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2화 (132/169)

잠시후 선두에있던 최종봉이 말했다.

“오진사님! 미천서원에있는 토지와 농지는 더이상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조정에서 관리하는 국가의 토지이고, 불만이 있다면 이판대감인 흥선군 나리에게 따지시요.”

“뭣이라고? 뚫린 입이라고 나불대는 것이냐?”

오삼택이 발끈했지만 영강촌 주민들은 꿈쩍도 안했다.

그럴것이 오삼택이나 양반지주들이 미천서원에 숨겨두었던 토지와 농지들은 고스란히 국가의 소유가 되었다.

그후에 미천서원의 교장(敎長)은 등록된 토지와 농지들을 근처에있는 농민들에게 배분하여 농사를 짓게 하였고, 이후에는 일정한 소작료를 받았다. 동시에 영강촌 주민들이 서원에내는 소작료는 이전에 오삼택이나 양반 지주들에게 갈취당하던 것에비하면 상당히 낮았다.

‘흥선군 그놈때문에... 갈아마셔도 시원치않을 잡종놈이...!’

흥선군 이하응의 이름이 나오자 오삼택이 속으로 저주를 퍼부었다.

하지만 이것을 입밖으로 낼 만큼의 배짱은 없었다.

오삼택이 저주하는 흥선군 이하응은 왕족중에 한명이고, 이제는 조선내에서 최고의 대신인 이조판서다. 따라서 오삼택이 나주지역에서 알아주던 대지주라해도 덤빌 수준이 아니였다.

한편 오삼택이 나주지역의 땅부자였던 것도 이제는 과거의 일일 뿐이다.

오삼택은 욕심을부려 갖고있던 토지들중에 상당수를 미천서원에 숨겨두는 편법을 저지른 것이다.

과거에 서원에있던 토지들은 세금을 내지않는 면세혜택을 받았다. 때문에 오삼택만이 아니라 조선에있는 상당수의 양반 지주들이 이런 짓거리를 하였다.

특히 오삼택은 토지와 농지들중에 90%-정도를 서원에 몰래 넣어서 면세토지로 만들었다. 그런뒤에 영강촌의 소작농들에게는 과도한 소작료를 부과하며 이득을 챙겼던 것이다.

그렇게 좋은시절을 보냈던 오삼택 이였지만 흥선군이 전국의 서원들을 습격하고 훈장들에게 비밀장부들을 내놓게 만들면서 한순간에 바뀌어 버렸다.

미천서원이 갖고있던 재산과 토지가 교육기금(敎育基金)-으로 전환되면서 오삼택은 하루아침에 전재산의 90%-를 날려버린 것이다.

오삼택의 뒤에있는 양반지주들도 미천서원에 토지와 농지를 숨겼다가 완전히 털려버린 상태였다.

이런 상황은 나주지역만이 아니라 전국에서 벌어진 일이였고, 토지와 땅을 가지고 각지역의 서원들과 결탁했던 양반 사대부들은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이제는 그에대한 반발로 오삼택같은 양반지주들이 서원의 토지에서 일하는 농민들을 상대로 시비를 걸고있는 상황이다.

“좋은 말로 할때 비키시요. 안그래도 농사일로 바쁜 상황인데.”

“이미 세상이 바뀌고 있는데 아직까지도 양반과 유생이 특권인줄 아시요?”

영강촌 주민들이 오삼택과 동료들을 무시하며 지나쳐갔다.

그러자 오삼택과 일행들이 쪼르르 달려가서 다시 길을 막았다.

이제는 서원의 정문까지 막으면서 시비를거는 것이다.

미천서원과 소작계약을맺은 영강촌 주민들은 매일마다 이곳에 모여서 그날의 농사일을 협의하고 품앗이와 두레등을통해 서로 도와가며 일을하였다. 때문에 과거에비해 수확량은 더 증가했고 미천서원이 학생들과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필요한 자금들도 충당할수 있었다.

