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8화 (8/285)

제8화. 각성자 등록센터에 간 천마

보건소는 도심과 한참 떨어진, 실드가 보이는 경계지역에 지어져 있었다.

차에서 내린 천마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위로 투명한 유리 같은 빛이 반짝인다.

던전 지역 가까이 온 탓에 도심에서는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실드의 빛이 육안으로 또렷하게 보이는 것이다.

“으음. 발급이…….”

보건소 안으로 들어간 장채원은 1층 벽 한편에 붙어 있는 종합 안내판을 바라보았다.

“아, 2층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간 두 사람은 수십 명의 직원들이 앉아 있는 커다란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저, 건강진단 결과서 좀 발급받으러 왔는데요.”

장채원의 말에 사무실의 맨 앞에 앉아 있던 젊은 남성이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이거 작성해 주시면 돼요.”

“네.”

서류를 받아든 장채원이 볼펜을 꺼낼 무렵, 그녀의 핸드백에서 띠리링 하는 전화벨이 울려 퍼졌다.

“여보세요? 아, 네. 사장님.”

전화를 받으며 열심히 서류를 작성하던 장채원이 두 눈을 크게 떴다.

“네? 물이 새고 있다고요? 며칠 전에 공사한 욕실에서요?”

한참 동안 굳은 얼굴로 전화를 받던 장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볼게요.”

황급히 전화를 끊은 장채원이 들고 있던 서류를 천마에게 내밀었다.

“이거 다 작성한 서류거든? 나 잠깐 현장에 다녀올 테니까 그동안 검사받고 있어.”

“본좌는 방법을 모른다.”

“걱정 마. 그냥 이 종이 내면 알아서 검사하고 결과서 발급해 주니까.”

휴대폰의 시계를 바라보던 장채원이 밖으로 나가며 손을 흔들었다.

“검사 끝날 때까지는 돌아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으음.”

종이를 바라보던 천마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그런데 그사이, 앉아 있던 젊은 남성은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일각 넘게 묵묵히 서 있었지만 젊은 남성은 자리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으음.”

침음을 낸 천마는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려던 찰나.

“뭐 도와드릴까요?”

뒤에서 맑은 여성의 음성이 들린다. 고개를 돌려보니 이십 대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서류뭉치를 들고 서 있었다.

“본좌에게 말한 건가.”

중량급 보디빌더조차 따를 수 없는 거대하고 날카로운 근육, 타오르는 숯처럼 붉게 물든 눈동자…. 밤에 마주치면 혼비백산하고 도망갈 만한 외모다.

하지만 여성은 덤덤하게 천마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더니 뭔가 떠오른 듯 황급히 손을 저었다.

“여기 계심 어떡해요?”

“무슨 말인가.”

“서류는 다 작성하신 거예요?”

천마는 들고 있던 서류를 힐끗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점주가 모두 작성해 주었지.”

“그럼 빨리 반대편 건물로 가세요. 지금 시간 다 됐단 말이에요.”

“반대편 건물?”

“네. 밖으로 나가서 주차장 가로지르면 바로 보이는 건물이에요.”

다급한 여성의 말에 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고맙군.”

황급히 뛰어가는 천마의 뒷모습을 보던 여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필 건물 모양을 똑같이 지어서… 아직도 착각하시는 분들이 많단 말이지.”

아래층으로 뛰어간 천마는 반대편에 보이는 커다란 건물 앞으로 뛰어갔다.

늦지 않았는지 건물 앞엔 제각기 다른 나이와 성별, 복장을 한 사람들이 떼 지어 모여 있었다.

“서두를 거 없어.”

황급히 달려온 천마를 바라본 노인이 흘흘 웃었다.

짧은 머리칼은 희끗희끗하게 물들었지만 허리가 꼿꼿하고 몸에 단단한 근육이 잡혀 있는 노인이었다.

“어차피 순서대로 들어가니까.”

노인의 말에 천마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이자들이 전부 건강진단을 받으러 온 사람들이란 말인가.’

‘금방 끝나’라고 장담했던 장채원의 말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노인은 천마가 들고 있는 서류를 가리키며 눈을 껌뻑였다.

