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화. 천마와 술집 (2)
초홍.
올해 스물여덟, 시내 외곽에 있는 작은 선술집 ‘노병’의 직원이다.
하지만 그녀에겐 또 다른 직업이 있었는데 바로, 정신 조종 스킬을 가진 3급 각성자이자, 대한각성자협회 본부의 특수대응팀장이었다.
어떻게 각성자협회의 팀장이 선술집의 직원이 될 수 있을까?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위장 취업.
그녀가 이끄는 특수대응팀은 전략기획실 산하에 설치된 비밀 부서로, 협회 내에서도 그 존재를 아는 자가 거의 없다.
팀원들의 정체는 모두 기밀이며, 평소에는 위장 취업을 통해 평범한 사람으로 생활한다.
두 번째, 실각(失脚).
특수대응팀의 임무는 전략기획실장 직속으로 비밀스럽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전대 협회장의 라인이었던 박정민 실장이 파벌 싸움에 밀려 은퇴하고, 반대파인 김수웅 실장이 새로운 전략기획실장이 되었다.
그로 인해 박정민 실장의 오른팔이자 실세 부서라 할 수 있던 특수대응팀이 덩달아 허공에 붕 떠버린 상황이었다.
“역시 찜찜해.”
달칵.
사무실에 들어온 그녀는 책상에 올려진 전원 버튼을 눌렀다.
홀로그램 키보드를 여러 번 조정하자 까맣게 물들어 있던 전면의 모니터에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소속을 말씀해 주십시오.
스크린에서 차분한 기계 음성이 들려오자 초홍이 말했다.
“특수대응팀장, 초홍.”
-접속이 승인되었습니다. 원하시는 명령을 말씀해 주십시오.
그녀는 들고 있던 작은 나노 칩을 컴퓨터에 넣고 말했다.
“화면에 띄운 얼굴을 스캔해. 그리고 각성자 데이터베이스에 일치하는 사람이 있는지 검색해 줘.”
모니터에 비친 것은 엄청난 근육질에 붉은 눈동자를 가진 사내의 옆모습이었다.
도무지 평범한 사람이라곤 전혀 생각되지 않는 외모다.
그녀는 선술집 ‘노병’에 설치된 내부 CCTV에 찍힌 천마의 모습을 모니터에 입력한 것이다.
촤르르르.
화면에서 수많은 각성자 신분증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일반 시민들과 달리 각성자들은 얼굴 정보만으로 신원을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일치하는 각성자가 없습니다.
“다시 검색해. 해외 각성자협회 데이터베이스까지 포함해서.”
모니터에선 다시 수많은 각성자들의 신분증이 계속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또다시 컴퓨터에서 낮은 음성이 울려 퍼졌다.
-일치하는 각성자가 없습니다.
초홍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예상대로 미등록 각성자였다.
최근 던전에는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는 또 다른 존재가 종종 발견된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다.
불가사의한 신체 능력이나 회복력을 갖고 있거나, 혹은 스킬이 아닌 전혀 다른 신비한 이능력을 가진 존재들.
그 모습은 마치 전설상의 요괴를 연상케 한다고 하였다.
“어르신의 정신 침입을 회피할 정도라면… 각성자 등록을 안 할 이유가 없을 텐데.”
미등록 각성자는 던전의 출입에 제약을 받는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강력한 힘을 가진 각성자는 등록만 해도, 부와 명예가 자연히 따라온다고 할 수 있다.
“요새 말하는 순응인도 아닐 테고.”
각성자라는 건 매번 던전에 들어가 몬스터들과 마주쳐야 하는 고단한 직업이기도 했다.
그래서 각성을 했음에도 각성한 것을 숨기거나 평범한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을 순응인이라고 불렀다.
“하긴, 뭐든 상관없나.”
각성자 등록제가 시행된 이유는 두 가지다.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미등록 각성자들이 무분별하게 던전을 파괴하거나 유물을 은닉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즉, 미등록 각성자든 요괴이든 던전에만 들어오지 않는다면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던전에만 얼쩡거리지 않으면 되는 거지, 뭐.”
은은한 광채를 띠고 있는 천마의 눈동자를 떠올린 초홍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 * *
다음 날 정오 무렵.
띠링.
곤히 자고 있던 초홍은 문자 소리에 잠에서 깨어버렸다.
“으음.”
몸을 뒤척인 그녀는 한 손을 뻗어 침대 옆 협탁에 올려둔 휴대폰을 열었다.
