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화. 천마와 신채영 (2)
부아아아앙.
요란한 배기음과 함께 은빛 트럭이 사방에 흙먼지를 일으키며 질주했다.
던전용 트럭인 구공삼은 일반 트럭보다 힘이 몇 배는 좋다. 거기다 도로 상황에 따라 형태가 바뀌는 타이어가 장착되어 있어, 어떤 험로든지 수월히 넘나들었다.
신나게 액셀을 밟으며 던전 지역을 달리던 신채영은 모처럼 만에 해방감을 느꼈다.
“좋다.”
대부분의 각성자들이 그렇겠지만, 일할 때 외엔 던전 지역에 들어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 부상자의 치료를 위해 스킬을 발동하는 힐러들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신채영은 일을 하지 않을 때도, 던전 지역에 있는 걸 매우 즐겼다.
늘 세상을 차갑게 바라보는 염세적인 성격의 신채영. 세기말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삭막하고 황폐한 던전의 분위기를 좋아하고 있었다.
띠리리링.
그때 그녀의 팔에 장착된 휴대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초홍의 전화였다.
-채영아. 부상자 발생이야.
차를 멈춘 그녀가 스크린을 바라보자 지도에 붉은 점 하나가 깜빡거리고 있었다.
“스타디움 던전이네요.”
-응. 맞아.
“잘됐네요. 거기 근처에 있으니 금방 갈게요.”
다시 액셀을 밟은 그녀는 핸들을 크게 돌렸다.
D급 던전, ‘스타디움.’
일반적인 던전과 달리, 내외부가 모두 현대 건축물을 모방하듯, 그대로 재현되어 있는 곳이다. 신채영은 점차 가까워지는 스타디움 건물을 빤히 바라보았다.
만약 건물 곳곳에 반짝이는 오렌지빛 씨앗 같은 게 없었다면 시내에 있는 건물과 전혀 다른 점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끼익.
스타디움 던전 앞에 구공삼 트럭을 세운 신채영은 팔에 부착한 스크린을 향해 말했다.
“사람 없는데요.”
-그래? 설마 다시 던전으로 들어갔나?
스크린에서 초홍의 음성이 들려오자 신채영이 미간을 찌푸렸다.
던전 내부에는 통신이 단절되기 때문에 구조 신호도 던전 바깥으로 나와야만 할 수 있다.
때문에 부상자들이 다시 던전으로 들어가는 경우는 두 가지 상황뿐이다.
구조 요청을 하고 다시 동료를 위해 던전으로 들어갔거나, 혹은 던전 부근에 히든몬스터가 갑작스레 출현했거나.
잠시 고민하던 신채영이 말했다.
“지금 안으로 들어가 볼게요.”
-기다려. 은호 금방 보낼게.
“그럼 늦을 수 있어요. 어차피 D급 던전인걸요.”
-히든몬스터가 나온 것일 수도 있잖아.
“그러면 바로 나와서 연락할게요.”
스크린 속에서 잠시 고민하던 초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하면 즉시 밖으로 나와.
“네.”
고개를 끄덕인 신채영은 주저 없이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스타디움 던전 내부에는 건물 외관에 붙어 있던 오렌지빛 돌, 방방장석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여기 방방장석 캐는 곳이었지.”
방방장석은 가루로 만들어 시멘트처럼 사용할 수 있는 독특한 던전 재료다.
일반 시멘트의 수십 배에 달하는 강도를 가진 슈퍼 콘크리트를 만들 수 있기에, 집을 짓거나 인테리어 시공에 주로 사용된다.
끼익.
던전 입구 앞에 설치된 커다란 유리문을 열자 넓은 로비가 보이며 사방으로 이어진 긴 통로들이 보였다.
주위를 유심히 살피던 신채영은 2층 계단 쪽에 무언가 끌린 흔적이 있음을 발견했다.
핏물과 체액이 길게 이어져 있는 흔적은, 마치 부상자를 억지로 끌고 다닌 것 같다.
‘위험해.’
위험을 직감한 신채영의 세포가 경고음을 내었다.
D급 던전 같은 하위 몬스터가 나오는 곳에서 각성자들이 목숨을 잃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역시 히든몬스터인가.’
스크린에 비친 시계를 바라본 신채영이 고민했다.
‘늦어도 10분 안에는 은호가 오겠지.’
고민을 마친 신채영은 2층 계단으로 올라갔다.
위험도 5,000 안팎의 몬스터 정도라면 혼자서 10분 정도는 버틸 자신이 있었으니까.
콰앙!
그때 저 멀리 복도에서 폭음 소리와 함께 먼지가 피어올랐다.
크르릉!
“후퇴해!”
낮은 괴음과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급한 음성으로 보아 각성자 팀과 몬스터가 사투를 벌이는 것 같았다.
스르렁.
달려가는 신채영이 오른손을 빠르게 내리자 손목에 착용한 휴대용 단분자 커터 날이 삐죽 튀어나왔다.
