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9화 (149/169)

부하들의 대답에 미야자키의 입가가 씰룩거렸다.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 그것도 당연했다.

그가 타고있는 대장선의 중심으로 수십척에 이르는 대함대가 구성되어 있으니 말이다. 이런 함대들중에 20척은 조선수군이 갖고있던 판옥선들이다. 지금까지 사츠마번 해적들의 위세는 대단했고 조선의 전투함들인 판옥선들마저 손에넣었던 것이다.

이들 판옥선들 중에는 사츠마번 해적들이 전투와 백병전을통해 강탈한것도 있고, 부패한 조선관리들이 거액을받고 해적들에게 팔아넘긴 것들도 있었다. 이처럼 과거 안동김씨들과 세도가들의 패악질은 조선을 해적들에게도 휘둘리는 3류국가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조선놈들의 배를 털어먹는건 최고지.”

“그렇고 말고! 멍청한 녀석들.”

각각의 전투선에 타고있는 해적들이 기세를 높였다.

한동안 해적활동이 위축되면서 사츠마번 해적들은 배를 쫄쫄 굶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해적들 두목인 미야자키가 대규모 수송선단을 습격한다고 했을때 해적들은 환호성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몰랐다.

* * *

“해적들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니까 경계를 철저히 해라.”

“알겠습니다.”

상부의 지시에 병사들이 대답했다.

바다를 항해하는 선단들의 중심에는 지휘선이 보였다.

그곳에는 남해함대 사령관인 박제독의 명령을받은 안태수가 탑승하고 있었다.

지휘선의 갑판에는 병사들이 있었고 언제라도 전투에 투입할수 있도록 곳곳에 무기들을 숨겨둔 상태였다.

지휘선의 중심으로 이동하는 선박들.

그 숫자는 최소 30척이 넘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상선들이 선단을 꾸리기는 했지만 이정도의 규모는 처음이다. 때문에 사츠마번 해적들을 유인하기에는 최적이다. 다만 수십척의 상선들이 항해하며 대량의 물품들을 적재하고 있지만 저것들은 모두 가짜다.

겉으로 보기에는 수북하게 쌓여있는 상자들.

하지만 내부에는 지푸라기나 나뭇가지들을 넣어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내용물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해적들은 모를것이다. 대신에 해적들의 귀에 들어가도록 소문은 거창하게 내놓았다. 탐욕에 눈이먼 해적들은 이것을 무시하지는 못할테니까 말이다.

해적들의 근거지를 하나하나씩 찾아가며 소탕하는 방법.

그것은 오히려 조선 해군에게는 불리했다.

성과가 큰것도 아니고 소탕작전을 벌여도 기껏해야 몇명, 몇십명이 고작이니까 말이다. 그에반해 지금처럼 적들을 대규모로 유인해 격파하면 몇번의 전투만으로 해결할수 있었다.

지금 시대에서 해적들은 조선만의 문제는 아니였다.

청나라의 경우에도 동부와 남부해안에 해적들이 출몰해서 약탈을 하기도했다.

앞으로 조선해군은 더넓은 바다를 통제하고 관리해야했다.

때문에 해적들을 상대로 실전경험들을 쌓고 해적소탕도 해볼수있는 일석이조의 기회다.

“저기에 뭔가가 나타났습니다.”

병사중에 한명이 외쳤다.

그러자 안태수의 시선이 고정되며 미간을 꿈틀했다.

수평선의 너머에서 하나둘씩 등장하는 배들-

얼마후에 숫자는 빠르게 증가했다. 예상대로 해적들이 미끼에 걸려든 것이다.

“동요하지마라. 다른 배들에도 신호를 보내라.”

“알겠습니다.”

안태수의 지시를받자 신호수가 깃발을 올렸다.

30척으로 구성된 대형 수송선단. 하지만 각각의 선박들에는 남해함대 소속의 병사들이 섞여 있었다.