-얼음이 떨어졌으니 출근할 때 아이스 바질리스크 한 마리만 잡아 가지고 오너라.
선술집의 사장이자 그녀의 스승인, 장금선이 보낸 문자였다.
“아함.”
부스스한 얼굴로 침대에서 일어난 초홍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리 좀 말씀해 주시지.”
대충 씻은 후 오피스텔에서 나온 초홍은 차를 몰고 세이프던전 지역의 입구로 향했다.
그녀의 오피스텔은 도심 경계지역과 가까이 붙어 있기 때문에 차로 20분 정도면 세이프던전 지역에 도착한다.
“안녕하십니까?”
주차장에 차를 세운 그녀가 길게 늘어진 상점을 지나쳐 세이프던전 지역 입구에 도착하자, 파란 옷을 입은 젊은 직원이 인사를 건넸다.
“던전에 들어가실 건가요?”
“네.”
초홍이 입구에 있는 스캐너에 올라서자, 하얀빛이 그녀의 몸을 훑기 시작했다.
-초홍 각성자님. 환영합니다.
“네, 확인되셨습니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고마워요.”
초홍이 무심한 얼굴로 입구를 지나치자 푸른 빛을 뿜어내는 실드가 보인다.
실드의 빛은 인간이라면 아무 지장 없이 통과할 수 있으나, 마물들에게는 쇳덩이보다도 질긴 벽이 된다.
“한참 뛰어가야겠네.”
폐허가 된 세이프던전 안으로 들어온 초홍이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던전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문명의 이기는 오직 나노봇뿐이었다.
인간의 최고 발명품이라 할 수 있는 화기류나, 하다못해 작은 오토바이 같은 것이라도 던전에 닿으면 던전의 불안정화가 가속화되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쯤 던전용 차량을 타볼 수 있나.”
최근엔 던전에 닿아도 안전한, 나노봇 재질로 만든 차량과 오토바이가 제조되고 있다.
문제는 사악하리만큼 비싼 가격 때문에, 초홍과 같은 월급쟁이 각성자들은 꿈에도 못 꾼다는 점이었다.
“아이스 바질리스크는… 서쪽으로 가야지.”
주머니에서 초소형 카메라를 어깨 부근에 붙인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던전 지역의 지리와 몬스터의 특성을 구석구석 훤히 꿰뚫고 있는 탓에 나노봇은 가지고 다니지 않았지만, 던전에 갈 때마다 상황을 녹화할 수 있는 초소형 카메라를 부착했다.
협회 소속의 각성자로서, 행여 발생할 사고나 던전의 특이 사항을 녹화하기 위해서였다.
타악.
초홍은 땅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한동안 먼지를 일으키며 쭉쭉 앞으로 나아가자 저 멀리 투명하게 지어진 궁전 같은 것이 보였다.
바로 아이스 바질리스크가 산다는 던전, ‘얼음 궁전’이었다.
“어라?”
그런데 던전의 입구로 커다란 그림자가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근력증강 각성자들보다도 더 우람한 근육에, 어깨엔 나노봇을 올려놓은 남자였다.
초홍은 한눈에 어젯밤 선술집에서 삼복구를 석 잔이나 퍼마신 손님이라는 걸 깨달았다.
“저 자식. 던전에 들어오잖아?”
그렇게 안 봤었는데. 고작 유물들과 재료들을 착복하기 위해 등록하지 않았던 거야?
실망감과 분노가 뒤섞인 초홍이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콰쾅!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얼음 궁전 던전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서서히 땅속으로 가라앉는 얼음 궁전을 바라보던 초홍이 입을 벌릴 무렵.
후두두둑.
무너진 궁전 사이로 하얗게 얼어 있는 정방형의 얼음이 보였다. 그리고 그곳엔 각성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동태처럼 얼려져 있었다.
휘이이잉.
동시에 하얀 눈송이들이 회오리치더니 거대한 그림자가 서서히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곧, 으적으적 소리와 함께 그림자는 거인과 같은 형태의 얼음덩어리가 되어 갑자기 입을 쩍 벌리며 포효했다.
우우우우우!
깊은 동굴에서 터져 나오는 듯한 낮고 괴이한 포효를 듣자, 초홍은 몸이 얼음장처럼 굳어버렸다.
‘아이스…골렘?’
20미터 크기의 저 거대한 마물은 위험도 13,000에 육박한다는 히든몬스터, 아이스골렘이었다.
‘몸이 안 움직여.’
