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화. 청연신
특수대응팀의 회의가 끝나갈 무렵.
“와아, 멋지다.”
탁 트인 호수를 바라보던 장채원이 양팔을 벌렸다.
시원하고 맑은 바람은 폐부마저 씻어내리는 듯하고,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호수는 투명한 거울처럼 푸른 하늘을 비추고 있었다.
“꼭 피크닉 온 것 같다.”
청벽색 얇은 원피스에 오렌지빛 밀짚모자를 쓴 장채원은 어디 데이트라도 나온 모습이다.
“하지만 일이다.”
그녀의 옆엔 커다란 배관 관통기를 손에 쥔 천마가 걷고 있었다.
감정이라곤 전혀 드러나지 않은 딱딱한 표정을 한 탓인지, 마치 돌로 만들어진 석상이 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만 같다.
“요즘처럼 일이 없는 시기에, 그것도 본좌에게 직접 들어온 의뢰다. 소개해 준 화령신의 체면도 있으니 최선을 다해야겠지.”
“아아, 그래그래.”
쩝 소리를 낸 장채원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굽신거렸다.
“천마 님께서 신뢰를 잘 처리해 준다는 소문이 퍼진 탓에, 저희 매장이 근근이 입에 풀칠을 하고 있습죠. 네네.”
“알아주니 고맙군.”
덤덤히 고개를 끄덕이던 천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어쩐 일인가.”
“뭐가?”
천마는 장채원의 옆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하늘하늘한 원피스에 화사하게 화장까지 한 그녀는 당장 데이트라도 하러 가는 듯한 모습이다.
“신뢰할 때 그런 복장을 입은 건 처음 본다.”
“아아, 이건…….”
쿠르르릉.
갑자기 지진이라도 난 듯 호수 주변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미세하게 피어오르던 진동은 평온한 호수의 물결마저 어지럽히고 있었다.
촤아아악.
맑은 물소리와 함께 갑자기 호수의 물이 반으로 갈라졌다.
주변이 갈라지더니 은은한 서기가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호수가 위에 하얀 옷을 입은 남성이 우뚝 서 있었다.
바로 강과 호수의 물을 맑게 정화시켜 주는 힘을 가진 청연신(淸淵神)이었다.
“청연신 님이다.”
호숫가에 서 있는 남성을 발견한 장채원은 차분한 걸음걸이로 다가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복복 인테리어를 운영하고 있는 장채원이라고 해요.”
평소와 다른 다소곳하면서도 우아한 표정이다.
하지만 고개를 숙인 그녀의 입꼬리는 헤벌쭉 벌어져 있으며 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목적은 다른 데 있었군.’
천마는 그제야 장채원이 왜 이토록 눈부시게 꽃단장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가늘고 긴 머리칼을 어깨까지 기른 청연신은 여인보다도 더 아름답고 고운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멀뚱히 서 있던 천마가 한 발짝 다가가 정중히 두 손을 모았다.
“처음 뵙겠소이다. 청 대인(大人).”
“멋대로 호칭 붙이지 마.”
천마는 신의 외모에 따라 늘 적당한 호칭을 멋대로 붙여주고 있었다.
장채원의 핀잔에 청연신은 기품있는 미소를 머금었다.
“호칭은 아무래도 괜찮습니다.”
천마는 청연신이, 신이라기보단 수려한 용모의 청년처럼 느껴졌다.
창백한 안색과 피로해 보이는 눈빛이, 어딘가 모르게 병색이 완연한 환자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힌 배관을 뚫는 작업이라고 들었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장채원이 의아한 표정으로 호수를 둘러보자 청연신이 갈라진 호수를 가리켰다.
“맞습니다. 이 호수 아래쪽이 뭔가 막혀 있어서요.”
“호수… 아래쪽이요?”
“네. 원래는 수위가 훨씬 높았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수위라 낮아지는 것이… 아무래도 호수로 올라오는 지하수맥 중 한 곳이 막힌 것 같습니다.”
갈라진 호수 아래쪽 부근엔 아주 커다란 구멍이 정방형의 모양으로 뚫려 있었다.
“본인이 한번 내려가 보겠소.”
배관 관통기를 쥔 천마는 지체 없이 호수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구멍은 마치 인공적인 수로처럼 매끈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정말 어디가 막혔는지 물의 수위는 천마의 발목까지밖에 차오르지 않았다.
“수맥의 길은 넓게 뚫어놨으니 돌아다니시는 데는 불편함이 없으실 겁니다.”
