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46화 (46/285)

제46화. 천마와 우리옷 (1)

지옥철. 아침 출근길 지하철은 흔히들 말하길 지옥철이라고 한다.

지이잉.

낮은 기계음과 함께 문이 열리자 콩나물시루처럼 사람들로 꽉 채워져 있는 모습이 보인다.

“어억.”

상투를 틀어 올린 채 회색빛으로 물든 광마혈투의를 입은 천마와 눈이 마주친 사람들은 뒷걸음질 쳤다.

그가 천천히 안으로 들어오자 발 디딜 틈이 없었던 지하철에는 놀랍게도 커다란 원이 만들어졌다.

“크허엄.”

평생 고단함이라는 걸 알지 못했던 천마가 하품을 쩍 했다.

“무인에겐 조금 해로운 물건이로군.”

그 해로운 물건이란 바로 TV였다.

최근 막장 드라마에 중독된 그는 퇴근을 하자마자 옥탑방에 돌아가 TV를 보며 날을 샜다.

문제는 날을 샌 것이 하루가 아니라 어느덧 열흘째라는 것이다.

아무리 강철같은 체력을 가진 천마라 해도 열흘간 잠을 안 자니 몸이 찌뿌둥할 수밖에 없었다.

“불편하군.”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천마의 머리는 사람들 사이로 봉긋 솟아 있었다. 6척이 훨씬 넘는 키 때문에 지하철 천창에 머리가 닿을 듯할 지경이다.

이 시간에 지하철에 탑승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학생과 직장인들이다.

그들은 천마를 힐끔 바라보며 모두 똑같은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저 이상한 놈은 왜 아침 출근길마다 등장하는 거냐.’

TV에 나오는 각성자들에게도 없는 무시무시한 근육, 사자 갈기와 같은 머리칼, 수십 년 전에 방영되었던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낡은 도복…….

‘지하철엔 정신 나간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잖아.’

그렇다. 사람들의 눈에는 천마 역시 매일 아침 코스프레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일 뿐이었다.

-이번 역은…….

그때 안내 방송과 함께 지하철의 문이 열렸다.

“우욱!”

중년 남성, 김명구는 지하철에 타자마자 코를 찌르는 냄새에 헛구역질을 했다.

만년 과장인 그는 어젯밤 접대 자리에서 먹은 술이 깨지도 않은 상태에서 힘겹게 출근을 한 상태였다.

“아니, 이게 뭐여? 누가 지하철에 식초를 뿌려놨어?”

고개를 들자 엄청나게 커다란 석상이 눈에 보였다. 그는 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석상을 만져봤다.

“으응? 지하철에 웬 석상이?”

석상의 팔뚝을 매만지던 김명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석상이라고 하기엔 뭔가 부드럽고 따듯하다. 고개를 들어보니 활활 타오르는 불꽃 같은 눈동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으허헉!”

이제 보니 이 거대한 석상은 도복을 입은 사내였던 것이다.

“죄, 죄송합니다.”

연신 고개를 숙였는데 반응이 없다.

고개를 들자 시뻘건 눈을 뜬 사내가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눈을 부릅뜬 채 잠을 자고 있던 것이다.

‘뭐야. 태권도 사범인가.’

도복을 입은 채 눈을 부릅뜨고 자는 사내를 보자 김명구는 눈을 껌뻑였다.

‘꾸벅꾸벅 조는 걸 보니, 어젯밤에 한잔했나 보구만. 하긴 요새 무술 도장 같은 건 없어지는 추세니까.’

각성자가 판치는 이 세상엔 더 이상 무술이나, 육체 단련 같은 행위는 무의미해졌다.

평범한 인간이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9급 각성자의 손가락 하나를 당해낼 수 없으니.

그런 생각에 미치자 김명구는 문득, 눈을 부릅뜨고 졸고 있는 사내에게 연민이 느껴졌다.

‘어라? 그러고 보니…….’

