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10화 (10/285)

제10화. 삼족오 (2)

“언데드?”

[위험도 25. 이미 죽어버린 인간의 시체지만 저주에 의해 살과 피를 갈구하며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관절이 굳어서 동작은 매우 느리지만 치아와 손톱에 시독(屍毒)이 포함되어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끄어어.

복도에서부터 다가오는 수십 구의 시체들은 목이 쉰 듯한 신음 소리를 내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피부는 삭아버려 곳곳에 뼈가 드러났고, 몸에선 지독한 악취가 풍겨 나왔다.

“강시였던가.”

마문대법에 모두 통달한 천마는 시강술(屍殭術)이나 제령대법(制靈大法)에도 능했다.

눈앞의 언데드라는 것이 제강술로 만들어진 강시라는 걸 깨달은 천마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무림에서 만들어진 마물 역시 등장하는 것이었나.”

다른 세계에서 온 마물이 쏟아진다는 던전. 그 다른 세계란 무림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굳이 상대할 필요 없습니다. 언데드는 동작이 느리기 때문에 천마 님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테니까요.]

“본좌는 마도의 하늘이자 마문의 대종사이니라. 어찌 저주에 묶인 채 잠들지 못하는 원혼들을 그냥 두고 가겠는가.”

천마는 식지와 중지를 깨물어 피를 내었다. 그리고 복도 바닥에 커다란 도형과 법문들을 연신 그려내었다.

스윽 스윽.

마침내 마지막 글자를 그려내자 붉게 물든 도형과 법문에서 오렌지빛 광채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천마 님.]

천마는 옥상이 아닌 다시 밖으로 걸어 나갔다. 무명은 재빨리 그의 뒤를 쫓았다.

[어째서 도로 밖으로 나온 건가요.]

말없이 몸을 낮게 웅크린 천마는 폐건물의 모서리 부분을 힘차게 후려쳤다

“승풍항룡!”

콰직!

화강암이라도 부술 만큼 강력한 일격이었으나, 건물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겉보기엔 다 무너져 가는 건물이었으나, 강도는 청동빛 금속으로 뒤덮인 던전과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천마 님. 아무리 다 무너져 가는 건물이라고 해도, 이곳은 던전입니다.]

“역시… 그런 건가.”

천마는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내공이 사라진 이상 아무리 강력한 육체를 지녔다고 해도 던전을 부술 힘은 없었다.

[1급 각성자라고 해도, 어떤 스킬로도 절대 던전를 부술 순 없습니다.]

“절대? 절대 할 수 없다고…….”

순간 천마의 눈에선 붉은 혈염광휘가 치솟았다.

인간의 몸으론 절대 이룩할 수 없다는 지고의 경지에 이른 천마. 지금까지 불가능이라고 말했던 것들을 모조리 부수었던 천마.

그런 그에겐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말이었다.

우드드득.

천마의 겹쳐진 양손에선 기묘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우우웅.

동시에 듣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소멸될 것 같은 괴음이 땅을 통째로 흔들기 시작했다.

“천마대능력(天魔大能力)!”

천마는 마고에 있으면서 내공이 아닌 육체 본연의 잠재력을 폭발시키는 대법을 창안했다.

다만 십 갑자라는 무한대의 공력을 가졌기에, 단 한 번도 써보지 못한 대법.

그것이 바로 천마대능력이었다.

투투투툭.

온몸에 굵은 핏줄이 바짝 선 천마의 눈에서 시뻘건 광망이 번뜩 일었다.

“권마칠식, 극전혼효(極電混淆)!”

온 힘을 다해 일권을 내뻗자, 맹렬히 회전하는 푸른 불꽃이 폐건물을 향해 날아갔다.

콰아아앙!

천지가 무너지는 폭음과 함께 눈앞에 서 있던 고층의 폐건물이 단번에 부서졌다.

우르르르.

허연 먼지와 함께 무너진 던전은 그대로 땅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천마 님의 각성 등급을… 을…….]

무명은 갑자기 고장이 난 건지, 낮은 기계음이 반복되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

끼이이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뾰족한 괴음이 먼 하늘을 가로질렀다.

동시에 무너진 던전 위로 거대한 무언가가 떠 있었다. 두 눈을 가늘게 떠보니 깃털은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었고 뾰족한 발과 날개가 세 개가 달린 괴조(怪鳥)였다.

“저게 뭔가.”

천마의 물음에 무명의 몸에서 띠릭띠릭 하는 기계음이 연달아 들렸다.

[삼족오 퀸. 지금까지 위험도와 특성이 알려지지 않은 히든몬스터 중 하나입니다.]

“히든몬스터?”

[특정 조건을 충족시키면 나타나는 몬스터입니다. 히든몬스터는 가변던전 지역의 몬스터들처럼 던전 밖으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매우 높은 확률로 고가의 유물을 갖고 있습니다.]

“유물이라.”

