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39화 (39/285)

제39화. 천마와 특수대응팀 (1)

도심 외곽, 실드경계지역.

유령도시처럼 텅 비어 있는 이곳엔 낡고 허름한 상가 하나가 있다.

난간에서 팔을 뻗으면 실드와 맞닿을 것만 같은 이곳 옥상 위엔 벽돌로 지어진 옥탑방이 있다.

탈탈탈탈. 우르르릉.

옥탑방 맞은편에 만들어진 평상 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천마.

가까이서 들려오는 거친 엔진음과 기계음이 뒤섞인 소리를 들은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뭐냐.”

몸을 일으켜 난간 아래를 내려다본 천마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옥탑방에서 얼마 멀지 않은 텅 빈 공간에 웬 커다란 기계가 쉼 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명.”

천마의 음성에 방 안 충전스테이션에 누워 있던 무명이 떼굴떼굴 굴러 나왔다.

[부르셨습니까.]

“저게 뭐 하는 거냐.”

풀쩍 뛰어올라 천마의 어깨에 선 무명은 눈에 달린 커다란 센서를 조절하며 난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엔 건설용으로 제작된 3D 프린터가 레일 위를 움직이며 건물의 골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3D 프린터가 특수 배합된 재료들을 이용해 건물을 짓고 있군요.]

“건물?”

천마는 다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제야 마구잡이로 움직이는 것 같던 기계가 식물이 피어나듯 점차 건물의 형태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 황량한 곳에다 왜 건물을 짓는단 말이냐.”

이 실드경계지역은 때때로 천마조차 성가시게 느껴질 만큼, 몬스터들의 접근이 잦았다.

물론 천마의 덕택으로 안전한 지역이 되었지만,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최근 등장하는 히든몬스터들 때문에 죄다 나가버린 상태였다.

이제는 사람은커녕 개미 한 마리도 살지 않는 황량한 이곳에 건물을 짓다니?

[각성자협회에서 짓는 것 같습니다.]

무명이 하얀 눈을 번쩍이며 말했다.

[저 차량의 로고, 대한각성자협회의 것입니다.]

무명은 건설용 3D 프린터 근처에 세워둔 차량을 가리켰다.

그곳엔 커다란 동그라미 아래 세 개의 작은 동그라미가 그려진 각성자협회의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각성자협회?”

[그렇습니다. 이 외곽 지역의 땅값이라도 오르려나요.]

“흠.”

무명은 농담을 했지만 알아듣지 못한 천마는 관심 없다는 듯 옥탑방 안으로 들어갔다.

* * *

대한각성자협회, 전략기획실 내부.

초홍은 경직된 자세로 몸을 꼿꼿이 한 채 서 있었다. 그녀의 맞은편에는 소파에 깊이 몸을 묻은 중년 남성이 앉아 있었다.

몸에 딱 붙는 정장조차 전투복으로 보일 만큼 날카롭고 예리한 눈매를 가진 이 남성이 바로, 전략기획실의 실장 김수웅이었다.

“편히 쉬게나.”

낮은 조도의 조명 때문에 김수웅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오면서 이야기는 모두 들었겠지.”

위엄이 가득한 김수웅의 눈빛과 마주하자 초홍은 왠지 숨이 막혀오는 느낌이었다.

전대 실장이었던 박정민을 실각시키고, 특수대응팀을 유령부서로 만든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들었습니다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초홍이 항의하듯 입을 열자, 김수웅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지금까지 팀원들 모두 고생하지 않았나. 협회 차원에서 괜찮은 사택을 제공한다고 생각하게나.”

“실드경계지역에 말인가요? 가족을 꾸린 팀원도 있는데요?”

“뭐, 사람도 없으니 한가하고 좋지 않나. 듣자 하니 그 지역은 공기가 여느 시골만큼이나 좋다고 하더군.”

재밌는 농담이라고 생각하는지, 김수웅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팀원들끼리 모여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고.”

“거절하겠습니다.”

“아아, 너무 그러지 말게. 어차피 이번 임무를 위해서기도 하니까.”

“임무… 요?”

