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18화 (18/285)

제18화. 신지관리팀 공무원

“아아. 오늘은 쉽지 않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오후. 휴대폰의 통화종료 버튼을 누른 장채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루 종일 진상 손님의 향연이야.”

휴대폰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는 지쳐 있었다.

벨 소리가 또다시 울리면 쓰러질 것만 같다.

“방금 도배한 벽지가 왜 쭈글쭈글하냐고 닦달하지 않나. 하이펫트를 깔아두고 왜 본드를 칠하지 않았냐고 따지질 않나.”

전화기를 내려놓은 그녀는 책상에 엎드린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설명해도 듣지를 않아. 듣지를…….”

그러자 응접 테이블에 단정히 앉아 인테리어 책을 보고 있던 천마가 덤덤히 말했다.

“그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게지.”

“뭐?”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녹차를 한 모금 마신 그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소비자들은 인테리어 전문가가 아니다. 어차피 무지함 때문에 발생된 항의가 아닌가?”

“하지만 그 인테리어 전문가가 설명을 해도 듣질 않는다고.”

“그랬나.”

무덤덤한 표정을 지은 천마는 다시 펼쳐져 있는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힘들겠군.”

근육이 드러난 광마혈투의를 입은 천마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책을 읽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장채원은 우주에 가득 찬 부조리가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네가 여유 부릴 때냐? 어디 손님으로 오셨어? 응?”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온 장채원은 천마에게 얼굴을 바짝 갖다 대었다.

“남은 힘들어 죽겠는데 한가하게 매장 테이블에 앉아서 신선놀음을 해? 누구 약 올려?”

장채원과 한 뼘도 되지 않은 거리에서 얼굴을 마주하자 천마는 움찔했다.

그것은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피로와 스트레스로 찌든 그녀의 얼굴이 방금 무덤가를 뛰쳐나온 시체처럼 시퍼렇게 굳어 있었기 때문이다.

“…죽진 마라.”

“그건 또 무슨 신박한 헛소리야.”

두 사람이 한창 투닥거리고 있을 무렵.

딸랑.

유리문에 걸린 풍경 소리가 울려 퍼지며 훤칠한 그림자가 불쑥 안으로 들어왔다.

“실례합니다.”

매장에 들어온 그림자는 단정한 정장을 입은 훤칠한 청년이었다.

하얀 피부에 길고 가는 눈매를 가진 청년의 머리는 짧고 단정했다. 겉으로 봐서는 갓 시청에 입사한 신출내기 공무원처럼 보인다.

“오랜만이에요. 누님.”

“어어.”

청년이 한 걸음 다가올 때마다 장채원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웬, 웬일이야?”

“누님 정령수가 망가졌다면서요.”

“어떻게 알았대.”

장채원이 억지웃음을 짓자 청년도 두 눈을 접으며 하하 웃었다.

“정령수 대신에 다른 세계 사람을 직원으로 뽑으셨다던데?”

“어? 으응.”

“앗, 혹시 이분이?”

청년은 꼿꼿한 자세로 테이블에 앉아 책을 보는 천마를 가리켰다.

장채원은 억지로 웃으며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인, 인사해. 천마야.”

“하하하. 처음 뵙겠습니다.”

빙긋 미소 지은 청년은 천마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동원이라고 합니다.”

“동원?”

천마가 눈을 껌뻑이자 자신을 동원이라고 밝힌 청년이 가슴 쪽 호주머니에 붙어 있는 명찰을 가리켰다.

“네. 시설자원부의 신지(神地) 관리팀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금빛으로 반짝이는 명함을 천마에게 정중히 내밀었다.

“이곳, 복복 인테리어 같은 영지나 신님들이 사는 신지를 관리하는 업무를 주로 맡고 있지요.”

알 듯 말 듯한 설명이다.

명함을 내려다보던 천마는 팔짱을 끼며 위엄있는 말투로 말했다.

“본좌는 천마다.”

“네. 반갑습니다, 천마 님.”

청년, 동원은 천마의 근육질 몸을 조각품 감상하듯 바라보았다.

