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0화 (110/169)

정대상에게 먼저 인사를한 벤자민은 이제 막 상원의원이된 인물이다.

하지만 정대상이 알아본결과 그의 집안이나 경험, 그리고 여러가지를 분석했을때 영국내 상원에서도 상당한 거물급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때문에 정대상은 미리부터 벤자민과의 친목을 다지며 관계를 유지한 것이다.

‘영국에서는 국왕역활을하는 여왕이있고 그 아래에 총리, 그리고 의회라는것이 존재한다. 처음에 전하에게 영국의 의회라는걸 들었을때는 막연한 느낌이였는데, 이제는 그것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떤것들을 중점적으로 파고들어야, 이후 조선에 유리한지를 알게되었다.’

정대상이 벤자민과 인사를 나누며 생각했다.

다만 그에게 영국의회는 경우에따라 서로간에 탁상공론만 일삼으며 무의미한 시간만 보내는 조직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마치 과거 조선에서 벌어졌던 예송논쟁을하며 사대부들이 줄기차게 싸우면서 백성들의 민생은 등한시했던 부분처럼 말이다.

그러나 영국의회의 의원들은 조선의 사대부들과는 다르게 세상밖을 볼줄알았다. 그때문에 지금의 대영제국을 만드는데 상당히 큰 역활을 한것도 있었다.

즉 장점과 단점이 서로 공존하는 것이였다.

어쨌든 정대상은 영국의 생활을통해 의회에있는 의원들이

영국의 국가정책을 포함해 많은것들을 결정한다는걸 파악했다.

따라서 의원들중에 친조선 인맥들을 만드는건 중요했고, 이것을통해 조선에게 유리한 것들을 취할수 있었다.

정대상 일행들이 대화를 진행하고 있을때 근처에서 격앙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이 멍청한 아이리쉬 놈! 겨우 이런 종이쪼가리를 가져와 나한테 막대한 지원과 투자금을 달라고?”

“보리스씨! 이건 단순한 종이쪼가리가 아닙니다. 지금 영국이 사용중인 증기선의 엔진과 추진장치를 획기적으로 바꿀 중대한 기술입니다.”

“씨끄러! 너희 아일랜드 놈들은 언제나 대영제국에 기생충처럼 붙어먹는 존재들이야. 이전에 내가 분명히 꺼지라고 했을텐데, 그런데 여기까지 쫓아와 나를 귀찮게해? 네놈의 주제에 걸맞게 감자나 캐서 먹어!”

“......”

보리스의 폭언에 월터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영국 본토에서 월터같은 아일랜드인들은 차별을 받았다.

그리고 살이 뒤룩뒤룩찐 보리스는 돈은 많지만 인성자체는 쓰레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성질같으면 돼지같은 놈을 한대 후려치고 싶었지만 그럴수는 없었다. 이윽고 월터가 속에서 치미는 분노를 겨우 참고있을때, 동료인 베론이 말했다.

“월터! 더이상은 안돼. 일단은 돌아가자.”

“젠장...!”

월터가 동료의 말에 절망하며 몸을 돌렸다.

이것을 본 보리스는 거만하게 시가를꺼내 입에물더니 투덜거렸다.

“감자캐는 놈들이 내돈을 먹을려고? 어림도 없지.”

잠시 소란이 일어났지만 주변 사람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럴것이 조금전 소리친 보리스는 선박업계에서도 큰손에 들어가는 인물이다.

그리고 상대는 영국인들이 비천하게 여기는 아일랜드인.

따라서 누구도 동정하는 눈빛은 없었고 잠시후에는 자신들의 사교모임에 집중했던 것이다.

하지만 쓸쓸한 표정으로 떠나는 월터와 베론을 지켜보던 시선이 있었다.

“영국인들이 아일랜드 사람들을 싫어한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저정도 일줄이야?”

“대영제국의 화려한 모습속에 감추어진 불편한 진실중에 하나지. 그래서인지 많은 아일랜드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기도 했고.”

“그것에 대해서는 저도 들었습니다.”

오경석이 말했다.

하지만 정대상이 보기에도 보리스처럼 공적인 장소에서 대놓고 혐오를 드러내는 경우는 좀 특이하긴 했다.

