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훈련받은 파포라족들이 지켜보고 있다. 고참으로서 확실하게 보여줘라.”
박종찬 총병부대장의 외침. 그것에 조선군 총병들의 두눈이 전의로 불타올랐다. 그사이에 여상의 진격명령을받은 팔기부대가 굉음을내며 돌진해왔다. 박종찬은 현무철포의 사거리와 정확한 발사시간을 포착했고 명령을 내렸다.
“전방을향해 사격개시!”
탕! 타타탕! 현무철포의 총구에서 화염이 터져나갔다.
발사된 탄환들이 공기를 가르며 돌진해오던 팔기병들의 선두를 강타했다.
퍽! 퍼퍼퍽! 크억! 조선군 총병들의 사격은 정확했다.
급소를 정확하게 노렸고 팔기병들의 선두는 엄청난 피해를당한 것이다. 단숨에 3-40명이 말위에서 튕겨지며 떨어졌다. 처음에 조선군들이 일부러 편전을 사용해 팔기병들을 자만하게 만들고 헛점을 유도한것이 엄청난 성공을 거둔것이다.
“대장님! 조선군들이 사용하는 총포의 위력이 상상외로 강합니다.”
“등신같은 놈들! 조선이 보유한 총포는 기껏해야 한족들에게 보급한 화승총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런 화승총은 과거 대청제국이 펼친 조선정벌때 팔기군에게 소용이 없다는게 증명된 상태다. 겁먹지말고 돌격해라! 이제 저놈들은 재장전을 한다고 헛점이 드러난 상태다. 그것을 노려라.”
여상이 부하들을 압박했다.
그가 말한 부분중에 일부는 맞았다. 과거 정묘호란, 그리고 병자호란때 조선군 병사들이 사용했던 화승총은 만주족의 팔기에게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오히려 화승총을 사용했던 조선군 병사들이 크게당했고 돌격해오는 팔기들이 휘두른 칼에 무참하게 도륙되었던 것이다. 동시에 이런 팔기병들의 돌격전술은 비슷한 화승총을 사용하던 명라나군과 한족부대를 무너뜨리는데도 큰 장점이 있었다.
다만 여상이 알지 못한것. 그것은 현재 조선군이 사용하는 현무철포는 과거 아편전쟁에서 영국군이 청나라 팔기들을 박살낼때 썼던 플릭트락 머스켓을 능가하는 신병기라는 사실이다.
“탄환 재장전 완료!”
“사격준비! 발사!”
탕! 타타탕! 연달아 발사되는 탄환들.
화승총의 복잡하고 긴 장전시간에비해 퍼커션캡(뇌홍)을 사용하는 현무철포는 발사후 신속하게 화약과 탄환을 넣을수 있었다. 때문에 기세좋게 돌격하던 팔기병들은 연속으로 탄환에 맞으면서 시체가 되었다.
일제사격으로 적들에게 엄청난 타격을준 조선군 총병들은 신속하게 좌우로 흩어졌다. 현무철포의 사격방식과 진형은 다양하게 구성할수 있었다. 이제는 조선군 총병들이 흩어지자 추가로 돌진하던 팔기병들은 당황했다. 그나마 조선군 총병들이 모여있다면 그곳을 목표로 한꺼번에 달려들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힘들어진 것이다.
“멍청한 만주족 놈들! 말타고 다니는것만 하더니 이제는 머리마저 굳어져 버렸구나.”
박종찬이 냉소를 지었다.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던 청나라가 아편전쟁에서 영국한테 박살났다. 그것처럼 만주족의 팔기병들도 과거의 전투방식만 사용하다가 조선군에게 철저히 박살나는 중이였다.
“여상 대장님! 더이상은 돌격이 불가능 합니다. 벌써 팔기병들중 반수이상이 당해버린 상태입니다.”
“크윽! 도저히 믿을수없다.”
부하의 외침에 여상이 광분했다. 정면으로는 조선군에게 돌격하다가 시체가되어 굴러다니는 부하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럼에도 여상은 쉽게 물러날수 없었다. 여기서 후퇴한다면 대만에있는 팔기군의 명예는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것도 자신에 의해서 말이다. 그리고 조선군에게 후퇴한 책임도 면할수 없었다. 갈등하고있던 여상의 귓가로 굉음이 들려왔다.
