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38화 (38/285)

제38화. 천마와 일일일선

이 세계에는 땅을 밟고 살아가는 대지유신들이 있다.

이 도시의 외곽, 황량한 숲속엔 아주 독특한 요신이 살고 있었다.

일일일선(一日一善). 속칭 일선.

하루에 한 번, 반드시 착한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는 요신이다.

하지만 매일 착한 일을 하는 것 때문에 오히려 악명을 떨치고 있었는데…….

세이프던전 지역.

“살, 살려!”

북서쪽에 있는 C급 던전, ‘빨간 우산’ 던전의 입구 앞.

부상을 입은 듯 피투성이가 된 대여섯 명의 각성자들이 드러누운 채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백의를 입고 주전자 모양의 가면을 쓴 요신, 일선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조금만 참으세요. 지금 움직이면 뼈가 다시 어긋나니까요.”

우스꽝스러운 주전자 가면에선 예상외로 맑고 또랑또랑한 소녀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뼈를 맞춰드리고 부목을 대어놓았으니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 거예요.”

“꺼져! 누가 뼈를 맞춰달래?”

비명을 지르고 있던 각성자들 중 한 명이 소리쳤다.

“치료는 필요 없어! 곧 협회에서 구조대가 올 거란 말야! 거기엔 힐러가 있으니 그냥 우리를 놔두라고!”

“그럴 순 없어요. 이대로 놔두면 상처가 덧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상관하지 말… 어억!”

항의하던 각성자는 일선이 어긋난 팔을 비틀자 두 눈을 뒤집으며 비명을 질렀다.

“조금만 참으세요. 어긋난 뼈를 맞춰드리는 거니까.”

“그, 그냥 제발 좀 놔두라고. 으아악!”

각성자들의 소리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일선이 열심히 팔을 비틀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폐건물 위에서 그 모습을 멀리서 내려다보는 그림자가 있었다.

바로 천마였다.

“몸에 신력이 흐르고 있는 걸 보니, 신인가.”

장채원의 부탁으로 정교한 줄자를 만들기 위해 도마뱀 형태의 몬스터, 데몬 리자드의 유물 ‘쭉쭉뼈’를 입수하고 돌아온 천마.

펑소 같으면 귀찮은 일이었으나 어제 구매했던 귀면탈을 쓰고 싶어 얼른 던전에 다녀온 터였다.

그런데 어디선가 고통에 찬 비명 소리가 들려오자 무슨 일인가 싶어 달려와 본 것이다.

“아악! 그만해! 제발! 제발요…. 으허헝.”

일선이 부러진 뼈를 억지로 맞춰줄 때마다 각성자들 눈에선 닭똥 같은 눈물이 줄줄 흘렀다.

“신이 아니라…….”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천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 고문을 즐기는 자로군.”

나흘 후. 오전 열 시 무렵, 복복 인테리어 내부.

따르르르릉.

낡은 데스크 전화기에서 요란한 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신뢰가 들어온 것이다.

책상에 앉아 있던 장채원이 벌떡 일어나 나팔꽃 모양의 수화기를 들었다.

“네. 복복 인테리어입니다.”

수화기에 들려오던 음성을 묵묵히 듣고 있던 장채원이 커다란 눈을 깜빡였다.

“아, 네. 안녕하세요?”

묘한 표정을 짓던 장채원이 서랍을 열어보았다.

그곳엔 붉은 봉투가 있었고 그 안에는 아름답게 피어난 다섯 개의 꽃이 그려져 있었다.

“아, 네에.”

봉투를 보고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정중하게 말했다.

“스케줄을 확인하고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달칵.

전화를 끊은 장채원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대걸레질을 하던 천마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가.”

“으응. 신뢰.”

“표정이 좋지 않군.”

“그게…….”

장채원의 표정은 뭔가 모르게 어색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이분 평판이 조금 안 좋거든.”

“평판?”

“응. 일선 님이라는 요신 님인데, 일을 맡기는 게 아니라 골탕을 먹이려 한다는 소문이 있어.”

“일을 맡겨놓고 골탕을 먹인다… 라. 그거 재미있군.”

