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약선동 능웅신 (2)
“말을 제대로 해라. 할머니가 아니라 그저 이무기일 뿐이다.”
“장난해?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잖아. 이야기도 나눴잖아?”
천마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인형설삼(人形雪蔘)은 갓난아이로 모습을 변화시킬 수 있다. 만년금구(萬年金龜)는 매우 청수한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 물론 말도 유창하게 하고 말이다.”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거야.”
“흔한 일이라는 거다. 내단을 가진 영물들이 인간의 형태로 둔갑하는 건.”
“둔갑?”
화를 꾹 누르고 있던 장채원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둔갑이 아니라, 그들도 인간과 같은 생명이라고!”
“인간과 같다… 라. 인간의 생명이 고귀하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고개를 치켜든 천마의 붉은 눈은 텅 빈 하늘과 같은 공허로 가득 차 있었다.
“본좌가 있던 세상에선 이무기는 귀한 음식이었다. 피는 피를 맑게 해주고, 내단은 내공을 증강시켜 주며, 살은 보양식이 되었지.”
다시 시선을 장채원에게 돌린 천마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인간과 이무기, 둘 중 어느 생명이 더 귀하다고 묻는다면, 본좌는 이무기라고 답할 수 있다. 인간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으니까.”
“너…….”
장채원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제야 천마의 머릿속에 있는 사고나 생각이 이 세계 인간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내 말 잘 들어. 여긴 네가 살던 세계가 아냐.”
장채원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거기선 영물이라고 취급하는지 모르지만, 우리 세계에선 요괴야. 우리와 함께, 같이 어울려 살아가는. 절대로 먹을 것으로 치부돼서는 안 되는. 무슨 말인지 알겠어?”
분노로 뒤덮인 장채원의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던 천마.
그는 오랜 침묵 끝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겠다.”
“어서 오시게.”
산 중턱에 이르자 요란한 옷을 입은 노인이 손을 흔들었다.
일전에 구축 아파트에서 봤던 흑곰 아저씨에 비해 덩치가 작았지만 두 눈이 깊은 노인의 모습을 한 곰이었다.
바로 음식으로 병자를 치유하는 힘을 가졌다는 요신, 능웅신이었다.
“처음 뵙겠어요, 어르신. 복복 인테리어를 운영하는 장채원이라고 해요.”
정중하게 명함을 건넨 장채원이 천마를 가리켰다.
“이 친구는 저희 직원 천마구요.”
장채원의 목소리는 조금 냉랭했다.
아직 기분이 풀리지 않은 듯 그녀는 오는 동안 천마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아하, 자네가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그…….”
천마는 정중히 포권했다.
“처음 뵙겠소이다.”
탄성을 지른 능웅신이 천마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반갑네. 이 약선동을 운영하는 능웅일세.”
그런데 고개를 들고 능웅신의 옷을 본 천마는 갑자기 감탄사를 터뜨렸다.
“거침없고도 독특한 양식의 의복이구려. 능 노반(老板:사장님). 굉장히 귀한 옷 같소이다.”
그러자 능웅신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천마의 어깨를 두들겼다.
“하하하. 뭐 손재주가 있어서 직접 만들어본 것이지. 자네, 눈썰미가 상당하구만.”
‘응?’
장채원은 두 눈을 비볐다.
능웅신의 옷감 자체는 고급스럽게 보였으나 색감이 알록달록했다. 얼핏 보기엔 시장통에서 공연하는 각설이 옷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역시 인테리어 하는 양반이라 감각이 좋군. 자자, 이쪽으로 오게나.”
기분이 좋은지 능웅신은 껄껄 웃으며 산 중턱에 있는 동굴을 가리켰다.
“먼 곳까지 오느라 고생했네. 잠깐 여기 앉아 있게나.”
동굴 위에는 약선동(藥仙洞)이라는 간판이 올려져 있었고, 그 옆에 ‘약선요리 전문’이라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이거 한잔 들이켜 보게. 피로도 풀리고 기력도 회복될 걸세.”