선단에는 민간인들도 있었지만 그들에게도 이번작전에 대해서는 출항하면서 알려주었다. 처음에는 뭣때문에 가짜화물을 한가득싣고 바다로 나가는지를 몰랐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의 역활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은 것이다.

“지금부터 해적놈들을 유인한다.”

안태수의 눈빛이 강렬하게 바뀌었다.

그는 처음부터 선단의 항로를 치밀하게 계산했다. 해적들을 유인하기 위해서는 먼 바다로 나가야한다.

하지만 너무 멀리나가면 곤란했다.

동시에 해적들을 상대로 전투를 하는것은 선단이 아니다.

애초부터 그럴 능력은 없었으니 말이다. 따라서 남해함대의 본대가 있는곳으로 해적들을 유인하는게 두번째이다.

“항로를 예정된 방향으로 유지해라.”

지휘선에서 신호가 올라갔고 유도를 시작했다.

그에따라 수십척에 이르는 선단이 일사분란하게 항로를 바꾸었다. 하지만 이것은 해적들에게 선단이 도망가는 것으로 보였다. 때문에 미야자키의 해적선들이 기세를 높이며 추격을 시작했다.

해적 토벌작전 (04)

둥둥둥! 북소리가 연속으로 터져나왔다.

대장선에있는 미야자키가 소리쳤다.

“추격을 개시해라! 속도를 높여라.”

선단을 발견한 미야자키의 두눈은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이제까지 남해안에서 해적질을 해오면서 가장 큰 약탈감이 생긴것이다. 사전에 입수한 정보대로 수십척의 선박들에는 화물들이 한가득 실려있었다.

“저기에 실려있는 물건들이 중요하니까, 격침은 시키지말고 접근해서 나포해라.”

“당연하지요.”

부하들이 대답하며 지시를 내렸다.

해적선단에는 화포들을 탑재한 판옥선들도 있었다.

하지만 수송선이 침몰하면 곤란하기 때문에 화포발사는 최대한으로 아끼면서 접근을 시작한 것이다. 다만 도망치던 선단이 항로를 바꾸어 갈석도쪽으로 가는것이 의아했지만 상관은 없었다.

“멍청한 놈들! 그곳으로 가봐야 어차피 막다른 길인데.”

“어쩌면 배를버리고 육지로 도망칠려는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더 좋은 일이지.”

추격전을 개시한 해적들이 떠들었다.

각종 화물을 가득실은 선단이 자신들을향해 대항하든 또는 배를버리고 육지로 도망치든 어느쪽이나 이득이다.

다만 그들은 선단에대한 추격때문에 자신들도 퇴로가 막혀있는 좁은장소로 들어간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

얼마후 해적들의 예상대로 30척의 선단은 갈석도의 좁은 길목으로 들어가 버렸고 상당수의 인원들이 배를버리고 육지로 올라갔다. 일부는 해안가에 진을치고 전투준비를하는 모습도 보였다. 배를 버렸지만 끝까지 항전하겠다는 모습이다.

여기에 미야자키의 미간이 꿈틀하면서 외쳤다.

“저놈들에게 우리에게 반항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가르쳐 줘야겠군.”

“당연합니다.”

얼마후 지시에따라 일부는 상륙부대를 준비하기도 했다.

그사이에 선두에있던 해적선들은 정박을마친 선단에 올라타서 뭔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제대로 한몫 잡을수...”

“이게 뭐야?”

수북하게 쌓여있는 상자들을 확인했던 해적들은 경악했다.

내부에서는 톱밥이 튀어나왔고 다른곳에는 지푸라기와 나뭇가지들이 잔뜩나왔다.

“속았다! 조선놈들에게 속았다!”

“설마 우리들이 함정에 빠진건가.”

당황한 해적들이 소리칠때 상륙을해서 해안가에 진을친 조선병사들이 냉소를 지었다. 그리고 병사들을 지휘하던 안태수가 명령했다.

“해적놈들이 무덤속으로 들어왔다. 신호를 올려라!”

