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화. 천마와 운전면허 (1)
어느 다가구 주택의 주차장.
시동을 끈 장채원이 트렁크 오픈 버튼을 눌렀다.
달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차량 뒤에 서 있던 천마가 짊어지고 있는 장판을 실었다.
쿠웅.
100킬로그램이 넘는 장판을 가볍게 내려놓은 천마는 트렁크 문을 닫고 자연스럽게 조수석에 앉았다.
“다 실었다.”
“응.”
운전석에 앉아 노트에 무언가를 쓰고 있던 장채원이 다시 시동 버튼을 눌렀다.
시원한 배기음이 울려 퍼졌음에도 차량은 그대로 멈춰 있었다.
“출발 안 하나.”
“어? 응.”
노트에 무언가를 정신없이 쓰고 있던 장채원이 그제야 액셀에 발을 갖다 대었다.
부웅 하는 소리와 함께 차는 미끄러지듯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창밖을 바라보던 천마는 문득 장채원의 눈가에 시꺼먼 그림자가 늘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점주.”
“왜?”
“체력 관리에 조금 신경을 쓰는 게 어떤가.”
그 말에 운전대를 잡고 있던 장채원이 천마를 찌릿 노려보았다.
“누구 때문에 피곤한 건데?”
“본좌 탓이라는 말인가.”
“네가 운전을 못 하니까, 내가 매번 현장에 태워줘야 하잖아. 운전이라는 게 얼마나 피로한 줄 알아?”
“운전? 이 자동차라는 것 말인가.”
“그래. 거기다 매장에서 견적서 뽑으랴, 견적 빼러 출장 나가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를 지경이라고.”
묵묵히 듣고 있던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담부턴 경공을 펼치겠다.”
“안 돼. 말했잖아. 도심에선 평범하게 다녀야 한다고.”
각성자라 해도 던전이 아닌 곳에서 스킬이나 육체 능력을 발휘하면 처벌받는다.
게다가 미등록 각성자인 천마가 도심에서 훨훨 날아다니다 걸리면, 꽤나 성가신 일이 발생할 것이 빤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
“뭐가?”
“이 세계의 방침 말이다.”
창밖을 바라보던 천마는 텅 빈 시선으로 말했다.
“어째서 이 세계는 평범한 자들이, 힘을 가진 자들의 능력을 제한하는 건가.”
“각성자보다 평범한 사람이 더 많잖아. 남들과 다른 힘을 가졌으니 그만큼의 책임도 뒤따르는 거지.”
“비유가 틀렸다.”
천마는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약자는 강자들에게 포식당한다. 이것은 자연의 이치다.”
“여기가 밀림이냐?”
“다를 건 또 뭔가.”
천마의 눈동자에 경멸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어차피 세상은 뛰어난 자가 지배하고,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하지만 이 세계에선 약자를 우대하고 보살피는, 불합리하고 어리석은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셈이지.”
장채원의 눈에선 경악이 떠올랐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흥. 힘없는 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등의, 정에 호소하는 말이라면 관둬라. 본좌는 그런 것 따윈 신경 쓰지 않으니까.”
“그런 뜻이 아니야. 너는 이 ‘사회’라는 것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어.”
“본좌도 이제 이 세계에 대해선 알 만큼 다 안다.”
“아니야. 틀려. 천마, 네가 하는 말은 원시시대에서나 통용되는 말이라고.”
장채원은 전에 없던 매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인간이 갑자기 야생에 버려지면, 그때는 강하고 힘센 자들만이 살아남았겠지. 약자를 보호하다간 다 죽을 수도 있으니까.”
천마의 옆 모습을 슬쩍 바라본 장채원이 힘있게 말했다.
“하지만 여긴 문명사회야.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돕고 살아가야 살아남을 수 있어.”
“왜 서로를 돕나.”
“약자든 강자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아야 이 사회가 유지가 되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어?”
“최대한 많은 자들이 살아남아야 한다… 라.”
잠시 말을 곱씹던 천마는 침음을 내었다.