다만 정대상은 월터가 아이리쉬라서 받은 차별보다 그가 보리스에게 부탁하며 꺼낸 말에 주목했다.

‘안그래도 영국에서 증기선에 관련된 기술자를 찾고 있었는데, 어쩌면 저 친구들이 도움이 될수가 있을까? 일단은 확인을 해보는것도 좋겠군.’

정대상이 결정했고 동행하던 2명의 비호국 요원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겉으로 이들은 정대상 일행들을 호위하는 경호원처럼 보였기에 누구도 그들이 특수요원이란건 알지못했다.

“단장님. 무슨 일입니까?”

“자네들도 조금전 봤을테지. 저 돼지 사업가에게 거절당해서 나간 두명의 아일랜드 친구들 말일세.”

“그들이 뭔가 수상한 거라도 있습니까?”

“수상한것 보다는 흥미가 생긴다고나 할까? 어쨌든 두명을 미행해서 좀더 알아보게.”

“알겠습니다.”

지시를받자 두명의 비호국 요원들이 행동을 개시했다.

* * *

“요즘 시필드 가문에서 판매하는 홍삼차의 인기가 상당한거 같군.”

“동감이야. 이제는 크라운-같은 고급식당의 메뉴에도 당당히 올라와 있으니 말이야.”

정대상이 박상호에게 대답하며 메뉴를 들었다.

그들이있는 식당 크라운은 런던에서도 파인다이닝-으로 명성이 높은곳이다.

런던내의 상류층들이 찾아왔고 템즈강이 내려다 보이는 야외테라스는 크라운의 자랑중에 하나다.

박상호가 말한대로 조선에서 가져온 홍삼들을 영국인들이 즐겨 마시는 홍삼차의 형태로 마케팅 한것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마케팅을 주최한것이 명성높은 시필드 가문이란 것이고, 거기에 참가한것이 영국의 상류층이란 부분도 한몫을 하였다.

유명인들을 이용한 셀레브레티 마케팅 방법이다.

홍삼차의 독특한 맛과 향기등은 단번에 영국내 상류층들의 취향을 사로잡았다.

이것으로 만년 적자를 겪었던 카디스 푸드(Cardis Food)-의 매출액은 단번에 상승했다.

카디스 푸드는 시필드 가문이 소유한 기업인데 제대로된 히트상품을 못내면서 경영악화와 자금사정이 심각해지던 상태였다.

그러던중 홍삼차의 마케팅을통해, 카디스 푸드는 단번에 살아난 것이다.

이제는 크라운 같은 고급식당에서도 홍삼차 메뉴가 올라와있기에 앞으로 수요는 더 늘어갈 것이다.

이처럼 시필드 가문은 조선에서온 정대상 일행들을위해 필요한 부분들을 지원하고 협력해주며 그만큼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윈윈(Win-win)의 파트너쉽이 된것이다.

“우리들이 조선에서 가져온 백자와 청자들도 비싼값에 팔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경석이 읽고있던 책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조금전까지 보고있던 책의 표지에는 -라는 제목이 있었다.

“경석이는 벌써 프랑스어까지 배우고 있는것이냐?”

“영국과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앙숙이고, 서로 경쟁관계인데도 여기 런던에는 프랑스에서 온 사람들도 꽤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런던에서도 프랑스어를 가르쳐줄 사람들이 많아서 좋은거 같습니다. 다만 영어에비해 프랑스어는 생소한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것이 재밌고 좋습니다.”

오경석이 눈동자를 반짝이며 대답했다.

동생의 모습에 정대상은 흐믓한 표정을 지었다.

조선제일의 언어천재라는 말에 걸맞게 오경석은 영어만이 아니라 다양한 유럽국가들의 언어를 배우며 실력을 높여가고 있었던 것이다.

“영국요리가 유럽에서 비판을 받아도 이곳의 잉글리쉬 블랙퍼스트와 디저트등은 훌륭하군.”

“그나마 영국이 요리에서 유일하게 내세우는 자랑거리중에 하나지.”

정대상이 대답하며 아침식사를 시작했다.

그는 국제유학생단의 단장으로 영국에온 유학생들과 조선인 기술자들을 관리하고 지원해주는 역활을 충실히 하였다.

