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1화 (111/169)

얼마후 문이열리며 송내관을따라 호조의 관료들이 차례로 들어왔다.

선두에는 믿음직한 인물 유연석이 있었다.

김좌근의 역모사건이 조정에 가져온 여파는 상당했다.

그럴것이 김좌근이 6조의 선두인 이조판서였고 그외에도 역모에 가담한 조정내 중신들의 숫자는 상당했다.

호조판서도 그중에 한명이였고 김좌근에게 항복을 권유하다가 김좌근의 칼에 쑤셔지고 난도질 당했다.

이때문에 지금 호조판서의 자리는 공석이다.

그외에도 호조의 상위직들이 모조리 날아간 상태다.

때문에 희정당에와서 보고하는 유연석 이하 호조의 관료들은 대부분 중간급의 현장직 인원들이다.

어차피 회계장부도 볼줄모르고 재무에대한 지식조차 없었던 전 호조판서와 상위직들이 나가리된건 나쁠건 없었다. 이제부터 호조 본연의 임무와 직책에 걸맞는 인재들로 채우면 되니까 말이다.

그리고 선두로 들어온 유연석을 차기 호조판서로 점찍어둔 상태다.

그는 내가 지시한 김좌근과 안동김씨, 그리고 부패관료들의 재산을 추적하고 호조에서 새어나간 막대한 자금들을 확인하는 임무를 제대로 수행했다.

유연석 혼자가 아니라 그가 선발한 호조내 실무 관료들을 지휘해 얻어낸 성과다.

“그대들이 밤낮으로 격무에 시달렸다는 말을 들었소.”

“아닙니다. 전하! 소신들이 해야할 일이고 오랜만에 호조의 관원들도 사명을 완수하기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습니다.”

“허허. 그렇군요.”

유연석이 겸손하게 대답했지만 희정당으로 들어온 신하들의 얼굴은 피곤함으로 가득했다.

퇴궐도 못한채 호조에서 먹고자면서 야간작업까지 했던게 분명했다.

김좌근의 역모사건 이후에 바쁘게 활동한것이 이조와 호조다.

이조의 경우에는 김좌근이 이조판서로서 이조에서 해처먹고 비리를 저지른 것들이 워낙에많아 그걸 처리해야 했다.

이걸 담당한것이 흥선군 이하응이다.

한양에서 백성들을 모아놓고 김좌근을 포함해 역모 세력들을 공개처형 한것도 이하응이 주관했던 것이다.

‘확실히 흥선군이 이조판서에는 적격이지.’

일부에서는 이하응의 나이를 생각하면 이조판서의 자리는 과하다는 반대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흥선군외에 맡길만한 사람이 없는것도 사실이다.

그는 조선말기에 풍운아로서, 그리고 대원군으로 정국을 주도하는 솜씨를 보였다. 이번에는 그 시기가 좀 빨랐다는 것이 다를뿐이다.

다만 흥선군도 갑자기 이조의 모든것을 담당하게되자 숨이 막히는지 피곤에지친 모습이기는 하였다.

‘이런. 이제부터 흥선군의 모든 능력을 쪽쪽뽑아서, 마구마구 굴릴 예정인데 그정도에 지치면 곤란하지. 그러고보니 내앞에도 호조판서로 굴릴 또 한명이있고. 흐흐.’

유연석을 바라보며 잠시 사악하게 웃었다.

여기에 유연석이 흠칫하며 질문하였다.

“전하! 혹시 잘못된 것이라도 있습니까?”

“아니요. 그대들의 노고에 임금으로서 어떤 보답을 해줄까 생각했을 뿐이요.”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임금으로서 유연석에게 줄것은 더많은 일거리와 더 방대하고 규모가커진 조선의 재무관리 업무다.

“이것이 역모사건에 관련된 자들에게 압수한 재산과 각종 재물들인가?”

“그렇습니다. 여기있는 호조관원들이 사전에 파악해둔 부분을 참고해 압수한 것들도 있고, 이후에 심문과정을통해 나온 사항들. 그외에 제보를통해 확인한 것들까지 포함입니다.”

유연석이 장부를 건네며 설명하였다.

이번에 김좌근 역모사건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인원들은 대부분 참수형을 당했다.