청연신의 말에 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이다. 본인이 수맥을 돌아다니면서 막힌 곳을 찾아볼 터이니…….”
그는 두 눈이 하트가 된 채 침을 흘리는 장채원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여하튼 좋은 시간 되시길 바라겠소.”
철퍽 철퍽.
안쪽으로 걸어갈수록 점차 단전 부근이 뜨거워졌다. 신지에 돌입하자 신력이 조금씩 스며들어 오는 것이다.
“규모가 클 뿐, 모양은 무림에 있는 지하수로와 별 다를 바가 없군.”
높다란 천장을 올려다보던 천마의 눈에서 어두운 혈광이 떠올랐다.
지하수로.
그곳은 어린 시절 천마의 놀이터 같은 곳이었다.
도저히 먹을 것이 없을 땐 그는 종종 지하수로를 떠돌며 쥐를 잡아먹었다.
마침내 벌레까지 먹을 수 있게 되자, 천마는 더 이상 굶지 않아도 되었다. 이 세상에 먹지 못할 것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쓸데없는 감상이로군.”
고금제일이라 불리며 무림을 굽어보는 천하대종사의 과거라고 하기엔 어울리지 않는다.
어둡고 긴 수로를 걷던 천마는 문득 벽에 붙어 있는 점액질 형태의 무언가를 발견했다.
“음?”
손을 대보자 진득하고 퀴퀴한 냄새가 풍긴다.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상당히 불쾌한 촉감을 지니고 있었다.
“뭔가… 있군.”
맑은 물이 흘러야 할 수맥에 이런 진득한 것이 붙어 있는 건 말이 안 된다.
아마도 이 수맥을 막은 무언가의 흔적임이 분명했다.
“갈림길이라.”
수맥 안쪽을 걷다 보니 여러 갈래의 길이 나왔다. 바닥과 벽을 면밀하게 살펴본 천마는 진득한 점액질이 많이 묻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안쪽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희미한 안개가 피어오르는 듯하고 시야도 흐릿해졌다. 마치 지독한 독기에 쐬인 듯한 느낌이다.
“설마… 독공인가.”
금강지체를 이룩한 천마의 육체는 만독불침에 가깝다. 그럼에도 그의 몸에 이상을 느끼게 할 만한 정도라니?
“천학령타(天鶴靈唾)나 엄종금구(儼宗金龜) 같은, 절세의 영물에서 뽑아낸 독이 아니고서는 본좌를 중독시킬 수 없거늘.”
천마의 눈동자에선 붉은 혈광이 피어올랐다.
아마도 이 수맥을 틀어막은 자는 만독법왕(萬毒法王) 정도의 독공을 익힌 고수, 혹은 마물일 것이 분명했다.
“본좌의 현재 내공 수위는 반 갑자 하고 7년 정도…….”
아쉽게도 이 호수는 신지임에도 올라오는 신력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병색이 완연했던 청연신의 얼굴을 떠올린 천마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이 정도 내공으로는 사실상 만독법왕과 비슷한 실력을 지닌 요괴를 상대할 순 없으니.
“흐흐흐. 재미있군.”
하지만 그는 천마다. 무림 출도 후, 혈혈단신으로 정파무림을 상대했으며, 어떤 위기 속에서도 단 한 번의 후퇴도 없는.
“본좌의 앞길을 막는 자는 죽음뿐이다.”
내공을 끌어올린 천마는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를 펼쳤다.
쿵. 쿵.
걸음을 옮길 때마다 수맥이 흔들렸고 그의 몸에선 예리한 기운이 솟구쳤다.
적이 누군지 모르는 악조건 속에서도, 천마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채 여봐란듯이 수로를 걸어가는 것이다.
“아니?”
모퉁이를 돌자 갑자기 번들번들하고 거대한 돌 하나가 수로의 통로를 통째로 막고 있었다.
아지랑이 같은 지독한 독기 역시 그 돌에서 나오고 있었다.
“관문이라는 건가.”
이 수로를 막은 자는 통로 곳곳에 독을 설치한 것 같다. 번들거리는 돌을 바라보던 천마는 오만한 미소를 머금었다.
“권마칠식, 뇌인파멸!”
콰직.
둔탁한 소리가 났지만 까만 돌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독을 내뿜을 뿐만 아니라 강도마저도 쇳덩이보다 단단한 것이다.
“재밌군.”
파괴되지 않은 돌을 바라보는 천마의 눈동자에선 태양과도 같은 붉은 광채가 폭사되었다.
“승풍항룡! 사사경혼마극퇴!”
콰직. 콰직.