대걸레 막대기를 움켜쥔 천마가 혀를 할짝거리자 장채원이 손을 휘휘 저었다.

“아, 아니. 정확한 건 아니고… 여하튼 소문이 그래. 실제로 얼마 전 7급 영지, 조명 매장에서도 일선 님에 대한 의뢰를 거절한 적도 있었으니까.”

붉은 봉투를 내려다보던 장채원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서 나도 고민 중인 거야. 천마 널 보내야 할지, 아님 거절해야 할지.”

“고민할 것도 없다.”

대걸레를 창고에 갖다 놓은 천마가 손을 탁탁 털었다.

“지금까지 본좌는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모든 역경을 헤쳐나갔다. 즉, 어떤 의뢰라도 완벽히 수행해 낼 수 있다는 거지.”

“으음…….”

“뿐만 아니라, 본좌의 내공이 아직도 반 갑자에 머물고 있다. 이런저런 일을 마다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지.”

장채원은 쓴웃음을 지었다.

일반적인 의뢰와 달리 신뢰에 한해서만큼은 천마는 별다른 문제 없이 완벽히 의뢰를 처리했으니까.

“좋아. 알았어.”

어깨를 으쓱한 장채원이 다시 나팔꽃 모양의 수화기를 들었다.

도심 외곽의 어느 깊은 숲속.

커다란 공구통을 들고 몸에는 노란 호스를 칭칭 감은 천마가 낡은 판잣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하군. 분명 신뢰인데.”

신이 머무는 곳이라면 응당 땅에서 신력이 솟아나야 정상이다.

하지만 판잣집 근처에선 어떠한 신력도 느낄 수 없었다. 게다가 창문 너머 보이는 구조는… 집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작업실이나 창고와 같은 형태였다.

끼이익.

그때 판잣집의 문이 열리고 작은 그림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복복 인테리에서 오신 거죠?”

문을 열고 나온 그림자를 발견한 천마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자는…….’

눈앞에 나타난 자는 얼마 전에 던전 앞에서 쓰러진 각성자들의 뼈를 강제로 맞추고 있던 주전자 가면이었다.

천마가 입을 벌릴 무렵 주전자 가면, 아니 일선이 해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천마 님 말씀 많이 들었어요. 다른 세계에서 오셨다고요.”

주전자 가면에는 스피커가 달려 있는 듯 맑은 목소리에 기계음이 섞여 있었다.

“저, 천마 님?”

멍하게 서 있던 천마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두 손을 모았다.

“아, 처음 뵙겠소이다. 일(一) 선생.”

요신이라곤 하지만 주전자 가면을 뒤집은 채 젊은 소녀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적당히 선생이라 이름 붙였다.

일선은 그 호칭이 마음에 들었는지 맑은 웃음소리를 내었다.

“네네, 반가워요.”

일선이 부탁한 의뢰는 이 낡은 판잣집을 수리해 달라는 것이다.

나무로 된 바닥과 천장 곳곳이 손상되어 있었다. 내부를 유심히 살피던 천마는 휴대용 컴프레셔에 에어타카를 연결했다.

퓨슉.

연결음이 들리자 천마는 묘한 고양감을 느꼈다.

지금까지 목수들이 사용하는 걸 구경만 했던 천마가, 마침내 공기의 힘으로 타카핀(일종의 못)을 발사할 수 있는 에어타카를 손에 쥔 것이다.

“그럼 시작하겠소이다.”

푸슈슈슉.

푸식푸식.

타카 총을 쏠 때마다 무너진 목재가 착착 붙는다.

솔직히 말해 천마의 목공 솜씨는 엉터리 목수를 뜻하는, 속칭 ‘개목수’에 가까웠다.

하지만 워낙 집이 낡은 탓에 목재를 이어붙이는 것만으로도 어찌어찌 수리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제가 도와드리겠어요.”

일선이 나서자 천마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소. 위험하니 물러나 있으시오.”

“아니에요. 저는 일선인걸요.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양팔에 힘을 주고 기합을 넣은 일선이 천마에게 다가왔다.

“여길 잡아드리면 될까요?”

“공구, 제가 갖다 드릴게요.”

