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52화 (52/285)

제52화. 천마와 싱크대 (2)

천마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던 장채원이 눈을 반짝였다.

“그래서? 이유가 뭐였어?”

“그 병약한 아내는 제남에서 방귀 좀 뀐다는 부귀장의 무남독녀였다. 그리고 그자는 몰락한 집안에 태어나 일찍 부모를 여읜 가난한 서생이었지.”

“꺄아, 그럼 사랑의 도피를 한 거란 말야?”

장채원이 비명을 지르자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도저히 방법이 없던 그들은 몰래 부귀장을 빠져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분노한 부귀장주가 무림인들을 고용해 이들을 추적하고 있던 게지.”

“그렇구나. 결국 지체 높은 여인이 사랑을 찾아 가문을 버리고 나온 거네.”

두 손을 턱에 괸 장채원이 황홀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그쪽 세계에서도 로맨스는 있잖아? 맨날 박 터지게 싸움만 하는 줄 알았는데.”

여러 번 눈을 깜빡이던 장채원이 고개를 비스듬히 꺾었다.

“근데 대체 그 이야기랑 지금 두 부부랑 무슨 상관이야?”

“빚이 있다.”

“빚?”

“그렇다. 그 부부에게 빚을 졌지.”

그 당시를 회상하는 듯, 천마의 두 눈이 깊어졌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더군. 그래서 본좌는 그 목옥에 하룻밤 머물렀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에서 지쳐 있던 심신을 상당 부분 회복시켰지.”

“회복?”

“그렇다. 그 젊은 부부는 불편한 몸을 가지고 있음에도 서로를 의지하며 한 몸처럼 지내더군.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매우 끈끈한 유대를 보여주었다. 시선만 교환해도 서로의 생각을 파악하더군.”

“응?”

“더불어 어려운 살림에도 본좌를 꽤나 극진히 대해주었지. 하루 동안 그들의 순박하고 티 없는 산중의 삶을 관찰하다 보니, 지쳐 있던 본좌의 정신이 점차 맑아졌다.”

팔짱을 낀 천마의 두 눈이 흐릿해졌다.

“그동안 본좌의 삶은 끝없는 투쟁과도 같았으니까.”

천마를 바라보는 장채원의 두 눈은 짝짝이가 되었다.

“그러니까 그 젊은 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힐링을 했다고?”

“내친김에 본좌도 그곳에서 열흘간 머물렀다.”

“뭐? 남의 신혼집에서 열흘간 눌러앉았단 말야?”

“그렇다. 그들의 모습에서 꽤나 많은 영감을 얻었지. 아, 무공에도 진척이 있었다.”

말을 할 줄 아는 바위가 있다고 상상해 보자.

얼마나 기괴하고 징그러울까?

지금 장채원의 심정이 그러했다.

‘이 눈치 없는 녀석. 생판 모르는 남의 신혼집에 열흘 동안 붙어 있었다니!’

맥락 없는 이야기를 떠벌떠벌 하고 있는 천마의 모습은, 그저 말을 할 줄 아는 바위처럼 보였다.

“본좌는 빚을 지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떠날 때 부귀장을 쓸어주겠다고 했지만, 거절하더군. 아, 쓸 만한 무공을 가르쳐 주는 것도 거절했다.”

“…….”

“그 와중에 그 집요한 마기자 녀석이 결국 본좌의 위치를 발견하고 칠신전(七神殿)의 고수를 보냈더군. 결국 본좌는 빚도 못 갚고 그 목옥을 떠나야만 했다.”

장채원은 황당하다 못해 웃음이 터져 나올 지경이었다.

“그래서 뭐야? 그 젊은 부부랑 방금 왔던 손님이랑 무슨 관계인데.”

착 가라앉은 천마의 눈빛을 바라보던 장채원이 입을 벌렸다.

“설마 방금 왔던 손님이, 그 무림에서 봤던 부부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렇다.”

“그게 말이 돼? 거긴 다른 세계잖아. 그냥 우연히 닮은 것뿐이라고.”