콰두두두! 혼란에빠진 팔기병들의 측면을향해 파고드는 기마병들. 그것은 강승호가 적들의 숨통을 끊어버리기위해 준비해둔 조선군의 기마부대였다.
숫자는 팔기들에비해 훨씬적은 50명의 수준.
하지만 선두에서 기병들을 지휘하는 심동진은 엄청난 기세를 드러냈다. 쇄도하던 심동진을 시작으로 조선군 기병들이 장전을마친 백두철포를 정면으로 겨누었다.
“만주족 놈들에게 조선군의 기병전투가 뭔지를 보여줘라. 백두철포 사격개시!”
탕! 타타탕! 돌진해가던 조선군 기병들이 백두철포를 사격했다.
퍽! 퍼퍼퍽! 크악! 측면을 노출시켰던 만주족 팔기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탈출은 불가능, 섬멸작전 개시
“여상 대장님! 조선군 기병들이 측면에서 기습해오고 있습니다.”
“허둥대지마라. 기병들끼리의 전투라면 팔기들이 조선놈들을 압도한다. 조선의 기병은 기껏해야 3류에 불과할 뿐이다. 오히려 잘되었다. 조선군의 총병보다 기병들을 먼저 해치운뒤에 남은 놈들은 천천히 박살낸다.”
여상이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조선군 기병들이 측면을 쇄도해들자 부하들은 당황했지만 여상은 기회를 잡았다고 확신했다. 그럴것이 만주족 팔기들은 조선기병에비해 몇배나 강하였고 이것은 증명된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상의 전투방식은 구시대에 머물렀다. 그리고 새롭게 태어난 조선기병이 어떤전술을 사용하는지 몰랐던 것이다.
“팔기병들은 기병전투를 준비해라... 어엇!”
기세좋게 소리치던 여상이 경악했다.
처음에는 말을타고 돌진해오던 조선 기병들이 단번에 짧은 총신의 총포를 전방으로 겨눈것이다. 그리고 터져나오는 엄청난 굉음들. 탕! 타타탕! 조선의 기병들이 발사한 단총신의 총포에서 불꽃이 번쩍였다. 그러자 칼과 기병창을 빼들며 달려들던 팔기병들이 차례로 튕겨져 나갔다.
“어떻게 저럴수 있단말인가? 조선놈들이 군마위에서 사용할수있는 총포를 보유했다고? 그런건 서양 오랑캐 놈들도 갖고있지 못한 것인데.”
여상의 표정이 경악으로 굳어졌고 입술마저 떨리고 있었다.
그는 과거 아편전쟁에서 영국군에게 팔기군들이 당한 패전과 수모를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에는 영국군 보병들이 사용하던 플린트락 머스켓의 사격에 팔기들이 무너진 것일뿐, 실제 기병들끼리의 대결에서는 오히려 팔기들이 우세한 경우도 나왔다. 그럴것이 아편전쟁 당시 영국군 기병들도 지금의 조선군처럼 말위에서 총포를 사용할 수준은 못되었기 때문이다.
화약접시와 부싯돌을 사용하는 플린트락 머스켓의 한계였다.
또한 서양에서도 기병들이 말위에서 총포를 쓰게 된것은 퍼커션캡(뇌홍)방식의 머스켓이 등장하고 나서부터다.
그에반해 조선의 기병들이 사용하는 백두철포는 현무철포에비해 총신이짧고 사거리는 부족해도, 퍼커션캡(뇌홍)을 사용하는 장전방식과함께 두개의 쌍열총신을통해 연사가 가능했다.
기병들은 이런 백두철포를 개인당 2정씩 휴대했다.
이것만으로 한명의 조선기병이 백두철포로 최소 4명의 적들을 한꺼번에 상대할수 있었다. 이런 상황이니 50명에 불과한 조선 기병들이 백두철포를 발사하며 돌진하자 그 위력은 가공할 수준이였다.
퍽! 퍼퍼퍽! 크억! 케엑! 기병대장인 심동진이 선두에서 발사한 백두철포의 사격! 그것을 신호로 나머지 조선군 기병들도 장전된 백두철포로 목표들을 해치웠다. 쇄도해가는 백두철포의 일제사격으로 30명 이상의 팔기들이 한꺼번에 시체로 변해버렸다. 털썩! 쿠당탕! 말위에서 추락하는 팔기들의 모습. 그것은 종이 호랑이인 청제국의 몰락을 상징하고 있었던 것이다.