“잠깐만요. 사다리가 조금 삐뚤어진 것 같은데요.”

하지만 일선의 모든 행동은 도움이 아닌, 사사건건 훼방을 놓는 것과 다름없었다.

“기껏 고친 곳을 다시 뜯어내지 마시오.”

“타카 총을 본인의 엉덩이에 갖다 대지 마시오.”

“사람이 올라가 있을 땐 사다리를 건드리지 마시오.”

일선이 움직일 때마다 수리한 곳은 다시 무너지고, 타카 못이 천마의 엉덩이에 발사되었으며, 튼튼하게 세워져 있던 A형 사다리가 접혔다.

“후흡.”

천마는 재빨리 팔을 내밀어 목재를 잡아내고, 엉덩이를 움직여 타카 못을 피했고, 멋들어진 신법으로 땅에 착지했다.

“도움은 괜찮으니 가만히 있는 것이 좋겠소.”

천마의 엄중한 말에 일선은 미안한 듯 두 손을 모았다.

“죄송해요.”

하지만 무한 반복이었다.

천마가 일을 좀 하려고 하면 일선이 나섰고, 그때마다 일이 벌어졌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그때마다 일선은 울먹이며 두 손을 내밀었다.

“도와드리려고 한 건데!”

‘그렇군.’

그제야 천마는 왜 일선이 악명을 떨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일선은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리고 도와주기 위한 모든 행동은 도움이 아닌 행패가 되어버렸다.

“도와주지 마시오. 아니, 그냥 가만히 계시오.”

“그럴 순 없어요.”

“그럼 계속 방해하겠단 말이오?”

천마가 눈을 부릅뜨자 일선은 고개를 푹 숙였다.

“방해가 아니라… 도와드리는 건데.”

“필요 없소.”

“저는 일일일선이에요. 어떻게 도와주지 않을 수 있겠어요?”

순간 천마는 오기가 생겼다.

“좋소. 그렇다면 한번 본인을 도와보시오.”

천마는 내공과 함께 천마대능력을 같이 끌어올렸다.

미친년 널 뛰듯 하는 일일일선의 움직임은, 천마조차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빨랐기 때문이다.

휘이익익.

희뿌옇게 변한 천마의 몸뚱이가 초고속으로 이동하며 판잣집을 수리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일선도 초고속으로 천마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방해를 시작했다.

“제가 도움을…….”

“공구를 제가 집어 드릴…….”

하지만 천마의 동작은 번개와 같았다.

아무리 일선이 방해하고 망쳐도 순식간에 복구시키며 점차 판잣집을 고쳐나갔다.

“다 했소!”

결국 무너져 가던 판잣집이 어느 정도 수리되었다.

땀을 빠르게 건조시킬 수 있는 광마혈투의를 입었음에도 천마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전력을 다해 움직여야 일선의 집요한 방해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도와드리지 못했군요.”

저물어 가는 노을을 바라보던 일선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일일일선인데… 하루에 한 번은 반드시 남을 도와야 하는데…….”

천마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대체 왜 하루에 한 번 남을 도와야 한단 말이오?”

“그것이 제가 요신이 될 수 있었던 이유니까요.”

고개를 떨구고 있던 일선이 주전자 가면을 천천히 벗었다.

“사실 저는 1,500년 전 의선(醫仙) 어르신이 기르던 영물, 현령은사(賢靈銀蛇)였어요.”

주전가 가면을 벗자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소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투명한 피부에 은빛 머리칼을 지닌 일선은 커다랗고 긴 눈에 신비로운 광채를 머금었다.

“의선 어르신께선 의술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셨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저도 반드시 하루에 한 번, 좋은 일을 하리라 마음먹었어요.”

“그래서… 요신이 되었단 말이오?”

“맞아요. 세상에 조금이라도 선업(善業)을 쌓으려는 저의 마음이 하늘에 통한 것이죠.”

내막을 알게 된 천마는 그녀의 행동을 탓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일 선생이 지금까지 하는 일은 선업이 아니라…….”

“알아요. 하지만 말이 요신이지, 능력도 없는 제가 무슨 남을 돕겠어요?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무엇이든 할 수밖에요.”

