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36화 (36/285)

제36화. 천마의 집들이

어느 아파트 인테리어 공사 현장.

위위이잉. 드르르륵.

안개처럼 흩날리는 먼지가 뒤섞인 요란한 소음이 창밖으로 퍼져나갔다.

거실 화장실에는 쭈그려 앉은 채 그라인더로 타일을 자르고 있는 타일 기사 김찬원이 있었다.

그리고 현관 입구에는 팔을 걷은 채 폐기물을 담고 있는 천마가 있었다.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졌단 말이지.”

일하는 천마의 모습을 바라보던 장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오한이 느껴질 만큼, 살벌한 기운을 내뿜던 천마.

하지만 지금은 여느 시공자들과 별다른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평온한 느낌이었다.

“어이, 천 씨.”

그때 기존 몰딩을 철거하던 목공 기술자 박 씨가 천마에게 다가와 말했다.

“폐기물 봉투에는 불연재만 넣어야 해. 그렇게 마구잡이로 넣으면 수거를…….”

“방금 뭐라고 했나.”

허리를 편 천마가 고개를 돌리자 눈동자에서 혈염광휘가 치솟았다.

활활 타오르는 지옥불과 같은 천마의 눈과 마주치자 박 씨는 몸을 부르르 떨며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 열심히 하라고.”

헐레벌떡 자리를 피하는 박 씨를 보며, 장채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타고난 얼굴은 어쩔 수 없는 건가.”

“그러게 말이여.”

어느새 주방에 있던 타일 기술자, 김찬원이 장채원의 곁에 선 채 한숨을 내쉬었다.

“얼굴이 저 지경이라 그렇지, 의외로 성격은 괜찮은데 말여.”

이래도 저래도 천마에게 친근하게 대해주는 건 역시 김찬원밖에 없는 것 같다.

묵묵히 폐기물을 담는 천마의 옆 모습을 보던 장채원이 작게 중얼거렸다.

“저 녀석, 쓸쓸하지는 않으려나.”

“으음?”

“아, 아니에요.”

장채원이 두 손을 내저을 무렵, 띠리리링 소리와 함께 그녀의 휴대폰에서 벨 소리가 울렸다.

“아, 깜빡 잊고 있었네요. 네, 지금 출발할게요.”

한참 동안 전화를 하던 장채원은 들고 있던 크림빵과 우유가 담긴 비닐 봉투를 김찬원에게 내밀었다.

“이거, 일하시는 분들하고 나눠 드세요.”

“으응.”

그리고 장채원은 천마에게 다가가 말했다.

“날도 더운데 쉬엄쉬엄해. 난 견적 내러 갈게.”

“알겠다.”

“그리고 일 끝나면 매장으로 안 와도 돼. 그냥 바로 퇴근해.”

“한나절도 안 돼서 끝날 텐데. 너무 이른 거 아닌가.”

“괜찮아. 그냥 퇴근해.”

현관으로 몸을 돌리던 장채원이 무언가 생각난 듯 물었다.

“오늘 퇴근하면 바로 집으로 갈 거지?”

“무슨 말이냐.”

“어디 들르지 않고 바로 집에 가는 거냐고.”

“물론이다.”

“알겠어.”

장채원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흔들며 밖으로 나갔다.

베란다에는 산들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김찬원은 천마와 나란히 베란다에 선 채 크림빵과 우유를 먹었다.

간식으로 배를 채운 두 사람은 나란히 선 채 살랑살랑 불어오는 기분 좋은 바람을 맞고 있었다.

“이야. 역시 천 씨의 체력은 다르구먼.”

남아 있는 우유를 쭉 들이켠 김찬원이 천마에게 말했다.

“철거팀이 와도 하루 내내 걸리는 걸 반나절 만에 처리했네.”

뭔가 말을 건네야 하는데 할 말이 없던 김찬원이 천마의 체력을 칭찬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타인에게 말을 건넬 때 칭찬만큼 좋은 방법은 없었으니까.

“나이가 들수록 체력 관리에 힘써라.”

“으응? 그게 무슨 말이여?”

“이 정도 일로 감탄을 하는 걸 보니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아쉽게도 천마에겐 칭찬은 말을 건네는 데 좋은 수단은 아닌 것 같았다.

끙 소리를 낸 김찬원이 화제를 돌렸다.

“요새는 어뗘? 타일 붙이는 연습도 종종 하는 겨?”

“물론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창고에 남아 있는 타일을 가져다 연습한다.”

“그래? 어디다 붙였는디? 내가 한번 봐줄게.”

“세이프던전 북동쪽 끝에 있는 ‘빨간 지붕’ 던전이다.”