“팔기놈들이 혼란에 빠졌다! 지금이 기회다! 박살내 버려라.”
심동진이 외치며 기병도를 빼들었다.
쉬잇! 크억! 단번에 2명의 팔기들을 베어버리며 파고든 것이다. 백두철포의 사격에 동료들이 고깃덩이로 변했고 충격과 공포로 빠져든 팔기들은 본래의 실력조차 발휘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조선의 기병들은 거리가 멀어지면 백두철포로 사격을 개시했고 근접전에서는 기병도로 상대의 급소를 베어버린 것이다.
원거리 공격과 단기접전, 모두에서 조선군 기병들이 상대를 압도하는 위치에 있었다. 지금까지 청나라의 팔기병들이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전투였다. 그리고 대응책을 찾을 시간도없이 차례로 섬멸당하기 시작했다.
* * *
“크억! 개같은 조선놈들! 네놈들이 아무리 대청제국을향해 반항해봐야 소용없다. 황제폐하는 위대하고 청나라는 최강이다.”
“황제라... 북경에있는 애송이 놈을 말하는 것인가?”
“그놈! 동생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녀석이 운좋게 황제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
강승호와 박종찬의 냉소에 여상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과거에는 청나라를향해 감히 고개조차 못들던 조선이였다.
그런데 대만으로 몰래 조선군을 파견했고 이제는 대만의 원주민인 파포라족을 비밀리에 지원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일이 가능할수 있다는 것인가? 대체 연경(북경)에있는 자금성과 조정에서는 뭘하고 있는건가? 조선놈들이 대청 제국을향해 이따위 짓을 벌이는데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인가?’
여상의 머리속은 충격으로 혼란에 빠졌다.
지금 대만에 들어온 조선군은 그가 과거에 알고있던 조선군이 결코 아니였다.
조선내부에 이렇게 강한 전투부대가 있다니?
어쩌면 현재 조선군 전체가 이처럼 엄청난 무기와 전투능력을 보유하고 있는건 아닐까? 만약에 그것이 사실이라면 청나라는 조선에게 박살나고 먹히고 말것이다. 과거 십년전 아편전쟁으로 청나라는 씻을수없는 수모와 굴욕을 당했는데 이제는 조선에게 고개를 숙여햐 할지도 모른다.
여상이 만주족과 청나라의 운명에대해 한탄하고 있었지만 이미 상황은 끝나있었다. 얼마전까지 200명의 군세를 자랑했던 팔기부대는 여상을 포함해 겨우 10여명의 측근들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여상과 부하들의 주변을 파포라족이 포위하고 있었다.
강승호는 팔기부대에 치명타를 준뒤에 마지막 뒤처리는 파포라족에게 맡긴것이다.
그럴것이 지금까지 파포라족과 대만 원주민이 팔기들에게 당한 아픔은 상당했다. 그중에서도 여상은 수많은 파포라족들을 노예로 부리면서 살해하기도 했다.
“개같은 조선군 놈들! 비겁하게 후퇴하지 물러서지 말고 끝까지 싸워라.”
“그건 만주족인 네놈의 소망일 뿐이지. 어차피 너희 팔기들은 파포라족의 복수를위한 대상으로 적당할 수준이다.”
강승호가 여상을향해 조소를 띠었다.
이윽고 신호를받은 파포라족의 지도자 오디크 왕자가 외쳤다.
“지금부터 파포라의 전사들은 남아있는 팔기놈들을 섬멸시킨다. 전투개시!”
“와아아아!”
조선군의 전투를 본뒤라 파포라족들은 더이상 청나라 팔기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미 포위망에 갇혀버린 상태였고 숫자도 팔기대장인 여상을 포함해 10여명에 불과했다.
사방에서 공격이 개시되었고 절망에빠진 팔기들이 하나둘씩 시체가 되었다. 몇명이 기병도를 빼들며 대응했지만 파포라족 총병들이 현무철포로 조준사격을 펼치며 팔기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퍽! 크억! 머리가 박살난 팔기병이 말위에서 떨어졌다.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여상도 후방에서 쇄도해온 창날에 등을 찔리면서 입에서 피거품을 내었다.