사람들이 아무도 이 주변에 오지 않은 탓에 김명구는 지옥철에서도 아주 편하게 서 있을 수 있었다.

‘덕택에 쾌적하구만.’

김명구는 아예 홀로 서 있는 사내 곁으로 바짝 다가가 손잡이를 붙잡았다.

“으음.”

그런데 눈을 부릅뜬 사내가 갑자기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러자 김명구의 눈앞으로 수북한 밀림이 펼쳐졌다. 그것은 붉고 윤기가 흐르는 뱀처럼 똬리를 튼 털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풍기는 미묘한 냄새는…….

“우웨엑!”

결국 김명구 과장은 지하철에서 토를 하는 대참사를 벌였다.

복복 인테리어 내부.

장채원은 매장의 정리와 청소를 하고 있던 천마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일찍 왔네.”

얼마 전 천마와 함께 청연신의 신뢰를 끝낸 장채원. 그날 이후, 그녀의 눈빛은 날이 갈수록 생기가 사라져 가고 있었다.

“기대했다고. 정말 정말 기대했단 말야. 근데 그게 똥이었다니. 난 그걸 킁카킁카 했다고…….”

때때로 알 수 없는 헛소리를 하기도 했고, 핸드백에 있는 향수를 코에 뿌리기도 했다.

“응?”

웅얼거리던 장채원은 그제야 천마의 표정이 이상하다는 걸 발견했다.

뭐가 불만인지 천마는 잔뜩 인상을 쓰고 대걸레질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상이 워낙 험악한 탓에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요새 지하철은 탈 만해? 버스보다 좀 더 쾌적하지?”

그 말에 대걸레로 바닥을 열심히 닦던 천마는 손을 멈추었다.

“탈 것이 못 된다.”

“뭐? 왜?”

“이상한 인간들이 많이 타더군.”

“으응?”

장채원이 눈을 껌뻑이자 천마는 창고 한편에 걸려 있는 낡은 짚신을 가리켰다.

“잠시 정신을 비우고 있는 사이, 어떤 정신 나간 자가 본좌의 발에 구토를 했다.”

“토, 토를 왜?”

“모른다. 본좌의 곁에 바짝 붙더니 갑자기 토를 하더군.”

오만상을 찌푸린 천마가 널려 있는 짚신을 가리켰다.

“덕택에 본좌가 아끼는 금성당혜(金星唐鞋)를 여러 번이나 세척해야 했다.”

‘당혜? 당혜는 가죽신 같은 거 아니었나.’

장채원은 창고에 걸어놓은 짚신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비치 샌들 모양의 검은 짚신에는 묘한 광택이 흘러나왔다.

장채원의 시선이 금성당혜에 고정되어 있자 천마는 매우 자랑스럽게 말했다.

“참고로 금성당혜는 광마혈투의와 마찬가지로 수화, 도검불침일 뿐만 아니라 도약력을 증가시켜 주고 언제나 발을 쾌적하게 만드는…….”

“그, 그래. 좋은 건가 보네.”

뭐,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거지. 장채원은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노트북을 열었다.

사흘 후.

매장으로 출근한 장채원은 입을 벌렸다.

걸레질을 하고 있는 천마가 또다시 맨발로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뭐야, 설마 또?”

걸레질을 하는 천마의 이마엔 핏발이 서 있었다.

이마에 허연 김 같은 게 올라오는 걸 보니 어지간히 화를 삭이고 있나 보다.

“대체 왜 그런데? 네가 타는 지하철엔 숙취에 찌든 직장인들만 타는 거야?”

놀랍게도 천마는 사흘 내내 신발에 구토를 묻힌 채로 출근한 것이다.

그리고 원인 역시 알 수 없는 구토 증상을 보인 지하철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이 세계의 인간들은 움직이는 좁은 물체 안에 서 있으면 토를 하는 습성이 있나 보군.”

대걸레를 쥔 천마는 달관한 표정으로 창고 안쪽에 걸려 있는 금성당혜를 바라보았다.

