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수리하는 천마-1화 (1/285)

제1화. 본좌는 천마다 (1)

천마는 용모에 자비가 없었다.

눈동자는 언제나 숯불처럼 붉게 타올랐고 송곳니는 짐승의 엄니처럼 길었다.

바위를 연상케 하는 근육질의 몸뚱이는 인간이라 부를 수 없을 만큼 거대했으며, 얼굴은 지옥에서 올라온 저승사자도 도망갈 만큼 흉악스러웠다.

딱히 성격이 포악하거나, 잔혹하지 않았음에도 천마는 다른 이들과 평범한 대화조차 나눌 수 없었다.

“호오.”

천마가 탄성을 터뜨렸다.

하지만 천마와 시선을 마주친 살수는 다리를 벌벌 떨었다.

흑운암제(黑雲暗帝).

이름도 엄청나게 거창한 이 살수는 무림맹의 사주를 받고 무림에 군림하는 천마를 암살하려 했다.

하지만 암살밀기를 펼치기도 전에 천마에게 걸려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지금까지 정가 놈, 그 외에는 본좌에게 검 한 자루 겨눈 사람이 없었건만.”

고개를 끄덕인 천마는 흑운암제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기특한지고.”

천마는 공포에 떨고 있는 흑운암제를 보며 갸륵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천마의 시선과 마주친 흑운암제는 처절한 비명과도 같은 비명을 질렀다.

“오, 오지 마!”

“본좌에게 오라 가라 명령하지 마라.”

천마는 그저 자신의 생각을 말한 것뿐이다.

하지만 송곳니를 드러낸 채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며 웃는 모습을 보자 삼혼칠백이 하늘 위로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으아아! 오지 말라고!”

푸욱.

결국 흑운암제는 독검을 들어 스스로 자신의 목을 그었다.

지옥의 마왕, 고금제일마인이라 불리는 천마에게 잡혀 혹독한 고문을 당하다 죽느니, 편안한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뭐냐, 이건.”

천마는 황당한 표정으로 죽어버린 흑운암제를 내려다 보았다.

“미친놈이었군.”

설산, 자하봉.

천마는 그곳에서 권법을 펼치고 있었다.

파앗.

가벼운 일권이 뻗어나가자 땅이 쪼개지고 하늘 위의 구름이 갈라졌다.

인간이 이룩할 수 있는 극한의 경지를 돌파했음에도, 그는 여전히 무학을 연마했다.

천마에겐 호적수 또한 없었다.

무림에 출도할 당시부터, 무학의 극치를 이룩한 그는 단 한 번도 패배할 수 없었다.

단 삼 년 만에 무림을 제패하고, 모든 정사의 방파를 자신의 발아래 둔 천마.

세상 어디에도 적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무학을 연마했고, 매일매일 마고에 틀어박혀 책을 읽었다.

-있을 것이다.

천마는 내심 믿고 있었다.

자신의 몸을 떨게 만드는, 가진 모든 힘을 사용해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상대가 나타날 것이라고.

기어코 호적수라고 부를 수 있는 자가, 언젠가는 나타날 것이라고.

* * *

번쩍하는 빛과 함께 하늘에서 커다란 유성이 어느 한옥 건물의 마당에 떨어졌다.

콰앙!

지축이 흔들리는 폭음과 함께, 유성이 떨어진 바닥에서 푸른빛이 솟구쳤다.

그 푸른빛은 점차 땅에 신비한 도형들을 어지럽게 그리기 시작했다.

차라라랑.

별 가루가 뿌려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도형은 사라졌고 자욱한 먼지 속에서 시꺼먼 그림자가 낮은 신음성을 내었다.

“끄응.”

박살 난 나무 잔해 속에 파묻혀 있던 그림자에선 시뻘건 광채가 타오르고 있었다.

바람이 불고 자욱한 먼지가 사라지자, 그림자의 형체가 달빛 아래 서서히 드러났다.

두 팔이 드러난 민소매 복장을 한 근육질의 사내였다.

산발한 머리칼을 상투처럼 틀어 올렸고 통나무 같은 굵은 두 팔엔 지렁이 같은 혈관이 꿈틀대었다.

