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양무가 자신있게 대답했다.
“조금전 말한대로 김좌근 측근이 병조판서로 군권을쥐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김좌근과 세력들이 보유한 사병들 숫자도 상당할 정도입니다. 또한 조선에서는 김좌근처럼 세력을가진 권신들이 왕을 몰아내고 새로운 임금을세운 경우도 있습니다.”
양무가 보충설명을 하였다.
그의 말은 틀린것이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인조반정이다.
중립외교를 펼치며 조선의 자주성을 추구했던 광해군.
그를 강제로 몰아낸것이 인조반정의 세력들이고 광해군을 미친 국왕이라고 왜곡했던 것이다.
그리고 광해군을 내쫓은뒤 그들이 내세운건 광해군보다 몇천배나 무능한 인조였고, 나중에는 조선최대의 치욕인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굴욕을 만든것이다.
거기다 인조는 자신의 아들과 며느리 까지도 죽이는 미친 짓까지 해버렸다.
이윽고 주광비의 입가에 조소가 떠올랐다.
청제국을향해 반기를든 조선왕을 조선내의 신하들이 폐위시킨다면 청황제의 권위는 단번에 높아질 것이다.
새롭게 황제가된 혁저(함풍제)의 권위와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도 속국인 조선을 재물로 삼는것은 좋은 수단이다.
“김좌근이란 조선인은 머리가 잘 돌아가는군.”
“맞습니다. 애송이 조선왕을 폐위 시키는건 물론이고 그놈을 사로잡아 대청제국의 수도인 연경으로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황제께서 그놈의 목을친다면 천기대신 각하를 포함해 폐하의 권위는 하늘을 뚫을것입니다.”
“흠. 애송이 조선왕의 목을치는건 둘째치고 우리쪽에서 작성한 요구 사항들에대한 부분은 어떤가? 기왕이면 김좌근이 반정에 성공한뒤 그자를 이용해 조선에대한 배상금을 더 올리고 싶은데... 얼마면 좋을까, 그래! 이전의 5000만냥에서 더 추가해서 은 8000만냥이다. 대신 한번에 8000만냥을 대청제국에 배상하는것이 아니라 매년마다 2000만냥씩, 4년이란 시간을두고 매년마다 일정부분을 받아내는것도 좋겠군. 그리고 조선이 대청제국에 보내는 공녀의 숫자도 올리는게 필요하겠군. 처음의 5000명에서 3배인 15,000명으로... 크큭!”
주광비가 승리한듯 망상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에 양무가 맞장구치며 대답했다.
“각하의 명안에 탄복할 따름입니다. 김좌근은 대청제국의 무서움을 잘알고 상국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천기대신 각하께서 요구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따를것입니다. 아마도 조선의 백성들을 쥐어짜서라도 반드시 해내고 말것입니다.”
“하긴 조선같은 노예국에는 김좌근 같은 놈이 왕으로 필요하겠군. 그래야 청제국을향해 죽을때까지 봉사를 할테니까.”
“물론입니다.”
“좋다. 폐하께 말씀을드려 네놈들이 조선에서 굴욕을 당하고 수모를당한 부분에 대해서는 선처하도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천기대신 각하!”
두명이 몇차례나 고개를 숙인다.
죽을뻔한 위기를 벗어난 것이다.
“김좌근이 대청제국을위해 충절을 바치기로 했으니, 이번 사건은 두고보기로 하겠다. 자네들은 김좌근과 그 세력들이 성공할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거라.”
“명심하겠습니다. 각하!”
양무의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철종에게 당한 수모와 굴욕을 갚아줄때가 온것이다.
나이도어린 애송이에게 처음으로 당한 수치!
연경(북경)까지 오는동안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김좌근을통해 반정이 성공하고 애송이 조선왕이 북경에 끌려오면 그놈을 직접 고문하고 보복할 계획이다.
그것을 생각하자 양무와 등비의 입이 귓가로 찢어지며 이빨을 드러냈다.
* * *
하포군영(夏布軍營)은 충청도에있는 여러 군영(軍營)들중에 하나이며, 제법 큰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평시에도 수백명의 군졸들이 머물렀고, 조선군에 사용되는 각종 물자와 병장기들도 보관되어 있었다.
조선의 지방군에 해당하는 속오군의 훈련이 있을때에는 하포군영이 눈코뜰새없이 바쁘다.
그럴것이 하포군영에 보관중인 각종 화약과 화승총들을 훈련에 참가하는 군졸들에게 지급하였던 것이다.
다만 최근에는 훈련도 없었기에 군영내의 병졸들이 느긋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였다.
그런데 오늘은 하포군영을 찾아온 특별한 방문자들로 인해 내부는 발칵 뒤집히고 있었다.
“아침부터 뭔데 그래?”
