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구가 대답하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얼마후 모여든 건달패들의 표정은 흥분으로 가득했다.
“그것이 정말입니까?”
“내가 동생인 너희들을 상대로 거짓부렁을 할것으로 보이느냐?”
“김좌근 대감이라면 조선의 최고 권세가 아닙니까?”
“당연하지. 김좌근 대감이 우리들에게 일거리를 주시는 것이다.”
박상구의 말에 가동촌 건달패들은 기대감을 드러냈다.
권세가인 김좌근이 사병들을 모집하는 중이라는것.
대우도 엄청나게 좋았다.
일반 병졸들의 봉급에비해 최소 10배 이상이다.
선금으로 준다고하니 군침이 당기는 것이다.
그뿐아니라 김좌근의 사병으로 들어가는 기회다.
운좋게 실력발휘를 한다면 출세까지 가능했다.
“어떠냐? 오랜만에 큰돈을 만져볼수있는 기회다. 나를따라 가겠느냐?”
“당연히 형님을따라 우리들도 가야지요.”
“자식들! 네놈들밖에 없다.”
박상구가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있는 20명의 동생들을 데려가면 자신에게도 상당한 거금이 떨어진다.
하지만 박상구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동생들에게 숨겼다.
어차피 데려가는 패거리들도 선금으로 상당한 돈을 챙길수 있으니까 말이다.
따라서 누이좋고 매부좋은 장사인 것이다.
이처럼 권세가인 김좌근이 사병들을 모집한다는 소식.
그것은 암암리에 퍼지고 있었다.
특히 각각의 고을이나 동네를 다니면서 뒷골목 양아치들을 모집하는건 박상구같은 흑계의 간부들이 담당하고 있었다.
동시에 흑계의 조직원들도 상당수가 김좌근에게 막대한 거금을받고 합류하는 중이였다.
“이번에 잘만하면 네놈들도 팔자를 고칠수있다.”
“크아! 드디어 가동촌같은 촌동네에서 벗어나 출세할수 있다니!”
“이제서야 우리같은 인생들 한테도 서광이 비치는군요.”
흑계간부인 박상구의 꾀임에 넘어간 20명의 양아치들이 장미빛 꿈에 부풀었다.
얼마후 그들은 박상구의 뒤를따라 출발을 시작했다.
그리고 떠나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년의 주모는 혀를 찼다.
저놈들이 또 무슨 사고를 칠려고 저러나?
하지만 박상구를 따라가는 가동촌의 양아치들은 자신들 앞에 어떤운명이 펼쳐질지는 꿈에도 몰랐다.
* * *
“자네들도 왔는가?”
“대의를위한 행동인데 어찌 빠질수가 있겠나?”
“물론일세. 이번기회에 창덕궁의 미친놈을 끌어내고 새롭게 종묘사직을 세워야하네.”
몇명이 주먹을쥐고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얼마후 그들이 향한곳은 주학서원(朱學書院)이다.
이들은 주학서원에서 몸담았던 양반과 유생들이다.
그리고 얼마전에는 청나라 사신에 당당하고 영은문을 박살낸 철종에대해 반기를 들었던 세력들이다.
이에대한 증표로 연판장을 만들어 서명했고 그것을 김좌근에게 전달하기도 하였다.
이윽고 서원의 내부에는 그들과함께 연판장에 서명했던 동료들 200명이 모여있었다.
잠시후 주학서원의 책임자인 훈장 송노진이 나오며 말했다.
“연판장에 서명하고 모여주신 여러분들에게 정말로 감사를 드립니다. 알다시피 지금 우리들은 힘을 모아야 합니다. 그래야 창덕궁에있는 미친놈을 끌어내고 나라를 구할수 있습니다. 현재 주학서원만이 아니라 한양과 경기도에있는 서원들중에서도 대업에 참가할 인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습니다.”
“역시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우리같은 사대부들과 유림이 나서야 하지요.”
“당연합니다. 멍청한 상것들이 지금의 왕을 따르고 있던데, 그놈들은 상국(청나라)의 뜻을 거역하는것이 얼마나 큰 화를 불러 일으키고 나라를 위기에 빠뜨리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외침이 터져나왔다.
이것을보며 송노진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송노진은 얼마전 그가 숭배하는 권세가 김좌근의 집에 소집되었다.
그곳에는 주학서원만이 아니라 한양과 경기도에있는 유명한 서원들의 훈장들이 여러명 보였다.
김좌근은 그곳에서 은괴와 금괴가 들어있는 상자들을 내놓았다.
‘자네들이 보내온 연판장들을통해 한양과 경기도에있는 각 서원들에 몸담고있는 양반과 유생들이 나와뜻을 함께 한다는걸 알았네. 이것은 자네들의 수고에대해 보답하는 자그마한 성의일세. 그리고 여기모인 각 서원의 훈장들은 연판장에 서명하고 뜻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데려와주게.’