드르륵.

그때, 미닫이문이 열리며 입에 육포를 물고 있는 한 소녀가 마당으로 걸어 나왔다.

“무슨 소리지? 이게, 어?”

잔해 속에서 혈광을 내뿜는 사내와 시선이 마주친 소녀는 입에 물고 있던 육포를 떨어뜨렸다.

“누, 누구?”

헤비급 보디빌더를 연상케 하는 근육질의 몸, 시뻘건 눈동자, 두 손을 모은 채 장풍을 쏠 것만 같은 낡은 도복…….

“고우키?”

눈앞의 근육질의 사내는 과거 90년대를 주름잡았던 격투 게임의 최종 보스 캐릭터와 어딘가 닮아 있었다.

“고우키가 뭔가.”

“그럼 누구?”

“이 몸이 누구냐고?”

잔해 속에 여전히 누운 채 시뻘건 혈광을 내뿜던 근육질 사내는 소녀를 올려다보며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본좌는 천마(天魔)다.”

* * *

천마.

두 팔은 하늘을 찢고 다리는 대지를 가른다는 무림 최고의 강자.

무시무시한 마공을 연성한 마도의 패자, 마도의 하늘, 공포의 마왕,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살성 등등으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어린 시절부터 줄곧 폐관 수련만을 한 단순한 무공광일 뿐이었다.

하지만 애당초 천마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소녀는 눈을 껌뻑였다.

“천마?”

“그렇다.”

“이름이 천마?”

“본좌를 모른단 말인가.”

천마가 눈썹을 찌푸렸다.

중원무림 사해팔방 천마의 이름을 모르는 인간은 없다.

하지만 소녀는 토끼 같은 눈망울로 그게 누구냐는 듯 빤히 바라볼 뿐이다.

‘진심이로군.’

눈동자에 비친 감정들은 순수하고 투명하여 결코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깊은 한숨을 내쉰 천마가 친절히 정정해 주었다.

“이름이 아니라 별호다. 마도천하, 아니, 천하 무림을 주름잡는 최강 무인을 뜻하지.”

“근데?”

“어찌 된 영문인지 갑자기 커다란 빛에 휘말렸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이곳이더군.”

그제야 소녀는 마당에 심겨 있던 커다란 나무가 박살 난 것을 발견하고 머리칼을 부여잡았다.

“내 보물! 내 정령수!”

나무는 유리 조각처럼 산산이 박살 나 있었고 커다란 나뭇등걸만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잔해 속엔 오색 빛깔로 반짝이는 여러 가지 파편들이 점차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아아아아!”

소녀는 무릎을 꿇고 절규했다.

“대체 이게 뭐야! 이게 왜 박살 나 있는 거야?”

“왜 그러나?”

“이 나무, 정령수라고!”

소녀는 사방에 흩어져 있던 오색 빛깔의 조각들을 가리켰다.

“정령수가 어떤 건 줄 알아?”

“귀한 건가.”

“당연하지!”

버럭 소리치는 모습을 바라보던 천마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본좌는 전대의 고수들보다 항렬이 높거늘…….’

만마집궁(萬魔集宮)의 지배자이자, 신마(神魔)의 적전을 이어받은 천마.

그는 소림 장문인에게도 하대를 할 수 있을 만큼 배분이 높다.

그런데 이제 갓 열여덟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소녀가 말 허리를 뚝뚝 끊어먹다니?

“무림의 법도가 땅에 떨어졌군. 아무리 천둥벌거숭이 같은 처녀라 해도 어찌 본좌에게 하대를 한단 말인가.”

“무림? 본좌?”

가끔씩 읽었던 웹 소설을 떠올린 소녀는 눈살을 찌푸렸다.

“무협지 덕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만, 하대를 할 거면 내력을 밝혀라. 배분을 따져보도록 하지.”

“배분?”

허탈하게 미소 지은 소녀가 코웃음을 쳤다.

“몇 살인데?”

“몇 살이냐니.”

“잘해야 나랑 비슷한 또래 같은데? 험악하지만 피부가 탱글탱글하잖아.”

