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66화 (66/285)

제66화. 운전학원을 간 천마

반달곰 자동차 운전 전문학원.

자체 시험장이 있어 학원 내에서 면허 취득이 가능한 자동차 학원이다.

부릉부릉.

자동차 학원 앞 임시 도로엔 도로 주행 연습을 위한 연습 차량 ‘서번트’들이 시동을 켠 채 쭉 늘어서 있었다.

그때, 햇살을 등지고 육중한 그림자가 차량 앞으로 천천히 나타났다. 남청색과 회색빛으로 물든 괘자를 입은 천마였다.

“면허라는 건 정말 쓸데없는 과정이 많군.”

천마는 레이싱 사용으로 개조된 김찬원의 애마, 가젤의 엔진을 망가뜨릴 만큼, 이미 차량 조작 방법과 드라이빙 스킬에 익숙해진 상태다.

단숨에 장내 실기시험에 합격했으나 아쉽게도 면허 취득의 마지막 과정, 도로 주행 시험은 운전학원에서 교육을 받은 후 취득하게 되어 있었다.

천마는 결국 어쩔 수 없이 면허 취득을 위해 장채원의 도움으로 이 반달곰 운전학원에 등록한 것이다.

“수강생님. 이쪽으로 타세요.”

1번 차량이라고 적힌 차량 안에서 운전 강사 강찬미가 손을 흔들었다.

철컥 소리와 함께 차량의 문을 연 천마가 육중한 몸을 운전석에 실었다.

“어디 보자, 성함이… 천마, 천마 씨군요.”

천마의 살벌한 얼굴이 프린트된 서류와 실물을 번갈아 살펴보던 강찬미가 침을 꿀꺽 삼켰다.

“혹시 각성자신가요?”

“아니. 본좌는 천마다.”

“본좌…….”

온라인상에서나 듣던 말이다. 그리고 이 단어를 쓰는 사람치고 정신이 맑은 사람은 없다.

강찬미의 등에선 알 수 없는 불길한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지, 지금부터 실기시험 연습을 할 거예요.”

하지만 강찬미 역시 스물네 살 때부터 6년간 쭉 이곳에 몸담은 베테랑 강사다.

온갖 진상들과 개념 없는 수강생들을 면허 취득의 길로 이끈 그녀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먼저 안전벨트를 매주세요.”

천마가 군소리 없이 안전벨트를 매자 강찬미가 센터페시아 부근의 어느 버튼 하나를 눌렀다.

그러자 띠링 소리와 함께 ‘도로 주행 연습을 시작합니다.’라는 말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자, 천마 씨. 차량에서 나오는 지시에 따라 차량을 몰도록 하세요.”

-전방 30미터 앞, 좌회전입니다.

차량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와 함께 차량의 유리판으로 파란색 안내선이 그려졌다.

묵묵히 운전대를 잡고 있던 천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거절한다.”

“네?”

“저 앞에 거북이처럼 달리는 차량을 굳이 쫓아갈 필요 없지 않나.”

이마에서 떨어지는 굵은 땀방울을 닦은 강찬미가 말했다.

“지정된 도로 주행 코스를 이탈하시면 안 돼요. 정해진 길을 달리지 않으면 탈락이에요.”

“그런가.”

운전대를 잡은 천마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럼 본좌는 조금 있다가 출발하겠다.”

“네?”

“저 앞에서 병아리 떼들이 엉성하게 움직이는 걸 마냥 보고 싶진 않군.”

아무래도 불길한 예감이 적중한 것 같다.

이 본좌를 자칭하는 근육남은 생각한 것보다, 그리고 생긴 것보다 훨씬 더 진상임이 분명했다.

“그, 그래요. 느리게 출발한다고 뭐라 할 사람은 없으니까요.”

정신을 차린 강찬미가 능수능란하게 응대했다.

“여유 있게 출발하는 것도 나쁜 건 아니니까요. 좋은 생각이에요.”

눈앞의 차량들이 어느새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자, 천마는 액셀을 밟았다.

“그럼 출발하도록 하지.”

끼이익.

낮은 배기음과 함께 노란색으로 물든 연습용 차량의 바퀴가 맹렬히 돌기 시작했다.