주방으로 들어간 능웅신은 이내 천마와 장채원이 있는 테이블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 한잔을 내밀었다.
“감사하외다.”
천마는 투명한 찻잔을 집어 들어 훌훌 마셨다.
순간 뼛속이 시원하고 시력이 좋아진 것처럼, 시야가 더욱 또렷해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장채원은 미소를 지을 뿐 찻잔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능웅신의 시선을 느낀 그녀는 아, 하는 소리를 내었다.
“능웅신 님. 도배하신다고 하셨죠?”
“아무래도 오래되다 보니, 벽지도 낡아서 말이지. 새로 도배를 할까 하는데.”
“그럼 먼저 샘플을 한번 보시겠어요?”
장채원은 테이블 위에 작은 종이 한 장을 올려두었다.
그러자 종이는 점차 커지더니 커다랗고 두꺼운 벽지 샘플로 변했다.
‘꼭 도술 같군.’
천마는 눈을 껌뻑였다.
역시 이 세계는 무림과 다르다. 다양한 종족이 살고 있을뿐더러, 알 수 없는 기술과 힘을 당연한 듯 사용하고 있다.
“여긴 네가 살던 세계가 아냐.”
불현듯 장채원이 했던 말이 떠오른 천마는 조소를 머금었다.
상관없는 일이다. 어차피 그 자신은 이 세계에 잠시 머무르는 이방인일 뿐이니까.
“흐음. 모처럼 고르려니 어렵구만. 유행도 바뀐 것 같고 말야.”
장채원과 능웅신이 테이블에서 벽지 샘플을 보는 사이, 천마는 몸을 일으켜 약선동 안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자연적인 동굴이 아니었군.”
동굴 내부는 건물처럼 매끈하게 깎여 있었고, 천장과 벽은 중식집처럼 금색과 붉은색이 뒤덮인 벽지로 도배되어 있었다.
능웅신의 말대로 시일이 오래 지난 듯, 진한 색감임에도 벽지 위로 찌든 때와 오염 물질이 달라붙어 있었다.
“흐음.”
동굴 내부를 살펴보던 천마는 턱을 쓰다듬었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지금까지 보았던 인테리어 서적의 내용들이 촤르르 떠올랐다.
“이상하군. 어째서 동굴이라는 이점을 살리려 하지 않는가.”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할 동안.
“거기서 뭐 해?”
어느새 바깥으로 나온 장채원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능웅신 님이 벽지를 고르셨어.”
“그런가. 곧 준비를 하겠다.”
“아니, 시공은 됐어. 나중에 따로 기사들을 섭외할게.”
장채원은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오해는 하지 마. 이곳은 아직 네가 하기엔 너무 어려운 시공 현장이라서 그러는 거니까.”
“오해하지 않는다.”
천마의 얼굴엔 아무런 감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장채원은 희로애락이 전혀 없는 로봇과도 같은 얼굴을 보고 있자니 왠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거짓말 아냐. 자, 봐 봐. 이 패턴은 무늬 맞춤을 해야 한다고. 네가 지금 할 수 있는 시공이 아니라고.”
천마는 장채원이 집어 들고 온 벽지 샘플을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이 벽지는 못 쓴다.”
“뭐?”
“이곳은 야외에 만들어놓은 객잔이다. 애당초 벽지 시공을 하는 게 잘못된 것 같군.”
“무슨 소리야, 그게.”
장채원이 입을 벌리자 천마는 고개를 돌려 능웅신에게 말했다.
“능 노반. 이곳에 도배를 하지 말고, 차라리 다른 방식으로 꾸미는 게 어떻소이까?”
의외의 제안에 능웅신은 눈을 껌뻑였다.
“다른 방식이라니?”
“그렇소이다. 이곳의 장점을 살려 최대한의 개성을 표현하고, 개방감까지 선사해 주는 인테리어를 추천하오만.”
조리 있게 이야기를 술술 내뱉는 천마를 보며 능웅신은 턱을 쓰다듬었다.
