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7화 (127/169)

“영길리국은 어떻게해서 그 정도로 고순도의 염초들을 사용하게 되었는지 신기할 뿐입니다.”

한기준이 풀죽은 표정으로 말했다.

취토군에게 받은 염토들을 수십번 정제하고 엄청난 시간을들여 만들어낸 고순도의 염초들을 사용해서야 겨우 영국의 화약과 비슷한 성능이 나왔으니 말이다.

따라서 한기준이 저렇게 기세꺽인 모습이 나온건 당연하겠다.

애초에 염토를 정제하고 불순물을 제거하는 기술은 조선이 영국보다 앞서있을 정도다. 동시에 영국은 조선처럼 뭐빠지게 취토군을통해 염토를 채집하며 개고생할 필요가 없었으니 말이다.

“과인이들은 내용중 하나인데, 영길리국의 화약제조 장인들은 조선처럼 취토군을 이용해 염토를 채집하는 과정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정말입니까?”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입니다. 동시에 영길리국은 전세계, 특히 인도에 초석광산을 개발했고 그곳에서 고순도의 염초들을 대량으로 캐내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경이 말한대로 조선의 화약과 영길리국의 화약들의 사이에 현격한 성능의 차이가 나왔던 이유일거 같습니다.”

나의 설명을듣자 한기준의 절망감은 더 커지고 있었다.

조선과 영국은 출발점부터가 달랐던 것이다.

인도를 식민지로 만들고 그곳의 대규모 초석광산을 개발해 마음껏 고품질의 화약을 생산하는 상황.

그에반해 조선은 취토군을 동원해서 뭐빠지게 염토를 긁어모으고 그것을 정제하고 불순을 제거한다고 뭐빠지게 했으니 내가 한기준의 입장이였어도 엄청난 격차에 욕이 튀어나왔을 거다.

“자자~ 너무 침울해하지 마시요. 조선내에 초석광산이 없다해도 경들과 군기시에서 영길리국의 화약과 맞먹는 성능의 화약을 자체적으로 만들어 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경축할 일이요.”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두명이 술잔을 들이키며 고개를 숙였다.

어쩌다보니 풀죽어있는 신하들을 독려하고 기분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는듯한 느낌이네.

초석광산이 없어서 취토군까지 풀어서 염토를 헤집고 긁어모으는 조선의 상황이라니.

씁쓸한 기분이 들면서 술이 목구멍으로 넘어갈려던 찰나 뭔가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가만 초석광산이 없다고 포기해? 그럼 찾아내고 개발하고, 가지면 되는거 아냐?’

물론 인도에있는 초석광산들 상당수를 이미 영국이 통제하고, 침까지 발라놓은 상태다.

하지만 인도내의 모든 초석광산들이 그런건 아니다.

탁! 술잔을 비운뒤에 탁자위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두명의 당황하며 내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전하 무슨 일이십니까?”

“어쩌면 조선도 영길리국처럼 대량의 초석들을 얻을 방법이 생길것도 같습니다.”

“그것이 사실이옵니까?”

“만약에 그런 상황이 온다면 조선의 화약 생산량은 단숨에 올라갈 것입니다.”

윤민수와 한기준이 기대감을 표시했다.

처음에는 취토군까지 동원해 염토를 얻어야하는 조선의 상황에 갑갑했지만 더이상 그럴 필요는 없었다.

‘그러고보니 21세기때, 인도에서 대량의 초석광산이 새로 발견되었다는 외신기사를 본적이 있으니까.’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지금이야 전세계가 흑색화약을 사용하기 때문에 초석광산과 염초들은 화약을 만드는데있어 필수적인 전략물자와 같은 상황이다. 하지만 20세기들어 무연화약의 시대로 들어가면, 더이상 초석광산에만 의지할 필요가 없어졌고 초석광산의 가치도 단번에 내려간 것이다.

그러던중 21세기때 인도에서 대량의 초석광산이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나오기는 했지만 그것이 큰 의미를 가지는건 아니였다. 오히려 인도인들은 차라리 초석광산 대신 유전이 나왔으면... 이라는 자조적인 반응도 있었다.

어쨌든 새로 발견된 초석광산의 위치가 상당히 특이했기 때문에 지금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럴것이 인도에서 과거부터 개발되던 초석광산들이나 지역과는 꽤 떨어진 곳이였으니 말이다.

‘확실히 그곳이라면 영국놈들과 직접적인 충돌없이 초석광산을 개발하고 조선의 화약생산량을 증가시키는게 가능하겠다. 물론 쉬운건 아니지만 이대로 두손놓고 있으면, 조선이 필요한 만큼의 화약을 대량으로 확보하기도 힘들테니까.’