간접적으로 연관된 인원들이나 집안들은 관직을 파직하고, 재산을 압수하고 징발하는 절차를 거쳤다.

‘전하! 역모에 관련된 자들은 삼대를넘어 구대까지 그 죄를 물어야 합니다.’

흥선군 이하응은 처음에 역적에 직간접이면 모조리 다 찾아내 죽이자고 하였지만 이 부분은 제동을 좀 걸어야했다.

그냥 놔두면 아무것도 모르던 애들과 여자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마다 수백명씩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했던 것이다.

또한 자신들은 처형될 것이지만 가족을 살리기위해 스스로 김좌근을 생포해 바쳤던 친위대장이나 사검대의 가족들도 모조리 잡아다 죽이는것도 애매했다.

이때문에 어느정도 원칙을 정했다.

김좌근과 아내, 자식들은 빼박 처형이였고, 역모군인 신조군에 합류했던 인원들도 처형을 면할수는 없었다.

그외에 신조군에 무기를 대주거나 협력했던 지방관들도 모조리 잡혀와 목이 달아났다.

안동김씨들 중에서 성인 남자들은 상당수가 신조군에 직접 참가했기에 대부분 목이잘렸다. 그리고 안동김씨들의 재산들이 대부분 몰수를당한 것이다.

처음에는 역모죄로 잡아서 다 죽이자..! 하던 흥선군도 처형할 사람들의 규모가 너무 커지는걸보고 한발 물러섰다.

거기다 내가 가이드라인을 정해주자 그것에따라 죽일놈은 죽이고, 재산을 뺏을 집안은 몰수하고, 탄광으로 보낼 인원들도 선별하면서 한동안 도성내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김좌근의 역모사건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던 것이다.

“이걸보니 역모사건을통해 압수된 안동김씨들과 관련자들의 재산규모가 상당하군요.”

“과거 수십년동안 부정부패와 불법을써서 모아진 역도들의 재산들이 드디어 국고로 들어왔다고 볼수 있습니다.”

압수된 재산들이 장부에 나열되어 있었다.

엄청난 규모였고 품목들도 많았다. 이 장부를 작성하느라 호조의 관원들이 날밤을 세운것이다.

얼마후 유연석의 설명을통해 최종적으로 압수된 재산들의 규모는 은화로 826만냥 수준.

조선의 몇년치 세입보다 많을 정도다.

이것도 유연석과 호조의 관원들이 미리 조사를 해놓았고 철저하게 파고들었기에 싸그리 끌어모은 것이다.

‘한방에 막대한 목돈이 들어와서 좋기는 한데, 이후에 진행될 국방력 투자와 무기생산, 그리고 이런저런 것들을 생각하면 순식간에 소모되겠구나.’

지갑이 두둑해진 느낌인데 차후에 날아올 수많은 청구서들 때문에 보너스로 받은돈과 상여금까지 순식간에 사라지고 지갑이 탈탈 털릴거같은 기분이다. 그러나 은화 800만냥이란 막대한 자금으로 할수있는 것들은 상당히 많았다.

“지금 조선의 재정상태는 열악하지만 이후에는 달라질 것입니다. 과인이 원하는것은 현재의 조선이 감당하는 세입과 세출보다 최소 10배이상, 아니 100배 이상으로 키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말이시옵니까?”

“물론이요. 따라서 그대들이 해야할 일이 더욱 늘어갈 것이지만 지금까지 해왔던대로 조선과 백성들을위해 노력해 주시면 고맙겠소.”

“전하의 대업을위해 신명을 바치겠습니다.”

유연석과 호조관원들이 대답했다.

이후에는 호조에 더많은 실무형의 인재들을 뽑고 규모를 늘려야 할거같다.

지금까지 조선은 단순히 백성들을통해 세금을받는 식으로, 조세수입을 해왔지만 이제부터는 달라져야 한다.

조선이란 국가 자체가 전세계에서 돈을벌기위해 경쟁속으로 뛰어들어야 하는것이다.

그것을위한 플랜들은 준비가 되어있다.

과거 조선은 동방의 고요한 아침의 나라였지만, 이제부터는 동방의 돈독오른 국가로 탈바꿈 시켜야 하니까 말이다.