손을 저은 김수웅이 눈을 크게 뜬 초홍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특수대응팀의 주 임무가 뭔가? 갑작스럽게 출현한 히든몬스터의 퇴치가 아닌가?”

“그거랑 저희 팀이 실드경계지역에 몽땅 이주해야 하는 것과는…….”

“최근 던전에선 이상하리만큼 히든몬스터들이 자주 등장했지.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아주 위험도가 높은 히든몬스터들이 말야.”

두 눈을 가늘게 뜬 김수웅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아무리 조사를 해봐도, 꼬리가 잡히지 않아. 늘 그렇듯이 미등록 각성자들의 소행이라고 하기에도 석연치 않고.”

순간 초홍은 얼마 전에 보았던 히든몬스터, 아이스골렘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단 한 방에 제압한 붉은 눈의 사내까지.

“이렇게 무시무시한 히든몬스터들이 계속 등장한다면… 언제고 실드를 부수고 도심으로 들어올 수 있지 않겠나. 그렇다고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실드 강화 공사를 바로 진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허공을 응시하던 그는 초홍에게 말했다.

“그 일을 해결할 때까지만 지낸다고 생각하게.”

“해결이라면…….”

“히든몬스터가 자주 나타나는 원인을 조사하게. 던전을 출입하는 미등록 각성자를 통제하고, 의심나는 자는 즉시 조사해 신상을 보고하게나.”

“말씀드렸다시피, 그런 거라면 굳이 저희 팀원들 모두가 경계지역에 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초홍의 항의에 김수웅이 씩 웃었다.

“행여 발생할지 모르는 비상사태에 대한 대비책이라고 생각해 주게나.”

“네?”

“협회의 인력은 늘 부족한데, 언제 또 강력한 히든몬스터가 갑작스럽게 나타날지 모르잖나.”

김수웅이 초홍의 어깨를 두들겼다.

“자네 팀원들이 경계지역에 사는 것만으로도 비상사태에 대한 대비책은 되겠지? 일당백이라는 특수대응팀이라면 말야.”

“대비책이라면…….”

“물론 부상자들의 구출이나 구호 같은 것도 포함해야겠지. 요새 워낙 협회에 인력이 부족해서 말야.”

‘그런 거였나.’

참담함을 느낀 초홍이 두 눈을 감았다.

김수웅의 말은, 한마디로 히든몬스터 퇴치를 주 업무로 하는 특수대응팀을 아예 실드 외곽 지역을 지키는 보초로 세우겠다는 뜻이었다.

거기다 협회에서 지원해야 할 긴급 출동일까지 덤으로 얹어서 말이다.

“저희가 박정민 실장님 라인이라서요?”

결국 터져 나온 울분을 참지 못한 초홍이 말했다.

“쓸모없는 사냥개가 하기에 딱 좋은 임무를 주시는군요.”

“글쎄…. 쓸모가 없다기보단, 주인을 잘못 만난 사냥개겠지.”

결국 김수웅 실장도 속내를 드러냈다.

“하지만 걱정 말게. 나는 쓸모있는 사냥개를 결코 버리진 않으니까.”

김수웅의 눈빛이 전에 없이 날카로워졌다가, 곧 미소로 바뀌었다.

“초 팀장이 이끄는 특수대응팀원들은 일당백의 정예 요원이라고 들었네.”

초홍은 치미는 부아를 꾹 눌렀다.

한직으로 보내버리는 건지, 일당백이라고 진짜 백인분의 일을 시키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확실한 건 무언가 꿍꿍이 속셈이 저변에 깔려 있다는 것이었다.

“자네들이라면 이 일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겠지.”

칭찬인지 비웃음이 모를 말을 내뱉은 김수웅이 말했다.

“뭐, 열심히 해보게.”

* * *

며칠 후.

실드경계지역 부근엔 네모난 도형이 겹쳐져 있는 모양의 다세대 빌라 한 동이 들어섰다.

유령도시처럼 텅 비어 있는 외곽 지역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아늑하고 따뜻한 모양이다.

“장난하는 건가.”

