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54화 (54/285)

제54화. 천마, 징계받다 (2)

사무실의 조명은 낮고 어두웠다.

한켠에는 알 수 없는 책자들과 서류들이 잔뜩 쌓여 있었고, 한가운데는 아주 넓고 큰 탁자가 있었다.

천마와 장채원이 들어오자 탁자에 앉아 있는 남성의 그림자가 보였다. 감찰관이었다.

“그곳에 앉으시죠.”

내부는 밝았지만, 남성의 얼굴과 몸은 어둠이 내려앉은 것처럼 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마치 까만 그림자 형태와 같은 남성은 천마와 장채원을 바라보더니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천마 님.”

가까이서 보니 까만 그림자로 물든 얼굴에 입술과 치아만 보인다.

“그리고 장채원 님도.”

딱딱한 목소리를 내던 남성이 갑자기 친절한 음성을 내었다. 순간 장채원의 기분이 더욱 불쾌해졌다.

복복 인테리어의 운영자, 즉 영지의 주인은 장채원이다. 하지만 감찰관은 고의적으로 천마의 이름을 먼저 불렀다.

“긴장하실 필요 없습니다. 오늘 하는 건 그저 단순한 사정 청취일 뿐이니까요.”

“사정 청취라는 단어를 들으니까 경찰서에서 취조받는 느낌이네요.”

장채원의 말에 감찰관은 하얀 치아를 더욱 크게 드러내었다.

“경찰서에서 해결될 일이라면 좋겠죠. 하지만 여기는 신계의 청사입니다.”

고개를 돌린 남성은 천마를 향해 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그 당시에 왜 ‘검은 탑’ 던전에 간 거죠?”

팔짱을 낀 채 앉아 있던 천마가 눈을 번뜩였다.

“그대는 누군가.”

“뭐라고.”

시종일관 하얀 치아를 보이던 남성의 입에서 다시 냉막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감히 신계의 감찰관에게 하대를 한단 말인가.”

“아, 신이셨소? 본좌는 이 세계에 대해 아직 잘 몰라서 말이오.”

천마는 피식 웃으며 두 손을 모았다.

“영문도 모르고 끌려온 상태라, 이곳이 어딘지, 그쪽이 누군지도 몰랐소이다.”

-사람을 끌고 왔으면 이곳이 어딘지, 그리고 네 직책을 먼저 밝히는 게 순서 아니냐.

천마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듣던 대로 평범한 인간은 아니군.’

까맣게 물들어 있던 감찰관의 입가에 다시 하얀 치아가 보였다.

“실례했습니다. 천마 님의 생김새가 요괴들처럼 낯익은 탓에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걸 잠시 잊었군요.”

-요괴처럼 생긴 네 면상 때문에 절차를 설명하는 걸 잊었다.

천마의 비꼼을 되받아친 감찰관이 정중히 말했다.

“이번 던전 무단 침입의 사건 조사를 맡게 된 특별 감찰관입니다.”

“감찰관, 그게 이름이란 말이오?”

“이름이 뭐 중요하겠습니까.”

빙긋 웃은 감찰관이 양 손바닥을 살짝 비볐다.

“자, 그럼 이제 이유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몸을 풀고 싶었을 뿐이오.”

“몸을 풀고 싶었다?”

“본인은 다른 세계에서 왔소. 던전에 어떤 마물이 있는지, 또 얼마나 강한 마물이 있는지 아직 모르오. 심야에 운공을 하다 답답한 생각이 들어, 던전에 한번 가본 것뿐이오.”

천마의 눈을 빤히 바라보던 감찰관이 두 눈을 반달처럼 접었다.

“던전에 가봤는데 미노타우로스가 나왔다고요? 지금까지 단 한 번 등장했다는 희귀한 히든몬스터가요?”

“그렇소.”

“좋습니다.”

두 손을 모은 감찰관이 다시 말했다.

“보물은 어딨죠?”

“보물?”

“미노타우로스에게서 나온 유물 말입니다.”

“그런 건 없었소.”

천마의 표정을 살피던 감찰관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정말인가요?”

마치 독심술이라도 쓸 것만 같은 표정이다.

하지만 동원의 말이 맞다면, 신이라 해도 자신의 마음을 못 들여다본다. 그 점을 익히 알고 있는 천마가 피식 웃었다.

“직접 확인하셨을 것 아니오?”

실제로도 유물 같은 건 발견되지 않았다. 아니, 발견될 수가 없다. 대부분의 히든몬스터들은 숨이 끊어지면 얼마 후 빛이 되어 사라지니까.

만약 각성자가 올린 영상이 없었더라면 미노타우로스가 출현했다는 사실도 밝혀지지 않았을 것이다.

“어쩔 수 없군요.”

감찰관은 마치 이 모든 상황을 예측한 것처럼 담담히 말했다. 그리고 까맣게 물든 손가락을 뻗어 천마의 어깨에 있는 무명을 가리켰다.

“저 나노봇의 데이터를 강제로 뜯어볼 수밖에.”