“몸이 불편한 부위와 목소리, 태도까지 같다. 동일인인 게지.”

의심스러운 눈빛을 지우지 않은 장채원을 보며 천마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저 부부는 아마도 무림에서 이곳으로 환생을 한 것 같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말이 안 되잖아. 시기도 안 맞고.”

“시기는 맞다.”

잠시 뜸을 들인 천마의 입에선 충격적인 말이 흘러나왔다.

“본좌가 그 목옥을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두 부부는 부귀장이 보낸 추격자들에 의해 살해되었으니까.”

“뭐, 뭐?”

“마음의 빚을 남기기 싫어, 부하들을 시켜 일만 냥의 금을 보냈다. 하지만 모옥은 이미 폐허가 되었고 부부는 숨져 있다고 하더군.”

너무나 충격적인 결말이다.

두 눈을 파르르 떨던 장채원이 소리쳤다.

“아내분도? 추격자들이 대체 왜 아내를 죽인 거야? 부귀장의 외동딸이라면서.”

천마는 쓸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죽인 게 아니다.”

안색이 창백하게 변한 장채원은 입을 가렸다.

“그럼 설마…….”

“그렇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

장채원의 시선을 피한 천마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부귀장에서 명을 받은 추격자들이 청년을 무참하게 살해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부인은 주저 없이 품속의 칼을 들어 자결한 거다.”

뒷짐을 진 천마가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소식을 들은 본좌는 부귀장을 쓸어버리려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원치 않을 것 같아 관뒀다.”

“…그랬구나.”

“본좌는 아직도 그 부부에게 마음의 빚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이 세계에서 보는군.”

천마는 혼자 중얼거리듯 작게 말했다.

“점주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본좌의 눈엔 방금의 두 사람이, 그 당시에 본좌를 대접해 주었던 부부로 보인다.”

장채원은 환생 따윈 전혀 믿지 않았다.

하지만 천마의 눈빛과 태도를 보니, 만에 하나라도 그럴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본좌는 빚을 지는 걸 매우 싫어한다. 그저 빚을 갚고 싶은 것뿐이다.”

“좋아. 알겠어.”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한 장채원이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

“무명을 불러와. 던전 재료로 싱크대 제작을 할 수 있는지 찾아보게.”

“고맙군.”

천마는 덤덤히 창고 방으로 향했다.

“천마야.”

창고로 향하는 천마를 바라보던 장채원이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기왕이면 최고의 싱크대를 만들어주자.”

몸을 돌린 천마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살짝 웃었다.

“알겠다.”

* * *

좋은 싱크대란 무엇일까.

값비싼 자재? 우아한 디자인? 부족함 없이 딱 맞춘 설계?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천마가 부엌에 들어가 본 적이라곤 허구한 날 음식에 독을 넣는 미치광이 요리사, 금천산을 처리할 때뿐이었으니까.

이곳에 와서 인테리어 서적을 수없이 보긴 했지만, 주방가구에 대해서 자세히 나온 책자는 본 적이 없었다.

일요일 오전, 장채원의 한옥집 마당 앞.

[역시나 너무 많습니다.]

무명은 마당에 잔뜩 쌓여 있는 미끄덩한 물체들을 바라보며 신음하듯 말했다.

[이 정도면 가구점을 차릴 수도 있는 양입니다. 던전이 재구축에 들어가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입니다.]

마당에 놓인 미끄덩한 것들은 D급 던전 ‘오리배’에서 나오는 대형 슬라임이었다.

무명은 서너 마리 정도면 충분히 된다고 했지만, 천마는 닥치는 대로 잡아다 포대에 구겨 넣은 것이다.

“혹시 모르잖나. 아무래도 처음 시도를 하는 것이니.”

천마는 엉덩이 가방에서 반짝이는 커다란 구슬 하나를 꺼내었다.

히든몬스터, 야광 독수리의 눈이었다.