쿠억! 비틀거리는 여상을향해 갈고리를쥔 파포라족 전사가 끌어 내렸고 바닥에 떨어진 여상을향해 사방에서 검과 창날이 파고들었다.
푹! 푸푸푹! 쿠에엑! 여상이 최후의 비명을 내질렀다.
잠시후 여상의 시체를 내려보며 강승호가 다가왔다.
쉬잇! 묵직한 칼날에의해 여상이 목이 잘려나갔고 그것을 오디크 왕자에게 주었다.
“오디크 왕자! 이것을 받으시요.”
“.....”
처음에는 당황했던 오디크였다. 하지만 그는 강승호가 여상의 목을준 이유를 짐작했다. 이미 파포라족의 지도자로 활동중인 그였지만 적의 장수를베고 그머리를 전시하는건 오디크의 역할이였던 것이다. 이윽고 오디크가 잘려진 여상의 머리를 치켜들었고 파포라족들 사이에서 승리의 함성이 터져나왔다.
“그놈의 머리를 잘 보관하고 있다가 나중에 조등녀석에게 보내시요.”
“조등총독에게 말입니까?”
“그렇소. 당신이보낸 그놈의 목을 본다면 조등은 반쯤 미쳐서 날뛸것이요. 그러면 앞으로 대만에서의 작전과 전투에서도 상대보다 유리한 위치에 설수있게 되니까 말이요.”
“과연 그렇군요.”
강승호의 조언에 오디크는 감탄했다.
단순히 전투능력만 뛰어난것이 아니라 적을 상대하는 심리전, 그리고 작전까지도 탁월했던 것이다.
‘절망의 순간에 조선군이 대만에와서 우리를 도와주다니! 이거야말로 파포라족은 물론이고 대만에있는 모든 부족들에게 천은과 같은 것이다.’
오디크 왕자가 감격했고 부하를시켜 여상의 목을 상자에 보관하도록 지시했다. 이후에 조등총독이 이것을 선물로받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되는 상황이였다.
* * *
“허억! 이건 꿈이다. 어떻게 이럴수가...?”
장범의 두눈은 경악으로 커졌다.
그는 노예농장에 배치된 한족병사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를 우습게보고, 제대로 지휘조차 못해서 병사들의 대부분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때문에 이후에 나타난 팔기부대장인 여상에게 문책을받고 따귀마저 맞았던 것이다.
그런 수모를 당하면서도 장범은 반항조차 할수없었다.
상대는 만주족이고 팔기의 부대장.
자신같은 한족이 감히 넘볼수조차 없었다. 그때문에 장범은 뒤로 물러난뒤에 팔기들이 싸우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이미 팔기병들이 나타난 이상 적들은 모두 전멸을 당할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장범의 예상과는 다른 상황이 벌어졌다.
한족이 감히 넘볼수없고 최강이라고 생각했던 팔기들이 단 한명도 남지않고 전멸당했다. 심지어는 팔기대장인 여상마저도 포위당해 목이잘렸다.
“대, 대장님! 팔기들이 전멸을 당할줄이야. 이제 우리들은 어떻게 합니까?”
옆에있던 부하들이 움찔거리며 말했다.
처음에 수백명이 넘어갔던 장범의 부하들은 이제 100명 남짓이였다. 동시에 팔기들이 승기를 잡으면 여상의 지시를받아 적의 후방을 공격하기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팔기가 전멸하면서 장범은 후퇴할 시간, 그리고 도망갈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고, 공격해라!”
장범이 소리쳤지만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팔기마저 당해버린 상태에서 한족인 자신들이 나서봐야 개죽음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선두에서 나가야할 장범마저도 부하들에게 소리나 지를뿐 공격할 엄두도 내지못했다.
얼마후 장범이 도망치기위해 후퇴했다. 그러자 장범의 뒤를따라 나머지 한족병사들도 무기를 버리고 달려갔다.
하지만 이것이 그들의 실수였다.
“길을 잘못 들었다!”
“멍청한 녀석!”
장범이 부하를향해 소리쳤다.
본래 노예농장의 주변은 높은 목책으로 둘러쳐져 있었다.
이것은 농장에있는 노예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인데, 이제는 장범과 부하들의 앞에 높은 목책들이 버티고 있었다.
