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화. 천마와 강아지 (2)
다음 날.
장채원의 승합차가 멈춘 곳은 시내 외곽의 어느 폐건물이었다.
폐건물 주변은 무겁고 어두운 공기가 내려앉은 듯했으며, 대낮임에도 이 부근은 햇빛이 닿지 않았다.
“기묘하군.”
차에서 내린 천마는 눈썹을 찌푸렸다.
어딘가 모르게 기분 나쁘면서도 익숙한 기운이 코끝으로 느껴졌다.
“저 폐건물을 철거하면 되는 건가.”
천마의 물음에 장채원이 고개를 저었다.
“아냐. 안쪽에 있는 것들을 철거하면 되는 거야.”
“그렇군. 그런데…….”
천마는 어깨에 매달려 있는 무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신뢰에는 이 녀석을 못 데려간다고 하지 않았나.”
“아아, 이번 의뢰에선 괜찮아. 허락도 받았고 무엇보다 내가 계속 있어주지 못하니까.”
“있어주지 못한다니.”
[이번 의뢰는 하루 안에 끝낼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천마 님의 출퇴근을 도울 예정입니다.]
무명의 말에 장채원이 빙긋 웃었다.
“매장이랑 얼마 멀지 않으니까. 내일부터는 나노봇이랑 출근하면 될 거야.”
“복복 인테리어에서 오셨소?”
그때 폐건물에서 청수한 인상의 노인이 꾸부정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빨리 오셨구먼.”
“처음 뵙겠어요. 은랑(銀狼)신 님.”
노인, 은랑신은 나이가 많은지 눈썹은 눈처럼 하얗고 피부는 오래된 고목나무 껍질처럼 갈라져 있었다.
하지만 눈동자는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맑았고 몸에선 은은한 서기가 흘러나와, 신선 같은 풍모를 보였다.
천마는 노인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처음 뵙겠소이다. 노야(老爺).”
“아아, 자네 이야기는 많이 들었네. 멀리서 왔다고.”
은랑신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상당한 힘이 필요한지라… 잘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구먼.”
“힘이라면 자신 있소이다.”
천마가 굵은 팔뚝을 내보이자 은랑신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군. 자네라면 삼 일 안에는 끝낼 수 있겠구먼.”
“무엇이든 하루면 끝낼 수 있소이다. 노야.”
“힘들 걸세. 이 일은 튼튼한 정령수라고 해도 열흘, 아니 보름은 걸릴 일이거든.”
은랑신은 자애로운 미소를 머금고는 폐건물의 입구를 가리켰다.
“우선 들어오게나.”
폐건물 안은 놀랍게도 아름다운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이름 모를 기화요초들이 수없이 피어 있고, 정원의 끝자락엔 오색 빛깔로 채색된 커다란 문 하나가 있었다.
정원의 안쪽까지 느릿느릿 걸어간 은랑신은 반짝이는 문을 가리켰다.
“이 길을 막고 있는 벽들을 철거해 주면 되는 걸세.”
천마와 장채원이 다가가자 문은 저절로 활짝 열렸다.
좌우로 열린 문 안으로 들어서자 긴 회랑과 같은 길이 보였다.
아름답게 꾸며진 지붕과 벽에선 신비로운 빛이 흘러나왔고, 바닥은 향기로운 꽃들이 피어 있었다.
“음?”
그런데 길 곳곳엔 희미한 것들이 잔뜩 세워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보일 듯 말 듯한 투명한 벽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저 길을 막은 투명한 것들을 철거하면 되는 것이오?”
“그렇네.”
“흠, 그렇다면 한나절도 걸리지 않을 것 같소이다.”
내공을 끌어올리려 하자 바닥에서 뜨거운 열기가 피어오르며 단전에 터질 듯한 힘이 모여졌다.
‘일 갑자?’
천마가 갖고 있는 공력은 15년 남짓. 그런데 바닥에서 일 갑자에 가까운 신력이 밀려 들어온 것이다.
‘대단한 신이셨군.’
지금까지 방문했던 신지 중에서 가장 강력한 내공이 솟구치고 있다.
시뻘건 눈을 번뜩인 천마는 모처럼 천마대능력이 아닌, 순수한 내공을 모아 투명한 벽을 향해 두 손을 내뻗었다.
“권마칠식, 승풍항룡!”
콰직.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투명한 벽에는 아주 미세한 실금만 가 있을 뿐이다.
“이럴 수가.”
