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1화 (131/169)

꿈에서도 잊지못할 이름이다.

뇌리속으로 탐욕스런 밴더빌트의 비웃음이 스쳐갔다.

철종은 이런 잭슨의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미국의 철도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밴더빌트-의 이름을 모를리는 없으니까 말이다.

역사에서 미국의 철도왕이라는 명성을얻은 인물.

하지만 그가 철도왕의 자리와 이름을 얻는동안 수많은 중소 철도회사들이 박살나고 사냥감이 되었다. 이런 역사적 사정을 알고있던 철종이기에 잠시 그 이름을 말해본 것이다.

예상대로 잭슨의 반응은 격렬했고 철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하께서는 어떻게 밴더빌트-라는 이름을 알고 계십니까?”

“과인이 조선에 있지만 전세계 곳곳에서 과인의 눈과 귀가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군요.”

잭슨이 대답했고 그의 머리속은 복잡하게 변해갔다.

처음에는 이제 갓 20살 초반의 상대라고 생각했는데 미국 철도산업의 정황을 제대로 꿰뚫어보고 있으니 말이다.

“보아하니 잭슨씨도 밴더빌트의 야욕때문에 고생을 하시는 듯하군요.”

“정말로 그 이름을 들을때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입니다.”

잭슨이 주먹을쥐며 부들거렸다.

이제는 철종을향해 밴더빌트가 자신과 트랜스레일을향해 어떤 짓을 해왔는지도 설명했다. 이것을통해 철종은 잭슨과 그의 회사 트랜스레일(Trans Rail)에대해 충분히 파악할수 있었다.

잭슨은 밴더빌트-같은 속이 시커먼 사업가와는 달랐다.

철도에대한 꿈이있었고 기술자로 출발해 자신의 회사를 세운 인물이였다. 그리고 잭슨은 자신이 개발한 신형 증기기관차에대해 설명하면서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예상대로 밴더빌트에게 먹히기 직전의 여러 중소 철도회사들중에 하나로군. 하지만 철도부설의 능력과 증기 기관차에대한 기술만큼은 탁월하군.’

철종이 내린 평가였다.

현재 미국에서는 밴더빌트가 큰 회사를 갖고있으니 그와 접촉하면 편한 부분도 있었다.

다만 그것은 철종이 원하는것이 아니였다.

조선의 철도산업에서 필요한것은 몸집이 커진 회사보다는 기술이 좋은 회사가 더 중요했다. 눈앞에있는 잭슨은 그것에 걸맞는 인물이다. 이윽고 철종은 중요한 부분중에 하나를 꺼내었다.

“듣기로 미국이나 영국의 철도회사들은 외국에서 철도공사를 할때, 선로의 넓이를 협궤(狹軌)로하는 경우도 있다던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질문을받은 잭슨과 타일러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이런 정보들은 미국내의 철도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인 경우에만 알수있는 것들이다.

“전하께서는 놀랄정도로 이쪽 분야에대해 지식이 많으시군요. 저와 타일러가 밴더빌트와 그의 회사인 메트로 라인(Metro Line)을 싫어하는 이유중에 하나가 바로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하는 그 악독함에 있습니다.”

잭슨이 거친 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제국주의 시기의 철도산업은 철저하게 영국이나 미국같은 철도 선진국들의 입맛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철도공사에 들어가는 선로의 넓이를 자기들 멋대로 선정하고 공사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증기기관차가 달리기위해 지상에 선로를 까는것은 기본이고, 더 중요한 것은 선로의 폭을 사전에 결정하는 것이다.

선로의 폭이란것은 철도에서 레일과 레일사이의 넓이다.

이 넓이는 크게 3가지로 구분되고 표준궤, 협궤, 광궤등으로 나누어진다.

표준궤는 레일사이의 폭이 1,435mm-의 넓이인데 증기기관차와 철도산업을 처음으로 시작한 영국에서 규격을통해 정한것이다. 한편 이런 표준궤는 영국은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일반적인 선로의 폭이다.

