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7화 (107/169)

예상대로 자신이 매수한 송갑석은 북문에서 대기중이였던 것이다.

“역시 이판대감의 솜씨는 훌륭합니다.”

“이럴때를 대비해 안배를 해둔것이요. 비록 이원범 놈이 안당골을 급습하는 바람에 대업의 계획이 틀어졌지만 저기 북문만 통과하면 창덕궁은 금방이요.”

측근들의 칭찬에 김좌근이 대답하며 우쭐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후에는 완전히 무너졌다.

“역적 김좌근은 들어라!”

“저놈이 지금 뭐라고 씨부려대는 거야?”

김좌근의 두눈이 커지며 욕설이 터져나왔다.

매수당한 한성도윤 송갑석이 저렇게 나올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김좌근이 발광하는걸보며 송갑석은 계속해 말을이었다.

“김좌근 네놈이 처음에 나의 가족들을 인질로삼아, 나를 강제로 역모에 가담시켰지만 더이상 네놈의 말을 듣지않기로 하였다. 나의 가족들과 이몸이 위험에 처할지라도 역적인 네놈을 상대로 끝까지 싸우겠다.”

“.....”

“이판대감! 저놈을 매수한것이 설마 가족을 위협해서 한것입니까?”

“무슨 소리요? 저놈은 처음부터 내가 제공한 막대한 은괴와 반정이 성공한뒤에 주어질 출세때문에 협력하기로 한것이요. 저놈이 지금 거짓말을 하는것이요.”

“그런데 저놈은 뭣때문에... 설마?”

병조판서 이규동의 뇌리로 뭔가가 스쳐갔다.

송갑석이 김좌근과 신조군을 확인하고도 저런 소리를하며 문을 열지 않은것.

그건 이미 송갑석이 철종에게 붙었다는 것이다.

동시에 김좌근에게 붙어먹은걸 벗어나고 싶어 자신은 반강제로 참여했다고 변명을 대는것이다.

그리고 이규동의 판단은 정확했다.

실제로 송갑석은 김좌근이 아니라 같이있는 간도 정찰대장인 박민준에게 사정을 봐달라고 애걸하는 중이였다.

“대감! 더이상 저놈을 상대로 말씨름할 상황이 아니요. 놈이 문을 열지 않는다면 돌파하면 되는것입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요.”

김좌근이 병조판서의 말에 대답하며 명령했다.

“어차피 북문에있는 수비병력은 기껏해야 몇십명이 전부다! 공성전으로 돌파한다.”

“진격하라!”

병조판서가 공격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김좌근이 끌고온 1200명중에 600명이 먼저 성벽을 넘어갈 사다리를 운반하며 달려나갔다.

이들 600명에는 박규수 부대를향해 무지성 꼴박하다가 박살나고 겨우남은 주학대의 유생들 200명, 그리고 흑계두목인 강용식과 간부들이 포함된 흑계중대가 참가했다.

원래 공성용 사다리는 창덕궁 담벽을 넘기위해 준비해온 것인데, 이제는 한성을 둘러싼 북문을 돌파하기위해 사용된 것이다.

“와아아아!”

함성을 지르며 달려나가는 진격부대.

그것을보며 김좌근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북문의 경비병력은 얼마되지 않았고 돌파는 식은죽 먹기다.

“개같은 놈! 나를 능멸해? 송갑석. 네놈의 목을치고 너의 가족들도 모조리 찢어주마!”

김좌근이 성벽위에있는 송갑석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다만 김좌근이 몰랐던것. 그것은 소심하고 겁많은 송갑석이 이런식으로 나온것에는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사실이다.

얼마후 돌격해오는 600명의 적들을보자 송갑석이 기겁하며 말했다.

“히이익! 이제 어쩌면 좋소? 당신의 지시대로 김좌근에게 대들었더니 수백명이 한꺼번에 공격해오고 있소.”

“내가 너의 목숨을 살려준건 주상전하의 은덕인줄 알아라. 어쨌든 이제 네놈의 역활은 여기까지다.”

박민준이 송갑석을 밀쳐냈다.

그러자 쿠엑! 송갑석이 바닥을 구르며 비명을 토해냈다.

이것을 내려보며 박민준이 혀를찼고 대기중인 간도 정찰대원들에게 말했다.

“전하의 친위부대인 호위청과 금군이 올때까지 역적놈들을 막는다. 한명도 북문을 통과하지 못하게하라.”

“걱정 마십시요.”

200명의 정찰대원들이 신속하게 대답했다.

잠시후 대원들은 능숙하게 현무철포에 한자(30cm)길이의 총검을 장착했다.