머리속에서 어느정도 정리가 되었다.

얼마후 두사람에게 설명을 해주었고 한기준과 윤민수의 표정이 기대감으로 밝아졌다.

나로서도 이 문제를 미리 발견한것이 다행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는 조선군이 사용할 화약조차 없어서 처참한 상황이 될수도 있었다.

* * *

“역시 화양서원(華陽書院)의 기둥이자, 호암 송시열 선생님의 정신을 계승할 사람은 훈장님밖에 없습니다.”

“허허. 너무 과찮일세. 나로서는 성리학과 주학의 가르침에따라 행동했을 뿐이지. 그리고 감히 주학의 근본인 화양서원에서 천것들이나 쓰는 언문-을 가르치고, 상것들이나 하는 잡기를 수련하게 하다니! 천하에 몹쓸 놈들에게 내가 굽힐거 같은가?”

최인규가 당당하게 소리쳤다.

그는 화양서원의 원장으로 얼마전 중앙의 공문을들고 찾아왔던 교육청 관원들을 강제로 내쫓았다. 그의 명령에따라 유생들이 졸개처럼 움직였고 최인규는 그것을보며 우쭐거렸던 것이다.

그리고 학문을 갈고 닦아야할 서원에서 지금은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돈 많은 양반과 사대부들이 화양서원에 기부하거나 재산은닉을위해 가져온 땅과 재물들의 양만도 엄청날 정도였다. 때문에 최인규는 화양서원을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웬만한 부자들을 능가하는 갑부였다. 그리고 자신의 명령이라면 죽는 시늉도하는 유생들에게 술잔치를 벌이며 취해있었던 것이다.

“원장님! 다음에는 술자리에 기생들을 부르는것도 어떻습니까?”

“그거 좋은 생각이군. 하긴 선비라면 풍류를 즐겨야하고, 계집들이 있어야 선비의 풍류는 더욱 높아지니까.”

술에취한 최인규가 히죽거렸다.

송시열을 기린다는 화양서원에서 매일마다 술판이 벌어지고 부패와 탐욕이 난무하는 곳이란건 주변 사람들이 눈치채고 있었다. 그럼에도 화양서원이 갖고있는 막강한 권력때문에 누구도 나설수 없었다. 그러나 최인규를 포함해 화양서원에서 벌어지는 퇴폐와 향략은 오래가지 못했다.

쾅쾅쾅! 갑자기 서원의 정문을 두드리는 굉음이 터져나왔다.

그러자 만취된 유생들이 투덜거렸고 일부는 욕지거리까지 뱉었다.

“어떤 놈이 기분좋은 술자리를 망치는거야?”

“훈장님! 아랫것들을 보내 확인해보는게 어떻습니까?”

“제길. 할수없군.”

유생의 말에 최인규가 대답하며 하인을 보내었다.

얼마후 두명의 하인들이 정문으로 향했고 문을열며 소리쳤다.

“이곳은 양반과 사대부들이 성전으로 모시는 화양서원인데, 당신들은 누구요?”

“자네들은 내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겠나?”

“헉! 설마...”

문을 열었던 하인이 경악했다.

밖에는 수십명에 이르는 낯선 사내들이 있었다.

이런 그들의 정면에는 얼마전 화양서원의 훈장인 최인규에게 쫓겨났던 교육청의 관원 전기웅이 당당하게 서 있었다.

냉소하던 전기웅이 하인들을향해 소리쳤다.

“이놈들! 썩 물러나지 못할까?”

하인들이 주츰거렸고 전기웅이 후방에 대기중인 포졸과 사내들에게 명령했다.

“조정에서 내려온 공문을 바닥에 던지고 국가의 중대사를 거역한 화양서원을 철저히 조사해라!”

“공무을 방해하는 자는 체포하고 매로 다스려라!”

전기웅에게 지시받은 포졸들과 건장한 사내들이 순식간에 화양서원의 내부로 쳐들어가기 시작했다.

돈이냐? 목숨이냐?

“막아라!”

“화양서원을 지켜라!”

술취한 유생들이 소리쳤다.

일부는 중심조차 못잡았고 흐느적 거리며 달려갔다.

그러나 화양서원으로 쳐들어온 사내들의 숫자는 도합 60명이 넘었다.

그중에 40명은 군복을입고 무장을한 포졸들이다.

나머지 20명은 허름한 행상인들의 옷이지만 체격도 튼튼했다. 이들은 얼마전까지 지게를지고 전국팔도를 누비던 보부상들 이였다.

