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64화 (64/285)

제64화. 잠 못 드는 각성자 (2)

달빛이 어두운 세상을 비춰주는 야심한 시각.

천마와 장채원은 장발 남성이 살고 있는 집 앞에 우뚝 서 있었다. 아직도 잠이 들지 못했는지 문틈으로 TV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점주는 따라올 필요 없다.”

반짝이는 스텐 양동이를 내려놓은 천마가 장채원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 일은 단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나중에 결과나 지켜봐라.”

‘널 어떻게 믿어? 말은 그렇게 해놓고 두들겨 패거나 독을 살포할 수도 있잖아?’라는 말을 삼킨 장채원이 억지 미소를 지었다.

“내, 내 일이기도 하잖아.”

“흐음.”

입맛을 다신 천마는 손을 뻗어 차임벨을 눌렀다.

띵동 소리가 울려 퍼지자 안쪽에서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밤에 누구야?”

안쪽에서 쿵쿵하는 발걸음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철커덕 열렸다.

“뭐야? 당신은 또 왜…….”

식지와 중지를 양 관자놀이에 갖다 댄 천마의 눈에서 요사스런 자색광이 떠올랐다.

“영마현기대법(永魔玄氣大法)!”

영마현기대법. 마도의 섭심술(攝心術:환각을 일으키거나 타인의 마음을 흔드는 술법) 중 하나다.

쿠웅.

영마현기대법에 의해 심령을 제압당한 장발 남성은, 허물어지듯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뭐야? 이렇게 쉽게 해결되는 거였어?”

놀란 장채원이 눈을 깜빡이자 천마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나. 치료를 위해 잠시 의식을 빼앗은 거다.”

한 손으로 남성을 들쳐 멘 천마는 자연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갔다.

“미쳤어? 어딜 들어가? 이거 범죄잖아?”

장채원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자 천마가 손을 내저었다.

“무너진 심령을 치료하기 위한 행위다. 사람을 구하는 일이니 관부에서도 죄를 묻지 않지. 이건 드라마에도 나오는 상식이다.”

“그거랑은 좀 다르지. 지금 넌 남의 집에 불법으로 침입한 거라고.”

천마는 불타는 사명감을 가진 의사처럼 엄숙하게 말했다.

“가만히 놔두면 이자는 결국 폐인이 되거나 망상에 빠져 범죄에 손을 댈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이자를 이대로 놔두면 본점에서 맡아야 할 신뢰가 취소되겠지.”

“진짜 목적은 뒤에 있구만.”

장채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눈앞에서 사람들이 다치거나 쓰러져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천마다.

결국 치료는 핑계일 뿐, 오직 신뢰를 위해서 하는 행동이었다.

“걱정 마라. 칼잡이의 칼과 행림(杏林:의사)의 칼은 다르니까.”

맥락에도 없는 헛소리를 지껄인 천마가 남성을 소파에 눕혀두었다.

그리고 들고 있던 구멍 난 스텐 양동이를 머리에 썼다. 듀라한의 투구를 따라 하기 위한 모양새였다.

“이걸로 되겠어?”

“어차피 섭심대법 같은 건 시선만 마주치면 된다. 복장까지 맞출 필요는 없지.”

“대체 어떻게 치료를 한다는 거야.”

“말했잖나. 섭심술, 그러니까 일종의 최면이다.”

“으음.”

장채원은 곤란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아무리 공사, 아니 치료를 위해서라지만 남의 집에 몰래 들어와 각성자에게 최면을 걸다니. 일이 잘못되면 영지 탈락은 물론이고, 감방에 갈 수도 있는 일이다.

‘그, 그래. 불쌍한 사람을 치료한다고 생각하자.’

장채원이 마음을 다잡을 무렵.

“그럼 시작하겠다.”

핑.

천마는 손가락을 튕겨 지풍을 날렸다. 그러자 누워 있던 각성자가 슬그머니 눈을 떴다.