“다른 세계에서 오신 분이시라고요.”

“그렇다.”

천마의 무뚝뚝한 태도에도 청년은 예의가 바르고 싹싹하게 행동했다.

장채원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로 온 거야?”

“누님. 잊으셨나요? 올해에 저희 신지관리팀에서 영지 등급을 다시 재지정하잖아요.”

그의 말에 장채원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벌, 벌써 그렇게 됐나.”

“누님 매장은 그나마 정령수 덕에 9등급으로 간신히 통과됐는데… 요샌 정령수 없이 일하신다면서요?”

“으응. 생, 생각보다 천마가 일을 아주 잘하더라고.”

시선을 피한 장채원의 말에 동원이 빙긋 미소 지었다.

“네, 안 그래도 요새 천마 님 이야기가 신님들 사이에서 화제더라고요. 다른 세계에서 오신 분하고 신뢰를 완벽히 처리하셨다고.”

“후후후. 당연한 거 아닌가.”

그 말을 들은 천마가 다시 팔짱을 끼며 말했다.

“본좌는 천마니까.”

“네에…….”

“그것 때문에 온 거야?”

장채원의 물음에 동원이 품속에서 수첩을 꺼내 들었다.

“뭐, 그렇기도 하고 이번에 팀장님의 특별 지시로 누님에게 몇 가지…….”

그때 장채원의 휴대폰에서 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보세요? 네?”

전화를 받던 장채원의 표정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아까 전화를 했던 그 진상 손님이다.

“아까도 설명드렸잖아요. 벽지는 삼 일 정도 후에 마르면서 쫙 펴진다고요. 네네, 그러니까 벌써 열 번이나 전화로 설명을 드리잖아요. 벽지는 당장 마르는 게… 야 이, 귓구녕에 소세지를 박았냐?”

화를 버럭 내던 그녀는 자신을 빤히 응시하는 동원을 보자 재빨리 표정을 고쳤다.

“그러니까 제가 설명드렸잖아요. 호호호. 네, 지금 손님이 있어서 이만.”

뚝.

전화를 끊자 몇 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네? 말씀드렸잖아요. 하이펫트는 본드 시공을 하지 않는다고요. 그래서 처음엔 울렁울렁해요. 원.래.장.판.재.질.이.그.렇.다.고.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동원이 빙긋 미소 지었다.

“아아, 이거 곤란한데요…….”

동원의 눈은 웃고 있지만 이마엔 핏발이 서 있었다.

뚝.

장채원이 전화를 끊자 동원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수첩에 뭔가를 적었다.

“응대 점수 마이너스 10점.”

“뭐? 야아, 이거 신뢰 아니거든?”

장채원의 항의에 동원의 이마에 서 있던 핏줄이 더욱 굵어졌다.

“누님. 매장 등급이 신뢰로만 판단되는 거 아니에요. 인간들의 평판도 엄연히 심사 대상이라고요.”

잠시 심호흡을 한 그가 수첩을 덮었다.

“신님들 중에선 인간들의 믿음을 중요시하는 분들이 많죠. 만약 주변 사람들에게 인심이 안 좋다고 알려지면 매장 등급은 나락으로 추락한다고요.”

“누가 몰라? 근데 방금 이 녀석은 그냥 인간이 아니야. 또라이라고 또라이!”

천마는 이성을 잃은 채 소리를 지르는 그녀를 제지했다.

“점주. 정신 차려라.”

“천마. 너도 들었잖아? 벽지 마르면 펴진다는 걸 벌써 열 번이나 설명했다고? 이런 정신 나간 진상을 어떻게…….”

그러다 저승사자처럼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동원을 보자 장채원은 헛기침을 했다.

“어떻게든 친절히 응대해야겠지. 천마, 너도 명심해.”

“늦었어요, 누님. 마이너스 20점, 탈락이에요.”

“야아, 너 많이 컸다. 그래, 차장이 되니까 지난날은 다 잊은 거지? 응?”

장채원이 두 눈에 푸른빛을 발하자 동원의 눈도 험악해졌다.