“큰일이야. 조금전 병마절도사께서 오셨다니까.”
“그게 정말이야?”
소식을 전해들은 병졸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중에는 부하들에게 소리까지 지르며 날뛰는 만호 조원진이 보였다.
그는 하포군영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었지만 평소에는 관사에서 술이나 마시며 노닥거리는게 전부였다.
얼마후 조만호가 군관들을 데리고 마중을 나갔다.
“병마절도사께서 누추한 곳까지 오시다니, 소관은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하포군영에있는 조만호가 유능하다는 소문이있어 한번 둘러보러 왔네.”
“그러십니까?”
조원진의 입이 찢어지고 있었다.
충청도의 군사령관인 병마절도사가 자신을 보러왔으니 말이다.
출세를 바라던 조만호의 입장에서는 기회가 왔다는 생각이다.
다만 원유철 충청절도사가 하포군영을 방문했지만 그와 동행해온 인원들은 제법 많았다.
절도사의 후방으로 갑옷을 걸치고 무장까지한 인물들이 보였는데, 이들은 얼핏봐도 중앙군의 군관들이란 느낌이였다.
“병마절도사께서 도와주신 덕분에 일이 수월하게 되었군요.”
“허허. 당연히 해야지요. 무엇보다 이판대감의 부탁이신데.”
“대감께서도 절도사의 공훈을 잊지 않을것입니다.”
최재상이 대답했다.
그는 김좌근의 친위부대인 사검대(士劍隊)의 지휘관이다.
김좌근은 부정부패와 권세를통해 사병들을 계속해 모았다.
이제는 숫자가 1000명에 이를 정도다.
하지만 이들은 김좌근의 부하들이 흑계(黑契)를통해 모집중인 뒷골목 왈패나 양아치 병사들과는 달랐다.
대부분이 중앙군에서 활동했던 경험이 있었고 군마를타던 기병 출신들이 많았다.
한편 신병들을 모집하고 신조군의 숫자가 불어나자, 김좌근은 대량의 군수물자와 병장기들을 확보하기위해 수작을 부렸다.
그것에는 자신에게 충성하는 병마절도사 원유철을 이용해 조선군이 보유한 무기와 화약을 빼돌리는 것이다.
그것을위해 어젯밤에 원유철의 집으로 친위대장인 최재상이 찾아갔고 김좌근이 제공한 막대한 은괴를 전해준 것이다.
그뒤에 원유철은 김좌근이 진행중인 반역음모에대해 들었고, 안그래도 철종에대해 우습게 생각했던 원유철은 합류를 하였다.
얼마후 그들은 조만호의 안내를받아 군영내부로 들어갔다.
하포군영의 사람들은 높으신 분의 출현으로 모두 고개를 숙였다.
이윽고 원유철이 조만호에게 질문했다.
“그런데 여기에 대량의 화승총과 화약, 그리고 병장기들을 보관하는 곳이있다고 들었는데, 어디인가?”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조만호가 안내를 시작하며 옆에있던 부하에게 외쳤다.
“절도사님이 무기고를 확인하신다. 어서 병기장을 불러와라.”
“알겠습니다.”
지시받은 부하가 달려갔다.
이것을보며 최재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병마절도사가 말한대로 하포군영을 담당하는 만호 조원진은 무능력했고 상관에게 잘보이려고 난리다.
이런 놈들은 다루기쉽고 적당한 미끼를주면 금방 걸려든다.
얼마후 그들이 무기고 앞에 멈추었을때 병기장인 김종대가 직인들과함께 달려왔다.
병기장인 김종대는 중년의 나이였고 하포군영에서 보관중인 각종 무기들을 점검하고 관리했다.
특히 손기술이 좋아서 그의 손을거치면 녹슬거나 고장난 화승총도 금방 새것처럼 변한다.
“자네가 병기장인가?”
“그렇습니다.”
김종대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러자 절도사 원유철이 중인신분에 불과한 병기장을 내려보며 명령했다.
“상부의 명령에따라 무기고의 병장기들을 전부 옮겨야 하니까, 문을열어라.”
“그것이 정말이십니까? 그런데 어디로 옮기실 예정입니까?”
“그건 뭣때문에 묻는것이냐?”
“저안에는 화약과 화승총, 그리고 잘못다루면 위험한 병장기들이 있습니다. 만약에 옮기는 장소를 알려주시면 저와 직인들이 그곳까지 운송하는데 지원을 하겠습니다.”
“.....”
김종대의 말을듣자 원유철이 당황했다.
그러나 병기장인 김종대가 한말은 타당했다.
그럴것이 조선군에서도 화약과 화승총에 관련된 병장기들을 다룰때에는 조심하는게 원칙이다.