“흐음. 개성이라.”
잠시 고민하던 능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본래 이번 시공은 자네에게 맡겨보지.”
“능웅신 님. 천마는 아직 인테리어를 배우는 중이라서요. 그나마도 책으로만 읽은 것이 대부분이라…….”
당황한 장채원이 두 손을 젓자 능웅신이 껄껄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본래 새로운 아이디어는 저렇게 패기 있는 젊은이들에게 나오지.”
“네?”
“어차피 야외 음식점이니 인테리어는 크게 상관이 없잖나. 뭐, 한번 시도해 보게나.”
능웅신의 말에 천마는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였다.
“믿어주셔서 감사하오. 한번 최선을 다해 보겠소이다.”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간 천마는 두 주먹을 주물럭거렸다.
‘역시 이곳도 신지로군. 공력이 어느 정도 충진되었어.’
심호흡을 한 천마가 공력을 끌어 올렸다.
점차 지면에서 열기가 솟구치더니 강력한 신력이 용천혈을 통과해, 단전에 차곡차곡 저장되었다.
“잠, 잠깐만. 인테리어 한다면서 왜 주먹을 푸는데?”
불길한 예감을 느낀 장채원이 다가오자 천마가 씩 웃으며 몸을 낮게 웅크렸다.
“인테리어의 기본은 철거가 아닌가.”
“뭐? 철거? 잠, 잠깐만!”
장채원의 외침은 우렁찬 천마의 사자후에 의해 삼켜졌다.
“권마칠식, 승풍항룡!”
콰앙! 콰앙! 콰앙!
폭음과 함께 천마의 주먹에 닿을 때마다 반질반질한 동굴 천장이 둥그렇게 패였다.
“사사경혼마극퇴!”
우렁찬 외침과 함께 천마의 신형이 팽이처럼 회전하며 수백 개의 발그림자를 쏟아내었다.
퍼엉! 쿠앙! 피잉!
천마의 발이 닿을 때마다 집채만 한 바위가 벽에서 떨어졌다.
사방에 날리는 흙먼지와 덩어리째 떨어지는 바위 조각을 바라보던 천마는 심호흡을 했다.
“후우…….”
그리고 마치 뼈가 없는 사람처럼 팔을 천천히 뻗더니 연달아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휘휘휘휙.
겉보기엔 태극권과 비슷한 형태였으나, 그의 양손엔 부드러운 힘이 아닌, 산악을 찢어버릴 듯한 패도적인 경력이 회전하고 있었다.
쿠우우우우.
마침내 폭풍과도 같은 바람이 발생하더니 내부에 있는 흙먼지와 석벽 조각들이 허공으로 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천마는 팔을 뻗어 그것을 수십 장 바깥으로 날려버렸다.
콰콰쾅!
천마가 날려버린 석벽 조각들은 하필 눈앞으로 보이는 절벽으로 날아갔다.
수백 개의 석벽 조각에 맞은 깎아지른 절벽은 모양 그대로 통째로 무너졌다.
우르르르릉.
흙먼지를 일으키며 사라지는 절벽을 보며 장채원과 능웅신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
두 손을 탁탁 턴 천마는 능웅신을 바라보며 동굴을 가리켰다.
“능 노반. 인테리어가 다 되었소이다. 한번 안으로 들어가 보시지요.”
“응? 으응. 알겠네.”
능웅신은 혼이 빠진 표정으로 약선동 안으로 들어갔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서 있던 장채원의 이마엔 폭포수처럼 땀이 흘러내렸다.
“너, 너… 미쳤어?”
“미쳤다니.”
“남의 영업장을 부숴놓고 인테리어라니. 지금 우리 매장 문 닫게 하려는 거야?”
천마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그녀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부쉈다니. 본좌는 인테리어를 해준 거다.”
“잠, 잠시만 이리 와보게!”
그때 약선동으로 들어간 능웅신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은 침을 꿀꺽 삼킨 장채원은 뭉크의 절규처럼 양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아아, 이제 끝났어.”