“누님. 공과 사는 구분해야죠. 이건 일이라고요. 제대로 안 하면 저도 짤린다고요.”

두 사람의 모습 뒤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서로를 노려보는 용과 범의 모습이 비치는 듯하다.

“인간의 감정이란 각자의 생김새처럼 그 모양과 종류가 헤아릴 수 없이 복잡하다.”

그때, 책을 내려놓은 천마가 걸어 나와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본좌도 마문대법을 익혔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이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었지. 인간의 감정이란 천 갈래 만 갈래 풀어헤친 실 가닥만큼 복잡하고, 평온한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지듯 그 자취를 가늠할 수 없으니까.”

유리창 너머 하늘을 바라보는 천마의 모습은 마치 큰 이치를 깨달은 대 현자의 모습과도 같았다.

“그래서 뭐?”

장채원이 황당한 표정을 짓자 천마가 말했다.

“인간은 대화로 감정을 풀어낼 수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다시 응대를 한다는 건가요?”

동원의 말에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인간의 말이란 묘한 힘을 가지고 있지. 수십 년간 맺혔던 상한 감정을 풀어내기도 하고, 천만금의 보물보다 더 귀한 가치를 보여주기도 하니까.”

매일 어류겐이나 날릴 것만 같던 천마가 이토록 달변이었던가!

무공광일 뿐만 아니라 독서광인 그는 달변가이자 궤변가이기도 했던 것이다.

“뭐, 일리가 있는 말씀이군요.”

헛기침을 한 동원은 다시 나긋한 말투로 장채원에게 말했다.

“뭐, 누님 매장이야 다른 건 볼 필요도 없으니… 그 응대에 관해서만 좀 제대로 처리해 주시면 될 것 같은데요.”

“뭔 소리야?”

동원은 아직도 울리고 있는 장채원의 휴대폰을 가리켰다.

“그 두 개의 클레임, 처리해 주시죠.”

“뭐?”

동원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두 개의 클레임 건만 원활히 처리해 주심, 문제없이 9등급을 유지해 드리겠습니다.”

부르릉.

장채원의 하얀 승합차가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뒷좌석에는 수첩을 들고 있는 동원이 있었고 조수석에는 천마가 몸을 웅크린 채 앉아 있었다.

“본좌도 가야 하는 건가.”

그 순간 운전을 하던 장채원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넌 우리 매장 직원 아냐?”

천마가 침을 꿀꺽 삼키고 창밖을 바라보자 그녀가 다시 말했다.

“영지에서 탈락하면 신뢰도 못 얻어. 그렇게 되면 너도 내공이고 뭐고 없는 거야.”

“그런가.”

입을 벌리던 천마는 붉은 눈을 번뜩이며 힘있게 말했다.

“걱정 말고 맡겨둬라. 본좌가 다 해결할 테니까.”

알고 보니 이 험악하게 생긴 천마라는 사내가 클레임 처리 담당이었나?

뒷좌석에 있는 동원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머리를 불쑥 내밀었다.

“어떻게 해결하시게요?”

팔짱을 낀 천마가 엄숙하게 말했다.

“본좌의 방식으로.”

띵동.

여러 번 벨을 눌렀지만 반응이 없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안쪽에서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는데, 지금은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이상하군.”

천마는 다시 한번 차임벨을 눌렀다.

띵동. 띵동. 띵똥.

여전히 반응은 없다.

“분명 안에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는데, 열어주지 않는군.”

문에 귀를 갖다 댄 채 천마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눈을 번뜩였다.

“방심하다가 적수에게 점혈을 당한 건가.”

“뭔 소리야.”

장채원이 핀잔을 주자, 뒤에 서 있던 동원이 곤란한 듯 이마에 땀을 닦았다.

“열어주지 않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무슨 말이냐.”

천마가 고개를 돌리자 동원이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니까… 비디오폰에 천마 님 얼굴이 보이면 저라도 문을 못 열 것 같은데요.”

“후후, 역시 그런가. 본좌의 몸에 흘러나오는 무형지기(無形之氣) 때문이군.”

