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44화 (44/285)

제44화. 천마와 편의점 소녀 (3)

작은 병실 안.

보호자 의자에 앉아 책을 읽던 김창웅은, 문득 침대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딸을 발견하곤 다정스레 다가왔다.

“혜원아. 왜 일어나 있어.”

“으응.”

“잠이 안 와?”

“아니.”

김혜원은 온 세상을 하얗게 비추는 만월을 빤히 응시했다.

“꿈을 꿨어.”

“꿈? 무슨 꿈.”

“몸이 다 나아서, 편의점 알바를 하는 꿈.”

“하하하.”

낮게 웃음을 짓던 김창웅이 미소 지었다.

“편의점에서 알바하던 게 그렇게 재밌었어?”

“응.”

“그 천마라는 남자 때문에?”

“응.”

“난 좀 이상하던데. 얼굴은 험상궂지, 게다가 아빠한테도 반말하던걸?”

그러자 김혜원이 방방 뛰듯 손을 내저었다.

“아냐. 천마 아저씨 실제로는 나이 엄청 많대. 아마 아빠보다도 많을걸?”

“그럴 리가. 정말 많이 쳐줘야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던데?”

“아냐. 무명이가 말했으니 사실일 거야.”

“무명?”

“응, 천마 아저씨 나노봇. 완전히 사람 같다니까. 얼마나 웃긴 이야기를 잘하는데.”

한참 떠들며 깔깔 웃던 김혜원이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다시 편의점 아르바이트하고 싶다. 학교도 나가고 싶고.”

김혜원의 시선은 보름달에 고정되어 있지만, 눈동자는 볼 수 없는 어딘가를 더듬는 것처럼 보였다.

슬픈 감정이 차오르는 걸 꾹 누른 김창웅이 웃으며 말했다.

“곧 퇴원할 거야.”

“응.”

“그럼 다시 학교도 나가고 알바도 할래?”

“응, 좋아.”

김혜원이 활짝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어딘가 메말라 보였다.

띠리리링.

그때 김창웅의 주머니에서 휴대폰 소리가 울렸다.

“네. 사장님. 아? 네… 죄송합니다. 깜빡했네요. 지금 사무실에 가서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휴대폰을 끊은 김창웅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혜원아. 아빠 잠깐 사무실에 좀 다녀올게. 먼저 자고 있어.”

“조심히 다녀와.”

“응. 금방 다녀올게.”

손을 흔들며 문밖을 나서는 김창웅.

빙긋 웃으며 같이 손을 흔들던 김혜원의 입가엔 천천히 미소가 사라졌다.

“미안해. 아빠.”

고개를 떨군 그녀의 눈에선 맑은 눈물이 뚝뚝 흘렀다.

사실 그녀도 잘 알고 있다.

다시는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 * *

후두두둑. 쏴아아아아.

미노타우로스의 목에 박힌 손바닥을 천천히 떼자 핏덩어리들이 빗물처럼 흘러내렸다.

“하아. 하아.”

천마의 입에선 가쁜 숨이 쏟아져 나왔다.

천마대능력.

오직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무학의 극점에 도달한 천마만이 사용할 수 있는 공력.

몸 안에 내재된 힘과 잠재력을 폭발시켜, 소실된 천마의 내공과 초식의 파괴력을 보완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무학에는 양면성이 있는 법.

순식간에 육체 능력을 몇 배로 향상시켜 주는 이 대법은 펼치는 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쏟아진다.

뿐만 아니라 대법의 반력으로 인해, 금강지체가 파괴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기술이기도 했다.

[괜찮으십니까.]

무명의 말에 피투성이가 된 채 억지로 몸을 우뚝 세우고 있는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덕택에.”

이번엔 정말 무명의 공이 컸다.

무명은 미노타우로스의 허점을 유도하기 위해 3차원 레이저빔으로 천마의 잔상을 끊임없이 허공에 만들어냈다. 그리고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을 토대로 공격 경로와 범위를 예측까지 해주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엄청 떠벌떠벌 자랑을 할 줄 알았던 무명은 의외로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이번 전투를 승리로 이끈 건, 천마 님의 놀라운 반사신경과 민첩성, 그리고 관찰력이었으니까요.]

미노타우로스의 약점은 천돌혈(天突穴).

즉, 좌우 쇄골 사이에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이 유일한 약점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한 건 다름 아닌 천마였다.

[어떻게 미노타우로스의 약점이 있는 곳을 예측하셨습니까?]

“저 마물의 목엔 유독 수북한 털이 있었다. 무릇 모든 생명체에는 털 한 가닥에도 그 존재와 이유가 있는 법이지…….”

