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30화 (30/285)

제30화. 각성자 김지환 (2)

김지환은 일행을 세이프던전 초입에 있는 F급 던전으로 안내했다.

폐건물처럼 생긴 이 던전은 최근에 모종의 이유로 무너졌다가 다시 재건되었다.

위험도가 극히 낮고 유물을 떨구지 않는 언데드들이나 삼족오 등이 모여 있기 때문에 9급 각성자들조차 거의 오지 않는 곳이었다.

“우리는 밖에서 기다리면 되는 건가요?”

던전 입구 안으로 드문드문 보이는 언데드를 바라보던 최경환이 미소를 지었다.

“아니면 같이 던전으로 들어가는 건가요?”

은근히 출현 조건을 캐고 싶은 것 같다. 던전을 멍하니 바라보던 김지환은 조용히 말했다.

“저 혼자 들어가도 됩니다.”

“혼자…? 그렇군요.”

최경환은 쥐고 있던 핫 스팟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곤 계획을 설명했다.

“가면신사가 나타나면 이걸 터뜨린 후, 제가 직접 던전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김지환은 천천히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언데드와 눈이 마주치지 않은 상태로 옥상까지.’

눈을 감은 김지환은 폐건물 계단으로 전력 질주했다.

과거 동료이자, 연인이었던 김지향.

그녀는 삼족오의 깃털로 만든 만년필을 그에게 선물하기 위해, 홀로 이 던전에 방문했었다.

눈을 감은 채 옥상까지 질주한 지향은 삼족오를 일격으로 잡았다. 그리고 다시 계단으로 내려가자, 그곳에 기묘한 언데드가 서 있었다고 한다.

깜짝 놀란 지향이 언데드에게 피가 묻은 삼족오의 깃털을 이마 정중앙에 던졌다.

그리고 황급히 던전을 나오자, 우르릉 소리와 함께 보석 가면을 쓴 남성 하나가 나타나 뒤에 서 있었다고 했다.

도감에서만 보았던, 히든몬스터 가면신사였다.

‘지향이의 말을 듣고 똑같이 해보니, 정말 가면신사가 등장했지.’

지난 기억을 떠올리자 손끝이 저절로 떨려왔다. 그 당시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가면신사가 나오는 출현 조건을 동료들에게 말해 버린 것이다. 위험하니 절대 딴생각 갖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우리가 잡자!”

하지만 돈에 눈이 멀어버린 동료들은 가면신사를 불러내는 데 성공했고, 곧바로 공격을 시작했다.

“죽여!”

지금껏 불러내어도 가만히 서 있기만 했던 온화한 히든몬스터, 가면신사였다.

그런 놈이 동료들의 공격을 받자마자 전에 없던 행동을 취했다. 가볍게 손을 휘저은 것이다.

쌔액.

결과는 처참했다.

무의식중에 에너지 필드 스킬을 발휘했던 김지환을 제외하곤 모든 동료들이 순식간에 전멸했다.

‘쓸데없는 생각을!’

타악.

회상을 마친 김지환은 옥상에 올라가자마자, 삼족오를 잡아 깃털을 얻었다. 그리고 곧장 입에 문 채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 * *

쿠웅. 쿠웅.

얼마 지나지 않아 지축을 흔드는 낮은 진동이 하늘 위로 퍼져나갔다.

히든몬스터가 등장한 것이 분명했다.

“자, 준비하자.”

몸을 낮게 웅크린 최경환이 동료들에게 말했다.

“던전에서 녀석이 뛰쳐나오면, 놈부터 처리해.”

돈에 눈이 먼 그들은 김지환부터 죽이고 시작하려는 것이다. 동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자 최경환이 다시 말했다.

“난 미리 핫 스팟을 켜놓을게. 이야기 들어보니 가면신사라는 놈, 동작이 엄청 빠른 것 같으니까.”

주머니에서 손을 뺀 최경환의 주먹엔 투명한 핫 스팟이 어느새 붉게 물들어 있었다.

우웅. 우웅.

그런데 땅에서 느껴지는 진동이 조금 이상했다. 점차 진동이 허공으로 떠오르는 듯한 울림이었다.

“가면신사라는 몬스터는 허공에 뜨기도 하나?”

우우우웅.

마침내 사방에서 진동이 들려오더니 검은 구름과 함께 무언가가 등장했다.

“저, 저건…….”

하늘을 바라보던 최경환이 몸을 떨었다.

둥둥 떠 있는 것은, 온 세상을 까맣게 메운 것은, 검은 구름이 아니라 까맣게 타버린 듯한 날개를 지닌 해골 인간들이었다.

“라르바?”

언데드의 일종인 라르바 한 마리는 위험도가 250 언저리다.

하지만 저렇게 수천 마리의 대군을 형성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저, 저걸 어떻게 처리하지?”

성경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또다시 지축이 흔들렸다.

쿠웅. 쿠웅.

저 멀리 30미터는 될 법한 해골 인간이 검은 옷에 기괴한 갓을 쓴 채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 압도적인 광경에 최경환의 눈동자에선 절망적인 빛이 흘러나왔다.

“라르바… 킹!”

몬스터 도감에서나 봐왔던 히든몬스터

죽은 자들의 왕, 불사에 가까운 체력을 지녔다는 라르바 킹이 눈앞에 등장한 것이다.

“저건 절대 못 이겨.”

라르바 킹은 위험도 15,000에 육박한다.

3급 각성자가 아니라 1급 각성자들이 떼로 달려들어야만 이길 수 있다는 라르바 킹. 거기에 수천 마리의 라르바라니…….

설령 이들이 1급 각성자라 해도 네 명으론 결코 어떻게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어서 던전으로 들어가요!”