장채원의 말에도 상당 부분 일리가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하긴 무림과 달리 이곳은 평화로우니…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겠군.”
천마가 고개를 끄덕이자 장채원이 다시 말했다.
“게다가 각성자들에 대한 제재는 약육강식과는 조금 다른 문제야.”
“무슨 말인가.”
“엄밀히 따지면, 각성자들은 갑작스럽게 돈벼락을 맞은 졸부나 마찬가지야. 그런 사람들이 돈 좀 있다고 펑펑 써버리면 나라 꼴이 뭐가 되겠어.”
“그런가.”
그 부분 역시 조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무림인들은 뼈를 깎는 고련을 통해 무공을 갈고닦으며 내공을 쌓는다.
하지만 이곳의 각성자들은 아무런 노력 없이 강력한 육체와 스킬이라는 마법 같은 능력까지 얻었다.
“쉽게 들어온 건 쉽게 나간다는 건가. 하긴 거저 얻은 것이 금전이든 능력이든,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건 비슷하겠군.”
순순히 인정하는 말이 돌아오자 쭉 굳어 있던 장채원의 입가에 실낱같은 미소가 머금었다.
천마는 늘 책을 손에 떼지 않으며 배우고 익히고, 이해하고 헤아리는 걸 좋아한다.
정말이지 생긴 건 몬스터 뺨치게 험악한데, 머릿속 알맹이는 학자에 더 가까웠다.
“정말 넌 외모와 알맹이의 괴리가 크구나. 한편으론 슬프네.”
“그건 또 무슨 말이냐.”
“그런 게 있어.”
어느새 승합차는 매장 앞에 도착했다.
“어쨌든 안 되겠어.
손을 뻗어 트렁크 버튼을 누른 장채원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앞으로 더 바빠질 텐데, 이렇게 널 태우고 다니면 매장 운영은 꿈도 못 꾸겠어. 난 견적도 내러 다녀야 하는데.”
“그럼 당분간 본좌가 시공을 멈추고 매장을 보겠다.”
“고마운 말인데, 존댓말을 할 게 아니라면 매장에서 응대는 안 돼.”
“그럼 본좌가 도울 일은 없겠군.”
“아니, 있어.”
무언가 결심한 듯 눈을 반짝 빛난 장채원이 콧김을 내뿜었다.
“천마, 네가 운전을 배우면 되잖아.”
복복 인테리어 내부.
장채원은 매장으로 들어오자마자 노트북으로 열심히 무언가를 찾아보았다.
응접 테이블에 앉아 느긋하게 녹차 티백을 종이컵에 우리던 천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면허?”
“으응. 이제 면허도 딸 때가 됐지. 너 외국인 등록증도 발급받았잖아.”
방실방실 미소 지은 장채원이 말했다.
“찾아보니까, 외국인이라고 해서 면허 따는 게 어렵지 않네. 절차는 완전 똑같아.”
모니터를 응시하던 그녀는 천마의 붉은 눈동자를 보며 다시 어깨를 늘어뜨렸다.
“물론 진짜 외국인은 아니지만.”
“그러니까, 저 굴러다니는 쇳덩이를 본좌더러 타라는 건가.”
“응, 인테리어 일을 하려면 차는 필수지. 아직 3년이 되려면 한참 멀었고 말야.”
창밖 너머 도로를 달리는 차량들을 바라보던 천마는 콧방귀를 뀐다.
“관심 없다.”
“뭐? 왜에? 얼마나 편한데?”
“답답하다. 점주 옆에 앉아 있는 것도 답답한데 혼자 타고 다닐 생각을 하니 숨이 막히는군.”
하기야 그럴 만도 하다. 발 한 번만 구르면 쭉쭉 날아다닐 수 있는 녀석이니 차가 답답하겠지.
하지만 장채원은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익숙해지면 괜찮을 거야. 운전이란 것도 꽤 재밌고 말야.”
바깥에 세워둔 장채원의 하얀색 승합차를 바라보던 천마가 고개를 저었다.
“거절하겠다.”
