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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수리하는 천마-60화 (60/285)

제60화. 천마와 신채영 (3)

바깥으로 활짝 열린 육중한 쇠문은 맨들맨들하여 안쪽에선 닫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야! 너, 문 좀 닫아줘.”

무리 중 보라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청년이 다시 신채영에게 소리쳤다.

“빨리 문 닫아! 랜드샤크가 쫓아온다고!”

쇠문을 살펴보던 신채영이 한숨을 쉬었다.

이제 보니 염동력 스킬을 가진 각성자가 없는 이상 바깥에서 누군가가 문을 닫아야 하는 구조였다.

“하아.”

한숨을 몰아쉰 신채영이 허공을 응시했다.

‘저 철없는 미등록 각성자를 위해 내가 희생해야 할까.’

차라리 어린아이였다면 좋으련만. 의도적으로 불법을 저지르고 뻔뻔하게 구조를 요청한 저들은, 아쉽게도 구할 가치도 이유도 전혀 없는 성인들이었다.

크르르릉!

그때 멀리서 랜드샤크가 쏟아내는 괴성이 들려왔다.

다급해진 청년은 다시 한번 신채영에게 외쳤다.

“너, 귀 먹었어? 얼른 닫으라고!”

“싫은데.”

“장난해? 너 협회의 각성자라며!”

차갑게 정지되어 있는 신채영의 눈을 노려보던 청년이 외쳤다.

“나중에 협회에 확 찌른다? 우리, 나노봇도 가져왔다고!”

청년은 무리 중 하나의 어깨에 매달려 있는 나노봇을 가리켰다.

“다 녹화된다고. 보여?”

휙.

어디선가 살랑, 하는 바람이 불어온다 싶더니, 한 남성의 어깨에 올려진 나노봇이 어느새 신채영의 손에 들려 있었다.

“이걸로 뭐?”

“야, 너…….”

콰직.

신채영이 주먹을 쥐자, 나노봇의 머리 부분이 완전히 으스러져 버렸다.

“뭐야, 불법으로 개조한 엉터리 나노봇이네. 외판도 평범한 스테인리스 금속이잖아.”

냉기가 뿜어져 나오는 신채영의 눈을 바라본 청년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너 미쳤어? 협회의 각성자는 시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거 몰라?”

“그래. 선량한 시민에 한해서.”

“뭐?”

“너희들은 단지 쾌락을 위해 불법으로 던전에 들어왔어. 그런 범법자를 왜 내가 지켜줘야 하지?”

“그게 무슨…….”

신채영은 흥미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희 같은 쓰레기들을 위해 희생할 가치를 못 느낀다고.”

그 말에 청년 뒤에 있던 일행들이 당황하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저게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어!”

“너, 우리 아빠가 누군 줄 알아? 협회에서 짤리고 싶어?”

욕지거리를 하며 소리치는 무리를 보며 신채영이 담담하게 말했다.

“퍽이나.”

그녀의 눈동자는 이미 죽어버린 시체들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이다.

순간 극한의 공포를 느낀 듯, 욕지거리를 하던 무리가 식은땀을 흘리며 애원했다.

“이, 이봐. 그러지 마. 문만 닫아주면 되잖아.”

“지금 같이 죽자는 거야?”

“야, 철현아. 네가 나가서 문 좀 닫아!”

우왕좌왕하며 소리치는 그들을 보자, 신채영은 허탈한 미소가 터져 나왔다.

죽음을 앞둔 인간들은 추악한 속내를 여지없이 드러낸다. 그녀는 던전에서 사람을 구조하며 이와 같은 장면을 수없이 보았다.

‘어떻게 할까.’

신채영은 전에 없던 고민이 생겼다.

각성자 특별법에 따르면, 각성자는 일반 시민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이 불법을 저지른 자이건, 돈 많은 졸부집 쓰레기 자제들이건.

그리고 신채영은 결벽에 가까운 원칙주의자였다. 감정을 앞세우지 않았고 오직 법대로, 메뉴얼대로, 지시대로, 정석대로 일을 처리했다.

하지만 지금은?

원칙대로 행동하려 하니,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부조리가 느껴졌다.

“본좌는 그저 본좌의 길을 걷는 것뿐이다.”

불현듯 그 뻔뻔한 각성자의 말이 떠오른다.

천마라고 했던가? 당시에는 괴상한 헛소리를 한 것 같았는데, 지나고 나니 그 뜻이 은근히 공감된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어느샌가 그 말에 혹해 있는 자신을 느낀 신채영이 고개를 도리질했다.

‘그런 궤변에 내가 혹했다고?’

