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5화 (95/169)

때문에 대책을 마련한다고 고심하던 차였다.

그러던중 부하가 기겁하며 들어왔던 것이다.

“지금 영은문이 박살나고 있습니다.”

“뭣이라고. 그게 정말이냐?”

양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영은문이 어떤것인가?

조선이 중국을향해 노예가 되기로 맹세하고 증표로서 만든것이다.

그것이 박살나고 있다니!

경악한 양무와 사신단들이 창쪽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영은문이 뚜렷하게 보인다.

영은문 주변에 수천명의 조선인들이 모여있는것도 보였다.

“저것들이 미쳤나?”

양무가 발끈하며 주먹을 쥐었다.

이대로 있을수 없었다.

얼마후 양무를 선두로 사신단들이 달려갔다.

숨이 턱에까지 차도록 헉헉거렸다.

겨우 도착하자 뭔일이 벌어지는지 확인할수 있었다.

조선의 예조판서가 사람들을 동원해 영은문을 박살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양무가 장우영에게 소리쳤다.

“지금 뭣들하는 짓인가?”

“작업을 끝낸뒤 청의 사신단에게 알려줄 생각이였는데, 제발로 찾아왔으니 수고를덜게 생겼군요.”

“.....”

양무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자신들 앞에서 대놓고 영은문을 부셔버리고 있다니.

조선에서 이렇게 간덩이가 부은 임금은 처음이다.

“조선왕은 미친것인가?”

“이보시요. 말을 삼가시요. 전하를향해 뭐라고 주절대는 거요? 지금까지 외교관례상 참아주고 있었지만 더이상 주상전하를 욕보인다면 가만있지 않을것이요.”

장우영이 발끈하며 외쳤다.

그리고 주위에있던 병사들에게 신호를했다.

처처척! 현무철포로 무장한 호위청 병사들이 앞으로 나선다.

사신단이 압록강변에서 경험했던 조선의 무기였고, 이것을 본순간 사신단들의 등뒤로 식은땀이 흘러갔다.

현무철포의 앞에는 한자(30cm)길이의 총검까지 달려있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여기에모인 수천명의 조선인들도 살기를 드러내었다.

“더이상 저들을향해 따지다가는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르겠습니다.”

“끄으응.”

부사인 등비의 말에 양무가 신음을 토한다.

이것을보며 장우영이 냉소했다.

그리고 작업중이던 관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뭣들하느냐? 작업을 서둘러라.”

“예이!”

지시를받은 관원들은 신이났다.

망치와 도끼를 휘두르는 속도가 증가했다.

지켜보던 백성들의 함성소리가 주위를 가득메운다.

얼마후 영은문이 바닥으로 쓰러지며 굉음을 내었다.

영은문이 무너지는 모습.

그것은 조선을 하대하던 청의 자존심이 박살나는것.

양무와 등비는 더이상 지켜볼수 없었다.

다리가 후들거렸고 옆에있던 팔기병이 부축했다.

“보아하니 안색도 나쁘신거 같은데, 돌아가서 쉬시는게 어떻소?”

장우영이 냉소를 지었다.

그리고 위세에눌린 청의 사신단이 할수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이런 그들의 등뒤로 조선의 백성들이 비웃음을 퍼부었다.

조선 섬유공사

한대의 마차가 시골길을 통과하며 나아갔다.

런던같은 대도시에서 볼수있는 승객용의 마차였고, 뒤에는 3명의 조선인들이 탑승하고 있었다.

승객칸에서 창밖을 보고있던 박상호가 감상을 표시했다.

“이걸보니 영국의 시골풍경은 조선과 비슷한 느낌이군.”

“그렇네. 대도시인 런던과는 다른 모습이고, 의외로 조용하고 한적한 것이 런던의 번잡한 상황과는 딴판이군.”

정대상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들이 탑승한 마차는 얼마전 런던을 출발했다.

그리고 지금은 런던에서 북쪽으로 270km정도 떨어진 맨체스터시(市)로 향하는 중이였다.

그들이 향하는 맨체스터는 런던처럼 화려한 도시는 아니다.

하지만 산업혁명의 출발지였고 지금도 영국의 산업과 공업을 구성하는 핵심지역들중에 하나였다.

맨체스터에는 산업혁명 초기부터 시작된 면직물과 방직물 산업이 번성하고 있었다.

이윽고 시골풍경을 지나친뒤 마부석에있는 로저스가 외쳤다.