이처럼 흥선군 이하응이 전국의 서원들을 털어버리고 재산을 압류한뒤 공적으로 관리하는 체계는 엄청난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비키시요!”

“천하의 무식한 상것들이 감히 양반을 밀쳐?”

“저 미천서원이 본래 누구의 것인지 아느냐? 너희같은 상것들은 발조차 들일수없는 고귀한 사대부들의 것이다. 그런데 양반들의 재산을 빼앗아간 서원을향해 농사를 한다고?”

“무슨 웃기는 소리요? 본래부터 서원의 재산은 당신들 양반들이 탐욕에 눈이멀어 서원에 숨기고 기증한것이 아니요? 그런데 이제와서 무슨 헛소리 입니까?”

미천서원의 정문에서는 말다툼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영강촌 주민들의 숫자만해도 수십명이고 마음만 먹으면 오삼택과 몇명안되는 양반들을 바닥에 팽겨칠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오래전부터 영강촌 주민들을 상대로 상전행세를 해왔고 소작농들을 부려먹던 대지주들이였다. 때문에 주민들이 분노해도 쉽사리 행동을 못하던 상황이였다.

“무슨 일이길래, 아침부터 밖에서 소란이요?”

안쪽에서 문이열리며 미천서원의 교장인 양기석이 나왔다.

과거 미천서원에는 훈장인 박춘식이 주인이였다.

오삼택을 포함해 양반과 유생들이 박춘식에게 잘 보이기 위해 머리를 굽신거렸다. 그리고 박춘식은 뇌물을받고 양반들이 미천서원에 토지를 숨기는데 도와주기도 했던것이다.

그러던 박춘식은 서원을 급습해온 중앙의 관리와 포졸들에게 끌려간뒤에 돌아오지 않았다. 들리는 소문에는 한양에있는 의금부에 갇혀서 심문을 받았고, 비밀장부를 토해낸뒤에 겨우 풀려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박춘식도 나주로 돌아오면 자신이 무슨 꼴을 당할지 알았기에 다른 곳으로 도망친 것이다.

어쨌든 그뒤로 미천서원은 이조와 교육청에서 관리하는 상태가 되었고 한양에서 새로운 책임자가 내려왔다.

그 책임자가 미천서원의 교장인 양기석이다.

오삼택과 동료들은 교장인 양기석을 발견하자 멱살을잡고 늘어졌다.

“이 개같은 놈아! 어서 내 재산과 토지를 돌려내라! 그땅이 어떤것인줄 아느냐? 우리 오씨가문에서 조상대대로 내려오던 땅이다.”

“오진사. 이게 무슨 짓인가?”

탁! 교장인 양기석이 매몰차게 오삼택의 손을 잡아챘다.

양기석은 과거에 몰락한 양반인 잔반의 신세였다. 하지만 이후에 이조와 교육청에서 실시한 면접과 심사를통해 미천서원의 교장으로 발탁된 것이다.

흥선군 이하응은 전국에있는 서원들을 박살낸뒤 새롭게 서원을 관리하고 지역의 교육을 담당할 인재들로 양기석같은 교장들을 파견한 것이다.

그리고 전국의 서원들에 파견된 교장들은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며 아이들에게 실용학문을 가르쳤고 서원의 운영을 담당했다. 양기석 교장이 점잖게 충고했지만 재산을 날려버린 오삼택은 굽힐줄 몰랐다. 그러자 양기석의 미간이 꿈틀거렸고 안쪽을향해 소리쳤다.

“여봐라! 거기 아무도 없느냐?”

“무슨 일이십니까? 교장 어르신.”

대답과함께 건장한 체격을지닌 사내들 십여명이 나왔다.

이들은 흥선군 이하응이 보부상 조직을 이용해 각지의 서원마다 배치해놓은 인원들이다. 서원의 경비부터 시작해 여러가지 업무들을 담당했고 서원의 책임자인 교장들을 돕는일도 하였다.