“자, 말한 재료는 모두 준비됐다. 어떻게 만드는지 설명하라.”

[방법은 간단합니다.]

무명은 가느다란 팔을 뽑아 마당에 쓰러진 슬라임을 가리켰다.

[우선 슬라임을 떼어내서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보세요.]

천마는 두말 않고 슬라임을 떼어냈다.

미끄덩할 것만 같은 외관이었지만, 손을 대니 의외로 질 좋은 찰흙 같은 질감이라 떼어내거나 모양을 잡기 꽤나 수월했다.

[원하는 모양을 만드셨으면, 야광 독수리의 눈을 슬라임에 갖다 대세요.]

“흠.”

네모난 집 모양을 만든 천마는 들고 있던 야광 독수리의 눈을 슬쩍 갖다 대었다.

우웅.

낮은 진동과 함께 야광 독수리의 눈에 닿은 슬라임의 투명한 몸체가 우유빛으로 변하더니, 돌처럼 단단해졌다.

“간단하군.”

[그렇습니다. 던전 재료로 가구를 만드는 회사들은, 실제로 비슷한 방법으로 가구를 제작합니다.]

목을 길게 늘어뜨린 무명이 낮게 중얼거렸다.

[물론 야광 독수리 눈알 같은 희귀한 유물 대신, 다른 화학제품을 첨가하지만요.]

“뭐야? 일요일인데 작업하는 거야?”

그때, 내당의 문이 열리며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는 장채원이 눈을 비비며 걸어왔다.

헝클어진 머리나 부은 얼굴로 보아 낮잠을 푸지게 잔 듯한 모습이다.

“시끄러웠나.”

천마의 말에 장채원이 하품을 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냐, 아냐. 영화 보다가 잠깐 잔 거야.”

그리고는 잔뜩 쌓여 있는 슬라임을 바라보며 입을 벌렸다.

“뭐야. 가구점 차려? 슬라임을 도대체 몇 마리를 잡아 온 거야?”

“처음 하는 시도이니, 넉넉히 잡아 왔다.”

“넉넉하기는. 보아하니 던전에 있는 거 다 쓸어 왔구만.”

핀잔을 준 장채원은 바닥에 떨어진 대형 슬라임 하나를 집어 올렸다.

“이거 오랜만이네. 나도 한번 만들어볼까?”

“점주가 말인가.”

“뭐, 어쨌든 우리 매장 손님으로 온 거잖아. 나도 도울게.”

“흠.”

천마가 침음을 하는 사이 열심히 슬라임을 주물주물거리던 장채원이 말했다.

“나노봇. 최신 유행하는 싱크대 모양을 열 개 정도 추려서 홀로그램으로 띄워볼래?”

[알겠습니다.]

무명이 장채원의 눈높이에 다양한 싱크대의 모양을 띄워주었다.

그런데 그 싱크대를 바라보던 천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 건 못 쓴다. 모양이 너무 단순하군.”

“높낮이만 조절되면 되는 거잖아. 모양이 뭐가 중요해.”

“본좌는 그들에게 직접 제작해 준다고 말했다. 평범한 모양으로 만든다면 그들도 실망할 테지.”

“그런 거 가지고 실망 안 해.”

“어떠한 분야이든 극에 도달하면 비슷한 이치로 귀결되지.”

장채원의 말을 귓등으로 흘린 천마의 눈동자에선 의욕이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본좌가 예술의 경지까지 도달한 싱크대를 제작해 보지.”

한 시간 후.

천마가 만들어낸 작품을 바라보던 장채원의 입꼬리에 경련이 일어났다.

“확, 확실히 평범하진 않네.”

그녀의 눈앞엔 네모난 개수대 통을 들고 있는 악마상이 떡하니 서 있었다.

사람을 노려보는 험악한 눈빛을 보고 있자니, 가까이 다가가면 개수대로 머리를 내리칠 것만 같다.

“저 악마 형상 얼굴을 꼭 만들어야 해?”

“악마가 아니다. 마도를 창안하신 신마 님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지.”