일선이 힘없이 고개를 떨구자 천마가 물었다.

“궁금한 게 하나 있소. 대체 왜 이 첩첩산중에 낡은 판잣집을 수리한 것이오?”

“제가 할 줄 아는 게 의선 님께 어깨너머로 배운 의술밖에 없으니까요. 이 도시엔 던전 때문에 부상자들이 속출하니, 의료시설을 만들어 각성자들을 치료하고 도우려 했죠.”

천마는 살짝 눈을 크게 떴다.

일전에 일선이 행하던 ‘치료’라는 건, 통각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생물만이 견딜 수 있는 치료법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남에게 도움을 바라는 일이 거의 없어요. 그래도 저는 각성자들을 도우며 하루하루를 지내왔는데…….”

그녀는 정말 속상한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밤이 다 되도록 좋은 일을 못 했으니… 저는 요신의 자격이 없는 셈이에요.”

“으음.”

일선은 천마의 눈치를 살짝 보며 말했다.

“혹시 다른 곳 수리할 곳은 없나요? 제가 이번엔 확실히 도와드릴 수 있는데.”

“절대로 없소.”

천마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만약 일선이 무슨 일을 하는 순간, 간신히 고친 이 집은 다시 망가지고 말 테니까.

“흑흑. 정말 도와드리고 싶은데.”

아무리 감정이 메마른 천마라고 하지만 아리따운 처자의 모습을 한 일선이 구슬피 울고 있으니 모른 척하기가 어려웠다.

“부탁드려요. 제가 뭔가 도울 일은 없을까요?”

“아.”

갑자기 기발한 생각이 떠오른 천마가 물었다.

“의선의 문하에 계셨다면, 일 선생께서도 의술에 정통하지 않소이까?”

일선이 고개를 끄덕이자 천마가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직접 치료를 하는 것보담, 영약을 제조하여 던전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게 어떻겠소?”

“영약이라뇨?”

“효험이 좋은 약 말이요. 본인이 있던 곳에선 성의(聖醫)라 불리는 양반이 좋은 약을 지어 병자들에게 나누어 주었소이다.”

“약을… 지으라고요?”

“그렇소이다. 이곳은 던전 때문에 부상자들이 속출하지 않소이까. 상처나 기력 회복에 좋은 약을 나누어 준다면 매우 큰 도움이 될 것 같소만.”

순간 일선은 큰 깨달음을 얻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약이라. 제가 왜 그동안 그 생각을 못 했는지 모르겠네요!”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이오.”

“하지만 저는 천마 님께 도움만 받았으니…….”

“천만의 말씀이오. 오늘 이렇게 의뢰를 준 것만으로 본인에겐 큰 도움이 되오.”

천마가 미소를 머금자 일선도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정말, 고마워요.”

그녀가 손을 내뻗자 신비로운 빛과 함께 천마의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점주와 계약한 것보다 조금 더 보수를 넣어 드렸어요.”

그녀가 주입해 준 신력은 내공으로 환산하면 자그마치 7년 정도 고련한 진기에 가까웠다.

‘반 갑자 하고도 7년의 공력을 더 얻었군.’

강력한 진기의 꿈틀거림을 느낀 천마가 두 손을 모았다.

“정말 큰 도움이 되었소이다. 감사드리오.”

며칠 후.

점심 무렵, 복복 인테리어 내부.

“후루룩.”

천마와 장채원은 응접용 테이블에서 나란히 앉아 짜장면을 먹고 있었다.

-세이프던전 지역에 홀연히 나타난다는 이동 진료소를 조심하셔야겠습니다. 주전자 가면을 쓰고 있는 정체불명의 사람이 회복제라고 나눠주는 물약이, 실제로는 근력을 성장시킬 뿐만 아니라 성격을 광폭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으아, 저건 또 웬 괴상한 짓이래.”

사무실 한쪽에 올려둔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지켜보던 장채원이 혀를 찼다.

“말이 좋아 각성자들이지, 목숨을 걸고 돈을 버는 3D 직종인데 저런 장난을 치다니. 정말 못된 사람이구만?”

“으음.”

멍하니 TV를 응시하던 천마는 씁쓸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괜한… 조언을 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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