양손을 또다시 관자놀이에 올린 천마의 눈에선 또다시 자색광이 흘러나왔다.

-본좌를 봐라.

초점 없는 표정으로 천마의 눈을 바라보던 장발 남성이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켰다.

“너, 너는!”

남성의 눈에는 천마가 아닌, 활활 타오르는 눈동자를 투구에 감춘 해골 기사의 모습이 보였다.

“듀라한!”

-그렇다. 본좌는 듀라한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채원이 고개를 저었다.

‘듀라한은 본좌란 말은 안 써.’

“듀라한!”

장발 남성은 두려움에 떨며 뒷걸음질 쳤다.

-흐흐흐. 이 호로쌍놈의 겁쟁이 녀석. 고작 도망 온 곳이 여기더냐.

“네, 네가 어떻게 여길…….”

-매일 밤 궁둥이를 이불속에 처박고 세 살 먹은 어린애처럼 벌벌 떠는 쥐새끼를 찾는 건 식은 죽 먹기지.

‘듀라한은 그런 욕 안 해.’

장채원이 이마에 땀을 닦을 무렵, 천마가 음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또 도망갈 테냐. 쥐새끼처럼 울며불며.

“뭐?”

-이번에 또 도망간다면 이곳에 있는 인간들을 모조리 없애주지.

“뭐, 뭐라고…….”

-아니, 이 마을의 인간들을 모두 없애버리겠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장발 남성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흐으으.”

-어서 도망가라. 또 해가 뜰 때를 기다리며. 쥐새끼처럼 도망가란 말이다.

“웃기지 마!”

우드드득.

남성의 몸이 점차 헐크처럼 변했다.

어차피 도망갈 곳도 없는 데다, 협박과 조롱을 듣다 못한 남성이 스킬을 사용한 것이다

‘아하. 저렇게 듀라한으로 변장한 다음 일부러 져서 자신감을 불러일으켜 주려는 거구나.’

장채원이 흐뭇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일 무렵.

“죽어!”

천마 못지않은 근육질로 변한 남성이 주먹을 내뻗었다.

어찌나 그 동작이 빠른지 멀리 서 있던 장채원의 머리칼이 휘날릴 정도였다.

퍼억.

하지만 남성은 주먹을 다 뻗기도 전에 천마에게 배를 얻어맞아 다시 소파로 쓰러졌다.

“꾸엑.”

어찌나 세게 맞았는지 남성의 입가엔 핏물이 비치는가 싶더니, 배를 움켜쥔 채 몸을 파르르 떨었다.

‘어?’

그 모습을 본 장채원은 입을 벌렸다.

‘뭐야, 자존감 되살려 주는 거 아니었어?’

적당히 얻어맞고 용기를 줄 줄 알았건만. 천마는 쓰러진 남성을 발로 팍팍 밟으며 더욱 조롱하기 시작했다.

-이 겁쟁이 녀석. 고작 한방에 나가떨어지는 게냐.

“끄으으으.”

-이번에 새로 배운 초식으로 네놈을 괴롭혀 주지.

천마는 쓰러진 남성을 거꾸로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몸통을 잡고 내리찍었다.

금지된 레슬링 기술인 스크류 드라이버였다.

‘듀라한은 그런 기술 안 쓴다고!’

장채원의 눈이 흔들리든 말든 양동이를 뒤집어쓴 천마는 연달아 기술을 시전했다.

-죽어라!

이후로도 천마는 새우꺾기, 저먼 수플렉스, 코브라 트위스트 등, 온갖 악독한 레슬링 기술들로 남성을 괴롭혔다.

“끄으으.”

이것은 한바탕의 모진 고문과도 같았다.

만약 장발 남성이 근력 각성자가 아니었다면 한목숨 부지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TV에서 본 온갖 레슬링 기술을 써먹은 천마는 쓰러진 남성을 내려다보며 비웃음을 머금었다.

-후후후. 다시 돌아오겠다.

