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화. 무명의 보고서 (2)
“여하튼 눈앞에 뭐만 있으면 그 짓을 하니까, 조심해.”
그리고 철거 시공자 박 씨는 마지막에 묘한 말을 남겼다.
“김 씨도 그 고오키라는 자를 보면 말이여. 아무 생각하지 말고…….”
‘뭐라고 했더라.’
뭔가 중요한 말을 들은 것 같은데, 기억이 도통 나지 않는다.
쿠르르르.
그때, 벽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주방 벽을 걸레짝으로 만들어놓은 천마가 팔짱을 꼈다.
“자, 모두 철거했다.”
입을 벌리고 있던 김찬원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무슨 철거여? 벽이 울퉁불퉁하잖여?”
천마는 타일뿐만 아니라 벽 곳곳에 주먹 모양의 자국을 크게 남겨두었다.
“이렇게 벽면을 울퉁불퉁하게 해놓으면 어떻게 타일을 붙이라고?”
“실망스럽군.”
“뭐, 뭐?”
“김 씨. 당신은 스스로를 관록 있고 경험이 풍부한 타일 기술자라고 소개하지 않았나.”
“그런디?”
천마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김찬원을 내려다보았다.
“타일을 붙일 곳이 항상 매끄럽나? 평평한가?”
“그, 그거야…….”
“때론 울퉁불퉁할 때도 있고, 거친 면도 있겠지. 즉, 안 좋은 상황에서도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진정한 기술자이자, 대행가(大行家)지. 아닌가?”
생긴 것답지 않은 청산유수 같은 언변이다.
도무지 멀쩡한 현장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은 미친놈으론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평평하고 매끄러운 곳을 일부러 울퉁불퉁하게 만들 필요는 없잖여?”
“쉬운 걸 가르치러 왔나? 본좌는 김 씨, 당신이 갖고 있는 최고의 기술을 배우러 온 거다.”
김찬원은 입을 쩍 벌렸다.
‘뭐, 이런 뻔뻔한 놈이…….’
아는 사람들이 돈을 쥐여주고 사정해도 안 가르쳐 줬던 타일 기술이었다.
그런데 이 흉악하게 생긴 사내는 공짜로 배우는 주제에 남의 속까지 홀랑 뒤집고 있었다.
‘내 기술은 못 가르쳐 주겠군.’
고개를 가로저은 김찬원이 입을 열려던 찰나, 팔짱을 낀 천마가 도전적인 눈빛으로 말했다.
“자, 김 씨. 가지고 있는 최고의 기술을 보여봐라.”
천마의 표정과 말투는 격투 게임에서 쓰러진 상대를 약 올리는 도발 버튼을 누른 것과 같았다.
자존심이 확 상한 김찬원이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냐. 타일 기술자가 뭔지 보여주겠어!”
커다란 플라스틱 대야에 모르타르(시멘트와 모래를 배합한 것)을 갠 김찬원이 타일 위에 떠 얹었다.
그리고 주방 벽에 타일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붙이기 시작했다.
속칭 ‘떠발이 시공’이라 불리는 떠붙임 시공 방법은 타일 시공 중에서도 가장 고난이도를 자랑한다.
왜냐하면 현장의 벽면과 타일의 특성을 고려해 시멘트와 모래, 물의 배합 상태를 달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수평을 맞추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처억. 터억.
오랜 노력 끝에 김찬원은 울퉁불퉁한 벽면에 깔끔하게 주방 타일을 붙여냈다.
“자, 어뗘?”
주방 벽면에 붙여진 유려한 백색 톤의 타일을 지그시 바라보던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이군.”
시건방진 대답이었으나, 김찬원의 표정이 밝아졌다. 저 무뚝뚝한 사내가 극찬했음을 깨달은 것이다.
“후후후, 나 정도면 우리나라에서 첫째가는 실력이지.”
이마에 땀을 닦은 김찬원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자, 이젠 현관 타일 붙일 테니 잘 봐.”