두 눈을 반달처럼 접으며 웃고 있던 김찬원의 표정이 사정없이 굳어졌다.

“그게 무슨 소리여? 던전이라니?”

“타일을 마땅히 붙일 데가 없지 않나. 그래서 인적이 드문 던전을 찾다가 ‘빨간 지붕’이라 불리는 F급 던전 내부에 붙이고 있다.”

“안 되어야!”

안색이 변한 김찬원이 두 손을 저었다.

“던전 같은 데다 타일을 막 붙이면 큰일 나는 겨!”

“어째서 말인가.”

“던전이 불안정화가 진행될 수도 있어. 몬스터가 튀어나올 수도 있다고.”

안정된 던전이라도 현대 문물, 특히 화기에 노출될수록 불안정화가 가속화된다.

행여 타일 같은 걸 마구 붙였다가 가변던전으로 속성이 바뀌는 날엔, 감당이 불감당인 것이다.

“본좌는 상관없다.”

뻔뻔한 건 둘째치고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았다. 김찬원이 입을 벌리자 천마는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게다가 그 빨간 지붕 던전 내부는 폐건물보다 더 지저분하다. 오히려 본좌가 벽과 바닥에 타일을 붙여놓은 덕에…….”

“안 돼야! 그럼 복복 인테리어에게도 피해가 간다니께?”

천마의 양어깨에 손을 올린 김찬원이 양 볼이 휘날리도록 고개를 저었다.

“여하튼 안 돼야. 알겄지? 천 씨?”

“음…….”

침음을 하던 천마는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엔 제약이 많군. 무림에 있을 당시 본좌는 무엇 하나 거칠 것이 없었거늘…….”

꼿꼿이 선 채 먼 하늘을 바라보는 천마의 모습엔 절세대종사의 풍모가 엿보였다.

사람의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천마의 모습은 결코 먼지를 마셔가며 폐기물을 치우는 노동자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러고 보니 천 씨, 그쪽 세계에선 꽤 높은 사람이었다믄서?”

김찬원의 말에 천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높은 사람이 아니었다.”

“어? 그래? 일전에 내가 듣기론…….”

“정점에 도달한 사람이었지. 무공도, 배분도. 무림에 본좌보다 높은 사람은 없었다.”

천마의 목소리엔 어딘가 모르게 깊은 유감이 담겨 있는 듯했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무학의 극한에 이른 자신이 다른 세계에서 막일을 하게 될 거라는 건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그렇구먼.”

천마의 눈빛을 보고 그의 마음속을 짐작한 듯 김찬원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작업을 망치거나 엉뚱한 소리만 하는 천마였으나, 그것은 이곳에서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김 씨, 예전부터 당신의 말투가 몹시 이상하게 느껴진다. 본좌가 이곳에서 들을 수 있는 온갖 사투리가 다 섞여 있는 것 같은데.”

“어라? 그런 것도 구분하는 겨?”

“본좌의 하루는 책으로 시작해 책으로 끝난다. 얼마 전에는 <신토불이 우리말>이란 비급을 읽었지.”

천마의 물음에 김찬원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누구여? 대한민국에서도 손에 꼽는 바람의 일족 아니여? 젊었을 때 온 지방을 떠돌아다녔더니, 사투리가 뒤섞여서 나오는 게 버릇이 됐구먼.”

“그랬군.”

천마가 고개를 돌리자 김찬원이 물었다.

“천 씨.”

“왜 그러나.”

“그곳이… 그립진 않어?”

조심스러운 김찬원의 물음에 천마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립다… 라.’

무림이 그리울 만한 곳이었나.

무림의 패권을 잡은 뒤로 매일 하는 일이라곤, 만마집궁의 서고에 틀어박혀 책을 읽는 것뿐이었다.

유일하게 자신에게 굴복하지 않았던 자, 무림맹주 정천.

만약 그가 없었더라면 천마는 그 적막함과 고독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모르겠다.”

먼 하늘을 바라보는 천마의 눈동자에는 적막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어디에 있든 본좌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렇다. 천마는 지금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인간이 익힐 수 없다는 마문대법과 무학을 한꺼번에 완성했고, 천추만대에 남을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정점에 이른 자라면 필연적으로 느끼는 지독한 고독과 외로움마저도 말이다.

“그렇구먼.”

고독해 보이는 천마의 옆모습을 응시하던 김찬원이 화제를 돌렸다.

“그럼 좋아하는 취미 같은 건 없는 겨?”

“취미?”

“좋아하는 거 있잖여. 뭐 낚시라든가.”

“없다.”

“으음.”