이것은 만약에 사다리를타고 올라오는 적들을 총검을 베어버리기 위한것이다. 준비가 완료되자 박민준의 지시에따라 대원들이 성벽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저놈들은 또 뭐야?”

“복장을보니 한성부에 소속된 병사들이 아닙니다.”

“신경쓸거 없다! 숫자로는 우리가 유리하다! 돌격해라.”

지휘하던 군관들이 명령을 내렸다.

일부는 아래쪽에서 활을쏘며 성벽에 나타난 정찰대원들을 견제하기도 하였다.

핑! 피핑! 다수의 화살들이 날아왔지만 조준도 형편없었다.

동시에 정찰대원들은 성벽의 엄폐물뒤에 몸을숨긴 상태였다.

그사이 돌격대의 선두가 사다리를 운반하며 다가왔다.

이윽고 성벽에 공성용 사다리를 걸치려던 찰나.

“지금이다. 전대원은 사격해라!”

“발사!”

박민준의 신호에따라 현무철포를 장전한 대원들이 신속하게 몸을 드러내며 일제사격을 퍼부었다.

탕! 타타타탕! 크악! 케엑! 퍼퍽! 200발의 탄환이 한꺼번에 쏘아지는 가공할 화력-

공성용 사다리를 들고왔던 유생들과 뒷골목 건달패들 수십명이 피를뿌리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북문성벽의 아래쪽에는 시체들이 쌓였고, 성벽으로 걸치던 사다리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방어대는 총검으로 대응! 나머지는 재장전 개시!”

지시에따라 50명이 총검으로 대응하며 사다리를타고 올라오던 적들을 베어버렸다.

그사이 나머지 인원들은 재장전을 완료한뒤 아래쪽을향해 탄환을 발사했다.

탕! 타타타탕! 또다시 퍼부어지는 탄환들-

성벽으로 달려들던 적들은 찰나간에 지옥을 경험하고 있었다.

“더이상은 못해!”

“저놈들이 사용하는 화승총은 너무도 강하다!”

“으아아아!”

동료들의 선혈로 피범벅된 유생들이 사다리를 버리고 후퇴했다.

하지만 돌격시킨 부대의 뒤편에는 사검대의 군관들이 도망쳐오는 유생들과 뒷골목 건달패들을 베어버렸다

쉬잇! 크악! 피를뿌리며 쓰러지는 유생과 건달패들.

“이놈들! 누가 후퇴하라고 했나?”

“선비가 적을 앞에두고 도망친다는 건가? 죽어라!”

“사, 살려주시요! 쿠엑!”

군관들은 유생들마저도 가차없이 베어버렸다.

그들에게 유생과 선비따위는 안중에도 없었고, 처음부터 고기방패쯤으로 생각했으니 말이다.

주학대에 참가했던 유생들은 성벽으로 돌진하다가 현무철포에 피떡이 되거나, 후방에서 독전하는 군관들의 칼에 모조리 베어졌다.

그사이 공포로 이성이 마비되었던 주학서원의 훈장 송노진은 군관들에게 살려달라고 매달리다가 목이 잘려나갔다.

“이판대감! 아무리 독전이라해도 주학대의 유생들이 후퇴한다고 모조리 참살한것은 너무한 처사이지 않소이까?”

“씨끄럽소. 조선내의 사대부와 유생들은 저놈들 말고도 얼마든지 있소이다.”

“.....”

김좌근의 대답에 측근들은 반박을 못하였다.

주학대의 유생들은 김좌근의 역모에 사대부와 유생들도 참가한다는걸 알리기위한 선전용도였다.

따라서 여차하면 버리는 소모품에 불과했을 뿐이다.

그것도 모른채 1200명의 유생들은 김좌근을 따라갔다가 개죽음을 당한것이다.

“어떻게 된것인가? 200명에 불과한 북문을 돌파하지 못하는건가?”

“대감! 저놈들이 사용하는 총포는 이원범의 친위부대들이 사용하는것과 같은 것입니다. 애초부터 그놈은 우리들이 여기로 올것을 예상하고 매복을 시켜놓은 것입니다.”

병조판서가 대답했다.

“이렇게 된 이상 후퇴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여기서 시간을 지체하다가는 앞뒤로 포위를 당할수도 있습니다.”

몇명이 김좌근을향해 요청했다.

하지만 쉽게 물러날수 없었다.

북문만 돌파하면 창덕궁은 코앞이다.

창덕궁의 주인이 될수있는 순간인데 그것을 포기할수 없었다.

그리고 적들이 성벽위에 있다해도 200명에 불과할 뿐이였다.

아직도 숫적으로 자신이 유리했다.

“돌파의 가능성은 충분히 있소! 이번에는 병판이 직접 부대를 이끌고 실력을 보여주시요.”