빌라 건물 앞, 잔디가 깔려 있는 정원을 바라보던 초홍이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차라리 초소 분위기가 나는 허름한 집이나 간이 막사를 지었다면 이토록 화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건축 기술의 발달로 집을 짓는 게 저렴해졌다지만, 이렇게 공을 들여 멀쩡한 다세대 빌라를 짓다니. 평생 실드경계지역에 살라는 건가?

초홍은 도무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차라리 아무도 오지 않았으면.”

다행인지 불행인지 김수웅 실장의 임무가 모두 전달된 이후, 팀원들에게는 아무런 연락도, 회신도 없었다.

이렇게 집까지 지어주고 지원을 했는데, 만약 팀원이 한 명도 오지 않는다면?

김수웅 실장은 그 핑계로 특수대응팀의 해체를 강행할 수도 있다.

“나야 다른 부서의 말단으로라도 어떻게든 들어가면 되겠지.”

초홍은 스승인 장금선의 부탁 때문이라도 반드시 협회에 남아 있어야 했다.

하지만 실력 좋은 특수대응팀원들이 이곳에 와서 재능을 썩히는 것을 원치 않았다.

끼이익.

그때 그녀의 앞으로 날렵하게 생긴 오토바이 한 대가 멈춰 섰다.

“초 팀장님. 빨리 오셨네요.”

헬멧을 벗자 푸른 눈동자에 금발 머리를 한 미청년이 방긋 미소 짓는다.

특수대응팀의 팀원 중 공격 포지션을 맡고 있는 유은호였다.

“이야, 생각보다도 훨씬 좋은 집인데요?”

유은호가 반짝반짝 빛나는 빌라의 창문을 올려다보자 초홍이 고개를 저었다.

“너는 진짜 안 올 줄 알았는데.”

아이돌 같은 외모와 능글능글한 말투와 달리, 유은호는 육체 강화 계열 스킬 중에서도 ‘초고속 이동’이라는 S급 스킬을 가진, 2급 각성자였다.

미성년자는 던전에 들어갈 수 없음에도, 모종의 이유로 어린 시절부터 던전에 투입되었던 유은호.

뛰어난 재능 탓에 협회에서 각성자 소년 보호법을 무시하고, 어린 시절부터 암살자로 길러졌다는 소문까지 도는 실력자이기도 했다.

‘은호 같은 실력자가 여기 있어선 안 돼.’

초홍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이라도 안 늦었어. 빨리 때려치우고 어디 좋은 길드라고 찾아 들어가. 너라면 몇 달 안에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랭커가 될 거야.”

“됐어요. 그럴 생각이었음 애당초 팀에 들어가지도 않았을 거예요.”

해맑게 웃은 유은호가 양손으로 뒷머리를 감싸 쥐었다.

“뭐, 생각해 보니 이젠 슬슬 이런 한가한 임무나 하면서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요.”

“은호야.”

“맘 정했어요. 어차피 내가 빠진다고 해도… 놔줄 것 같지도 않고.”

마지막 말은 너무 작아서 초홍의 귀엔 들리지 않았다.

부르르릉.

그때 근육질 바디를 가진 커다란 픽업트럭 한 대가 요란한 배기음을 내며 빌라 앞에 섰다.

철컥 소리와 함께 트럭 문이 열리고 근육질의 중년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초 팀장님.”

삐죽삐죽한 수염과 헝클어진 머리를 갖고 있는 중후한 남성, 바로 특수대응팀의 탱커를 맡고 있는 한만재였다.

그리고 조수석에선 하얀 살갗에 앞머리 없는 칼 단발의 여성이 내렸다. 힐러 포지션을 맡고 있는 신채영이었다.

“은호야, 넌 쉬는 날도 프로텍트 렌즈를 끼고 다니냐?”

“바이크 탈 때도 좋거든요? 눈이 안 시려서.”

“그냥, 눈을 가릴 수 있는 헬멧을 써.”

한만재는 핀잔을 주면서도 웃으며 유은호의 어깨를 두들겼다.

“너도 머물기로 한 거냐?”

“네.”

시선을 교환한 유은호의 눈에서도 따스한 빛이 떠올랐다.

