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41화 (41/285)

제41화. 천마와 뺑소니 각성자

세이프던전 지역, 거대한 동굴 형태의 어느 A급 던전.

“임호진. 너 또 밤새 술 처먹었냐?”

대검을 등에 찬 팀 매즈(mads)의 리더 김광석이 후미에서 끙끙대며 걷고 있는 임호진을 노려보았다.

“던전 가는 날에는 술 먹지 말라고 했지? 네 스킬은 컨디션 영향을 많이 받잖아.”

“알았어. 알았다고.”

임호진이 짜증스럽게 손을 내젓자 앞에서 김광석 옆, 단검을 손에 쥔 손창민이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걱정되네. 또 저번처럼 스킬 실패하는 거 아니겠지.”

“다 들리거든?”

임호진이 짜증스럽게 대답할 무렵.

뿌우우우!

저 멀리 어둠 속에서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A급 던전의 보스 몬스터. 포이즌 엘리펀트의 울음소리였다.

“저게 왜 벌써 나와?”

손창민이 외치자 김광석이 다급히 외쳤다.

“호진아. 호진아. 빨리 투명 은신 스킬 넣어!”

투명 은신 스킬.

6급 각성자인 임호진의 스킬로, 원하는 대상을 투명화시킬 뿐만 아니라 기척까지 없애준다.

팀 매즈에는 에너지 필드와 같은, 상위 몬스터의 공격을 받아낼 수 있는 탱커가 없기에, 임호진의 투명 은신 스킬로 몬스터의 공격을 피해냈다.

“알았어.”

심호흡을 한 임호진이 팀원들을 향해 양손을 벌렸다.

동시에 투명한 물결이 사방으로 퍼지더니 임호진을 포함한 다섯 명의 팀원들에게로 덮어 들어갔다.

우웅.

낮은 진동 소리와 함께 점차 팀원들의 몸이 완전히 투명해졌다. 하지만 그때,

“잠, 잠깐! 나는!”

그중에 손창민만은 허리 아래쪽만 투명해졌을 뿐, 상반신은 또렷하게 보였다.

“잠, 잠깐 기다려.”

당황한 임호진이 팔을 내밀자 이번엔 손창민의 상반신이 투명해지고, 하반신이 멀쩡하게 드러났다.

“장난해? 지금 눈앞으로 포이즌 엘리펀트가 오고 있는…….”

주위를 살핀 채 이를 꽉 깨문 손창민이 소리칠 무렵.

쿵. 쿵.

거대한 그림자가 어둠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생김새는 코끼리와 비슷한데 전신에 칼날과도 같은 돌기가 무수히 솟아 있다.

바로 이 던전의 보스 몬스터, 포이즌 엘리펀트였다.

뿌우우우!

포이즌 엘리펀트는 모습을 감추지 못한 손창민을 보더니 돌기가 솟아 있는 기다란 코를 하늘 위로 쳐들었다.

* * *

“이 개자식!”

던전 밖으로 나온 김광석은 임호진의 멱살을 쥐었다.

“내가 술 먹지 말랬지!”

팀 매즈의 팀원들은 전신에 크고 작은 상처들이 가득했다.

특히 동료의 등에 업힌 손창민은 피투성이가 된 채 신음성을 내고 있었다.

“이 개자식아! 대체 몇 번째야! 아예 술을 처먹었으면 나오지 말라고! 또 뒈질 뻔했잖아!”

벌써 여섯 번째였다.

임호진의 투명 은신 스킬을 믿다가 팀원들이 중상을 입은 횟수가 말이다.

김광석을 비롯한 팀원들이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임호진의 술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차라리 네가 안 기어 나오면 투명 은신 스킬 따윈 기대 안 하고 정공법을 쓴다고!”

분노에 찬 김광석은 임호진의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쓸 수 있다고 기어 나왔잖아! 그럼 제대로 써야지! 팀원들에게 은신을 걸어주는 새끼가 던전 공략 일정을 잡는 전날까지 밤새 퍼마시면 어떡해!”

김광석의 외침에 뒤에 있던 다른 동료가 다급히 말했다.

“광석아. 지금은 창민이 치료가 급해. 빨리 복귀해야 해.”

“이 개자식.”

임호진의 몸을 홱 밀어버린 김광석이 몸을 돌렸다.

