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화. 천마와 강아지 (1)
야심한 밤, 복복 인테어의 창고 방.
천마는 자리에 단정히 앉아 운공을 하고 있었다.
우르릉.
숨을 내쉴 때마다 은은한 천둥소리가 창고 내부를 뒤흔들었다.
현재 천마의 내공은 고작 15년 수위. 하지만 반극신공은 호흡에조차 진기를 담아내는, 무림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패도적인 공력이다.
키리리릭.
또다시 천둥소리가 울려 퍼질 무렵, 접시 모양의 충전스테이션에 누워 있던 무명의 몸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왔다.
같은 시각, 장채원의 침실 내부.
띠링.
알림음과 함께 협탁에 올려놓은 휴대폰에서 빛이 반짝였다.
협탁으로 손을 뻗은 장채원은 침대에 누운 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아.”
한동안 화면 바라보던 그녀는 이마에 손을 올린 채 나직이 중얼거렸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녀석…….”
다음 날, 정오 무렵.
복복 인테리어와 한 블록 정도 떨어진 낡은 상가에서 천마가 어슬렁어슬렁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상가의 집기들과 폐기물들을 옮기는 작업을 한 것이다.
“흐음.”
의복 곳곳에 묻어 있는 먼지를 탁 털은 천마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출출하군.”
정오 무렵이라 그런지 상가 근처의 밥집에는 손님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오늘도 작장면을 먹겠군.”
며칠 전, 능웅신의 신뢰를 해결할 때 장채원은 천마가 산 중턱까지 자신을 옮겨주면 열흘간 간짜장과 탕수육을 점심으로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그녀는 매우 약속을 성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예전과 달리 식사 중엔 조금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지만.
“뭐, 흔한 일이지.”
천마는 알고 있었다.
그 어색함의 이유가 바로 자신이 이무기의 내단을 꺼내겠다는 말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하지만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
아무런 이유 없이, 혹은 추구하는 길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무자비한 경멸과 혐오를 드러낸 사람들은 수없이 많았으니까.
또르르르.
길 건너 횡단보도에선 시간을 알려주는 신호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성큼성큼 걷던 천마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초록 불에 걸음을 걸어야 하는 것쯤은 이미 배운 상태였으니까.
쿠우우웅.
그때 갑자기 저 멀리서 파란색 1톤 트럭 한 대가 굉음을 내며 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눈 깜빡할 사이, 트럭은 천마가 있는 횡단보도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흠.”
피할 것인가? 그대로 서서 금강지체의 위용을 드러낼 것인가.
잠시 고민하던 찰나, 천마의 머리 위로 하얀 액체가 후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새똥?’
머리 위로 뿌려진 새똥을 감지한 천마는 고개를 올린 채 몇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갔다. 동시에 발끝에 무언가 툭 채였다.
쾅!
폭음과 함께 질주하던 트럭은 천마의 몸에 부딪친 채 그대로 멈췄다.
치이이이.
연기를 내뿜는 트럭에서 문이 열리며 하얀 거품에 뒤덮인 운전자가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다.
운전석 안쪽으로 뿌연 액체가 가득 찬 것으로 보아 사고 시 운전자를 보호해 주는 액체형 에어백이 작동된 것 같았다.
“브, 브레이크가 고장이 나서…….”
운전자는 박살 난 차량에 끼어 있는 천마를 보며 휴대폰을 뒤적거렸다.
쿠웅.
그때 천마가 박살 난 트럭을 밀더니 덤덤히 횡단보도를 건넜다.
“저, 저기요. 잠깐만… 병, 병원으로 가셔야죠!”
운전자가 불러 세우자 천마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신경 꺼라.”
“네?”
“본좌는 천마니라.”
그제야 우람한 근육과 범상치 않은 천마의 용모를 발견한 운전자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아. 각성자였구나.”
힘이 풀려 주저앉은 운전자는 천만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두 손을 모았다.
* * *
며칠 후.
“그릇 좀 제대로 놔둘래?”
견적을 내고 매장으로 돌아온 장채원.
그녀는 매장 바깥에 엉망으로 놓여 있는 간짜장과 탕수육 그릇을 발견하고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천마에게 말했다.
“씻지는 않아도 봉투에 담아 예쁘게 놔야지. 매번 저렇게 대충 흐트러뜨리면 어떡해? 볼 때마다 내가 다시 묶어뒀단 말이야.”
응접 테이블에서 앉아 책을 보고 있던 천마가 덤덤히 말했다.
“무슨 소리냐. 본좌는 항상 청결하게 묶어둔다.”
“청결은. 밖에 나가서 좀 볼래?”
“그러지.”
매장문을 열어보니, 장채원의 말대로 남은 소스와 그릇들이 다 풀어져 있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릇을 내려다보던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음모다.”
“뭐?”
“본좌의 명성이나 평판을 깎아내리기 위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벌인 일 같다.”
“무슨 헛소리야. 그런 쓸데없는 짓을 누가 해?”
“근방에 있는 동종의 매장, 혹은 그들의 사주를 받은 자겠지.”