혈광을 번뜩인 채 씩 웃는 천마.

그 모습은, 이미 수백 명을 골로 보내버린 도살자의 미소처럼 살벌했다.

“아, 아뇨. 그런 거랑은 조금 다르지만…….”

험악하다는 말조차 부족한 천마의 면상을 바라보던 동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곤란하군요. 문을 안 열어주니.”

“걱정 마라.”

자신감 있게 미소 지은 천마가 주먹을 움켜쥔 채 몸을 낮게 웅크렸다.

그 모습을 본 장채원은 재빨리 천마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 안 돼! 그런 짓은!”

그리고 몸을 돌려 다시 차임벨을 눌렀다.

“저 복복 인테리어에서 왔어요. 문 좀 열어주세요!”

장채원이 비디오폰 렌즈에 얼굴을 갖다 대자 한참 뒤, 철컥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왜 온 거요?”

문밖으로 나온 남성은 매우 인상이 좋지 않은 중년인이었다.

장채원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다시 천마가 앞으로 나섰다.

“복복 인테리어에서 왔다. 벽지 시공에 불만을 제기했던 고객, 본인인가?”

“뭐, 뭐야.”

남자는 구렁이 같은 핏줄이 바짝 서 있는 근육질의 천마를 올려다보자 주춤주춤 물러서며 문을 닫으려고 했다.

“아직 본좌의 말이 끝나지 않았다.”

문을 턱 막자 남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무, 무단침입으로 신고할 거야!”

“그쪽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문 앞에 서 있는 게 안 보이나.”

천마가 시뻘건 눈을 번뜩이자 남자는 침을 꿀꺽 삼키며 뒤로 물러났다.

“문, 문 닫을 거예요. 비켜주세요.”

“설명을 들은 후 닫아라.”

천마는 현관 입구에 붙여진 벽지를 가리켰다.

“이렇게 벽지가 쭈글쭈글한 건 완전히 건조가 되면 펴진다. 지금은 당연히 풀과 물이 들어갔으니 벽지는 젖어 있는 상태지.”

남자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천마가 붉은 눈을 바짝 가까이 대었다.

“본좌의 말을 알아들었나.”

“네… 네.”

“좋다. 만약 삼 일 후에도 벽지가 펴지지 않으면 본 매장으로 다시 연락하라. 본좌가 다시 오겠다.”

“아, 아뇨. 다시는 오지 마세요…….”

“그런가. 알아들었군.”

부드럽게 남자의 어깨를 두들긴 천마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장채원을 바라보았다.

“해결했다.”

“이거이거, 곤란하군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동원의 이마에 땀방울이 흘렀다.

“이건 불만 해결이 아니지 않나요?”

정확히 말하자면, 험악하고 살벌한 인상 하나로 고객의 불만 자체를 소멸시켜 버린 셈이다.

하지만 천마는 덤덤히 말했다.

“정중히 설명했고, 고객은 납득하지 않았나.”

천마의 인상은 험상궂었지만, 눈빛은 맑고 진정이 담겨 있었다.

그는 결코 자신의 인상과 완력을 과시하지 않고, 말로 해결한 것이라 믿고 있는 것이다.

“으음.”

곤란한 표정을 지은 동원이 다시 한번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좋습니다. 그럼 다음 클레임은 천마 님이 아닌, 누님께서 해결하는 것으로 하죠.”

띵똥.

어느 다세대 빌라 1층.

장채원이 차임벨을 누르자 눈썹을 잔뜩 찌푸린 중년여성이 벌컥 문을 열었다.

“아니, 마침 잘 왔네. 대체 어떻게 장판을 시공했길래…….”

버럭 화를 내던 여성은 뒤에 서 있는 천마와 동원을 보자 입을 다물었다.

“저 사람들은 뭐여?”

“아, 신경 쓰지 마세요.”

장채원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안에서 설명드려도 될까요?”

중년여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장채원이 안으로 들어갔다.

뒤를 따라 천마와 동원도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중년여성이 버럭 화를 냈다.

“당신들은 뭐여?”