“야, 잠깐만. 너 설마…….”
도롯가에 세워둔 승합차를 바라보는 천마의 불만스런 눈빛을 발견한 장채원이 눈을 크게 떴다.
“내 차를 타라는 말인 줄 알았어?”
“아닌 건가.”
“무슨 소리야. 당연히 천마, 네 차를 사주겠다는 거지.”
“본좌… 전용이란 말인가.”
천마의 눈빛이 달라지자 장채원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전용 차량.”
“으음.”
몸을 일으킨 천마가 도롯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게까지 말하니, 어쩔 수 없군.”
고개를 돌린 천마의 표정이 왠지 모르게 기뻐 보이는 건 장채원의 착각일까? 왠지 선물을 기다리는 어린아이 같은 느낌이 들었다.
“좋아. 그럼 결정.”
활짝 웃은 장채원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무며엉!”
[부르셨습니까.]
창고 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무명이 떼굴떼굴 굴러 나오자 장채원이 웃으며 말했다.
“오늘부터 천마가 면허증을 딸 수 있도록 도와줘.”
[면허라뇨?]
“운전 면허증 말야. 자동차.”
“운전 면허증?”
천마의 물음에 장채원이 아, 하는 소리를 내었다.
“자동차를 몰려면 면허증이 필요하거든. 일종의 자격증… 아니, 운전을 할 수 있다는 증명서 같은 거라고 해야 할까.”
“증명서라. 이해했다.”
[장채원 님. 차라리 천마 님을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시키는 것이…….]
앞으로 벌어질 불길한 기운을 감지한 무명이 앞으로 나섰지만, 장채원이 말을 끊었다.
“걱정 마. 주행 연습은 학원을 등록시키든 내가 가르치든 할 테니까. 천마는 운동 신경도 좋고 책도 금방 읽으니까, 네가 도와준다면 필기는 무리 없이 딸 거야.”
[죄송합니다, 장채원 님. 저의 주 임무는 던전 탐험 시 사용자의 안전과…….]
“그럼 주 사용자가 요청한 추가 임무로 입력해줘.”
미션 임파서블.
꽤 오래전 나왔던 첩보 스릴러 영화 제목을 떠올린 무명의 눈 센서는 더 없이 커져갔다.
* * *
그날 밤, 천마의 옥탑방 내부.
방 안에는 교자상이 펴져 있었고, 그 위엔 파란 바탕에 하얀 글씨로 ‘운전면허 합격 기출문제’라는 글자가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었다.
천마는 진지한 표정으로 명상하듯 앉아 있었고, 맞은편에는 연필을 들고 있는 무명이 서 있었다.
[천마 님, 그럼 다시 질문하겠습니다.]
“뭐든 하라.”
[천마 님께서 도로를 달리던 중, 횡단보도가 없는 곳에서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본좌가 알게 뭐냐.”
잠시 말문이 막힌 무명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땡. 사람이 지나갈 때까지 멈춰서 기다려야 합니다.]
“이해할 수가 없군. 무단횡단을 하든 춤을 추면서 지나가든, 그게 본좌란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그러니까…….]
무명은 또다시 말을 잇지 못했다.
천마는 문제집을 몇 번 살펴본 것으로 기본적인 도로 교통법, 차량 관련 지식과 작동 원리 등을 단숨에 이해했다.
하지만 안전 운전 요령이나, 교통 약자를 배려하는 방법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천마의 질문을 슬쩍 넘긴 무명이 다시 말했다.
[그럼 천마 님께서 스쿨존에서 30킬로미터 미만으로 운전하던 중, 갑자기 골목에서 튀어나온 아이와 충돌했습니다. 누구의 잘못일까요?]
“당연히 뛰쳐나온 아이가 잘못이다.”
[땡.]
“잠깐. 알겠다.”
곰곰이 생각하던 천마가 붉은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아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부모의 죄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스쿨존에서는 아이들이 언제든 나타날 수 있기에, 좌우를 살피지 않은 천마 님 잘못입니다.]