지시가 떨어졌고 근처에서 대기중이던 병사들이 공중으로 신기전을 쏘았다. 이것은 적선에대한 공격보다는 다른곳에 위치한 아군에게 신호를 보내기위해 사용하는 것이였다.

쉬잉! 공중으로 솟아오른 신기전.

그것은 한발이였지만 공중에서 불꽃과 연기를내며 사방으로 터졌다.

퍼엉! 신기전의 폭발에 해적들은 움찔했고 일부는 겁을먹고 바닥에 엎드렸다.

“상륙해서 저놈들을 해치워라!”

“감히 우리를 속여! 찢어죽일 놈들.”

선두에서 왔던 해적선들에서 수십명의 해적들이 내리며 돌진해왔다. 하지만 이미 안태수의 지시에따라 수병들은 진형을 만들었고 그들의 양손에는 강력한 현무철포가 들려져 있었다. 탄환이 장전된 상태였고 안태수의 명령이 떨어졌다.

“전방을향해 조준!”

“발사!”

탕! 타타타탕! 돌진해가던 수십명의 해적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그리고 해안에서 벌어지던 상황을보던 나머지 해적들은 경악했다. 기껏해야 선원들이나 있을줄 알았는데 강력한 철포로 무장한 조선군들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깨달았다.

“잘못하면 여기서 전멸이다!”

“배를 돌려야한다.”

사방에서 외침이 터져나오는 순간.

해적선단의 후방에서부터 접근해오는 다른 배들이 보였다.

* * *

치이익! 텅텅텅! 벨브를통해 증기들이 솟구쳐 나온다.

증기기관의 실린더가 고속으로 움직이며 기계음이 주위를 가득메웠다. 개조된 증기판옥선의 후방에있는 스크류가 맹렬히 회전했고 그 힘을받아 선체가 파도를 가르면서 나아갔다.

한편 증기판옥선들의 사이에는 기함인 태풍함이 있었다-

태풍함은 조선이 도입한 12척의 신형 증기선들중에서 가장 대형이였런 랜스터호를 남해함대의 기함으로 배치한 것이다.

그에따라 1400톤급의 선체는 남해함대에 배치된 3척의 신형 증기선들에 비해서도 더 큰 모습이다. 동시에 주변에있는 판옥선들을 몇배나 능가하는 덩치는 남해함대의 기함이지닌 위세를 제대로 드러냈다.

얼마후 기함에서 지휘중인 남해함대 사령관 박상기 제독의 표정이 밝아졌다.

전방에 모여있는 수십척의 적선들.

지금까지 조선의 남해안을 다니며 수많은 노략질을해온 해적들이 한꺼번에 모여있는 것이다.

“사령관님. 적선의 숫자가 아군보다 월등하게 많습니다.”

“예상했던 부분이지. 하지만 전투는 숫자로만 하는건 아닐세.”

박제독이 말하며 함대진형을 바꾸었다.

이미 해적선단은 유인작전에걸려 후방이 막혀버린 상황이다.

하지만 여기서 완벽한 승리를 거둘려면 적들이 탈출할 기회자체를 없애버려야 했다.

그에따라 박상기 사령관은 함대를 2열대형으로 만들었다.

기함인 태풍함을 중심으로 한개의 진형으로 돌파하며 나머지 다른 소함대는 그것을 지원하는 형식이다.

“안태수가 유인작전을 성공적으로 해주었군.”

“해적들로서는 이번의 가짜 수송선단은 놓치기싫은 미끼였을 겁니다.”

기함인 태풍함의 함장인 이병준이 대답했다.

조금전 육지쪽에서 한발의 신기전이 신호용으로 올라왔다.

이것은 해적선들이 제대로 함정에 빠졌다는 뜻이다.

그에따라 박상기 사령관은 매복해있던 장소에서 빠르게 함대를 출발시켰다.

증기판옥선에있는 기관들이 본격적으로 가동되었고 수직으로 솟아오른 연돌(굴뚝)에서는 검은연기가 솟구친다.

갑판에있는 병사들은 전투준비를위해 배치되었다.