“미스터 정(Jung), 조금후면 맨체스터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잠시후 그들앞으로 상당히 큰 도시가 보였다.

그리고 맨체스터의 특징은 수많은 공장들에서 솟아오르는 연기들이다.

그때문에 도시위의 상공은 짙은 먹구름이 끼어있었다.

정대상이 품속에서 은화를 꺼내어 로저스에게 건네주었다.

로저스가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시했다.

그는 런던에서 마부로 활동했고 이번에는 인심좋고 친절한 고용주를 만나게 되었다.

새로운 고용주가 아시아에서 온 동양인이란 부분이 생소하지만 로저스에게는 문제될건 없었다.

지금처럼 마차를몰고 목적지까지 안내해주면 두둑하게 은화도 챙겨주기 때문이다.

일행들은 다수의 공장들이 모여있는 지역에 내렸다.

“외부에서 봤을때는 웅장한 규모에 놀랐는데 도시내부로 들어오니까 또 다르군요.”

오경석이 주위로 지나가는 행인들을보며 말했다.

영국산업의 중심인 맨체스터 공업지대였지만 이곳에서 엄청난 이득을 챙기고 산업혁명의 과실을 맛보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들은 영국의 신흥 자본가 들이다.

그리고 맨체스터의 환경이나 생활조건은 열악했다.

영국내부, 심지어는 유럽에서도 건너온 가난한 노동자들이 군데군데 세워진 공장에서 하루종일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행들 앞으로 느릿하게 지나가는 몇명의 사람들.

그들은 누더기로 변해버린 옷을걸치고 생기없는 눈빛으로 걸어갔다.

얼마후 일행들은 마부인 로저스의 안내를 받으며 나아갔다.

정대상이 여기온 목적은 철종의 지시에의한 것이다.

조선이란 좁은곳에 있다가 영국으로 온뒤에 정대상은 영국이 보유한 국력의 근간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자신들이 방문한 공업도시 맨체스터도 그중에 하나였다.

이곳에서 생산된 대량의 면직물들은 영국을 포함해 전세계 곳곳으로 수출되며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다.

그것을통해 영국은 전세계와 대양으로 진출하면서 대영제국의 명성을 높이는 것이다.

“여기서도 아이들은 잘 뛰어놀고 있군요.”

오경석이 시선을 좌측으로 향하며 가리켰다.

곳곳에 세워진 공장들과 거리들의 공터-

거기에는 10명의 꼬마들이 가죽으로된 뭔가를 차면서 뛰어다녔다.

“로저스씨. 저 아이들이 하는건 무엇입니까?”

“풋볼(축구)라는 것입니다. 요즘 영국에서는 아이들만이 아니라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유행입니다.”

“얼마전 시필드 매칸티씨의 초청을받아 폴로(Polo)시합을 본적은 있었는데, 풋볼은 처음이군요.”

“폴로는 영국에서도 왕족들이나 귀족들, 그리고 높으신 분들의 스포츠 입니다. 저희들같은 서민들에게는 꿈도 못꿀 일이지요.”

로저스가 대답하며 어깨를 들썩였다.

그의말대로 영국내 상류층에서 유행하는 폴로(Polo)경기는 말타고 달리며 공을치고 시합하는 것이다.

때문에 기본적인 장비와 말의 가격만해도 상당할 정도다.

“그렇군요. 다만 저 풋볼(Foot ball)이라는 놀이는 별다른 도구가 없어도 아이들이 재밌게 노는걸보니, 이후에 조선의 아이들에게도 가르쳐주면 좋을거 같습니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그리고 저의 아들도 풋볼을 좋아하는데, 드리볼 솜씨가좋아 한두명은 그냥 제끼고 달립니다. 하하!”

로저스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가 정대상을 고용주만이 아니라 또다른 부분에서 친밀감을 느끼는건 이런것 때문이다.

이전에는 런던내 상류층이나 귀족들을 고용주로 모셨는데, 그들은 로저스같은 하층민을 벌레보듯 했기 때문이다.

그에반해 동양에서온 미스터 정(정대상)은 지적이면서 자신들같은 서민들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 * *

“단장님! 저곳도 공장인거 같은데. 좀 다른거 같습니다.”

오경석이 정대상을향해 말했다.

일행들은 로저스의 안내를받아 맨체스터 공업지구의 여러곳을 둘러보던 중이였다.

그리고 대로변에있는 공장들은 상당히 큰 규모였다.

내부에만도 수백명에 이르는 직공들이 기계앞에서 일을하였고, 방직기계들이 쉴새없이 움직이며 실을 뽑아내었다.