미늘창을 휘두르던 미노타우로스의 모습을 떠올린 천마가 비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미치광이처럼 미늘창을 마구 휘두르는 것 같지만, 항상 중단으로 자세를 잡고 있었다. 아무리 마물이라고 해도 자신의 약점은 은연중 보호하고 싶던 게지.”

무명은 놀랍다는 듯 하얀빛으로 물든 둥그런 눈 쪽의 센서부를 확장시켰다.

[목숨을 걸고 혈투 중에 그러한 것을 보셨단 말입니까?]

“혈투? 그저 가벼운 몸풀기였다.”

라고 코웃음을 쳤지만, 천마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미노타우로스는 천마가 지금까지 마주쳤던 몬스터 중에서 가장 강력한 힘과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만약 천마대능력을 한계까지 연거푸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약점을 알았다 해도 결코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출현 조건을 분석해도 도무지 답을 모르겠군요. 저 규격 외의 몬스터가 왜 등장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건 본좌에게 중요치 않다.”

[죄송합니다. 유물이 있는지 찾아보겠습니다.]

하얀 빔을 쏘아 미노타우로스를 스캔하던 무명이 윙윙 소리를 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유물은 나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가.”

쓰디쓴 술을 삼킨 표정을 짓던 천마가 몸을 돌렸다.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얻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공허한 전투의 여운만이 양손에서 맴돌 뿐.

“흠.”

그때 천마는 문득 바닥에 떨어진 미늘창에 시선이 갔다.

뾰족한 창의 몸체에 도끼가 달려 있는 형태의 미늘창은 보통 창 끝부분에 도끼가 달려 있다. 그런데 이 미늘창의 도끼는 비정상적으로 클 뿐만 아니라 두께도 상당했다.

[왜 그러십니까.]

무명의 말에 미늘창을 내려다보던 천마는 씨익 미소 지었다.

“병기에 물건을 숨기는 건 무림에선 흔한 일이지.”

[네?]

콰직!

천마는 미노타우로스가 떨어뜨린 미늘창의 도끼 부분을 손으로 뜯어내었다.

쩌쩌쩍.

양손으로 도끼를 집은 천마가 힘을 주자 거미줄과 같은 균열이 생기면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건…….]

부서진 도끼 안에서 흘러나온 빛은 다름 아닌 아주 작은 보석들이었다.

팥알만 한 크기의 보석은 은은한 빛을 내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퍼져나오는 상큼한 향기가 탑 전체를 가득 채울 정도였다.

[미노타우로스의 유물은 육체가 아닌 무기에 숨겨져 있었군요.]

그런데 보석을 바라보던 천마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금령선과(金靈仙果)?”

놀랍게도 그 작은 빛을 내는 보석의 향기는 천마가 익히 알고 있는 영약, 금령선과와 매우 닮아 있었다.

[비밀 데이터베이스에 의하면 그 유물은 육체 능력을 증강시키는, 매우 희귀한 보물인 ‘감로석(甘露石)’이라고 합니다.]

“감로석?”

천마는 보석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향기는 매우 비슷하지만 크기가 더 작을뿐더러, 겉면에서 붉은빛이 흐르는 금령선과와 달리 푸른빛과 하얀빛이 뒤섞어 있었다.

[천마 님이 계셨던 세계에도 비슷한 것이 있었나 보군요.]

“그렇다. 흔히 볼 수 없는 귀한 영약이었지.”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데이터베이스에 나와 있지만, 실제로는 본 사람이 거의 없고, 유통도 되지 않는 보물이죠.]

목갑을 내려다보던 천마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세계는 정말 이해할 수 없군. 어째서 저런 영단이 마물의 무기에서 나온단 말인가.’

천마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다른 세계의 마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던전, 그리고 그 마물들을 처리하면 나오는 진귀한 보물들.

어째서 이 세계는 이러한 것이 당연시되고 있는 걸까.

[천마 님.]

무명은 굳어 있는 천마를 향해 커다란 눈을 들이댔다.

[괜찮으십니까.]

“아니다.”

상념에서 깬 천마는 감로석을 바라보았다.

“육체 능력을 강화시켜 준다면, 소녀의 병도 치료해 줄 수 있겠군.”

[확률은 절반 정도 될 것 같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감로석은 각성자들의 육체를 강화시켜 주는 강력한 약입니다.]

“각성자들?”

[그렇습니다. 그리고 아직 각성자라고 할 수 없는 혜원 양의 몸이 감로석의 약효를 견딜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확률이 절반이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잠시 고민하던 천마는 덕지덕지 묻었던 피가 바싹 말라버린 고개를 가로저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잖나.”

[그렇습니다. 고블린 버서커에서 나오는 약 역시 각성자들만이 먹을 수 있으니까요.]