“본좌는 천마다.”

천마가 팔짱을 끼며 눈을 번뜩이자, 동원이 양복에 꽂힌 명찰을 가리켰다.

“아, 저는…….”

동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중년여성은 문을 쾅 닫아버렸다.

멀뚱히 서서 닫힌 문을 바라보던 그의 이마엔 땀방울이 흘러나왔다.

“곤란하네요. 이건…….”

아무리 신지관리팀 공무원이라 해도 남의 집을 강제로 들어갈 수도 없다.

그렇다고 안에서 뭘 하는지 내용을 볼 수도 없으니…….

동원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끙끙거리자 천마가 물었다.

“안으로 들어가고 싶나.”

“누님이 클레임을 해결하는 걸 봐야 하니까요.”

“흠.”

안쪽에선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아마도 장채원의 설명에도 중년여성은 자기 말만 떠드는 것 같았다.

“방법이 있긴 하다.”

“어떻게요?”

“본좌에게 이런 문은 두부와 같지.”

천마가 오른 주먹을 비틀어 쥐었다.

그 순간 공기가 응축되더니 무시무시한 기운이 사방으로 퍼졌다.

“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금방 열 수 있다.”

“아니에요. 그냥 우리 밖에서 기다려요.”

동원의 말에 천마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어느새 버럭 소리치던 고성이 잦아지더니 철컥하며 현관문이 열렸다.

“그럼, 알아들으신 걸로 알고 갈게요.”

“네에…….”

장채원의 문밖으로 나오자 식은땀을 흘리며 서 있는 중년여성의 얼굴이 보인다.

그녀의 눈빛엔 초점이 없었고 어깨는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쾅.

재빨리 문을 닫은 장채원이 동원을 보며 빙긋 웃었다.

“봤지? 해결했어.”

“아아…….”

“이제 딴소리하지 마.”

동원은 두 눈을 반달처럼 접은 채 곤란한 미소를 지었다.

분명 안쪽에서 무언가 공갈 내지, 협박을 한 듯 보이지만 증거가 없으니 뭐라고 할 수도 없다.

“약속했잖아. 클레임 해결하면 등급 유지해 주기로.”

“으음.”

수첩을 바라보던 동원의 눈엔 갈등이 어렸다.

하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장채원의 눈.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천마의 진지한 눈빛.

그의 입가엔 허탈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뭐… 괜찮겠지.’

쓰으윽.

수첩에 무언가를 적은 동원이 탁 소리와 함께 수첩을 덮었다.

“약속대로 9등급으로 유지했습니다. 앞으로도 영지 관리에 힘쓰도록 하세요.”

“와아!”

“됐군.”

장채원과 천마가 미소 짓는 모습을 보자, 동원은 안 주머니에서 꺼내려던 무언가를 도로 집어넣고 말았다.

‘뭐, 괜찮겠지. 아직까지는…….’

빙긋 웃은 동원이 상냥한 목소리로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저는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다음에 봐.”

천마도 다가가 동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다음에 보지.”

동원은 그의 붉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음산하기 짝이 없는 눈매지만 눈동자만큼은 맑고 또렷하다.

그것은 자신의 신념을 쭉 관철하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눈동자였다.

마치 장채원, 그녀처럼.

“그래요. 다음에 또 봐요, 천마 님.”

천마를 바라보던 동원의 몸이 흐릿해졌다.

잠시 밝은 빛이 솟구치더니 후욱 소리와 함께 그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허,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군.”

천마의 말에 장채원이 눈을 깜빡였다.

“몰랐어? 젊긴 하지만 그래도 어엿한 신계의 공무원이라고.”

“그랬군. 신이었나.”

천마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는 격공도청술로 장채원이 안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빤히 알고 있었다. 다만, 동원이 알게 되면 점주가 곤란해질 것을 염려했을 뿐.

하지만 동원이 신이라면, 그 역시 모든 정황을 읽었을 터. 내부의 상황을 모를 리 없었다.

“융통성이 있는 신이었군.”

어느새 천마는 우리나라 말을 퍽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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