애초에 그들이 탈출할 유일한 통로는 정문쪽이였지만 그곳에는 이미 파포라족과 조선군이 있었다. 때문에 반대방향을 선택했는데 스스로 갇혀버린 상황이 된것이다.
“저곳을 넘어가라!”
“대장님. 갈고리와 밧줄이 없으면 불가능 입니다.”
“그럼 어서 가져와!”
장범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가지 못했다. 후방에서 보이는 파포라족의 모습들. 그들은 남은 팔기병과 여상을 해치운뒤 도망치던 장범과 한족병사들을 추적해온 것이다.
“일단 저놈들을 막으면서 시간을 번다! 공격해라.”
한족병사들도 목책에 막혀버리자 마지막 선택으로 칼과 창을 빼들었다. 하지만 진격해오는 파포라족은 조선군에게 지원받은 각궁을 사용하고 있었다. 과거 그들이 사용하던 대나무로 만든 활에 비해서는 엄청난 성능이였고 활의 크기도 소형인 것이다.
“저곳에 부족민들을 노예로 부리던 한족놈들이 있다.”
“전원! 활시위를 장전해라! 쏴라!”
핑! 피잉! 쏴앙! 수십발의 화살이 한꺼번에 쏘아졌다.
퍽! 퍼퍽! 크억! 케엑! 화살에맞은 한족병사들이 피를 토하면서 쓰러졌다. 뒤에는 높은 목책으로 막혔고 앞쪽에는 조선의 각궁을 발사하며 오는 파포라족들. 공포와 두려움에빠진 한족 병사들중에 일부는 살려달라고 발광했다.
하지만 파포라족을 지휘하던 오디크 왕자는 강승호의 지시를받은 뒤였다. 여기 노예농장에서는 단 한명의 적들도 살려두지 않고 전멸시킨다는것. 그럴것이 노예농장에있는 병사들은 팔기부터 한족병사들까지 모두 잔혹한 짓을 저지르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크억! 케엑!”
목책을 넘을려고 발버둥치던 한족 병사들은 등에 화살이 꽃히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몇명의 부하들과 남은 장범이 마지막 발악을하며 돌진했다.
“으아아! 개같은 놈들!”
“포위망을 돌파해라!”
장범과 남은 한족병사들이 달려갔다.
하지만 파포라족 궁수들 후방에는 조금전 도착한 총병들이 있었다. 척! 처척! 오디크 왕자의 지시에따라 현무철포를 장전했고 사격신호만을 기다렸다. 장범을 바라보던 오디크의 입가에 냉소가 떠올랐다.
“발사!”
탕! 타타탕! 맹렬한 총성이 터지며 장범과 남은 한족병사들이 수십발의 탄환을 맞으며 튕겨졌다. 컥! 쿨럭! 입에서 피거품을쏟던 장범이 마지막 비명을 토해냈다. 그는 만주족에게 아부해서 출세할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대만에온 조선군의 등장으로 모든것이 수포로 돌아갔고 개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조선의 강력한 신무기와 상하이의 폭풍전야
덜컹! 덜컹! 2대의 수레들이 어둠에쌓인 골목길을 나아갔다.
일부러 큰 대로변을 택하지않고 좁은길을 여러번 통과해간 것이다. 이런 행동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럴것이 마차에는 지금 중국이나 청나라는 물론이고, 레드코트(Red Coat)인 영국군이 주둔한 홍콩에서도 볼수없는 최신 무기들이 적재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쪽입니다.”
앞쪽에서 길을 안내하던 맹타의 표정은 긴장되었다.
그는 상하이를 포함해, 장쑤성과 저장성 일대에서 활동중인 비밀조직, 청방(靑幇)의 간부들중에 한명이다.
그리고 맹타에게 내려진 임무는 조선에서온 사람들을 청방의 은신처까지 안내하는 것이다. 맹타의 안내를받아 마차와함께 이동중인 그들은 비호국에서 파견된 요원들이였다. 동시에 조장인 임재석은 같이온 요원들을 지휘하며 상하이에서 탄탄한 기반을 마련하고 있었다.
비호국 본부에서 지원되는 자금은 상당했다. 임재석은 이것을 활용해 필요한 주택을 구입하거나 활동자금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동시에 상해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지하조직인 청방을 지원하는것도 그가 진행중인 임무들중에 하나였다.
