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9화 (9/285)

제9화. 삼족오 (1)

“오늘은 던전으로 가줄래?”

출근하자마자 장채원이 한 말이다.

대걸레로 바닥을 닦고 있던 천마가 눈을 껌뻑이자 장채원이 다시 말했다.

“삼족오의 털이 필요해서. 신뢰가 들어왔거든.”

“삼족오? 그게 뭔가.”

“으응. D급이나 F급 던전에 서식하는 까마귀인데, 까만 발이 세 개 달려서 삼족오라고 해. 그리 위험한 몬스터도 아니니까 쉽게 잡을 수 있을 거야.”

그 순간 창고 방에서 충전스테이션에 올라가 있던 나노봇의 눈이 번쩍 떠졌다.

[삼족오.]

위이잉 소리와 함께 충전스테이션에서 튀어나온 나노봇이 매장 밖으로 굴러 나왔다.

[삼족오는 위험도 50의 몬스터입니다. 성격은 온순한 편이나, 공격을 받으면 신경독이 묻은 발톱으로 공격합니다.]

주절주절 삼족오에 대해서 설명한 나노봇이 천마를 올려다보았다.

[던전. 던전에 가는 건가요?]

장채원이 빙긋 웃으며 하얀 눈동자를 번뜩이는 나노봇을 안아 들었다.

“응. 신령스러운 곳을 칠해야 하는 것이라, 삼족오의 깃털을 가져와야 해. 할 수 있겠어?”

[임무 접수 완료했습니다.]

나노봇이 흘려내는 기계음이 어딘가 모르게 기쁨에 차 있는 것만 같다.

[드디어 던전을 가는군요. 천마 님은 매일 막일만 하고, 시간 날 땐 방안에서 책만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그러니?”

[네에. 하릴없이 방안에 틀어박혀 이상한 책만 들여다봅니다. 아무리 다른 세계에서 온 이방인이라고 하지만, 정말 너무합니다.]

고성능 인공지능이 탑재된 탓인지, 나노봇은 수다쟁이처럼 떠벌떠벌 말을 이었다.

게다가 목소리 또한 코맹맹이 같은 소리를 내는 탓에 말투마저도 더욱 얄밉게 들렸다.

“으응. 어쨌든 삼족오의 깃털 세 개만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니?”

[물론입니다. 천마 님은 가장 보잘것없는 9급 각성자지만, 제 지시에만 따르면 안전하게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그래. 그럼 나는 그동안 밀린 견적서나 뽑고 있…….”

웃으며 말하던 장채원은 입을 다물었다.

등 뒤에서 붉은 기운을 뿜어대는 천마는 당장이라도 나노봇을 발로 밟아버릴 듯 보였기 때문이다.

“…있으면 좋겠지만, 같이 가줄게.”

한숨을 내쉰 장채원은 나노봇을 자신의 어깨에 올렸다.

“아무래도 나노봇에 익숙하지 않을 테니까.”

“괜찮다.”

고개를 저은 천마는 장채원의 어깨에 있는 나노봇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활활 타오르는 눈을 바짝 갖다 대며 말했다.

“이 녀석과 둘이 다녀오지.”

매장 뒤편에 있는 던전 지역으로 가는 철문을 열자, 한없이 까만 공간이 보였다.

어둠으로 물든 이 문을 통과하면, 도심 외곽의 실드 너머에 있는 던전 지역으로 단숨에 이동할 수 있다.

“마치 신선들이 땅을 주름잡아 거리를 줄이는 축지법 같군.”

나노봇을 손에 쥔 천마는 지체 없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풍덩.

한없이 깊은 물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시야가 온통 암흑으로 물들었다.

심호흡을 한 천마가 몇 발짝 앞으로 내딛자 이내 환한 빛과 함께 폐허가 된 건물의 풍경이 드러났다.

[천마 님. 던전 지역에 도착하였습니다.]

나노봇는 감개무량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던전 안내 시스템을 인식시킨 후, 열흘 만에 드디어 던전에 들어와 보는군요.]

어깨에 있는 나노봇을 바라보던 천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하는 걸 봐선 영락없는 사람과 같은데, 영혼이 없다니. 신기하군.’

장채원의 말에 의하면 이 둥그런 물체는 기계, 즉 영혼 없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즉, 감정조차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물체에게 화를 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잘 들어라.”

차오른 분노를 누른 천마가 덤덤히 말했다.

“앞으로 주제넘게 본좌의 태도에 대해 평가를 하거나 험담을 하는 건 금지다. 알겠나.”

[불가합니다.]