“본좌가 철거해 주겠다.”
“아니, 아니, 철거할 필요 없당께!”
재빨리 천마의 앞을 가로막은 김찬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떠붙임 시공도 배웠으면 이젠 덧시공도 배워야지?”
“그런가.”
“그렇지. 시공을 한 가지만 보면 쓰나.”
간신히 천마를 납득시킨 김찬원이 이마의 땀을 닦았다.
이 시꺼먼 녀석은 걸어 다니는 폭탄 같아서, 조금만 시선을 피해도 모든 걸 폭발시킬 것만 같았다.
“자자, 이렇게 먼저 깨끗이 쓸고.”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든 김찬원이 현관 타일에 묻은 먼지들을 깨끗이 쓸었다.
원래 허드렛일은 배우는 사람을 시켜야 하지만, 김찬원에겐 그런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자자, 잘 보라고.”
김찬원은 종이에 포장된 타일 시멘트(바닥용 타일 접착제)와 물을 양동이에 부었다.
“이거, 잘 저어야 해. 덩어리지지 않게.”
잘 섞은 타일 시멘트를 흙손을 이용해 기존 타일 면에 고루고루 바른 김찬원이 새 타일을 하나씩 붙이기 시작했다.
“쉬운 작업이군.”
시공을 지켜보던 천마가 턱을 쓰다듬었다.
타일에 시멘트를 얹어 벽에 붙이는 떠발이 시공과는 달리, 접착제를 발라 하나씩 붙이는 시공 방법은 꽤나 쉬워 보였다.
“이건 그냥 하얀 흙과 타일을 바닥에 붙이면 되는 것이군.”
“말이 쉽지. 이것도 일정하게 잘 발라야 혀.”
“좋다. 나머지는 본좌가 시공하겠다.”
“직접 해본다고?”
고개를 끄덕이려던 김찬원은 순간, 장채원의 당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방법만 가르쳐 주세요, 방법만. 절대 시공을 맡기면 안 돼요!”
‘하긴 아까 벽을 말도 없이 때려 부쉈지…….’
괜한 허튼소리를 할 장채원이 아니다.
게다가 천마가 일을 망치면 다시 타일을 재주문해야 하기 때문에 바로 손을 볼 수도 없었다.
“시공은 안 돼야!”
천마가 타일을 들어 올리려 하자 김찬원이 다급히 손을 저었다.
“오늘은 그냥 보기만 해.”
“걱정 마라.”
“어허, 오늘은 그냥 보기만 하라니까? 처음 배우는 사람이 어떻게 타일을 붙여?”
“붙일 수 있다.”
천마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김찬원을 내려다보았다
“본좌는 천마다.”
“글쎄, 시공은 안 된다니까.”
김찬원의 만류에도 천마는 어느새 타일 한 장을 집어 들고 있었다.
어찌나 동작이 빠른지, 김찬원은 희끗하는 잔상만 보았을 뿐이다.
“어허, 안 된다니께!”
김찬원이 다급히 오른손을 뻗었다.
동시에 맹렬한 바람이 쏟아지더니 천마가 쥐고 있던 타일 한 장이 손에서 빠져나와 허공에 둥둥 떠올랐다.
“허공섭물(虛空攝物)?”
천마는 눈을 번뜩였다.
풍기는 기도로 보아 범상치 않은 노인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강력한 허공섭물을 발휘할 수 있는 고수였다니?
“이거이거, 오랜만이군.”
감회가 새롭다는 표정으로 오른손을 내민 천마가 내공을 일으켰다.
우웅.
손바닥에서 쇠가 울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김찬원 쪽으로 둥실둥실 움직이던 타일이 허공에 멈춰 섰다.
“과거 정파의 노인네들은 걸핏하면 허공섭물을 이용해 본좌에게 술잔을 밀어내었지.”
“무슨 소리여, 그게”
“다 늙은 노인네들이 내세울 것은 내공밖에 없지 않나.”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은 천마의 눈동자에서 붉은빛의 혈염광휘가 솟구쳤다.
