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6화 (116/169)

“이제는 고향으로 내려갈 것이네. 승정원과 조정을통해 올해 과거시험의 출제형식에대한 발표도 나왔고 말이야.”

“맞아. 나도 같이가세.”

자리를털고 일어나는 유생들의 모습-

이것에 성균관 유생들은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지만 대세는 기울어진 상태였다. 처음에 몇명이 짐을싸며 일어나자 그뒤에는 수많은 유생들이 동참했다.

“아이고, 이제 우리들은 어떻하라고.”

“개같은 배신자 놈들!”

남겨진 성균관 유생들이 통곡하며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상황이고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이것을보며 돈화문에 모여들었던 1500명의 백성들은 재밌는 광경이라도 본듯 폭소를 터뜨렸다.

* * *

조선의 수도인 한양에는 다양한 구역들이 존재했다.

그중 허름한 초가집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골목길.

한양에서도 남쪽에 위치한 곳이고, 여기에는 농사를 짓거나 허드렛일을하며 지내는 빈민들이 많이살고 있었다.

아침이되면 이곳 풍경은 여느때와 비슷했다.

초가집에서 살고있던 가족들이 밖으로나와 일터로 향하는 것이다.

그것에는 예외가 없었다.

심지어 10살도 안되는 어린애들까지 밭에나가서 곡괭이를 들거나 짐꾼으로 일을해야 했다.

그런데 오늘은 상황이 달랐다.

“아부지.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열심히하고 훈장님 말씀 잘듣고 해야한다.”

“걱정마세요. 어제도 훈장님한테 칭찬을 받았어요.”

갓 8살 정도되는 꼬마가 웃었다.

아들을 바라보는 돌쇠는 마음 한켠이 뿌듯했다.

가난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던 돌쇠였고, 그에게 배움이란 것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심지어 글자도 모르는 까막눈이였다.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이 힘들었고 돌쇠는 자신의 아들도 그런 운명이 될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새임금이 즉위하고 해가 바뀌고나자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그중에서 돌쇠를 경악시킨건 한양에 백성들을위한 학교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조판서인 이하응에의해 본격적으로 추진된 학교들의 이름은 정음(한글)학교였다.

다만 학교들이 새로 지어진 건물들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기존에있던 교육기관들을 효율적으로 이용했다.

한양에는 곳곳에 서당들과 향교, 그리고 서원들이 있었다.

이런 장소들은 천자문부터 시작해 유교경전과 성리학 이론들을 가르치던 것이 주된 목적이였다.

그런데 지금은 한양에있는 수많은 서당들이 정음(한글)을 가르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정음(한글)을 가르치지 않는 서당은 자격을 박탈하겠다]

강력한 채찍이 먼저 사용되었다.

서당은 몰락한 양반등의 잔반이나 과거시험에 낙방한 유생들이 훈장을통해 생계를 유지하던 방법들중에 하나였다.

그 때문에 서당에서는 천자문부터 시작해 유교경전에서도 기초가되는 것들을 주로 가르쳤다.

동시에 서당에있는 훈장들 대부분은 한자보다 월등하게 쉬운 정음(한글)은 충분히 알고있었다.

그럼에도 사대부나 유생이라는 우월감 때문에 정음을 사용하는걸 꺼렸던 것이다.

철종이 보기에도 조선에서 백성들을 상대로 한글교육을 시킬수있는 선생들은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교육 시설에대한 숫자에서도 적은것은 아니다.

한양만해도 곳곳에 서당들이 있었다.

‘먼저 서당에서 천자문 대신에 한글을 가르키게 하는것이 시작이지.’

철종이 생각해낸 간편하면서도 빠른 방법중에 하나다.

그에따라 서당에서는 한글교육을 시작하라는 지시를 내린것이다.

그것을 거부하면 훈장자격을 박탈해 버리는 압박도 같이 사용했다. 그럼에도 처음에는 한양에있는 훈장들중에 반기를들며 거부하는 자들도 나왔다.

여기에대해 이하응과 관료들은 강경하게 나갔다.

먼저 한글교육을 거부하는 서당을 폐쇄해 버린다.

그리고 다른 곳에있는 훈장을 불러다 선생으로 임명하는 것이다.

그 선생이 한글교육을 제대로 실시하면 당근도 주었다.

조정에서 모범적인 한글교육을하는 서당에대해 지원금을 주는 방식이다.

동시에 훈장들에대한 월급도 지원했다.

이런 상황이기에 이후에는 다른 훈장들도 참가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부족했다.

조선에서는 아이들이 서당을 다닐 정도가되면 그럭저럭 집안형편이 괜찮아야 했다. 평민자식도 서당을 다닐수는 있지만 집에서 지원이 가능해야했다.

그것이 안되는 집이 대부분 이였다.

조선에서 평민의 자식들은 10살만 되어도 노동일에 투입되어야 했다. 이래서는 평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가져오기 힘들다.