“임호진, 이젠 넌 우리 매즈 팀원이 아니야. 알겠어? 다른 팀이나 알아보라고.”

“씨팔. 알았다. 알았다고.”

“뭐?”

임호진은 김광석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더러워서 안 해. 씨펄. 다른 팀 찾으면 될 거 아냐?”

큰소리를 친 그는 씩씩거리며 팀원들을 지나쳤다.

“뭐, 여기가 아니면 다른 팀에 못 들어갈 줄 아나. 퉤.”

팀 매즈의 팀원들을 하나씩 노려보던 임호진은 가래침을 바닥에 뱉은 후 자리를 떠났다.

* * *

며칠 후, 저녁 무렵. 시내 어느 번화가의 선술집.

“더럽게들 입이 싸네.”

테이블 위에 채워진 위스키를 쭉 들이켠 임호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투명 은신 스킬을 가지고도 팀을 못 구하다니.”

투명 은신 스킬은 상당히 희귀할뿐더러, 다양한 전술이 가능하기 때문에 여러 각성자 팀들이 탐을 낸다.

하지만 임호진은 이미 각성자들 사이에서도 개망나니로 소문이 나 있는 상황.

새로운 팀에 들어가려고 며칠간 알아봤지만, 그를 받아주겠다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솔로로 다녀본 적도 없으니… 다른 곳으로 떠야 하나.”

어차피 소문이 쫙 퍼진 이상, 이 지역에 남아 있긴 글렀다.

차라리 다른 도시로 가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래. 나가자. 조만간 집만 빼면 도시도 빠이빠이다.”

마음을 정한 임호진은 다시 잔에 담긴 위스키를 쭉 비웠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선술집 밖으로 나갔다.

“아아, 스트레스 받는구만.”

비틀거린 임호진은 주머니에 있는 차 키를 집어 들었다.

술을 취할 때까지 마시는 것도 문제지만, 그의 가장 나쁜 습관은 음주 후 꼭 운전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점이었다.

“자, 마지막으로 한번 달려볼까.”

골목길에 세워둔 노란색 스포츠카의 시동 버튼을 누르고 액셀을 꽉 밟았다.

우우웅. 끼이이익.

낮은 배기음 소리와 함께 제자리에서 바퀴가 헛돌기 시작하더니, 총알처럼 차량이 튀어 나갔다.

“뭐, 뭐야!”

골목길에 지나다니던 사람들은 임호진의 스포츠카를 엉겁결에 피하며 소리쳤다.

“똑바로 운전해!”

“하하하!”

창문을 열고 음악을 크게 틀어재낀 임호진은 텅 비어 있는 시내 도로를 달렸다.

차량이 빠르게 달리면 달릴수록 불빛들이 어지럽게 반짝였다.

계기판의 속도계는 어느덧 160km를 넘기고 있었지만, 반대로 임호진의 두 눈은 스르륵 감겼다.

“음? 잠깐 졸았나. 어어어?”

다시 눈을 뜬 임호진의 앞에 번뜩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 노인이 보였다.

끼이이익.

브레이크를 꽉 밟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차량이 멈췄다.

하지만 때는 늦어, 퍼억 소리와 함께 길을 걷던 노인은 차량에 받쳐 반대편 인도 위에 나동그라진 상태였다.

“허억. 허억.”

운전대를 붙잡고 있던 임호진은 식은땀을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씨팔. 하필 또…….”

이를 꽉 깨문 그는 차량 밖으로 내려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폈다.

한적한 도로라서 다행히 CCTV 라던지,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살아 있는 건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노인은 미동조차 없었다. 주위를 다시 살핀 임호진은 조심스럽게 양팔을 벌렸다.

우웅.

낮은 진동 소리와 함께 쓰러져 있는 노인의 몸이 점차 투명해졌다.

“이렇게 해두면 언제 이렇게 된 지 모를 거야.”

음흉한 미소를 감춘 임호진은 찌그러진 보닛을 열어 손바닥으로 두들겨 피기 시작했다.

6급 각성자인 그에게 자동차 보닛을 피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철컥.

다시 차량에 올라탄 임호진은 황급히 도로를 빠져나갔다.

이틀 후, 어느 구축 아파트 상가 분식집 안.

-도심 한복판에서 기묘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오늘 아침 XX로 입구 교차로 부근 인도에서 피를 흘리는 노인이 갑자기 나타나…….