“지금 본좌랑 장난하자는 거냐.”
팔짱을 낀 천마가 불만을 터뜨리자 무명이 달래듯 말했다.
[천마 님. 도로 교통법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가만히 멈춰 있는데, 아이가 들이받아도 본좌의 잘못이겠군.”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완전히 정차를 했지만 놀란 아이가 들이받았다면 천마 님께서 처리를 해줘야 할 확률이 높습니다.]
“어째서지?”
[음, 사람이 약자니까요.]
그 말에 천마가 황당한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 어처구니가 없군. 이 세계는 고작 쇳덩이 마차 따위를 모는 것에도 약자와 강자를 구분한단 말인가!”
[자동차와 사람이 부딪치면 당연히 사람이 다치지 않습니까? 도로 교통법은 꼭 강자와 약자를 구분한다기보다는…….]
“정말이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이 세계는 멍청한 자들만이 가득한 곳이냐?”
천마는 울분을 토하듯 말했다.
“강자이기 때문에 혜택을 얻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강자라는 이유로 자신이 갖고 있는 권리를 포기하는 건 들어보지 못했다!”
미션 임파서블.
또다시 고전 영화 제목을 떠올린 무명은 확신했다. 천마가 운전을 하게 된다면 폭주하는 기관차를 도로에 풀어놓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걸.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천마에게 도로 교통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운전할 생각을 버리게 해야 한다는 것을.
“관둬라. 본좌는 자동차라는 걸 타지 않겠다.”
[정말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반색하던 무명의 눈앞에 ‘임무 실패’라는 글자가 번뜩거렸다.
임무 실패.
지금까지 주어졌던 모든 임무를 백 퍼센트 완벽히 처리한 무명에게 있어선 치욕스러운 낙인과도 같은 글자였다.
[으으.]
무명은 결코 임무 실패라는 기록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위이이잉.
저 앞뒤가 꽉 막힌 사용자, 천마를 이해시킬 수 있는 단어를 찾기 위해 무명은 전심전력으로 두뇌를 가동시켰다.
[천마 님. 그럼,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물어보겠습니다.]
모든 계산을 마친 무명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물었다.
[천마 님이 자동차를 몰고 달리는 도중에, 어린 강아지가 튀어나왔습니다.]
“강아지?”
[그렇습니다. 본래는 하얀색이지만 땟국물 때문에 회색빛이 나는 강아지입니다. 크기는 작지만 눈빛은 늠름하고, 운전하는 천마 님을 보며 활짝 웃고 있군요.]
천마를 바라보는 무명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회심의 질문을 던졌다.
[자, 그럼 어쩌시겠습니까. 차량을 멈추시겠습니까, 아니면 그냥 밟고 지나가시겠습니까.]
무명은 ‘교통 약자’를 의미하는 질문의 대상에, 천마를 좋아했던 ‘어린 강아지’를 집어넣었다.
물론 사람과 강아지의 목숨을 비할 수는 없겠지만, 태생적으로 약자를 멸시하는 천마를 공감시키기 위한 꾀였다.
“으음.”
오랫동안 고뇌하던 천마는 무명의 시선을 슬쩍 피하며 중얼거렸다.
“성가시긴 하지만, 본좌의 마차에 피를 묻히게 할 순 없겠지.”
[그렇군요. 그럼 다음 질문입니다. 노란색 신호등에서…….]
그 후로도 비슷한 질문은 계속되었고, 무명은 똑같은 방식으로 천마를 이해시켜 나갔다.
[…완벽합니다. 천마 님.]
무명은 기쁨에 찬 탄성을 질렀다.
애당초 천마는 문제집에 있는 지식은 다 습득한 상태였다.
교통사고 처리 요령이라든가, 배려 운전, 안전 운전에 관한 건 습득했으니, 필기 합격은 이미 따 놓은 상태나 다름없었다.
[필기 합격은 통과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천마 님.]
하지만 이때 무명은 알지 못했다.
천마의 면허시험 도전기의 불똥이 엉뚱한 사람에게 튀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