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대장님! 적들중 일부가 서쪽의 빈틈을뚫고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정신이 없군! 어쩔수 없다.”
오가와가 유키카제구미(雪風組) 조원들을 이끌고 달려갔다.
이케다 가문과의 협상이 결정된뒤 오가와는 시코네 성채에서 부하들과함께 토시노를 지원했다.
이곳에서 버티는 동안 조선에서는 강력한 특수부대가 올것이고, 그뒤에는 이케다 가문의 잔존부대를 동원해 양면공격을 가할수 있었다. 다만 버티는동안 오가와 대원들은 엄청난 혈투를 벌였다.
타다닷! 오가와를 선두로 20명의 대원들이 달려갔고, 서쪽에서 뚫려진 빈틈을통해 적들이 파고드는 중이다.
촤앙! 돌진해가던 오가와가 검을 빼들었다.
하지만 그가 사용하는건 일본도인 카타나와는 다른 것이다.
조선식의 환도이지만 길이가 증가된 태환도(太環刀)-였고, 적들의 중앙으로 파고들며 단숨에 2-3명의 적들을 베어버렸다.
그가 사용하는 태환도는 조선의 솜씨좋은 대장장이가 만들었고, 검날의 강도에서도 일본도보다 뛰어났다.
일본도에비해 무거운 편이지만 오가와는 강력한 체력과 칼솜씨를 발휘해 적들에게 공포를 주었던 것이다.
“크앗! 저놈은 뭐냐?”
“기묘한 검과 검술을 사용한다.”
성채내부로 파고들었던 적들이 경악했다.
오가와의 활약을본 대원들도 적들을 하나둘씩 베면서 나아갔다.
얼마후 빈틈을 파고들었던 적들 수십명이 시체로 널브러졌고, 야마나가문의 병사들은 후퇴했다.
“토시노 가주님! 서쪽이 뚫렸지만 다행히 오가와를 포함해 유키카제구미의 활약으로 막을수 있었습니다.”
“저들이 우리에게 온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전투를 지휘하던 토시노가 대답했다.
헛점이 드러난 부분은 막았지만 앞으로 얼마나 버틸수 있을지 장담할수 없었다. 포위한 적들의 숫자가 몇배나 많았고, 아군에게는 무기도 떨어져가는 상황이다. 이케다 가문에도 조총이 있었지만 화약과 탄약이 부족해 마음껏 쓰지도 못했다.
그때문에 궁병을 동원해 활을쏘고 있었지만 성벽에서 방어하던 궁병들과 병사들의 피해도 증가했다.
“놈들이 지쳐가기 시작했다.”
“총공격을 개시해라.”
“와아아아!”
한차례 방어에 성공했지만 적들은 더많은 병사들을 동원해서 돌진했다. 성채위에 늘어선 이케다가문 병사들이 주먹을 쥐었다. 마지막까지 싸운다는 각오였지만 이번에는 방어가 힘들것이란 예감을 하였다.
그에반해 돌격해가던 야마나가문의 부대는 사기가 올랐다.
성채를 무너뜨린뒤 안에있는 이케다 가문의 여자들을 겁탈하고 죽인다.
야마나가문의 수장인 하토시마는 병사들에게 이케다에 대해서는 마음껏 약탈하고 죽여도 좋다는 명령까지 내려놓은 상태였다.
“크하하핫! 저놈들 봐라!”
“네놈들의 계집들을 겁탈하고 죽여주마.”
기세좋게 돌진하던 야마나의 전투부대들.
순간 그들의 고막을 울리는 굉음이 터져나왔다.
쾅! 콰콰쾅! 맹렬한 포성이였고 돌진하던 졸개들이 움찔했다.
“이건 무슨 소리야?”
“화포의 포격음인가? 하지만 이케다 가문에는 제대로된 대포조차 없는데.”
“역시 하토시마 가주님이 우리를위해 신형 대포들을 가져온것이 분명하다.”
야마나가문 병사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쉬이잉! 공중에서 터져나오는 파공성과 날아오는 육중한 포탄들. 그것은 시코네 성채를 때리는것이 아니라 공격해가던 자신들의 중앙을향해 낙하했다.