“여기 마차들에 실려있는 총포들을 본다면 청방의 수뇌부들도 상당히 놀라겠군요.”
“조선이 청방과의 협력을통해 상하이와 중국에서의 작전을 월할하게 수행할려면 여러가지가 필요하네. 그중에서도 우리쪽 조선의 지원을받는 청방이 최소한의 무장능력을 갖추도록 해주는것도 중요한 부분이지. 물론 우리들이 전해주는 50정의 현무철포로는 청방의 전체조직원들 중에서 몇십명이 전부이긴 하네. 그래도 청방의 무력과 전투력은 팔기병들과 대등하거나 앞설정도니까 말일세.”
“그렇군요.”
임재석의 대답에 요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호국에서 청방에게 현무철포를 지원해 준다해서 청방이 그것을 마음대로 쓸수있는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지원을통해 청방은 조선의 강력한 힘을 실감할수 있다. 동시에 조선과 비호국에 더욱 기댈수밖에없는 상황이 될것이다. 이것이 비호국과 임재석이 청방을 선택했고 관리하는 방법중에 하나였다.
“조금후면 도착입니다.”
안내하던 맹타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청방의 간부임에도 불구하고 맹타는 동행하는 임재석과 비호국 요원들에게 압도적인 기세를 느꼈다. 이제는 기껏해야 은신처로 안내하는 이번일을 자신에게 맡겼는지 실감한 것이다.
만약에 경험없는 일반 조직원들 이였다면 중간에서 덤벙대며 잘못된 길을 안내하거나 모든걸 그르칠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휴우. 그나마 다행입니다. 야간에는 쓸데없는 트집을잡아 검문을하는 만주의 팔기들이나 그들에게 지시받는 순찰병들도 있어서 말이지요. 그나마 복잡한 골목길을 이용했기에 다행히 검문에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과거 영국과 청의 전쟁이후에 상하이가 무역항으로 개방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곳을 자신들 마음대로 할려는 자들이 있는가 보군.”
“그렇습니다. 양인들이 주로 지내는 조계지역에 대해서는 특별한 간섭을 못하지만 대신에 일반서민들이 지내는 곳에 대해서는 더 날뛰는 중입니다.”
맹타가 불만을 표시했다.
청나라에게 아편전쟁의 패배는 치욕이였다. 그것만이 아니다. 난징조약을통해 홍콩섬을 영국에게 완전히 할양하고 상하이를 포함해 몇개의 항구를 개방하게 된 것이다. 그중에 상하이는 서양인들이 주로 지내는 조계지역이 일찍부터 들어섰다.
그때문에 상하이의 내부인데도 양인들이 생활하고 지내는 구역과 한족들이 모여있는 구역이 갈라진 것이다. 그럼에도 평소에는 다수의 한족들이 조계지역에가서 양인들의 지시를받아 일을 하였다. 조계지역에서 일하게되면 더 많은 보수도 받고, 생활도 윤택해지기 때문이다.
“괜찮은 장소를 골라서 은신처를 마련했군.”
“이 정도면 청방의 능력도 쓸만하군요.”
“물론일세. 비록 청나라의 군대나, 한족부대를 상대로 정면대결은 힘들어도, 보이지않은 곳에서 은밀하게 활동하는 솜씨는 탁월하니까 말이지.”
임재석이 대답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들이 도착한 청방의 은신처는 상하이의 외곽에 있었다.
주변에는 행인들의 발길이뜸한 상태였다. 그리고 군데군데 버려진 가옥들이나 건물들도 보였다. 때문에 청방같은 비밀조직이 그들의 정체를 숨기고 활동하기에는 더없이 괜찮은 장소임에는 분명했던 것이다.
얼마후 그들앞으로 어둠속에서 몇명이 다가왔다.
처음에는 경계하는 눈빛이였지만 선두에서 안내하던 맹타가 보여준 비밀신호를 확인하자 좌우로 물러섰다.
* * *
끼릭! 비호국 요원이 상자를 열었다.
그러자 주변에있던 청방의 간부들은 침을삼켰다. 다만 조선에서 무기를 지원해 줄것이고, 그것이 총포라는 설명을 들었을때 청방의 수뇌인 장개양은 큰 기대를 하지못했다.