벽에 설치된 TV에선 며칠 전 일어났던 사건에 대해 보도하고 있었다.

-…피해자인 A씨는 뒤늦게 발견되어,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숨졌습니다.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각성자의 은신 스킬처럼…….

구석 자리에서 비빔밥을 우물우물 씹고 있던 천마는 무표정한 얼굴로 TV를 바라보고 있었다.

“쩝쩝쩝.”

천마의 턱은 정교한 기계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정한 박자로 입안의 음식물들을 절삭하고 있었다.

[xx로 입구 부근이면 천마 님의 옥탑방과 가까운 곳이군요.]

천마의 어깨에 올라 TV를 바라보던 무명이 눈을 번뜩였다.

[범인은 볼 것도 없이 각성자일 겁니다. 만약 천마 님이 근처에 계셨더라면 잡을 수 있었을 텐데요. 안타깝습니다.]

“후루룩.”

대접을 통째로 쥐고 국물을 후루룩 들이켠 천마는 흥미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비빔밥을 입에 넣었다.

여러 가지 TV 프로를 좋아하는 천마였으나, 유독 뉴스에 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다음 날.

매장에서 일찍 퇴근한 천마는 옥탑방에 돌아와 인테리어 서적을 읽고 있었다.

교자상을 펴고 꼿꼿이 앉아 있는 천마를 바라보던 무명은 지루한지 한쪽에 있는 충전스테이션으로 쏙 들어갔다.

“흐음.”

열심히 책을 읽던 천마가 침음을 내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새벽 1시. 삼매경에 빠져 내리 다섯 시간을 내내 책만 읽고 있었던 것이다.

“새삼 놀랍군.”

[뭐가 말입니까.]

충전스테이션에 있던 나노봇의 질문에 천마가 자문자답을 했다.

“이 세계의 글자를 무리 없이 읽는 것 말이다. 하긴, 땅을 밟고 서 있는 신이 있는 곳이니… 이상할 것도 없나.”

몸을 일으킨 그는 주섬주섬 밖으로 나갔다.

[어디 가십니까.]

무명이 쪼르르 따라 나오자 천마가 말했다.

“출출하군. 밖에 나가서 요기라도 해야겠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둥그런 몸체에서 발을 뽁 하며 빼낸 무명은 천마의 어깨에 풀쩍 튀어 올랐다.

[이 부근엔 새벽까지 운영하는 음식점은 없습니다.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는 편의점을 추천드립니다.]

[각성자 전용 편의점은 제외하겠습니다. 거긴 음식이 아니라 가공되지 않은 식재료가 더 많으니까요.]

무명은 천마의 발아래에 화살표를 쏘아주었다.

천마가 무덤덤하게 화살표를 보며 걸어가고 있을 무렵.

끼이이이.

요란한 타이어 마찰음과 함께 모퉁이에서 크게 원을 그리며 질주하는 노란색 스포츠카가 보였다.

쿠아아앙.

정신 나간 것처럼 달리는 스포츠카를 바라보던 천마가 걸음을 멈췄다.

[천마 님, 피하십시오.]

“무엇을?”

[차량의 비정상적인 움직임으로 미루어볼 때 음주 차량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경로를 봤을 때 천마 님을 향해 돌진할 확률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콰앙!

폭음과도 같은 소리가 들리며 고속으로 달려오던 스포츠카가 천마의 몸을 들이받았다.

하지만 천마는 그 자리에서 우뚝 서 있었고, 오히려 스포츠카가 박살 난 채 보닛에서 하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별거 아니다.”

비록 내공이 거의 소실되었다고 해도, 천마의 육체는 금강지체에 이르러 있다.

그 단단함은 육체를 강력한 물질로 변화시키는 육체 계열 A급 스킬, ‘경질화’를 능가할 정도.

즉, 덤프트럭이 전력으로 와서 부딪쳐도 목숨에 지장이 없는 수준이다.

철컥.

그때 차문이 열리고, 검은 재킷을 입은 젊은 남성이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젠장.”

눈이 풀린 남성은 장승처럼 우뚝 선 채 스포츠카에 끼어 있는 천마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며칠 전에 노인을 치어 죽였던, 6급 각성자 임호진이었다.

“또 죽은 건가.”

오늘도 잔뜩 술에 취한 듯, 이마를 붙잡은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양팔을 벌렸다.

우웅.