“서류를 왜 들고 있어? 제출 안 하고 바로 온 거야?”

천마가 고개를 끄덕이자 턱을 쓰다듬던 노인이 낮게 속삭였다.

“지금 서류를 내긴 글렀으니까 우선 들어감세. 여긴 누락이 워낙 잦으니까, 우선 등급이 정해지면 다시 서류 내라고 할 걸세.”

등급. 건강에도 등급을 정해 놓는단 말인가.

천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품 안으로 넣자 노인이 빙그레 웃었다.

“괜찮아. 잘될 거야.”

노인은 광마혈투의를 걸친 천마에게 호의적인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앞 건물에서 보았던 여성도, 이 노인도. 지금까지 시선만 마주쳐도 기겁을 하며 도망갔던 일반 시민들과는 반응이 달랐다.

“아아, 나도 스킬 없이 몸뚱이만 각성했거든.”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천마를 보며 노인이 탄탄한 팔뚝을 드러냈다.

“조금 늦은 나이에 각성했지만 말이야.”

그때 건물 안쪽에서 한 남성의 뾰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시작합니다. 천천히 들어와 주세요.”

“이제 시작이구먼. 자네도 힘내게.”

노인은 안쪽으로 걸어가기 전, 통나무 같은 천마의 팔뚝을 가볍게 두들겨 주었다.

너무나 친근하고 자연스러운 표정에, 천마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나긴 줄을 따라 건물 안쪽을 통과하니 통로의 벽을 감싸고 있는 커다란 기계가 있었다.

맨 앞줄에 서 있던 여성 하나가 그 기계 쪽으로 지나쳐 가자 빛을 번뜩이며 감정 없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육체각성도 39%]

“아, 폭발 계열 스킬을 갖고 계시군요. 먼저 2층 복도 끝에 있는 폭발 스킬 검사실로 가세요.”

[육체각성도 33%]

“스킬은 없으시고… 그럼 우선, 3층에 있는 육체 능력 검사실로 가세요.”

[육체각성도 11%]

“어라? 육체각성도가 많이 낮네요. 갖고 계신 스킬이 정신 계열인가요?”

기계 앞에 서 있는 남성은 때때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그리고 기계 측면에 설치된 스크린을 열심히 바라보며 각성도에 따라 들어갈 곳을 정해주었다.

마침내 사람들이 모두 지나가고 천마 앞에 있는 노인이 기계 앞으로 걸어갔다.

[육체각성도 3%]

그 순간, 기계를 통과한 노인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3%?”

“육체각성도 10% 미만이네요. 돌아가 주시면 됩니다.”

기계 앞에 서 있던 남성의 단호한 말에 노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검사라도 한번 받을 수 없을까?”

“죄송합니다. 각성도 10% 미만은 검사 자체를 아예 하실 수가 없으십니다.”

“각성이 일어났는데… 왜 안 된다는 거지? 보게나. 나이 칠십에 이런 몸을 가진 사람이 어디 있나?”

노인이 몸에 힘을 잔뜩 주고 근육을 자랑해 봤지만, 남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설령 A급 스킬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육체각성도가 10% 미만이면 던전에 못 들어갑니다. 육체 능력은 전혀 개화하지 않은 채, 스킬만 믿고 던전에 들어갔다 죽어 나간 각성자들이 너무 많아서요.”

“알고 있네. 하지만…….”

노인은 이를 깨물었다.

평생을 가난하게 살아왔던 자신에게 얼마 전 각성이라는 행운이 찾아왔다.

갑자기 몸이 탄탄해지고 평소에 들지 못했던 물건들을 쉽게 번쩍 들어 올렸다. 심지어 자동차도 손으로 들어 올릴 정도가 되었다.

‘안 돼… 반드시 각성자가 돼야 해.’

두 주먹을 쥔 노인의 눈동자가 흐려졌다.

노인에겐 교통사고로 떠난 아들 내외가 남기고 간, 부양해야 할 손녀가 있었다.

풍족하지 않아도 언제나 밝게 웃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녀가…….

각성자 등록 센터에 가기 전, 손녀를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문밖으로 나선 노인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요 녀석. 오늘 이후로는 이 할애비가 각성자가 되니까, 맛난 거 많이 사주마.”