[천마 님께선 폐건물 던전의 히든몬스터 등장 조건을 발견했습니다. 몬스터 도감에 천마 님 이름으로 등록하실 수 있으며, 이 경우 협회에서 포상금을 지급합니다.]

정확한 뜻은 모르지만 무언가를 새로 발견했으니 포상금을 주겠다는 뜻 같다.

이름을 남기는 걸 마다할 그가 아니다. 반짝이는 삼족오 퀸을 바라보던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군. 본좌의 이름으로 등록해라.”

[등록이 거절되었습니다. 미등록 각성자는 도감을 추가할 수 없습니다.]

“그런가.”

천마는 미련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계는 그에게 잠시 머물렀다 가는 곳에 불과했으니까.

[삼족오 퀸은 위험도를 측정할 수 없는 몬스터입니다. 하지만 후퇴하라고 조언해도 듣지 않으시겠죠.]

“물론이다.”

[그렇다면 가능한 몬스터의 육체를 직접 파괴하는 건 자제해 주세요. 몸 안에 들어 있는 귀한 유물이 망가질 수 있으니까요.]

천마의 힘이 1급 각성자를 능가한다는 것을 인지한 무명은 전투에 관한 조언은 포기하는 듯했다.

“노력해 보지.”

삼족오 퀸을 바라보던 천마가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천마대능력!”

파아앙.

내공과는 전혀 다른, 육체 본연의 힘을 극대화시키는 천마대능력을 발휘하자 그의 몸 주변으론 붉은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투투툭.

굵은 핏줄이 전신을 휘감은 채 붉은 안개에 휩싸인 천마의 모습은, 마치 불길에 타오르는 마왕의 현신처럼 보였다.

끼이이!

천마의 살기를 느꼈는지 하늘에 떠 있는 삼족오 퀸이 눈을 번뜩이며 오만한 눈빛으로 괴음을 쏟아냈다.

“자, 오너라. 마물.”

천마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삼족오 퀸의 눈에선 금빛 살기가 번들거렸다.

끼이이이.

긴 울음소리와 함께 한줄기 금빛 광채가 된 삼족오 퀸은 천마의 머리를 향해 빠르게 하강했다.

“좋군.”

대지를 찢어발기는 듯한 삼족오 퀸의 기세를 바라보던 천마가 주먹을 꽉 쥔 채 몸을 웅크렸다.

“권마칠식, 승풍항룡!”

하늘에서 떨어지는 금빛 광채와 땅에서 솟구친 붉은 광채가 허공에서 부딪쳤다.

쾅!

천둥 같은 폭음과 함께 사방으론 금빛 털이 반짝였다. 천마의 승풍항룡에 의해 삼족오 퀸이 허공에서 박살이 난 것이다.

타악.

땅으로 착지한 천마가 사방으로 흩날리는 금빛 깃털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내공처럼 조절이 안 되는군.”

고개를 가로저은 그는 허공에 흩날리는 삼족오 퀸의 깃털을 바라보았다.

그중 유독 오색 빛깔로 반짝이는 깃털 세 가닥을 손가락으로 집어 들었다.

“이걸 가져가도록 하지.”

[삼족오의 깃털 세 가닥을 얻는 임무를 완료하였습니다. 다시 매장으로 귀환하시겠습니까?]

천마가 고개를 끄덕이자 무명이 다시 지도를 띄웠다.

[그럼 장채원 님이 설정해 두신, 옥상 건물의 비밀 통로로 다시 안내하겠습니다.]

둥그런 몸체를 빙글 돌린 무명이 윙 소리를 내더니 다시 몸을 돌렸다.

[이런 걸 업보라고 하는 건가요.]

“무슨 말이냐.”

[삼족오 킹이 등장했습니다. 출현 조건은 삼족오 퀸을 일격에 소멸시키는 것입니다.]

하늘에선 검은빛을 번뜩이는 새 한 마리가 높은 상공에 떠 있었다.

놀랍게도 기척도 소리도 내지 않아 감각이 예민한 천마조차도 감지하지 못한 상태였다.

만약 360도 전방위로 몬스터를 감지하는 무명이 아니었다면, 천마는 기습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도움이 되는군. 자칫하면 기습을 당할 뻔했어.”

[길 안내만 해주는 기계라고 생각했었나요.]

“그렇다.”

[순순히 인정해 주시니 감사하군요. 그럼 저 삼족오 킹도 처리하실 건가요?]

“천만에.”

의외로 천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느새 그의 몸은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고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천마대능력… 생각보다 몸에 무리가 많이 가는군.”

내공이 소실될 거라는 가정하에서 만든 것도, 실제로 펼칠 거라고 생각하고 만든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마고를 떠나기 전, 후대에 남겨둘 기학(奇學) 하나를 남겨둘 생각으로 만들었던 천마대능력.

막상 실제로 펼쳐보니 금강지체를 이룬 천마마저 버티기 힘들 만큼 육체에 부담을 주는 공력이었던 것이다.

