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 소신 최원상 부름을받고 왔습니다.”
“들어오게.”
최원상과 강기석이 희정당 안으로 들어왔다.
두명은 비밀리에 조직한 첩보조직인 비호국의 국장과 부국장 자리를 맡고있었다.
조선이 제국주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보전과 첩보전은 핵심중에 하나다.
한편 비호국은 크게 3가지로 구성되었다.
임금인 내가 비호국에내린 명령이나 지시를 최우선 사항으로 수행하는 직할부가 첫번째다.
그리고 국내의 정보수집과 활동을 담당하는 국내부.
마지막으로 청나라와 일본을 포함해 해외에 요원들을 파견하고 활동을 관리하는 국제부다.
앞으로 비호국이 강력한 첩보조직이 되기위해서는 국제부의 활동을 확대하는게 중요했다.
“이상이 전하께 보고드릴 내용들입니다.”
“경들을믿고 비호국을 맡기길 잘한거 같습니다.”
“황송하옵니다. 전하.”
두사람이 고개를 숙였다.
그들이 희정당에오면 먼저 하는것은 비호국의 업무를 보고하는 것이다. 오늘의 보고 내용에서도 비호국은 국내부와 국제부에서 비밀아지트와 지부를 늘리고 있었다.
“차맛이 훌륭합니다. 전하.”
“지리산에서 산출된 것입니다.”
“그윽한 향기가 일품입니다.”
최원상이 대답했다.
무관출신이지만 풍류를 알고있는 인물이다.
잠시 차를 마시면서 생각해둔 부분을 꺼내었다.
“경들도 알다시피 창덕궁 정문에는 유생들이 모여 있습니다. 숫자도 족히 300명은 된다고 하더군요.”
“염치를 모르는 것들입니다.”
강기석이 분노하며 대답했다.
두명은 정보를 다루는 비호국의 수장들이고, 당연히 돈화문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을 알고있었다. 동시에 이기심을 드러내며 집단 상소중인 유생들을 곱게볼리가 없었던 것이다.
“전하. 당장이라도 호위청과 금군의 병졸들을 투입해 그 놈들을 내쫓아 버리십시요.”
“맞습니다. 저대로 놔두면 조정에 막대한 피해만 생길수 있습니다.”
두명이 강경론을 주장했다.
충분히 이해할수있는 부분이다.
기분 같아서는 유생들을 강제로 해산시키고 싶었으니까.
다만 그뒤에 유생들이 피해자 코스프레 하면서 난리칠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하수다.
“과인도 돈화문 앞에 농성중인 유생들을 그냥 놔둘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호위청이나 금군의 병졸들을 파견해 유생들을 해산시키는건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잠시 뜸을들였다.
두명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지금 유생들이 집단항의를 시작한것은 그들의 기득권과 이기심도 있지만 백성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는 어리석음도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지금 당장 호위청이나 금군을 투입하는 무력보다는 저들에게 백성들의 민심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해줄 생각입니다.”
두명에게 이후의 계획에대해 설명하였다.
이번일은 여론전 또는 심리전의 상황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비호국처럼 배후에서 은밀하게 움직일수있는 조직이 제격이다. 이윽고 설명을 듣고있던 강기석이 무릅을쳤다.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소신도 부국장의 말에 찬성입니다.”
최원상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들에게 21세기의 현대인, 그리고 역사지식과함께 전쟁사와 밀리매니아가 사용할수있는 다양한 전술중에 한가지를 가르쳐줄 생각이다. 이런것을 보고배우면 이후에 두사람의 능력도 한단계 상승할 것이다.
교육은 백년의 계획
“저것 좀 보게. 이대로 있을수는 없지않나?”
“물론일세. 우리들도 행동을 해야하네..”
“당연하지.”
수근거리는 음성들이 흘러나왔다.
그들은 정면에 붙어있는 벽보를보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동쪽에 떠오른 일출과함께 하루를 시작하던 한양내의 백성들.
그들은 대로변마다 붙여진 벽보를보며 호기심을 가졌다.
누가 붙였는지는 모른다.
하룻밤 사이에 행인들의 이동이많은 장소들에는 어김없이 똑같은 내용의 벽보들이 부착되어 있었다.
그 내용도 상당히 충격적이다.
핵심은 한양에있는 백성들에게 호소하는 격문이였다.
격문들의 핵심은 이렇다.
새임금이 조선역사에서 최초로 과거시험을 정음(한글)으로 본다는 것.
그것은 조선내 수많은 백성들에게 관직과 등용의 기회를 줄려는 것이다.
그런데 양반과 유생들이 이것을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동시에 집단농성을하며 창덕궁의 정문을 점거했다.
이것을 그냥 볼수는 없다는 것.