악마와도 같은 듀라한, 아니 천마를 바라보던 남성은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이게 무슨 치료야? 더 정신을 망가뜨리는 거잖아?”

장채원이 쓰러진 남성을 보며 소리치자, 천마가 고개를 저었다.

“천만에. 완벽한 치료다.”

“뭐?”

“몸은 상처를 입었지만, 정신은 더욱 단단해졌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인족을 이렇게 두들겨 패는 게 알려진다면 우리 매장은 끝장이라고!”

“걱정할 필요 없다.”

혼란에 빠진 장채원을 바라보며 천마가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만약 이 방법으로 치료가 되지 않는다면 본좌가 스스로 매장을 떠나겠다.”

장발 남성을 처참하게 두들겨 팬 천마의 모습은 요마의 화신과도 같았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숙연하게 느껴질 만큼 위엄이 가득했다.

‘네가 떠나면, 나한테 무슨 이득이 있는데?’라고 대꾸하려던 장채원은 말을 꾹 삼켰다.

‘그래. 직원을 믿어야겠지.’

이미 활시위는 떠났다. 생각을 차분히 정리한 장채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잘못되면 천마, 너뿐만 아니라 우리 매장 문도 닫게 될 거야.”

“걱정 마라. 그럴 일 없으니까.”

“알겠어. 믿을게. 대신…….”

장채원은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장발 남성을 보며 말했다.

“나도 어떻게 치료하는지 끝까지 지켜보겠어.”

다음날.

송삼 아파트 인테리어 현장 내부.

어젯밤의 일 때문인지 장발 남성은 더 이상 항의하러 오지 않았다.

아니, 내려올 수조차 없을 것이다. 천마에게 밤새 얻어터졌으니까.

“으음.”

공사 진행 상황을 지켜보던 장채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은 다행인 것 같지만, 앞으로의 일이 산 넘어 산이었다.

어젯밤 천마가 한 말 때문이었다.

“치료는 대략 나흘 정도 걸릴 것이다.”

다시 말해 어젯밤과 같은 만행을 네 번이나 더 저질러야 한다는 뜻이다.

생각에 빠져 있던 장채원은 어깨를 늘어뜨렸다. 시간이 흘러 또다시 밤이 찾아오는 게 살짝 두려웠다.

그날 저녁.

최면에 걸린 상태였기 때문에 남성은 전날 밤에 있었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천마가 초인종을 누르니, 또다시 짜증스런 목소리와 함께 득달같이 밖으로 나왔다.

“이 밤에 누구야?”

안쪽에서 쿵쿵 하는 발걸음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철커덕 열렸다.

“뭐야? 당신은 또 왜…….”

또다시 남성의 집을 방문한 천마는 깡통을 뒤집어쓰고 다시 치료를 시작했다.

퍼억.

그런데 어제와 달리 천마는 주먹을 사용했다.

세게 때리는 것은 아니었으나, 천마의 주먹이 파고들 때마다 남성의 몸은 멍투성이가 되었다.

“으으으.”

한 대 맞을 때마다 천국의 계단이 보인다.

부들부들 떨며 악으로 버티고 있던 장발 남성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쿠웅.

바닥에 개구리처럼 쓰러진 남성의 두 눈은 하얗게 뒤집혀 있었다.

-피라미 같은 녀석. 내일은 더 괴롭혀 주겠다.

“천, 천마야.”

기절한 남성을 바라보던 장채원은 곤란한 표정으로 이마의 땀을 쓸어내었다.

“근데, 저 사람. 어제보다 더 말라 보이는 것 같은데.”

안 그래도 마른 체구였던 남성은 이제 뼈다귀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극도의 스트레스와 분노 때문에 몸이 더 상해 버린 것 같다.

“걱정 마라. 나흘까지도 필요 없을 테니.”

“뭐?”

“오늘 상태를 보니 내일이면 치료가 다 될 것 같다.”

“대체 어떻게?”