김찬원 역시 인생의 쓴맛 단맛을 두루 맛본 노인이다.

그는 천마가 얼굴만큼이나 삭막하고 무미건조한 삶을 살았다는 걸 훤히 짐작하고 있었다.

팔짱을 낀 채 무언가를 생각하던 김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 씨, 오늘 일 끝나고 뭐 혀?”

“본좌의 거처에 돌아갈 예정이다.”

“아아, 이면귀 양반이 세놓은 실드경계지역 건물 말하는 거지?”

“그렇다.”

“그렇구먼. 알겠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김찬원이 낮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일과가 끝났다.

현장에서 나온 천마는 어슬렁어슬렁 지하철역으로 걸어갔다.

역사의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보니 이제 네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모처럼 일찍 나왔군.”

내일은 일요일이니 보금자리에 틀어박힌 채 책과 TV를 강도 있게 시청하겠다 마음먹은 천마였다.

역 부근으로 걸어가던 천마는 자신을 힐긋힐긋 바라보는 사람들이 아, 하고 놀라는 소리를 들었다.

“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던 천마가 낮은 헛기침을 하며 승강장으로 이동했다.

휘이이익.

지하철역에서 내린 후 주택가를 지나친 천마는 신법, 야월극속을 펼쳤다.

반 갑자 정도의 내공밖에 없음에도 야월극속을 펼친 그의 몸은 한 줄기 바람처럼 허공을 누볐다.

더러 건물 위로 훌쩍 오르는 그의 모습을 목격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던전에 출입하는 각성자쯤으로 생각하는 듯 별 반응이 없었다.

끼익.

옥탑방에 들어서자 고요한 공기가 맴돈다.

신발을 정리한 천마는 옷을 걸어놓고 욕실에 들어가 샤워기에 물을 켰다.

쏴아아아.

차가운 물이 온몸을 적신다. 욕실은 좁고 작은 탓에 천마는 몸을 웅크린 채 샤워를 했다.

“후흡.”

가볍게 공력을 끌어올리자 그의 피부가 숯불처럼 활활 타오르더니 치익 소리와 함께 몸에 있던 물기가 모조리 수증기가 되어 날아갔다.

“저녁은 아직 이르군.”

시계는 이제 다섯 시를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알몸으로 슬렁슬렁 걸어 나온 천마는 걸어놓은 광마혈투의를 다시 입었다.

자리에 앉은 천마는 습관처럼 책을 꺼내 들었다.

오늘 그가 고른 책의 겉표지엔 <자주 쓰는 인테리어 현장 용어>라는 글씨가 붉은색으로 크게 그려져 있었다.

스으윽.

교자상에 단정히 앉은 그가 책을 펼쳤다. 옥탑방은 고요했고 어떠한 잡음도 들리지 않았다.

“비슷하군.”

책을 바라보던 천마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다. 현재 그의 일과는 무림에 있었던 때와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연공(현장일)을 하고 저녁에는 서적(혹은 TV)을 즐긴다.

단지 내공이 없는 탓에 새벽녘의 운공이 추가되었고, 때때로 벌어지는 정천과의 결투가 없어졌을 뿐, 규칙적이면서 적막한 생활은 비슷했다.

[비슷하다니요. 뭐가 말입니까.]

충전스테이션에 느긋이 누워 있던 무명이 눈을 번뜩이자 천마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끄응.”

그때 문밖에서 낮은 신음성과 함께 인기척이 느껴졌다.

의아함을 느낀 천마가 책을 덮었다. 이곳 주변은 사람조차 다니지 않거늘, 누가 옥탑방까지 올라왔단 말인가?

현관 밖으로 나가보니 커다란 봉투를 잔뜩 들고 온 장채원이 활짝 웃고 있었다.

“짜잔, 놀랬지?”

-뀨뀨!(우엑, 홀아비 냄새!)

그녀의 어깨에 올라타 있던 제비도 반가운 울음소리를 내었다.

-뀨우!(집에 따순 물이 안 나오냥? 좀 씻어라.)

“그래, 본좌다.”

늘상 제비의 울음을 멋대로 해석하는 천마가 장채원을 바라보았다.

“점주가 어쩐 일인가.”

“어쩐 일이긴. 여기 오고서 아직 집들이도 안 했잖아.”

“집들이? 그게 뭔가.”

“음, 그러니까 집을 얻고 나서 하는 환영식 같은 거야.”

장채원은 끙 소리와 함께 옥상에 있는 평상에 비닐봉지를 내려놓았다. 그곳엔 채소와 고기, 음료 등이 잔뜩 들어 있었다.