“쉽지 않을 걸세. 그거 정말 딱딱하거든.”
은랑신의 말에 천마는 크게 호승심이 일었다.
“좋소이다!”
공력을 끌어올린 천마의 눈에선 찬란한 빛이 퍼져 나왔다.
“권마칠식, 뇌인파멸(雷刃破滅)!”
콰쾅! 콰왕! 연달아 폭음이 울려 퍼지더니 마침내 투명한 벽이 와장창 깨져 버렸다.
“후후후.”
만족스러운 웃음을 터뜨린 천마는 갑자기 짙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놀랍게도 투명한 벽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겹이었다.
“개수로 따지자면 족히 수천 개는 넘을 걸세.”
은랑신이 끌끌 웃으며 말하자 천마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채원이 은랑신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어르신, 전 다시 매장으로 돌아가 볼게요.”
“그러게나.”
장채원은 천마에게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열심히 해. 난 매장으로 돌아갈 테니.”
“알겠다.”
문밖으로 나가던 그녀는 천마의 어깨 위에 올라탄 무명을 살짝 바라보았다.
이틀 후.
천마는 오늘도 무명과 함께 은랑신이 있는 폐건물에 들어가 투명한 벽을 깨부수고 있었다.
일 갑자 넘은 내공을 끌어올린 천마의 주먹과 발길질은 강철 벽도 부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투명한 벽은 어찌나 단단한지 천마가 수십 번을 전력으로 후려쳐야 간신히 부서졌다.
“쉬엄쉬엄 천천히 하게나.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복도의 땅에 피어 있는 꽃들을 정리하고 있던 은랑신이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또 생길 것이니…….”
하지만 그 목소리는 너무나 작아 천마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콰앙!
“후우.”
길을 막고 있던 벽의 삼분지 이 정도를 모두 부신 천마는 내식을 조절했다.
[천마 님.]
먼발치에서 천마를 지켜보고 있던 무명이 말했다.
[무리하실 필요 없습니다.]
“신경 쓸 필요 없다.”
이마는 땀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매우 밝고 유쾌해 보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 세계에 온 뒤로 몸에 무리가 가는 천마대능력이 아닌, 처음으로 순수한 내공만으로 권법을 시전하고 있었으니까.
‘일 갑자의 공력이 이토록 강력한 것이었군.’
이제 남아 있는 건 삼분지 일 정도 채워져 있는 투명한 벽들이었다.
이틀 동안 깬 것들이 이 정도이니, 나머지 것을 모두 깨려면 하루 정도는 꼬박 부숴야 할 것이다.
“노야. 대체 이 벽이 무엇으로 만들어졌길래 이토록 질긴 것이오?”
천마가 혀를 내두르자 꽃을 매만지던 은랑신이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흐음. 알고 싶은가.”
앞쪽을 막은 투명한 벽을 보며 깊게 탄식을 한 은랑신이 낮게 말했다.
“미련일세.”
“미련?”
“그렇네.”
“잊지 못한다는, 그 미련 말이오?”
천마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은랑신이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지. 잊지 못하기에, 지울 수 없기에… 그토록 질긴 것이지.”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소이다.”
은랑신은 한숨을 내쉬며 왼쪽 통로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끼이이 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여러 쌍의 눈동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열린 문밖으로 하나둘씩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저것들은…….”
안력을 돋우던 천마가 놀라자 은랑신이 흔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래, 자네가 있던 세계에도 흔히 볼 수 있는 아이들이지.”
어둠 속에서 하나둘씩 나오는 형체들은 다름 아닌 수많은 강아지들이었다.
은랑신은 고목나무 같은 손가락으로 회랑을 가리켰다.
“이 길은 살아생전 좋은 추억을 보여주는 곳일세.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좋았던 기억들이 보여지지.”
은랑신 말대로 강아지들이 앞으로 걸어갈 때마다 빛으로 만들어진 천장과 벽에서 행복한 기억들이 영화처럼 재생되었다.
“이곳이… 유계(幽界)란 말이오?”
“유계라. 뭐, 그런 셈이지.”
천마는 그제야 폐건물에서 뿜어 나왔던 음산한 기운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이 아름다운 통로가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삼도천이었다니.’
“노야께서 무상야(無常爺:저승사자)셨단 말이외까.”
“허허허. 그럴 리가 있나? 노부는 그저 불쌍한 아이들을 편히 보내주는 일을 하는 것뿐일세.”