“이자의 면상을 봐라. 좀 달라지지 않았나.”

장채원은 쓰러진 장발 남성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시체처럼 창백한 남성의 낯빛은 이미 천국에서 전셋집 계약을 마친 듯한 모습이다.

“더 악화된 거 같은데.”

“아니다. 치료가 잘 되어가는 과정이다.”

양동이를 벗어 내린 천마가 손을 탁탁 털었다.

“이자는 정말 운이 좋군.”

“뭐가?”

“감히 본좌에게 이렇게 직접 치료를 받고 있다니. 전생에 무슨 공덕을 쌓았는지 모르겠다.”

순간 장채원의 눈동자는 안개비를 맞은 듯 촉촉해졌다.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너를 만났을까, 생각을 하면서.

다음 날 저녁.

뚜쉬뚜쉬! 빠가각.

어김없이 남성의 집에 침입한 천마는 최면을 건 채 주먹질을 하고 있었다.

가볍게 때리던 어제와 달리 천마의 주먹질은 꽤나 힘이 들어가 있었다.

휘익. 퍽.

예리한 파공음과 함께 천마의 주먹이 남성의 복부에 깊숙이 꽂혔다.

“크으으으.”

하지만 남성은 쓰러지지 않은 채 부들부들 버티고 있었다.

-호, 본좌의 주먹을 버틴다라.

“흐흐흐.”

이를 꽉 깨문 남성의 입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라?’

그것을 지켜보던 장채원의 눈에 묘한 빛이 떠올랐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남성의 상태가 이상했다. 입가엔 침이 흘렀고, 기절하지도 않았는데 두 눈이 반쯤 뒤집혀 있었다.

“더 때려.”

고개를 든 남성은 잔혹한 미소를 떠올렸다.

“더 때려보라고.”

퍼억.

천마는 사양하지 않고 남성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그런데 남성은 쓰려져도 금세 벌떡벌떡 일어났고, 눈에선 하얀 살기가 맴돌았다.

‘어떻게 돼가는 거지.’

장채원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을 무렵.

“죽여.”

‘응?’

“날 죽이라고!”

순간 남성의 눈동자에선 붉은빛이 쏟아졌다.

동시에 온몸에서 근육이 크게 자라나더니 갑자기 붉은 안개가 사방에서 흘러나왔다.

‘저, 저건 뭐야?’

장채원이 눈을 비볐다. 분명 저 남성은 근력증강 각성자였는데, 왜 몸에서 안개가 나오지?

-후후후. 피라미 주제에 발버둥을 치려는가.

“피라미?”

장발 남성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안개는 점차 번들거리는 갑옷이 되어 몸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스윽. 철컥.

연달아 갑옷을 장착하던 남성의 몸은 어느새 번들거리는 붉은 갑옷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저건… A급 다중 스킬, ‘광전사의 갑옷’이잖아?’

장채원은 입을 벌렸다. 죽도록 얻어맞던 장발 남성이 돌연 스킬을 발현시킨 것이다.

“죽어!”

천마에게 돌진한 남성은 붉은 갑옷으로 둘러싸인 주먹을 뻗었다.

하지만 천마는 제자리에 선 채 잔상만을 남기며 가볍게 주먹을 피했다.

“죽여 버리겠어!”

천마가 피할 때마다 남성의 주먹도 흐릿해지더니 점차 고속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휘이이이익.

공기가 응축되는 소리와 함께 쏟아지는 주먹을 제자리에서 바라보던 천마는 입꼬리를 올렸다.

퍼억.

가슴팍에 일권(一拳)을 맞은 천마.

하지만 이미 천마대능력을 끌어올린 탓에 파리가 몸에 앉은 것처럼 간지러울 뿐이었다.

“으헉!”

자신의 몸에 꽂힌 주먹을 보던 천마는 매우 과장된 표정으로 외쳤다.

-감히 본좌를 물리치다니!

천마가 원통한 표정을 짓자 남성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겼어.”