그럴것이 현재 청나라와 중국내에서 볼수있는 구식의 화승총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화승총이란것도 쉽게 구할수있는 무기는 아니지만 엄청난 수준은 아니니까 말이다.
“방주님! 이것은 전혀 못보던 총포의 모습입니다.”
“자네의 말을들으니 그렇군.”
간부중에 한명이 상자에있는 현무철포를 꺼내었다.
몇차례 유심히 살펴봤지만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알수없었다.
이것을 보고있던 임재석이 앞으로 나섰다.
처억! 상자에있는 현무철포를 양손으로 든뒤에 다른 상자에있는 약협을 들어올렸다.
“이것은 현무철포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조선군이 사용하던 구형의 화승총을 신형으로 개조한 것이지요. 그러나 위력과 성능은 월등하게 증가된 것입니다.”
“허어...”
청방의 수뇌이자 방주인 장개양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감탄했다. 이미 50대의 나이에 접어든 상태임에도 눈빛에서는 노련함이 느껴졌다. 과거에 청방은 기껏해야 조직원들이 몇십명에 불과한 소규모였다.
그러다가 장개양이 청방의 새로운 방주가 되면서 비약적으로 조직원들의 숫자와 규모가 커진것이다. 임재석은 이런 장개양의 능력을 확인했기에 청방을 앞으로 더 키워주고, 조선이 상하이를 포함해 중국에서 활동하는 거점으로 선택한 것이다.
“이것은 약협이라는 것인데, 현무철포에 사용할 화약과 탄환이 같이 결합된 형태이지요.”
임재석이 한지로 쌓여진 약협을들어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찌익! 임재석이 입으로 한지로만든 약협을 찢어냈고 총구에 화약을 넣었다. 탄환을 발사할때에 필요한 양만큼 들어있기에 화약의 낭비도 줄이고 동시에 장전을하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화약에 점화를 시키고 탄환을 발사하는데 필요한 화승심지는 쓰지를 않는 것입니까?”
“여기 청방에도 화승총에대해 좀 알고 다뤄본 사람도 있군요.”
“과거에 한족병사들로 구성된 총병부대에서 잠시 생활을 했습니다.”
모여있는 간부들중에 한명이 대답했다.
그는 다른 간부들과 다르게 현무철포가 들어있는 상자를 열었을 때부터 호기심 가득한 표정이였다.
“조선에서 개발한 현무철포는 화승심지 대신에 이걸 사용합니다.”
임재석이 작은 통에 들어있는 퍼커션캡(뇌홍)을 꺼내서 보여주었다. 대부분은 그것을보며 고개를 갸웃할 뿐이였다. 다만 이전에 화승총을 다뤄본 경험있는 간부는 감탄한 표정으로 입까지 벌어진다. 이윽고 임재석의 지시에따라 비호국 요원중에 한명이 현무철포에 화약과 탄환을 장전하는 방법등을 시범으로 보여주었다.
철컥! 노리쇠를 당기고 윗부분에 뇌홍을 끼워넣는 과정까지 금방이였다. 잠시후 청방의 조직원이 준비해둔 표적을향해 조준을 하였다.
탕! 한발의 총성이 터지며 주위를 울린다.
발사된 탄환은 정확하게 표적을 관통했고 이것을보던 장개양이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조선에서 청방에게 지원해준 무기는 엄청난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무철포의 위력과 성능을 눈앞에서 목격한 간부 염상이 감탄하며 말했다.
“방주님! 조선에서 지원해준 신형총포들이 비록 50정의 숫자라해도 성능과 위력으로 따지면 청나라군이 보유한 화승총을 몇배나 능가할 수준입니다.”
“정말로 당신들과 한양에계신 전하께서 우리 청방을 이처럼 지원해 주시니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할지 모르겠군요.”
“전하께서는 상하이에서 활동중인 청방에대해 중히 여기고 계십니다. 따라서 당신들 청방의 뒤에 조선이 든든하게 지켜준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면 됩니다.”
“과연 그렇군요.”
임재석의 말에 장개양이 미소를 지었다.
청방이 비록 지금은 조직원들의 숫자가 많고 세력도 커지고는 있었다. 하지만 언제 어느때에 청나라 세력에게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때문에 항상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제는 조선이란 강력한 국가가 뒤를 받쳐주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결코 공짜가 아니라는 사실은 장개양도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 * *
후룩! 짙은 향기가 올라오는 찻잔을 들이키며 임재석이 감탄했다.
