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58화 (58/285)

제58화. 천마와 신채영 (1)

번화가 뒷골목 어느 홍탁집.

좌식의자가 설치된 조용한 룸에 앉은 신채영은 소주병 옆에 놓인 안주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커다란 접시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보쌈 고기와 묵은지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회색으로 물들어 있는 접시가 있다. 자세히 보니 촘촘히 썬 회색빛 덩어리다.

“으음.”

신채영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쿰쿰한 냄새가 올라오는 커다란 접시에 손가락을 가리키며 코를 찡그렸다.

“이게 뭐죠.”

그러자 무명이 천마의 어깨에서 폴짝 내려와 말했다.

[홍어 삼합입니다. 이곳은 시내에서 가장 손꼽히는 맛집으로, 바이럴 마케팅으로 의심되는 후기를 제외하고도 천삼백 건의 후기가 있는…….]

떠벌떠벌 이야기하는 무명의 설명을 흘려들은 신채영이 말했다.

“이게 비싼 음식?”

[그렇습니다. 이 흑산도 홍어삼합 2인분이 자그마치 10만 원입니다. 백반정식 열네 번 정도 먹을 수 있는 가격이지요.]

무명의 둥그렇고 하얀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신채영은 젓가락을 들었다.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묵은지에 보쌈, 홍어를 한 점씩 올린 그녀는 심호흡을 하더니 입에 넣었다.

“윽.”

씹자마자 신채영은 코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갈수록 아련해지는 눈빛을 보니 홍어를 처음 먹는 것이 분명했다.

“으윽.”

오만상을 찌푸리면서도 신채영은 다시 홍어를 한 점 싸서 먹었다. 보다 못한 무명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입에 안 맞으십니까?]

“응.”

[그, 그런가요. 그럼 다른 걸 시켜드릴까요?]

“됐어. 아까워.”

무심한 얼굴로 대답한 그녀는 빈 잔을 소주로 가득 채웠다.

“흠.”

꾸역꾸역 홍어를 먹는 신채영의 모습을 바라보던 천마의 눈빛이 묘해졌다.

무림을 제패하기까지, 천마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봤다. 그중에는 속세를 떠난 스님도 있었고, 삶과 죽음에 초탈한 도사도 있었다.

그리고 꽃처럼 아리따운 용모를 지녔을 뿐만 아니라, 무심지도(無心之道)를 이룩한 젊은 여검사도 있었다.

‘왜 낯이 익나 했더니, 검각(劍閣)의 꼬맹이를 꾹 찍어 닮았군.’

속세의 때는 한 것도 닿지 않은 절해고도에서 오직 검도에만 침잠하던 검각주. 안개를 한 겹 두른 듯한 신비로운 외모를 지녔던 그녀와 눈앞의 신채영은 쌍둥이처럼 꼭 닮아 있었다.

“크으.”

꾸역꾸역 홍어삼합을 먹은 신채영이 잔에 담긴 소주를 쭉 들이켰다. 내려놓은 잔을 응시하던 그녀의 시선이 이내 천마의 붉은 눈동자를 향했다.

“아저씨는 왜 불법을 저지르죠?”

“무슨 소리냐.”

“던전에 들어가면서 각성자 등록을 왜 안 하냐고요.”

“알 것 없다.”

“알아야겠는데요.”

누런빛이 흘러나오는 침침한 홍탁집 조명에 반사된 신채영의 눈가엔 깊은 음영이 져 있었다.

“오늘은 그것 때문에 찾아온 거니까요.”

‘오늘은’이라는 단어가 거슬린다. 오늘 말고도 여러 번 찾아오겠다는 엄포로 들렸기 때문이다.

팔짱을 낀 채 석상처럼 앉아 있던 천마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신채영의 눈동자에는 호기심 따윈 전혀 없었다. 어째서 그녀는 궁금하지도 않은 사실을 꼬치꼬치 캐묻는 걸까?

“이상한 처자로고.”

불현듯 천마는 이 맹랑한 처자에게 약간의 호기심이 생겼다.

“궁금하지도 않은 걸 왜 물어보는가.”

“아저씨 때문에 저희 팀이 법을 어기고 있으니까요.”

천마를 바라보는 신채영의 눈동자는 한겨울 북풍에 얼어붙은 호수와도 같았다.

평소의 천마였다면 용납할 수 없는 눈빛이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작고 깡마른 처자를 앞에 두니 전에 없던 넉넉한 인내심이 차올랐다.

“저희 팀은 아저씨가 몰래 던전에 들어간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하는 상태예요.”

“그랬나.”

“사실인가요?”

“뭐가 말이냐.”

