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상이 지휘하는 비호국의 요원들은 여러 첩보들을통해 활동했고, 귀중한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주학서원에서 양반과 유생들이 움직이는걸 미행한 유동수 조장의 요원들은 이곳에 은신처를 만들고, 진행되는 상황들을 확인했던 것이다.
“전체적인 규모는 5,000명의 수준이군.”
“그럼에도 상당수는 훈련안된 오합지졸들 이거나, 거드름 피우는 양반과 유생들 입니다.”
“자네의 말대로네. 다만 저곳에 무장을 제대로갖춘 1000명정도는 이전부터 김좌근이 준비한 친위부대인거 같은데, 저들에 대해서는 주의가 필요하겠군.”
조장인 유동수가 말했다.
얼마후 그가 지휘하는 요원들은 신조군의 규모와 병력, 그리고 훈련상태등을 포함해 다양한 첩보들을 세밀하게 기록했다.
이것들은 비호국을통해 임금에게 전달될 것이고, 반역도들을 토벌하는 귀중한 정보가 될것이다.
치명적인 약점
“나리, 퇴청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알겠다.”
송갑석이 들어온 부하를향해 대답했다.
얼마후 밖으로 나가자 가마와함께 여러명의 호위병들이 있었다.
준비하고있던 그들이 한성도윤인 송갑석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가 가마에 올라타자 좌우로 호위병들이 늘어섰다.
송갑석은 가마를타고 느긋한 자신의 모습에 흡족했다.
그럴것이 한성부에서 도윤의 직책을가진 그가 평소에는 이런 가마를 타거나 가마꾼을 데리고 다닐수도 없었다.
한성부가 중요한 관청이긴 하지만 한성도윤은 기껏해야 종 5품에 이르는 중급관직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송갑석은 권세가인 김좌근에게 줄을대면서 이런 호사를 누릴수 있었다.
송갑석이 타고있는 가마를 포함해 가마꾼들, 심지어는 그를 지켜주는 10명의 호위병들도 모두 김좌근이 제공해준 것이다.
이것이 공짜는 아니다.
송갑석은 김좌근이 반역을 개시할때 자신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있었다.
‘흐흐. 드디어 나에게도 공신이 될수있는 출세의 기회가 찾아오는군.’
그가 앞으로 얻게될 높은 관직, 그리고 부귀영화를 기대하며 히죽거렸다.
김좌근이 진행중인 반정이 성공하면 자신에게도 최소 병조참판의 자리는 떨어질 것이니 말이다.
얼마후 주위는 점점 어둑해졌고 송갑석을태운 가마와 호위병들은 몇개의 골목을지나 집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때 송갑석의 앞길을 막아서는 사내가 보였다.
“네놈은 누구냐? 여기가 어디라고 길을 막느냐?”
선두의 호위병이 소리쳤다.
이것에 정찰대장인 박민준은 냉소를 짓더니 말했다.
“기껏해야 종 5 품인 한성도윤이 가마를 타면서 호강하다니! 예상대로 뒤가 구린놈이 확실하군. 다른건 필요없고 지금 즉시 가마에서 내려 우리를 따라갔으면 하는데.”
“역시 미친놈이 확실하군. 신경쓸거 없다. 베어버려라!”
“예이..!”
두명의 호위병이 칼을빼들고 돌진했다.
상대가 박민준 혼자라고 생각하며 우습게 본것이다.
하지만 앞에있는건 노련한 무사였고 박민준은 두명의 사이로 파고들며 섬광을 번뜩였다.
챙! 캉! 크억! 두명이 헛바람을 삼키며 앞으로 쓰러졌다.
“급소를 베지는 않았다. 하지만 네놈들도 그 댓가는 받아야 할것이다.”
“저놈이? 뭣들하느냐? 어서 저놈을 죽여라!”
송갑석이 소리를 질렀다.
이윽고 남은 8명이 한꺼번에 박민준을향해 달려들었다.
순간 탕! 타탕! 연달아 4-5발의 총성이 터지며 박민준에게 덤벼들던 호위병들이 쓰러졌다.
저마다 다리에 탄환을 맞으며 바닥을 뒹군것이다.
“으아아! 도, 도망가자.”
가마꾼들이 송갑석을 내동댕이쳤다.
바닥에 넘어진 송갑석이 쿠엑-거리는 비명을 토해냈다.
도주할려던 가마꾼들 앞으로 백두철포를 조준한 간도 정찰대원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어딜 갈려고?”
“제발 살려주십시요.”
“순순히 말을들으면 죽이지는 않겠다.”
가마꾼들이 눈물을 흘리며 애걸했다.
백두철포에 쓰러진 동료들을보며 나머지 호위병들은 굳어버렸다.
이윽고 좌우골목에 숨어있던 정찰대원들이 하나둘씩 나타났고 그 숫자는 열명도 넘었다.