“아니면 본좌의 금성당혜를 보면 토를 하고 싶은 몹쓸 병에 걸렸던지.”

“그럴 리가 있겠어? 뭔가 이유가 있겠지.”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장채원이 천마의 곁으로 다가갔다.

“정말 사람들이 네 신발만 보면 토를 한다는 거야?”

“그렇다.”

“어떻게? 이렇게 옆에 서 있는데?”

그녀는 지하철 안에 선 것처럼 천마의 몸에 다가갔다.

그런데 바짝 다가갈수록 묘한 냄새가 풍겼다. 세탁을 잘못하면 나는 시큼한 냄새다.

“왜 그러나?”

“아, 아니 좀 냄새가 나서.”

그녀는 천마의 도복에 살짝 얼굴을 대고 킁킁거렸다.

“옷을 잘못 빨았나? 뭐, 그렇다고 냄새 가지고 토할 사람은 없는데…….”

“그런가.”

고개를 갸웃거린 천마가 팔을 위로 올렸다. 그러자 똬리를 틀고 있던 붉은 털이 장채원의 눈앞에 등장했다.

“……!”

그것은 살아 있는 파충류의 번들거리는 혓바닥 같았다.

아니, 지구상엔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생명체가 내 눈 속으로 들어오려는 몸부림과 같았다.

“아악! 내 눈!”

원인을 찾았다.

천마의 번들거리는 붉은 겨털. 그것이 지하철의 연쇄구토마를 만든 범인이었다.

“눈이라니?”

천마가 눈을 껌뻑이며 다가왔다. 하지만 장채원의 눈동자엔 아직도 굵직하게 똬리를 튼 겨털의 잔상이 남아 있었다.

거기다 겨드랑이를 활짝 열자 시큼한 냄새가 더욱 진해진 것만 같다.

“으으…….”

비틀거리던 몸을 간신히 바로 세운 장채원이 눈을 비볐다.

한바탕 슬픈 영화를 본 것처럼. 아니, 최루탄에 안면을 직격으로 맞은 것처럼 눈동자가 촉촉이 젖어 있었다.

“너… 너 말야.”

구역질을 간신히 삼킨 장채원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정확히 이야기해라.”

“겨드랑이 말야. 전엔 안 그랬잖아? 대체 왜 거기에 말꼬리가 달려 있는데!”

천마는 그제야 자신의 겨드랑이를 내려보았다. 그곳엔 손바닥 한 뼘이 넘어 보이는 윤기 나는 붉은 털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흠. 이상하군. 왜 이렇게 털이 길게 자라 있는 건가.”

“다시 팔 좀 내려줄래… 나 죽을 것 같아.”

양팔을 올린 채 몸을 흔들자 묘한 냄새와 붉은 털이 또다시 장채원의 코와 안구에 생화학 테러를 일으켰다.

“그 흑오공 때문인가.”

곰곰이 생각하던 천마가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전에 거대한 흑오공 한 마리를 해체했는데, 유독 이 부근에 피가 많이 튄 것 같다.”

“흑오공?”

“시꺼멓고 큰 지네 말이다. 본좌가 사는 집 앞에 나타난 적이 있다.”

“기간트 펩?”

“비슷한 이름이었다. 어쨌든 그 흑오공 하나를 해체한 후로 겨드랑이 부근이 조금 간지럽긴 했는데…….”

장채원이 눈을 껌뻑거렸다.

기간트 펩의 피는 독성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천마에겐 발모제 효과를 내었단 말인가?

“어쨌든 자르든가 해. 보기에도 흉하고 이상한 냄새도 나니까.”

“거절한다. 본좌는 전혀 불편하지 않으니까.”

“뭐? 그럼 그 꼴로 계속 돌아다니겠단 거야?”

장채원은 천마의 겨드랑이에 숨겨져 있는 털을 떠올리며 다시 몸을 떨었다.