아이스골렘의 포효엔 위압과 같은 효과가 있는 탓에, 손발이 얼어붙은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
‘저게… 던전을 헤집고 다니면 큰일인데.’
저런 대형 히든몬스터는 실드를 부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공격하는 특성이 있다.
‘협회에 알려야 하는데.’
하늘까지 솟아오른 듯한 아이스골렘을 바라보던 초홍은 문뜩 근육질의 사내가 몬스터 앞에 멀뚱히 서 있는 걸 발견했다.
‘대체 뭐 하는 거야! 빨리 도망가서 협회에 알리지 않고…….’
순간 그녀의 얼굴은 굳어지고 말았다. 이미 아이스골렘이 한 손을 뻗었다.
덩치에 비해 어찌나 동작이 빠른지, 희끗하는 그림자가 보였나 싶었는데, 아이스골렘의 손은 어느새 사내를 향해 있었다.
휘이이잉.
뻗어낸 손에선 하얀 냉기가 폭풍처럼 쏟아지더니 사내의 몸을 순식간에 뒤덮었다.
‘조심해!’
초홍이 마음속으로 비명을 질렀지만, 이미 늦었다.
하얀 냉기에 적중당한 사내는 이미 한 덩이의 얼음이 되어 있었다.
크흐흐.
둔중한 웃음을 터뜨린 아이스골렘은 얼어붙은 사내와 얼음 감옥에 있는 각성자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한참을 고민하던 아이스골렘은 손가락을 뻗어 커다란 얼음 감옥을 집어 올려 자신의 입에 가져갔다.
‘사람을 얼려서 먹는 거야?’
초홍은 안간힘을 써봤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손가락만 움직여질 뿐, 아이스골렘의 위압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안 돼!’
마침내 아이스골렘의 입안으로 커다란 얼음 감옥이 들어가려는 순간,
콰직.
얼어붙은 사내의 몸에 있던 얼음이 조각조각 나더니,
파앙!
가슴을 울리는 진동과 함께 근육질 사내의 전신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천마대능력!”
커다란 고함과 함께 아이스골렘의 머리 위로 튀어 오른 사내의 입에선 벼락같은 노성이 터져 나왔다.
“권마칠식, 천수공파!”
사내가 쏟아낸 거대한 기운이 아이스골렘의 심장 부근에 머무르는 순간,
쩌쩌쩌쩍. 팅팅팅.
맑은 유리 소리와 함께 얼음으로 된 아이스골렘의 거대한 몸에 서서히 균열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릉.
마침내 조각난 아이스골렘의 몸뚱이는 가루가 되어 땅으로 흩어졌다.
‘대체 어떻게…….’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초홍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1급 각성자 수십 명이 모여야 처리할 수 있는 히든몬스터를, 한 수에 박살을 내다니?
이제야 그녀는 어젯밤 장금선이 한 말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협회가 온전하길 바란다면…….”
저 사내를 건드린다면 히든몬스터 수십 마리, 아니, 도심에 가변던전이 생기는 것 이상의 재해가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초홍의 판단은 달랐다.
‘아냐. 저런 자를 가만히 놔둬선 안 돼.’
저 사내는 강해도 너무 강했다. 저런 자를 가만히 놔둔다는 것은 시한폭탄을 방치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거기다 히든몬스터를 한 방에 처리할 정도라면…….’
히든몬스터에서 나오는 유물은 대부분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엄청난 보물들이었다.
그런데 미등록 상태에서 히든몬스터를 무작위로 잡을 수 있다?
그 말은 정체도 모르는 저 사내가 고가의 유물들을 독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나라 전체를 뒤흔들 경제 사범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후두두둑.
그때 부서진 아이스골렘의 몸에서 하얗게 빛나는 보석 하나가 떨어졌다.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한눈에 봐도 대단한 유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흠.”
하지만 놀랍게도 사내는 유물에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쾅! 소리와 함께 얼음 감옥이 부서지더니 안에 얼려져 있던 각성자들이 바닥에 쓰러졌다.
“으으.”
얼어붙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각성자들은 몸을 떨며 바들거렸다.
무심한 눈길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사내는 휙 소리와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다.
‘대체 뭐야.’
그 모습을 지켜보던 초홍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엄청난 힘을 가지고도 미등록 상태를 유지하며 던전으로 들어온 사내.
그는 갑자기 나타난 아이스골렘을 순식간에 처리하였고, 얼음에 갇힌 각성자들을 구했다.