하지만 노인의 손을 잡은 채 걸어가는 손녀는 뾰로통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싫은데.”

“응? 그게 무슨 말이냐? 싫다니. 각성자가 되면 이 할애비도 던전에 들어가서 비싼 유물들을 얻을 수 있는데?”

커다란 눈망울을 깜빡이던 손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할아버지가 다치는 거 싫단 말이야. 가난해도 지금처럼 사는 게 더 좋아.”

미소 짓고 있던 노인의 눈동자가 물결처럼 흔들렸다.

낡게 해진 운동화, 그 위로 드러난 낡은 양말. 그 위로 여기저기 보이는 작은 상처들.

지금까지 입을 것, 먹을 것, 무엇 하나 변변찮게 해준 적이 없는 손녀였다.

나라에서 어느 정도 돈이 지원되지만, 못난 할아버지를 돕기 위해 같이 폐지를 줍고 다니던 작은 손녀를 위해.

이 착하고 귀여운 손녀를 위해, 뼈가 으스러져도 반드시 각성자 등록을 하기로 굳게 다짐한 터였는데…….

“저, 어르신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들리는 남성의 목소리에, 회상에 빠져 있던 노인이 정신을 차렸다.

“응?”

“어르신께서 비켜주셔야 다음 분이 검사를 받으셔서요.”

“아아. 으응.”

고개를 떨군 노인이 입술을 깨물었다.

“못해도 9급 각성자는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예 등급조차 받을 수 없는 수준이었구먼.”

던전에 들어가 귀한 유물을 얻을 거라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소 9급 각성자가 되어서 던전 지역에 출입하는 짐꾼이라도 되길 바랐다.

던전의 짐꾼들은 어지간한 대기업 사원보다도 넉넉한 보수를 받으니.

“저, 미안한데…….”

몸을 돌리려던 노인이 두 손을 모았다.

“다시 한번 봐줄 수 없겠나? 기계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네. 주위에 폐가 될까 봐 아직 전력으로 힘을 써본 적이 없어서 말일세.”

“죄송한데, 그럴 수가 없습니다. 기계 고장이 아닌 이상… 이미 입력이 되어서요.”

“으음.”

남성이 정중히 고개를 숙이자 노인이 힘없이 웃었다.

“알았네.”

“죄송합니다, 어르신.”

“죄송하긴. 내가 주제를 몰랐던 것뿐인데. 미안하네.”

노인은 쓸쓸히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러자 쇳덩이를 조각해 만든 듯한 천마의 우람한 근육이 보였다.

“그러게. 자네만 한 몸쯤은 되어야 각성자 소리를 듣겠지.”

힘없이 노인은 천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수고하게나.”

“자, 다음 분. 이쪽을 통과해 주시겠어요?”

남성의 말에 천마는 기계를 빤히 응시했다. 그리고 덤덤히 천천히 기계를 통과했다.

[육체각성도 1200%]

“응?”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여성의 목소리에 남성뿐만 아니라 걸어가던 노인도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저, 죄송하지만, 다시 한번 기계를 통과해 주시겠어요?”

남성의 말에 천마는 다시 한번 몸을 돌려 기계 앞으로 걸어갔다.

[육체각성도 1400%]

“아… 이거 정말 고장 났나.”

스크린을 바라보던 남성이 눈을 껌뻑였다.

사람의 몸 형태가 그려진 그래픽에선 육체각성의 최대치를 표시해 주는 붉은색 빛이 전신을 뒤덮고 있었다.

1급 각성자의 평균 육체각성도는 최대 200%.

근력증강 스킬을 가진 1급 각성자라고 해도 300%를 넘지 못한다.

“기계가 고장 난 것 같은데…….”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남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 고칠 수 없으니까… 우선 3층에 있는 육체 능력 스킬 검사실로 가보겠어요? 그곳에 가면 정확하게 측정이 가능할 거예요.”

천마는 복도에 서 있는 노인을 가리켰다.

“고장이라. 그럼 저 노인장도 구제받을 수 있는 것이군.”

“네? 아…….”