이야기를 듣는 천마의 표정에는 전혀 변함이 없었다. 그 모습을 빤히 지켜보던 신채영이 다시 말했다.

“미등록 상태로 던전에 들어가는 이유요. 남몰래 선행을 베풀려고 하려는 것 때문이 맞나요.”

“착각이다.”

천마는 즉각 그 말을 받았다.

“본좌는 그런 이유로 던전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럼 왜 던전에 들어가는 거죠?”

“알 거 없다.”

대화가 전혀 이어지지 않는다.

싸늘한 시선으로 천마를 바라보던 신채영이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던전에서 아저씨와 비슷한 사람을 봤어요. 가면을 쓰고 몰래 던전에 들어와, 사람들을 치료해 주더군요.”

‘일일일선을 말하는 것이군.’

하루에 한 번, 착한 일을 해야 한다 굳게 믿는 요신. 천마가 두 눈을 가늘게 뜰 무렵, 신채영이 다시 말했다.

“저는 생애 처음으로 불법을 저지른 그 사람을 그냥 돌려보내 줬어요. 팀원들이 아저씨를 대하는 것처럼.”

잔에 다시 소주를 채운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범법자는 범법자일 뿐. 법을 어기면 처벌을 받아야 하는데.”

고개를 숙인 신채영의 눈빛은 혼돈으로 가득했다. 팔짱을 낀 천마가 덤덤히 말했다.

“법을 어기면 처벌을 받는다… 라. 왜 처벌을 받는 건가.”

“당연한 거 아닌가요.”

소주를 쭉 천천히 들이켠 신채영이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그게 옳은 일이니까.”

천마도 팔을 뻗어 소주병을 집어 들더니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젓가락을 들어, 남아 있는 홍어와 보쌈 고기, 묵은지를 차례차례 입에 넣었다.

“괜한 시간을 낭비했군.”

몸을 일으킨 천마가 무명을 어깨에 태운 뒤 덤덤히 말했다.

“다시는 본좌를 찾아오지 마라.”

천마가 나가는 문을 열자 신채영은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대답, 아직 못 들었는데요.”

“대답할 가치도 없다.”

천마는 신채영을 경멸 가득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무심지도에 든 것이 아니라, 그저 혼이 빠져 있는 것이었군. 아니면 그냥 생각 없이 살고 싶은데, 핑계를 대고 싶은 건가.”

“뭐라고요?”

“너에겐 법이라는 것이 옳고 그름의 척도가 되는가 보군.”

“비교가 틀렸어요. 법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에요. 법이 없다면 이 세상은 아비규환으로 변할 테니까.”

“으하하하!”

껄껄 웃은 천마는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법은 누가 만들었는가? 정도가 옳고 마도는 나쁜 것인가? 옳고 그르다는 것을 누가 정의할 수 있단 말인가?”

“그건 궤변이에요. 사람은 누구나 옳고 그른 걸 판단할 수 있어요.”

“그 말은 틀렸다. 인간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는 존재다.”

천마는 엄숙한 눈빛으로 신채영을 내려다보았다.

“선은 무엇이고 악이란 또 무엇이냐? 무림맹주 정천이 마도인을 죽이면 정의를 바로 세웠다 말하고, 본좌가 정파인을 죽이면 잔혹한 마인이라고 손가락질을 한다.”

최악의 환경에서 태어나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으며, 평생 동안 패도(覇道)의 길을 걸어온 천마.

언제나 죽음과 맞닿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아온 그에겐, 옳고 그름 따위는 개방구 같은 말에 불과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죠?”

“옳고 그름 따윈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저 인간은 자신이 갖고 있는 신념대로 판단할 뿐이지.”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초홍, 한만재, 유은호…. 그들은 누가 봐도 정의로운 사람이었으나, 천마의 범법 행위를 보고도 눈감아 주었다.

단지 그것이 옳은 길이라고 믿고 있기에.

“너와 같은 자들 때문에 인간들이 발전이 없는 게다. 억지로 규칙 따위를 지켜가며 만족하고, 생로병사의 속박을 받으면서 하잘것없는 장기 말처럼 살아가니까.”

코웃음을 친 천마는 몸을 돌렸다.

“너희가 만든 법률을 본좌에게 강요하지 마라. 본좌는 법 따윈 신경 쓰지 않으니까.”

“그럼 아저씨는 뭐죠? 선인가요? 아니면 악?”

“그런 건 없다.”

밖으로 나가던 천마는 고개를 쓱 돌렸다.

“본좌는 본좌의 길을 걷는 것뿐이다.”

그 말을 끝으로 천마는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신채영은 사라지는 천마의 등을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뭐야, 저 중2병은? 역시 이상한 사람이야…….”