순간 천마가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무명은 천마에게 있어 애검, 극천과 같은, 아니 그 이상의 존재였다. 자신의 손과 발, 그리고 머리가 되어주는 것을 뜯는다니.

그런데 장채원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빙긋 웃었다.

“뭐, 뜯을 수 있으면 뜯어서 보시든가요.”

“아, 알고 있습니다. 이 나노봇의 정체를.”

감찰관이 다시 하얀 치아를 드러내었다.

“이 땅에 계신 그 어떤 대지유신도 감히 이 나노봇을 강제로 뜯을 순 없겠죠.”

까맣게 물든 감찰관의 목소리에는 찬탄과 경멸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헤파이토스 님께서 상계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만든 혼신의 역작, 기계생명체를 말입니다.”

장채원의 눈이 차가워지자 감찰관이 피식 웃었다.

“뭐, 알 만한 대지유신들은 모두 다 아는 내용입니다. 다만 신지관리팀에서 가만히 놔두고 있으니 터치를 하지 않는 것뿐이죠.”

“거기까지 알고 있다니 다행이네요.”

“강제로 뜯진 못한다는 것뿐입니다. 저희 쪽에서 데이터 전부 삭제, 초기화 처분 명령은 내릴 수 있죠.”

“무슨 말이죠?”

“장채원 님께선 헤파이토스 님의 뜻에 동의를 하신 것 같더군요. 이 나노봇을 영지에서 일하는 직원으로 등록해 두셨으니까요.”

그렇다.

무명은 기계가 아닌 영지에서 일하는 직원으로 되어 있으니,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피할 순 없다.

“영지의 직원이라고 하니 머릿속을 강제로 들여다보는 잔혹한 행위는 할 수 없겠죠. 하지만 해고 처분을 내린다면? 당연히 그동안 갖고 있던 데이터를 모두 초기화해야겠죠.”

친절했던 감찰관의 목소리는 점차 차갑게 얼어붙는 듯했다.

“영지에서 일하던 요괴나 인간이 일을 관두면, 영지에서 일했던 동안의 기억을 지우는 것처럼 말입니다.”

장채원은 이제야 감찰관이 시종일관 느긋했던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동안 쌓아두었던 무명의 기억을 전부 삭제, 즉 인격의 말살. 그것이 감찰관이 쥐고 있는 팻감이었던 것이다.

“그건 말도 안 되는…….”

화가 난 장채원이 벌떡 일어나 소리치려는 찰나.

[당연한 말씀입니다.]

천마의 어깨 위에 올라와 있던 무명이 기계적인 목소리를 내었다.

[영지의 직원으로서, 던전을 개인적으로 이용. 거기다 히든몬스터까지 없앴으니 처분은 피할 수 없죠.]

“처분은 최악의 선택이죠. 당신은 기계니까, 기계다운 일을 해주면 되지 않을까요?”

감찰관은 기계의 목소리를 내지만, 말투는 인간과 다름없는 무명의 얼굴을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제가 원하는 건 명확한 이유입니다. 던전은 수없이 많은데 왜 굳이 최북단에 있는 검은 탑 던전에 들어간 거죠? 어떻게 미노타우로스를 출현시킨 건가요? 대체 거기서 뭘 하려고 했던 거죠?”

[묵비권을 행사하겠습니다.]

“그것도 좋은 선택입니다.”

감찰관은 갑자기 천마를 바라보며 하얀 치아를 드러내었다.

“기억은 들여다보지 못해도, 거짓과 진실은 구별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것이었나.’

천마는 입맛을 다셨다. 알고 보니 이 감찰관은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다만 그렇게 되면 처분은 피할 수 없겠군요.”

감찰관의 말에 무명이 하얗게 빛나는 눈을 반짝였다.

[좋습니다. 데이터 초기화 처분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화가 난 장채원이 소리치자 무명이 담담히 말했다.

[불법이라는 걸 천마 님께 안내하지 못한 건 제 불찰입니다. 당시 천마 님은 이곳의 규칙에 대해 무지한 상태였고요. 향후 있을 징계위에서도 이 내용을 정확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찰관은 흥미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모든 기억을 삭제하겠단 말씀입니까? 제가 알기론 기계생명체라는 거, 인간과 별 다를 바가 없다고 들었는데.”

감찰관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껌뻑였다.

“대체 그 던전에서 무슨 일을 했길래 이렇게까지 하는 거죠.”

무명은 대답하지 않았다.

만약 모든 사실이 알려진다면 천마가 감로석이라는 희귀한 보물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뿐 아니라, 그것으로 병을 치료한 김혜원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원상회복.

신계는 불법 행위로 인해 발생된 것은, 반드시 원래 상태로 복귀시켜야 한다는 법칙을 고수하고 있다. 그리고 무명은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감찰관은 차갑게 말했다.

“징계위가 열리는 모레까진 복복 인테리어 영업은 일시 중지입니다.”

* * *

매장으로 돌아온 장채원.