이런 표준궤보다 더 좁은것이 협궤, 그리고 표준궤보다 더 넓은것을 광궤라고 부르기도 한다.

문제는 영국이나 미국의 철도회사들이 자국에서는 표준궤를통한 철도를 건설하지만 외국에서는 선로가 더 좁은 협궤를 건설하는게 일반적이란 사실이다.

“그러니까 밴더빌트의 경우에는 공사기간을 단축시키며, 실제로 들어가는 공사비도 줄이면서 더많은 이득을 취하기위해 외국에서는 협궤로 진행한다는 뜻이군요.”

“그렇습니다. 밴더빌트가 운영하는 메트로 라인(Metro Line)이 중앙 아메리카, 그리고 남아메리카에서 건설중인 철도들은 대부분 협궤를 사용하는 중입니다.”

잭슨이 대답했다.

만약에 그가 조선과 철종을 속이려 했다면 다른 변명거리를 만들어 낼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밴더빌트-같은 탐욕가보다 철도를 만든다는 자체에 꿈을가진 사람이였다. 이런 잭슨의 솔직한 답변과 설명에 철종은 꽤 만족했다. 충분히 신뢰할수 있었고, 그를통해 조선의 철도산업을 발전시킬 기회가 온것이다.

“잭슨씨의 설명을통해 조선에 필요한것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알겠군요. 그에따라 조선에서 건설되는 모든 철도의 선로는 표준궤로 통일해 주십시요.”

“전하의 요구사항에 맞추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잭슨이 힘차게 대답했다.

철도공사를 초기부터 잘못하면 이후에도 수십년동안, 어쩌면 백년이상 문제가 생긴다. 그것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게 일본의 철도실태와 상황이였다.

역사를통해 일본의 근대화 시기에 철도공사를 담당한 것은 영국의 철도회사들이다.

그리고 영국의 철도회사들은 자기들만의 규칙을 정해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영국내에서는 표준궤, 그리고 외국에서는 협궤로 공사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선로폭이 표준궤보다 훨씬 좁은 1.067mm-에 불과한 협궤는 공사비도 적게 들어가지만, 그당시 일본에 들어간 영국의 철도회사들은 공사비도 표준궤와 똑같이 챙겼고, 심지어는 더 많이 뜯어내었다.

일본정부로서는 철도공사에서 제대로 눈탱이 쳐맞은 상황이였지만 그당시는 몰랐다.

다만 문제는 그후에 터져나왔다.

이윽고 일본내 철도들은 대부분이 선로의 폭이좁은 협궤로 구성되었고, 이것은 철도관련 전문가들에게 계속해 비웃음을 당하던 부분이였다. 그리고 21세기에도 일본의 철도들은 협궤때문에 제대로 기능을 못했고 관련된 문제점들은 계속해서 터져나왔던 것이다. 이처럼 철도사업은 첫단추를 잘못 꿰면, 그것으로 엄청난 손해를 볼수도 있었다.

“이제부터 잭슨씨의 트랜스레일(Trans Rail)-과 협력해서 철도사업을 진행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이 정말이십니까?”

잭슨의 목소리가 흥분되었다.

드디어 머나먼 타국 그것도 아시아에서 자신과 트렌스레일을 알아주는 인물이 나온것이다.

하지만 조금전 조선왕이 말한 철도사업은 너무나도 거대했다.

단순히 계획만 크다고 되는게 아니다. 그리고 철도를 놓기위해서는 막대한 자금과 인력 그리고 물자도 필요해진다.

과연 조선이 그럴만한 능력이 있을까?

이런 의구심이 들때 문이열리며 송내관이 몇명과함께 들어왔다. 그들은 여러개의 묵직한 상자들을 운반해왔고 뒤따라 들어온 궁녀들이 다과상과 음식들을 준비했다.

“전하, 이것은 무엇입니까?”

“지금 미국에서는 달러를 쓰고 있지요?”

“그렇습니다.”