나노봇은 천하 태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천마 님의 행동과 능력을 사용자에게 평가하는 건 저의 임무 중 하나니까요.]

“본좌의 말에 따르지 않겠다면 네놈을 부수겠다.”

[천마 님의 던전 탐험을 도와주고, 길을 안내하는 저를 일부러 부순다고요? 천마 님의 고용자 이신 장채원 님께서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이곳엔 마물이 많다. 마물을 상대하다가 우연한 사고로 파괴되었다고 둘러댈 수 있지.”

나노봇의 목소리엔 변함이 없었다.

[몬스터에 의해 파괴되는 건 괜찮습니다. 애당초 던전에 있는 몬스터에 의해 파괴될 수 있는 걸 상정하고 만들어졌으니까요.]

나노봇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하얀빛이 더욱 강해졌다.

[하지만 사용자인 천마 님께서 저를 고의적으로 파괴하려는 행위를 시도할 경우, 저는 어쩔 수 없이 그 모든 행위를 장채원 님에게 보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슨 수로?”

[제 통신 모듈은 장채원 님의 휴대폰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개인 사생활 보호 기능으로 인해 각각 다른 사용자의 메모리에 저장된 것들은 타인에게 공개되지 않지만, 이 경우엔 어쩔 수 없이 천마 님의 파괴 행위를 장채원 님께 보고해야겠죠.]

“왜 그걸 점주에게 보고하지?”

천마의 물음에 나노봇이 뻔뻔하게 말했다.

[저의 소유자는 장채원 님으로 등록이 되어 있습니다. 천마 님은 공동 사용자로 등록이 되어 있고요.]

‘점주가 등록되어 있다고?’

천마는 눈을 번뜩였다.

“듣기엔 정령수라는 걸 보냈다고 하던데. 점주도 던전에 자주 왔는가?”

[개인 사생활 보호 기능으로 인해 다른 사용자의 내용을 발설할 수 없습니다.]

“점주와 본좌는 매장에서 한솥밥을 먹는 처지다. 그 정도쯤은 알려줘도 된다.”

[한솥밥을 먹는 사이라는 건 가족처럼 친근하고 가까운 사이를 뜻합니다. 하지만 천마 님은 다른 세계에서 온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매장 직원입니다. 개인 정보를 알려줄 만큼 친분이 있을 거란 판단은 들지 않는군요.]

‘영혼이 없는 기계라고? 이놈이?’

천마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 보니 이 나노봇이라는 놈은 매우 교활할 뿐만 아니라,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람이 누구라는 것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과연 그럴까.”

따박따박 말대답을 하는 나노봇을 내려다보던 천마가 코웃음을 쳤다.

마도의 모든 무학과 대법, 그리고 살법까지 연마한 그였다. 이딴 조그만 기계 정도는 언제든 쥐도 새도 모르게 부숴버릴 자신이 있었으니까.

[이제부터 삼족오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천마 님. 제 이름을 설정해 주십시오.]

“설정하지 않는다.”

[제 이름을 등록하지 않으면 천마 님을 공동 사용자로 등록할 수 없습니다. 이름을 설정해 주십시오.]

“쥐새끼라고 하겠다.”

[거절합니다. 다른 이름으로 설정해 주십시오.]

주먹을 꽉 쥔 천마가 나노봇을 노려보았다.

수십 년간 무림을 횡행하면서 그가 이름을 붙여준 것은 오직 자신의 애검, 극천(克天) 하나뿐이었다.

“네 이름은…….”

잠시 고민하던 천마가 차갑게 내뱉었다.

“무명(無名:이름 없음)이다.”

[무명으로 입력 완료되었습니다. 천마 님을 공동 사용자로 등록하였습니다.]

띠리릭 소리와 함께 나노봇이 천마의 발 앞에 서서 팔을 들어 올렸다.

[그럼 이제부터, 저 무명이 던전 탐험에 앞서 천마 님을 위해 던전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던전이라는 것은…….]

“필요 없다.”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천마는 자신의 발아래에 서 있는 나노봇, 무명의 몸체를 툭툭 차며 말했다.

“설명 같은 건 필요 없다. 삼족오라는 마물이 있는 곳으로 즉시 안내하라.”

보통 같으면 토를 달 무명이었으나, 웬일로 군말 없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던전에 관한 설명은 건너뛰고 바로 안내를 시작하겠습니다.]

띠릭. 눈을 반짝인 나노봇은 천마의 눈높이에 투명한 지도 화면을 홀로그램으로 비춰주었다.