그녀는 천마를 매장에 둔 채, 무명을 안아 들고 자신이 머무는 내당으로 데려왔다. 모든 처벌을 뒤집어쓰고, 기억을 삭제하려는 무명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너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기억을 지우겠다니!”

[이미 예상한 일이었습니다.]

“뭐?”

[영업 정지 열흘. 그리고 직원으로 등록된 제 기억의 삭제. 그것이 그들이 내릴 징계 처분일 겁니다.]

무명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결코 복복 인테리어의 영지 등급을 회수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에는요.]

“너 지금 내가 영지 등급을 걱정하는 줄 알아?”

[압니다. 저의 주 사용자이신 장채원 님께서 절 걱정하고 있다는 걸요. 하지만 이번 잘못은 모두 제 탓으로 벌어진 일입니다. 장채원 님과 천마 님에겐 절대 피해를 주고 싶지 않습니다.]

“좋아. 네 뜻은 잘 알겠어.”

무명을 빤히 바라보던 장채원이 말했다

“솔직히 너희 둘이 그곳에 왜 갔는지는 궁금하지도 않아. 어차피 던전에 가서 몬스터를 때려잡았다는 것은 사실이니까.”

팔짱을 낀 그녀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이젠 알아야겠어. 이번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솔직히 말해. 왜 검은 탑에서 미노타우로스를 잡은 거야?”

[죄송합니다.]

“그래서. 기억 삭제 처분을 받겠다고?”

하지만 무명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장채원 님을 속이려는 뜻은 없습니다. 그저… 말씀드릴 수 없는 상황일 뿐입니다.]

“내가 그렇게 못 미더워?”

머리를 두 손으로 붙잡은 장채원이 슬픈 표정을 지었다.

“나는 너한테 그렇게밖에 안 되는 거니?”

[…….]

침묵을 지키던 무명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장채원 님은 저의 최초 사용자이자, 제가 존재할 수 있게 만들어주신 은인이십니다. 제가 말하지 않는 건, 결코 장채원 님을 괴롭게 하거나 의심해서가 아닙니다.]

“그러면?”

[선택지가 이것밖에 없으니까요.]

무명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영지 박탈의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천마의 직원 신분 유지를 위해서라도, 심장을 고친 김혜원을 위해서라도.

오히려 기억 삭제 정도로 세 사람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홀가분했다.

[별거 아닙니다. 저라는 존재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무명은 장채원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단지 지금까지의 기억이 삭제될 뿐입니다. 물론 다시 복복 인테리어의 직원은 될 수 없겠지만요.]

“너…….”

[장채원 님에겐 영지를, 이 매장을, 반드시 계속 운영해야 할 이유가 있지 않습니까? 고작 이런 일로 영지 박탈을 당해서도, 천마 님 같은 유능한 직원을 잃으셔서도 안 됩니다.]

하얀 눈을 반짝이던 무명이 다시 말했다.

[천마 님과 함께라면 반드시 장채원 님이 바라는 걸 이루실 수 있을 겁니다.]

무명의 결심은 확고했다.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것이다. 무거운 절망감이 머리를 누르자 장채원은 서서히 눈을 감았다.

* * *

“본좌를 속였군.”

장채원의 내당으로 불려간 무명이 다시 매장으로 돌아오자 천마는 근엄한 눈빛으로 말했다.

“본좌에겐 몸을 풀러 갔다고 말하면 별일 없이 끝난다고 장담하지 않았나.”

[맞습니다. 그렇게 변명했기 때문에 데이터 삭제 처분으로 끝나는 거죠. 별일 아닙니다.]

천마의 눈빛이 부담스러운 듯 무명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영업 정지 기간이라 매장 문을 닫아야 합니다. 장채원 님은 저희보고 그냥 퇴근하라고 하셨습니다만… 이틀 동안 이 창고 방에 머무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점주 때문인가.”

[이럴 때일수록 복복 인테리어 매장 직원인 저희가 곁에서 머물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채원이 느낄 상실감이나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천마, 그 자신도 무명에게 큰 배신감을 느끼고 있으니.

“그리하지.”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장채원 님의 곁에 조금 있다가 오겠습니다.]

“아니, 올 필요 없다. 이 이틀 동안 점주 곁에 있어라. 본좌는 네가 드러눕는 그 밥그릇을 가져오겠다.”

[충전스테이션 말입니까? 괜찮습니다. 전투 분석 모드가 아닌 이상, 한 달간 정도는 끄떡없으니까요.]

철컥.

둥그런 몸통에서 손과 다리를 뽑아낸 무명이 내당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무명.”

모처럼 무명의 이름을 부른 천마의 두 눈에서 예리한 섬광이 번뜩였다.

“걱정 마라. 네 기억을 지울 일은 없을 테니까.”

[…천마 님이라면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무명은 묘한 말을 남긴 채 문을 닫고 사라졌다.

이 짧은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남겨져 있었다.

천마가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있음을 알고 있다는 것. 그렇기에 무명 역시 결심을 바꾸지 않겠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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