* * *

“전하. 기침하셨사옵니까?”

문밖에서 송내관의 음성이 들려왔다.

“걱정마라. 이미 눈을떴다.”

“황송하옵니다. 전하.”

“수행원들의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출발 하자꾸나.”

송내관을향해 대답했다.

임금의 일상적인 하루일과중 첫번째.

그것은 궁궐내 윗어른에게 문안인사를하러 가는 것이다.

창덕궁에서 임금의 윗어른이라면 두명이 있었다.

첫번째는 대왕대비인 순원왕후다.

나에게는 양어머니인 동시에 선대왕인 순종의 부인이다.

두번째는 신정왕후로서 개혁을 시도했던 풍운아, 효명세자의 부인이다. 아침에하는 조문인사가 중요했기에 큰 어른인 순원왕후를 찾아가서했다.

저녁때에는 두번째 큰어른인 신정왕후를 찾아가 문안인사를 하는것이 보통이였다. 하지만 요 일주일간 평소처럼 행하던 순왕왕후에대한 문안인사를 할수없었다.

그녀의 남동생이였던 역모의 수괴 김좌근은 공개처형을 당했다.

다수의 안동김씨들도 목이 잘려나갔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는 충격을 받았고 실신하며 쓰러졌다.

이후에 정신을 차리기는 했지만 그녀는 대비전에서 두문불출하며 나오지 않았다.

이해할수 있는 부분이다.

이때문에 일부러 순원왕후의 처소로 문안인사를 가지않았다.

대신에 대비전을 담당하는 상궁들에게 특별지시를 내려 안위를 살피도록 하였다.

송내관을통해 전해들은 바에따르면 다행스럽게 순원왕후의 상태가 조금 나아진듯 보였다.

처음에는 식음을 전폐할 정도였다.

그래도 간간히 죽이라도 드신다고 했으니 말이다.

어제 그녀의 심경에 큰 변화가 생긴듯했다. 오늘부터 임금이자 양아들인 나의 문안인사를 받겠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나마 한가지 큰 걱정이 덜어진 셈이다.

“전하. 그동안 강녕하셨는지요.”

순원왕후 처소를 지키던 상궁들이 인사하였다.

그녀들의 표정과 모습에서 변화가 있었다.

그녀들에게 나는 더이상 강화도령 따위가 아니다.

손에 피를뭍히고 강력한 적을 제거해버린 강철의 임금이다.

“대비마마께서는 어떠신가?”

“전하의 성은이 망극하여 대비마마께서도 심신이 많이 좋아지신듯 하옵니다.”

“다행이구나.”

선두에있던 상궁이 대답했다. 이윽고 안쪽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전에비해 힘없이 들리지만 그래도 또렷하다.

“상궁들은 뭣들하느냐? 전하를 안으로 뫼셔라.”

“알겠습니다. 대비마마.”

상궁들이 대답하더니 안내를 시작했다.

* * *

잠시 어색한 정적이 흘러갔다.

문안인사를 왔지만 무슨말을 꺼내야할지 막막했다.

대비전 침소에 들어갔을때 순원왕후의 얼굴은 이전에비해 초췌해진 상태였다.

이제는 고령이라서 쉽지않은 상황이다.

동시에 그녀가 속해있는 안동김씨 집안에닥친 혈겁이 그녀를 충격으로 빠뜨린 것이다.

“대비마마께서 소자의 문안인사를 받아주신다고 하시어 기쁠 따름입니다.”

“아닙니다. 주상. 어미가 못나서 주상에게 심려를 끼쳤던거 같습니다.”

순원왕후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쳐다보는 그녀의 눈빛은 복잡했다.

그녀가 나를향해 동생을죽인 살인자 놈... 욕설이나 저주까지도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순원왕후는 대범한 인물이였다.

그녀도 남동생인 김좌근, 그리고 안동김씨가 임금인 나를향해 역모를 시도한것이 얼마나 큰 중죄인지를 알고있었다.

듣기로 순원왕후에대해 불만을가진 일부 세력들 중에는 남동생인 김좌근이 역모를꾀한 수괴였으니 그녀에게도 문책을 해야한다는 소리도 나왔다.

임금인 나를향해 직접 요구한 부분은 아니다.