“정말로 맛좋은 차군요.”
“칭찬을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장개양이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50정에 이르는 강력한 무기, 현무철포를 지원받게되자 청방의 방주인 장개양은 안재석과 비호국의 요원들을 대접하기위해 자리를 준비했다. 맛좋은 음식도 내오고 나중에는 꽤 비싼 차도 대접한 것이다. 그러면서 장개양이 넌지시 말을 꺼내었다.
“요즘 청방에있는 조직원들이 수집해온 정보와 소문들이 있는데, 혹시 흥미가 있으신지 궁금하군요.”
“역시 방주께서 좋은 선물을 준비하신거 같군요.”
“조선에서 우리를 지원해주신 부분에대한 자그마한 성의라고 생각해 주십시요.”
그렇게 운을 뗀뒤에 장개양이 설명을 시작했다.
듣고있던 안재석의 표정은 흥미롭게 바뀌었다. 예상대로 청방의 조직력과 정보를 수집하는 능력은 탁월했던 것이다.
“그말은 즉, 조만간 상하이에서 엄청나게 큰 사건이 벌어질 것이란 뜻이군요.”
“아직 확실한 부분은 없지만 이전부터 만주족들과 귀족들중에 상하이에 속칭 서양오랑캐들이 자리를 잡은것에 불만을가진 세력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런것으로 따지자면 오히려 홍콩쪽을 노리는것이 더 가능성이 있을것으로 생각되는데 말이지요. 무엇보다 청 조정에서는 홍콩섬 자체를 영길리(영국)에게 완전히 줘버린 상태이지 않습니까?”
“아마도 만주족들의 본심으로서는 홍콩섬을 되찾는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대인께서도 알다시피 홍콩섬에는 강력한 무력을가진 영길리의 군대가 주둔해 있습니다. 동시에 몇년전에 벌어진 전쟁에서 만주족의 팔기와 정예들까지 영길리들에게 크게 당한 터라, 그들도 섣불리 대들 엄두도 못내는 수준이긴 합니다.”
“과연, 홍콩섬에 비해서 여기 상하이는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서군요.”
임재석이 대답했고 장개양이 만주족들중에 서양 오랑캐에 반감을 가진 세력들이 꽤 있다는것. 동시에 과거에 아편전쟁에서 패배했던 치욕을 갚아줄 반격을 준비하는 세력들이 상하이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 설명은 임재석이 볼때에도 충분히 타당성이 있었다.
비록 상하이에 서양인들이 주로 지내는 조계지역이 보통의 한족들이 살아가는 장소들과 분리된것도 사실이다.
동시에 서양인들도 그들이 생활하는 조계지역에대한 안전과 방어를위해 나름대로 준비를 해두기는 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홍콩섬에 주둔중인 영국군처럼 강력한 존재들은 아니였다.
“확실히 방주의 설명대로 조계지역에있는 서양인들중에 많은 숫자가 불란서(프랑스)인들이고, 아직은 블란서가 영길리처럼 강력한 군대를 주둔시킨것은 아니라는것도 있군요.”
“그렇다해도 조계지역에는 전직 프랑스 장교들을통해 고용된 인도인의 용병들도 있고, 무기와 장비들도 어느정도 있는 상태입니다. 물론 만약의 큰 사태가 벌어지면 과연 그것으로 방어가 가능할지는 미지수이긴 합니다.”
“흥미로운 부분이군요.”
장개양 방주의 말에 임재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하이에서 조만간에 뭔가 큰 일이 터질것이라는 분위기.
이것은 조선이 상하이에대한 공략을 시도중인 상태에서는 상당히 큰 기회일수도 있었다.
‘과연, 전하께서는 이런 부분까지 생각을하고, 비호국의 요원들을 상하이에 파견하고 청방에대한 지원까지 하명하신 것이구나.’
임재석은 한양과 창덕궁에있는 철종의 안배에 놀라면서 감탄했다. 그리고 조금전 장개양 방주가 말한대로 이후에 상하이에서 큰 사건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곧 조선에게 큰 기회이다. 물론 그때를위해 미리부터 준비를 해놓는것은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