특수대응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데다, 우직하고 정의로운 한만재는 유은호가 가장 의지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너도 왔냐?”

한만재 옆에 있는 신채영을 발견한 유은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채영이 넌, 정말 안 올 줄 알았는데.”

“너야말로.”

신채영의 눈빛과 목소리는 메마른 사막처럼 무미건조했다.

협회에서 손꼽히는 힐러인 그녀는 ‘얼음 공주’라 불릴 만큼, 미세한 감정조차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만재가 말했다.

“곧 이삿짐 차 올 거니까, 둘은 방 정리나 좀 하고 있어. 나는 호조 데리고 오면서 장 봐 올 테니까.”

올해 나이가 마흔인 한만재에겐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하나가 있었다.

“알겠어요. 맛있는 거 많이 사 와요.”

“장이라뇨?”

초홍이 눈을 깜빡이자 한만재가 빌라 앞마당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머지 녀석들은 안 와요. 올 사람은 뭐, 모처럼 모였으니 회식해야죠.”

한만재는 팀원들 중 누가 오는지를 미리 확인해 본 터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가장 실력 좋고 마음에 맞는 팀원들만 왔다는 점이었다.

“팀장님, 법인카드 좀 주세요.”

퉁방울 같은 눈을 찡긋한 한만재가 큼지막한 손을 초홍에게 내밀었다.

* * *

지글지글.

간이 천막에 커다란 테이블을 두고, 한편엔 화로에 숯을 피웠다.

실드경계지역의 외딴 빌라 앞에선 때아닌 바비큐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한만재의 픽업트럭의 짐칸엔 화로와 숯뿐만 아니라, 온갖 캠핑 장비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

신채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었고, 유은호는 한만재의 아들인 한호조를 옆에 앉혀두고 고기를 먹이고 있었다.

“팀장님. 고기 좀 드세요.”

유은호가 우물우물 고기를 씹으며 접시를 내밀자 초홍이 메마른 미소를 보였다.

“으응.”

저 멀리 보이는 실드 경계선을 올려다보며 고기를 먹자니 헛웃음이 터져 나올 지경이다.

“은호야. 근데 저 건물 말야.”

문득 실드 경계에 맞닿을 것만 같은 낡은 건물을 바라보던 초홍이 말했다.

“저기 옥상 위에 뭐 걸려 있는 것 같지 않아?”

“어? 그러게요.”

유은호가 두 눈을 가늘게 뜨니, 옥상 위로 무언가가 펄럭이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여름철에 쓸 법한 얇은 이불 같았다.

“꼭 생긴 거 봐서는 이불 같은데.”

“저기에 사람이 사는 걸까?”

“에이, 설마요.”

“예전엔 이 부근에 각성자들이나 짐꾼들이 좀 살았다던데.”

초홍의 말에 유은호가 단호하게 손을 내저었다.

“요새는 달라요. 히든몬스터가 너무 자주 발생하니까, 실드와 맞닿은 이 부근 건물들은 완전히 비어 있다고요.”

멀리서 듣고 있던 한만재가 코웃음을 쳤다.

“야, 그럼 협회는 대체 왜 여따 건물을 지어줬냐? 그냥 빈 건물 쓰면 되지.”

“그 또라이들 생각을 제가 어찌 알겠어요.”

고개를 저으며 몸을 돌리던 유은호의 몸이 석상처럼 굳었다.

사자 갈기와 같은 머리칼로 상투를 틀고, 회색빛 민소매 옷을 입은 거구의 남성이 이곳으로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그래?”

미소를 머금은 채 유은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초홍의 눈이 화등잔만큼 커졌다.

‘저 녀석…….’

어둠 속에서 은은히 빛나는 붉은 눈동자, 바위를 쪼개 만든 것만 같은 거대한 근육.

위험도 13,000의 히든몬스터, 아이스골렘을 한 방에 부숴버린 미등록 각성자, 천마였다.

“뭐, 뭐야?”

그때 고기를 굽던 한만재도 천마를 발견하곤 집게를 곧추세웠다.

이곳에 모인 팀원들은 설령 은신 스킬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대번에 기척을 눈치챌 만한 베테랑 실력자들이다.