[다만 이 약을 먹였다가 혜원 양이 잘못되면, 그 모든 원망은 천마 님이 들어야 할 겁니다.]

“상관없다.”

어두운 탑의 천장을 바라보던 천마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그런 건 익숙하니까.”

* * *

달빛마저 구름 속에 숨어 있는 깊은 밤.

김혜원은 병실에 홀로 곤히 잠들어 있었다.

스르르륵.

그때 병실의 문이 조용히 열리며 시꺼먼 그림자가 그녀의 침상 앞에 불쑥 나타났다.

천장에 닿을 법한 큰 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붉은 눈동자. 바로 천마였다.

“누구세요?”

인기척을 느낀 김혜원이 눈을 부스스 비볐다.

“어? 천마 아저씨? 무명아.”

[몸은 괜찮으신가요? 혜원 양.]

“이 시간에, 여긴 어떻게…….”

김혜원이 눈을 깜빡일 찰나, 천마가 품속에서 반짝이는 보석, 감로석을 내밀었다.

“소녀의 병을 낫게 해줄 수 있는 약이다.”

“네? 제 몸을요?”

“그렇다. 몸을 아주 튼튼하게 해주는 약이라고 하더군.”

천마가 김혜원의 손에 감로석을 쥐여주자, 무명이 말했다.

[단, 약의 효능으로 인해 오히려 혜원 양의 몸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 각성자들이 먹는 약이거든요.]

“각성자들?”

[그렇습니다. 저는 오직 이 방법만이 혜원 양의 몸을 치료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김혜원은 팔을 내민 천마를 바라보았다.

미약하나마 전기 능력을 지닌 그녀는 어둠 속을 어느 정도 훤히 볼 수 있었다.

달빛을 등진 천마의 옷과 무명의 얼굴은 진득한 핏물로 뒤덮여 있는 것 같았다.

“저 때문에… 던전에 가서 이걸 구한 거예요?”

“신경 쓸 필요 없다. 그냥 마실 겸 나간 것뿐이니.”

덤덤히 서 있던 천마가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확률은 절반이다.”

그 말에 손에 쥔 감로석을 바라보던 김혜원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리고 주저 없이 감로석을 입 안으로 꿀꺽 삼켰다.

“두렵지 않나.”

“두려워요. 하지만…….”

바위처럼 굳은 천마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김혜원이 시선을 피했다.

“왠지 아저씨가 어떻게든 해줄 것 같아서요.”

팔짱을 낀 채 묵묵히 서 있던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감이 좋군.”

우우웅.

남아 있는 내공을 모조리 끌어올린 천마의 손가락에서 하얀빛이 터져 나왔다.

교양 차원에서 익힌 정파의 무공, 일양지(一陽指)였다.

치이익.

천마가 손을 뻗어내자 일양지의 기운이 소녀의 등 뒤, 명문혈에 파고들었다.

“어?”

부드러운 진기가 등 안으로 파고들자 김혜원은 눈을 깜빡였다.

온몸의 핏줄이 따스한 물 안에 들어간 듯한 느낌이 드는가 싶더니, 이내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다.

“흠.”

천마는 일양지 공력을 이용해 김혜원이 먹은 감로석의 맹렬한 기운을 서서히 경맥으로 퍼트리고 있었다.

모든 마종방학에 통달한 천마.

그는 일양지를 창시한 대리국의 황제 단정명조차 능가할 만큼, 능수능란하게 일양지법을 구사하고 있었다.

“흠.”

감로석의 약효를 완만하게 경맥으로 퍼트린 천마는 이마의 땀을 닦았다.

“한잠 푹 자고 나면 모든 게 나아지겠지.”

그리고 다시 손을 뻗어 김혜원의 정수리 부근을 가볍게 점혈했다.

“다만, 오늘 일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천마는 일양지로 지독한 약효뿐만 아니라, 비공(秘孔)을 짚어 방금까지의 기억을 싹 지워버린 것이다.

[놀랍습니다. 천마 님은 기억을 지우는 것도 가능한 건가요?]

“본좌는 신이 아니다.”

내식을 조절해 진기를 갈무리한 천마가 덤덤히 말했다.

“영약의 약효가 치솟을 때는 그 힘에 의해 뇌맥이 흔들려, 일시적으로 기억을 상실하는 경우가 있다. 본좌는 그것을 이용한 것뿐이지.”

[그렇군요.]

라곤 말했지만, 혈도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무명은 천마의 말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김혜원의 아픈 몸이 깨끗이 회복된다는 것만 알아들었을 뿐.

* * *

잠에서 깨어난 김혜원이 눈을 깜빡였다.

항상 아침이 되면 몸이 무겁고 심장 부근이 저리던 증상이 모조리 사라진 것이다.