때문에 다른 방법도 추가되었다.

‘앞으로 서당에서 한글을 공부하는 아이들에게는 끼니를 제공해서 학부형들의 부담을 줄인다.’

조선에서 최초로 서당에오는 아이들에게 점심과 저녁을 제공하는 획기적인 정책이 시행되었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했다.

그리고 효과는 순식간에 나타났다.

다수의 평민 백성들이 자녀들을 서당에 보내었고, 이제는 자식들의 교육에도 신경을쓰기 시작한 것이다.

비록 그들의 부모는 글자도 모르는 일자무식에 까막눈이지만 자식들은 더이상 문맹도 아니고 배움의 혜택을 누리게될 것이니까 말이다.

“안녕하세요. 훈장선생님!”

“어서들 오너라.”

허름하고 낡은 옷을걸친 아이들이 서당에 들어왔다.

입구에있던 강신찬은 아이들의 인사를 받으면서 인자하게 웃었다.

오늘도 배움을위해 찾아오는 아이들의 모습에 강신찬은 보람을 느꼈다.

몰락한 양반가문의 후손으로 그의 신분은 잔반이였다.

몇차례 과거시험에 도전했지만 낙방했지만 실력이 없는것이 아니였다.

정확히는 과거시험이 부패하고 부정이 만연했다.

그리고 과거시험에 나오는 문제들 자체가 고리타분 했다.

유교경전을 달달외워서 해답을적는 시험이 전부니까 말이다.

그에반해 강신찬은 여러가지 학문에 관심을갖고 두루 살펴보았다. 과거시험에는 수차례 낙방했지만 그의 지식수준은 다양하면서 놀라웠다.

하지만 유교탈레반과 성리학 꼰대들이 주류를 차지한 조선에서 그의 자리는 없었다.

기껏해야 한양외곽에 서당을 차려놓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입에 풀칠하던 생활이 전부였다.

그러던중 새임금이 놀라운 변화를 일으켰다.

한양에있는 각각의 서당에 내려온 공문-

내용을 본순간 강신찬은 감탄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이다. 지금까지 조선의 사대부들과 유생들은 아둔한 짓거리만 해왔을 뿐이다.’

강신찬은 공문에있는 내용대로 근처를 다니면서 부모들을 설득했다.

처음에는 쉽지가 않았다.

그럴것이 평민이나 천민의 부모들은 자녀의 교육이 뭔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으니까. 어떤 집에서는 아이가 서당에가면 일손이 모자르게 된다고 불평했다.

또는 아이를 서당에보낼 돈이나 교육비도 없다는것.

강신찬은 그들에게 대답했다.

모든 경비는 조정에서 지원된다는것.

심지어 서당에오면 아이가 배를 곪지않고 점심과 저녁까지도 제공된다는것.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부모들도 하나둘씩 자녀들을 보내었다.

이제는 자식들이 글자를 조금씩 깨우치는걸보며 놀라고 있었다.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건 부모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가, 나, 다, 라, 마, 바, 사....”

강신찬이 종이에 정음(한글)을쓰자 아이들이 따라서 읽었다.

스폰지가 물을 흡수하듯 빨리배웠다.

그가 과거에 학생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칠때와는 틀렸다.

천자문이 기본이라 해도 한자는 정음에 비하면 수십배 어려웠다.

학생들에게 몇번이나 가르쳐 주어도 까먹는다.

나중에는 회초리까지 들어야했다. 하지만 정음을 배우는 아이들의 습득속도는 빨랐다.

“너희들은 이 정음을 누가 만들어 내신지 알고 있느냐?”

“훈장 선생님. 누구인가요?”

“지금부터 수백년전, 조선의 4대 임금이신 세종대왕께서 만들어내신 것이다.”

강신찬이 대답해주자 아이들의 눈이 반짝인다.

한편 그는 아이들에게 한글공부도 시키면서 틈틈이 역사교육도 하였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타국인 중국의 역사적 인물들을 떠받들며 우러러보는 상황이였다.

그 때문에 어떤 유학자들은 중국황제를 숭배하며 만동묘라는 사당까지 지어놓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깨어있는 지식인 강신찬은 아이들에게 한글교육을하며 한민족의 뛰어난 위인들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와아아! 밥이다.”

“이녀석들! 천천히 먹어라.”

반찬이라고 해봐야 나물무침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순식간에 한공기를 해치우고 있었다.

서당에서 학생들에게 점심과 저녁을 제공하고 있었지만 훈장인 강신찬이 요리를 하기에는 힘들었다. 대신에 학부형들중에 어머니들이 돌아가면서 밥을해주고 반찬도 마련해 주었다.

“그런데 훈장선생님. 정말로 믿을수 없습니다. 이 모든것을 조정과 임금님께서 지원을 해준다니.”

“저도 처음에는 반신반의 했는데 지금은 전하의 은총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강신찬이 밥해주던 아낙네들에게 대답했다.