현재 공격을위해 진격하는 남해함대의 숫자는 적들에비해 열세였다.

사츠마번 해적들이 동원한 선단은 70척에 이르렀고 그중에 20척은 조선을 상대로 노획했던 판옥선들이다. 그외에 나머지 50척의 선박들은 판옥선보다 소형이라해도 무장을갖춘 선박들이다.

이런 상황이지만 박상기 사령관은 자신이 있었다.

그럴것이 개조된 증기선들이 발휘하는 위력은 강력하다.

이제부터 그것을 증명해줄 차례였다.

“조선수군 놈들이다!”

“저놈들이 판옥선을 끌고 왔다.”

“그런데 저 판옥선들의 사이에있는 큰배는 대체 뭐야?”

“믿을수없다. 조선군들이 저렇게 큰 함선들을 갖고 있다는 거야?”

후방에 나타난 남해함대의 등장에 해적들이 당황했다.

특히 판옥선들의 사이에있는 기함인 태풍함, 그리고 나머지 3처의 주력함들에 겁을먹은 것이다. 그러자 함선에 타고있던 간부들이 소리쳤다.

“겁먹지마라. 저놈들은 기껏해야 20척도 안된다.”

“그러고보니 숫자는 우리쪽이 몇배나 우세하다.”

“맞아! 우리들은 조선놈들에게 빼앗은 판옥선들도 있잖아. 그것도 20척이나 되는데.”

처음에는 당황했던 해적들이 수근거렸다.

조선해군이 후방을 막았지만 숫적으로 열세였고 판옥선은 자신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얼마후 대장선에서 깃발이 올라갔다.

“전투준비를 개시해라!”

“조선놈들을 박살낸다.”

20척의 판옥선에 타고있던 해적들이 화포를 준비했고 일부는 검을빼들고 조총도 장전을 하였다. 다만 해적들이 판옥선을 손에넣었지만 제대로된 화포술을 익힌것은 아니였다.

때문에 지금까지도 노략질을 할때에는 조총과 일본도를 빼들며 달려드는 백병전을 선호했다. 처음에는 기세좋게 외쳤던 해적들이지만 얼마후에는 두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조선놈들의 판옥선에서 검은연기가 솟구치고 있다.”

“설마 배에서 불이라도 난건가?”

“그게 아닌데... 그리고 돛도없고 양쪽으로 장착된 노가 없는데도 빠르게 오고 있어.”

“저게 무슨 상황이야?”

해적들의 눈에비친 조선해군의 판옥선은 경악이였다.

검은연기를 위쪽으로 뿜어내고 고속으로 돌진해오는 상황.

몇명의 입술이 덜덜떨더니 반사적으로 외쳤다.

“저건 거북선이다. 조선정벌때 우리의 선조들을 모두 물고기밥으로 만들었던.”

“그게 정말이야? 저게 거북선이라고?”

한두명이 외치자 나머지가 수군거렸다.

해적들중에 누구도 거북선의 실물을 본적은 없으니 말이다.

대신 전해내려오는 묘사는 두가지. 연기를 뿜어내고 고속으로 돌진해서 왜선들을 박살냈다는게 전부였다. 그리고 이제 조상들을통해 들었던 그 공포가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 * *

“양무화포를 장전해라.”

첫번째로 돌진해가는 증기 판옥선들.

갑판에 배치된 병사들이 화포에 달라붙었다.

이전에 조선군이 판옥선에서 사용하던 구형 화포들은 모두 제거되었고 새로운 양무화포들로 교체가 되었다.

그리고 신형화포들의 위력은 엄청날 정도였다.

남해함대의 병사들은 군기시에서 만들어낸 양무화포에 대해서는 소문으로만 들었다. 이후에 철종의 명령에따라 조선해군에도 양무화포들이 배치되었다. 그리고 화포에대한 포격훈련과 여러가지를 준비했던 것이다. 이제부터 땀흘려 훈련한 성과를 실전에서 발휘할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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