“그런데 왜 이런 벽이 생기는 것이외까?”
천마의 물음에 은랑신이 눈을 번뜩였다.
“차라리 단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은 오히려 나은 편일세. 이 회랑을 걸을 때 그저 행복한 기억을 심어주면 되니까 말일세. 하지만…….”
은랑신은 각양각색의 강아지들을 중 어느 한 무리를 가리켰다.
그 무리의 강아지들은 걸음을 옮기려 하지도 않았고, 하나같이 슬프고 우울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조금이라도 사랑받고 자란 아이들은 아무리 아름다운 기억을 주어도 저승으로 가려고 하지 않지. 자신을 사랑해 준 인간의 곁에 끝까지 머무르려고 하기 때문일세.”
‘은랑신… 그런 거였나.’
개의 조상은 늑대라고 한다.
은빛 영성을 가진 늑대, 은랑신은 괴롭게 죽은 개들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신이었던 것이다.
“노부는 이 불쌍한 아이들을 편하게 보내주는 일을 하고 있네. 사랑받지 못한 불쌍한 아이들을 말일세. 조금이나마 저승으로 가는 길이 편안하도록.”
-왕왕?
그때 문 안쪽의 개들 사이에서 회색빛 털을 가진 작은 강아지가 천마에게로 뛰어왔다.
바로 매장으로 늘 천마를 찾아왔던 바로 그 강아지였다.
“너는…….”
-왕왕!
강아지가 활짝 웃으며 꼬리를 흔들자 은랑신은 눈을 빛냈다.
“아는 아이인가?”
침묵하던 천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다가다 좀 본 것뿐이오.”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강아지의 회색 털은 피가 잔뜩 묻어 있고 뼈가 드러난 곳도 있었다.
하지만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 활짝 웃으며 천마의 다리에 얼굴을 비벼대었다.
“어찌 된 것이냐.”
덤덤해 보이지만 낮게 가라앉은 천마의 눈빛을 발견한 은랑신이 낮게 혀를 찼다.
“차에 치였군. 지금 시대엔 가장 흔한 죽음이지.”
끼잉.
천마의 눈동자에 그늘이 깔리자 강아지 역시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동시에 우우웅 소리와 함께 회랑에는 투명한 벽 하나가 더 생겨났다. 그 투명한 벽에는 천마의 그림자와 같은 형상이 찍혀 있었다.
“저런…. 그 아이의 미련이 자네였던가.”
“이게 대체 무엇이오?”
천마는 자신의 그림자가 새겨진 듯한 투명한 벽에 손을 대었다.
그 순간, 수많은 기억의 조각들이 머릿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툭.
하늘에서 내리던 새똥을 피해 앞으로 걸어갈 때, 발끝에 채인 것은 바로 작은 강아지였다.
콰앙!
그리고 강아지 대신 트럭에 부딪친 것은 천마였다.
-왕왕.
강아지는 차 안에 박혀 있는 천마가 걱정되어 크게 짖어댔지만, 쾅 소리와 함께 차를 밀어버린 천마는 덤덤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훌륭한 음식이다.”
커다란 몸을 웅크린 천마는 비닐에 싸놓은 짜장면 그릇을 매장 앞에 내놓았다.
우연히 그 모습을 본 강아지는 열심히 매장 주위를 배회했지만, 천마는 다시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긴 시간이 흐르고 배고픔에 지친 강아지는 천마가 남긴 짜장면 양념을 먹기 시작했다.
짜고 입맛에 맞지 않은 음식이었지만, 천마가 먹다 남은 음식이라 그런지 강아지는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네놈이 본좌에게 누명을 씌웠구나!”
비닐을 헤친 강아지를 보며 천마는 크게 노했다.
하지만 강아지는 천마를 보자 그저 반가울 뿐이었다.
조금만 날 바라봐 주었으면. 저 큰 손으로 조금만 날 쓰다듬었으면.
천마가 목덜미를 쥐고 들어 올리자 강아지는 조금 아팠지만, 그래도 손길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꺼져라.”
천마는 강아지를 볼 때마다 관심 없다는 듯 발로 밀어내었다.
하지만 강아지는 알고 있었다.
이 남자가 얼마나 괴롭고 고독한 삶을 살아왔는지를. 얼마나 냉혹하고 차갑게 마음을 닫아두고 있는지를.
그건 강아지만이 갖고 있는 능력이다.