쾅! 콰지직! 크아악! 수십개의 포탄들이 야마나 병사들을 덮쳤고 적들의 몸체를 찢어버렸다.
대신기전(大神機箭) 사격
“양무화포의 위력은 대단하군.”
망원경을 손에든 문승준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송진태가 이끄는 남방원정대에서 화포부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남방원정대에 편성된 화포대의 인원들은 250명이다.
부대원들의 숫자는 기병대나 총병대에비해 적어도 핵심에 속했던 것이다.
문승진이 지휘하는 백운 화포대(百雲火砲隊)에는 30문의 양무화포들이 있었고 문승준은 뛰어난 포병사격을 펼쳤다.
조금전 포격을통해 문승준은 망원경으로 양무화포에서 발사된 포탄들이 떨어진 부분과 적들이 박살나는 광경을 확인했다.
30문의 양무화포들은 영국령 동인도회사에서 수입한 구형의 캘버린 포들을 개량해 성능이 단번에 향상되었다.
특히 지금처럼 원거리 포격에서는 탁월한 위력을 발휘했다.
양무화포의 최대 사거리는 4500미터까지 포탄을 날릴수 있었다. 하지만 보통은 유효사거리인 3500미터 이내의 거리에서 운영과 포격을 하였다.
“일단 포탄이 낙하하는 지점과 타격은 괜찮군. 좀더 효과를 높이기위해 목표와의 사거리 관측을 점검해라.”
“알겠습니다.”
지시를받은 화포부대의 무관이 금속으로된 원통을 들었다.
이것은 문승준이 사용하던 망원경보다 더 크고 묵직했다. 내부에는 두개의 큰 렌즈를 넣었고 삼각측량의 방법과 각도를 이용해 화포부대와 적과의 거리를 측정했던 것이다.
아직까지 조선에서 자체적으로 성능좋은 렌즈를 만들기는 힘들었다. 때문에 이런 대형 렌즈들은 광저우에있는 이스트 프론티어를통해 수입해온 것이다.
비록 20세기에 사용되는 정교한 광학측거의에 비해서는 성능이 부족하지만 3500미터 내에서 양무화포들을 발사하고 포각을 계산하는데는 충분했던 것이다.
얼마후 사거리 관측을 점검한 화포관이 각각의 포대에게 전달하였다. 그사이 화포마다 7-8명씩 배치된 조선군 포병들이 재장전을 실시했다.
“1번포 재장전 완료!”
“2번포 장전완료!”
각각의 포대마다 들려오는 외침-
이것을 확인하며 문승준이 명령을 내렸다.
“전포대 사격개시!”
펑! 퍼퍼퍼펑! 30문의 양무화포들이 일제히 사격하는 모습.
그것은 엄청난 장관이였다.
포구에서 불꽃이 터지고 시커먼 연기와함께 육중한 포탄들이 날아갔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포탄들은 3km 이상 떨어진 적들사이로 낙하하며 굉음을 내었다.
쾅! 콰지직! 텅! 터텅! 크아악! 20kg 이상의 육중한 쇠구슬이 지면을 튕기며 총알처럼 쇄도했다. 돌진해오는 쇠구슬에 맞은 야마나 가문의 병사들은 팔다리가 잘리거나 얼굴이 박살났다.
“개같은 놈들이 아군을향해 화포를 발사해?”
“정신차려! 저건 아군 포대가 아니야.”
“그럴수가?”
처음에 성채로 돌진하던 야마나군 공격부대와 병사들은 난데없이 날아온 포탄에 박살났고, 그것이 아군포대가 잘못 쏜걸로 착각했다. 하지만 2탄, 3탄으로 연속되며 포탄이 떨어지자 겨우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할수있는건 없었다.
포탄을 날려보낸 화포들은 3500미터 이상이나 떨어져 있었고, 30문의 화포들이 위치한 장소도 비탈진 언덕의 위였기 때문이다.
화포부대를 지휘하는 문승준은 양무화포들이 최대위력을 발휘하고, 방어와 포격에 유리한 위치에 화포들을 배치하는 작전능력을 선보였던 것이다.