주먹과 다리가 돌을 후려칠 때마다 수로 전체가 뒤흔들렸지만, 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반 갑자의 공력으로는 권장무학의 위력을 제대로 쏟아낼 수 없던 것이다.
“좋다!”
노성을 지른 천마의 겹쳐진 양손에선 우드드득 하는 기묘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우우웅.
동시에 듣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소멸될 것 같은 괴음이 수로 내부를 통째로 흔들기 시작했다.
“천마대능력!”
파앙!
내공이 아닌 육체 본연의 잠재력을 폭발시키는 천마대능력을 끌어올리자, 천마의 몸에선 태양과도 같은 광채가 솟구쳤다.
투툭.
온몸에 굵은 핏줄이 바짝 선 천마의 눈에서 광망이 번뜩 일었다.
“권마칠식, 천수공파!”
권마칠식 중 가장 파괴력이 강한 천수공파에 혼신의 천마대능력을 담아내자, 날개를 활짝 편 불새 한 마리가 검은 돌을 향해 쏟아졌다.
그 시각, 호수 위쪽.
시원한 바람이 장채원의 머리칼을 스쳐 지나갔다. 갈라진 호수는 유리처럼 반짝였고, 그 앞에는 조각처럼 아름다운 청연신이 있다.
‘정말 잘생기셨어.’
탁 풀어진 강물처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넋이 나갈 듯하다.
본래 청연신은 신들 사이에서도 용모가 수려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하다. 때문에 여러 신들이 그에게 추파를 던졌지만 왜 그런지, 쭉 홀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저어…….”
청연신의 얼굴을 바라보던 장채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청연신 님은 계속 이곳에 혼자 계시는 거예요?”
“하하, 그럴 리가요. 그랬으면 수맥이 막혔던 이유를 바로 찾았겠죠.”
청연신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싱긋 웃었다.
“저도 다른 신들처럼 자주 놀러 다녀요. 다만 1주일에 한 번쯤은 호수나 강물의 수질을 정화시켜 주러 오죠.”
“그랬군요.”
상냥한 목소리로 대답해 주는 청연신의 모습에 장채원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보통 젊은 신들일수록 일부러 엄숙하고 위엄있는 모습을 보이려 한다. 하지만 청연신 님은 그녀를 소꿉친구처럼 대해주시었다.
‘아아, 정신 나갈 거 같애!’
잘생겼을 뿐만 아니라 소탈한 모습을 보이자, 장채원의 방심(芳心)이 크게 흔들렸다.
“그럼 청연신 님은 계속 혼자 계시는 거예요?”
“네?”
갑작스런 질문에 청연신이 길고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만들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러니까…….”
심호흡을 한 장채원은 햇살에 반사된 청연신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계속 혼자 계실 생각이…….”
흐하하압!
어디선가 괴성이 하늘에 울려 퍼지더니, 우르르릉 소리와 함께 호수 일대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콰르르르르르.
반으로 갈라져 있던 호수에서 시꺼멓고 딱딱한 돌덩이들이 하늘 위로 솟구쳤다.
“아앗.”
하늘로 올라간 돌들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놀란 장채원이 뒷걸음질 치자, 어느새 청연신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은 채 한 팔을 내밀었다.
“괜찮아요.”
청연신이 내민 팔에서 푸른 기운이 쏟아지더니 거대한 우산 모양으로 변해 하늘에서 떨어지는 돌들을 막아주었다.
파파파파파팍.
작은 운석처럼 떨어진 까만 돌들은 폭우처럼 끊임없이 쏟아져 내렸다.
후두두둑.
5분 정도가 지나자 마침내 하늘 위로 솟구쳐 떨어지던 돌들이 사라졌다.
“이, 이게…….”
주위를 둘러보던 장채원은 턱이 빠진 듯했다.
세찬 폭우처럼 내리는 돌들 때문에 호수 일대의 식물들과 나무들이 모두 파괴된 것이다.
‘천마 녀석. 대체 뭘 한 거야!’
비틀거리던 그녀는 밀짚모자를 두 손으로 잡았다.
‘설마 막힌 수로를 뚫은 게 아니라 지맥을 건드린 거야? 왜 하늘 위로 돌이 솟구치는 거지?’
주위를 둘러보던 청연신의 표정도 굳어 있었다.
떨어진 돌들로 인해 호수 일대는 미사일 폭격에 맞은 듯 처참하게 변해 있었다.
“대체 이게…….”
청연신의 두 눈꼬리가 파르르 떨리는 것이 아마도 분노하기 일보 직전인 것 같다.