몸에서 풍기는 냄새만으로 그 사람이 어떤 기분인지,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강아지는 천마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한 곁에 머물고 싶었다.
쏴아아아.
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골목 구석에서 웅크린 채 있는 게 최고다.
하지만 강아지는 오늘도 천마가 보고 싶었다.
그리움을 참지 못한 강아지는 골목을 뛰쳐나갔다.
열심히 복복 인테리어 매장으로 달려가던 강아지는 문득 횡단보도 중간에 멈춰 섰다.
이곳은 천마가 달려오는 차량으로부터 자신을 구해준 곳이기 때문이다.
빠아아앙! 끼익.
시끄러운 경적 소리와 함께 강아지의 몸뚱이는 수십 미터 밖으로 날아갔다.
한동안 의식이 없던 강아지는 눈을 뜨자 자신의 몸이 엉망진창으로 망가졌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이대로 눈을 감을 순 없었다.
마지막 한 번만이라도 천마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박살 난 몸을 이끌고 간신히 움직이던 강아지의 눈앞에 마침내 한옥으로 되어 있는 매장이 보였다.
그리고 매장 앞 한편에, 쏟아지는 빗물을 막고 있는 네모난 나무와 먹다 남은 음식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날 위해 놓아둔 거야.
강아지는 더욱 힘을 내서 앞으로 나아갔다. 눈앞의 차도만 건너면 바로 매장으로 갈 수 있었다.
죽어도 저 매장 앞에서 죽고 싶었다. 하지만 더 이상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어느새 몸이 차갑게 식어감을 느꼈지만 시선은 매장 너머 보이는 천마의 모습에 고정되어 있었다.
쓰윽.
그때 누군가 강아지의 몸을 집어 올렸다. 청소부였다.
차가운 비닐 속으로 들어간 강아지는 더 이상 앞을 볼 수 없었다.
“다 봤는가?”
기억의 파편들을 읽던 천마는 은랑신의 말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렇소.”
“어떤가.”
강아지가 남긴 기억의 파편들을 음미하던 천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답잖은 기억들이구려. 아무 이유도 없는, 한심하고도 맹목적인.”
“뭐,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지.”
신랄한 천마의 대답에도 은랑신은 빙긋 미소 지었다.
“어쨌든 자네가 깨부순 것들은, 지금 봤던 것처럼 사랑받은 기억 때문에 저승으로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남긴 미련이라네. 이 벽을 막으면 저승으로 가는 걸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거겠지.”
-왕왕.
강아지는 오직 천마만 바라보며 진득하게 붙어 있었다.
우우웅.
천마의 몸 앞으로 또다시 투명한 벽이 생겨났다.
천마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은 강아지의 미련이 또다시 벽을 만들어낸 것이다.
“또 벽이 생겼군. ”
“그렇구려.”
천마는 강아지를 응시한 채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왕왕!
울적한 표정을 짓는 천마를 보며 강아지가 또다시 몸을 부볐다.
은랑신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지. 미련을 갖고 있는 주인이 눈앞에 있으니.”
천천히 다가온 은랑신은 천마의 손을 붙잡았다
“마음을 직접 보여줄 수밖에.”
은랑신은 따스한 손길로 강아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러자 천마의 눈에선 환한 빛이 쏟아지더니 또다시 이상한 기억이 흘러들어 오기 시작했다.
뚝딱뚝딱.
천마는 망치를 든 채 열심히 강아지 집을 만들고 있었다.
“본좌가 머물고 있는 곳은 다양한 손님들이 들어오는 매장이다. 너를 안에 들여서 키울 순 없지.”
천마는 웅크린 채 앉아 있는 강아지를 덤덤히 바라보았다.
“그래서 본좌는 만마소궁을 만들고 있다. 이렇게 훌륭한 집이 있으면 네가 매장에 머물러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테니까.”
강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천마가 강아지의 머리에 천천히 손을 뻗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털의 촉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너무 늦어버렸구나.”
강아지를 쓰다듬던 천마가 빙긋 웃었다.
“다음 생애에 다시 본좌를 찾아와라. 그땐 미리 만마소궁을 만들어놓을 테니.”
그 순간 강아지의 눈에서 밝은 빛이 쏟아져 나왔다.
동시에 천마의 앞에 세워져 있던 투명한 벽들이 모두 와장창 깨져 버렸다.
-왕왕!
나머지 남아 있는 벽을 깬 것을 자랑하려는 듯, 강아지는 으스대며 짖어댔다.