그러자 낮은 진동과 함께 투명한 기운이 물결치며 천마의 몸으로 쏟아져 나왔다.

“뭐냐.”

몸 주변으로 퍼지는 파동은 천마가 입고 있는 광마혈투의에 닿자마자 스르르 사라졌다.

모든 외부의 힘을 밀어내는 광마혈투의의 공능으로 인해 스킬이 먹히지 않는 것이다.

“뭐야, 이건.”

확 풀린 눈으로 우뚝 서 있는 천마에게 다가간 임호진이 눈을 비볐다.

“왜 투명 은신 스킬이 안 먹히지? 며칠 전에 죽인 노인한테는 잘 됐는데.”

그러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붉은 눈동자와 마주친 임호진이 뒷걸음질 쳤다.

놀랍게도 차에 끼어 있는 거구의 사내는 멀쩡한 상태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던 것이다.

[천마 님. 며칠 전에 보도된 뺑소니 사건의 범인이 이 사람인 것 같습니다.]

천마의 어깨에 올라탄 무명이 앙상한 팔로 임호진을 가리켰다.

[그때도 노인을 치어놓고는 은신 스킬로 사건 현장을 숨긴 뒤 도주했습니다.]

“뭐, 뭐야. 나노봇?”

그제야 임호진은 정신을 번뜩 차렸다.

붉은 눈을 가진 근육질의 사내, 이자도 분명 자신과 같은 각성자인 것이다.

“젠장!”

임호진은 재빨리 몸을 돌려 반대편으로 뛰어갔다.

“너 운 좋은 줄 알아, 새꺄!”

십여 년 동안 던전 밥을 먹은 베테랑 각성자이자, 타고난 싸움꾼이었던 임호진.

그는 천마를 쓰잘데기없이 근육만 부풀린 각성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천마 님. 저자를 빨리 추격하십시오. 잡아야 합니다.]

“어째서?”

[어째서라뇨. 저자는 힘없는 노인을 치어 죽인 악당입니다.]

“그게 본좌와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네?]

몸을 파고든 차를 밀어낸 천마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힘이 없는 자는 언제고 죽는다. 본좌는 관부의 사람도 아니니, 신경 쓰고 싶지 않다.”

[천마 님. 아무런 이유 없이 노인을 죽인 자입니다.]

“이유라.”

천마는 먼 하늘을 바라보며 덤덤히 말했다.

“칼끝을 이고 사는 무림인의 삶과 죽음에 이유가 있었더냐. 어차피 약육강식의 세상이다. 약한 자는 언제고 당하게 되어 있지.”

[이곳은 무림이 아닙니다.]

“상관없다.”

다른 세계에서 온 천마.

아니, 비정한 무림세계에서 살아온 천마는 타인의 죽음에 대해 무관심했다.

끝없는 혈전을 벌이며 무림을 제패한 그에겐 모르는 사람의 죽음이란, 길가의 개구리가 픽 쓰러진 것과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약육강식… 무림… 죽음…….]

갑자기 무명의 눈빛이 번뜩이더니, 위이잉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타인의 일. 그리고 자신에게조차 무심한 고독한 사용자, 천마의 심경을 헤아리려는 것이다.

[천마 님이 만마소궁을 만들게 하였던, 어린 강아지를 기억하십니까.]

연산을 마친 무명이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저런 난폭운전과 음주운전을 일삼는 자가 강아지들을 죽이는 겁니다.]

“뭐라.”

[그냥 놔두면 곧 이 도시의 불쌍한 유기견들은 저자가 모는 차 아래서 비명횡사를 하겠지요.]

무명은 인간사에 관심을 두지 않는 무심한 천마의 성격을 간파해, 강아지를 예로 들었다.

그에겐 모르는 ‘인간’의 죽음 대신, 그와 인연이 있던 ‘강아지’가 더 귀할 것이기에.

“그런가.”

자신의 발아래서 조용히 숨을 거둔 강아지를 떠올린 천마. 그의 눈에서 혈염광휘가 치솟았다.

“그럼, 잡아주지.”

[제가 추적하겠습니다.]

“필요 없다. 본좌에게도 추종술이 있으니.”

천마대능력을 끌어올린 천마는 단숨에 빌딩 숲 위로 튀어 올랐다.

허겁지겁 도망가는 임호진을 발견한 천마는 단숨에 그의 앞을 막아섰다.

“뭐야.”