“조선에서는 미국의 화폐인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건 아닙니다. 대신 철도부설에 필요한 자금과 공사대금 그리고 기타 부분에대해 달러만큼 금으로 결제할 용의는 있습니다.”

철종이 신호를 보내자 내관들이 상자를 열었다.

내부에 가득한 금괴들을본 잭슨과 타일러의 눈빛이 흔들렸다.

엄청난 양의 황금이다. 철도부설에 필요한 자금은 여기에 가져온 황금들보다 더 막대하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충분한건 아니다.

하지만 조선왕이 이걸 보여준건 특별한 의미다.

조선이 철도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충분히 갖고있다는 증거였고,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라는 사실이였다.

얼마후 잭슨은 결심을 굳혔다. 드디어 일생일대의 기회가 온것이고 절대로 놓칠수 없었다.

* * *

“이번일은 군기시는 물론이고, 조선의 국방을 위해서도 중요한 것이네.”

“각오는 충분히 되어 있습니다.”

선두에있던 김승엽이 대답했다.

그는 군기시의 수석장인 한기준에게 기술을 배우면서 실력을 쌓아왔다.

얼마전에 한기준이 진행한 고품질의 화약을 제작하는 부분에도 참가했었다. 다만 취토군이 가져온 염토들을 수차례 정제하며, 영국이 보유한 고품질의 화약을 만들려고 시도했지만 반만 성공했던 것이다.

운좋게 비슷한 품질의 화약은 생산했지만 그 양이 너무나도 부족했고 실전에 쓰기에도 부적합한 상태였다.

이후에 한기준과 군기시 총관 윤민수는 이것에대해 철종에게 보고했다. 철종도 문제점을 충분히 인식했고 얼마후 대담한 계획을 세운것이다.

- 조선에 초석광산이 없다면 해외에서 개발하고 가져오면 되는 것이다.

물론 그 계획이 쉬운건 아니다.

다만 철종에게는 결정적으로 유리한 부분이 있었다.

인도는 핵심적인 초석광산의 매장지였고 지리적인 환경이나 여건때문에 미개발된 초석광산들이 많다는 사실이였다.

그리고 철종은 이전에 보았던 외신기사를통해 그 위치를 알았고, 행동을 개시할때가 온것이다.

“군기시에서 화약개발을 감독하던 입장에서 나도 자네들과 같이 갔으면 좋겠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말일세.”

“아닙니다. 수석장인께서는 군기시에서 해야할 일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전하께서 지시하신 새로운 무기들을 개발하고, 또한 장인들을 이끌어 주셔야 합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한기준에게 지시를받는 10명의 장인들-

이들은 군기시에서 일하며 화약개발에 상당한 기술과 경험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염초를 포함해 초석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뛰어났다. 철종의 지시를받은 한기준은 이들 10명을 우선적으로 선발했고 인도로 향하는 탐사대에 참가시켰던 것이다.

얼마후 한기준이 조장인 김승엽을 시작으로 나머지 인원들을 격려했다.

* * *

“그것이 정말입니까? 조선왕의 계획은 정말로 대담하군요.”

“쉬운건 아닙니다. 그러나 이번 탐사를통해 초석광산의 존재가 확인되고, 그후에 본격적인 개발을 한다면 제이든씨와 이스트 프론티어(East Frontier)-에도 막대한 이득이 생길 것입니다.”

“확실히 그 부분은 동의합니다.”

제이든이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선과의 사업거래를통해 막대한 이익을 거두는 중이다. 제이든의 이스트 프론티어가 여기까지 성장한 것에는 조선을통한 사업확장이 핵심적인 부분이였으니 말이다.

이번에 선죽상회의 김도영이 철종을 대신해 가져온 제안이 처음에는 파격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엄청난 기회이기도 하였다.

“알다시피 인도에있는 초석광산들은 대부분 영국령 동인도 회사, 그리고 영국정부와 관련된 세력들이 선점하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하께서도 알고 계십니다. 때문에 이번에 우리쪽에서 새로운 초석광산을 탐사하고 개발할려는 지역은 여기입니다.”