게다가 떨어진 유물은 보지도 않은 채 유유히 사라졌다.
“대체 뭐냐고, 저 녀석.”
눈을 껌뻑이던 초홍의 팔다리가 점차 움직였다.
재빨리 휴대폰을 든 그녀는 구조 요청을 할 수 있는 비상 버튼을 눌렀다.
“세이프던전 지역, 서쪽에 얼음 궁전 던전에 부상자들이 있어요. 빨리 와주세요. ”
전화를 끊은 초홍은 다시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나노봇을 갖고 다니지는 않지만, 눈앞의 상황을 녹화할 수 있는 작은 초소형 카메라를 장착한 상태였다.
“지금 찍은 걸 협회에 보고하면…….”
그 도망간 사내의 정체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협회의 허락하에 대규모 팀을 꾸려 그자의 신병을 구속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젠장.”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저 던전의 위험한 몬스터를 없애고 사람을 구한, 자신의 이득이라곤 하나도 챙기지 않은 의인이다.
그런데 어떻게 신고할 수 있단 말인가.
“조금 더 지켜볼 거야. 만약 혹시라도 다른 마음을 먹으면…….”
어깨에 달린 초소형 카메라를 떼어버린 그녀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 * *
[천마 님. 이게 무슨 민폐입니까.]
무명은 비밀 통로에서 빠져나와 매장에 도착한 천마를 향해 큰 목소리로 말했다.
[천마 님의 과욕 때문에 빙정을 주기적으로 채집할 수 있는 얼음 궁전 던전이 폐쇄되지 않았습니까?]
“요새 날씨는 꽤나 무덥다. 본좌는 쾌적한 작업 환경을 위해 빙정 몇 개를 좀 더 챙긴 것뿐이다.”
천마가 변명하자 무명이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빙정 같은 거야 그렇다고 쳐도, 굳이 처리하지 않아도 될 아이스 바실리스크와, 던전 보스인 글래셔 바질리스크를 왜 피떡으로 만들어놓으셨습니까? 제가 그토록 말렸는데 말입니다.]
“감히 그 얼음덩이 구렁이가 본좌의 앞길을 막지 않았느냐?”
[천마 님!]
변명이 계속되자 무명은 전에 없던 화가 난 목소리로 천마를 질타했다.
[천마 님이 한 행동 때문에 히든몬스터인 아이스골렘이 나타났습니다. 그 때문에 던전 내부에서 재료를 채집하던 각성자들이 모두 목숨을 잃을 뻔했고요.]
“본좌는…….”
[천마 님의 이러한 행동은 던전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타인의 목숨까지 빼앗는 행위입니다. 만약 다른 각성자가 이 상황을 봤다면, 천마 님에게 고소가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마기자를 제외하면 그 누구에게도 닦달을 당한 적이 없건만, 이 작은 로봇에게 혼이 나다니.
무림의 절대자인 천마 어르신의 체통이 말씀도 아니게 구겨지는 상황이었다.
[천마 님의 성격이 선악을 구별한다든가, 남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건 잘 압니다. 하지만 복복 인테리어에 있는 한, 천마 님은 영지의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으니 그만하라.”
“뭐야? 돌아온 거야?”
그때 매장 뒤편의 문이 열리더니, 견적서를 들고 있는 장채원이 걸어 나왔다.
“빙정 가져왔어? 서하(西霞)신 님의 욕실 공사하실 작업자 분들이 기다리시는데.”
“걱정 마라. 두둑이 챙겨왔다.”
천마는 메고 있던 포대 가방에서 목함 하나를 내밀었다.
“가져가라.”
“수고했어. 근데… 뭔 일 있어?”
천마의 눈에 그늘이 진 것을 발견한 장채원이 묻자 무명이 말했다.
[사실은…….]
재빨리 무명의 둥그런 머리통을 탁 친 천마가 손을 내저었다.
“조금 더워서 지친 것 같다. 별거 아니니 들어가라.”
“으응.”
다시 매장 안으로 쑥 들어간 장채원을 바라보던 천마.
그는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무명의 머리통에 얼굴을 갖다 대었다.
“오늘 일은 점주에겐 말하지 마라. 알겠나.”
[무엇 하나 거침없는 천마 님도 장채원 님은 두려워하시는군요. 다행입니다. 그나마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천마 님을 제어해 줄 분이 계셔서요.]
라는 말을 꾹 삼킨 나노봇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면 분명 ‘천만에. 존중하는 것이다.’라고 대꾸했으리라 생각하면서.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