“흥, 본좌의 내공은 이미 선천진경을 돌파해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 것뿐이다.”

“무슨 헛소리야?”

황당함을 금치 못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녀를 보며 천마는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놀라지 마라, 소녀. 본좌의 나이는 이미 불혹을 넘어서 지천명(50)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니까 사십 대란 말이지?”

“그렇다.”

“어리네.”

소녀는 입술을 내밀며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이 누나 나이가 훨씬 많거든?”

“뭐라고?”

“존댓말 하란 이야기는 하지 않을게. 나이 이야기는 하지 마. 우울하니까.”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처럼 한숨을 내쉬는 소녀를 보자 천마는 입을 벌렸다.

‘이 작은 소녀가 반로환동을 한 고인이란 말인가?’

그러고 보니 소녀의 몸 주변으로 푸른색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 같다.

그것은 천마와 같은 절세무학의 대종사만이 감지할 수 있는 절대자의 기세였다.

“됐고,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네가 정령수를 부순 거야?”

천마의 굵은 팔뚝을 바라보던 소녀가 박살 난 파편들을 가리켰다.

“폭발물? 은 아닐 테고 네 완력으로? 그럴 리가. 지령(地靈)이 수호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정신없이 떠드는 소녀를 응시하던 천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본좌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뭐라고?”

“빛에 휘말려 들어오니 이곳이었지.”

…라고 대답했지만 궁색한 변명이다.

아직도 그는 통나무 같은 두 팔을 쩍 벌린 채 기세 좋게 정령수의 나뭇등걸에 기대 있었으니까.

“흠.”

소녀의 뜨거운 시선을 느낀 천마는 재빨리 잔해 속에서 일어났다.

퍼서석.

그러자 그의 등에 기대어져 있던 나뭇등걸마저 박살 나며, 그나마 남아 있던 정령수의 흔적마저 완전히 사라졌다.

“크허엄.”

조각조각 부서진 나무를 바라보던 천마가 헛기침을 했다.

“본의 아니게 잠깐 기대어 있었군. 그럼 실례하지.”

“어딜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이거 물어주고 가야지.”

천마는 자신이 입고 있는 광마혈투의(狂魔血鬪衣)를 바라보았다.

권각무공을 펼치는 데 최적화된 의복이라, 애당초 전낭을 매달아 놓을 곳조차 없다.

아니, 공포의 대명사로 알려진 그가 은자 쪼가리 따위를 가지고 다닐 리 없다.

“흠.”

헛기침을 한 그는 소녀에게 나직이 말했다.

“무림은 불행한 사고가 비일비재로 일어난다.”

“뭐?”

“예를 들어 무림인들이 자주 출입하는 객잔은 수시로 박살 나지. 지금도 그와 같은 상황인 거다.”

솥뚜껑 같은 손으로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힘내라, 소녀.”

“뭐, 뭐?”

소녀는 떠나려는 천마의 옷깃을 재빨리 붙잡았다.

“장난해? 얼렁뚱땅 넘어갈 일이 아니라고. 정령수라니까?”

“정령수?”

“그래!”

천마는 눈을 깜빡였다.

온갖 영약들부터 무림의 기화요초들을 섭렵한 그였지만 정령수라는 건 들어보지 못했다.

“지금은 가진 것이 없다. 나중에 본궁으로 돌아가면 보상해 주마.”

“본궁?”

“만마집궁 말이다.”

소녀는 눈을 깜빡였다. 설마 별채를 무너뜨릴 때 머리를 다친 걸까?

“저, 저기… 제발 현실로 돌아와 줄래?”

“염려 붙들어 매라. 본좌는 천마다. 말 한마디면 천년설삼도 구해줄 수 있으니 걱정 말아라.”

“천마든 만마든, 갈 거면 휴대폰 번호라도 주고 가.”

“그게 뭔가.”

“그러니까, 그쪽을 뭘 믿고 보내주겠어.”

그러자 천마는 엄숙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본좌의 말 한마디는 천금과도 같다. 걱정 마라.”

소녀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힘껏 땅을 박찼다.

마도 최고의 신법, 야월극속(夜月極速)을 펼쳐 단숨에 이곳을 벗어날 생각이었다.