흥선군 이하응이 보부상 조직에속한 이들을 각지의 서원마다 배치한것은 다른 이유도 있었다. 지금처럼 서원에 재산과 토지를 숨겼다가 몰수당한뒤 그걸 되찾겠다고 따지러오는 지역의 양반들이나 유생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런 양반들을 쫓아내고 처리하는데는 거친생활을 주로했던 보부상들이 적격이다.

“여기 무도한 자들이 조정에서 내려온 공무를 방해하고 소란을 피우니 이들을 내쫓도록 하여라. 만약에 순순히 말을듣지 않으면 매로 다스려라. 이판대감께서는 조선의 교육을 방해하는 자들에게는 어떤 자비도 없다고 하셨다.”

“명을 시행하겠습니다.”

지시를받은 보부상들이 우르르 나가며 오삼택과 양반지주들을 밀어냈다.

“이놈들이 감히?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 만약에 나를 건드리면 지방의 수령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것이다.”

“이보시요. 지금이 어느때인데 지방의 수령들을 들먹이는거요? 현재 각 지역의 수령들도 이판대감의 서슬퍼런 칼앞에 다 숨을 죽이고 있는데 수령들이 당신들 편을 들어줄거 같소? 그리고 함부로 지방 수령관을 관련시키다니? 그것 만으로도 큰 죄인데, 한양에있는 의금부에 끌려가 맛좀 보고 싶소? 여기 서원에있던 훈장이 무슨 꼴을 당했는지 모르는거 같군.”

“......”

오삼택의 등뒤로 식은땀이 흘러갔다.

과거에 자신의 소작농이던 영강촌 주민들에게는 큰소리 치는게 통했지만 보부상들에게는 씨알도 안먹힌 것이다. 여기서 버티다가는 진짜로 박춘식 훈장처럼 의금부로 끌려갈수도 있었다. 빼앗긴 재산과 땅을 찾겠다고 난리치다가 잘못하면 의금부에 끌려가서 곤장만 수십대맞고 쫓겨날 판이다.

“제, 제길... 크흐흐흑!”

결국 오삼택이 발길을 돌렸고 같이왔던 동료들은 당황하며 외쳤다.

“오진사 이게 어떻게 된거요?”

“당신만 믿고 여기까지 왔는데, 저놈들을 그냥 두고 보기만 할겁니까? 당신이 서원에 빼앗긴 땅과 재산을 찾을수 있다고 호언장담 하고서는 이게 뭔 꼴이요?”

“이대로 물러날수 없다. 내땅을 내놓아라. 이놈들아.”

오삼택을 비난한 동료들이 따지려고 덤벼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앞을막아선 보부상들이 우왁스럽게 밀쳐버렸다.

“감히 어딜 들어오려는 거요?”

“아직도 고집을 피우는군.”

“으억! 이놈들아!”

콰당-힘에밀린 양반들이 바닥에 쓰러졌고 흙바닥을 굴러갔다.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깨달은 것이다. 얼마후 강제로 쫓겨난 오삼택과 양반들이 통곡하며 땅을쳤다. 하지만 영강촌 주민들은 그들을 냉랭한 눈빛으로 볼 뿐이였다. 그들 스스로 초래한 자업자득 이였고 이제는 조롱의 대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 * *

“전하! 조금전 들어온 장계에 따르면, 영길리국에서 출발한 증기선들이 이틀뒤 개성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정말인가요?”

박규수의 보고를 받으며 반사적으로 주먹을 쥐었다.

손꼽아 기다리던 증기선이 조선에도 도입되는 것이다.

다만 조선이 증기선에 들어가는 증기보일러나 기관을 자체적으로 만들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현재 조선의 산업과 공업기술을 볼때 불가능에 가까웠다.

때문에 다른 수단을 선택했고, 그것이 영국내에서 뛰어난 증기기관의 기술자와 인재들을 영입하는 방식이였다.