“싱크대가 팔다리는 왜 필요한 건데?”

“싱크대가 팔다리를 갖고 있는 게 아니라, 신마 님이 싱크대를 들고 있는 거다.”

천마는 팔짱을 낀 채 자랑스럽게 미소 지었다.

“천하만물을 모두 베어낸다는 신마 님의 형상을 본떠 만들었으니, 고객도 만족할 거다.”

드라큘라처럼 긴 치아를 드러낸 신마의 얼굴을 바라보던 장채원이 고개를 떨구었다.

“요리하다가 심장마비 걸릴 거 같은데.”

“그만큼 멋지다는 뜻이군.”

“그런 뜻이 아냐.”

천마의 머리통을 후려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른 장채원이 고개를 저었다.

“이걸 보냈다간, 우리 매장 평판은 바닥을 칠 거야. 절대로 안 돼.”

“그게 무슨 말이냐. 이만큼 멋진 싱크대는…….”

“절대로 안 돼. 차라리 내가 만들게.”

장채원은 바닥에 남은 대형 슬라임 조각을 집어 들었다.

“두고 보고 있으라고.”

또다시 한 시간 후.

“자, 어때?”

장채원의 눈앞엔 휘황찬란한 모양의 하얀 싱크대가 놓여 있었다.

원목과 같은 무늬가 새겨져 있는 개수대는 따로 분리되어 있었고, 맞은편에는 키 큰 장과 냉장고를 넣을 수 있는 빌트인 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분명 만족을 할 거야.”

어떤 고객이라도 트집을 잡을 수 없는, 유려하고 아름다운 북유럽풍 싱크대다.

싱크대를 바라보던 천마가 찬사를 터뜨렸다.

“멋지군.”

“역시 그렇지?”

“그 부부의 집이 200평 정도 된다면 설치해 보고 싶군.”

그제야 장채원은 마당 한가득 채워진 싱크대의 크기를 보고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하하, 정신없이 만드느라 그 생각을 깜박했네. 슬라임이 너무 많아서.”

천마는 다시 바닥에 떨어져 있는 슬라임을 집어 올렸다.

“지켜봐라. 본좌가 다시 한번 예술혼을 발휘해 보겠다.”

“됐어. 또 무슨 엄한 걸 만들려고. 그냥 내가 다시 만들게.”

“엄한 것이 아니다. 이번엔 확실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바람을 직접 부리셨다는 영마대제의 형상을 본뜬…….”

“됐어. 차라리 요즘 유행하는 심플한 스타일로 가자고.”

두 사람이 한참 옥신각신할 무렵.

[잠깐만, 실례하겠습니다.]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던 무명이 가운데로 나섰다.

[제 계산으론 두 분께서 만든 싱크대는 분명히 고객님들에게 퇴짜를 맞을 겁니다.]

“뭐라?”

“뭐?”

[두 분께선 고객님들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본인들의 솜씨를 뽐내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예리한 무명의 말에 천마와 장채원은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을 바라보던 무명이 타이르듯 말했다.

[더욱이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라고 하니, 그분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유심히 관찰하신 후에 다시 싱크대를 제작하시는 것이 어떨까요?]

그 순간, 천마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시선을 하늘로 옮겼다.

“그렇군. 본좌가 잠시 잊고 있었다.”

열흘 동안 두 부부가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두 눈으로 보았던 천마.

그제야 그는 두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점주는 쉬어라.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

“어떻게 하려고?”

포대 가방에 슬라임을 꽉꽉 채워 넣은 천마는 엉덩이 가방에 야광 독수리의 눈을 넣으며 말했다.

“이제야 기억났다. 그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느 구축 아파트 내부.

집주인의 성향을 드러내는 듯, 집안 내부는 단아하고 깔끔하게 꾸며져 있었다.

두 부부는 놀란 표정으로 천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문한 싱크대를 설치하러 왔다.”