뺨을 긁은 남성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르신도 3층에 올라가 보세요. 가서 정확한 검사를 해보셔야 할 것 같아요.”

“고, 고맙네!”

노인은 활짝 웃으며 두 손을 번쩍 들었다.

3층. 육체 능력 검사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방이 막혀 있고 바닥과 벽, 천장은 모두 회색빛 시멘트로 뒤덮여 있는 커다란 공간이 보였다.

그리고 한가운데에는 번들거리는 검은색 모양의 둥근 쇳덩어리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끝자락에는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진 작은 사무실이 보였고 그 안에는 여러 가지 기계들이 놓여 있었다.

“저, 실례합니다.”

노인이 큰 목소리로 말하자, 안쪽에 있던 여성 하나가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아, 죄송해요.”

하얀 가운을 입고 안경을 쓴 젊은 여성이 스크린이 달린 소형 컴퓨터를 손에 든 채 미소 지었다.

“검사받으러 오신 건가요?”

“그렇소이다.”

노인이 어깨를 으쓱하자 여성이 커다란 쇳덩이를 가리켰다.

“검사는 간단해요. 저 측정기를 두 손으로 들어 올리시면 육체 능력이 측정돼요. 순수하게 힘으로 들어 올리셔도 되고, 근력증강 능력 스킬이 있다면 쓰셔도 돼요.”

여성이 손에 든 컴퓨터를 누르자 시꺼먼 쇳덩이 모양을 한 측정기에서 은은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단, 스킬이 근력증강 능력이 아니시라면, 힘으로만 드시고 다시 스킬 검사를 받으셔야 해요. 아니면 각성 스킬에 근력증강 능력으로 그냥 찍혀 버리니까요.”

“잘 알겠네.”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인 노인이 천마를 바라보았다.

“자네 먼저 하겠나?”

천마가 고개를 젓자 노인이 씩 웃었다.

“좋아, 그럼 내가 먼저 하지.”

팔을 둥둥 걷어붙인 노인이 반짝이는 구체로 된 측정기에 양팔을 붙였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끄으으으. 으아아아아!”

노인이 힘을 쓰자 여성이 들고 있는 소형 컴퓨터 스크린에서 삑삑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고음으로 올라가던 소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낮은 소리로 변했다.

“측정 끝나셨어요.”

“어떻습니까?”

노인의 물음에 스크린을 바라보던 여성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한 팔당 90kg… 육체각성 등급으로 따지면 3%에 해당되네요.”

1층에서 기계가 측정한 수치와 동일한 결과였다.

노인은 고개를 떨군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역시 똑같구먼.”

“아니, 다르다.”

그때 묵묵히 듣고 있던 천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노인장은 힘을 쓸 줄 모르는군. 내공이 없는 자가 몸에 담긴 힘을 뽑아내기 위해선 내식을 조절한 다음, 이른바 육체와 심령의 상태를 일치시켜야 한다.”

“으응? 그게 무슨 소린가.”

노인은 당황한 나머지 천마가 반말을 한다는 사실도 자각하지 못했다.

“쉽게 말해 갖고 있는 힘을 최고조에 이르게 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지.”

내공을 끌어올린 천마가 노인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비록 사당신이 주입한 10년분의 내공밖에 없었지만, 가벼운 환각을 일으키는 섭심술을 일으키기엔 충분했다.

“썩 보기 좋은 것들은 아닐 거다. 아마도.”

천마의 목소리가 노인의 머릿속을 뒤흔들 무렵.

“할부지! 할부지!”

천마와 눈이 마주친 순간, 눈앞의 측정기는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그 아래에는 어린 손녀가 깔려 있었다.

“아파! 너무 뜨거워!”

“기, 기다려라!”

당황한 노인은 생각할 것도 없이 측정기를 안아 올렸다.

치익 소리가 나며 팔뚝의 살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끄으윽.”

정신이 아득해지는 고통에도 노인은 이를 깨물고 측정기를 들어 올렸다.

“엉엉. 너무 아파!”

“흐으으으으으!”

고통스러운 아이를 본 노인은 죽을힘을 다해 측정기를 들어 올렸다.