그럼에도 여기까지 성큼성큼 걸어오던 사람 하나를 발견하지 못했다니?

“협회에서 보내셨소?”

고기를 굽던 한만재가 경계하는 눈빛으로 성큼 다가오자 천마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무슨 말이냐.”

“시미치 뗄 것 없수다. 고기라도 자시러 온 건 아닐 거 아뇨?”

고기 집게를 들고 앞치마를 두른 한만재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천마가 피식 웃었다.

자신과 맞먹는 근육질의 사내가 앞치마를 두른 모습을 보니 갑자기 웃음을 참을 수가 없던 것이다.

“하긴, 숙수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지. 최선을 다해 구워라.”

그리고는 한만재를 지나쳐 성큼성큼 걸어갔다.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유은호의 눈빛이 가늘게 변했다. 의도적으로 자신들을 무시한다고 느낀 것이다.

“재밌는 사람을 보겠네.”

눈빛이 변한 유은호를 본 초홍이 황급히 앞을 막아섰다.

“은호야, 저 사람 협회 사람 아냐. 각성자도 아니고.”

“네?”

“그냥 앉아 있어. 내가 가볼 테니까.”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난 초홍은 성큼성큼 걸어가는 천마를 뒤따라갔다. 그런데…….

“음? 뭐지?”

분명히 천천히 걷는 것 같은데 전력으로 달려도 거리가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잠깐! 잠깐만요.”

결국 초홍이 소리치자 천마의 걸음이 멈추었다.

“뭔가.”

“미쳤어요? 이젠 대놓고 실드 쪽으로 가는 거예요?”

“뭔 소리냐.”

“지금까지 이쪽으로 몰래 던전으로 들어갔던 거예요?”

전혀 거리낌 없는 표정으로 서 있는 천마를 보자 초홍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더 이상은 안 돼요. 이제부터 저희 팀이 이 실드경계지역을 관리할 거예요.”

“관리?”

“그래요. 이제부터 저희 팀이 이곳에 머물면서 던전 내에 미등록 각성자의 출입을 통제할 거라고요. 아셨어요?”

“아니, 모르겠다.”

초홍의 시선은 천마의 뻔뻔한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쪽, 미등록 각성자잖아요.”

“그게 무슨 상관이냐.”

“더 이상 못 들어간다고요.”

그러자 천마의 붉은 눈이 가늘어졌다.

“본좌의 집에 못 들어간다고?”

“네? 집이요?”

손가락을 뻗은 천마는 멀리 보이는 낡은 건물의 옥상을 가리켰다.

“저곳이 본좌의 집이다.”

자세히 보니 옥탑의 빨랫줄엔 하얀 이불이 반듯하게 걸려 있었다.

황당함을 금치 못한 초홍이 말을 더듬거렸다.

“저, 저기 위에 산다고요?”

“그렇다.”

“왜요?”

“왜냐고.”

턱을 잠시 쓰다듬은 천마가 덤덤히 말했다.

“전망도 좋고, 옥상의 탁 트인 공간을 쓸 수 있지 않나.”

“고작 그런 이유로… 실드경계지역에 산다고요?”

냉동실에 얼려진 동태처럼 굳어 있는 초홍을 내려다보던 천마가 말했다.

“뭐, 점주의 말에 의하면 무엇보다 집세가 저렴하다는 것이 큰 장점이라더군. 본좌가 고려할 사항은 아니다만.”

잠시 말을 끊은 천마는 잠시 곤혹스러운 눈빛으로 멀리 보이는 빌라를 응시했다.

“저 건물에서 사는 건가.”

넋이 나간 초홍은 고개만 끄덕끄덕거렸다. 천마가 탁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성가시군.”

그리고 다시 몸을 돌린 천마는 이윽고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휘익.

그때 맹렬한 바람 소리와 함께 신채영과 한만재, 그리고 한호조를 안고 있는 유은호까지 초홍에게 달려왔다.

“뭐죠? 저 사람?”

유은호가 다가와 묻자 초홍이 초점 없는 시선으로 말했다.

“저 녀석. 왜 이런 곳에 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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