“쟤, 뭐 하는 거냐.”

“야, 저 여자도 미친 거 아냐?”

두려움에 떨던 각성자들은 멀리서 도리질을 하는 신채영을 보며 입을 벌렸다.

고생이라곤 한 번도 해보지 않았으며, 평생을 자기 멋대로, 기분대로 살아온 듯한 얼굴.

그 얼굴을 보자 신채영은 냉정함을 잃을 것만 같다.

“너희들. 닥치고 가만히 있어.”

그들의 시선을 외면한 신채영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죽고 싶지 않으면, 구조대가 오기 전까진 입 다물어.”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열려 있는 쇠문을 힘껏 밀었다.

성인 몸통보다도 두꺼운 쇠문을 밀자 손에 묵직한 느낌이 전해져 온다. 이 정도면 8급 각성자 정도는 돼야 닫을 수 있을 만한 압력이었다.

쿠웅.

마침내 초콜릿색 덩어리와 같은 쇠문을 닫아버린 그녀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어차피 일이야, 이런 건.”

애당초 구조자가 각성자든 평범한 인간이든, 개망나니 범법자든 상관없었다. 특수대응팀은 과거와 달리 히든몬스터 처리와 더불어, 각성자들을 구조하는 추가적인 임무를 맡고 있다.

“버틸 수 있을까.”

랜드샤크의 위험도는 1만 언저리.

고작 3미터 정도 되는 인간형 몬스터임에도 20미터가 넘는 대형 몬스터 기간트 펩과 위험도가 동등하게 평가되고 있다.

무엇이든 으깨버리는 치악력, 단분자 커터 수십 개를 사용해야 뚫을 수 있는 단단한 피부. 한번 포착한 인간들은 끝까지 추격하는 광폭한 성격까지 갖췄기 때문이다.

“5분.”

손목에 매달린 스크린을 바라보던 신채영이 낮게 중얼거렸다.

유은호가 도착하는 예상 시간은 5분 정도.

직접 교신한 건 아니지만,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경험이 그렇게 말해주었다.

“긴 5분이 되겠어.”

쿵. 쿵.

그때 낮은 발걸음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분명 랜드샤크가 냄새를 맡고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 같았다.

힐링 팩터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린 신채영은 왼손으로 오른손의 손목을 꽉 쥐었다. 그러자 오른 손바닥에선 푸른빛이, 왼손에선 검은빛이 흘러나왔다.

“리버스 힐링 팩터…….”

신채영과 같은 힐러들의 최후의 공격 수단. 모든 걸 치료하는 힐링 팩터를 역으로 쏘아내면 세포를 사멸시키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천마 님. 이제 그만 좀 채취하십시오.]

반대편 벽에서 뭔가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기계음이지만 매우 또렷했고, 어딘가 모르게 귀에 익었다.

[그러다 또 씨가 마르겠습니다. 한 시간 전에도 천마 님 때문에 이 지하 던전이…….]

한참 쑥덕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던 신채영은 소리가 나는 우측 통로의 벽 한쪽을 손으로 매만졌다.

맨들맨들한 벽 사이로 뭔가 틈이 보인다. 고개를 갸웃거린 그녀가 손가락을 살짝 집어넣자.

철커덕. 끼익.

요란한 쇳소리와 함께 벽 안에 숨겨져 있던 문이 서서히 열렸다.

“비밀 문이 한 개가 아니었어.”

안쪽을 들여다보니 시뻘건 탈을 쓴 남성이 몸을 숙인 채 바닥에 떨어진 방방장석을 열심히 포대에 넣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으로 하얀색 나노봇이 양팔을 벌린 채 서 있다.

“당신은…….”

가면을 썼지만 붉은 눈동자에 저만한 근육질을 가진 사내는 오직 하나뿐이다.

바로 맞은편 옥탑방에 사는 미등록 각성자, 천마였다.

“흠.”

신채영과 시선이 마주친 천마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또다시 미등록 각성자니 뭐니 하면서 협박을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본좌는 인테리어 시공을 위해 슈퍼 방방장석을 캐러 왔다.”

[천마 님은 인테리어 시공을 위해 슈퍼 방방장석을 캐러 왔을 뿐입니다.]

놀랍게도 사람과 기계가 동시에 같은 변명을 내뱉었다.

신채영이 뭐라고 입을 열 찰나.

크르르르릉.

등 뒤로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거대한 랜드샤크가 충혈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건 뭐냐.”

천마의 말에 무명이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 이야기를 무시한 대가입니다.]

“헛소리 마라. 저건 그냥 생선 아니냐.”