노인이 팔을 들어 올리는 동작은 힘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과 육체의 모든 힘을 불살라 깔린 손녀를 구하겠다는 일념이었다.

“안 된다. 안 돼…. 어찌 너마저 잃겠냐!”

“할부지!”

손녀의 비명 소리가 귓가에 뒤흔드는 순간.

우드드득.

뼈가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노인의 골격과 근육이 풍선처럼 부풀기 시작했다.

“끄아아아!”

불길에 타오르던 쇳덩이를 조금씩 들어 올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어?”

팔이 녹아내리는 고통도, 활활 타오르는 불길도, 쇳덩이에 깔려 있던 손녀도 사라졌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여……?”

노인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스크린을 바라보던 여성의 입에서 놀라움이 뒤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한 팔당 650kg… 육체각성도 39%에 해당되네요.”

“39%? 내가?”

노인이 펄쩍 뛰자 여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스킬을 사용하신 건가요?”

“아니, 난 스킬 같은 건 없는데.”

“근육의 부피가 커지는 것으로 보아 근력증강 스킬을 갖고 계시군요. 이 정도면 근력증강 스킬을 갖고 있는 8급 각성자로 등록하실 수 있으세요.

“정, 정말인가?”

멍하니 서 있던 노인은 활짝 웃으면서 천마를 돌아보았다.

“자네도 들었지? 내가 8급 각성자라는 거!”

“들었다.”

“어르신. 이 서류 가지고 1층으로 가시겠어요? 등록증 발급될 거예요.”

노인은 떨리는 손으로 여성이 내미는 서류를 받았다.

“고, 고맙네.”

“고맙긴요.”

“저, 저기…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네 덕택에…….”

몸을 돌린 노인은 천마를 보며 인사를 하려 했다. 하지만 천마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한 것처럼 앞을 지나쳤다.

“다 했으면 빨리 가라. 노인장.”

“응? 으응.”

밖으로 나서던 노인은 천마를 보며 손을 들었다.

“파, 파이팅! 힘내시게!”

“자, 다음 분. 오셔서 들어보세요.”

“좋다.”

씩 웃은 천마는 쇳덩이를 양팔로 집어 들었다.

안 그래도 내공은 끌어올리지 않은 육체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던 차였다. 그가 살고 있는 무림엔 이런 기계 따윈 없으니까.

“그럼 시작하지.”

송곳니를 드러낸 천마가 쇳덩이를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쩌저저적.

측정기가 박혀 있는 콘크리트 바닥에서 조금씩 균열이 생겨났다.

동시에 여성이 들고 있는 스크린에서 삐삐삑 거리는 비프음과 함께 시뻘건 불빛이 번뜩거렸다.

마침내 천마의 눈동자에서 혈염광휘가 솟구치려는 순간.

“스토옵!”

날카로운 고함 소리와 함께 어느새 벌컥 문을 열고 뛰어온 장채원이 천마의 앞을 막아섰다.

“너 미쳤어? 이거 당장 안 내려놔?”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소리치는 장채원의 말에 천마는 순순히 측정기를 내려놓았다.

“늦었군. 점주.”

“시끄러. 네가 왜 이곳에서 각성자 검사를 하고 있는데?”

“각성자 검사라니.”

천마는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까 점주가 들어갔던 곳에서 한 여성이 본좌를 보더니 이곳으로 가라고 했다. 꽤나 늦었다면서.”

그제야 장채원은 그간에 벌어졌던 일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인간미라곤 찾아볼 수 없는 험악한 면상과 근육 덩어릴 본 보건소 공무원은 천마를 맞은편 건물에 있는 각성자 등록 센터로 보낸 것이다.

“됐어. 여기가 아니니까 빨리 나왓.”

천마의 손을 잡아챈 장채원이 여성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저, 죄송해요. 뭔가 착각을 해서요. 호호호.”

정신없이 인사를 하고 바람처럼 사라진 천마와 장채원을 바라보던 여성은 순간 모니터에 멈춰진 숫자를 바라보았다.

붉은빛이 번뜩이는 모니터에는 ‘3,000%’라는 불가능한 수치가 그려져 있었다.

“으음…….”

심호흡을 하며 모니터를 빤히 바라보던 여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고장 났나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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