라고 말하고 내부에 들어왔지만, 어디를 봐도 싱크대는커녕 나무 조각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자, 이제 싱크대를 설치하겠다.”

석상처럼 굳어 있는 두 부부를 내려다보던 천마가 메고 있던 커다란 포대를 뒤집었다.

후두두둑. 처어억.

미끈미끈한 슬라임이 바닥에 떨어지자 부부는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이, 이게 뭡니까?”

“슬라임이라는 거다. 던전에 흔히 보이는 마물 중 하나지.”

“그, 그걸 왜…….”

천마는 대답 대신 엉덩이 가방에서 야광 독수리의 눈알을 꺼내었다.

“그리고 이건 이 마물들을 매끈하고 유려한 물질로 바꾸어주는 도구다. 이 두 가지만 있으면 무엇이든 원하는 모양으로 친환경 가구를 만들 수 있지.”

바닥에 놓인 슬라임 조각을 들어 올린 천마가 눈알을 갖다 대었다.

그러자 투명한 슬라임 조각이 잘 세공된 대리석처럼 깔끔한 재질로 바뀌었다.

“와아.”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여성이 탄성을 내자, 천마가 씩 웃었다.

“두 사람 모두 손재주가 좋았지.”

“네?”

“남편은 나무를 잘라 바퀴 의자와 농기구를 만들고, 아내는 나무껍질을 엮어 밧줄을 만들 만큼.”

알 수 없는 소리를 한 천마는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이 재료만 있으면 사람이 원하는 걸 만들어낼 수 있을 거다. 굳이 싱크대를 바꾸지 않아도.”

천마는 알고 있었다.

이 부부가 싱크대를 맞추는 건, 서로의 몸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서였다는 걸.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도구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재료가 있다면 싱크대 교체는 필요치 않을 것이다.

나뭇조각, 나무껍질 하나로도 서로에게 유용한 기구를 만들어내었던 부부였으니까.

“아쉽게도 이 눈알의 효력은 한 달 정도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안에 원하는 것들은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겠지.”

천마는 가방에서 꺼낸 야광 독수리의 눈알을 남성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걸로 원 없이 만들고 싶은 걸 만들어라.”

남성은 입을 벌렸다.

슬라임이라는 재료가 훌륭한 가구 재료가 된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걸 단숨에 매끈한 재질로 바꿔주는 유물이 있다는 건 들어본 적도 없다.

아마도 이 반짝이는 구슬은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일 것이다.

“그리고 조건이 있다.”

천마가 근엄한 목소리로 남성을 내려다보았다.

“원하는 가구들을 만들 동안 이 눈알은 타인에겐 보여주지 마라. 그렇게 되면 본좌가 곤란해진다. 알겠나.”

“알, 알겠습니다.”

야광 독수리의 눈알을 받아 든 남성이 거실에 두었던 봉투를 내밀었다.

“이거 가져가세요.”

“뭐냐, 이건.”

“저희가 싱크대를 사려고 모아두었던 돈입니다. 꼭 받아주세요.”

“필요 없다.”

“그냥 작은 성의입니다. 꼭 받아주세요.”

남성의 간곡한 부탁에 천마가 손을 내뻗었다.

하지만 천마의 두툼한 손은 봉투가 아닌 남성의 어깨에 올려져 있었다.

“본좌가 너무 늦게 빚을 갚았군.”

“네……?”

“아무것도 아니다.”

부부가 당황하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자, 천마는 만족한 듯 미소 지었다.

“부디 이곳에선 잘 살아라.”

순간, 부부의 눈동자에선 검은 옷에 금실로 수놓은 옷을 입은 사내의 모습이 환영처럼 떠올랐다.

어디선가… 익숙하면서도 그리운 뒷모습이다.

“분명 저분… 어디서 봤는데.”

남편의 말에 아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요…….”

떡 벌어진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두 부부의 머릿속에는 조금 무례하지만 엉뚱했던 사내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뚜렷이 기억나진 않지만, 왠지 가슴 한쪽이 따듯해짐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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