폴짝.

하지만 천마가 뛰어오른 높이는 고작 삼십 센티도 되지 않았다.

“응?”

기혈에 차고 흘러야 할 반극진기(反極眞氣)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내공을 끌어올려 봤지만, 단전은 텅 비어 있는 듯한 허탈감만 느껴졌다.

“뭔가 잘못됐군.”

몸을 웅크리던 천마는 다시 한번 힘껏 땅을 박찼다.

폴짝.

하지만 여전히 개구리처럼 제자리를 뛰었을 뿐이다.

“내상이 아니었나…….”

석상처럼 굳어 있던 천마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 빛은 평범한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뭔 소리야.”

“아무래도 함정에 빠진 것 같다.”

소녀는 입을 다문 채 괴상한 물건을 바라보듯 그를 응시했다.

그러든 말든, 깊은 생각에 빠진 듯 눈빛이 깊어진 천마가 몸을 돌렸다.

“우선 돌아가야겠다. 그리고 누가 이런 일을 꾸몄는지 샅샅이 밝혀내겠다.”

“어딜 얼렁뚱땅 가려고?”

소녀가 앞을 가로막자 천마가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본좌는 지금 장난하는 게 아니다. 더 이상 망령된 행동을 용납하지 않겠다.”

“나는 장난하는 것으로 보여?”

“어쩔 수 없군.”

말이 통하지 않는다. 고개를 가로저은 천마는 보법을 펼쳐 소녀의 곁을 재빨리 지나쳤다.

내공이 없다 해도 무공은 멀쩡하니까.

하지만 소녀의 손동작이 더욱 빨랐다. 천마는 뒷덜미를 붙잡혔다.

“어딜 도망가려고?”

“감히, 본좌에게 손을 대다니.”

분노한 천마가 소녀의 팔을 가볍게 뿌리치려 했다.

하지만 때마침 소녀 역시 뒷덜미를 잡은 손을 놓았다. 결국 그의 손은 헛되이 허공을 갈랐다.

‘내 동작을 먼저 간파하다니.’

눈동자에서 혈광을 번뜩인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보니 정체를 숨긴 고인이었군. 반로환동을 할 만하구나!”

“뭐라는 거야.”

“좋다. 그럼 이것도 한번 받아봐라!”

호승심이 일어난 천마는 다리를 한껏 구부려 몸을 낮춘 채 오른팔을 허공에 크게 휘둘렀다.

“신마의 힘은 하늘조차 뒤흔든다. 신마경천장(神魔驚天掌)!”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천마가 통나무처럼 굵은 팔을 힘껏 내뻗었다.

“아, 아니?”

막강한 장력이 쏟아지긴커녕 바람 한 점 만들지 못했다.

단전은 구멍이 난 듯하고 허탈감만 느껴질 뿐이다.

그리고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 이건.”

힘껏 뻗어낸 손바닥이 소녀의 아랫배에 닿아 있었다.

신마경천장을 쏟아내기 위해 팔을 쭉 편 탓이다.

“이이… 사이코 변태 자식…….”

푸근한 아랫배에 얹혀 있는 손을 내려다본 소녀의 눈빛에서 시퍼런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어딜 만져!”

분노한 소녀의 작은 발이 천마의 하음부를 파고들었다.

날아오는 발을 바라보던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채화음적으로 몰릴 바에 맞아주는 게 낫겠군. 본좌는 이미 금강지체를 이루었으니 어떤 타격에도…….’

퍼억.

소중한 곳에 발길질을 당한 천마의 눈동자가 천천히 하늘 위로 말려 올라갔다.

동시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미증유의 고통이 배 속을 파고들었다.

“어억.”

배 속의 장기들을 뽑아 빨래를 한다면 이런 기분일까?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통증이 아랫배에서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끄으으.”

입에서 하얀 거품을 쏟아낸 천마가 결국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금강지체를 이루기 위해 전신 혈도에 송곳을 박아 넣었을 때도.

한령빙백공(寒零氷白功)을 익히기 위해 얼음 칼을 단전에 박아 넣었을 때도 이러한 고통은 없었다.

“끄으으으.”