따라서 한양내 백성들은 임금이준 새로운 기회를 지키기위해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걸 호소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후대의 자손들이 과거시험을 볼 기회조차 없을것이며 입신양명할 기회도 없다는 것등이 내용이다.
이것을읽은 한양의 백성들은 깨달았다.
격문에 적힌대로 두손놓고 있으면 자식들은 여전히 상것으로 살아야하고 출세할 기회도 없을것이다.
그들에게 과거시험은 양반들이나 하는것으로 생각했고 그림의 떡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들도 자식들이 양반들과 어깨를 나란히하고 조정의 관료로서 입신양명 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 때문에 상민들 중에는 자식을 서당에 보내거나 천자문을 배우게하는 이들도 많았다.
지방보다 한양에는 그런 상민들의 비율이 더 높았다.
이런 그들에게 새임금이 발표한 과거시험 개혁안은 가뭄에 단비와 같은것이다.
그런데 양반 유생들의 반대로 무산될 위기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격문을본 수많은 백성들이 집단행동을 시작했다. 동시에 격문에는 그들이 어떤식으로 집단행동을하면 효과가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 * *
“저 상것들은 뭐야?”
“여기가 어디라고 온거야. 썩 물러가지 못할까?”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에서 집단농성 하던 양반유생들은 당황했다. 이번 기회에 끝장을 보겠다는 생각으로 며칠동안 농성을 유지했다.
집안에 돈이많은 유생들은 하인들을 시켜 천막까지 설치했다.
그곳에서 먹고자고 하면서 교대로 하였다.
어느새 돈화문 앞의 공터는 장터나 난민촌같은 모습이다.
농성을 벌이던 유생들은 자신들이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고 판단했다.
예상외로 김좌근과 안동김씨들까지 공개처형으로 몰락시킨 새임금이 온건하게 나온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더욱 자신감을 얻었다.
이제는 임금이 버티지 못할것으로 계산했다.
하지만 그들의 착각일 뿐이였다.
“여기가 양반유생들이 집단농성을 하는 자리인가?”
“그렇다면 우리들도 끼어서 해보세.”
“그거 좋지.”
아침부터 몰려든 수많은 백성들.
숫자는 족히 1500명이 넘었다.
300명의 유생들이 며칠동안 철야로 농성하며 위세를 과시했지만 사방에서 몰려든 백성들이 사이에 끼어들자 상황은 급변했다. 그리고 유생들이 과거시험에 불만을 표시하면 옆에 자리잡은 백성들은 목소리를 높이며 외쳤다.
“주상전하! 천세, 천세!”
5배나 넘는 숫자의 백성들이 외치는 굉음.
그 웅장함은 며칠동안 노숙하며 시달리던 양반유생들을 압도했다. 그러자 유생들중 몇명이 방해하던 백성들의 멱살을 잡으며 윽박질렀다.
“천한 놈들이 어디서 떠들어? 죽고 싶으냐?”
“아이고. 포졸 나리들! 양반유생들이 불쌍한 백성을 겁박하고 있습니다.”
멱살을잡힌 백성들이 애걸했다.
돈화문에 늘어선 병졸들중 몇명이 신속하게 달려온다.
그리고 눈을 부라리며 멱살을 잡았던 유생에게 소리쳤다.
“그 손을 당장 놓으시요. 여기가 어디라고 폭력과 폭언을 일삼는 것이요?”
“뭣이라? 이제는 네놈들이 우리를 방해해?”
“더이상 반항하면 법에따라 당신들을 체포하겠소. 죄목은 백성들에대한 폭력 및 협박죄요.”
“오냐? 네놈들이 우리를 체포할수 있나보자.”
병졸들을 우습게 여기던 유생들이 떠들었다.
순간 후방에있던 군관이 소리쳤다.
“양반유생이라도 죄없는 백성을 괴롭히는건 용서할수 없다. 폭력을 행사하면 법대로 체포해라. 반항하면 죽지않을 정도로 두들겨라!”
“예이....!”
명령이 떨어지자 병졸들이 사정없이 육모방망이를 휘둘렀다.
퍽! 퍼퍼퍽! 크악! 켁! 순식간에 몽둥이 찜질이 시작되었다.
이것을보던 유생들은 새파랗게 질렸다. 백성들의 멱살을잡고 까불던 유생들 몇명이 떡실신이 되며 끌려갔다.
이것에 나머지 유생들은 나서지도 못했다.
부하들을 지휘하던 군관 최민경이 소리쳤다.
“전하께서는 여기있는 양반유생들이나 일반 백성들에게도 똑같이 상소를 할수있는 기회를 주기로 하셨다. 그러니 양반유생들은 죄없는 백성들을 겁박하지말고 평화적으로 농성을 하시요.”