“제, 제가 말입니까?”

“뭣때문에 그러시요?”

김좌근이 지목하자 병조판서 이규동의 음성이 떨렸다.

여기서 거부할수는 없었다.

이번에는 김좌근이 사병으로 육성시킨 사검대의 인원들도 투입되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결심한 병판 이규동이 병사들을 이끌고 돌진했다.

이번에는 나름 잔머리를 굴렸다.

“화승총 부대는 사격을 개시해 성벽위의 놈들을 견제해라.”

“돌격대는 신속하게 사다리를 걸치고 위로 올라가라.”

이규동이 명령을 내렸고 사검대중에 화승총을든 인원들이 성벽위로 사격을 개시했다.

탕! 타타탕! 총탄이 빗발치자 정찰대원들이 신속하게 몸을 숙였다.

“대장님! 저놈들이 무식하게 쏘아대고 있습니다.”

“걱정마라! 어차피 현무철포에비해 구형 화승총은 장전속도나 연사속도가 월등하게 떨어진다. 그점을 이용해라.”

박민준이 능숙하게 지시를 내렸다.

그말대로 처음에는 탄환을 퍼붓던 화승총 부대였지만 다음탄을 장전한다고 시간이 지체되었다.

그사이에 대원들은 추가장전을 완료했고 사다리를 걸치고 올라오던 적들을 해치웠다.

“으아악!”

털썩! 쿵! 성벽을 오르다가 추락하는 적병들.

몇명의 대원들은 화승총을든 사검대를향해 반격을 날렸다.

탕! 타탕! 크억! 화승총을쥔 사검대들이 쓰러졌고 이걸보던 병조판서 이규동은 분노했다.

처음에는 성공할거 같았는데 적들의 반격은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였다.

그럼에도 독전을위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진격하라! 진격! 커억!”

타앙! 한발의 총성이 터지며 이규동이 뒤로 넘어졌다.

명사수의 솜씨를지닌 박민준이 현무철포로 조준사격을 개시했고 일격으로 이규동을 해치운 것이다.

이규동이 시체로 변하자 두번째로 돌격해왔던 사검대와 잔존부대는 후퇴를 하였다.

“믿을수없다! 사검대 마저도 실패하다니!”

김좌근의 얼굴은 절망으로 가득찼다.

그리고 자신을 이렇게 몰아넣은 상대, 철종에대한 분노로 괴성을 질렀다.

하지만 김좌근의 발악은 오래가지 못했다.

콰두두두! 후방에서 들려오는 말발굽과 굉음.

“이판대감! 적들이 우리를 추격해 왔습니다.”

“전부대 방어준비!”

친위대장인 최재상이 소리쳤다.

금군의 기병대들이 속도를 높이며 달려왔고 뒤쪽으로는 호위청 병사들이 전투진형을 만들며 접근했다.

김좌근과 역모세력은 완전하게 앞뒤로 포위된 것이다.

진격해오는 금군들의 사이에는 철종이 이하응과 함께있었다.

잠시후 이하응이 냉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이판대감께서 안당골에서 꽁지빠지게 도망치길래, 지금쯤은 창덕궁이라도 차지했는줄 알았더니, 겨우 여기로 온것이 전부입니까?”

“.....”

“당신의 계획대로면 저기있는 북문이 열려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닫혀있으니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셨군요. 그래도 북문을 뚫어보겠다고 시도하신거 같은데, 하하! 저기있는 간도정찰대는 전하의 지시를받아 10배의 병력이 덤벼도 성문을 내주지 않을만큼 강인한 자들인데, 고작 패잔병들 따위로 어찌 해볼려고 했다니!”

“네이놈. 이하응! 나와 안동김씨가 무서워 상갓집 개처럼 기어다니던 놈이 잘난척을 해?”

김좌근이 소리쳤다.

그러자 흥선군 이하응은 피식 냉소를 짓더니 말했다.

“본인 스스로 안동김씨를 몰락시키고 말아드신 분이 잘도 떠드시는군요.”

“.....”

이하응의 말에 김좌근이 꿈틀했다.

남아있던 그의 친척들과 안동김씨들이 공포에 질렸다.

흥선군이 최후통고를 하듯이 외쳤다.

“역도들은 당장 무기를 버리고 항복해라.”

“헛소리마라! 사검대! 저놈들을 돌파해 다른 길을 찾는다.”

“대감! 이미 포위된 상태입니다. 이제 그만 포기해야...”

“헛소리마라! 이놈!”

김좌근이 항복을 권유하던 호조판서를 베었다.

일격에 쓰러진 호조판서를 내려보며 김좌근이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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