모든 걸 깨달았다는 듯 천마는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본좌의 위명을 흠집 내려는 이는 수없이 많으니까.”
천마의 헛소리를 묵묵히 듣고 있던 장채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애당초 이 주변에 널 아는 사람이 있기는 해?”
“물론이다. 그동안 본좌에게 원한을 가진 자들도 꽤 많이 생겼지.”
“응? 너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누가?”
잠시 침묵하던 천마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동안 현장에서 함께 작업한 인부들이다.”
“뭐?”
“시공 현장을 떠나면 한결같이 본좌를 원망하는 소리로 가득 차더군. 그들이라면 충분히 …….”
후다다닥.
그때 저 멀리 골목에서 작은 그림자 하나가 쪼르르 달려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하얀 털이 온통 땟국물로 뒤덮인 작은 강아지였다.
-왕왕!
달려온 강아지는 매장 앞에 서 있는 천마의 다리 사이를 빙글빙글 돌았다.
마치 주인을 만난 것처럼 신이 나 애교를 피우는 모습이다.
“엥.”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장채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아는 강아지?”
“처음 본다.”
“그래? 정말 취향이 독특한 강아지네. 천마, 너에게 달라붙는 걸 보니.”
피식 웃은 장채원은 다시 매장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어쨌든 그릇은 잘 정리해서 다시 내놔.”
“알겠다.”
고개를 돌린 천마는 자신의 다리를 비벼대는 강아지를 물끄러미 내려보았다.
한동안 강아지를 관찰하던 천마는 두툼한 손을 뻗어 강아지의 머리 쪽으로 천천히 내밀었다.
“잠깐, 스토옵!”
그때 매장의 문이 다시 열리고 장채원이 헐레벌떡 뛰어와 강아지를 가로막았다.
“대체 무슨 짓이야!”
“무슨 짓이냐니.”
뒤에 서 있는 강아지를 바라보던 그녀가 단호하게 말했다.
“말했잖아. 이 세계에선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돼.”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아무리 주인 없어 보이는 강아지라도 멋대로 해치면 안 된다고.”
앞으로 내뻗은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천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잡아먹는 줄 알았나.”
“잡아먹을 거잖아.”
“안 잡아먹는다.”
“안 잡아먹는다고?”
“이곳엔 먹거리가 풍족하게 있다. 굳이 이런 걸 귀찮게 잡아먹을 필요가 있나.”
장채원은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
그녀의 시선으로 봤을 땐, 천마가 시뻘건 눈빛으로 강아지를 내려보다 통나무 같은 팔로 강아지의 머리를 움켜쥐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미안, 착각했어.”
장채원의 사과에도 천마는 대답 없이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일요일 저녁 무렵.
“후르륵.”
천마는 매장의 응접 테이블에서 혼자 간짜장을 먹고 있었다.
일요일은 휴일이었으나, 매장의 창고 방에서 지내는 천마를 위해 장채원이 배달 음식을 시켜준 것이다.
꿀꺽꿀꺽.
시원하게 물을 들이켠 천마는 전화번호가 적힌 쿠폰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든 번개처럼 식사를 대령해 주다니. 정말로 훌륭한 객잔이군.”
다 먹은 빈 그릇을 비닐에 싸고, 매장 앞에 내려두는 찰나.
-왕왕.
일전에 보았던 강아지가 반가운 표정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저리 가라.”
천마는 자신의 다리에 매달리는 강아지를 발로 툭 찼다. 하지만 강아지는 개의치 않고 다시 천마의 다리에 매달렸다.
“가만.”
강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천마는 매장 안으로 쑥 들어갔다.
한참 동안 매장 앞을 서성이던 강아지는 천마가 밖으로 나오지 않자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천마가 놔둔 짜장면 그릇의 비닐을 헤집기 시작했다.
“역시나 그렇군.”
매장 유리 너머로 그 광경을 모두 지켜보던 천마가 대로했다.
“네놈이 본좌에게 누명을 씌웠구나!”
-왕왕!
천마가 다시 밖으로 나오자 강아지는 반갑다는 듯 꼬리를 흔들었다.
애교를 피우는 모습에도 천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강아지의 목덜미를 집어 올렸다.
“네놈 때문에 괜히 점주에게 오해를 받지 않았나.”
-왕왕!
“다시는 본좌가 내놓은 그릇에 비닐을 뜯지 마라. 알겠나.”
아무리 열심히 말을 해도 목덜미를 잡힌 강아지는 웃으며 꼬리를 흔들 뿐이었다.
“응?”
그때 외출을 하고 돌아온 장채원이 그 모습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뭐 해? 강아지는 왜 그렇게 들고 있어?”
“이 녀석이 범인이었다.”
“뭐?”
“그동안, 비닐에 싸인 그릇을 헤집은 녀석 말이다.”
강아지를 내려둔 천마가 바닥에 놓아둔 그릇을 가리키자 장채원이 아, 하는 소리를 내었다.
“그랬구나. 배가 고파서…….”