알 수 없는 장황한 말로 온갖 궤변을 늘어놓고 사라진 천마.

그녀는 천마의 사고 구조가 평범한 사람과는 전혀 다름을 깨달았다. 아니, 세상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가치관과 전혀 달랐다.

“제정신이 아닌 사람은 건드리면 안 되겠지.”

법도 미친놈은 처벌하지 않는다. 저 괴상한 사고방식을 유지하면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판이다.

“하아.”

깊은 한숨을 쉰 신채영은 홍탁집을 천천히 나섰다.

“저, 저기요!”

그때 앞치마를 입은 중년여성이 신채영에게 황급히 뛰어와 무언가를 내밀었다. 계산서였다.

“계산을 안 하고 가셨는데요.”

“…….”

노기등등하게 나간 천마는 계산하는 것도 잊은 모양이다.

“역시 제정신이 아냐.”

언제나 냉정함을 유지했던 신채영의 눈동자에선 물결과도 같은 파란이 일고 있었다.

* * *

부르르릉.

특수대응팀의 거처이자 상황실이 꾸며진 빌라.

그 앞에 요란한 배기음을 내는 은색 대형 픽업트럭이 멈춰 섰다. 한만재가 타고 다니는 픽업트럭보다도 두 배는 큰, 몬스터 트럭이다.

빌라 앞 정원에서 캠핑 의자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던 유은호. 그는 트럭에 타고 있는 초홍을 발견하곤 놀라서 뛰어갔다.

“팀장님. 그 차 뭐예요?”

“이 차 몰라? 던전용 몬스터 트럭, M903이잖아.”

속칭 구공삼이라 불리는 이 트럭은 특수한 도료와 재료를 사용해, 현대 기술에 극도의 거부 반응을 보이는 던전에서도 안심하고 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제가 차를 몰라서 물어보겠어요? 잠깐… 설마?”

유은호가 활짝 웃으며 입을 벌리자 차에서 내린 초홍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맞아. 요새 던전 지역 끝자락까지 들어가는 일이 너무 잦잖아. 그래서 하나 장만했어. 맨날 뛰어다닐 순 없으니까.”

은빛으로 반짝이는 픽업트럭을 매만지던 유은호가 입을 벌렸다.

“무슨 돈으로요? 로또라도 당첨된 거예요?”

“아니, 중고로 산 건데?”

“중고라도 그렇지. 이게 얼만데요.”

던전용으로 나온 제품들은 뭐든지 비싸다. 나노봇이든 슈트든 무기든.

던전에서 타고 다닐 수 있는 중고 오토바이 한 대가 어지간한 중형차 값에 거래될 정도니.

“크흠.”

헛기침을 한 초홍이 눈을 찡긋했다.

“일전에 아이스골렘에서 나온 유물로 산 거야. 그거 엄청나게 비싼 거였더라고.”

“와아. 우리 팀장님도 이제 간이 배 밖으로 나오셨네. 그걸 착복한 거예요?”

“헛소리하지 마. 협회에 보고해 놓은 게 유실물 습득으로 인정되어서 금액의 30%를 받았다고.”

“하긴, 뭔들 어때요? 우리 팀 전용차가 생겼다는 게 중요하지.”

유은호는 보닛을 쓰다듬으며 싱글벙글 웃었다.

“협회 소속이라는 게 이게 좋네요. 차량만 있으면 통행료 걱정 없이 마음껏 던전에 가서 몰 수 있으니.”

전용 차량을 샀다 해도 던전에서 타고 다니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어지간히 부유한 각성자들도 짐꾼을 데리고 다니는 것이다.

그때 방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던 신채영이 요란한 소리가 들렸는지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이에요.”

현관문이 열리며 신채영이 걸어 나오자 유은호가 외쳤다.

“채영아. 봤냐? 던전용 트럭이야. 우리 팀 전용이라고.”

초홍은 신채영이 나오자 웃으며 말했다.

“채영아. 한번 몰아봐.”

“네?”

“저번에 기간트 펩 사건 때 다리 다쳤잖아.”

신채영은 타인에게 힐링 팩터를 주입할 수 있는 힐러지만, 신기하게도 그녀 자신이 입은 부상은 쉽게 치료하지 못했다.

살짝 삔 것이라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는데, 초홍은 그걸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지금은 괜찮아요.”

“그래도 타봐. 채영이 너, 던전 휴게소에서 쉬는 거 좋아하잖아.”

신채영이 유일하게 즐기는 취미가 던전 휴게소에서 커피를 마시며 망중한을 즐기는 거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초홍이 활짝 웃으며 들고 있던 키를 내밀었다.

“한번 시운전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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