[붉게 표시되는 부분이 현 던전 지역에서 삼족오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던전들입니다. 이 중 가장 가까운 곳은 북서쪽 1킬로미터에 있는 C급던전 ‘놀이공원’ 이지만 천마 님께서는 2킬로미터에 있는 F급 던전 ‘흉가’로…….]

“가까운 곳으로 안내해라.”

[천마 님의 각성 레벨은 9등급, 거기다 처음 던전에 들어온 초보자입니다. 단독으로 D급 던전에 들어가는 건 불가합니다.]

지도를 빤히 바라보던 천마는 대답 대신 북서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성큼성큼 걷는 천마를 바라보던 무명이 빠르게 굴러가며 말했다.

[보통 던전을 안내하는 나노봇은 사용자의 어깨에 올라탑니다. 그래야 시야도 비슷해지고 안내도 간편하니까요.]

천마는 대답 대신 더욱 빠르게 걸어갔다.

그러다 금속으로 뒤덮인 커다란 건물이 눈앞에 보이자 무명의 눈 부위에서 하얀빛이 반짝였다.

[저 곳은 다양한 형태의 하급 몬스터가 있는 D급 던전 ‘농장’ 입니다. 각성 레벨 7등급 이상의 각성자가 아니라면 출입을 삼가야 합니다.]

“그렇군.”

무명의 만류에도 시꺼먼 입구를 바라보던 천마는 성큼성큼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위잉 소리와 함께 무명 역시 천마의 뒤를 따랐다.

[천마 님. 던전 내부에 들어오면 외부와의 통신은 단절됩니다. 즉 구조 요청을 보낼 수 없으니, 위험한 행동은 삼가주세요.]

“시끄럽다.”

바닥부터 천정까지 모두 청동빛 금속으로 뒤덮인 던전 내부에선 귀기가 흘렀다.

크르르르.

그때 기묘한 소리와 함께 저 멀리 어둠으로 물든 곳에서 누런 눈동자들 수십 개가 번뜩 떠올랐다.

쿠웅. 쿠웅.

낮은 진동과 함께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것들의 형체가 드러났다. 그것은 거대한 인간의 형태에 머리와 손발은 늑대의 것을 하고 있는 몬스터였다. 그것도 열 마리나.

띠릭.

낮은 기계음과 함께 무명의 음성이 들려왔다.

[후퇴하십시오.]

“무슨 말이냐.”

[블러드 시커. 위험도 25. 신선한 피를 갈구하는 몬스터입니다. 피 냄새에 매우 민감하여, 출혈이 발생하면 끝까지 추적하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라뇨. 열 마리의 블러드 시커를 9급 각성자 혼자 상대하다간 큰 부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잠시 침묵하던 무명이 다시 말했다.

[지금부터 아주 천천히 발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나세요. 블러드 시커는 피 냄새를 잘 맡지만 시력은 매우 퇴화되어 있으니까요.]

“흐흐흐.”

[천마 님. 이건 목숨이 달린 일입니다. 제 말을 듣고 천천히…….]

그 순간 천마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하! 간만에 몸 좀 풀겠군.”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자 블러드 시커들이 긴 이빨을 들이밀고 천마를 향해 덤벼들었다.

퍼억.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십여 마리의 블러드 시커는 순식간에 피떡이 되어 날아갔다.

“방금 뭐라고 했나.”

[천마 님의 각성 등급이 잘못 설정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길게 침묵하던 무명은 갑자기 감정이 없는 기계 목소리를 내었다.

[천마 님의 각성 등급을 8등급으로 조정합니다.]

천마는 말없이 던전 안쪽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그때마다 위험도가 높은 헤아릴 수 없는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천마는 무공초식도 아닌, 단순한 일격으로 모조리 처리했다.

쿵! 퍼엉! 뚜쉬뚜쉬! 빠가각.

[천마 님.]

던전 안에 있는 몬스터를 몽땅 박살 내는 천마를 보며 무명이 말했다.

[던전 내 몬스터를 몽땅 잡을 생각입니까?]

“본좌를 막는 것은 모조리 파괴할 뿐이다.”

마침내 던전의 중심부까지 들어가자, 그곳엔 거대한 게 모양의 몬스터가 집게발을 든 채 천마에게 달려들었다.

[이 던전의 최종 보스 크랩 피트입니다.]

“이놈은 제법 딱딱해 보이는군.”

크르르륵.

크랩 피트는 천마를 발견하자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더니 기다랗고 싯누런 눈을 쑥 내밀고 천천히 다가왔다.