김도영이 지도를 가져와 표시했다.

그것을 확인한 마이클이 기대섞인 음성으로 말했다.

“사장님! 확실히 저곳은 현재 인도의 초석광산들이 모여있는 지역들과는 상당히 떨어진 곳입니다.”

그뒤에 마이클이 지도에서 몇군데를 표시했다.

인도에서 영국이 개발중인 초석광산들은 대부분 과거에 발견된 지역을 바탕으로 채굴하는 상황이였다. 따라서 제이든이 발빠르게 움직여 새로운 초석광산을 개발하고 선점한다면 그것 자체로 엄청난 기회가 될것이다.

“전하께서는 이번에 진행할 탐사와 광산개발에는 이스트 프론티어-와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군요.”

김도영의 말에 제이든이 말했다.

철종은 인도에 뭍혀있는 초대형 초석광산의 위치를 알았지만 인도를 지배하고 강력한 세력을 가진것은 영국이였다.

때문에 조선이 단독으로 인도에 들어가는건 문제가 있다는걸 깨달았다. 그럴것이 영국은 인도에서의 이권에 민감하고 잘못해서 조선이 영국과 충돌하거나 문제가 생기면 곤란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조선과 협력관계에있는 제이든과 이스트 프론티어가 들어가는 것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기본적으로 제이든과 그가 속해있는 시필드 가문은 런던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상태였고 돌발상황이 벌어져도 대응이 가능했다.

‘역시 조선왕의 계책은 탁월하군. 이런 부분까지 염두에두고 있다니.’

국제관계를 포함해 영국과 인도의 상황에대해 충분한 지식과 정보가 있어야 가능한 계획이였다.

제이든의 입장에서도 이것은 상당한 기회였다.

홍콩에대한 사업영역 확대를위해 그곳에 지부를 설치한 상태였다. 따라서 인도쪽에도 이번 기회를통해 기반을 만들어 두는것도 필요한 것이다.

“좋습니다. 이번의 탐사와 광산개발이 성공하면 이스트 프론티어와 조선에게 중요한 기회가 될거같군요.”

“감사합니다. 제이든씨.”

제이든의 대답을듣자 김도영이 미소를 지었다.

재산과 땅을 뺏긴 양반들의 발악, 그러나...

꼬끼오~ 수탉이 울어대며 새벽의 적막함을 깨뜨렸다.

그러자 영강촌(影剛村)의 주민들은 하나둘씩 잠에서 깨었고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나주평야의 남쪽에있는 영강촌 주민들은 대부분 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자신의 땅을 갖고있던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조선이 건국때부터 농본지천하(農本之天下), 또는 농민이 국가의 근원이다... 면서 떠들었지만 그것은 말뿐인 허상에 불과했다.

그럴것이 조선에서 땅을가진 사람은 양반 사대부들이다.

그리고 농민들은 기껏해야 양반 지주들에게 수탈당하는 소작농의 신세가 전부였으니까 말이다.

조선초기에는 그나마 자신의 땅을가진 농민들이 좀 있었지만 조선후기로 들어오면 자영농의 비율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대신에 농민들은 대규모의 토지를 보유한 양반 지주들에게 엄청난 소작료를 납부하며 입에 풀칠이나하며 살아가던 소작농들이 대부분이였다.

영강촌의 주민들도 대다수가 소작농 신세였다.

그들이 피땀흘려 일해도 수확한 곡식과 식량은 양반지주들에게 막대한 소작료로 뜯기는게 전부였다. 그렇다보니 영강촌 주민들은 열심히 토지를 일구고 농지에가서 일하겠다는 의욕도 별로 없었다.

어차피 열심히 해봐야 양반지주들이 모두 뜯어갈 테니까.

이것은 영강촌만이 아니라 곡창지대인 나주평야와 호남평야를 포함해 삼남지방, 그리고 조선팔도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상황이였다.