‘지금 조선내부와 전국팔도의 속사정을 잘아는건 보부상들이다. 이들을 규합해 조직을 만들고 조정과 국가를위해 활용하는건 필요한 일이다.’

이조판서가된 흥선군 이하응의 생각이였다.

흥선군의 판단은 충분히 적절했다.

조선에서 각 지방의 물류와 유통, 그리고 행상을 담당하는건 보부상들이지만 제각기 흩어져 있었다.

따라서 중구난방으로 갈라져있는 조직과 세력들을 관리하지 않으면 그것대로 문제가 생길수 있었다. 때문에 흥선군은 보부상 조직들을 통합하고 적절하게 이용하는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다.

동시에 보부상들은 서민들의 생활과함께 각지역들의 사정에도 밝았다. 그리고 행동력도 상당했기에 다양한 임무에 투입할수 있었다. 지금처럼 성리학 탈레반에찌든 유생들이 가득한 서원을 밀어버리는데 적격이였던 것이다.

‘보부상들로 구성된 행동대가 먼저 움직이도록 유도해라. 그러면 서원내에서 유생들이나 훈장들과의 마찰이 있을터, 그때가되면 동행한 포졸들을 투입하도록.’

교육청의 전기웅이 흥선군 이하응에게 지시받은 내용들을 떠올렸다. 이하응은 전기웅을 포함해 서원들로 쳐들어가는 관원들에게 세부적인 행동수칙과 작전내용을 지시한 것이다.

그에따라 먼저 돌입을 시작한건 행동대 역활의 보부상들이였다.

여기에대해 유생들은 천한것들이 서원내부로 들어온다고 소리쳤고, 일부는 주먹질을 하거나 따귀를 때리며 폭력을 행사했다.

“상것들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철썩! 유생들에게 뺨을 얻어맞은 보부상들.

본래라면 유생들의 솜주먹에는 타격이 없거나 기껏해야 기분이 나쁠정도다. 하지만 선두의 덩치좋은 보부상은 뺨을 맞는 순간 괴성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아이고 나죽네! 유생들이 선량한 백성들을 핍박하고 죽이려드네.”

“이놈들이. 어디서 엄살을 부려?”

바닥을 뒹구는 보부상들을 내려보며 유생들이 소리쳤다.

몇명은 변명하듯이 포졸들을향해 말했다.

“자네들도 보지 않았나? 저놈들이 엄살을 피우는걸...”

“어어...?”

유생들의 음성이 떨렸고 일부는 상황이 꼬였다는걸 실감했다. 순간 동행한 교육청 관원 전기웅이 포졸들에게 말했다.

“이제는 서원의 유생들이 선량한 백성들을향해 폭력까지 쓰는구나. 더이상은 안되겠다! 반항하는 자는 매로 다스려라.”

“잡아라!”

퍽! 퍼퍼퍽! 으아악! 크악! 보부상들을향해 주먹질하고 뺨을때렸던 유생들과 근처에있던 유생들까지 한꺼번에 박살나기 시작했다. 잠시후 두들겨맞고 피투성이가된 유생들을보며 조금전까지 넘어졌던 보부상들이 하나둘씩 일어났다. 그들이 유생들을 바라보며 씨익-웃었고 유생들이 이걸 알았을때는 늦어버린 것이다.

얼마후 화양서원에서 왕처럼 행세하던 훈장 최인규가 포승줄에묶여 끌려왔다.

“당신은 여기가 어떤 곳인줄 아는가?”

“물론이요. 이렇게 다시보니 반갑군요. 최훈장.”

“크윽!”

전기웅을 마주하자 최인규가 이를 악물었다.

송시열을 추모하는 화양서원의 훈장을향해 이런 취급을 하다니? 속에서 분노가 치밀었다.

자신의 명령이라면 지금이라도 달려와서 껌벅죽는 양반과 사대부들이 한가득이다. 하지만 최인규의 오만함은 그뒤에 완전히 꺽였다.

“시작해라.”

전기웅이 지시를 내리자 보부상들이 준비해온 현판을 가져왔다.

거기에 써져있는 글귀를보자 최인규는 경악했다.

“역모서원(逆謀書院)이라니? 이게 무슨 짓인가?”