[천마 님. 돌아가야 합니다. 던전 내 모든 몬스터를 처리한 지금, 던전 보스마저 쓰러뜨리면 던전이 소멸되어 버립니다.]

“무슨 말이냐.”

[C, D, F급의 던전은 위험도가 적고 유물을 남기는 몬스터들이 많습니다. 초보 각성자들이 재료나 유물을 채취할 수 있도록 낮은 등급의 던전은 클리어를 진행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

“권마칠식, 승풍항룡!”

빠가각.

허공으로 튀어 오른 천마의 일격에 맞은 크랩 피트는 연녹빛 액체를 사방에 터뜨린 채 박살이 나버렸다.

우우우웅.

크랩 피트가 쓰러지자 기분 나쁜 진동음과 함께 던전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저질러 버리셨군요.]

무명은 포기한 목소리로 말했다.

[천마 님의 각성 등급을 7급으로 조정합니다.]

[던전 붕괴가 시작되었습니다. 클리어한 천마 님이 밖으로 나가면 던전이 소멸될 것입니다.]

[그리고 힘 조절을 부탁드립니다. 크랩 피트의 몸속에 있던 유물 ‘금옥환’이 부서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금옥환이 뭐냐.”

[위장 장애에 특효가 있는 약입니다.]

“유물이라는 게 주로 약으로 나오는 건가.”

천마는 피식 웃자 무명이 답했다.

[던전의 종류마다 다릅니다.]

“종류라면?”

[곧 닫힐 던전 내부에서 설명하기엔 긴 내용입니다.]

“그럼 하지 마라. 궁금하지도 않으니까.”

천마가 밖으로 나오자 커다란 던전의 입구가 쿠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땅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상하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천마가 턱을 쓰다듬었다.

“이렇게 쉽게 던전을 없앨 수 있는데, 이곳 인간들은 왜 이런 위험한 곳을 놔두는 거지.”

[세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지도 스크린을 띄운 무명이 앞으로 굴러가며 말했다.

[우선 첫 번째는 던전을 클리어해도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던전이 생성됩니다. 그 시간은 불규칙하지만요.]

[두 번째로는 1급 각성자들의 팀으로도 S급 던전을 클리어하는데 희생이 따릅니다. 영원히 없어지지도 않는 던전을 무리하게 클리어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 번째는… 자원이겠군.”

[그렇습니다. 던전엔 이 세계에서 구할 수 없는 희귀한 재료들과 유물이 나옵니다. 경제적인 관점으로만 보면, 던전이 생긴 뒤로 오히려 이 세계는 풍요로워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명의 안내에 따라 길을 걷던 천마는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땅을 밟고 살아가는 대지유신, 다른 차원의 마물들이 등장하는 던전, 인간들과 공존하는 요괴. 고도로 발전된 지식 체계…….

이곳은 무림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다사다난한 곳이었다.

단 한 번도 미래를 걱정해 본 적이 없던 그마저 무림으로 갈 수 있을지조차 걱정될 만큼.

[삼족오가 있는 곳으로 예상되는 던전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때 무명이 폐허가 된 어느 건물 앞에서 멈춰 섰다.

[이곳이 F급 던전 ‘흉가’입니다. F급 던전은 9급 각성자도 클리어할 수 있을 만큼 위험도 낮은 몬스터로 채워져 있으며, 내부의 몬스터를 소멸시켜도 던전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폐건물 앞에 선 천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과 달리 던전으로 들어가는 시꺼먼 입구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로 들어가나.”

[이 폐건물 자체가 던전입니다. 이곳의 옥상에 삼족오가 서식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천마는 천천히 낡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천장에 빛이 흘러나오거나 곳곳에 횃불 같은 게 꽂혀 있는 던전과 달리, 이 낡은 폐건물에는 아무런 빛도 들어오지 않았다.

띠릭.

그때 무명의 몸에서 은은한 빛이 솟구쳤다. 스스로가 조명이 되어 사방을 비춰주려는 것 같았다.

“필요 없다. 본좌는 어둠 속을 훤히 내다볼 수 있으니까.”

고개를 가로젓던 천마의 귓가에 낮은 신음성이 들려왔다.

흐으으으.

그것은 유계의 지옥불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악마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였다.

계단을 통해 위쪽으로 올라가려던 천마는 발걸음을 멈추고 어둠으로 물든 복도를 빤히 응시했다.

“뭔가.”

천마의 말에 무명이 강한 빛을 복도에 쏘아내었다.

그 순간, 회색빛으로 물든 수십 명의 그림자가 이쪽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언데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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