부웅 소리와 함께 쏜살같이 차량이 쏘아지자, 스피커에서 싸늘한 음성이 들려왔다.

-급출발. 마이너스 5점입니다.

“저, 저어. 들으셨죠?”

손수건을 꺼내 이마를 닦은 강찬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굳이 이렇게 빠르게 출발할 필요 없어요.”

“본좌는 호쾌한 출발을 선호한다.”

“앞에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요.”

“사람이 없는 건 확인했다.”

비로소 강찬미는 자신의 생각을 수정했다.

이자는 진상이 아니다.

지금까지 가르쳤던 역대 수강생 중 최악의 진상이었다.

-전방 100미터 앞에서 우회전입니다.

“천마 씨? 저 앞에서 우회전해야 하는데요.”

“본좌도 들었다.”

“그렇죠? 그런데 왜 감속을 안 하세요?”

“감속? 이런 길 따위에서 본좌가 멈추겠나.”

천마는 코웃음을 치며 액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았다.

우웅!

엔진의 RPM이 치솟더니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차량이 측면으로 미끄러졌다. 그럼에도 속도는 전혀 줄지 않았다.

“꺄아악!”

시트에 파묻힌 강찬미의 시야가 한 바퀴 빙글 돌더니 원위치 됐다. 천마가 뒷바퀴를 흘려 드리프트 주행을 한 것이다.

-난폭 운전. 마이너스 10점입니다.

“이상하군.”

천마가 우울한 표정을 짓자 강찬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뭐가요?”

“본좌의 뜻대로 차량이 움직이지 않는데, 무슨 조작을 해놓은 거지.”

일전에 탔던 김찬원의 가젤은 천마의 뜻대로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하지만 이 차량은 천마의 의도와 달리 멋대로 제어를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내보이고 있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니다. 시험해 보면 되겠지.”

-전방 150미터 앞 좌회전입니다. 이후 30미터 앞 우회전입니다.

부우웅.

그 소리를 듣자마자 천마는 다시 액셀을 꽉 밟았다.

“처, 천마 씨? 브레이크! 브레이크!”

강찬미의 외침에도 천마의 오른발은 또다시 액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았다. 동시에 사이드를 올리며 운전대를 빙그르르 돌렸다.

끼이이익!

뒷바퀴가 미끄러지며 좌우 연속으로 드리프트를 했다.

하지만 천마가 예상했던 날카로운 각도가 아닌 완만한 각도로 코너를 빠져나왔다.

-난폭 운전. 마이너스 10점입니다.

“역시 그렇군.”

천마의 중얼거림에 강찬미가 자신의 앞에 설치된 브레이크를 꽉 밟았다.

끽 소리와 함께 차량이 멈추자 강찬미가 소리쳤다.

“더 이상은 안 돼요! 당장 내리세요!”

“무슨 말이냐.”

“면허도 따지 않았는데 이렇게 위험한 난폭 운전을 하다니. 이게 말이 돼요?”

“난폭 운전이라니. 이건 본좌가 몰 차량을 테스트한 것이다.”

천마의 당당한 표정에 강찬미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테스트라뇨?”

“일전에 몰았던 차량은 본좌의 뜻대로 잘 움직였는데, 이 차량은 마치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려 하더군.”

천마는 차량의 계기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멋대로 본좌의 의지를 벗어나려는 차량으로 어찌 시험을 칠 수 있겠나.”

“대체 무슨 소리예요?”

“답답하군. 잘 봐라.”

천마는 다시 액셀을 밟았다.

차량 속력이 시속 80킬로미터에 다다르자 갑자기 1차선에서 2차선으로, 다시 2차선에서 1차선으로 차선을 급히 변경했다.

끼익. 끼익.

그때마다 비틀거리던 차량은 다시 안정적으로 차선 라인을 유지했다.

“봐라. 본좌의 뜻과 달리 차량이 멋대로 움직이지 않나.”

강찬미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ESP(Electronic Stability Program)가 작동한 거잖아요.”

“그게 뭐냐.”

“차체 자세 제어장치요. 운전자가 차를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인식하면 자동으로 개입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장치예요.”