귀기스러운 붉은 눈과 몸 주위에서 불타오르는 기묘한 열기.

허깨비처럼 허공에서 내려와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그림자를 보자, 임호진은 두려움이 솟구쳤다.

“너 이 새끼. 뭐야, 죽고 싶어?”

욕설을 지껄여도 반응이 없다. 임호진은 주먹을 꽉 쥐고 말했다.

“나 6급 각성자야. 무슨 말인지 알아?”

천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전신에서 번들거리는 기운을 수도로 모은 그가 손을 뻗을 찰나.

[천마 님.]

“뭐냐.”

[이곳은 CCTV가 설치된 곳입니다.]

“무슨 상관이냐.”

[천마 님에게 성가신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반대편에 보이는 골목 안쪽에서 처리하시길 추천드립니다.]

“이 새끼!”

그때, 주머니 속에 숨겨두었던 티타늄 너클을 낀 임호진이 천마의 안면에 번개처럼 주먹을 내뻗었다.

‘흐흐흐.’

피할 생각조차 못 한 채 멀뚱히 있는 천마를 본 임호진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6급 각성자인 그의 완력은 작은 트럭 하나를 들 수 있다. 거기다 티타늄 너클까지 끼었으니 정통으로 맞으면 경질화 능력을 가진 각성자라도 단방에 쓰러뜨릴 수 있다.

콰직.

“어억.”

하지만 천마의 안면을 후려친 순간, 티타늄 너클이 박살 나며 임호진의 주먹이 오히려 꺾였다.

“으으. 뭐야, 이거…….”

천마는 대답 대신 가볍게 주먹을 뻗었다.

콰앙!

솥뚜겅 같은 주먹에 얻어맞은 임호진의 몸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휘익.

천마는 단숨에 날아가 반대편 골목 벽에 쓰러진 임호진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런 은원도 없는 생명(강아지를)을 왜 무작위로 죽이는가. 살육을 즐기나.”

“생명(사람)을 죽이든 말든 네가 무슨 상관이야. 네가 경찰이야, 엉?”

“배짱 하난 두둑하군. 술기운 때문인가.”

“뭐?”

“그것부터 없애주지.”

우드득.

천마가 가볍게 손을 뻗자 임호진의 왼 손목이 으스러졌다.

“으아악!”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진 임호진이 소리를 질렀다.

“이 개새끼가!”

콰직.

이번엔 오른쪽 발목이 으스러졌다.

그제야 임호진의 눈에선 술기운 대신, 공포와 절망의 빛이 떠올랐다.

“너, 너 이 새끼.”

우두둑.

다시 오른 손목이 으스러지자 임호진은 눈물을 흘리며 엎드렸다.

“잠, 잠깐만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살려주십시오!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천마 님. 죽일 필요는 없습니다.]

눈물 콧물을 흘리며 애걸복걸을 해도 천마는 엷은 미소를 머금고 있을 뿐이다.

그 모습은 임호진이 지금까지 봐왔던 그 어떤 몬스터들보다도 더 무시무시해 보였다.

[살고 싶으십니까? 휴먼?]

풀쩍 뛰어오른 무명이 쓰러진 임호진 앞으로 다가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렇다면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 * *

-며칠 전, 도심 한복판에서 부상당한 노인이 갑자기 등장한 사건, 기억하고 계십니까? 마침내 범인이 잡혔습니다. 범인은 6급 각성자인 임모 씨로 투명 은신 스킬을 사용해…….

-…부서진 차량 안에서 중상을 입은 채 발견된 임모 씨는 지금까지 저질렀던 뺑소니 사건을 자백한 녹음 파일을 오디오에 틀어놓은 채…….

유은호의 이야기와 녹화된 홀로그램을 바라보던 초홍이 말했다.

“그럼 그 뺑소니 사건을 해결한 게 저 사람이라고?”

그때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듯 허공을 응시하던 신채영이 낮게 중얼거렸다.

“그게 좋은 일인가.”

“뭐?”

“그냥 자신의 몸을 들이받은 뺑소니범을 두들겨 패서 신고한 것뿐이잖아.”

“냉정하기는.”

얼음 공주라 불리는 신채영의 정지된 눈동자를 바라보던 유은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하긴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그리고 다시 홀로그램 플레이어를 테이블에 올려놓은 그는 씩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번 이야기를 들으면 너도 생각이 바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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