성경하의 외침에도 최경환은 얼어붙은 듯 허공만을 바라보았다.

라르바 킹과 정면으로 시선을 마주친 그는 놈의 고유 스킬, ‘위압’에 노출된 탓이다.

“던전으로 들어가라고!”

성경하는 최경환의 뺨을 때렸다. 그 순간.

“으어어어!”

위압으로 인해 두려움이 극대화된 최경환은 몸을 돌려 전력 질주를 했다.

죽음의 공포가 던전이 아닌, 실드가 있는 도시 쪽으로 몸을 움직이게 한 것이다.

“저런, 미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성경하와 김수미, 이학준 역시 미친 듯이 반대로 뛰어나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언데드들은 시력이 거의 퇴화되어 있는 탓에 재빨리 도망가면 추적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우우우웅.

하지만 그건 몬스터 도감에 쓰인 내용일 뿐.

허공에 떠 있는 수천 마리의 라르바가 그들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 * *

삼족오의 깃털을 쥔 채 던전 계단에 서 있던 김지환은 눈을 껌뻑였다.

“저건… 뭐야?”

계단으로 올라온 몬스터는 예전에 봤던 그 몬스터가 아니라, 깨끗한 소복을 입은 노인의 형체였다.

“누, 누구세요?”

-아아, 우리는 이제 원혼이 아니라서 말여. 글쎄, 저번에 덩치 크고 눈이 시뻘건 각성자가 우리를 어둠 속에서 풀어주었지 뭐여.

노인의 형체는 엉뚱한 말을 지껄였다.

-그 덕택에 다른 몬스터가 등장했구만. 아- 주 무서운 몬스터잉께 조심허이.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인 노인의 형체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저, 저기요!”

얼이 빠진 김지환이 삼족오의 깃털을 바라볼 무렵.

쿠우웅.

바깥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질긴 올가미가 전신을 감싼 듯한 불길함이 느껴졌다. 김지환은 곧장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저게 뭐야?”

하늘을 가득 메운 시체, 그 뒤로 보이는 무시무시한 몬스터. 도감에서만 보던 라르바 킹이었다.

“으아아아!”

그리고 저 멀리 전력 질주를 하며 뛰어가는 최경환과 그의 동료들이 보였다.

그 순간, 무서운 사실을 깨달았다.

달려가는 최경환의 팔이 붉은빛으로 번뜩이고 있다는 것을.

“저 새끼, 핫 스팟을 붙이고 도망가잖아!”

투르르르르륵.

마치 둔탁한 벌레가 유리창에 세차게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라르바 킹이 수천 마리의 시체들을 한곳에 날려 보내 경계 구역에 둘려져 있는 실드를 깨뜨리려고 하는 것이다.

“저런 미친!”

실드 경계로 뛰어간 김지환은 고개를 돌렸다.

최경환을 비롯한 팀원 전원이 실드 경계로 들어가지도 못한 채, 그 앞에서 처참하게 죽어 있었다.

그리고 곧 세 가지 큰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첫 번째. 최경환의 손등에 붙어 있는 핫 스팟이 실드 안쪽으로 들어가 있다는 것.

두 번째. 그 탓에 라르바 킹이 끊임없이 시체를 불러내 실드를 후려치고 있다는 것.

세 번째.

지이이잉.

결국 흩날리는 빛무리와 함께, 수천 마리의 시체들이 실드의 한 부분을 거의 깨뜨렸다는 것이다.

“젠장…….”

그 모습을 보던 김지환은 휴대폰을 열어 협회로 연결되는 비상 단축 버튼을 눌렀다.

“실드경계지역에서 라르바 킹이 나타나 결계를 깨고 있습니다. 위치 추적해서 빨리 와주세요!”

전화를 끊은 김지환의 눈에선 불꽃이 튀었다.

그제야 가장 심각한 문제가 눈에 띈 것이다.

아무리 던전 초입이라지만, 협회의 각성자들이 이곳으로 오는 시간은 빨라야 10분이라는 것.

지금 상태로 봐선 실드가 뚫리는 데 5분도 채 걸리지 않을 것 같다는 것.

“젠장… 젠장!”

실드가 뚫리면 이 경계지역의 주택단지 사람들은 전부 몰살당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 사람들이 다치든 말든 그건 알 바 아니다. 하지만 생명의 은인이나 다를 바 없는 엄마손 백반집 이모는? 지금 전화해서 도망가라고 해도 늦을 텐데.

“젠자앙!”

균열이 가고 있는 실드 안쪽으로 들어온 김지환은 양팔을 벌렸다.

그러자 손바닥에서 푸른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더니 커다란 빛의 장벽을 만들어냈다.

김지환의 유일한 스킬, ‘에너지 필드’였다.

투르르르릇. 투르르릇. 투르릇.

갑자기 만들어진 실드에 놀란 탓일까?

균열이 간 실드에 필드가 둘려지자 날아오던 라르바의 숫자들이 점차 줄어들었다.

“제발… 그냥 가라…….”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기도는 하늘에 닿지 않은 것 같다.

쿵. 쿵.

균열이 보이는 실드 앞으로 라르바 킹이 다가왔다. 그리고 거대한 발을 들어 올려 김지환이 만들어놓은 필드를 힘껏 짓밟았다.

콰직.

“커억.”

양팔을 벌린 김지환의 입에서 핏물이 울컥 터져 나왔다.

에너지 필드가 막아낼 수 있는 힘의 허용량을 넘어서자 그 충격이 그의 몸으로 타고 들어온 것이다

콰직. 콰직. 콰직.

라르바 킹의 발이 필드를 밟을 때마다 입에선 굵은 피가 쏟아졌다. 점차 양팔이 무거워지고 눈앞이 흐려졌다.

“나, 죽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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