[물론 천마 님껜 싱싱한 횟감으로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건 꽤나 골치 아픈 히든몬스터입니다.]

양팔을 동그란 머리에 올린 무명이 고개를 저었다.

[아아, 어쨌든 망했습니다. 저 상어 인간, 아니 랜드샤크가 여기까지 기어 온 걸 보니, 스타디움 던전도 곧 재구축에 들어갈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저들이 떠드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신채영은 머리가 이상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때 랜드샤크가 톱니 이빨을 쩍 벌리며 다가오자, 천마는 양손을 주물럭거렸다.

“귀찮으니 빨리 덤벼라, 생선.”

“도망가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신채영이 천마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무리 대단한 근력증강 스킬을 갖고 있어도, 랜드샤크는 결코 맨손으로 잡을 수 없어요. 히든몬스터라고요.”

“무슨 말이냐.”

“랜드샤크가 1만 급으로 취급받는 이유는, 파괴가 거의 불가능한 질긴 외피 때문이에요.”

한가로운 표정으로 손을 주물럭거리는 천마를 보며 신채영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단분자 커터와 같은 예리한 무기가 있든가, 염동력 같은 힘으로 내장 안쪽을 파괴해야 해요.”

“안쪽이라.”

[와, 제가 할 말을 우리 채영 씨가 다 해주셨네요. 헤헤.]

협회에 신고하는 것이 두려웠던 걸까. 아니면 아부를 떠는 것일까. 무명은 굳이 ‘우리’라는 말을 붙여가면서 신채영에게 친근감을 표시했다.

“어떻게 내 이름을…….”

신채영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입을 열 찰나.

“넌 거기 들어가 있거라.”

어느새 천마는 유령처럼 다가와 신채영을 비밀 통로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이곳은 좁아서 본좌의 권력(拳力)이 사방으로 퍼질 테니까.”

쿵.

신채영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쿵 소리와 함께 쇠문이 닫혔다.

동시에 콰르르릉 소리와 함께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뒤흔들렸다.

크우후후후!

하지만 랜드샤크의 포효 소리는 전과 다름이 없었다. 설마 공격이 실패한 것일까.

퍼엉! 퍼엉! 퍼엉!

갑자기 요란한 폭음이 연달아 들리기 시작했다.

터져 나오는 폭음은 마치 투명 화살처럼 두터운 쇠문을 뚫고 신채영의 가슴을 찌르는 듯했다.

“…….”

어느새 폭음은 들리지 않았고 사방이 고요해졌다.

이상함을 느낀 신채영이 쇠문을 힘껏 밀었다.

끼이이 소리와 함께 밖으로 나온 신채영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천마와 무명은 사라졌고, 바닥에는 평온하게 누워 있는 랜드샤크가 있었다.

“…죽었잖아.”

겉으로는 전혀 상처가 보이지 않았는데, 입 부근에는 가느다란 핏물이 흐르고 있었다.

게다가 어느새 막혀 있었던 벽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아마도 스타디움 던전 쪽으로 나간 게 아니라 이곳의 벽에 구멍을 뚫고 빠져나간 것 같았다.

“본좌는 본좌의 길을 걷는 것뿐이다.”

머릿속에 또다시 천마가 했던 말이 맴돌자, 신채영은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게 정말 길을 말하는 거였어.”

* * *

다음날.

“처리는 우선 보류하도록 하죠.”

실드경계지역, 특수대응팀의 빌라 5층 상황실.

초홍이 주었던 나노 칩을 테이블에 올려놓은 신채영은 팀원들을 바라보며 덤덤히 말했다.

“당분간만요. 당분간은 없는 사람으로 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제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요.”

팀원들은 그녀의 심정을 모두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침묵이 흐르자 헛기침을 한 한만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차라리 그게 나을 거야. 잘 생각했어.”

그러자 유은호가 초홍에게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팀장님. 그러지 말고 아예 우리 특수대응팀 팀원으로 섭외하는 건 어때요? 그럼 우리 팀 완전 무적.”

“장난해? 미등록 각성자를 무슨…. 국외로 추방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지.”

시끌시끌 떠드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신채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원래 특수대응팀의 분위기는 매우 비장하고 임무 처리에도 진지했다.

하지만 이런 도심 구석에 처박힌 것 때문일까, 아니면 저 천마라는 자 때문일까. 왠지 모르게 나사가 풀리고 긴장감도 느슨해진 느낌이다.

“저, 제 말은… 잠시 동안 보류라고요.”

하지만 신채영의 낮은 중얼거림은 팀원들의 귓가엔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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