“……!”
2층의 커다란 휴게실에 도착한 신채영은, 너무 놀란 나머지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상어 형태의 몸체에 두 발이 달린 기괴한 몬스터가 사람들을 물어뜯고 있다.
파충류처럼 번들거리는 피부에선 끈적한 액체가 흘러나왔고, 날카로운 이빨은 전기톱처럼 회전하고 있었다.
위험도가 9,500에 달하는 히든몬스터, 랜드샤크였다.
하지만 신채영이 크게 놀란 건 랜드샤크 때문만은 아니었다.
두두두. 드르르르륵!
콰앙! 퍼엉
랜드샤크에 대항하는 대여섯 명의 각성자들의 손엔 기관총과 수류탄 같은 현대의 화기가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미쳤어? 그만둬!”
신채영이 크게 소리치자 총을 난사하던 각성자들이 놀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결같이 앳된 얼굴을 가진 각성자들은 잘해야 스무 살이 갓 넘어 보였다.
그 순간 랜드샤크가 목표를 변경해 신채영을 향해 거대한 입을 쩍 벌린 채 달려들었다.
드르르륵.
맹렬히 회전하는 랜드샤크의 톱니 이빨과 신채영의 단분자 커터가 부딪치자 쇠가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으읏.”
온 힘을 다해 랜드샤크를 밀어낸 신채영이 단분자 커터를 번개처럼 휘둘렀다.
번쩍하는 광채가 연달아 피어오르며 예리한 단분자 커터가 랜드샤크의 몸을 순식간에 베어갔다.
쿠후후.
그러나 콘크리트 벽도 쉽게 베어낸 단분자 커터에 맞았음에도 랜드샤크의 몸엔 상처 하나 보이지 않았다.
“도, 도망가자!”
신채영과 랜드샤크의 전투를 지켜보던 젊은 각성자들은 그녀를 놔둔 채 매정하게 위층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쪽이 아냐!”
그 모습을 본 신채영이 크게 소리쳤지만, 혼란에 빠진 각성자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반대편으로 달렸다.
카합!
정신이 팔린 사이, 랜드샤크가 신채영이 들고 있는 단분자 커터를 덥석 물었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랜드샤크의 입에 들어간 단분자 커터가 두 조각이 났다.
“칫.”
부러진 단분자 커터를 버린 신채영은 주머니에서 시꺼먼 구슬 하나를 꺼내 들었다.
몬스터의 시력을 일순간 뺏을 수 있는 마도구, ‘칠흑의 구슬’이다.
퍼엉 하는 소리와 함께 까만 가루가 흩날리자, 충혈된 랜드샤크의 눈동자가 까맣게 물들어갔다.
쿠우우우!
순간적으로 앞이 보이지 않자 랜드샤크는 괴음을 지르며 미친 듯이 턱뼈를 움직였다.
그 틈에 재빨리 몸을 뺀 신채영은 각성자들이 도망간 쪽으로 달려갔다.
“이쪽인가.”
길게 이어진 통로 모퉁이를 돌자 계단으로 올라가는 문이 보인다.
하지만 쇠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 앞엔 두려움에 떨며 총을 겨누고 있는 각성자들이 보였다.
“씨발.”
“흐으으으.”
눈물 콧물을 흘리는 그들의 모습은 전투 경험은커녕, 각성자가 맞는지조차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협회에서 온 거야?”
신채영을 발견한 각성자들 중 머리를 보라색으로 염색한 청년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다른 각성자들은? 너 혼자 온 거야?”
“너희, 의료팀 호출했잖아.”
“뭐?”
“의료팀 호출 신호를 보냈다고. 너희들.”
신채영의 말에 청년이 눈을 크게 떴다.
“그래서? 너 혼자 왔다고?”
“그래.”
“야이, 씨! 장난해? 부상자 구조 신호 보냈다고 너 혼자 기어 오면 어떡해!”
청년은 손등에 부착한 스크린 휴대폰을 집어 던지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구조 요청 신호가 작동 안 되어서 의료팀 호출 버튼을 눌렀다고! 던전에는 신호가 안 터져서! 목숨 걸고 바깥에 나가서!”
이들은 랜드샤크에 쫓기다 구조 요청이 아닌, 의료팀 호출 버튼을 누른 것이다.
패닉 상태에 빠져 고래고래 소리를 치는 청년을 빤히 바라보던 신채영은 무언가를 깨달았다.
“너희들. 각성자가 아니구나.”
청년을 포함한 무리는 엉성하게 총기를 쥐고 있을 뿐 아니라, 전투에 맞지 않는 엉뚱한 나노슈트까지 착용하고 있었다.
“무, 무슨 소리야? 우리들, 모두 4급 각성자라고.”
“4급 각성자? 그런 총을 들고?”
“이건 S급 소환 스킬로 만든 거야. 던전용 총기를 소환한 거란 말야.”