그러나 하포군영에있는 무기들은 김좌근이 진행중인 역모를위해 사용할 것이다.
때문에 그것이 어디로 가는지는 기밀사항이다.
그런데, 기껏 중인신분의 병기장이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다니?
이윽고 원유철의 미간이 꿈틀하며 조만호를 노려보았다.
“네놈은 부하들 관리를 어떻게 하길래, 일개 미천한 병기장이 절도사의 앞을 가로막는단 말이냐?”
“죄, 죄송합니다. 어르신.”
조만호가 몇번이나 고개를 조아렸고 김종대를향해 소리쳤다.
“이놈이 미쳤나? 어서 문을열어라! 하포군영의 모든것은 내가 책임지고 있다.”
“알겠습니다.”
조만호가 나서자 김종대는 어쩔수 없었다.
문이열리자 내부에는 하포군영이 보관중인 막대한 양의 화승총과 화약, 그리고 병장기들이 나왔다.
“엄청나군요.”
최재성이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정도면 수천명을 충분히 무장시킬 정도의 수준이다.
이윽고 최재성이 같이온 부대원들에게 지시했다.
“어서 화약과 화승총, 그리고 병장기들을 실어라.”
“알겠습니다.”
대답한 부하들이 마차와 수레들을 가져왔다.
병기장인 김종대는 걱정이 되었고 화약을 싣고있던 병사들에게 조심할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그들은 병기장의 말에 코웃음을 치면서 밀쳐낼 뿐이다.
잠시후 병마절도사 원유철이 아부하는 조만호를 띄워주었다.
“자네같이 능력있는 인재가 촌구석에서 썩는것은 아깝군. 언제 한번만나서 자네의 능력을 살릴수있는 기회를 주고 싶은데.”
“그게 정말이십니까? 정말로 감사합니다.”
“뭘 그정도 가지고.”
원유철이 조만호를향해 흡족하게 웃었다.
얼마후 짐을싣은 마차와 수레들이 하포군영을 출발했다.
뒤에 남겨진 김종대 병기장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한데.”
“왜 그러십니까?”
“상부의 명령이라고 하지만 하포군영의 화승총과 화약, 병장기들은 모두 비상사태를 위한 것인데, 지금같은 시기에 갑자기 옮기는건 도저히...”
“병기장님. 제가봐도 좀 그렇습니다.”
같이온 직인들중에 한명인 안재근이 대답했다.
그는 병기장인 김종대에게 기술을 배우고 있었고, 김종대가 아끼는 제자들중에 한명이다.
이윽고 김종대가 낮게 말했다.
“재근아. 조만호에게는 알리지말고 네가 저들을 미행해 어디로 가는지를 알아봐라. 다만 무리하지말고 멀리 떨어져서 살펴봐라. 어차피 짐이 가득해서 빨리 움직이지는 못하니까.”
“알겠습니다.”
김종대의 지시를받은 안재근이 행동을 개시했다.
고기방패들
권신인 김좌근의 위세는 하늘을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다.
그에걸맞게 김좌근의 저택은 웅장할 규모였다.
관례상 조선의 양반은 돈이많고 부자여도 집의 크기를 무한정으로 확장할수는 없었다.
보통 99칸 저택이라는 말이 존재한다.
즉 99칸 이상의 거대한 저택과 집을 가질수 있는건 임금이고 그곳이 임금이 살고있는 궁궐이다.
그런데 김좌근의 저택은 상당한 크기였다.
외부에서 봤을때는 임금이 지내는 창덕궁과 맞먹을 수준이다.
동시에 저택에는 하루에도 수십명씩의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들중에 상당수는 김좌근의 인맥을 이용해 관직과 명성을 얻을려는 사대부들이다.
지금 김좌근은 권신의 수준을넘어 직접 왕이될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먼길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대감께서 부르시는데 천리길이 멀다해도 반드시 와야지요.”
중년사내가 대답했다.
정문에는 한명의 여성이 있었고 하인들과함께 들어오는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오늘 김좌근의 저택으로 오는 사람들은 상당히 특별했다.
평소에도 김좌근에게 관직을 얻기위해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김좌근이 호출해서 온것이다.
저택으로 들어오는 손님들은 그녀를향해 깍듯하게 인사를했다.
김좌근이 권신이라면 그녀는 김좌근의 아내로서 막강한 권력을쥐고 있었다.
김좌근이 조선최고의 권신이 될수있었던 부분도 아내인 장수미 덕분이다.
그녀를통해 김좌근은 안동김씨 일족을 손에쥐었고 권신의 자리에까지 올라갈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김좌근이 안동김씨들의 수장이 되는것에는 형들의 죽음이 상당히 컸는데... 지금도 의문이 많았다.
과거에 건강했던 김좌근의 형들이 차례로 급사한 상황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