떨리는 목소리를 내던 남성은 환호성을 질렀다.

“내가 이겼다고!”

-하지만 두고 봐라. 본좌는 영원불멸의 몸을 가지고 있으니까!

스스스스.

야월극속을 펼친 천마는 스르르 남성의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지풍을 쏘아내어 남성의 앞가슴 혈도를 짚었다.

“내가 이겼다고!”

피잉.

환호성을 치던 남성은 지풍을 맞자 몸이 부드러워지더니 그대로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늘 괴로운 표정으로 쓰러져 있던 남성은 전과 달리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앞으로는 푹 잘 수 있겠지.”

남성을 내려다보던 천마가 덤덤히 말했다.

“그 치욕스러운 기억을 잊을 수 있을 테니.”

“어떻게 된 거야?”

장채원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늘 흉하게 일그러져 있던 남성의 모습이 아기처럼 부드러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았나. 이자가 괴로웠던 건 마물에 대한 공포뿐만이 아니었다.”

“그럼?”

“적 앞에서 공포를 느꼈던, 그 치욕스러움도 잊지 못한 거지.”

“치욕?”

“그렇다. 칼을 이고 사는 무인들은 대체로 그 치욕스러운 기억을 떨쳐내지 못하지.”

동서고금, 시대를 막론하고, 무인은 늘 존재하는 법.

천마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이 각성자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무인들이라는 것을.

그리고 무인들은 죽임을 당하는 것보다, 공포에 떨었던 자신을 모습을 떠올리며 분노하고 괴로워한다는 것을.

“이젠 승리를 기억에 심어놨으니,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을 거다.”

“하지만 괜찮을까? 진짜 기억은 아니잖아.”

“천만에. 영마현기대법으로 심령 깊숙한 곳에 감정의 씨앗을 퍼트려 놓았다. 설령 실제로 그 마물을 만나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 싸울 수 있을 거다.”

실제로 이 남성은, 천마 말대로 그대로 놔뒀다간 큰일이 벌어졌을 수도 있는 피폐한 상태였다.

결과적으로 천마는 장발 남성의 트라우마를 완전히 극복하게 해주었고, 한 사람을 구원해 준 셈이다.

“그, 그래.”

장채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틀 밤 동안 장발 남성은 천마의 최면에 걸려 지옥 같은 매질을 당했다. 그것은 실제 듀라한이 나타난 것보다 더 공포스러운 고문이었다.

“이제 모두 해결되었으니, 앞으로의 신뢰, 아니 공사엔 지장이 없을 거다.”

“음…….”

장채원은 목구멍이 꽉 틀어막힌 것처럼 목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았다. 뭔가 좋은 일을 한 것 같은데, 엄청난 죄를 진 듯하다.

“그래.”

간신히 입을 연 장채원이 억지 미소를 지었다.

“수고했어.”

다음에는 결코 이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면서.

몇 달 후.

천마와 장채원은 매장 근처의 중국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볶음밥을 입에 넣고 한참 우물거리던 장채원은 문득 켜져 있는 TV에 시선이 갔다.

-1년 전, B급 던전인 ‘마탑’에서 구조되었던 4급 각성자 정시우 씨를 아십니까? 그런데 이번에 그 정시우 씨가 마탑의 히든몬스터 듀라한을 정복하고, 갇혀 있던 각성자들을 구했다는 소식인데요. 최현태 기자,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TV를 바라보던 장채원은 눈을 깜빡였다.

정시우라는 남성. 분명 천마가 치료해 준 각성자라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잘된 건가.”

천마의 방식은 언제나 과격하고 파격적이며, 그다지 옳지 못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막상 결과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뭐가 말인가.”

입에 짜장면을 가득 넣고 있던 천마가 묻자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아냐. 많이 먹어.”

문득 기분이 좋아진 장채원이 웃으며 말했다.

“탕수육 시켜줄까? 먹을래?”

잠시 젓가락을 멈춘 천마가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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