“본좌의 의도를 벗어나, 차량이 스스로 개입한단 말인가.”

천마의 운전 수준은 이미 수준급에다, TV를 통해 여러 가지 운전법을 마스터한 상태였다.

물론 그것이 일반 도로에서 할 수 없는 곡예 주행이라든가 스턴트라는 걸 알지 못했지만.

“개입이라기보다는 운전자의 안전을 위한 장치죠.”

강찬미는 천마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대체 이런 운전은 어디서 배우셨어요?”

“배우다니. 이런 건 기본이 아닌가.”

다시 액셀을 밟은 천마는 리버스 턴, 2바퀴로 달리기, 관성 드리프트 등 고난이도의 스턴트 운전을 선보였다.

“천마 씨… 드라이버예요? 아니면 전문 스턴트맨?”

천마의 운전 실력에 넋이 나간 강찬미가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 실력이라면 운전면허 시험을 볼 필요조차 없을 정도다. 아니, 자신이 손댈 수 없는 영역에 도달한 느낌이다.

“아니면 면허 취소되었다가 재취득하시는 거예요?”

강찬미의 물음에 천마는 엉뚱한 소리를 했다.

“어쨌든 이 차는 탈락이다. 본좌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차량을 다시 배정해라.”

“학원에 있는 연습용 차량은 모두 이 서번트예요. 다른 차종은 없어요.”

“곤란하군.”

천마는 혀를 차며 차량을 다시 학원으로 돌렸다.

“이 차량으론 시험을 볼 수 없다.”

“네?”

“본좌의 손길을 멋대로 거부하는 물건을 어찌 탈 수 있겠나.”

“그럼 면허 취득은 포기하시겠다고요?”

“포기는 없다. 본좌에 맞는 차량을 다시 찾겠다.”

연습용 서번트를 다시 차고지에 주차한 천마는 혀를 차며 시동을 껐다.

그러다 문득 운전학원 구석 차고에 세워져 있는 작은 차량을 발견했다.

“저 차는 뭐냐.”

“라마스요? 예전에 부품 조달용으로 쓰던 배달용 차량인데… 곧 폐차할 거예요.”

“폐차라니. 멀쩡한 차를 왜 폐기한단 말인가.”

“오래된 모델이잖아요. 차도 많이 낡았고.”

“흠.”

두 눈을 가늘게 뜬 천마는 낡은 차량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일반 승합차처럼 생긴 모양이지만 크기와 폭을 절반 정도로 줄인 형태다.

하얀색으로 도색된 차량 곳곳엔 녹슨 부분이 보였으며, 라이트 부분도 허옇게 변색이 되어 있었다.

“라마스라.”

손을 뻗어 차량을 매만지자 매우 익숙하면서도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검의 고수가 대장간 창고에 처박힌 상고보검(上古寶劍)의 유래를 한눈에 파악하는 것과 같았다.

“좋군.”

“네?”

“매우 좋은 차다.”

강찬미는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굉장히 오래된 차예요.”

“본좌는 가끔 이쪽 세계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가 없다. 어째서 낡았다고, 철이 지났다고 쉽게 물건을 버리는 건가.”

라마스 차량을 가리킨 천마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인간의 손을 타는 모든 건 술과 마찬가지로 오래될수록 가치가 있다. 오랫동안 쓰였다는 건, 그 가치를 오랜 세월 동안 증명했다는 거니까.”

“네에…….”

강찬미는 이후로도 뜬금없이 설교를 들어야만 했다. 자신의 차도 아닌, 학원 소유의 구닥다리 차량을 폐차한다는 이유로.

“흠.”

차량을 매만지던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외관만 낡았을 뿐이다. 굴러가는 데 아무 지장이 없군. 본좌는 이 차로 교육을 받겠다.”

“이 배달용 라마스로… 주행 교육을 받겠다고요? 이건 수동에다가 전자 제어 장치라곤 하나도 없는 차량인데요?”

“소유자의 조작을 무시하는 장치 따윈 없을수록 좋다.”

차량을 매만지던 천마는 운전석으로 손을 뻗었다.