핸드백에서 작은 육포 조각 하나를 꺼낸 그녀가 강아지의 입에 갖다 대었다.
“이거 먹을래?”
장채원이 내민 육포를 내려다보던 강아지는 다시 천마를 바라보며 왕왕 소리를 내었다.
“이상하네. 왜 널 보며 짖는 거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는 육포 조각을 천마에게 내밀었다.
“네가 주라는 것 같은데?”
“무슨 소리냐.”
“한번 줘봐.”
육포 조각을 받아든 천마가 강아지의 입에 갖다 대자, 강아지는 기쁜 듯 꼬리를 흔들며 먹었다.
쭈그려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채원이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널 주인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상한 강아지군.”
천마는 관심 없다는 듯 매장으로 들어갔다.
이후로도 강아지는 종종 매장 앞으로 찾아왔다.
천마는 시선도 주지 않았지만 강아지는 언제나 천마를 주인처럼 반겼고 애교를 피웠다.
보다 못한 장채원이 물과 육포를 담은 그릇을 내주려 했지만 천마가 반대했다.
“그런 걸 매장 앞에 두면 지저분해진다.”
사실 그러한 점은 장채원이 더욱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널 그토록 따르잖아. 신기하지 않아? 불쌍하기도 하고.”
“성가실 뿐이다.”
애당초 천마의 머릿속엔 인간이라면 갖고 있는 동정심 따윈 없는 것 같았다.
안으로 들어오려는 강아지를 발로 툭 차며 매장문을 닫는 천마를 보며 장채원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안 되는 걸까?’
정령수를 대신할 수 있다고 한들, 감정이 말라버린 인간에게 신뢰를 처리하게 할 순 없다.
아니, 더 이상 이 매장에 둘 수는 없는 처지였다.
신뢰를 처리한다는 것은 단순히 신력이나 은총을 얻는 것만이 아니기 때문에.
‘아냐. 아직 저런 걸로 판단할 순 없잖아.’
깊은숨을 몰아쉰 장채원은 고개를 흔들며 다시 노트북의 화면을 바라보았다.
천마의 매정함에 지친 것일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장을 들락거리던 강아지가 요새는 도통 보이지 않았다.
쏴아아아.
장마철이라 그런지 비가 며칠째 내리고 있었다.
회색빛으로 물든 하늘과 쏟아지는 빗방울을 보자, 아무런 관심 없던 장채원마저 강아지가 걱정될 정도였다.
“천마, 네가 하도 발로 툭툭 차서 이제 안 오나 보다.”
장채원이 핀잔을 주자 응접 테이블에 앉아 있던 천마가 덤덤히 말했다.
“애당초 이곳에 얼쩡거려선 안 되는 미물이었다.”
“매정하기는.”
다시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돌릴 무렵, 테이블에 올려놓은 구식 전화기에서 따르르릉 하는 벨 소리가 울렸다. 신뢰였다.
“네. 복복 인테리어입니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열심히 메모하던 장채원이 말했다.
“네, 그럼 조만간 방문 드리겠습니다.”
달칵.
수화기를 내려놓은 장채원을 보며 천마가 말했다.
“신뢰인가?”
“으응.”
대답은 했지만, 왠지 입맛이 썼다.
예전과 달리 천마를 데려가야 할까, 라는 고민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의뢰 내용은?”
“일종의 철거야.”
“그런가, 모처럼 쉬운 일이군.”
신뢰가 들어오자 무표정한 천마의 눈동자에서 희미하게나마 즐거움이 엿보였다.
그 어떤 일에도 무관심하지만 천마, 그는 오직 매장의 일. 즉, 신력을 얻을 수 있는 일에만 성실히 반응하고 있었다.
“글쎄, 할지 말지는 아직 몰라.”
“그게 무슨 말인가, 신뢰를 거절하겠다니. 요샌 평범한 공사 의뢰도 별로 없지 않나.”
“그렇긴 한데. 우리가 맡아도 될지 아닐지 애매한 거라서.”
거짓말에 익숙지 않은 탓일까, 아니면 복잡한 감정 때문일까?
장채원은 천마의 시선을 피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잠깐 나갔다 올게.”
“비 오는데 어딜 가나.”
“으응, 입이 텁텁해서 커피나 한잔 사 오려고.”
“그렇군. 다녀와라.”
천마는 다시 읽고 있는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쏴아아아.
밖으로 나온 장채원은 우산을 폈다.
“어라?”
문득 아래쪽을 내려다보던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점심에 먹은 그릇들의 비닐은 모두 풀어져 있었고 비에 젖지 않게 작은 합판이 ㄷ자 모양으로 씌워져 있었다.
“저 녀석…….”
그릇들을 바라보는 장채원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대체 어느 쪽이냐고.”
입술을 깨문 장채원은 주차장으로 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어딘가에 열심히 전화하더니, 다시 휴대폰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어서 어딘가로 전송했다.
“천마야.”
다시 매장으로 돌아온 장채원이 결심한 듯 말했다.
“방금 들어온 신뢰, 내일 바로 시작할 테니까 준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