“.....”
말을끝낸 최민경이 입가에 조소를 띠었다.
이말에 양반유생들은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임금에대한 집단상소는 자신들이 누려왔던 특권이나 마찬가지인데, 이제는 천한것들이 자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다니.
유생들이 주변에있는 백성들을 쏘아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1500명의 백성들이 소리치는 음성에 완전히 묻혀버린 것이다.
얼마후에는 돈화문에 몇명의 관료들이 도착했다.
그들이 서찰을 꺼내더니 읽었다.
“조정에서 내려온 지시다. 돈화문에 모여있는 성균관 유생들은 들어라.”
“.....”
성균관 유생이란 말이나오자 그들이 움찔했다.
주변에있던 다른 유생들도 시선을 집중했다.
이번에 진행된 돈화문 집단농성에는 성균관 유생들이 주동자들이다.
성균관 유생들은 과거시험의 합격에서 근접한 이들이였기에 철종이 과거시험을 개혁하자 곧바로 단체행동에 나선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한양내 유생들도 거기에 동조한 셈이다.
“조정에서는 성균관 유생들의 학식이 뛰어나 그대들에게 과거시험을통해 기회를 줄려고 하였으나 스스로 기회를 걷어차 버렸다. 동시에 성균관 유생들은 전하와 조정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괘씸한 짓을 저질렀으니 용서할수 없다. 그에따라 여기 모인 성균관 유생들에 대해서는 과거시험의 자격을 박탈한다. 지금부터 명단을 부르겠다.”
선두의 관료가 이름들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모여있던 성균관 유생들은 경악했다.
몇명은 비명을 내지르며 소리쳤다.
“이보시요. 한번만 봐주세요. 과거시험 자격을 박탈한다니!”
모든 성균관 유생들이 농성장에 모인것은 아니였다.
하지만 대다수가 참가했고 그들은 날벼락맞은 기분이였다.
그리고 어떻게 알았는지 농성에 참가한 성균관 유생들의 명단을 정확하게 발표하고 있었다.
이것은 철종이 비호국과 중경대의 요원들에게 지시해서 펼치는 전술이였다. 물론 1500명의 백성들이 단번에 모여들도록 비밀리에 격문을 돌린것도 비호국 요원들의 활약이다.
한편 농성에 참가한 성균관 유생들을 집중공격하며 분열전술도 사용했다.
“여기모인 유생들은 들으시오. 오늘은 1차로 농성에 참가한 성균관 유생들에대한 과거시험 자격을 박탈하였소. 이제 당신들에게 남은선택은 한가지 뿐이요. 여기서 시험자격을 박탈당한 성균관 유생들과같이 계속해서 농성하던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돌아가 과거시험 준비에 매진을 하던가. 한가지 말해둘것이 있는데... 상당수의 성균관 유생들이 시험자격을 박탈당한 지금이야말로 당신들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생기는거 아니겠소?”
“듣고보니 그렇네.”
“맞아. 이대로 성균관 유생들과 같이 있다가는 우리도 시험자격을 박탈당하지 모르잖아.”
“저들이 없다면 경쟁률도 떨어지면서 우리에게도 합격의 기회가 있으니까.”
여기저기서 수근거리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것을보며 성균관 유생들은 격분했다.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집단상소를 성공시키자던 맹세는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선두에서 총대를맨 성균관 유생들만 시험자격을 박탈당하며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것이다.
“까짓거 임금께서 과거시험을 정음(한글)으로 한다는것이 뭐 대수겠어? 오히려 얕게 공부한 우리들한테는 더 좋은거 아니야?”
“맞아. 한문으로된 시험문제가 어렵게 나오는건 물론이고, 답안도 한문으로 쓸려면 머리가 아픈데 말이야. 정음으로 답안을 쓴다면 우리도 성균관 유생들한테 밀릴것도 없지.”
“그동안 성균관 유생이라고 잘난척 하더니 꼴좋네.”
곳곳에서 비난의 음성이 터져나왔다.
이처럼 양반유생들에게 성균관 유생들은 속칭 잘난체하는 놈들이였다. 그런데 시험자격까지 박탈당하며 신세가 처량해진 것이다.
그들이 자신들보다 많이배우고 학문의 깊이가 있다는건 인정한다.
그 때문에 과거시험에서 성균관 유생들의 합격비율이 높았고, 나머지 유생들은 손가락빨며 구경하던게 전부였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잠시후 농성하던 다른지역 유생들이 차례차례 일어났다.
조금전 관료가 말한대로 여기서 농성해봐야 소용없었다.
자신들을 방해하는 한양의 백성들에게 비웃음만 당할 뿐이였다.
그것보다는 임금이 발표한 과거시험의 개정안에따라 준비를 하는게 이득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