말도 안 되는 청년의 변명에 신채영이 피식 웃었다.
“경질화 스킬을 가진 각성자들이나 입는 탱커 전용 나노슈트를 입고?”
“어, 어차피 기능은 비슷하잖아.”
“하아.”
신채영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 졸부집 자제들이 불법으로 던전에 들어와 전투를 벌인 거네.”
경멸 어린 그녀의 중얼거림에 청년이 발끈했다.
“네가 뭘 안다고 졸부라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이해가 안 가네. 돈으로 될 게 있고 안 될 게 있는데. 무슨 수로 던전에 들어온 거지? 각성자용 휴대폰도 본인 신분이 인증돼야 쓸 수 있는데.”
“흥, 너 같은 그지가 뭘 알겠냐.”
죽음과 맞닥뜨린 상황에서도 청년의 눈동자엔 오만함이 번들거렸다.
“암시장엔 뭐든지 팔아. 가짜 신분증이 등록된 휴대폰도 말야.”
“암시장?”
“그래. 이 각성자 휴대폰이 얼마짜린 줄 알아? 이천만 원이 넘는다고.”
신채영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암시장에서 거래가 금지된 유물들을 파는 건 알고 있었지만, 가짜 각성자 신분증까지 유통하고 있을 줄이야.
‘뭔가 이상해.’
그제야 신채영은 김수웅 실장의 알 수 없는 지시에 의문을 느꼈다.
아무리 눈엣가시라곤 하지만, 실드경계지역에 집을 지어두고 특수대응팀에게 경계를 서게 한다?
‘이런 상황을 알고 있었나.’
김수웅 실장은 마치 던전 내에 여러 가지 일이 벌어질 것을 미리 안 것처럼, 특수대응팀을 이곳에 배치한 것만 같았다.
“아무리 각성자가 아니라도 그렇지. 총 같은 거 던전에서 사용하면 안 되는 거 몰라?”
신채영의 말에 청년이 썩은 미소를 머금었다.
“이거, 진짜 S급 무기 소환 스킬로 만든 던전용 화기거든?”
“무슨 소리야.”
“암시장에서 판다고. 이 던전용 화기도 말야.”
그 말에 신채영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S급 소환 스킬, 무기 소환 스킬 각성자가 암시장에 무기를 내다 판다? 정말이지,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다.
“그게 설령 사실이라고 해도, 그 무기는 못 써.”
“뭐? 무슨 헛소리야.”
“최소한 F급 무기 소환 스킬을 가지고 있어야 소환 무기를 사용할 수 있어. 게다가…….”
신채영은 싸늘한 눈빛으로 청년이 들고 있는 총기를 바라보았다.
“그 무기, 일반 소총이야. 그래서 저 히든몬스터가 나타난 거고.”
“뭐, 뭐라고? 그럴 리 없어. 분명히…….”
청년이 당황하며 고개를 저을 무렵.
크르르르릉.
그때 멀리서 랜드샤크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점차 소리가 가까워지는 것으로 보아 정확히 이쪽의 흔적을 따라 추격하는 것 같았다.
‘정면으론 상대 못 해.’
주위를 둘러보던 신채영은 잠겨 있는 문을 발로 걷어찼다.
쾅 소리와 함께 금속문이 무너지며 벽돌로 쌓여 있는 어두운 통로가 보였다.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벽에는 횃불이 걸려 있었고 공기는 매우 습했다.
‘스타디움 던전에 이런 곳이 있었나?’
통로를 들여다보던 신채영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길게 이어진 고대의 회랑은 마치 중세시대의 어느 지하 광장으로 가는 비밀 통로와 같은 모습이다.
“막혀 있잖아!”
앞서 뛰어가던 각성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넓은 공터를 발견했다.
마치 작은 콜로세움처럼 되어 있는 공간은 사방이 막혀 있어 빠져나갈 곳이 보이지 않았다.
신채영이 온 힘을 다해 벽을 내리쳐 봤지만, 던전을 구성하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젠장, 출구가 없어!”
청년을 포함한 무리는 몸을 떨었다. 곧 있으면 랜드샤크가 이곳으로 달려와 자신들을 산 채로 뜯어먹는 공포와 절망감으로.
“잠깐.”
신채영은 좌측의 벽에서 미세하게 흘러나오는 빛을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아주 미세한 틈이 있다.
드드득.
틈새에 손을 끼운 채 힘껏 당기자 육중한 쇠문 하나가 서서히 튀어나왔다.
“안전지대… 같은 건가.”
문을 열어보니 네 평 정도의 크기에 사방이 꽉 막혀 있는 비밀스런 공간이 보인다.
거대 던전에서 흔히 보이는, 몬스터를 피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안전지대처럼 보였다.
“여기에 숨자!”
비밀 공간을 발견한 청년과 일행들은 위험한 요소가 있는지조차 확인하지 않고 우르르 안쪽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그런데 막상 안으로 들어가 보니 큰 문제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