천마의 손과 다리, 그리고 얼굴에 몸을 부빈 강아지는 스스로 회랑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별은 잠시뿐.
다음 생애에서는 나를 사랑해 주는 주인, 천마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왕왕!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가기 전 강아지는 다시 한번 천마를 보며 짖어댔다.
천마에게 걱정 말라고 하는 것처럼.
화아아악.
강아지는 마침내 빛으로 가득 찬 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다시 정신을 차린 천마의 앞엔 다리를 비벼대던 강아지가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회랑에 쌓여 있던 수많은 벽들도, 가슴에 맺혀 있던 생소한 감정마저도.
“그저 마음속에 숨겨진 본심을 전해주었을 뿐일세.”
“본심?”
천마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노야께서 만들어낸 기억이 아니오?”
“글쎄. 그럴 수도 있겠군.”
은랑신은 엷은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다만, 저 벽들을 부순 건, 노부가 한 것도 자네가 한 것도 아닐세.”
천마는 투명한 벽들이 사라진 텅 빈 회랑을 응시했다.
그 조그만 강아지가 강력한 신도 부수기 힘든 미련이라는 벽을 혼자 부쉈단 말인가?
“후후후. 저 아이의 생명을 구한 것이 인연이 되었구만.”
은랑신의 중얼거림에 천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구해준 적 없소.”
“의도야 어쨌든 그로 인해 그 아이는 차에 치이지 않았지. 이 세상에는 사소한 행동으로 작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것들이 많네.”
“삶과 죽음의 경계 따윈 오래전 허물어 버렸소. 나 자신에게도 말이오.”
“이상하군. 아까 자네의 기억 속에는 꽤나 많은 이들의 목숨을 구한 걸 봤는데.”
‘남의 기억도 들여다볼 수 있는 건가.’
불쾌해진 천마는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인간도 아닌 신이다. 화를 낼 수도, 화를 낸다 해도 달라질 건 없었다.
“본인에게 필요한 장기말이었을 뿐이오. 쓸모 있기에 신경을 좀 쓴 것뿐.”
“그렇게 말할 필요 없네. 노부는 다 아니까.”
“뭘 안단 말이오?”
“뭐,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게나. 그 아이는 누구에게도 받지 못했던 것을 자네에게 주려 했다는 걸 말하고 싶었을 뿐이니.”
헛소리하지 마시오.
그렇게 외치려 했지만 은랑신의 투명한 눈을 보자 목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았다.
사실은 알고 있다. 강아지가 자신에게 주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그것은 맹목적인 충성도 공포에서 우러나오는 존경도 아닌, 무조건적인 애정이었다.
“고생 많았네.”
두 주먹을 쥔 천마가 침묵하자, 은랑신이 몸을 돌려 꽃밭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보수는 약속대로 넣어줌세.”
“…그럼 돌아가겠소.”
천마가 무겁게 몸을 돌리자 은랑신이 짧게 말했다.
“참, 알아두게.”
“……?”
“아이들은 윤회 주기가 짧네.”
며칠 후.
매장으로 출근한 장채원은 문득 유리문 너머로 무언가가 보이는 걸 발견했다.
“뭐야? 이거 언제 설치해 둔 거야?”
매장의 앞 구석에는 나무로 만든 작은 집이 설치되어 있었고 천마는 사포를 든 채 거친 부분을 갈아내고 있었다.
“목공 작업 연습하는 거야?”
가까이 다가간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드러운 곡선 형태의 지붕이 달린 작은 집은 꼬마 아이가 삐뚤삐뚤하게 그린 집을 연상케 하였다.
“뭔가 어설프긴 한데…….”
몸을 숙여 집을 바라보던 장채원이 턱을 쓰다듬었다.
“어딘가 모르게 따뜻한 느낌이네.”
투박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따스함이 담겨 있는 듯한 작은 집.
그것을 바라보던 장채원은 문득 아, 하는 소리를 내었다.
“이거 설마 강아지 집이야?”
천마는 아무런 대답 없이 사포질을 할 뿐이었다.
“근데 그 강아지. 이제 안 오는 거 같은데? 벌써 안 온 지 꽤 됐잖아.”
사포질을 하던 천마가 손을 멈추었다.
“강아지 집이 아니다.”
“뭐?”
“본좌가 남긴 미련이지.”
먼 하늘을 바라보는 천마의 눈 속엔,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감정의 빛이 희미하게 떠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