송노진의 눈앞에 내밀어진 은괴와함께 소집장소가 적혀져 있었다.
그곳은 김좌근과 안동김씨 세력이 오래전부터 보유하고 있던 사택지들중에 하나였다.
‘여기서 우리는 군사를 모은뒤에 거사를 진행할 것이네. 이제부터 자네들도 새로운 조선을 세우는 신조군(新朝軍)에 들어온것을 환영하네. 그리고 공을세우면 그대들의 가문은 새로운 공신가문으로 부귀영화를 누릴것일세.’
‘김좌근 대감의 대업을위해 신명을 바치겠습니다’
서원의 훈장들이 저마다 고개를 숙였다.
그뒤에 송노진을 포함한 서원의 훈장들은 연판장에 서명한 양반과 유생들을 모았다.
이후에 서명하고 참가한 인원들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1200명에 이를 정도가 되었던 것이다.
이윽고 송노진의 인도에따라 주학서원의 양반과 유생들 200명은 출발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서원에서 좀 떨어진 골목길에 잠복해있는 시선들을 알지못했다.
“당신의 말대로군요.”
유동수가 말했다.
뒤쪽에는 긴장된 표정을한 박종식이 있었다.
그는 얼마전 주학서원에서 긴급 소집령을 내렸을때 참가를 하였다.
하지만 훈장인 송노진이 양반과 유생들을 모아놓고 임금에대한 불충, 그리고 오랑캐인 청나라를 상국으로 생각하며 비굴한 모습을 보이는것에 모멸감을 느꼈다.
때문에 연판장을 작성할때는 일부러 뒷간 핑계를대며 참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뒤에 주학서원에서 또다시 수상한 움직임이있자 자신과 친했던 동료 오영훈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처음에 박종식은 몰랐는데, 그가 정보를 털어놓은 동료 오영훈은 신분을 감춘채 활동하는 비호국 중경대에 소속된 요원이였다.
동시에 박종식은 임금이 오래전부터 비밀첩보를 담당하는 조직까지 갖고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런것도 모른채 주학서원의 저들은 임금을 타도하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김좌근을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후 조장인 유동수가 신호를 보내었다.
그러자 비호국 요원중에 두명이 미행을 개시했다.
“당신의 귀중한 정보로인해 전하에대한 충절과함께 우리 비호국에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닙니다. 저들의 어리석은 모습에 그저 한숨만이 나올 뿐입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선대인 효종께서 실패했던 북벌을 완성하실 분이신데.”
“그말대로 전하께서는 청나라와의 일전을위해 비호국을 만들고 우리같은 요원들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미 전하의 뜻에따라 비호국만이 아니라 조정내 많은 관료들이 준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조선에 새로운 광명이 찾아오고 있군요.”
“지금 전하께서는 당신같이 능력있는 인재를 모으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당신도 비호국에 들어와서 조선의 대업을위해 힘을 보태시는게...”
“알겠습니다. 소생의 힘이 미천하지만 신명을 다하겠습니다.”
박종식이 대답했다.
그리고 유동수 조장은 흐믓한 표정을 지었다.
비호국은 신분의 고하를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능력있는 인재는 누구든 받아들이고 그들이 활약할 기회를주는 것이다.
망상회로도 적당히 해라
자금성을향해 나아가는 백여명의 무리들.
선두에는 양무와 등비가 있었다.
뒤쪽으로 갑옷을입은 팔기군의 무관과 병사들이 따라갔다.
이들의 표정은 지쳐있었고 일부는 허탈한 감정을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것이 몇달전 북경에서 출발할때만해도 기세가 좋았다.
하지만 신의주 나루터에 도착한 뒤부터 온갖 개고생을 하였고, 한양에서는 조선왕인 철종에게 무시를 받았다.
“드디어 연경(북경)에 도착했군요.”
등비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들의 눈앞에 자금성의 거대한 모습이 보였다.
뒤에서 따라오던 호위무관 원차가 걱정하였다.
“그나저나 어떻게 합니까? 이번의 사신단, 그리고 정사와 부사께서 조선왕 놈에게 굴욕당한걸 알게되면, 상부에서도 가만있지는 않을것인데.”
원차가 말하는 이유는 뻔했다.
그의 임무는 사신단에대한 호위였지만 양무와 등비가 철종에게 개박살 나는걸 코앞에서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손가락하나 까딱할수 없었다.
신의주 나루터에서 간도 정찰대장인 박민준에게 압도당했다.
그뒤에도 조선군 부대의 무력은 원차의 예상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기세좋게 수십명의 팔기들이 말타고 돌진하다가 조선군이 발사한 총포의 일제사격에 모두가 쳐박힌 기억은 지금도 생생할 정도였다.
물론 원차가 선두에서 돌진하다가 가장 먼저 쓰러지며 흙바닥을 몇바퀴나 굴렀으니 말이다.