“비록 내공이 소실되었다고 해도, 이런 대결을 마다할 본좌가 아니다.”
“대체 무, 무슨 소릴 하는 겨? 어서 타일 놓지 못해?”
당황한 김찬원도 더욱 강하게 바람을 쏟아냈다.
휘류류.
쏟아지는 바람이 강렬해지자 천마를 향해 움직이던 타일이 다시 김찬원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어림없다. 노인장.”
천마의 눈에서 짙은 혈광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타일은 또다시 천마의 손으로 다가왔다.
“본좌는 단 한 번도 허공섭물 대결에서 진 적이 없다.”
천마의 말은 사람 속을 뒤집는 도발 버튼과 같았다.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정확하게 김찬원의 자존심을 긁어대었으니까.
“이 몸도 60년간 타일 시공으로는 누구한테 진 적이 음서!”
버럭 소리친 김찬원의 눈에선 하얀빛이 번뜩였다.
휘이이이잉.
뻗어낸 그의 손에선 폭풍 같은 바람이 쏟아졌다. 허공에 떠 있던 타일은 선풍기처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고, 시멘트 먼지와 타일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천마대능력!”
쿠르르르르.
천마가 쏟아내는 기운과 김찬원이 쏟아내는 바람이 뒤엉키자, 지진이 난 것처럼 아파트 전체가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으으으.”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짠 김찬원이 바람을 쏟아낼 무렵.
쩌저저적. 파악!
바람개비처럼 돌던 타일이 마침내 가루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후두두둑.
커다란 타일이 안개처럼 폭발해 버리자, 아파트를 뒤흔들던 힘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꽤 하는군.”
천마대능력을 거둔 천마가 사방에 흩날리는 가루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 할의 천마대능력을 사용한 본좌와 동수를 이루다니.”
“흥, 타일 시공으론 누구한테 져본 적이 없는 몸이여.”
“좋다.”
두 눈이 깊어진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 씨, 당신이 본좌를 가르칠 만한 타일 시공 전문가라는 걸 인정해 주겠다.”
방금 한 건 타일 시공과 아무런 상관없는 행위였으나, 천마는 고개를 희미하게 끄덕였다.
“앞으로도 잘 부탁하지.”
김찬원은 왠지 모를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천마와 같은 종류의 인간에게 칭찬을 듣는다는 것,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언제든 맡겨두라고!”
“좋다. 시간이 늦었으니, 그럼 다음에 다시 해보지. 노인장.”
“그려. 그동안 열심히 연습해 오라고.”
“알겠다.”
덤덤히 고개를 끄덕인 천마는 현관문을 나섰다.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요력을 해방한 탓일까? 아니면 저 쇠고집 같은 자에게 칭찬을 들었기 때문일까?
홀연히 떠나는 천마의 뒷모습을 보던 김찬원은 고양감마저 느껴졌다.
“저 희한한 양반 때문에 오랜만에 요력 좀 발휘해 봤네. 허허…….”
허탈하게 웃던 김찬원이 갑자기 두 눈을 부릅떴다.
강력한 힘과 힘이 부딪치면서 시공을 위해 쌓아둔 타일뿐만 아니라, 아파트 내부의 기성품들까지 모조리 박살 나 있었기 때문이다.
“김 씨도 그 고오키라는 자를 보면 말이여. 아무 생각하지 말고… 그냥 현장을 빠져나가. 아니, 그냥 도망가!”
“으응? 왜?”
“그자랑 엮이는 순간, 그날 시공은 무조건 망치는 겨. 명심혀!”
김찬원은 그제야 철거 시공자 박 씨가 해주었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이이…….”
박살 난 내부를 바라보던 김찬원은 얼마 남지 않은 머리를 움켜쥐며 털썩 주저앉았다.
* * *
“네? 타일 재주문이요?”
수화기 너머 들려오던 소리를 묵묵히 듣고 있던 장채원이 입을 벌렸다.