이처럼 미래에대한 기대조차 없던 비참한 신세가 일상이였는데, 최근들어 영강촌 주민들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생겼고 열심히 일할수있는 원동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종봉이. 자네도 일찍 일어났구먼.”

“어제 밭에서 김을매다가 끝내지 못한데가 있었지. 그리고 오늘은 거기부터 시작해야 하니까.”

최종봉이 이웃인 유병진을향해 말했다.

잠시후 방에서는 아들인 최상덕이 나오더니 유병진을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허어. 이녀석. 인사성도 밝구나.”

유병진이 흐믓한 표정으로 최상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얼마후 문앞에는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 몇명이 오더니 외쳤다.

“상덕아! 어서 가자. 안그러면 서당에 늦어.”

“걱정마. 지금 갈거니까.”

아들이 두명에게 인사하더니 또래 아이들과함께 달려갔다.

“요즘들어 세상이 바뀐것같고 살맛이 나는거 같다니까.”

“동감일세. 모든것이 새로운 임금님의 은덕인거 같네. 그런데, 자네 아들은 이제부터 서원에 다니는 것인가?”

“그렇네. 얼마전 서당의 훈장께서 말하시기를 이제는 정음(한글)도 떼었으니 서원에서 공부하기에 충분하다고 하셨네.”

“정말로 잘 되었군. 서원에서는 셈법부터 시작해 다양한 기술과 학문도 가르친다고 하니까. 앞으로 자네 아들은 커서 훌륭한 관료나 학자가 될수도 있을걸세.”

“이런. 벌써부터 나한테 김칫국을 마시게 할 셈인가, 어쨌든 애비인 나는 일자무식이라 정음(한글)도 잘 모르지만, 내 아들들은 서원에서 공부해 애비보다 똑똑한 사람이 될수 있으니 이거야말로 행운이지 않는가?”

“맞아. 이전에는 서원이라면 양반들이나 유생들이 모여서 술판을 벌이거나 상민들을 상대로 강제로 노역이나 시키던 곳이였는데 말이야. 그런데 이제는 서원에서 우리같은 상민들과 자식들을위해 가르침을 주는곳으로 변했으니 세상에 이런 경사가 어디에 있겠는가?”

“물론일세. 서원에계신 교장님도 훌륭하시고. 무엇보다 서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분들도 뛰어난 교육자 분들이지.”

두명이 흥겹게 대화를 나누며 걸어갔다.

그리고 길을가다 영강촌에있는 다른 주민들도 만났고 서로간에 인사를 하였다. 양강촌의 농민들 수십명이 향하는 곳은 미천서원(眉泉書院)이였다.

그들은 지금도 소작농 신분이였지만, 과거와 다르게 소작료를 바치는 대상이 변한것이다. 이제는 미천서원이 보유한 토지와 농지에서 열심히 일하는 중이다. 동시에 일정한 소작료를 낸뒤에 나머지의 수확물로 가족들의 생계를 얼마든지 꾸려갈수 있었다.

얼마후 주민들이 활기찬 표정으로 미천서원에 도착할 즈음 그들의 앞길을 막아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갓을쓰고 도포자락과함께 거드름을 피우는 양반들이다.

숫자는 5-6명이며 선두에는 주변지역에서 오진사라고 불리는 오삼택이 있었다. 그의 두눈이 분노로 충혈되었고 주민들을향해 소리쳤다.

“고얀놈들! 비천한 상것들이 우리들의 허락도없이 서원을위해 농사일을 한다고? 네놈들이 일하는 농지와 토지가 누구 것인지 알고 있느냐?”

“.....”

오삼택의 외침에 영강촌 주민들이 멈추었다.

과거였으면 대지주인 오삼택에게 영강촌 농민들 모두가 엎드려 빌었을 것이다. 그럴것이 이전에 영강촌 주민들 대다수는 오삼택이 소유한 땅에서 일하던 소작농들의 신세였다.

그리고 오삼택 뒤에있는 양반지주들도 주민들을 소작농으로 부리던 땅부자들이였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고 몇명은 저런 양반들의 모습에 냉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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