두 눈을 크게 뜬 장채원이 뭐라고 변명할 찰나,
“어기충소!”
커다란 고함 소리와 함께 호수 위로 회색빛 그림자가 솟구쳤다. 바로 배관 관통기를 들고 있는 천마였다.
휘리릭. 탁.
허공에서 한 바퀴 회전을 한 천마는 멋들어진 신법으로 장채원의 앞에 섰다.
“시공 끝났다.”
“너… 대체 무슨 짓을…….”
“이건 소용없더군.”
장채원의 말에 배관 관통기를 툭 내려놓은 천마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하도 안 뚫리길래 권마칠식을 사용했다.”
“그러니까, 지하수맥에 어류겐을 날렸다고?”
“천수공파를 썼다. 발출 속도가 느리긴 하지만 가만히 있는 대상을 파괴하는 덴 이만한 것이 없지.”
“파괴를 왜 해? 파괴를?”
두 눈이 하얗게 뒤집힌 장채원이 두 주먹을 움켜쥘 찰나.
“하하하하!”
갑자기 청연신이 맑은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과연 그랬군요!”
웃음을 터뜨리는 청연신의 몸에선 신령스럽고도 맑은 빛이 뿜어나오기 시작했다.
콰아아아.
동시에 낮아져 있었던 호수의 수위가 단숨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어?”
화를 내려던 장채원은 수위가 차오르는 호수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그러자 청연신이 웃으며 천마를 바라보았다.
“듣던 대로 원인까지 굉장히 깔끔하게 처리해 주시는군요.”
“과찬이외다, 청 대인.”
천마가 공손히 두 손을 모으자 빙긋 웃은 청연신은 몸을 돌려 호수를 향해 양손을 뻗었다.
“잠깐 망가진 이 일대를 수복하겠습니다.”
뻗은 두 팔에서 또다시 새하얀 광채가 쏟아지더니, 무너진 나무들과 꽃들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장채원이 천마에게 다가가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막힌 곳을 뚫었을 뿐이다.”
“대체 뭐가 막혔길래 저렇게 지진이 났는데?”
“보지 못했나?”
“뭐를?”
“바로 이거다.”
천마는 바닥에 떨어진 까만 돌 하나를 주워 올렸다.
“이게 뭔데?”
장채원은 받아 든 돌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런데 어디선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악취가 사방으로 풍기기 시작했다.
“뭐야? 왜 어디서 이상한 냄새가 나지?”
고개를 갸웃거린 그녀는 들고 있던 까만 돌에 코를 가까이 대었다. 그 순간 천마가 덤덤히 대답했다.
“똥이다.”
“뭐라고?”
“수로의 통로를 막던 것들은 똥이었다.”
툭. 장채원이 들고 있던 돌, 아니 똥을 떨어뜨리자 천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것도 신의 권능에 속하는 건지, 아니면 오래 묵어서 그런지 엄청나게 딱딱하더군. 살면서 이렇게 딱딱한 똥은 처음 봤다.”
“이게 똥이라고…….”
“정확히 말해선 숙변이겠지. 본좌는 지독한 냄새가 나길래 처음엔 독공의 달인이 펼쳐놓은 장독(場毒)인 줄 알았다.”
장채원은 소리 없이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저 까맣고 딱딱한 것을 매만지다 못해 코에다 대고 킁가킁가를 했다니.
“이제 끝났습니다. 아아.”
신력으로 호수 일대를 완벽히 복구한 청연신이 한 손을 하늘 위로 뻗었다.
순간 두 갈래의 하얀빛이 천마의 몸과 장채원의 몸에 스며들었고, 나머지 한 갈래의 붉은빛은 어디론가 날아갔다.
순간 천마의 몸이 뜨거워졌다.
10년의 공력. 청연신은 통 크게 10년 치의 내공을 보수로 넣어 준 것이다.
“약속한 보수 외에 더 넣어드렸습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병색이 완연했던 청연신의 피부는 더욱 깨끗해졌고, 입가엔 아침 햇살과도 같은 눈부신 미소가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장채원의 눈에는 변비를 완치시킨 환자의 행복한 미소일 뿐이었다.
“그런데 채원 씨. 아까 하시려던 말씀이…….”
“네?”
“아까 저 보고 혼자시냐고…….”
잠시 얼음장처럼 굳어 있던 장채원은 매우 정중하게 명함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더없이 엄숙한 표정으로 허리를 90도로 구부렸다.
“혼자… 하시기 힘든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 전화 주세요.”
“네? 네…….”
“의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장채원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호숫가를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