“천마 씨. 라마스 차량의 키는 창고에 있…….”

강찬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철컥 하며 운전석의 문이 열렸다.

운전석에 올라타는 천마를 보며 강찬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분명 문 잠가두었는데……?”

천마가 운전석에 올라타자, 라마스의 앞 유리창엔 험악한 그의 얼굴만이 비쳤다.

차량 앞 유리를 가득 채운 천마의 안면을 본 강찬미는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저, 천마 씨. 이 차량은 연습용 차량이 아닌데요.”

“본좌는 이 차가 마음에 든다.”

“불가능해요.”

“그럼 본좌는 이곳에 다닐 수 없다.”

천마의 진지한 눈빛을 바라보던 강찬미는 입술을 깨물었다.

끝까지 안 된다고 하면 이 천마라는 괴상한 수강생은 분명 학원을 관둘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커리어에도 흠집이 간다.

그동안 어떤 자부심으로 일해왔던가. 수강생 수료율 100%의 기록을 자랑하는 그녀였다.

“좋, 좋아요. 차량 정도는 제 재량으로 바꿔줄 수 있어요.”

심호흡을 한 강찬미가 단호하게 말했다.

“대신 아까와 같은 곡예 운전은 안 돼요. 만약 이 차로 또 그런 난폭 운전을 하면… 그땐 제가 강제로 학원에서 퇴출시키겠어요.”

강찬미는 라마스의 조수석에 탔다.

평범한 사람보다 두 배는 넓은 듯한 천마의 어깨 때문에 강찬미는 조수석 문짝에 몸이 딱 붙을 지경이었다.

“이 차엔 컴퓨터가 없으니, 제가 수기로 채점을 해야 해요.”

헛기침을 한 강찬미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절대 제 말에 따라주셔야 해요. 아셨죠?”

“그러지.”

“좋아요.”

천마에게 키를 넘긴 강찬미가 운전대 아래의 기어봉을 바라보았다.

특수 차량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수동기어를 천마는 능수능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좋군.”

후진기어를 넣자 띠리리링 하는 음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시 기어를 1단에 넣자 차가 부르르 떨리더니 낡은 엔진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군. 모처럼이었나.”

엔진 소리를 들은 천마는 기어를 다시 중립에 넣었다.

“왜 출발 안 하세요?”

“이 녀석이 준비 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하는군.”

“아, 예열이요?”

강찬미는 부드러운 눈으로 차를 내려보는 천마를 새삼스럽게 쳐다보았다.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한 각성자 같더니, 예상외로 차량을 다루는 데는 매우 익숙한 것 같았다.

“아까 운전할 때도 그렇고… 차에 대해 꽤 전문가신 것 같은데요?”

강찬미의 칭찬에 천마는 엉뚱한 대답을 했다.

“물론이다. 본좌는 천하에 산재한 모든 병기에 능숙하지.”

“네? 그게 무슨…….”

“차량도 병기나 다를 바가 없다. 섬세하고 정확히 다뤄야만이 본좌의 뜻대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으니.”

“…죄송합니다.”

강찬미가 괜한 말을 꺼냈다고 후회할 무렵.

부르릉.

갑자기 거칠었던 엔진 소리가 부드러워졌다. 예열이 완료된 것이다.

“그럼 출발하지.”

천마가 부드럽게 클러치를 조작하니 차량이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방 30미터 앞에서 우회전하세요.”

“알겠다.”

천마의 운전은 전과 달리 매우 부드러웠다. 가끔 삐그덕 소리가 나긴 했지만 작은 몸체의 라마스는 한적한 도로를 시원하게 달리고 있었다.

“만, 만점이에요.”

라마스가 다시 학원으로 돌아와 멈추자, 강찬미가 놀랍다는 표정으로 외쳤다.

“이 정도면 더 이상 연습하실 필요도 없겠네요. 지금 바로 도로 주행 시험 신청을 해도 되겠어요.”

“그런가? 다행이군.”

입꼬리를 살짝 올리자 냉혹하고 무시무시해 보였던 모습이 조금 부드러워 보였다.

천마를 바라보던 강찬미의 입에서도 미소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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