여기서 반항해봐야 고깃덩이만 될 뿐이다.
박민준이 바닥에 넘어진 송갑석을향해 다가갔다.
송갑석이 반항할려고 시도했지만 퍽퍽! 박민준의 후려차기가 상체에 박히면서 송갑석은 튕겨졌다.
“대체 뭣때문에 이르는 것이요?”
“처음부터 순순히 말을 들었으면 좋았을거 아냐. 아주 높으신 분께서 네놈의 면상을 보고싶어 하시니 운이 좋은줄 알아라.”
박민준이 신호를 보내었다.
정찰대원들이 달려들어 송갑석과 나머지를 포박하기 시작했다.
* * *
“반란군의 병력이 5000명 정도라... 김좌근이 단시간에 꽤 끌어모으기는 했군요.”
“그래도 조선제일의 권세가이고, 안동김씨들이 그동안에 모아놓은 재산과 재물, 그리고 인맥들을 한꺼번에 동원한거 같습니다.”
비호국장인 최원상이 대답했다.
밤늦은 시간의 희정당.
이곳에는 비호국의 최원상과 강기석, 그리고 흥선군 이하응과 병조참지인 박규수등이 참가하고 있었다.
조금전 최원상을통해 김좌근이 반역을위해 준비중인 신조군에대한 보고를 들었다.
김좌근이 이정도로 발악하는것에 흥미가 생겼다.
만약에 김좌근과 세력과 안동김씨들이 수년간에 걸쳐서 조용히 역모를 준비했다면 내쪽에서 당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하지만 김좌근과 안동김씨들은 시간에 쫓기는 중이고, 그때문에 저들의 헛점이 여러곳에 드러났다.
“그런데 비호국장. 설명을 들어보니 저들 신조군들중에 한양과 경기도내 서원의 양반과 유생들도 참가하고 있다는건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숫자는 대략 1200명 정도입니다. 비호국 요원들의 보고에 의하면, 어설프게나마 흑계를통해 모집된 왈패와 뒷골목 건달패들의 부대와함께 훈련을 진행중에 있습니다.”
비호국장이 흥선군 이하응에게 대답했다.
순간 이하응의 미간이 꿈틀했다.
안그래도 이하응이 서원을 폐단이라고 생각하는건 사실이다.
그건 역사에서도 증명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서원에 적을둔 양반과 유생들이 반역에 가담까지 했으니, 성리학 탈레반의 기반인 서원들이 이후에 어떤상황이 될지는 충분히 예상되었다.
“학문과 후학의 양성을위해 세워진 서원에서 반역도들이 나오다니! 전하! 이 문제는 가볍게 볼수가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 문제는 이후에 처리해도 될것입니다. 하지만 서원에서 동원된 양반과 유생들 1200명이 신조군에 있다해도 그것이 큰 전력이 되기는 힘들거 같군요.”
“맞습니다. 전하!”
부국장인 강기석이 대답했다.
어설프게 화승총을 쏴보거나 칼이나 창을쥐며 허접한 병정놀이를 하고있을 유생들의 모습을 생각하니 웃겨죽을 수준이다.
그렇다해도 봐줄 생각은 없다.
반역에 동참했으니 댓가는 확실하게 치뤄야 한다.
“이곳이 현재 김좌근이 모집한 신조군이 모여있는 안당골 입니다. 전방에는 원당천이 흐르고, 좌우에는 산과 계곡이, 그리고 후방에는 통로가 있는데 그곳에 병사들을 배치해 놓았습니다.”
최원상이 지도를꺼내 펼쳤다.
김좌근도 잔머리를 굴렸기에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방어에 유리한 지형에 신조군의 주둔지를 만든것이다.
“어쩌면 방어에 유리한 곳이다보니, 적들도 방심할수 있겠군요.”
“제대로 보셨습니다. 안당골의 주변에대해 추가로 2개의 감시조와 정찰조를 투입한 결과, 외부에서 안당골 내부로 침투가능한 샛길을 발견했습니다.”
“좋은 소식이군요. 샛길의 통로와 상태는 어떻습니까?”
“상당수가 좁은 산길이라서 기마부대가 통과할수는 없지만, 대신에 보병부대는 지나갈수 있습니다.”
최원상의 설명을듣자 몇가지 계획들이 떠올랐다.
그러던중 송내관이 문밖에서 말했다.
“정찰대장이 찾아왔습니다.”
“어서 들라해라.”
잠시후 문이열리며 간도정찰대장인 박민준이 모습을 나타냈다.
그러나 혼자가 아니였다.
그가 억센 팔로 한명을 끌고 들어오는게 보였다.
끌려온 상대는 검은천으로 눈을 가린 상태다.
이윽고 박민준이 그것을 풀어냈다.
“정찰대장, 저자가 한성도윤인 송갑석인가?”
“그러하옵니다.”