아랫배를 움켜쥔 채, 흰자만 하얗게 보이던 천마.

그는 입가에 뽀글뽀글 올라오는 거품을 닦고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제법이로군. 본좌의 금강지체를 일격에 파괴하다니.”

“뭐래, 이 변태가.”

“하지만 불의의 일격이었을 뿐.”

몸을 낮춘 천마가 공격 자세를 취하자 전신에서 붉은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공이 아닌, 육체에서 흘러나오는 순수한 투기(鬪氣)였다.

“한번 제대로 싸워보도록 하지.”

소녀와 눈이 마주치자 천마는 가슴이 뛰었다.

일격에 금강지체를 파괴하는 강력한 힘, 세상을 오시하는 듯한 차가운 눈동자, 몸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강력한 기세.

-이자로구나!

드디어 찾았다.

눈앞의 소녀는 천마가 오매불망 찾아 헤맸던 호적수가 분명했다.

“후회 없이 전력을 다해 덤비도록.”

“무슨 헛소리야? 저리 안 가?”

“싸움을 피하겠다는 건가.”

“당연하지? 누구 깽값 물어줄 일 있어?”

소녀가 몸을 돌리자 천마가 코웃음을 쳤다.

“겁쟁이로군.”

“뭐?”

“패배를 두려워 하는 건가. 아니면 경계심을 흐트려 놓고 회심의 일격을 날리려는 건가.”

천마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머금고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뭐든 상관없다. 덤벼라.”

연신 손가락을 까닥대신 모습은 게임 속 도발 버튼을 누른 것처럼 은근히 속을 뒤집었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는 것이 좋을 거다. 절구통 소녀.”

“절구통 소녀?”

“온몸에 굴곡 하나 없이 납작납작 하지 않은가.”

“푸하하하하!”

유쾌하게 웃어대던 소녀의 눈동자에서 시퍼런 빛이 쏟아지더니, 갑자기 지진이 난 것처럼 주위가 흔들렸다.

“이 낮도깨비 같은 놈이, 죽고 싶어? 앙!”

쿠우우웅.

땅이 쪼개질 듯 사방이 흔들거리자 오히려 천마는 호승심이 솟구쳤다.

“상당한 힘이군. 하지만 그 정도 가지고는…….”

하지만 끝까지 말을 잇지도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소녀가 손을 들자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

동시에 환한 빛을 내는 무언가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유성우였다.

그것도 크기 하나가 성도 하나와 맞먹는 거대한 유성이 말이다.

‘이것이…….’

천하무림을 장악한 천마의 무학수준은 고금제일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하지만 그 조차도 하늘에 거대한 운석을 불러내 땅에 꽂을 만한 힘은 없었다.

이것은 인간의 힘이 아닌 신(神)의 영역이다.

“당장 쥐포처럼 눌러줘?”

천마는 눈을 비빌 무렵, 소녀가 다가와 이를 드러냈다.

“아니면 홀라당 태워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해 줄까? 엉!”

소녀가 들어 올린 손짓에 하늘에 떠 있는 운석들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잠시 심호흡을 한 천마가 두 눈이 가늘게 떨렸다.

“호적수를 보내달랬더니… 괴물을 보내주었군.”

고개를 가로저은 그는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만용을 부릴 상대가 아니다.’

현재 알 수 없는 이유로 내공이 소실되었고 몸은 정상이 아니다.

이 상태로 하늘에 유성을 쏟아내는 힘을 사용하는 소녀를 이길 확률은 일 푼조차 없다.

이런 상황에서 호승심 하나만으로 무모하게 덤벼들 만큼 천마는 멍청하지 않았다.

“…잠시일 뿐이다.”

“무슨 헛소리야.”

“언제고 꺾어주지.”

다시 내공만 돌아온다면 저 하늘에 떠 있는 운석조차도 박살 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천마는 지금까지 한 번도 내뱉지 못했던 말을, 그리고 한 번도 짓지 않았던 넉넉하고 후덕한 미소를 머금었다.

“… 내가 졌다, 절구통 소녀.”

“누가 절구통이야!”

퍼억.

또다시 하음부를 강타당한 천마는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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