때문에 시간이 날때에는 유학생들이나 조선인 기술자들을 런던으로 데려왔고 크라운 같은 고급식당에서 식사를 함께하며 그들의 생활을 듣고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지원해 주기도 했다.

얼마후 일행들이 식사를 끝냈을때 두명의 비호국 요원들이 다가왔다.

“단장님이 지시대로 두명의 아일랜드인들을 따라가서 여러가지를 알아봤습니다.”

“그래. 어떤거 같은가?”

“현재까지 확인된 것들입니다.”

비호국 요원이 보고서를 내놓았고 설명을 덧붙였다.

“자네들의 솜씨는 확실하군.”

“과찬이십니다. 다만 그들이 실력이 있는건 분명한데 제대로 인정을 못받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흙속에 뭍혀있는 진주와같은 것이군.”

“확신할수 없지만 가능성은 풍부하다고 판단됩니다.”

“그렇다면 우리쪽에서 먼저 손을써서 흙속에 뭍혀있는 진주를 발굴한뒤 갈고닦아서 빛을내도록 만들어야지.”

정대상이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런던에서 북서쪽으로 40km 떨어진 포머스-

그곳의 허름한 창고에서는 밤인데도 불이밝혀져 있었다.

창고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월터 공작소> 라는 빛바랜 간판이 붙어있었다.

밖에서 볼때와 다르게 창고내부의 공간은 제법넓었다.

하지만 군데군데 나무박스와 각종 자재들, 그외에 공구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진 상태였다.

늦은 밤인데도 창고에서는 기름때가뭍은 작업복을 걸친 10명의 인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일단 준비는 되었으니. 시작해!”

월타가 말했다.

동료인 베론이 석탄을 삽으로퍼서 증기보일러에 넣었다.

치익! 화르륵! 강렬한 열기가 흘러나왔고 창고에 설치된 증기기관이 가동을 시작했다.

증기실린더와 피스톤이 상하로 움직이며 기계적인 소음을 내었고 월터는 묵묵히 지켜보았다.

제대로 작동중인 증기기관의 모습이지만 월터는 불만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래서는 우리들이 만들려는 스크류형 증기선의 엔진을 제대로 만들수없어.”

“아무래도 회전속도가 부족한것이 문제로군.”

“그렇지. 영국을 포함해 선박회사들이 기선들이 사용하는 추진시스템은 선체양쪽에 대형차륜을 달아서 그것을 돌리는 방식이지. 다만 차륜의 크기가 상당하기 때문에 회전속도가 높지 않아도 문제는 없지. 그러나 스크류형의 경우에는 선박의 뒤쪽에 장착하고 스크류의 크기도 작기때문에 수차를 이용한 차륜형 보다는 훨씬빠르게 회전해야해.”

월터가 대답하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자신들이 개발할려는 증기선의 엔진과 추진방식은 기존의 것을 뛰어넘는 혁신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돈이 들어가고 시제품을 만드는것도 쉽지않았다.

월터가 지금까지 모은 돈을 쏟아부어서 개발을 진행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얼마전에는 보리스를 찾아가 투자와 지원을 부탁했는데, 아일랜드놈, 또는 감자나 캐먹는 놈들-이라는 무시를 당했던 것이다.

영국에서 월터나 베론같은 아이리쉬들이 차별받는건 하루이틀이 아니다. 문제는 월터가 가진돈도 다 떨어져 상당한 빚까지 떠안았고 그것도 모자를 지경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창고에서도 쫓겨나게 생겼는걸.”

“젠장! 그나마 이곳이 월세도 싸고해서 자리를 잡았는데, 이제는 어디로 가야하나?”

베론의 말에 월터도 표정이 굳어졌다.

월터가 아일랜드 출생이지만 영국에 건너와서 밑바닥부터 구르면서 증기기관에대한 기술을 배우고 축적했다.

증기선박에 대한건 소리만 듣고도 상태가 어떤지를 금방 알아낼만큼 뛰어났다.

이런 기술이 있기에 대형선박회사에 고용되어 일해도 충분했지만 그는 꿈을 포기할수 없었다.

그럴것이 월터가 보기에도 지금 증기선들이 사용하는 수차를 이용한 추진방식은 너무도 문제점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에반해 자신이 개발할려는 스크류형의 방식은 수많은 단점들을 극복할수 있었다.