“이번에 영길리국에서 활동하는 정대상과 조선인들이 큰 일을 해냈군요.”

“맞습니다. 조선에온 램버트와 영국인 방직공들부터 시작해 이번에 도착하는 증기선들까지. 그들이 영길리국에서 이룩한 성과는 큰상을 내려도 충분할 정도입니다.”

박규수도 동의하며 미소를 지었다.

정대상이 영국에서 스크류형의 증기기관을 개발중인 월터와 기술자들을 찾아낸 소식은 들었다. 그리고 정대상은 나의 지시에따라 아일랜드인 월터에게 상당한 자금을 지원해주며, 스크류형의 증기기관을 완성할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다.

얼마후면 그 성과를 확인할수 있었다. 동시에 이번사건은 조선수군의 역사에서 거대한 전환점이 될것이다.

“이럴게 아니라 이번에는 과인이 직접 개성으로 가서 영길리국의 증기선들을 확인해보고 싶군요.”

“전하께서 직접 행차하지 않으셔도 소신과 병조의 관원들이 개성에서 그들을 맞이하고 업무를 처리할수도 있습니다.”

“병판의 생각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중요한만큼 직접 가는것이 필요합니다. 물론 병판과 이판대감도 동행하는게 좋을거 같습니다. 영길리국의 증기선이 어떤 것인지를 탑승해보고 느껴보는것이 중요하니까 말이지요.”

처음에는 당황했던 박규수가 설명을듣자 이해하는 표정이다.

이번에 조선으로 들어오는 증기선들은 월터와 기술자들이 개발해낸 스크류형의 증기기관을 장착한 선박이다.

이것은 선체양쪽에 차륜이달린 증기선이 아니라 더 발전된 형태다. 따라서 그것을 직접 확인하는게 나에게는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야 조선수군의 함선들을 개량하고 발전시키는 계획을 세울수 있으니까 말이다. 얼마후 나의 지시를받은 박규수가 개성으로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조선에 도착하는 신형 증기선들

파도를 헤치며 12척의 선박들이 나아갔다.

갑판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보일러실 밖으로 흘러나온다.

화르륵! 치익! 텅텅텅! 열기를 내뿜는 화로속으로 석탄을 넣을때마다 증기기관의 피스톤들이 상하로 왕복하며 굉음을 내었다.

“선박과 장비들의 상태는 어떤가?”

“지금까지는 무난한 편입니다.”

“그나마 다행이군. 얼마후면 조선에 도착인데 그때까지는 충분하겠군.”

월터가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탑승한 랜스터호를 포함해 12척의 클리퍼 범선들은 몇달전 영국의 남쪽에있는 항구도시 사우햄스턴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이 선박들은 지구의 반대편에있는 조선을 목표로 항해를 시작했다.

영국을 출발해 남진했고 북아프리카를 거친뒤에 검은대륙이라 불리는 아프리카의 최남단인 희망봉을 통과했다.

그후에는 북상해서 중동의 아라비아 해협과 인도양을 거쳐 중국의 광저우까지 도착하는 긴 여정을 하였던 것이다. 항해의 중간마다 기착지에 들르거나 연료인 석탄을 공급받기위해 정박하는 경우도 있었다.

“월터 사장님! 몇달동안의 항해를 했는데도 새로 개발한 증기기관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했고 큰 문제도 없었습니다. 이거야말로 대성공 입니다.”

파울러가 흥분하며 말했다.

그는 월터가 사장으로있는 더블린 메카닉(Dublin Machanic)-의 상급 기술자들중에 한명이다.

얼마전까지 월터는 런던의 북쪽에있는 마을과 창고에서 겨우 생활했다. 창고에 <월터 공작소>-라는 개발팀을두고 새로운 스크류형 증기기관의 개발을위해 고군분투 했지만 변변한 투자자도 구하지 못한채 절망에 빠져있었다.

그러다가 조선에서온 정대상을 만났고 막대한 지원을 받으며 꿈에그리던 스크류형 증기기관을 완성해낸 것이다.