“왜놈들에게 조선군 화포술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게 되었군요.”
“이건 시작에 불과하네.”
문승준이 대답하며 냉소했다.
그의말대로 이번 전투는 신병기인 양무화포의 실전 테스트도 겸하고 있었다. 그리고 실전 테스트에 사용할 적의 표적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1번 포부터 15번 포까지는 포탄을 대신기전(大神機箭)으로 교체하라!”
화포대장의 지시에따라 횡으로 늘어선 1번포부터 15번포까지 분주하게 움직였다. 화포병들 일부는 화약을 준비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후방에 세워놓은 마차에서 묵직한 대신기전을 꺼내온 것이다.
대신기전은 길이가 3미터에 이르는 대형 화살이다.
통나무를깍아 화살처럼 만들었고, 포신내부에 화약을 채운뒤에 양무화포를통해 발사가 가능했다.
그리고 포구속에넣는 대신기전 앞쪽에는 폭약이 달려있었다.
폭약의 아래쪽에는 화약을섞어 만든 심지가 있었고 횃불을든 화포병이 그곳에 불을붙였다. 그후에 포수가 양무화포의 위쪽에 뇌홍을 끼운뒤 방아끈을 당겼다.
“대신기전 발사!”
펑! 퍼퍼펑! 1번포부터 15번포까지 대신기전들이 연속으로 발사되었다.
쉬이잉! 공중에서 날카로운 파공음을내며 날아가는 대신기전들의 모습. 양무화포의 포격으로 정신없던 야마나군 병사들은 경악했다.
“으아아! 저건 또 뭐냐?”
“피해라!”
쉬이잉! 푹! 푸푹! 포물선을 그리며 낙하한 대신기전이 지면에 박혔다. 이것을본 야마나 병사들이 히죽거렸다.
“크크크! 멍청한 놈들! 결국 아무것도 아니잖아.”
“그런데 저기에 뭐가 달려있는데.”
“허억! 도망쳐라.”
치지직! 지면에박힌 대신기전과 앞부분에 달려있는 폭약들.
심지가 타들어가며 거대한 폭발이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쾅! 콰콰쾅! 화염이 터졌고 주변에있던 야마나 병사들의 몸체가 찢겨졌다.
대신기전에 장착된 폭약들은 지면에 낙하하고 1-2초 사이에 터지도록 맞추어진 것이다. 때문에 근처에있던 적들이 피할려고 시도해도 소용이 없었다. 일제히 발사된 대신기전의 숫자는 15개였고 이것들이 한꺼번에 터졌기에 주변은 화염지대로 변하였다.
“예상대로 대신기전의 폭발력은 상당하군.”
“지금보니 실전에서의 효과도 충분합니다.”
옆에있던 화포관이 대답했다.
얼마후 문승준이 지휘하는 백운화포대는 대신기전과 육중한 쇠구슬 포탄들을 연달아 발사하며 야마나 병사들을 고깃덩이로 만들었다.
“오가와 조장님! 아군부대가 도착했습니다.”
유키카제구미(雪風組)의 대원이 소리쳤다. 조금전까지 시코네 성채를향해 달려들던 적들이 폭발과 포격에 휩싸이며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저것이 조선군이 보유한 능력이라니?”
“가주님! 직접 보면서도 믿기지 않습니다.”
토시노와 이케다가문 무장들이 경악했다.
아직 조선군의 전투부대는 보이지도 않았다. 단지 화포공격만 했는데도 위력이 적들을 압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주인 토시노와함께 전투를 지휘하던 아들 마사토가 눈물까지 흘리며 감격했다.
“아버님! 이제 우리에게도 희망이 생겼습니다.”
“물론이다! 적의 기세가 꺽였으니, 성채에있는 병사들은 예비로 두었던 화약과 조총을 모두 사용해라.”
토시노가 명령을 내렸다.
지금까지는 오가와의 충고에따라 시코네 성채에 보관해둔 화약과 조총들을 아껴서 사용했다. 이제부터는 이케다 가문이 보유한 무기와 전력을 모두 발휘할 때였다.
“조총부대! 사격준비!”
“발사.”