“그 흉측한 걸 코앞에서 보았던 사람들을 생각해 봐. 오죽하면 토를 했겠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면 안 되지.”

“그렇다고 본좌의 몸을 스스로 훼손하란 말인가?”

“신체가 아니라 털이야, 털. 그쪽 세계에서는 신체발부 수지부모 같은 사상이 통하는지 모르겠지만, 이쪽 세계에선 주렁주렁 털은 혐오대상이라고.”

“본좌가 알 게 뭐냐.”

“야아, 지하철을 타는 사람도 생각을 해줘야지.”

무언가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 천마가 가늘게 눈을 떴다.

“알겠다. 본좌가 방법을 강구하도록 하지.”

“그래. 잘 생각했어. 오늘 퇴근하자마자 얼른 깎아.”

“깎지 않는다.”

광마혈투의를 내려다본 천마가 자부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옷으로 이 부근만 가리면 되는 거 아닌가.”

“응? 그거야 그런데…….”

“사실 이 광마혈투의는 비밀스런 여러 가지 기능이 숨겨져 있다. 다만 필요하지 않아 쓰지 않았을 뿐이지.”

“그러니까… 옷으로 가린다고?”

“그렇다.”

팔짱을 낀 천마가 자신 있게 말했다.

“내일부턴 이 부근을 확실히 가리고 오지.”

다음날.

옥탑방에서 나온 천마는 지하철역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개찰구 부근에 붙여진 거울을 바라보던 천마는 자신의 광마혈투의를 바라보았다.

“흐읍.”

내공을 끌어올린 그는 몸을 감싸고 있는 광마혈투의에 서서히 진기를 주입했다.

투투투툭.

실밥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옷감이 스르르 늘어나며 서서히 천마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됐나.”

거울에 비친 광마혈투의는 양팔이 드러난 품이 넓은 도복이 아닌, 전신을 완전히 감싼 얇은 옷으로 변해 있었다.

“무림에선 광마혈투의가 박투술(搏鬪術)에 최적화된 옷으로 알려져 있지.”

거울을 슬쩍 바라본 천마의 입가엔 뿌듯한 미소가 어렸다.

“하지만 실제로는 살수복으로도 바꿀 수 있는 다목적 보의다.”

내공을 계속 주입하자, 근접 박투술을 펼치기에 적합했던 형태가 서서히 바뀌었다.

어느새 도복 모양의 광마혈투의는 바람과 부딪치는 파공음조차 삼켜버리는 살수복으로 변화되었다.

“완벽히 가렸다.”

거울을 보며 팔을 올린 천마는 천천히 지하철 승강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천마의 예상은 정확했다.

지하철 내부에는 더 이상 그에게 가까이 다가오거나 토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무언가 이상해졌다.

예전엔 조금 힐끔거리는 사람이 있었으나, 이제는 아무도 자신을 바라보지 않았다.

‘본좌의 위엄을 알아본 건가.’

천마가 서 있는 주변으로 커다란 원이 만들어져 있었다.

마치 강력한 호신강기를 펼친 것처럼 반경 2미터 내에는 그 누구도 접근하지 않고 있었다.

-문이 열립니다.

지이잉.

“엄마야!”

“어억!”

그뿐만 아니었다.

각 역에서 지하철을 타려던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거나 두려운 표정으로 도망가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

팔짱을 끼고 서 있던 천마는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복복 인테리어 내부.

“좋은 아침.”

활기찬 표정으로 매장으로 출근하던 장채원.

걸레질을 하고 있는 천마와 눈이 마주치자 들고 있던 커피와 수첩을 몽땅 떨어뜨렸다.

“가까이 오지 마!”

천마가 다가오자, 그녀는 흠칫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대체…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무슨 소리냐. 청소를 하고 있잖나.”

덤덤한 천마의 표정에도 장채원은 물속에서 귀신을 발견한 것처럼 공포스러운 표정을 떠올렸다.

“네 옷! 말이야, 옷!”