“걱정 마라. 본좌가 가보겠다.”
천마는 당당한 걸음걸이로 약선동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넋이 나가 있던 장채원은 천마의 등을 바라보더니 홀린 듯 따라 걸어갔다.
“이, 이게 자네가 말한 인테리어란 말이지?”
내부를 둘러보던 능웅이 눈을 껌뻑였다.
약선동 내부는 천마가 후려친 주먹과 발로 인해 곳곳이 움푹 패인 탓에 부서진 폐공장을 연상케 했다.
“투박하지만 이 숲의 풍광과 어울리도록, 최대한 빈티지한 느낌을 주면서 구조를 넓게 바꿔보았소이다.”
장채원은 눈을 질끈 감았다.
곧 벼락같은 불호령이 곧 떨어지겠지. 아니, 당장에 영지의 업무를 담당하는 신계(神界)의 관리자에게 당장 항의 전화를 할 수도…….
“딱 마음에 드는구먼.”
“에?”
장채원이 입을 벌리자 두 눈을 가늘게 뜬 능웅신이 천마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요새 유행한다는 그 뭐냐,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군. 그렇지 않나?”
“알고 있었소이까? 과연 대단한 감각이시오!”
천마는 껄껄 웃으며 동굴 내부를 가리켰다.
“요 근래 상업 공간에서 많이 하는 기법이지요. 일부러 거친 느낌을 주기 위해 배관과 벽돌을 쌓아두기도 합디다.”
“하하하하. 알고 있네. 나도 잡지에서 봤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장채원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두 눈을 비볐다.
‘아무리 봐도 그냥 멀쩡한 매장을 다시 헐벗은 동굴로 만든 건데?’
“과연, 소개를 받길 잘한 것 같구먼. 그전에 왔던 인테리어 점주들은 도통 개성도 없고 그저 그런 평범한 인테리어를 고집했는데 말이지.”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진심으로 저 망가진 폐공장 인테리어가 마음에 드는 건가?
힐끔힐끔 주변을 살펴보던 장채원은 능웅신의 각설이 같은 옷에 시선이 이르렀다.
‘아.’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었다.
입꼬리에 경련이 일어난 장채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그나마 다행이네.’
천마를 바라보는 능웅신은 장채원을 보며 감탄성을 터트렸다.
“점주께선 참으로 복이 많구려!”
“네?”
“아주 훌륭한 직원을 두셨소이다.”
“아, 네. 하하하…….”
“그런데 자네, 이름이 뭐라고 했나? 노부가 다음에 또 좋은 일감을 소개시켜 줌세.”
활짝 웃은 능웅신이 어깨를 두들기며 말하자 천마가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천마라고 하오.”
부우우웅.
돌아가는 차 안 내부는 숨 막힐 듯한 침묵이 계속되었다.
지친 표정으로 운전대를 잡고 있던 장채원이 낮게 헛기침을 했다.
“크흠.”
연신 가자미 눈으로 천마의 옆얼굴을 바라보던 그녀가 결국 나직이 말했다.
“미안해.”
“뭐가 말이냐.”
“신뢰를 처리하는 정식 직원이라고 말하고선, 널 믿지 못한 거.”
팔짱을 낀 채 하늘을 바라보던 천마가 조용히 말했다.
“흔한 일이다.”
“뭐?”
‘기껏 사과했더니만. 비꼬기나 하다니.’
운전대를 꽉 쥔 장채원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하지만 그뿐이야. 네가 생각하고 있는 그 야만적이면서 몰상식한 세계관에 대해서 납득한 건 아니라고.”
“그것도 흔한 일이다.”
천마의 표정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늘 그랬으니.”
그 목소리엔 표현할 수 없는, 심연 같은 어둠이 담겨 있는 듯했다.
문득 장채원의 머릿속에선 기이한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천마는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어쩔 수 없나…….’
천마의 방에 잠들어 있을 무명을 떠올린 장채원이 운전대를 꽉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