“죄송해요. 제가 괜한 부탁을 드려서… 다시 타일 재주문 넣어드릴게요. 인건비도 추가로 지급해 드릴게요.”
수화기 너머로는 ‘아니다. 박 씨의 말을 기억 못 한 내 잘못이다.’ 또는 ‘그래도 인정을 받은 게 어디냐?’라는 이상한 대답만 들려왔다.
“고생하셨어요. 네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장채원은 휴대폰 화면에 ‘김찬원 기사님’이라고 적혀 있는 글자를 망연히 바라보았다.
“글쎄, 그 양반을 가르치다 타일을 다 깨먹어 부렀네? 타일만 다시 시켜줘. 현장 마무리는 내가 할 테니.”
“너무 뭐라고 하지 마. 그 양반… 나쁜 의도로 하지는 않은 것 같응께.”
통화했던 김찬원의 말을 곱씹던 찰나.
딸랑.
풍경 소리와 함께 굵은 팔이 드러난 민소매를 입은 그림자가 매장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천마였다.
“왔, 왔어?”
“왔다.”
“타일 시공은 잘 배웠어?”
천마는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보기와 달리 상당한 내공을 지니고 있더군. 과연 큰소리칠 만했다.”
방금 타일 시공을 배우고 온 사람이라곤 할 수 없는 황당한 대답이 돌아왔다.
경련이 일어나는 눈꼬리를 매만진 장채원이 억지로 미소 지었다.
“역시 타일 시공은 어렵지?”
“전혀 어렵지 않았다.”
팔짱을 낀 천마가 자부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앞으로 조금만 배우면 본좌도 타일 시공을 할 수 있을 거다.”
“이상하네.”
천마를 바라보던 장채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김 기사님 말로는 너 시공을 말리려다 현장에 있는 타일이 모조리 박살 났다던데?”
“아아, 별거 아니다.”
“별거 아니라니. 30평이 넘는 타일을 전부 다시 시켜야 하는데?”
“허공섭물을 발휘하다 보면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본인의 행위는 모두 옳다는 매우 독특한 세계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일이 드물고, 양심의 가책 또한 느끼지 않습니다.
문득 무명이 적은 보고서를 떠올린 장채원이 입을 벌렸다.
‘정확하잖아.’
“김 씨라는 자 말이다. 유순한 생김새와 달리 꽤나 고집 있고 자존심이 강한 인물이더군.”
“어?”
“혈관이 끊어져 숨이 넘어가기 직전까지 본좌의 천마대능력에 대항했다. 그토록 지는 걸 싫어하는 자는 오랜만에 본다.”
-자신의 시야에 들어온 인물에겐 흥미를 느끼고 깊이 관찰합니다.
‘정확해.’
“그만한 실력을 갖췄으니, 본좌도 대우를 해줘야겠지.”
-약자를 경멸하고 강자를 우대합니다.
“앞으로 타일 기술을 배운다면, 다양한 신뢰도 처리할 수 있을 테지. 그렇다면 본좌가 내공을 얻는 데도 조금 더 수월해질 거다.”
-모든 선택과 결정은, 오직 자신의 이익이 최대화되는 것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나노봇. 너… 너는 대체 어디까지 내다본 거야.”
“갑자기 무슨 말이냐.”
“아냐. 크흠, 감기 기운이 좀 있는 것 같네.”
장채원이 얼버무리자 천마가 딱한 표정을 지었다.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 즉, 여름 감기는 개도 조심한다는 뜻이지.”
“또 무슨 헛소리야?”
“몸 관리를 잘하라는 조언이었다.”
“그게 조언이냐?”
“그렇다.”
말을 하는 본새를 보면 당장이라도 자르고 싶다.
“으으음.”
솟구치는 울화를 꾹 참은 장채원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냐. 조금만 더 지켜보기로 했잖아.’
무명이 적어둔 ‘의심암귀’라는 말을 떠올린 장채원이 억지로 미소 지었다.
“그래, 오늘도 수고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