무관으로서 그때의 기억과 굴욕감은 잊을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이니 사신단 대표인 양무와 등비만이 아니라, 자신도 무사할수 없다는 두려움이 생겼던 것이다.
“원차. 자네가 걱정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고있네. 하지만 좋은 해결책이 생겼으니 일단은 안심해도 될걸세.”
양무가 원차를향해 김좌근과 내통했던 부분을 말해주었다.
이윽고 원차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들의 목이떨어질 참극은 막을수 있겠군요.”
“그래도 장담할수 없는것이네. 일단 천기대신을 설득시켜야 하는것이고. 그뒤에는 천기대신께서 서태후 마마와 폐하께 말씀을 잘 드려 우리들이 참수형 당하는걸 막아야 하니까.”
“그렇군요.”
양무의 말에 원차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살았다고 좋아했는데 아직도 목에 칼이들어와 있는 상태다.
하지만 양무가 말한대로 성공만 한다면, 자신을 포함한 사신단의 팔기들이 단체로 목이 잘리는건 막을수 있었다.
이윽고 원차가 뒷덜미를 쓸어가며 속으로 기도하였다.
* * *
쾅! 두터운 탁자를 내리치는 주먹.
굉음이 터져나왔고 엎드린 양무와 등비, 그리고 팔기무관인 원차까지 움찔하였다.
자금성에 도착한뒤 그들 세명은 바로 천기부(千機府)에 불려갔다.
천기부는 자금성과 청제국의 실세가된 천기대신 주광비를위해 새롭게 구성된 부서다.
그리고 조정내의 인사권과 병권을 포함해 막대한 권한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상석에있던 주광비는 세명을향해 보고를 하라고 재촉했다.
사신단의 정사였던 양무가 대표로 설명을 시작했다.
그리고 주광비는 신의주 나루터에서 팔기들이 무장해제를 당하고, 조선왕이있는 창덕궁에서 굴욕을 당했다는 보고를듣자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분노한 것이다.
“네이놈 양무!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것이냐? 대청제국의 사신이란 놈이 속국인 조선에서 망신과 굴욕을당해? 지금 당장 네놈의 목을 쳐버리고 말겠다. 그리고 부사인 등비 네놈과 같이간 팔기무관 원차, 네놈들도 마찬가지다.”
“천기대신 각하! 소신들에게 기회를 주십시요.”
양무가 당황하며 소리쳤다.
분노가 머리까지 차오른 주광비가 측근 무장들에게 소리쳤다.
“여봐라! 이놈들을 당장 끌어내 목을 쳐라.”
“예이...!”
군관들이 달려와 양무와 등비를 끌어내기 시작했다.
질질 끌려가던 양무가 눈물로 애걸했다.
그때 원차가 나서며 소리쳤다.
“천기대신 각하! 소신들의 목을치는건 언제든지 가능하오나, 사신단 정사인 양무가 새로운 계책을 갖고왔으니, 끝까지 들어보고 판단해 주십시요.”
원차가 단검을 꺼내어 앞에 내려놓았다.
이걸본 주광비가 양무와 등비를 끌고가려던 군관들에게 신호했다.
“좋아! 네놈이 죽을 각오를하고 간청하는 것이니, 일단 들어보도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원차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양무는 원차를향해 감사의 표시를 한뒤에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너희들을 찾아온 김좌근이란 조선인이 궁궐에있는 애송이를 몰아내고 새로운 조선왕이될 계획을 갖고있다는 뜻이군.”
“맞습니다. 각하.”
“그놈은 어떤 인물인가?”
주광비가 질문하였다.
처음의 분노는 제법 누그러진 상태였고 관심을 나타내는 중이다.
이것에 양무와 등비, 원차까지도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강제로 끌려가 목이잘리는 상황은 면했던 것이다.
“대신각하. 김좌근 그자는 조선의 중앙에서 실권을 쥐고있는 안동김씨 세력의 수장입니다. 그리고 조정내의 주요 관직들이 대부분 그자의 측근들로 채워져있는 상황입니다. 심지어 군권을 장악하는 병조판서 마저도 김좌근의 입김이 작용한 인물입니다.”
“흥미롭군.”
처음에는 조선이 대청제국을향해 대들었다는 사실에 격노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 모든것이 애송이 조선왕 혼자의 객기였다는게 드러났으니 말이다.
양무가 말한대로 강화도에서 농사나짓던 못배운 놈이 왕이되니까 눈에뵈는게 없어진 것이다.
그에반해 김좌근을 포함한 조선의 실세들은 대청제국의 무서움과 위대함을 잘알고 있었다.
때문에 조선왕의 불충을 바로 잡기위해 스스로 나서는 상황이다.
이걸볼때 대청제국을 상국으로 모시던 조선의 태도는 크게 변한것이 아니였다.
“자네들이말한 김좌근이 애송이 놈을 몰아내고 반역에 성공할거 같은가? 만약에 실패한다면 대청제국의 체면이 구겨질수도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