅이 눈썹을 모았다.

“그런데요.”

“잘됐군.”

천마는 이기웅의 어깨를 덥석 붙잡으며 말했다.

“그럼 저 차를 본좌에게 넘겨라.”

“네?”

“걱정 마라. 당연히 값은 치른다.”

“아니, 저 차는 너무 낡아서… 편의장치도, 안전장치도 없는…….”

양손으로 이기웅의 어깨를 잡은 천마가 혈염광휘가 번뜩이는 눈동자를 바짝 갖다 대었다.

“저 차를 본좌에게 넘겨라.”

폐차장 근처에는 작은 정비소가 있었다.

그곳에서 소모품 교환과 정비를 마친 라마스는 전과 다름없는 엔진 소리를 내었다.

드릉드릉.

낮지만 힘 있는 엔진 소리를 듣고 있던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좋군.”

천마의 칭찬에 라마스는 드릉드릉, 하는 엔진 소리로 화답하는 듯했다.

“예상외로 돈을 아껴서 좋긴 한데… 뭔가 좀 미안하네.”

천마와 라마스 가격을 흥정하던 것을 회상하던 장채원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얼마에 줄 텐가.”

천마의 물음에 이기웅은 크게 고심하더니 천마에게 손가락 세 개를 소심하게 내밀었다.

“그럼 삼백…….”

“30만 원이면 적절하군.”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는 천마의 무시무시한 얼굴을 보자, 바가지를 씌우려던 이기웅의 부은 간이 순식간에 원래 모습으로 회복되었다.

‘하긴… 폐차를 해도 딱 그 정도 고철값밖엔 못 받았겠지.’

쓴웃음을 짓던 장채원이 고개를 저을 무렵, 어느새 라마스에 올라탄 천마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타라, 점주. 차량이 있는 곳까지 본좌가 특별히 태워주지.”

천마의 굵은 팔뚝에 점령당한 조수석을 바라보던 장채원이 양손을 흔들었다.

“아, 아냐. 폐차장까진 금방 걸어가는걸.”

“그런가.”

“근데 기름 같은 건 넣을 줄 알아?”

“물론이다. 학원에서 이 차량에 대한 모든 편의 사항은 미리 배워뒀지.”

운명이었을까?

천마는 라마스로 면허를 취득한 뒤로도, 강찬미에게 주유하는 법이라든가, 와이퍼 움직이는 법 등, 여러 가지 차량에 관련된 정보를 꼬치꼬치 물어봤었다.

“그럼 돌아가. 조심히 운전하고. 보험은 전산으로 등록시켰으니까, 바로 적용될 거야.”

“알겠다. 점주도 조심히 가라.”

작은 창문에 얼굴을 간신히 내밀던 천마가 손을 흔들며 차량을 몰았다.

드릉드릉.

낮은 배기음과 함께 떠나는 천마의 차량을 바라보던 늙은 정비사가 혀를 탔다.

“거, 독특한 차량을 구입하셨구려.”

“네?”

“저 차량 말이오. 이상한 엔진을 스왑시켜 놨더라고. 하체 등도 엄청나게 보강되어 있고.”

장채원이 눈을 깜빡이자 정비사 노인이 눈을 껌뻑였다.

“아, 모르셨소? 나는 또 알고 산 줄 알았지.”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어요.”

“저 배달차, 누가 신기하게 개조를 해놓았더만. 하긴, 워낙 수십 년 전 차량이기도 하고, 예전 부품으로 해놓은 거라… 요새 사람들은 잘 모를 거요. 허허허.”

너털웃음을 짓는 정비사를 보던 장채원이 또다시 어깨를 늘어뜨렸다.

저녁 뉴스에 천마의 흉흉한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나오는 모습을 상상한 것이다.

“설마 또 난폭 운전 같은 건 하지 않겠지.”

다시 한번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절대 운전을 금지시키겠다고 마음을 먹은 장채원이었다.

드릉드릉.

독특한 배기음 소리와 함께 천마는 자신의 옥탑방 앞에 도착했다.

시내 지리를 어느 정도 익힌 데다, 도심 끝자락에 있는 실드경계지역을 찾는 것은 일도 아니었으니까.

천마의 옥탑 건물과 맞은편에 있는 특수대응팀의 건물 앞.

“…….”

야외 테이블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던 특수대응팀의 팀원들은 몸을 구겨 넣은 채 라마스를 타고 있는 천마를 보며 입을 벌렸다.

“으아, 저건 또 무슨 악취미래.”

앞 유리창을 뚫고 나올 듯한 천마의 얼굴과 마주친 신채영이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응?”

수박을 크게 베어 물고 있던 한만재는 천마의 모습을 보자 푸 소리를 내며 입에 있는 내용물을 뿜어내었다.

“쿨럭쿨럭.”

과일을 깎던 초홍도 라마스에 탄 천마를 보자 표정이 굳었다.

“귀엽다고 해야 할지, 흉물스럽다고 해야 할지…….”

초홍의 말을 받은 건 유은호였다.

“캬아, 던전에서 유물 하나만 건져와도 최신형 M903 몇 대는 살 텐데. 저분은 정말 정직하고 청렴하게 사시는구나.”

그때 평상에 서 있던 한호조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천마 아저씨! 차 산 거예요?”

천마는 무표정한 얼굴로 평상 앞을 스윽 지나갔다. 거기에 대고 콧김을 내뿜던 한호조가 펄쩍 뛰며 외쳤다.

“아저씨, 차 멋져요!”

룸미러 뒤로 손을 흔드는 한호조를 흡족한 얼굴로 쓱 보며, 천마는 창밖으로 엄지손가락을 척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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