“밧줄까지 묶은걸보니 순순히 따라오지는 않았던거 같군.”
“자신이 처한 상황도 모른채 반항할려고 했습니다.”
박민준이 송갑석을 체포하던 과정을 짧게 설명했다.
예상했지만 역시나 박민준과 정찰대원들에게 덤비다가 오지게 당한것이다.
“나머지 인원들은 어디에 있나?”
“한양에있는 저희부대의 숙영지에 감금해두고 있습니다.”
“잘했군. 한동안은 그곳에 두도록 하게.”
박민준을향해 대답한뒤 송갑석을 내려보았다.
그는 무슨 상황인지도 모른채 눈만 멀뚱거릴 뿐이다.
그러자 옆에있던 흥선군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 이놈! 여기가 어디고, 네앞에 계신분이 누구인지 아느냐?”
“저, 저로서는 도저히!”
“이런 아둔한 놈을 보았나? 여기가 바로 창덕궁이고, 지금 네앞에 계시는 분이 이나라의 임금인 주상전하다.”
“그, 그럴수가...”
송갑석이 경악하며 고개를 숙였다.
지금은 희정당에 있고 내가 용포를 입고있는것도 아니니까.
그리고 송갑석의 직책인 한성도윤은 창덕궁의 임금을 직접 만나는 자리도 아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웬 어린놈이 자기앞에 있나 생각했을 거다.
“미, 미천한 소신이 주상전하를 뵈옵니다.”
송갑석의 음성이 떨리고 있었다.
두려움에 잠겼고 포박이된 상태에서도 고개를돌려 내쪽과 이하응, 그리고 박규수와 최원상쪽을 번갈아 보았다.
“일단 포박은 풀어줘도 되겠군.”
“전하! 저놈은 죄인인데 아니될 것입니다.”
박규수가 나서며 말렸다.
하지만 끌려온 송갑석이 나를향해 덤빌 가능성은 없어보였다.
이미 박민준에게 호되게당한 상태였고, 최원상과 강기석도 뛰어난 무관들이다.
내가 신호를 보내자 박민준이 송갑석의 포박을 풀었다.
“고개를 들라. 그대가 뭣때문에 여기에 끌려왔는지 아는가?”
“소, 소신은 평소처럼 관청의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저자에의해 강제로...”
송갑석이 더듬거렸다.
그래도 일단은 버팅겨 보겠다는 건가?
“네 이놈! 우리들은 네가 김좌근과 내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전하앞에서 거짓말을 하겠다는 건가?”
“.....”
이하응이 눈을 부라렸다.
역시 조선말기의 풍운아답게 위세만큼은 당당하다.
그리고 상대를 협박하는 방법도 잘알고 있었다.
“한번만 더 네놈의 입에서 거짓이 나올때에는 지금당장 여기있는 정찰대장을 파견해 네놈의 집에있는 식솔들과 가문을 모조리 잡아서 처형하겠다.”
“제, 제발 살려주십시요.”
송갑석이 눈물을 흘리며 애걸했다.
이런건 임금인 내가 나서는것 보다는 이하응이 담당하는게 더 좋지.
아무래도 임금의 짬이 있지, 송갑석같은 잔챙이에대한 심문까지 내가 할 필요는 없으니까.
“흥선군은 저자에게 김좌근이 역모를 거행할 날짜가 언제인지, 그리고 김좌근의 신조군이 도성으로 진격하고, 창덕궁을 공격하기위해 어떤걸 하기로 했는지 물어보게.”
“알겠습니다. 전하.”
이하응이 심문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버팅기던 송갑석은 잠시후 술술 털어놓았다.
김좌근은 창덕궁을 기습하기위해 제법 잔머리를 굴린것이다.
지금 잡혀온 한성도윤 송갑석을 매수한것은, 반역의 주둔지인 안당골에서 창덕궁으로 향하는 결정적인 관문, 바로 북문을 신조군에게 열어주기위한 것이였다.
만약에 5000명에 이르는 신조군이 도성의 북문을 무사히 통과해 내부로 진입하면 내쪽에서도 골치가 아파진다.
물론 창덕궁을 경비하는 호위청과 금군의 전투력은 신조군의 오합지졸들에비해 월등하지만 숫적으로는 열세였다.
따라서 전투의 승패를 장담하기 힘들고, 뭣보다 내쪽에서 주도권을 내주게되는 것이다.
본래라면 송갑석같은 중하급에게 김좌근이 측근만 알고있는 결행날짜를 알려주지는 않을것이다.
다만 저녀석은 반역을 결행하는 날에 북문을 열어주는 중요한 임무를 맡고있기에 송갑석이 자백한 정보는 정확한 것이다.
“이 모든것이 사실인가? 조금이라도 거짓이 있다면, 네놈과 가족들은 무사하지 못할것이다.”
“정말입니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전하를 속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