문제는 그것을 제대로 개발할 장소와 자금이다.

얼마후 월터가 가동중인 증기기관을 살펴보며 고심하고 있을때, 작업원중에 한명이 다가왔다.

“월터!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이런 밤중에 손님이라고?”

“처음에는 좀 이상했는데 그래도 일단 만나보시는게 어떻습니까?”

“알겠네.”

월터가 대답하며 방문자를 만나기위해 정문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낯선 동양인들이 몇명 있었다.

여기에 월터는 고개를 갸웃했다.

다만 그들의 모습은 말끔했고 전형적인 영국 젠틀맨의 풍모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선두에있는 동양인 정대상은 월터를 정확하게 알아보고 악수를 건네었다.

“반갑습니다. 월터씨! 저번에 카멜롯에서 당신과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기회가없어 아쉬웠는데 이제야 만났군요.”

“설마 거기에 있었던 분들중에 한명입니까? 사실 그때는 좀...”

월터가 머리를 긁적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로서는 낯선 동양인들이 뭣때문에 자신의 작업장까지 찾아왔는지 이해할수가 없었다.

얼마후 정대상 일행들은 월터의 안내를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정대상은 시선을돌려 작업장 내부의 상황을 살폈다.

확실히 월터란 인물은 발명과 기술을위해 모든걸 집중하고 있는 사람임에 분명했다.

월터가 방문한 목적을 질문했다.

그리고 정대상에게 대답을 들었는때 월터와 베론의 두눈은 경악으로 커졌다.

동방의 돈독 오른 국가로 만드는 것

촤르륵! 두루마리를 넓게펼쳤다.

이것은 광저우에있는 이스트 프론티어(East Frontier)를통해 입수한 세계지도들중에 하나다.

세계는 넓고 할일을 많다.

내가 살았던 한국에서 유행했던 구호지만 1850년대의 시기, 그리고 제국주의가 만연한 지금에보니 더 와닿는다.

“현재 대영제국이 갖고있는 해외영토들이 여기와 여기, 그리고... 제길! 많이도 쳐먹고 있었네.”

지도위에 영국이 해외식민지로 갖고있는 부분들을 표시해 보았다.

전세계 육지의 1/4 을 식민지로 가졌고 전세계의 바다를 지배하는 제국.

그리고 영국을 추격하며 열심히 해외식민지를 개척중인 프랑스의 상황도 보인다.

그외에 대항해시대에 선두로 나섰지만 영향력이 줄어버린 스페인과 포르투갈. 하지만 이들 국가들도 여전히 전세계에 갖고있는 해외영토들이 상당수 있었다.

심지어 유럽에서는 탑티어 강대국에 못들어도 동남아시아를 포함해 군데군데 해외영토를 보유한 네델란드까지, 지금 유럽 열강들중에 해외식민지가 없는 국가를 찾는게 더 힘들정도다.

“출발선에서 다른 국가들은 열심히 뛰고있는데 조선은 여태까지 제자리 걸음만 하고있었던 것이고. 아니 남들은 앞을향해 뛸때 혼자서 뒷걸음질치고 있었던 것이 정답이지. 그나마 이제부터 달려나갈 준비를하는 수준? 그래도 여기까지 만든것만도 다행이라고 해야겠군.”

여전히 불만족 스럽고 한숨이 나오지만 첫술에 배부를수는 없었다. 하지만 조선이 해외로 나가기위한 기반과 준비는 차곡차곡 진행해왔다.

이제부터는 그 역량을 발휘하는게 중요했다.

“당장이라도 촉수질하며 손대고 싶은곳이 엄청나게 많지만, 너무 급하면 본전도 못찾을수 있고.”

지도를 살펴보며 이후에 진행할 전략거점들을 표시했다.

지리적으로 중요하고 거점이되는 곳에는 항상 선점한 놈들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골키퍼 있다고 골이 안들어가는게 아니고, 주인이란 상황에따라 바뀌기 마련이지.

지도에 몇가지 마킹을 진행하고 있을때 밖에서 송내관이 말했다.

“전하. 호조의 관료들이 도착했습니다.”

“잘되었군. 그들을 데려와라.”

“알겠습니다.”

송내관이 대답했고 탁자위에 펼쳤던 지도를 다시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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