천마는 분명 의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훌러덩 벗고 있는 상태보다도 더 적나라하고 흉측했다.

탱탱하게 몸을 감싼 아주 얇은 천 조각.

그것은 온몸에 솟아난 근육뿐만 아니라, 지렁이 같은 핏줄까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처음 봐서 놀랐나.”

“뭐? 뭐?”

“후후후, 그럴 만도 하지.”

“웃, 웃기지 마. 나도 많이 봤거든?”

장채원이 발끈하자 천마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도 이런 것이 있단 말인가.”

지렁이를 흩뿌린 듯한 천마의 상체를 힐금 바라보던 장채원이 고개를 떨궜다. 가슴 근육이야 수도 없이 봤지만, 저렇게 우람하면서도 흉측한 곡선을 가진 것은 처음 봤다.

“아니. 없, 없을지도.”

“후후후. 역시 그렇군. 하긴 무림에서도 다목적으로 변형시킬 수 있는 보의는 흔치 않으니까.”

천마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양팔을 허리에 댔다.

“광마혈투의는 이렇게 살수복으로 변형 가능하지. 박투술뿐만 아니라 은신, 잠입 시에 쓸 수 있도록 제작된 거다. 이렇게 변형시키면 옷감과 육체에 발생되는 미세한 소리까지 모두 차단해 주지.”

“그 소리였어?”

장채원은 울고 싶은 표정으로 천마의 시선을 외면했다.

“그게 옷이냐. 당장 원래대로 만들어.”

“옷이 아니라 살수복이다.”

“됐어. 됐으니까 원래대로 만들라고.”

“드러난 곳을 가리라고 했잖나. 왜 이랬다저랬다 하는 건가.”

장채원은 천마의 머리통을 후려치고 싶었지만, 도저히 고개를 들 자신이 없었다.

“설마, 그 옷을 입고 출근한 거야?”

“물론이다.”

“아아.”

땅이 꺼져라, 한숨만 나온다.

아마도 아침 출근길은 더욱 엄한 분위기로 변해 버렸을 것이다.

그 누구도 천마의 생생한 근육을 정면으로 바라볼 자는 없었을 테니까.

“설마 어린 학생들은 없었겠지?”

“무슨 소리냐.”

“내 잘못된 판단이 자라나는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짓밟아 버렸을까 봐.”

“알아듣게 설명해라.”

“됐어! 설명은 됐으니까 당장 원래대로 만들어. 어서!”

장채원이 닦달하자 천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투툭.

내공을 다시 주입하자 몸에 착 달라붙은 얇은 천 조각이 다시 품이 넓은 도복으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아까 보았던 잔상이 사라지지 않은 탓인지, 장채원은 감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내가 예전에 사준 새 옷을 입으면 안 돼? 많이 사줬잖아.”

“거절한다.”

생각해 보니 작은 공구 하나도 반드시 자신의 전용 공구를 준비해야 한다고 벅벅 우기던 천마였다.

“너, 설마… 지금까지 전용 맞춤옷이 없다고 다른 옷을 거부한 건 아니지?”

“그렇진 않다만, 트레이닝복이라는 걸 제외하면 조금만 움직여도 찢어지더군.”

장채원은 아, 하는 소리를 내었다. 미처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다.

천마의 키는 어림잡아 190센티미터 정도. 거기다 인간의 몸이라고 볼 수 없는 무지막지한 근육 탓에 제대로 맞는 옷이 없었던 것이다.

“미안. 그건 생각을 못 했네.”

“신경 쓰지 마라. 본좌는 광마혈투의 하나로 족하니까.”

심호흡을 한 장채원이 용기를 내어 천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좋아. 신경 못 써준 거 인정. 내가 최고의 맞춤옷을 선물해 줄게.”

“맞춤옷?”

천마의 물음에 장채원이 커다란 눈을 반짝였다.

“응. 우리 매장 근처에 최고의 테일러가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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