“그 음식들은 다 뭔가.”

“아아, 생각해 보니 집들이 겸 회식 한번 하자구.”

“장 사장?”

그때 옥탑방 입구에서 무언가를 잔뜩 들고 있는 초로의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타일 기사 김찬원이었다.

“어? 김 기사님.”

“장 사장이 여긴 어쩐 일이여?”

“아, 천마가 이사도 했고, 모처럼 여기서 회식 한번 하려구요. 그런데 김 기사님은…….”

장채원은 김찬원이 양손에 들고 있는 봉투를 바라보았다. 그곳엔 소주와 여러 가지 안주 재료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아아, 나도 천 씨가 이사를 했다고 해서 집들이 겸 같이 한잔하러 왔지. 그런데 선약이 있었구만.”

“어머, 아니에요. 저도 약속 없이 그냥 온걸요.”

장채원이 활짝 웃었다.

김찬원은 타일 기사였지만 여러 가지 다양한 시공에 능해 그녀가 신뢰하는 기사다.

뿐만 아니라 상급요괴임에도 천마와도 죽이 맞아서, 최근에는 거의 복복 인테리어의 두 번째 정직원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안 그래도 김 기사님도 부를까 고민했는데… 너무 잘됐네요!”

“허허허허, 아니 왜 그런 걸로 고민했디야? 나야 술 한잔하자믄 언제나 콜인디.”

“잠깐만. 이곳의 주인은 본좌…….”

천마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장채원이 커다란 비닐을 내밀었다.

“이거 쌈 채소랑 구워 먹을 버섯이야. 아, 아니다. 그냥 내가 씻을게.”

도로 비닐을 뺏은 장채원이 옥탑방 안으로 불쑥 들어갔다.

“이곳은 신성한 본좌의 거처…….”

“천 씨. 숯불구이 좋아혀?”

김찬원이 손을 휘젓자 휘잉 하는 소리와 함께 돌풍이 불어오더니 옥상 위로 커다란 드럼통과 불판이 올라왔다.

“조금만 기다려 보라고. 이 몸이 진짜 맛나는 숯불구이를 해줄 텡께.”

두 팔을 둥둥 걷은 김찬원이 활짝 웃자 천마는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제가 빠져야 할 자리 같군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무명은 다시 방 안으로 떼굴떼굴 굴러갔다.

탁타탁.

드럼통에 피워놓은 장작 소리는 감미로운 음악 소리와 같았고, 밤하늘에 떠 있는 수백만 개의 별들은 그 소리에 맞춰 점멸을 반복하고 있었다.

무덤덤한 표정으로 밤하늘을 바라보던 천마의 귓가에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 씨. 난 안 취했으니 한잔 더 하자고… 내가 김찬원이여. 김찬원…….”

평상 위 탁자에는 고주망태가 된 김찬원이 엎드린 채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평상 주변에는 술병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먹다 남은 고기들과 술안주들이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이런 게 이 세계의 술자리인가.”

그야말로 광란의 회식이었다.

숯불구이에 가볍게 한잔할 줄 알았건만, 술이 잔뜩 취하자 장채원과 김찬원은 천마를 이끌고 시내의 술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2차로 거하게 술을 마시고, 3차로는 노래방에서 광란의 댄스파티를.

그리고 막차라면서 옥탑방으로 술을 잔뜩 사 가지고 와 진탕 퍼마신 것이다.

“으음.”

거실에 널브러진 음식쓰레기를 주섬주섬 모두 담은 천마가 옥탑 문을 열었다.

그곳엔 술에 취한 장채원과 제비가 옥탑 평상 한가운데에 웅크린 채 잠들어 있었다.

“난 더 이상 못 마셔…….”

-뀨우.

이마를 매만지던 천마는 문 앞에 걸려 있는 겉옷을 장채원의 몸에 덮어주었다.

그러자 희미하게 눈을 뜬 그녀가 술주정인지 잠꼬대인지 모를 이야기를 했다.

“너… 너는 왜 그렇게 멀쩡해?”

“본좌는 만독불침이다. 주독(酒毒)도 마찬가지지.”

“아아. 그렇구나.”

마치 수수께끼가 풀린 듯한 표정을 지은 장채원이 활짝 웃으며 다시 잠들어 버렸다.

‘술이 깨면 알아서 돌아가겠지.’

방 안으로 들어간 천마는, 탁자 위에 덮어놓았던 책을 들고나와 평상 앞에 앉았다. 하지만 왜 그런지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가.”

다시 책을 덮은 천마가 묘한 표정으로 동이 터오는 새벽 하늘을 응시했다.

“비슷하지 않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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