“정의롭고 선량한 백성들의 제보를통해 화양서원이 얼마전 토벌당한 역적들과 관련있다는 정보가 들어왔소. 최인규 훈장 당신도 알거요. 역모를 일으겼던 신조군에 다수의 유생들이 포함되어 있는걸 말이요. 동시에 그 유생들이 화양서원의 훈장과 친분이 있다는 정보가 있었소. 따라서 이제부터 그것에대한 조사를 할것이요. 그 사이에 화양서원의 현판대신 역모에 가담한 서원임을 알리는 현판을 붙이는 것이요.”

“그것만은 안된다.”

최인규가 애걸했지만 소용없었다.

지시받은 보부상들이 화양서원의 정면에있는 현판을 떼어내고, 준비해온 역모서원-이란 현판을 걸었다. 대문에도 화양서원이 역적에 관련되어 조사를 받고있다는 포고문도 군데군데 붙여놓았다.

“역모에 가담한 서원이라니?”

“이제부터 우리들은 어떻게 되는거지?”

“취조와 심문, 조사를통해 죄가없는 사람은 풀려날 것이요. 하지만 조금이라도 관련된 사람은... 역모죄에따라 처리될 것이요.”

내용을들은 유생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제발 살려주시요.”

“집에는 아내와 자식들이 있습니다. 역모죄라니! 제발!”

“우리들은 신조군에 가담했던 유생놈들과는 일면식도 없습니다.”

화양서원의 인원들 중에는 김좌근의 신조군에 가담했다가 고기방패로 갈려나갔던 유생들에대해 추모하는 자들도 있었다.

자기들 딴에는 선비의 지조를 지켰다나 뭐라나?

하지만 신조군에 가담했던 유생들 때문에 피해를 당하게되자 저주를 퍼붓기 시작했다.

“이놈들아! 어서 움직여!”

잠시후 훈장인 최인규를 시작으로 밧줄에묶인 유생들이 줄줄이 끌려나왔다. 화양서원의 밖에는 주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가득했다.

“무슨 일이길래 서원의 유생들이 포승줄에 묶여서 끌려가는 거야?”

“저기 현판에적힌 글자를 못봤나?”

“역모서원이라고 적혀있는데.”

“그말대로 화양서원이 역모에 관련되어 있다는 뜻이잖아.”

“소문에 들으니 얼마전 토벌되었던 김좌근의 역적들에도 상당수의 유생들이 참가했다고 하더군. 그렇다면 화양서원도 거기에 참가했던 유생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건가?”

“그럴 가능성이 높은거지.”

모여든 사람들이 수근거렸다.

이들은 행동대원인 보부상들이 미리부터 주변마을을 다니면서 불러모은 것이다. 한편 지금까지 화양서원이 보유했던 권위와 위치를 한방에 무너뜨리고 역적과 관련된 범죄자들로 만드는것.

흥선군 이하응이 계획한 서원들에대한 토벌작전이였던 것이다.

* * *

“끄아악! 헉헉!”

거친 숨소리가 최인규의 입에서 연달아 터진다.

그리고 정면에서 최인규를 내려보던 심문관이 소리쳤다.

“저 역적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구나. 좀더 주리를 틀어라.”

“예이...!”

지시를받은 병졸 두명이 양쪽에서 잡고있던 지렛대를 제꼈다.

엄청난 통증이 최인규를 강타했고 살려달라고 비명까지 토해냈다.

“제발! 나는 아무 잘못이없단 말이요. 흑흑!”

이제는 눈물까지 흘리며 애걸했다.

얼마전까지 화양서원의 훈장으로 서원내에서 왕처럼 생활했던 그였다. 하지만 의금부로 끌려오고 몇일동안 심문과 취조를 받게되자 당당했던 기세는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최인규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과 유생들이 포승줄에묶여 서원에서 끌려나올때 주변에서 지켜보던 수많은 사람들의 표정-

‘화양서원의 훈장이란 놈이 역적질을 했다며?’

‘저럴줄 알았지. 화양서원이 수많은 부패를 일삼으며 재물을 축적한것도 역적인 김좌근과 내통하면서 벌인 일이잖아.’

화양서원의 현판이 내려지고 대신에 <역모서원>-이라는 현판이 대신걸렸다. 서원의 주위로 포고문이 덕지덕지 붙어버린 상황에서 최인규는 곧바로 역모에 가담한 중범죄자가 된것이다.

‘크윽, 난 억울해. 이전에 김좌근과 안동김씨들에게 뇌물을 바친건 있지만 그래도 역모에 가담한 적은 없다고...’

최인규가 속으로 외쳤지만 소용없었다.

얼마후 몇시간동안 심문을당한 최인규는 감옥에 보내졌다.

바닥에는 쥐들이 다녔고 그것을보며 최인규는 기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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