탕! 타타탕! 토시노의 명령에따라 성채위의 병사들이 조총을 겨누었다. 야마나군 병사들은 머리위로 떨어지는 포탄과 대신기전의 폭발에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성채위에서 조총사격까지 더해진 것이다.
크악! 케엑! 조총에맞은 야마나군 병사들이 차례로 쓰러졌다.
이것을보며 이케다군 병사들은 전의가 솟아올랐다.
* * *
“너희들중 누가 이 개같은 상황을 설명해봐라!”
하토시마가 괴성을 질렀다.
조금전까지 공격부대를 출동시켜 시코네 성채를 압박했다.
이제는 함락직전까지 갔는데 성채앞까지 돌진했던 부하들이 떼거지로 죽어나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시바토 번주인 쿠니조가 놈들에게 당한게 분명합니다.”
“그건 안봐도 알수있다. 그런데 저 화포대는 뭐냐? 설마 에도의 막부군 놈들이 저렇게 강력한 화포를 갖고 있다는 것인가?”
“조금전 들어온 보고에 따르면 저 화포대는 에도막부의 소속이 아닙니다. 조선군 놈들입니다.”
“.....”
하토시마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조선군이 여기까지 오다니? 하지만 얼마전 시코네 성채의 내부에서 신호탄이 올라갔다는 보고는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수 없었는데 이제는 모든것이 명확해졌다.
시코네 성채의 이케다 가문이 죽기살기로 버틴거.
그것은 자신들을 구원해줄 조선군을 기다렸던 것이다.
“조선 놈들은 허약하고 군사력도 약하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저런 화포들을 갖고있고 여기까지 올수있다는 건가?”
“가주님! 지금은 그런걸 따질때가 아니라 먼저 언덕에있는 화포대부터 해치워야 합니다.”
“알겠다! 그렇다면 야마나군의 화총대를 투입해 저놈들을 박살내라.”
“하토시마 가주님. 저에게 맡겨 주십시요.”
우치다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야마나 가문에서 실력좋은 사무라이였고 하토시마의 측근이다. 얼마후 우치다가 정예인 화총대(火銃隊)를 소집했다.
화총대는 네델란드 상인들이 서양에서 가져온 플린트락 머스켓-으로 무장했다. 그리고 얼마전 벌어진 전투에서도 막부군을 격파하는데도 큰 역활을했던 것이다.
얼마후 소집된 화총대를향해 우치다가 말했다.
“우리들의 목표는 언덕위에서 포격을 진행중인 적의 화포대를 박살내는 것이다.”
“하지만 정면으로 가기에는 경사가 급해서 쉽지 않습니다.”
“알고있다. 그래서 화총대를 2개부대로 나누어 좌우측을 이용해 진격한다.”
“좋은 생각입니다. 양쪽에서 기습하면 저기서 대포를쏘던 놈들을 한방에 끝낼수 있습니다.”
우치다의 지시에따라 800명의 화총대는 각각 400명씩 2개부대로 나누어졌고 조선군 화포대를 공격하기 위해서 나아갔다.
* * *
“놈들이 걸려든거 같습니다.”
“예상대로군. 어차피 저들도 아군의 화포부대를 그냥 놔두면 계속해 피해가 생기고 시코네 성채에대한 공격도 힘들어 지니까.”
송진태가 대답했다.
그사이 동행한 김종수 제 2 선단장이 망원경으로 적정을 관찰했다.
야마나군들 사이에서 플린트락 머스켓을 휴대한 화총대들이 소집되었다가 양쪽으로 갈라지는게 보였다.
이것은 언덕위에있는 조선군 화포대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고 적들이 진격할 방향은 정해져 있었다.
동시에 송진태가 전투개시와함께 야마나군을향해 원거리에서 포격을 실시한것도 이런 이유다. 적의 핵심적인 부대를 끌어들여서 박살내기 위한것. 전투지휘와 능력에서 송진태는 하토시마를 월등히 능가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야마나 가문이 자랑하는 화총대의 실력을 확인해볼 차례군.”
“적들이 얼마나 버틸지 기대가 됩니다.”
김종수가 대답하며 준비를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