비호국 요원들을통해 수집한 정보들중에 그런 보고내용도 있었다는 뜻이다.

순왕왕후에대한 문책이란것.

그것은 대왕대비의 지위를 폐하고 별궁에 유폐를 시키자는 것인데 이것을듣자 헛웃음이 나왔다.

성리학 꼰대주의에 빠진 놈들이 적당히를 모르네.

남동생인 김좌근이 역모를 했다지만 그 누님이 나의 양어머니인데 내가 나서서 대왕대비를 폐위시킨다고?

조선의 백성들에게 임금인 나를 부모도 몰라보는 호로자식으로 만들고 싶은것이다.

아무튼 이런 놈들에대해 그냥 놔두면 문제가 생긴다.

다만 지금은 지켜보고 기회를봐서 작살내면 되니까.

“어머니께서 얼마나 상심이 크셨을지 모든것이 소자의 불찰입니다.”

“무슨 말을 하는것이냐? 차라리 못난 애미를 꾸짓어다오. 나의 친동생이 임금을향해 그런 사악한 역모를 꾸미고 있는데도 이 애미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좌근이 그녀석이 종묘사직을 우롱하고 조선의 민초들에게 고혈을빨고 권세를 휘두르고 있는 상황인데도 그것을 말리지 못하고 방관한 이 애미의 죄가 훨씬 크다.”

순원왕후가 눈물을 흘렸다.

동생을죽인 나에대한 원망이 아니였다.

그것보다는 김좌근을 통제하지 못했고 이 모든 혈겁이 자신때문에 생겼다고 자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도 상궁들을통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들었던 것이다.

이윽고 상궁이내온 차를 마신뒤 순원왕후의 표정이 굳건하게 바뀌었다. 마음고생이 있었지만 궁궐내 큰어른의 자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동안 어리고 미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주상의 모습을보니 조선의 임금으로서 부족함이 없구나.”

“아직도 어머니의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겸손이 미덕이라고 하지만 애미의 눈을 속일수는 없느니라. 이번의 역모사건을 막은것은 주상의 탁월한 능력이더구나. 아랫것들을통해 수소문해본 결과 그동안 주상이 역모를꾀한 세력들을 상대로 어떻게 대응하며 역적들의 토벌을위해 얼마나 큰 활약을 했는지를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 애미는 수렴청정을 하는 중대한 직무가 있음에도 그것을 해내지도 못했고, 역적들을 토벌하는데 어떤보탬이 되지를 못하였다. 정말로 이 애미가 부족하여 이런일이 생기다니.”

“아닙니다. 어머니.”

그녀를향해 대답했지만 위안이 되지는 못했다.

얼마후 그녀가 뭔가를 결심한듯 말했다.

“금일부터 이 애미는 나랏일을 주상에게 맡기고 손을 뗄려고 한다. 결심을 굳힌것이니 번복할 생각은 없다. 다만 주상께서는 이 못난 대비를 계속 어머니로 생각해주며 이전처럼 주상이 펼치는 나랏일과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구나.”

“......”

그녀의 말에 숨이 멈추었다.

“하오나 어머니.”

“이미 결정한 것이라고 했지않느냐?”

그녀가 꾸짓었지만 표정은 자상했다.

그녀는 나를 진짜 아들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의 질책은 어머니가 아들을향한 꾸짓음이다. 그때문에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

“지금까지 상황을 봐온결과, 주상은 스스로 나랏일을 하기에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더구나. 다만 이 어미가 알고 싶은건, 주상은 조선의 백성들과 종묘사직, 그리고 미래를위해 어떤 생각을 갖고있는지 궁금하구나.”

“조선을 강대한 제국으로 만들것입니다. 소자는 어머님께서 부디 만수무강 하시어 앞으로 바뀌어갈 강대한 조선의 모습을 직접 보시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나의대답은 진심이였다.

그녀를 나의 새로운 어머니로 생각했다.

이제 그녀에게 아들인 내가 조선을 어떻게 바꾸고 강대하게 만드는지를 보여드리고 싶다.

누가들으면 20살도 안된 어린왕이 부모앞에서 중2병같은 헛소리한다고 치부할수도 있을것이다.

그래도 상관없다. 그것이 나의 사명이고 반드시 해야할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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