이후에 월터는 초기에있던 <월터 공작소>-라는 이름 대신에 신생회사를 설립했다.

이것은 정대상에게 지원받은 자금력을 바탕으로 하였고, 새롭게 새워진 회사는 더블린 메카닉(Dublin Machanic)-이였다. 더블린은 아일랜드의 수도였고 월터와 부사장인 아이리쉬-출신이다.

그리고 상급 기술자인 파울러를 포함해 직원들 상당수가 아일랜드 태생이기에 더블린 메카닉이란 회사명은 적절한 선택이였던 것이다.

“조선에 도착하면 지금까지의 상황, 그리고 새롭게 개발한 스크류형 증기기관에대한 항해 테스트와 여러가지 자료들을 보내야겠군.”

“좋은 생각인거 같습니다. 그러면 영국에있는 베론 부사장도 현재 제작중인 증기기관에대해 이 자료들을 충분히 사용할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 친구가 잘해줄 것으로 믿고있네.”

월터가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베론은 월터의 동업자이자 친구였다. 그리고 월터가 새로운 선박용 증기기관에대한 연구와 개발을 시작할 때부터 함께했다. 그뒤에 베론은 신생회사인 더블린 메카닉의 부사장으로서 영국에서 월터를 지원했다.

아직도 새로 개발된 스크류형 증기기관의 부품생산이나 조립, 그리고 제작등은 까다롭기 때문에 기계공업이 발달한 영국에서만 가능했다.

다만 월터는 이번에 도착하는 조선에서도 기계공작과 제작에 필요한 기술이 축적되고 여건이 된다면, 조선에도 본격적으로 부품생산을위한 공장을 만들 계획이 있었다.

얼마후 그들의 옆으로 중년사내가 다가왔다.

구리빛으로 그을린 피부에 턱수염을 기른 모습이 전형적인 뱃사람이다.

“어서 오십시요. 맥카시 선장님. 덕분에 우리들이 무사히 항해를 마치며 목적지에 도착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닙니다. 월터씨! 선장인 저로서는 클리퍼 범선들이 모두 폐선처리 될 운명이라고 생각했는데 월터씨와 더블린 메카닉의 직원들 덕분에 구형 선박들이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믿기지 않습니다. 사우햄스턴 항구에서 퇴물 취급받던 배들이 이렇게 바뀔줄이야.”

선장인 맥카시의 표정에는 미소가 어렸다.

그는 영국의 선박들이 차륜형 증기선으로 교체되기전, 범선시대에 전세계의 바다를 누비던 인물이였다.

그러나 맥카시가 선장으로 지휘했던 영국과 유럽의 클리퍼 범선들은 증기선들의 도입후에는 급격히 쇠퇴했던 것이다.

그럴것이 클리퍼 범선들은 오로지 바람의 힘만으로 항해가 가능했다.

그러나 선체양쪽에 대형수차를 장착한 증기선들은 달랐다.

배에 적재된 석탄을 증기보일러에 넣으며 자력으로 항해가 가능한 선박들이기 때문이다. 그에따라 맥카시같은 선장들은 클리퍼 범선들의 퇴역과함께 사우햄스턴의 항구에서 시간만 보내던 상태였다. 그러던중 사우햄스턴에 월터와 정대상이 찾아온 것이다.

“조선왕은 정말로 야심찬 인물이군요. 클리퍼 범선들이 구형이고 중고품이긴 합니다. 그러나 12척의 선박들을 한꺼번에 구입한뒤에 새로운 증기기관을 장착하고 개조하는 엄청난 작업에 돈을대다니 말이지요.”

선장의 말대로 퇴물로 사라질 뻔했던 12척의 클리퍼 범선들을 살려내고 개조를 시작한것은 조선왕인 철종의 덕분이였다.