[아까와 같은 전력 질주는 얼마나 가능하십니까.]

“일각(15분) 정도.”

[저를 어깨에 올려주십시오.]

[도주로를 검색합니다.]

던전의 지도를 주르륵 검색하던 무명의 몸에서 빛이 쏟아지더니 천마가 보이는 땅 아래로 파란색 줄이 그려졌다.

[천마 님의 질주 속도를 계산해, 삼족오 킹의 공격 범위를 벗어날 경로를 계산하였습니다. 제가 달리라고 말씀드리면 이 줄이 가리키는 경로로 뛰십시오.]

천마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무명이 외쳤다.

[지금입니다.]

파란색 줄이 보이는 곳으로 달리자마자 뒤에서 휘익 소리가 났다.

아마도 하늘에 떠 있는 삼족오 킹이 활강하며 공격을 시작한 듯하다.

띠릭. 띠릭.

하늘에 떠 있는 삼족오 킹의 공격을 예상한 듯, 발아래로 보이는 파란색 선은 연달아 방향이 바뀌었다. 천마는 숨이 차올랐지만 이를 악물고 뛰었다.

[저 앞의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십시오.]

눈앞에 보이는 폐건물로 몸을 날리자마자 새앵 하는 속도와 함께 건물 윗부분이 통째로 날아갔다.

우당탕 소리와 함께 벽에 부딪친 천마는 숨 돌릴 새도 없이 다시 파란색 줄이 가리키는 곳으로 뛰기 시작했다.

“저, 저게 뭐야!”

그때 천마의 눈앞으로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수십 명의 각성자들이 떼 지어 모여 있는 작은 건물이 보였다.

전력 질주를 하던 천마 역시 똑같은 심정이었다.

“저게 뭐냐.”

[협회 소속의 각성자들이 운영하는 휴게소입니다.]

“휴게소?”

[각성자들이 던전 안에서 편히 쉴 수 있도록 만든 편의 공간입니다. 안에서 잠을 잘 수도 있고 다양한 물품들과 음식도 판매 중입니다.]

쓸데없는 설명까지 주절주절 이야기하던 무명이 다시 말했다.

[휴게소를 운영하는 각성자들은 모두 4급 이상의 실력자들일 겁니다. 천마 님은 휴게소 안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그 옆을 지나쳐 가시면 됩니다.]

천마는 앞을 볼 사이도 없이 파란 선이 그려낸 길을 따라 휴게소를 스치듯 뛰어갔다.

그러자 뒤이어 지직 소리와 함께 휴게소 주변으로 커다란 비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대체 저게 뭔데 역장을 단숨에 부수는 거냐!”

“히든몬스터다! 당장 공격 준비해!”

뒤를 돌아보니 휴게소는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천마는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것이 양심에 난 털이 가슴을 쿡쿡 찌르는 것이라는 걸 모른 채.

* * *

복복 인테리어 매장 내부.

“와아! 뭐야, 이게 정말 삼족오 털이야?”

응접 테이블에 앉은 장채원은 천마가 가져다준 삼족오 퀸의 털을 보며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보통은 까만색 윤기가 흐르는데… 이건 오색 빛깔이 나잖아? 영기(靈氣)도 훨씬 더 짙고 말이야.”

“점주가 만족하니 다행이로군.”

“만족하는 정도가 아니지! 이 정도면 최상의 붓을 만들 수 있는걸? 정말 고생했어, 천…….”

아이처럼 팔짝팔짝 뛰며 좋아하던 장채원의 입가에 미소가 사라졌다.

천마의 표정은 어딘가 불편해 보였고 눈 밑엔 다크서클이 길게 늘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왜? 어디 아파? 던전에서 다친 거야?”

“아, 아니다.”

억지로 미소 지은 천마가 고개를 저었다.

“조금 피곤해서 그렇다.”

“그래그래. 고생했으니까 편히 쉬어. 나 잠깐 요 앞 만물상에 다녀올 테니까.”

“알겠다.”

핸드백을 챙긴 장채원이 희희낙락하며 매장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천마의 시선은 매장 안에 설치된 TV에 고정되어 있었다.

TV 화면엔 음소거된 채, 박살 난 휴게소와 각성자들이 삼족오 킹에 의해 우르르 쓰러지는 상황이 긴급 속보로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낮, XX지구 세이프던전 지역에서 히든몬스터 중 하나인 삼족오 킹이 등장하여…….

-원인을 알 수 없는 F급 던전 파괴에 대해, 당국은 미등록 각성자에 대한 협회의 관리 소홀을 성토하며…….

“으음.”

뉴스를 보던 천마의 깊은 침음에 어깨에 올라탄 무명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천마 님.]

무명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모르게 자랑스러움과 당당함이 녹아들어 있었다.

[저 정도 인원이라면 최소한 죽진 않을 테니까요.]

그것은 오직 위험으로부터 사용자를 지켜냈다는 자부심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