이런 방직기계들을 가동시키는 동력은 증기기관을통해 발상되었다.

치익! 증기기관의 피스톤이 상하로 움직일때마다 석탄을 연소시킨 검은연기가 굴뚝을향해 솟아올랐다.

이런것들에 감탄하며 더 안쪽으로 들어갔고, 그때 오경석이 뭔가를 발견했고 일행들은 잠시 멈추었다.

“확실히 자네의 말대로 저기도 실을 뽑아내고, 옷감을 만드는 공장인거 같군. 그런데 우리들이 지나왔던 공장들과는 다르게... 아무것도 안하고 있군.”

“저앞에 사람들이 모여있으니 물어보는게 어떻습니까?”

“알겠네.”

오경석의 말에 일행들이 나아갔다.

녹이슨 철문은 삐걱거렸고 공장의 정문쪽에는 5-6명의 사내들이 앉아있었다.

그들은 다가오는 정대상 일행들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여러분들은 이 공장의 직인들 같은데. 무슨일이 벌어진 것입니까?”

“에휴~ 말도 마시요. 지금까지 잘 운영되던 회사와 공장이 갑자기 파산해 지금은 일도못하고 이렇게 시간만 때우는 중입니다.”

선두의 중년사내가 대답했다.

대답을듣자 정대상은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얼마후 설명을통해 상황을 알게되었다.

직공이 100명정도로 구성된 캐링턴 방직공장은 얼마전 급격한 경영악화와 빚더미 때문에 문을닫은 것이다.

맨체스터가 섬유산업의 중심지역이지만 겉으로 보이는것과 다르게 내부경쟁은 치열했다.

특히 대자본이 투자된 대형 방직회사들과 공장들은 더 큰돈을 벌어들이고 대량생산을 유지했지만, 캐링턴 방직공장처럼 인원이 100명 남짓한 중소형 회사들은 약육강식과 경쟁에의해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캐링턴 방직공장은 자체적인 기술도좋고, 품질도 뛰어난 면직물을 생산하는 업체였지만 대형 업체의 압박에 결국은 버티지 못했던 것이다.

“설명을 들어보니, 어쩌면 우리들이 찾던 후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쎄. 일단은 확인을 해봐야겠지.”

정대상이 대답했다.

잠시후 정대상은 그들에게 캐링턴 방직공장의 사장이 누구이고, 어디서 만날수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당신들이 뭣때문에 사장님을 찾는지 모르겠지만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아마도 근처에있는 펍(Pub)에서 술이나 마시며 신세한탄이나 하고 계실테지만.”

대답하던 중년사내 마일스도 안타까운 표정이였다.

그럴것이 사장인 램버트는 영국내의 콧대높은 자본가들과 다르게 젊은 시절부터 방직공장에서 일을하며 경험을쌓은 기술자였던 것이다.

이후에 가진 돈을 모두 투자해서 캐링턴 방직공장을 만들고 전에일했던 동료들을 모아서 꿈을키웠다.

하지만 그 꿈이 좌절되었고 엄청난 부채까지 떠안게 된 상태였다.

끼익- 문을열고 정대상 일행들이 들어갔다.

그들이 도착한 펍(Pub) 시라이온(Sea Lion)은 20명정도 들어갈 평범한 선술집이였다.

영국에서 선술집 역활을 하는곳이 대중적인 펍(Pub)이였고, 공업도시인 맨체스터에는 100-200명 이상이 들어갈 대형 펍들도 있었다.

사장인 램버트를 발견하는건 쉬웠다.

대낮부터 술에취해 혼자서 중얼거리는 사람이 보였으니 말이다.

“마일스. 자네가 여기는 어쩐 일인가?”

“사장님께서 이런 상황이니까, 다른 직원들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거 아닙니까?”

“정말로 미안하네. 하지만 이제 모든건 끝났네. 차라리 나 혼자떠안고 리버풀 바닷물에 뛰어들면 그만이지. 제기랄!”

사장인 램버트가 투덜거렸다.

정대상이 앞으로 나서며 테이블 맞은편에 앉았다.

손짓하자 점원이 다가왔다.

“여기 펍안에있는 손님들 모두에게 10잔씩 돌리도록!”

“예?”

점원이 놀랐고 정대상이 은화를꺼내 탁자위에 놓았다.

순간 점원의 입이 벌어졌고 은화를 챙기더니 황급히 달려갔다.

“아니, 당신은 누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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