가슴 부근을 매만지던 그녀는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숙였다.

“어라?”

가슴 부근에 있던 수술 자국마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김혜원은 멍한 표정으로 김창웅을 따라 병원에서 퇴원했다.

검사 결과 몸은 완전히 나았고, 심장도 마치 새 심장이 자라난 것처럼 튼튼하다고 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

김혜원의 중얼거림에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던 김창웅이 말했다.

“기적이래잖아.”

소중한 딸을 꽉 껴안은 김창웅이 울먹이며 말했다.

“정말 다행이야. 혜원아.”

“으응.”

김혜원도 아빠의 품에서 활짝 미소 지었다.

무언가 소중한 걸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좋았다.

더 이상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아도 되니까.

* * *

며칠 후.

엄마손 분식에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던 천마는 모퉁이에 있는 편의점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활짝 웃으며 계산을 하고 있는 소녀, 김혜원이 보인다.

[이젠 편의점에 안 가시는 겁니까.]

“간신히 지운 기억을 되살릴 필요는 없겠지.”

천마의 어깨에 올라탄 무명이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아쉽게 되었군요.]

“뭐가 말이냐.”

[열 개 더하기 한 개 행사 말입니다. 이제 받지 못하겠군요.]

“흥.”

천마는 나직이 코웃음을 쳤다.

“본좌는 그런 하잘것없는 혜택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

[맞습니다. 하잘것없는 혜택이지요.]

천마를 바라보던 무명이 위잉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해가 질 무렵, 특수대응팀 빌라 5층 상황실.

자신만만하게 이야기를 모두 마친 유은호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초홍만이 놀랍다는 표정을 지을 뿐, 한만재와 신채영의 표정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역시 안 되려나.’

사실 한만재의 아내는 불법을 저지른 미등록 각성자들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신채영은 어떠한 경우에도 법과 규칙에 예외 따윈 두지 않는, 살벌하리만큼 냉철한 원칙주의자다.

표정을 보아하니 두 사람은, 이 정도 가지고는 미등록 각성자인 천마를 가만히 놔둘 생각은 없는 듯 보였다.

“조금만 더 지켜보죠.”

무겁고 텁텁한 공기가 흐르는 분위기를 감지한 초홍이 말했다.

“지금까지 저자가 던전에 간 건, 자신의 이익 때문이 아니라 오직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였어요.”

한만재와 신채영을 번갈아 바라보던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타인을 구하기 위해 던전에 들어간 자를, 무작정 범법자로 취급하고 처벌하는 건 논란의 여지가 있어요. 늘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 김수웅 실장에게 빌미를 줄 수도 있고요.”

“가만히 놔두는 게 더 문제 아닙니까? 그러다 저자가 무슨 사고라도 치면요.”

한만재의 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초홍은, 매우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금 기소 의견으로 협회에 보고해 봤자, 정상 참작되어 벌금형에 그칠 거예요. 그럴 바엔 차라리 저자의 불법 행위가 확실히 발견되면, 그때 처리하는 게 확실한 방법이겠죠.”

허공에 떠 있는 천마의 입체 영상을 가리킨 초홍이 다시 말했다.

“지금으로선 무슨 큰 사고를 칠 만한 인물처럼 보이진 않지만요.”

한만재는 불만이었으나, 초홍이 내린 판단은 합당했으며 이치에도 맞았다.

할 말이 없어진 한만재가 입을 꾹 다물자 초홍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끝내요.”

한만재와 신채영은 말없이 상황실 밖으로 나왔다.

유은호는 초홍과 둘이 남게 되자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의외네요. 이 정도면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해해 준 거야. 원래대로라면 두 사람… 절대로 미등록 각성자를 가만히 놔둘 성격이 아니니까.”

초홍은 아쉬워하는 유은호의 표정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이번 일로 감동을 받은 건 알겠는데, 왜 저자를 그렇게 신뢰해? 사람은 오래 봐야 안다고 입버릇처럼 떠들 땐 언제고.”

“직감이에요.”

“뭐?”

“제 직감 꽤나 잘 맞잖아요. 저 사람, 절대 힘을 나쁜 데 쓸 사람 아니에요.”

유은호는 자신 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조만간 형님이랑 채영이도 이해하게 될 상황이 올 거예요. 반드시.”

두 사람의 상황과 성격을 생각한다면, 실현 가능성 없는 소리다.

초홍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일하고 올 테니까 쉬고 있어.”

“팀장님. 아직도 노병에서 야간 알바해요?”

“놀면 뭐 해. 히든몬스터가 매일 나오는 것도 아니잖아.”

탁탁 손을 턴 초홍은 상황실을 빠져나왔다.

머지않아 유은호의 호언장담이 정확히 적중한다는 걸 알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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