더 놀라운건 사우햄스턴에는 개조를마친 12척의 클리퍼선들 외에 아직도 수십척의 클리퍼 범선들이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이런 클리퍼 범선들을 개조하고 신형의 스크류형 증기기관을 설치하는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갔다. 때문에 월터의 더블린 메카닉도 정대상이 지원해준 자금이 없었다면 시도할 엄두조차 낼수없었다.

“이번에 큰 성과를 거두면 사우햄스턴에있는 다른 클리퍼 범선들에대한 개조작업도 많아질 것입니다. 그외에 여건이되면 신형 증기선의 건조에도 참가할 예정이기에, 맥카시 선장님의 도움이 더 필요할거 같군요.”

“월터씨같은 분과 같이 일하게되어 기쁩니다. 언제든지 불러 주십시요.”

맥카시 선장이 호탕하게 웃었다.

얼마후 선원중에 한명이 다가왔고 전방을 가리켰다. 드디어 목적지인 조선에 가까워지는 중이였다.

* * *

“개성지역의 부두와 선착장들에대한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는걸보니 기쁘군요.”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공조판서인 김석민이 대답했다.

얼마전 병조판서인 박규수를통해 증기선으로 개조된 12척의 클리퍼 범선들이 도착한다는 소식을 들은뒤에 직접 와보기로 한것이다.

조선의 국왕이라해도 대부분의 시간은 창덕궁에서 지낸다.

나의 경우에는 밀덕(밀리터리 덕후)이기도 했기에, 시간이 날때에는 군기시를 방문했다. 그리고 군기시에서 진행되는 무기개발이나 여러가지 업무들을 확인하는것도 중요했다.

다만 군기시는 한양의 외곽에 있다보니 방문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에반해 어젯밤에 도착한 개성은 한양에서도 좀 멀었고 여기까지 오는데만도 하루가 걸렸다.

조선의 임금이 지방으로 행차를 할때는 수백명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대규모 행열이 되는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국을 순회하는 목적도 아니였다.

때문에 호위청의 무관들 수십명, 그리고 중요한 대신들 몇명과 함께온 것이다.

“앞으로 개성에는 더 많은 외국의 배들이 들어올 것입니다. 이제부터 조선은 외부와 단절된 국가가 아니라, 전세계의 수많은 나라들과 교역하며 부강해지는것이 목표입니다.”

“전하의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김석민은 나의 지시에따라 개성지역의 항만시설들을 보수하고 확장했다. 그중에서도 선착장 및 부두와 접안시설을 넓히는데 큰 역활을 하였다. 개성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무역항이긴 했지만 항구로서의 시설은 열악했다.

그럴것이 조선은 건국때부터 국시가 농본이였고, 상업과 무역에 큰 관심이 없었다. 여기에는 조선이 건국때부터 상국으로 생각하던 명나라가 해금령(海禁令)을통해, 바다를 닫아버린 부분도 있기는 했다.

그럼에도 조선은 이후에 상업과 무역을 발달시킬 기회가 왔을때에도 여전히 소극적이거나 관심이 없었던것도 사실이다.

단순히 건국이념이 농본이란건 변명거리가 되지못했다.

그럴것이 고려때에도 농업은 국가의 핵심중에 하나였지만, 고려는 상업과 무역을 적극적으로 키웠고 고려란 이름 자체를 유럽에까지 알렸던 것이다. 한편 고려때에는 상당한 규모를 지녔던 개성의 항만시설들이 조선때에 와서는 다 부서지고 일부만 남아 있었다.

이래서야 외국과의 무역을 한다해도 화물과 교역량은 초라할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개성에서 활동하던 선죽상회의 부행수인 김도영을통해 개성에있는 항만시설에대한 자세한 보고서와 자료를 올리게 하였다.

예상한대로 보고서의 내용은 절망적인 상황.

그리고 김도영이 올린 장계에서는 기껏해야 중형크기의 선박 1-2척 정도가 들어올 수준이라는 것이 전부였다.

이것을 알게되자 한숨이 나오는건 어쩔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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