철종은 역사적인 사실을통해 알고 있었다.

유럽에서 최단시간에 강대국이된 국가는 독일이다.

독일이 강대국이된 배경에는 교육의 힘이 작용했다.

유럽에서 먼저 기초적인 의무교육제도를 도입하면서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고 문맹율을 낮춘것이다.

조선이 개혁을 지속하고 강대국이 되기위해서는 근본적인 부분을 해야했다.

그중에 하나가 교육의 확대와 문맹율을 낮추는 것이다.

조선의 인재들이 선진화된 기술을 도입하고 새로운 창조를 위해서는 글자부터 알아야했던 것이다. 그리고 강신찬이 담당하는 서당에도 미래의 인재들이 하나둘씩 커가고 있었다.

일본에대한 파병전략

“전하. 그것은 무엇입니까?”

“가베(커피)-라는 것이다.”

송내관의 질문에 나의 표정은 흐믓하게 바뀌었다.

21세기에 현대인으로 살았던 내가 1850년대 조선국왕으로 환생하면서 좋은것도 있고 단점도 있었다.

단점중에 하나가 기호식품이자 하루에 최소 한잔씩은 즐겼던 커피를 못 마시게 되었다는것.

임금주제에 배부른 소리라고 할수있지만 그래도 이따금씩 커피가 땡기는건 어쩔수 없었다.

서양에서 커피의 역사는 수백년, 아니 1000년 이전으로 올라갈 정도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구한말에 고종이 아관파천을통해 러시아 공사관에서 지낼때 커피를 마셨다는 기록이 처음 나온다.

그래서 고종의 별명이 군밤장수, 또는 가베(커피)중독자등의 우스게 소리도 나오는데 어쨌든, 커피라는게 묘하게 중독성이 있는건 사실이다. 철종의 육체로 환생한 지금에도 나의 정신이 커피를 원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시필드 제이든이 말하기를 전하께서 어떻게 가베를 알고있는지 신기하게 쳐다보았습니다. 다만 제이든은 영길리국인이기에 가베보다는 홍차와 홍삼차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전하께서 원하시면 불란서(프랑스)상인들을통해 더많은 가베콩(커피원두)을 구해 보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스트 프론티어를통해 몇자루의 커피원두를 가져왔던 선죽상회의 부행수 김도영이 보고한 내용이다.

어쨌든 선죽상회가 주기적으로 개성과 광저우를 왕복하기 때문에 이제는 커피에대한 나의 갈증이 그럭저럭 해소되는 상황이다.

다만 이시기 커피문화와 방식은 21세기 한국인들이 주로 가는 별다방(?)커피숍의 메뉴를 생각하면 안된다.

거품이 풍부한 카푸치노나 라떼, 또는 추가로 향을섞는 모카등은 없었다. 오로지 커피원두를 가져와 직접 갈은뒤에 수작업으로 원액을 드립(Drip)시켜서 먹는것이다.

이때문에 임금의 체면에도 불구하고 선죽상회에서 가져온 원두를 소형절구에넣고 직접빻았다.

그리고 드립용 필터로 한지를 준비했다.

지금 내가 조선에서 가베란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먹는지를 알고있는 유일한 사람이기에 어쩔수 없었다.

졸졸졸- 뜨거운 물을붓자 필터로 사용한 한지의 아래쪽으로 진한원액이 드립되면서 내려왔다.

“바로 이것이지.”

양은 얼마되지 않지만 진한 커피향이 코끝을 자극한 순간 과거의 경험들이 되살아난 느낌이다.

역시 영혼까지 카페인 중독이구나.

어쨌든 진한 원두커피를 마시게되자 느긋한 기분이 되었고, 정신까지 맑아졌다.

“종걸아. 너도 한번 맛을 보겠느냐?”

“전하께서 성은을 주시다니 망극하옵니다.”

드립시켜 내린 커피중에 일부를 송내관에게 따라주었다.

나로서는 정말 선심을써서 송내관에게 주었지만 그 반응은...

“으윽! 전하, 이것은... 사약같은... 아, 아닙니다.”

송내관의 표정이 불쌍하게 바뀌었다.

임금이 주는것이니 안먹을수 없는데, 그 맛이 송내관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얼마후 송내관이 불굴의 정신으로 쓰디쓴 원두커피를 모두 마시고는 불만을 드러냈다.

“전하께서는 소인과 나인들이 비싼 약재를 가져와 준비한 탕약은 거부하시고 이제는 탕약만큼이나 쓰디쓴 이 가베는 기뻐하며 마시다니! 도저히 이해할수가 없습니다.”

“가베가 나에게는 탕약보다 더 좋은 보약이다.”

“.....”

나의 대답에 송내관이 고개를 저었다.

임금의 기괴한 행동들이 하루 이틀인가?

송내관으로서는 이해하기보다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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